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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수성구보건소의 찾아가는 건강 가꾸기 사업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한 노년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화되는 지금, 지역사회의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건강한 노년’을 보장하는 것이다. 단순히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복지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대구 수성구보건소가 추진 중인 ‘찾아가는 건강 가꾸기 사업’은 행정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경로당 어르신들의 건강생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각 시설을 직접 방문해 건강상담을 하고, 심뇌혈관 질환 예방, 혈압측정, 노쇠 예방, 식습관 및 신체활동 관리, 사회적 교류 활성화 등 다방면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고산 건강생활 지원센터는 올바른 칫솔 사용법 안내와 칫솔 배부까지 병행하며, 생활 속 작은 건강 습관이 곧 큰 변화란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 그것은 거창한 정책보다 생활 속의 건강한 습관이야말로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시작임을 일깨운다. 지난 10일, 사월동 태왕리더스 경로당을 방문한 박세은 주무관은 어르신들의 혈압을 직접 측정하며 “뇌졸중이나 심근 경색의 초기 증상이 나타날 경우, 신속히 119를 통해 응급실을 찾도록" 당부했다. 한쪽 마비, 언어장애, 시야 이상, 극심한 두통 등 전조 증상을 알려주는 그의 설명은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가 지역사회 보건 행정의 핵심임을 상기시킨다. 주민의 일상 속으로 직접 찾아가는 이 사업은 단순한 보건 서비스를 넘어, 공공의 건강권을 실현하는 적극적 복지정책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수성구 내 78개 경로당 중 50여 곳이 참여할 예정이라는 점은, 건강관리의 기회가 더욱 폭넓게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촘촘한 행정은 의료 접근성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간 건강 격차를 완화하는 실질적 대안이 될 것이다. 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곧 가족의 안정이자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가치다. 수성구보건소의 ‘찾아가는 건강 가꾸기 사업’이 바로 그 가치를 지역사회 속에서 구현하고 있다. 노년이 외로움이나 질병의 두려움이 아닌, 존엄과 자립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행정의 현장이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할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3-15

두물머리, 두 강이 만나는 곳에 봄빛이 흐른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있는 두물머리에 가만가만 봄이 스며든다. 겨우내 얼어있던 강물이 조금씩 풀리며 잔잔히 물결이 일고, 그 위로 부는 아직은 차가운 바람 속에 이미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기척이 담겨 있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확 트인 시야 너머로 봄바람을 한껏 실은 팔당호의 물결이 방문객을 맞는 이곳은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개의 강물이 하나가 되는 곳이다. 행정구역상 지명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兩水里)이지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두물머리’라 불러 왔다. 우리말 이름이 더 정겹게 느껴지는 곳, 그곳에도 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두물머리 입구에는 ‘DUMULMEORI‘라는 영문 조형물이 서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으로 많은 사람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긴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 대신 두 눈에 담아 본다. 호수 같은 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 참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봄빛 머금은 바람과 잔잔히 흐르는 물결, 강으로 이어진 멀리 보이는 산자락. 마음이 절로 차분해진다. 두물머리의 또 다른 명물은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 불리는 노거수, 400여 년 된 느티나무다. 오랜 시간을 묵묵히 견뎌 온 세월이 가지마다 켜켜이 쌓여 있다. 사람들이 그 나무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고목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 가만히 서서 합장을 한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강줄기의 발원지는 각각 태백산과 금강산이다. 백두대간의 정기를 품고 시작된 두 물줄기는 서로 다른 풍경과 이야기를 담으며 수백 리를 흘러 이곳 두물머리에서 하나가 된다. 고요히 합쳐진 이들은 팔당호를 지나며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강물은 오랜 세월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삶과 역사를 품은 채 오늘도 유유히 서해로 흘러간다. 인류의 역사는 물과 함께 시작되었다. 풍부한 물을 제공하는 큰 강과 비옥한 토지는 문명의 터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강을 우리민족의 역사를 품고 흐르는 ‘어머니의 젖줄’이라고 부른다. 생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강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을 것이다. 중국의 사상가 맹자는 흐르는 물을 인생과 학문에 비유했다. 그는 “흐르는 물은 웅덩이가 차지 않으면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근원이 깊은 물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며 바위를 만나면 돌아서 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다 채운 뒤에야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역시 그 근원을 떠나 이 두물머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굽이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긴 여정에서 상처도 있었을 터이지만 이곳 두물머리에서 만난 두 강물은 그런 흔적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끌어안으며 하나가 되어 다시 흐른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이 커지는 세계정세와 권력다툼의 소식들이 연일 이어진다.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고 있는 소시민에게 그 소식들은 멀게 느껴지면서도 마음 한 편이 불편하다. 봄빛이 따라 흐르는 두물머리의 강물은 오늘도 묵묵히 길을 이어간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강물이 만나 더 큰 강이 되듯, 우리 사회도 흐르는 강물처럼 서로 품으며 조금은 더 따뜻해지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3-11

서른 여섯이 되는 해, 36년만에 뜬 ‘블러드문’을 보다

붉은 말의 해, 2026년의 시작도 어느덧 두 달이 훨씬 지났다. 새해를 맞이하며 다짐하고 약속했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잊혀지는 이때, 붉은 말의 강렬한 기운과 뜨거운 생명력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붉은 달이 하늘을 밝혔다. “3월 3일에 붉은 달이 뜬대. ‘블러드 문’ 같이 보러 갈래?” 흔히 볼 수 없는 달이기에 꼭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찌보면 뜬금 없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우석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라며 흔쾌히 수긍했다. 그리고 달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자고 먼 거리는 생각지 않고 해맑게 웃으며 팔공산으로 가보자고 했다. 붉은 달을 볼 수 있다는 설렘과 다르게 전날부터 비가 내렸고, 3월 3일 당일까지도 흐린 하늘만 보였다. 달을 보러가는 시간은 맑은 하늘이 될 수 있도록 ‘하늘에 구름들 좀 치워달라’는 농담도 하며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약속 시간인 저녁을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팔공산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지 않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팔공산에 가면 꼭 먹어야하는 메뉴, 호박오리를 먹기로 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음식 앞에서 우리는 달을 기다리는 설렘을 함께 모락모락 피워 올렸다. 유리창으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점점 어두워지고 머릿속은 온통 붉은 달에 대한 기대로 가득찼다. 블러드문이 잘 보이는 오후 8시에 우리는 별이 밝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기 좋은 한티휴게소로 향했다. 꼬불꼬불 가는 길 가운데 나무 사이로 살짝 비치는 발그레 물든 달의 모습에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몸을 좌우로 왔다갔다 상체를 높혔다 낮췄다했지만, 야속한 나무는 달의 완전한 모습을 자꾸만 꽁꽁 숨겨두었다. 그래도 그 속에서 비치는 달의 모습을 보니 ‘흐른 하늘에 달이 가려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칭얼댔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와~!” 자연스레 나오는 연발의 감탄사는 우리의 소리만이 아니었다. 한티휴게소에는 블러드 문을 보기 위해 모여든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과 연인,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서 행복한 추억을 나누며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으며 감탄을 쏟아냈다. 그 속에서 우석이도 달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고, 하늘이 잘 담기지 않아 하늘을 찍는 우석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내 모습이 한 편의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이 가장 붉게 보이는 오후 8시 33분이 되자, 달은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뽐내려 몸을 더욱 붉혔다. 붉은 달은 지구와 달, 태양의 위치가 정확히 일직선에 가까워지는 ‘개기월식’ 덕분에 관찰되는 현상이다. 지구가 태양과 달 사이에 놓이면 달이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달이 지구 대기를 통과한 태양빛에 영향을 받아 붉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신비로운 현상을 ‘피의 달’, 즉 블러드 문이라고 부른다. 올해 뜨는 블러드 문이 더욱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음력 새해 이후 처음 맞이하는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에 볼 수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과 개기월식이 겹치는 것은 1990년 이후 ‘36년 만’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했던 것이다. 정월대보름에 달을 보며 한 해의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듯, 우리는 올 한해를 다시 새롭게 다짐하고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아름다우면서 강한 붉은 달의 모습은 예쁜 추억이라는 한 페이지에 남아 우리 마음 속에 아직까지 뜨거운 여운으로 남아있다. 36년 만에 뜬 블러드문을 36살이 된 해에 동심의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예쁜 추억을 선물로 준 우석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3-11

