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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신라를 만나는 ‘신라야화’

등록일 2026-02-23 15:46 게재일 2026-02-2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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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편 이야기 담긴 오래된 문고판
보기 쉽고 흥미 있게 상세히 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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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야화 내 경주고적 안내 약도. 

1962년 3월 15일 4판 인쇄된 책은 오래된 세월만큼 많이 낡았다. 손대호씨가 쓴 ‘신라야화’로 부제는 서라벌 이야기다. 앞표지에는 석가탑이 뒤표지에는 다보탑 사진이 인쇄되어있다. 흐릿하나 배경이 지금과는 다르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유품으로 책에 관한 사연은 당시 같은 손씨 문중 사람이 책을 내어 구입하셨다고 들은 게 전부다. 책은 완전히 펼쳐지지 않은 채 조심히 읽혀진 듯 온전히 펼쳐지는 부분이 없다. 다만 수 차례 읽었음 직한 표시로 종이 끝 쪽이 지문 크기만큼 부분부분 얼룩져있다. 책 주인의 조심스러움과 상관없이 시간과 이동 과정에서 표지는 분리되었다. 전해 받았을 때부터 떨어져 있던 표지를 넘기면 경주고적 안내 약도가 나온다. 글과 그림 모두 손으로 쓰고 적었다. 추천의 말은 당시 월성교육구 교육감이자 경주고적보존회장 김영식씨가 적었다. 머리말을 보면 신라 천년은 우리 겨레의 가장 찬란한 문화와 빛나는 정신을 이룩한 시대라 말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 겨레의 참된 마음을 올바르게 깨치기 위해 책을 발간한 것으로 보인다. 문고판 크기의 책엔 52편의 이야기가 140여 페이지에 걸쳐 실려있다.

대부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라 관련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간혹 미처 알지 못하던 이야기도 간간이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그 중 기림사는 지금과 명칭이 달리 적혀있어 눈여겨보았다. 책에는 ‘지림사’라 표기되어 있으며 경주 절 중 가장 큰 절이라 적혀있다. 경주 지역 사투리로 인하여 당시엔 ‘기’자가 ‘지’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시민기자의 어린 시절만해도 어르신들 중에는 기름을 지름으로 발음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봄, 여름, 가을에는 절의 손님과 일반 놀음에 손님이 많이 온다고 쓰여 있는 걸 보면 당시에도 방문객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절에 대한 설명 중 팔괘 중 하나인 ‘오색목단화’ 부분이 나온다. 한 나무에 오색의 목단꽃이 피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수국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니 늘 수국만 찾았더랬다. 다음에 가면 목단을 좀 더 눈여겨보아야겠다 싶다.

다음으로 배리라는 지명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신라 관례로 부모의 기일에 반드시 불사로써 명복을 빌었는데 나이 든 재상 유렴이 아는 스님께 부탁해 고승을 데리고 오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찾아온 고승은 유렴이 원하던 모습에 못 미쳤고 업신여기며 푸대접하였다. 그러자 그 고승은 화를 내며 소매 안에서 사자를 꺼내 타고 달려갔고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유렴이 뒤쫓았으나 늦고 말았다. 고승은 하늘로 올라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재상은 종일토록 엎드려 사례하였다. 그리하여 그곳을 ‘배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외에도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을 때면 한참을 보다 나오는 약사여래상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있다. 조상(彫像)의 명수(名手)라 불리는 당나라 사람의 작품이라 한다. 친구의 조언에 따라 문화를 우수하게  여기는 신라로 넘어와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끝장에는 책 출판정보가 적혀있다. 4쇄째이며 권당 가격은 400환이다. 그와 함께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문구가 함께 적혀있다.

“오천 년 역사에 가장 빛나는 신라문화가 남겨둔 육십여 종의 사화를 누구나 보기 쉽고도 흥미 있게 상세히 엮어놓은 경주의 안내서인 동시에 양식인의 반려.”

누군가의 수고로운 기록 덕분에 오랜 책에서 새로운 신라를 만났다.

/박선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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