윷판 위의 동문들

3월 첫째 토요일, 대구제일여상 동창회 2026년 첫 이사회였다. “와이래 좋노오, 와이래 좋노오, 와이래 좋노오~오.” 모에 이어 윷이 나왔다. 우리 편 말을 잡더니 또 윷이다. 대세는 상대 팀으로 기울었다. 첫판은 우리 팀이 가뿐하게 이겼지만, 연달아 두 판을 내주었다. 윷인지 모인지 구별도 못 하는 나도 “모야! 윷이야!” 하고 소리 높여 외치며 윷을 던졌다. 네 개를 한꺼번에 잡기 힘든 윷가락이라 두 명이 나와 두 개씩 나누어 던졌다. 윷놀이 한판 속에서 제일여상 동문만의 열정과 끈끈한 유대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회장님의 개회사에 이어 신임 이사들의 자기소개가 있었고, 곧바로 안건 심의에 들어갔다. 안건 중 하나가 ‘선재의 마음 잇기 치팅데이’, 작년 상반기부터 시작한 모임의 취지는 이렇다. 동문이 학교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재학생들과 함께 식사하며 격려와 응원을 전하는 자리다. 한 끼 식사를 나누는 동안 선후배 간의 정이 쌓이고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만들어진다면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첫 시행 때는 사생활 영역이기에 접근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학교와 학생, 학부모들이 우리의 취지를 잘 이해해주었고 모임 후 반응도 좋았다. 덕분에 작년 하반기에 이어 올해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모든 학생을 만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재는 3학년과 2학년 임원들을 중심으로 선배와의 만남을 시작하고,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모임은 4월과 9월에 열린다. 함께 식사하고 간단한 마음 열기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 뒤 헤어진다.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선배들은 사전에 멘토 교육도 받는다. 교육은 대구YWCA 회장인 14회 신기숙 선배님이 맡고 있다. 이런 만남을 통해 후배들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든든한 선배들이 있다는 자긍심을 느끼기를 바란다. 또한 선배와의 대화를 통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힘을 얻기를 기대해 본다. 이날 회의에서는 현재 학교에서 논의 중인 교명 변경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상업계 특성화고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거부감이 점점 커지면서 학교 지원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해 학생 모집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교육청에서도 학교의 존립을 위해서는 교명 변경과 함께 남녀공학 전환 문제를 시급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우리 학교는 1998년에 ‘대구제일여자정보고등학교’로 바꾸었다가 2010년에 다시 원래 이름으로 돌아왔다. 이제 더는 현재의 교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미 여러 특성화고가 교명을 바꾸거나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뒤 신입생 모집이 늘고 학생 수준도 개선된 사례가 많다고 한다. 특히 올해 ‘대명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꾼 대구여상의 경우, 작년보다 신입생 모집이 훨씬 잘 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교육청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교사들 대부분은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반대 의견이라 한다. 이제는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의 존립이 걸린 문제다. 학교에서는 여러 방면에서 교명 변경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논의 중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상상 이상의 다양한 교명들이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상상 이상의 다양한 교명들이 거론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부디 ‘제일’과 ‘여상’이라는 이름을 내려놓더라도 ‘제일다운’ 우리 학교의 정체성을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는 이름을 찾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동문회 회원들도 좋은 교명을 찾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로 했다. 안건 처리와 식사를 마친 뒤 이어진 윷놀이 시간은 팽팽한 승부의 긴장 속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게임을 통해 선후배 사이의 친밀감은 한층 더 깊어졌다. 동문 회장님이 선물로 나누어 준 한 줄짜리 로또 복권. 천 원이 주는 작은 설렘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3-11

수제화 50년, 향촌동에 꽃 피운 ‘편아지오’

“구두는 발이 편해야 한다.” 대구 향촌동 제화 골목의 역사는 우종필(64) 장인의 손끝에서 다시 쓰였다.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그는 쇠락해 가던 거리의 명맥을 살린 주역이다. 1976년, 축구선수의 꿈을 접고 열다섯 나이에 망치를 든 소년은 이제 200여 개의 표창장을 지닌 대한민국 신지식인 명장이자 지역 공동체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장인의 48년 외길은 순탄치 않았다. 8년의 수련 끝에 재봉틀 한 대로 시작한 작업장은 꼼꼼한 솜씨로 소문나면서 한때는 직원이 15명이나 되는 규모로 커졌다. 그렇지만 호황은 길지 않았다. 결재한 거래처의 수표가 줄줄이 부도나면서 납품 대금 회수 실패라는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다. 채무자를 찾아 전국을 헤매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픔뿐이었다. 하는 수없이 삼촌 공장에 다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또 새로운 재기를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일을 했으나 이곳에서도 바이어들의 횡포로 몸만 겨우 빠져나오는 고생을 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를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2000년대 들어 제화 경기가 추락하며 향촌동 거리에 폐업 행렬이 이어질 때, 그는 전업 대신 ‘상생’을 택했다.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반대하는 동료들을 설득해 ‘대구 수제화 마을기업’을 탄생시킨 것이다. KBS ‘아침마당’ ‘다큐 3일’ 등 생방송의 조명을 받으며 전국에서 고객이 몰려들었고, 죽어가던 거리는 다시금 망치 소리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못다 한 학업을 위해 야간학교와 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지인들의 추천으로 한때 대구 중구의원으로 진출해 지역 봉사에도 앞장섰다. 우 장인이 운영하는 (주)편아지오는 이름부터 남다르다. 외래어 대신 “발이 편안해지오”라는 우리말로 상호를 지었다. “아무리 가죽이 좋고 맵시가 있어도 발이 편하지 않으면 신지 않는다”는 그의 장인 정신과 철학이 담긴 상호다. KBS 생방송을 통해 그의 이름이 전국으로 알려지자 국경을 넘어 일본 교포한테서도 주문이 들어왔고, 뉴욕에서는 300mm 맞춤형 구두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석 달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진품 수제화’의 명성은 이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의 곁에는 아들이 서 있다. 한때 자리를 비우기도 했던 아들이 돌아와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모습은 이젠 장인에게 가장 큰 보람이다. 수백 개의 상패보다 마을기업 우수상이 더 자랑스럽다고 말한 그는 “이 길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최선을 다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그의 좌우명처럼, 우 장인은 오늘도 묵묵히 구두를 만든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3-10

서각(書刻) 30년, 금곡 신동호 작가

금곡 신동호는 1948년생으로 78세다. 서각에 반 갑(甲)년을 보내고, 지난 2월 20일부터 3월 8일까지 대구 수성아트피아 전시실에서 ‘전통의 숨결을 새기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가졌다. 지금도 시간만 나면 공방으로 가서 하루에 5시간 이상 작품 활동을 한다. 또 오전에는 매일 대구 범물노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할 정도로 건강도 좋다. 범물복지관에서 신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신 작가는 서각을 시작하게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모 방송국에서 퇴직한 후 운동을 위해 신천을 산책하다 한가히 놀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늙어가지만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서경을 공부하다 잡지에서 본 서각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서각은 “나무와 작가가 나눈 이야기를 표현하는 예술작품이라 생각한다”면서 “때로는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고 어떤 때는 내가 나무에게 말을 거는 예술”이라 설명한다. 그 와중에 나무의 무늬가 이야기에 끼어들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칼을 잡고 작업을 하는 순간만은 번뇌와 망상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했다. “참선보다도 더 좋은 것 같다”며 서각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신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32점을 전시했다. 작품이 팔려 수익이 생긴다면 전액을 이웃 돕기에 사용하고 남은 작품과 앞으로 만드는 작품도 원하는 공공 기관이나 복지관 등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 가격이 궁금해서 주변에 살짝 알아보았더니 주는 대로 받지만 ‘십장생’은 400만원에 팔렸다고 했고, 소품도 30만원 정도는 된다고 귀띔했다. 서각에는 나무가 가장 중요하다. 그는 무늬가 좋고 야문 느티나무를 주로 사용하며 은행나무, 호두나무, 먹감나무, 참죽나무 등도 사용한다고 했다. 나무가 좋으면 값이 비싸고 너무 싼 나무와 수입된 알마사카, 마디카 나무는 물러서 작품성이 떨어져 잘 사용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표현한 작품인데 느티나무를 사용했고 테두리는 참죽나무로 만들었다. 집 거실에 걸어 두면 좋다고 했다. 마음을 비우려 늘 노력한다는 그는 78세의 나이에도 현재 예목서각회 고문과 사단법인 한국각자협회 자문위원, 목산서각연구원 원장으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또 대한민국 각자대전 초대작가, 운영위원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서각 전을 둘러보던 시인 김동원씨는 “신 작가는 먹물의 흐름에 따라 나무와 한 마음이 되어 칼로서 글을 썼다”며 ”그의 양각은 쪽빛 하늘 허공에 대고 무형각(無形刻)으로 봄바람이 매화 향기를 머금듯 도풍(道風)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3-10

(시민기자 단상) 김유신에게 배우는 지도자의 자세

김유신을 둘러싼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한때 그는 삼국통일의 위대한 장군으로 추앙받았다. 그 후에는 외세와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거쳐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김유신은 여전히 역사적 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영웅은 신화 속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현실 속에서 결단을 내린 사람이다. 7세기 동아시아는 거대한 제국 당이 군림하던 국제 질서였다. 고구려는 강대했고, 백제 역시 해양 세력과 연계된 강국이었다. 상대적으로 약소했던 신라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신라가 당과 동맹을 맺은 것은 사실이다. 이를 두고 외세 의존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동맹은 굴종이 아니라 전략이다. 생존을 위해 힘의 균형을 활용하는 것은 약소국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이다. 김유신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으로 움직인 군사 지도자였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통일이 이루어진 뒤 신라는 당과 충돌했고, 매소성과 기벌포 전투를 통해 당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만약 신라가 진정한 사대 국가였다면 그런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도움을 받았으되 지배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동맹은 굴종이 아니라 자주권을 향한 과정이었다. 김유신의 공적은 단순히 전장에서의 승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신라 내부의 귀족 연합체제를 조정하며 왕권을 뒷받침했다. 분열과 전쟁이 반복되던 한반도에 처음으로 장기간의 통합질서를 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 통합은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국가 전통의 토대가 되었다. 한반도 역사에서 ‘하나의 정치 질서’가 지속된 경험은 가볍지 않다. 물론 그의 선택이 모든 면에서 이상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외세와의 협력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는 자리에서 과거의 결단을 쉽게 재단하는 경향이 있다. 김유신은 결말을 모른 채 국가의 존속을 위해 선택해야 했던 인물이었다. 그가 짊어진 것은 영광 이전에 책임이었다. 영웅은 완벽해서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대의 가장 어려운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기에 영웅이 된다. 김유신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현실을 택했다. 그 현실적 선택은 한반도의 통합과 자주적 질서 확립으로 귀결되었다. 우리는 영웅을 흠 없는 존재로 만들고 싶어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논쟁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진정한 영웅에 가깝다. 김유신은 비판과 재해석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역사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은 그의 선택이 한 시대의 운명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분열의 시대에 통합을 이끈 결단, 외세 속에서도 자주권을 지켜낸 전략, 그리고 그 결과를 끝까지 감당한 책임. 이 세 가지가 바로 김유신을 오늘날에도 영웅으로 남게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김유신은 한 시대의 영웅이기 이전에, 지도자가 가져야 할 자세를 보여 준 인물이었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6-03-10

대구에 있는 아름다운가게를 아시나요

(재)아름다운가게는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우리 사회의 생태적, 친환경적 변화에 기여하고 국내외 소외계층을 위한 공익활동을 벌인다. 기증품 판매 수익금, 개인 단체 기부금, 행사 수익금 등을 통해 지역공동체 회복 및 빈곤 해결과 환경문제 해소를 목표로 2002년 처음 시작했다. 지난 20여 년간 전국 164개 매장과 690개 이상 운영된 나눔장터에서 총 2억5700만점의 중고물품을 거래했다. 2012년에는 미국 LA에, 2013년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지점을 개점하기도 했다. 아름다운가게는 전국 매장 수익의 약 70%를 매장이 속한 지역사회에 환원한다. 20여 년 동안 저소득층과 공익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또 환경을 위해 ‘아름다운 숲’ 조성 사업에도 힘쓴다. 전국 매장과 17개의 되살림 센터(기부물품 집하 및 배송 담당)를 통해 자원순환도 이루어진다. 아름다운가게의 사업은 물품 기부, 착한 소비, 업사이클링 사업 등이다. 물품 기부의 참여를 원하면 3가지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 직접 매장을 방문하여 기부할 수 있고, 기부할 물품이 3박스 이상이면 전화를 하면 직접 수거해간다. 물품을 기부하면 그 중 판매 가능한 것은 오프라인 아름다운 가게 매장에서 판매한다. 아름다운가게 대구수성점(대구 수성로 69길 65. 상가 7동 101호)을 찾았다. 지상철 대봉교역 4번 출구에서 대봉교를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보인다. 기부 코너에 가서 기부할 옷과 도서를 세고, 회원가입을 한 뒤 등록을 마치니 휴대전화에 물품의 개수와 기부금을 신청하라는 메시지가 보인다. 가게에는 의류, 도서, 생활용품 등 없는 것 없다. 필요한 물건은 누구나 여기서 살 수 있다. 값은 아주 저렴하다. 겨울용 패딩이 2만원 정도며 점퍼 바지는 1만원에 살 수 있다. 학용품과 문구류는 대부분 새것이다. 값은 절반 수준. 여기서 팔리는 물건들은 대부분이 기증품이다. 해당 방문 매장에 기부된 물건은 본사 측에서 소독을 마친 뒤 가격 측정 후 전국 매장으로 보내지게 된다.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요긴하게 쓰일 물건들이 기부를 통해 판매되고, 그 수익금은 국내외 소외계층을 돕는다. 고마운 일이다. 지나는 길에 자주 들른다는 수성동 박수현(42)씨는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자녀가 있는데 크는 아이에게는 새 옷을 사도 1년 못 입는다”며 “못 입는 옷은 깨끗하게 세탁하여 기부하면,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아 연말정산 하면 환급되고, 입을만한 옷도 사 가면 일거양득”이라며 웃었다. 도서 코너에는 전집, 소설, 수필집, 시집, 시조집 등이 많다. 판매가는 정가의 20% 정도였다. 책들이 모두 깨끗해 새 책이나 다름없다. 매장에는 고가품인 카메라, 전자제품, 주방용품 식품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가게를 이용하여 물품을 기부하기도 하고 사가게 되면, 재사용으로 환경도 보호하고 가게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3-10

제48회 전국 무용 예술제 개최

(사)무궁화예술단이 주최한 제48회 전국 무용 예술제가 지난 8일 대구 아양아트센터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경연 부문은 한국 전통, 한국 창작, 발레 클래식, 발레창작 현대무용, 째즈댄스, 에어로빅, 댄스스포츠, 힙합 댄스, 방송 댄스, 라인댄스, 벨리댄스 등이다. 전국 각지에서 신청 받은 결과, 학생부 46팀, 시니어부 4팀, 신인부 4팀, 일반부 5팀, 명인부 5팀이 참가했다. 초등부에서 명인부까지 폭넓은 연령층의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 관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번 예술제는 전국 각지의 무용 인재들을 대상으로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치도록 하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한국무용 축제의 한마당이 되고자 준비한 축제다. 시상식은 2025년 명인부 대상을 받은 팀의 축하 공연이후 시작됐다. 김세화 심사위원이 학생부 대상 이혁준(한노인 만찬)과 시니어부 이옥자외 4명(부채 산조), 신인부 김가령외 3명(진주건무, 경상국립대학생)에 대해 시상을 했고 안덕기 교수가 일반부 대상 주홍희(살풀이), 명인부 대상 장요환(남도 소고춤)을 시상했다 무궁화예술단은 “앞으로도 무용 예술의 저변 확대와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3-10

반려식물로 맞이하는 봄

봄이다. 지난주 경칩이 지나니 사람들의 옷차림도 새뜻해졌다. 지난겨울이 추웠던 탓에 더 반가운 봄, 뭔가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꿈틀거린다. 오후의 산책길에서 만난 달래와 쑥, 냉이들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다. 문득, 겨울처럼 건조하고 황량한 집 베란다가 떠올랐다. 올봄에도 습관처럼 새로 화분을 들여야겠다 싶다. 하지만 그동안 화분들을 잘 보살피지 못한 터라 화분을 다시 들이기가 머뭇거려졌다. 작은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는 길에 숲마을도 들러보기로 했다. 입구에서부터 봄맞이 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주차장 한쪽 상설나무시장에는 조금 더 들썩였다. 앞선 차들이 잠깐 멈추고 나무를 사거나 비료를 바쁘게 싣고 있어서다. 1층 임산물전시판매장에 들어서니 먼저 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꽃과 나무를 구경하고 있다. 구경하는 사람들과 키 큰 나무들 사이에서 단연 시선을 끄는 것은 매대에 오종종하게 앉아 있는 다육이다. 종류별로 전시가 되어 있지만 색깔이 화려하거나 모양이 독특한 건 집에 있어도 또 사게 된다. 가격도 저렴하니 구입하기에 부담이 없다. 옆에서 이것저것 고민하던 한 할아버지는 순식간에 6개를 골라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잘 키우기가 신경이 쓰였지만, 봄맞이 선물로 사는 거라 여기니 손에는 벌써 두 개의 다육이가 들려 있다. 봄맞이로 식물을 집에 들이는 것만큼 설레고 기분 좋게 하는 것도 없다 싶다. 계산을 하면서 분갈이나 물 주기 등. 잘 키우는 방법에 대해 물으니 물도 너무 자주 주지 말고 무심한 듯, 잎이 마른 것 같거나 15일 정도의 간격으로 주면 된다고 말한다. 거창하게 식집사(식물+집사) 는 못 되어도 다시 잘 키워보리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아침마다 식물들과 인사하는 것도 꽤 괜찮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 방문한 지인의 공부방 베란다에는 다육이는 물론 여러 초록의 식물들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날 들른 식당에서도 입구에서부터 초록의 싱싱함을 자랑하듯 식집사로서의 지식을 내뿜는 사장님도 보았다. 매일 같이 잎까지 예쁘게 닦아낸다니 식물 키우기에 진심으로 보였다. 말씀 중에 김빠진 맥주가 식물을 더 건강하게 한다는 것도 사장님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이다. 또 사장님은 집에서 키우던 걸 가게로 많이 옮겨 왔는데 손님들이 관심 가져 주어서 또 다른 힐링이 되고 있어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반려동물 키우기만큼 많아진 반려식물 키우기는 최근 농촌진흥청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약 174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식집사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대중화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키우는 반려식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정서적인 위로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대부분은 제대로 키우기를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맞춰 국립원에특작과학원에서는 맞춤형 반려식물 추천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무작정 식물을 기르기보다 이용자에게 맞는 식물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식집사 유형은 33가지나 된다. 시민기자도 재미 삼아 직접 해보니 추천은 사랑 가득 식집사형이었다. 맞춤 반려식물은 고무나무와 잘 모르는 식물들이 몇 가지 나왔다. 숲마을에서 사 온 다육이 두 개를 베란다에 놓고 보니 저절로 기쁘다. 다시 찾아온 봄, 반려식물을 통해 초록이 주는 기쁨을 누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6-03-09

엄마가 그리워지는 한정식

홍시를 소개받았다. 무엇이든지 오래된 도시 경주에 살고 싶다는 문숙씨가 경주에 오래된 집을 샀다. 남편과 틈날 때마다 자신들의 손으로 고쳐서 아늑한 숙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그 동네가 골목 골목이 볼 게 많아서 찾아다니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자랑했다. 그 골목에 있는 한정식 맛집이라고 홍시를 알려주었다. 듣자마자 나훈아의 노래가 떠올랐다. ‘홍시’의 도로명 주소는 화랑로, 옛 지번으로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으면 10분 거리인 성건동이다. 경주읍성 바깥 서쪽을 뭉뚱그려 구획한 ‘성서’와 북쪽인 ‘성북’을 합쳐 성건동이라 한다. 성건동의 乾이 8방위에서 서북방을 이르는 말이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인구도 제일 많았고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동네였지만, 황성동, 용강동, 충효동, 현곡면 금장리가 차례대로 개발되면서 인구가 줄어들며 명성이 많이 퇴색되었다.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홍시’라는 간판을 끼고 안으로 들어서니 뜻밖에도 제법 주차장이 넓다. 정원에 나무와 꽃이 많아 봄이면 볼거리가 더 많아질 것 같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봉당에 신발이 가득했다. 손님들이 벗어두면 주인장이 얼른 달려와 가지런히 정리했다. 실내는 오래된 집이라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시간을 수집한다는 수석이 장에 가득했고, 곱게 자수를 놓은 병풍, 소의 멍에가 장식으로, 코너마다 놓은 반닫이장 위에 도자기들이 예사롭지 않다. 하나씩 둘러보려면 시간이 모자랐다. 예약도 안 된다고 해서 무작정 이른 점심시간에 달려왔더니 다행히 막 손님이 일어선 자리가 나서 앉을 수 있었다. 보통으로 드릴까요? 네~. 한정식과 불고기 한정식 두 종류뿐이니 보통이라면 불고기를 뺀 것을 묻는 것이라 짐작하고 그렇게 달라 했다. 주문을 받으며 내 온 것은 차였다. 남편은 향이 좋다고 했고 그냥 물이 제일 즐기는 나로서는 디른 물병을 따로 받았다. 잠시 후 전식이 나왔다. 뚝배기에 담긴 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닭죽이라고 했다. 자글자글 끓어 쌀쌀한 꽃샘 추위에 딱이었다. 찹쌀전병, 단호박샐러드, 채소샐러드, 얇게 부핀 파래전까지 다섯 가지였다. 닭죽을 먼저 먹고 파래전을 맛보니 쫄깃하니 입에 착 감겼다. 양이 적은 나로서는 이미 배가 불렀다. 뒤이어 정식이 16가지 찬과 함께 나왔다. 주인장의 말로는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아 재래장류와 발효음식이고 직접 연구하고 조리하며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다. 특히 들깨탕은 과하지 않고 슴슴해 좋았다. 다른 찬은 약한 간과 심심한 것을 좋아하는 내 입맛엔 살짝 달았다. 후식으로 홍시와 쌍화차를 주셨다. 직접 여러 가지 약초를 넣어 끓였다며 자랑하는 바깥주인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가게 이름이 왜 홍시냐고 물으니 나훈아 노래 ‘홍시’처럼 엄마가 그립다는 가사가 어머님이 하던 음식을 듣고 따라 해서 잘 어울렸다고 한다. 홍시는 2018년 발매된 New Freestyle (40주년 기념앨범)에 수록되었다. 본래 1992년에 처음 발표된 ‘석류가 웃는 이유’로 후배 가수 김지애의 앨범 및 동명 곡으로 등장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나훈아가 광복 60주년 기념 공연 ‘나훈아의 아리수’에서 이 곡을 리메이크해 ‘아리수’, ‘사내’와 함께 무대에 올리면서 비로소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가게 홍시가 27년 되었다고 하니 노래가 먼저인지 이집이 먼저인지 헷갈리지만 둘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건 같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생각이 난다 힘든 세상 뒤쳐질세라 사랑땜에 아파 할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엄마가 그리워진다’ 노래를 읊조리며 가게를 나섰다. 경북 경주시 화랑로19번길 5, 0507-1462-8668. /김순희 시민기자

2026-03-09

윌리엄 터너 전···늘 빛과 함께 연상되는 그의 작품들

경주는 지방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리만치 멋진 공연이나 전시가 자주 열린다. 한수원의 지원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라는 특수 효과를 제하고도 이미 선재미술관이라는 훌륭한 미술관이 있었기에 과거에도 좋은 전시를 때때로 관람할 수 있었다. 지금은 우양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꾸준히 좋은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엔 영국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개인전이 열렸다. 국내 최초다. 미술사에서나 접하던 작가의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설레는 일이다. 그의 이름은 늘 빛과 함께 연상된다.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모든 사물이 빛으로 이루어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빛의 묘사에서 그만큼 훌륭한 작가가 있을까 싶다. 이번 전시는 맨체스터 대학의 휘트워스 미술관과 공동 기획되었다. 수채화와 판화 등 8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터너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판화 연작 ‘리베르 스투디오룸’이 100년 만에 71점 모두 전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하나, 이번 전시의 특이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이청아 배우가 들려주는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다. 아이와 동행한데다 작품에만 오롯이 집중하고 싶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지만 터너가 익숙지 않은 관람객에 유용하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한쪽 벽에 터너의 생애가 가득 쓰여있다. 벽 하나 가득한 그의 생애를 훑어보고 본격적인 작품 감상에 들어갔다. 세밀한 판화 작품이 주를 이루다 보니 입구에 돋보기가 비치되어 있다. 사진 그 이상으로 정밀하게 묘사된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날카로운 선 속 부드럽고 풍부한 빛이라니. 다양한 색이 쓰이지 않았음에도 풍경들을 보고 있자면 현장감이 느껴졌다. 지붕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풍경 내 공기의 온도, 습기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1,2 전시장에서는 판화 작품을 감상했다면 3전시장에서는 수채화도 함께 관람 가능하다. 화려한 색이 쓰이지 않았지만 화면 속으로 관람객을 흡수시키는 힘은 강렬하다. 그 사이 터너의 작품 도록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통나무집처럼 꾸며져 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조금씩 삐걱대는 나무 소리가 나는데 다른 공간에 온 듯한 이색적인 느낌이었다. 전시장 말미쯤 작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스위스 샤모니 계곡, 원경의 몽블랑”(1809년 작)이라는 작품으로 불투명 수채와 스크래치로 그려졌다. 햇살이 가득 내려앉은 바위는 손으로 만져질 듯하고 조금 쌀쌀한 공기가 바로 옆에 놓인 기분이 들었다. 마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체험코너였다. 아무래도 단색의 판화 작품들이 어린 아들에게는 조금 무료했던 듯하다. 체험 코너는 간단히 판화와 빛을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또한 작품 제작에 쓰였던 메조틴트와 에칭 등 전문 판화 용어에 대한 설명과 서양 미술사 역사가 정리되어 있어 먼저 눈에 익히고 체험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지난해 12월 17일부터 시작된 ‘Turner: In Light and Shade’전은 오는 5월 25일까지 진행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6-03-09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봄은 입으로 말하지 않고 꽃으로 온다

계절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몸짓으로 힌트를 준다. 그 대표적인 몸짓이 바로 꽃이다. 그래서 봄은 ‘본다’고 해서 봄이다. 말로 “나 봄이오” 하지 않고, 꽃을 쓱 내밀며 슬쩍 알려준다. “왔어.” 김춘수 시인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했지만, 봄꽃들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먼저 피어버린다. 인간이 알아보든 말든, 봄은 이미 자기 할 일부터 한다. 봄꽃의 면면도 화려하다. 동백꽃, 생강나무꽃, 산수유꽃, 매화,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자두나무꽃, 복사꽃, 앵두꽃, 목련까지. 풀꽃으로는 보춘화, 복수초, 얼레지,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나도바람꽃, 앉은부채, 노루귀, 할미꽃, 제비꽃, 봄맞이꽃, 냉이, 꽃다지, 처녀치마···. 이쯤 되면 봄은 꽃으로 인력 동원령을 내린 셈이다. 세시풍속이 해마다 되풀이되듯, 식물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새 삶을 시작한다. 식물에게 봄은 새해 첫 출근날이다. 지각도 결근도 없다. 가장 성실한 출근자는 복수초다. 눈 속에서도 고개를 불쑥 내민다. “나 여기 있소.” 복수초(福壽草)는 이름부터 야무지다. 복 받을 ‘복’, 오래 살 ‘수’. 이쯤 되면 꽃이 아니라 덕담이다. 땅꽃, 얼음새꽃, 눈색이꽃, 설연(雪蓮) 등 별명도 많다. 이름이 많은 건 그만큼 눈에 띄었단 뜻이다. 추위 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봄꽃 계의 선구자다. 매화는 또 어떤가.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흥정하지 않는다. “이 정도 날씨면 할인 좀 하지?” 해도 매화는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고절한 선비에 비유된다. 사군자의 맏형답게 말수가 적고, 향기는 깊다. 양기를 상징하는 봄의 대표 꽃답게 병풍과 도자기, 시 속에서 늘 당당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흰매, 홍매, 만첩매까지— 단아한데 종류도 꽤 다양하다. 겉보기보다 다채로운 성격이다. 경칩과 춘분 무렵엔 진달래가 등장한다. 참꽃, 두견화라고도 불린다. 먹을 수 있어서 ‘참’이고, 못 먹으면 ‘개’다. 꽃도 세상살이가 냉정하다. 연분홍빛 꽃잎이 잎보다 먼저 피어 봄을 재촉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덕분에 이 꽃은 전국민적 정서를 하나쯤 품고 사는 국민 꽃이 되었다. 진달래는 피는 순간부터 이미 시 한 편을 안고 있다. 입춘에서 우수 무렵엔 동백꽃이 차례다. 겨울 끝자락에 피어 봄을 미리 예고하는 성급한 전령사다. 선운사의 동백은 미당 서정주의 시 한 줄 덕분에 명소가 되었다. 시가 관광 안내서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꽃보다 노래가 먼저 남아버린, 참 인간적인 풍경이다. 동백나무는 예부터 당산제의 주인공이었고, 혼례상에도 올랐다. 꽃이 곧 기원이고 약속이었다. 봄날 하면 역시 벚꽃이다. 봉오리가 맺히는가 싶더니 쌀 튀밥 터지듯 몽글몽글 터진다. 화려함으로는 단연 1등이다. 문제는 성격이다. 짠 하고 나타났다가 꽃샘바람 한 번 불면 우수수 떠난다. 벚꽃은 오자마자 이별을 준비하는 꽃, 봄꽃 계의 건달이 틀림없다. 그래서 시인들은 벚꽃만 보면 아쉬워진다. “봄날은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왕벚나무의 기원지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반갑다. 벚나무는 꽃만 예쁜 게 아니라 목재도 단단해 국궁과 팔만대장경 경판의 재목으로 쓰였다. 겉도 속도 실한 꽃이다. 봄은 이렇게 꽃으로 말한다. 떠들지 않아도 충분히 시끄럽고,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같은 봄을 맞으면서도, 매번 새롭다. 봄은 늘 꽃을 앞세우고 오기 때문이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08

예절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 물음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매만지는 손길에는 언제나 ‘예(禮)’가 깃들어 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품격과 배려가 스며 있을 때, 비로소 사회는 조화와 아름다움을 얻는다. 빠르고 효율이 우선되는 시대에, 예를 배우고 전하는 일이 무슨 의미냐 묻는 이도 있겠지만, 바로 그렇기에 예는 더욱 귀하고 절실한 것이다. 지난 7일, 대구 중구 명륜동 우리예절원에서 열린 (사)예절교육원의 제22회 예절지도자과정 입교식은 그 의미를 다시 새긴 자리였다. 강병욱 감사의 사회로 정연하게 진행된 이날 행사는 방종현고문과 김윤숙 씨의 하모니카 연주로 식전 행사 축하의 분위기를 띄웠다. 남주현 원장의 인사말과 함께 예절의 참뜻을 새기고자 모인 이들의 마음이 한자리에 모였다. 축사에 나선 채희탁 연구회장, 최병한 성균관장, 방종현 고문은 각각의 삶 속에서 예를 실천해온 선배로서, “예절은 타인을 위한 도리가 아니라 나를 위한 수양의 길”임을 일깨웠다. 이번 30여 명의 입교생 가운데는 여러 전문직 종사자들이 함께하며, 현대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예’의 가치를 넓히고자 하는 기대가 크다. 특히 스물여덟의 황신혜 양은 교육생 중 최연소이지만, 누구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전통예절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어머니의 권유로 입교하게 되었지만, 배움의 과정 자체가 큰 기쁨이 될 것 같다”는 그녀의 말 속에는 세대와 시대를 잇는 따스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건설업을 운영하는 한대곤씨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속에서 예절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여 배우고 실천한다는 마음에 입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예절원은 2005년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부설 전통예절교육원으로 재편된 이래, 622명의 예절지도자를 길러냈다. 관혼상제 예법, 제례와 차례 예절, 생활예절과 인성교육까지. 그 교육 과정 하나하나는 단순한 형식을 넘어 인간다운 삶의 품격을 되새기게 한다. 예절지도사과정은 1년이며 엄정한 시험을 치른 뒤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전 박영순 원장의 노고가 고스란히 스며있었다. 이날 총동창회 김하윤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김명희, 류인수 김순임 졸업생들도 자리를 함께하며 새 출발을 축하했다. 예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근육이다. 예절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의 물음 앞에 서는 일이다. 제22회 입교생들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각자의 삶 속에서 피워내길, 그리고 그 향기가 사회 곳곳에 은은히 스며들길 바란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3-08

“30살의 인지로 즐거운 노후를”

대구 서구 어르신들의 배움과 도전을 응원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비원노인복지관(관장 권덕환)은 지난달 27일 복지관 강당에서 ‘9·9·3·3 구구삼삼 행복대학’ 3기 졸업식 및 4기 입학식을 개최했다. ‘구구삼삼 행복대학’은 ‘30살의 인지로 3번 산다’는 의미를 담은 노년기 인지 활동 특화프로그램이다. 어르신들이 배움을 통해 인지 능력을 활성화하고 스스로 삶을 재설계하도록 돕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체계적인 학습과 참여형 수업으로 자존감과 활력을 높이는 평생학습 과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3기 졸업생 30명과 4기 입학생 30명이 참석했다. 성웅경 서구 부구청장과 이금태 서구의회 부의장, 오연환 운영위원장, 이규근 기획행정위원장, 김한태 사회도시위원장 등 지역 관계자들도 함께해 어르신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행사는 복지관 사회교육 프로그램 ‘댄스난타’ 팀의 식전 공연으로 시작됐다. 이어 경과보고 영상 상영, 졸업장 및 모범상 수여, 기념사와 축사, 수료생 소감 발표 순으로 진행됐다. 영상에는 지난 1년간의 수업과 활동 모습이 담겨 큰 박수를 받았다. 학위복을 갖춰 입은 졸업생들은 설렘과 자부심 속에 졸업장을 받았다. 3기 졸업생 대표 강명조 학생은 “행복대학에서의 시간은 또 다른 청춘이었다”며 “배움을 통해 제2의 인생을 더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행복대학은 인지 향상 교육을 중심으로 인문 교양, 건강 관리, 소통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왔다. 참여 어르신들은 학습을 통해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이고, 또래와의 교류를 통해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유대감도 함께 키워왔다. 권덕환 관장은 “행복대학은 어르신들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더하는 배움의 장”이라며 “졸업생들의 새 출발을 축하하고, 4기 입학생들도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설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제2의 인생을 지원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30살의 인지로 3번 산다’는 슬로건처럼, 행복대학은 어르신들에게 또 한 번의 청춘을 선물하고 있다. 배움으로 다시 시작하는 노년의 도전이 지역사회에 따뜻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08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 봄 학기 개강

2026학년도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 제14기 수요대학 및 목요대학 봄 학기 개강식이 지난 4일과 5일 이틀간 대구시 동구 평생교육원 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개강식에는 160여 명의 수강생이 참석한 가운데, 1부에서는 국민의례, 학장 인사, 봄 학기 강의 일정표 소개가 진행됐으며, 2부에서는 학장 특강과 수요대학·목요대학 학생회 임원 선거가 이어졌다. 이에 앞서 개강 축하 행사도 1부와 2부로 나뉘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1부에서는 수요대학과 목요대학 가요동아리 소속 20여 명의 수강생이 화려한 복장과 꾸준히 연마한 뛰어난 실력으로 세 곡의 가요를 선보여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은 김대성 지도교수의 지휘 아래 완벽한 하모니를 선보이며 공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2부 행사는 40분간의 1교시로 진행됐으며, 공무원연금공단 정흥조 지도교수가 이끄는 플루트 뮤즈앙상블 연주단이 공연을 맡았다. 이 연주단은 교사 및 공무원 출신 단원들로 구성됐으며, 모두 플루트 연주 경력 20여 년의 베테랑이었다. 풍부한 경험과 숙련된 실력으로 유명 가곡을 차례로 연주하며, 강의실을 가득 메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냈다. 특히 정흥조 단장이 이끄는 뮤즈앙상블 단원들은 수요대학과 목요대학의 축하 공연에 3년 연속 참여하고 있으며, 요양병원·노인 대학 등에서도 재능 기부 봉사활동을 펼치는 등 지역사회와의 소통에도 앞장서고 있다. 최종식 학감은 신입생 환영 행사에서 본 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니어아카데미가 교양과정과 가요교실로 구성돼 있으며, 매 학기 새로운 강사진을 폭넓게 초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교육원 7층에 위치한 쾌적한 강의실을 갖추고 있으며, 매월 현장학습과 연 1회 반별 합창대회를 진행하는 등 타 대학과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우수한 역량을 갖춘 기관임을 강조했다. 이날 수요대학에서는 이신생 학우가 학생회장에 새롭게 선출되었으며 목요대학에는 전년도에 이어 김화순 학우가 만장일치로 재선출돼 연임의 영광을 안았다. 목요대학 김화순 학생회장은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는 학생들의 구성도 타 대학에 비해 젊고 품격 있는 수강생들로 이뤄져 있으며 대학교 평생교육원 당국과 학장, 학감, 직원 간의 유기적이며 조직적인 운영으로 다른 어느 시니어 교육기관 보다 격조 높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자랑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3-08

12년 공백 넘어 다시 잇는 문예지 ‘호미곶’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해바다 호미곶. 그 기운을 품고 한동안 멈춰 있던 문학의 숨결이 다시 살아났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포항지역 국어국문과에서 발간하던 문예지 ‘호미곶’이 2013년 5호 이후 12년 만에 6호를 세상에 내놓으며 끊겼던 전통을 다시 이었다. ‘호미곶’ 문집은 2009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2013년 5호까지 발간되며 지역 학우들의 문학적 열정을 담아냈다. 일과 가정,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여건 속에서도 틈틈이 써 내려간 시와 수필, 단편들은 배움에 대한 갈증과 삶의 온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한때 경상북도 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으며 활발히 이어졌으나, 여러 사정이 겹치며 발간이 중단됐다. 현재 방송대는 학위 취득보다 자기계발과 평생학습을 목적으로 등록하는 학습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지원 학생 수는 감소 추세에 있어 학과 활동과 학회 운영에 어려움이 따르는 게 현실이다. 국문과 역시 선배들이 일궈 온 전통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재학생들이 뜻을 모았다. 학우는 물론 동문 선후배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해 원고를 청했고, 선배들 또한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꺼이 글을 보탰다. 그렇게 모인 원고들이 한 권의 문집으로 묶였고, 지난해 12월, 창간호를 발간한 동문 김두섭을 비롯한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호미곶’ 6호 발간식과 국문인의 밤을 열었다. 서울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한 이호권 지도교수는 현장에서 격려를 전하며 재학생들에게 든든한 힘이 됐다. 이번 6호에는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목소리가 담겼다. 사회 경험이 녹아있는 중장년 학우의 사색적인 수필과 오랜 꿈을 다시 붙잡은 만학도의 시, 지역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 단편 등이 담겼다. 단순한 작품집을 넘어 세대를 잇는 기록이라는 평가다. 총 200부가 제작돼 학우와 동문 선후배 그리고 2026년 포항지역 국문과 신입생들에게 배포됐다. 김일산 학회장은 “이번 문집 발간은 ‘재개’가 아니라, 앞으로의 열정을 다시 밝히는 출발”이라며 “선배들이 지켜온 전통을 이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문예지 발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원고 수집부터 교정, 편집, 디자인, 인쇄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자발적인 참여와 회비, 작은 후원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들이 펜을 다시 든 이유는 선배들의 전통을 잇고, 감성이 통하는 사람들과 서로의 언어를 나누기 위해서다.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학습자들이 모이는 방송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공동체다. 그 안에서 피어나는 문학 활동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지역 문화의 활성화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호미곶’이 이를 보여준다. 한 권의 문예지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다시 글을 쓰게 하는 용기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냈던 꿈을 떠올리게 하는 불씨가 된다. 무엇보다 함께 읽고 공감하는 경험은 삶을 한층 더 충만하게 만든다. 이는 곧 지역사회의 작은 자산이 된다. 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마음일 것이다. 12년의 공백을 넘어 다시 이어진 ‘호미곶’의 전통이 또 한 번 중단이 아닌 지속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 결단이 지역 문화의 또 다른 씨앗으로 싹을 틔웠다. ‘호미곶’의 맥이 더는 멈추지 않고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3-04

눈을 눈으로만 바라볼 수 있게 된 날

몇 일 전, 몇 년 만인지 대구에도 반가운 눈이 내렸다. 버스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던 중, 비틀걸음으로 앞자리에 앉으신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눈이 와서 길도 미끄럽고 참 불편한데도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네. 내가 우습지요?” “아니요. 저도 눈이 오니까 아이처럼 좋네요.” 수줍게 건네는 말씀에 내 얼굴에도 실실 웃음이 번졌다. 버스에 오르기 전, 이미 휴대폰 가득 눈 내리는 거리의 풍경을 담아둔 터였다. 할머니의 웃음은 그저 눈이 주는 설렘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그 순수한 반가움이 우리를 잠시 동심으로 데려다준 듯했다. 사실 저녁 모임을 마치고 청송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희뿌연 것이 예사롭지 않아 아들과 함께 “꼭 눈 올 날씨 같다”라며 걱정을 했다. 눈이 내리면 밤늦게 운전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베란다 밖을 보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시내 운전조차 버거운 상황이라 결국 청송 가는 것은 포기했다. 약속 장소까지도 버스를 타고 가려고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길은 녹은 눈으로 질퍽하였지만, 하얗게 채색되는 주변을 보노라니 마음은 오히려 들떴다. 우산을 쓰는 둥 마는 둥 아파트 주변의 눈 풍경을 담기에 바빴다. 점점 더 거세지는 눈발에도 버스는 거침없이 달렸다. 밤이 되면 이 설경을 못 볼까 아쉬워 달리는 차 창밖을 부지런히 살폈다. 주변 산은 이미 완전한 백색이었다. 정류장에 내려 걷다 보니 신발 속으로 차가운 물이 스며들었지만, 발바닥에 닿는 푹신한 눈의 느낌이 오히려 즐거웠다. 가지마다 하얀 꽃을 피운 나무들을 보며 연신 동영상을 찍고 사진을 남겼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아직 한 시간이나 여유가 있었다. 다행히 근처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푹푹 내 발자국을 새기며 걷노라니, 오랜만에 아무런 근심 없이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눈길을 걷다 보니, 문득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였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버거웠던 시절,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막노동하시던 아버지는 공치는 날이었다. 눈이 오면 어른들 걱정하는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눈싸움하며 뒹구는 동네 아이들 틈에 끼고 싶은 속마음을 누르고, 어른처럼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눈 오는 날은 내게 줄곧 불편한 날이 되었다. 농부의 아내로 사는 지금도 여전히 날씨엔 민감하다. 줄기차게 내리는 장맛비나 농작물이 기지개를 켜는 3, 4월에 느닷없이 내리는 눈은 반갑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겨울 눈은 대지를 적셔 이듬해 농사를 돕는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운전이 조금 불편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고, 조금 늦게 움직이면 그만이다. 온통 하얘진 세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동심을 잃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나지막이 위로를 보낸다. 불편한 걱정들은 모두 눈 아래 묻어두고, 나는 지금 대구의 이 귀한 눈을 온전히 반기고 있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3-04

바로크의 음표를 그리다

2월의 마지막 금요일, 대구 비원뮤직홀에서 따스한 봄을 맞이하는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바로크 바이올린, 바로크 첼로, 그리고 클라브생이 어우러진 ‘앙상블 바로크 튜티 앤 솔로’가 지역 주민들에게 봄의 시작을 알렸다. 지난해 비원뮤직홀에서 실력 있는 연주자들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았던 터라, 이번 공연도 기대를 한껏 품고 기다렸던 시민기자에게는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비원뮤직홀 3기 입주음악가인 우창훈 첼리스트가 연주와 곡 해설을 동시에 맡았다. 그의 재치 있는 입담은 무겁고 진지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의 분위기를 한층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악기는 바로 ‘클라브생’이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해설자가 이 악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클라브생은 그랜드 피아노와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현을 뜯는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여서 피아노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또, 바이올린과 바로크 바이올린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바로크 바이올린은 양의 창자로 만들어지며, 그로 인해 독특한 음색을 지닌다. 해설자의 17~18세기 유럽으로 떠나보자는 말과 함께 륄리의 ‘아르미데의 파사카유’가 연주되었다. 현악기만으로 이루어진 연주라면 다소 단조롭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클라브생이 함께 어우러지며 곡이 훨씬 밝고 다채로워졌다. 각 악기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연주되는 모습은 듣는 이를 전혀 지루하게 만들지 않았다. 특히 바로크 바이올린과 바로크 첼로는 일반적인 바이올린과 첼로보다 부드럽고 중후한 음색을 자랑해,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바흐의 ‘첼로 독주 모음곡’을 지나 비발디의 ‘라폴리아 사단조’가 연주되었고, 그 순간 관객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빠른 선율 속에서 바이올린과 첼로의 현란한 활시위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특히 첼로의 강렬한 연주가 인상 깊었고, 온몸으로 음악을 즐기는 연주자들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되었다. 인터미션을 지나 후반부에서는 르클레르의 우아한 궁정음악이 연주되었다. 이 곡은 푸른 숲에서 듣는 맑은 새소리가 느껴졌다. 때문에 숲을 거닐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복잡한 상념이 떠올랐고 곡의 후반부에선 그런 생각들을 맑게 흘려보내듯 후련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실제로 숲속을 거닐며 감정을 정리하는 경험을 한 듯했다. 마지막 곡은 우리에게 익숙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연주되었다. 연주 전 해설자는 비발디에게 ‘여름’이란, 뜨거운 태양 아래 지쳐 있는 농부와 그 이후 찾아오는 폭풍을 그린 곡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마치 곡 속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 악장에서 손가락이 안 보일 수 있으니 꼭 실종신고를 해달라는 우창훈 첼리스트의 농담을 증명하듯, 빠르고 격렬한 연주가 인상적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함께 공연을 관람한 친구 우석이는 “연주자가 빠르게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마다 활시위 끝에서 음표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며 깊은 인상을 전했다. 그의 말처럼 이날 무대는 단순한 연주를 넘어, 눈앞에 음악이 그려지는 듯한 생생한 순간을 선사했다. 2월의 끝자락에서 만난 바로크 선율은 관객들의 마음에 잔잔한 봄기운을 남기며 오래도록 기억될 공연으로 자리했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3-04

대구의 3·1절 거사는 3월 8일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대구가 거사를 시작한 것은 일주일 뒤인 3월 8일 서문시장 장날 오후 3시다. 강씨네 소금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다. 대구의 3·1 운동은 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대구 출신 이갑성(33인 중 최연소자로 청년 대표·세브란스 의학전문대학교 졸업)이 1919년 2월 24일 이만집 목사(현 제일교회로 당시 시무)와 김태련 조사(남산교회에서 선교사를 돕는 직책을 맡고 있었음)를 만나 계획했고, 대구지역 기독교 지도자와 계성학교 백남채, 김영서, 신명여학교 이재인 등 지역의 교사들이 앞장섰다. “3월 8일, 집결지는 서문큰장 강씨네 소금가게 앞입니다” 란 말을 남긴 이갑성은 서울로 향하고, 3월 2일 이만집 목사는 이용상(세브란스의학전문하교 학생)으로부터 독립선언문을 건네받고, 비밀리에 계획을 실행했다. 계성학교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독립선언문을 등사하고 집에서 태극기를 몰래 만들었다. 이날 거사에는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동산성경학당 학생들이 참여했다. 당시 청라언덕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집결 장소인 서문시장으로 이어주는 지름길이 되었고 비밀통로가 되었다. 지금 숲은 사라지고 ‘90계단 길’이 만세운동길로 불린다. 만세운동길 90계단에는 지금도 365일 태극기가 걸려 있다.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대구에서도 일본의 감시는 더욱 강화되었고, 거사를 앞두고 4일과 7일 각각 홍주일 교구장과 백남채 교사가 구속된다. 그러나 포기는 없었다. 3월 8일 운명의 날, 전날 봄비가 내렸지만 당일은 화창해 하늘도 돕는 듯했다. 거사에 동참하려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교실을 빠져나왔다. 계성학교 학생들은 한복을 입은 장꾼으로 변장하고, 신명학교 학생들은 빨래하러 가는 척하며 만세운동길을 지나 거사 장소로 향했다. 만세운동에 계성학교 46명, 신명학교 50명, 대구고보 학생 200여 명, 동산성경학당 강습생 20여 명이 참여했다. 1919년 3월 8일 오후 3시 800여 명이 모이고, 쌀가마니 등으로 만든 임시 연단 위에서 독립선언서를 김태련 조사가 읽고, 숨겨 온 태극기를 꺼내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끝날 때는 1000여 명 이상 모여 만세를 부르며 강씨 소금가게에서 남성정(현 감영공원길)을 지나 대구경찰서(현 중부경찰서)로 향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일본 경찰이 완강하게 저지하자 농민 안경수가 태극기를 꽂은 깃대로 기마경찰이 탄 말의 엉덩이를 찔러서 말이 중심을 잃고 도망치자 그 길로 선두 행렬이 헤치고 나갔다. 만세시위 대열이 경찰서를 지나 달성 군청 앞에 이르렀을 때, 기관총 5, 6대로 무장된 일본 헌병 및 경찰에 의해 시위대는 저지되었다. 그리고 이때 157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체포되어 108명이 옥고를 겪었다.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시작된 시위는 10일과 30일 덕산동과 동문시장 4월 15일에는 대명동, 26일과 28일에는 팔공산 미대동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강씨네 소금가게는 지금의 대구시 중구 섬유회관 건너편, 오토바이골목 입구다. 지금 여기에 표지석이 있다. 이제 날씨도 따뜻해졌다. 107주년 삼일절을 맞아 만세운동길을 찾아 그날의 정신을 새겨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90계단길에서 만난 대구문화유산지킴회 박희대(79)씨는 “만세를 부르고 3·1절 노래를 부르니 그날의 독립운동가가 된 기분”이라고 좋아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3-03

(이 사람) 반세기 대를 이어온 ‘노블레스 오블리주’

대구 시내 500여 개 안경원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수십 년째 선두 그룹을 지키며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대구 서구의 터줏대감인 ‘동산안경원’이다. 이곳의 김석미 원장 자매는 ‘나눔’을 경영 제1 원칙으로 삼아 대구 안경 업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 원장은 아버지가 일궈온 20년의 역사에 자신의 30년 세월을 보탰다. 50년 동안 동산안경원을 대구의 강소매장으로 안착시켰다. 그가 불경기에도 흔들림 없이 전진할 수 있었던 두 가지 비결은 무엇일까. 동산안경원의 가장 큰 자산은 ‘충성 고객’이다. 40~50년 전 아버지 대부터 인연을 맺은 손님들이 이제는 자녀와 손주 손을 잡고 이곳을 찾는다. 3대를 잇는 단골의 비결은 손해 보는 경영 철학에 있다. “우리 매장에서 나간 안경이라면, 부속품 하나까지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노하우입니다.” 코 패드, 나사, 안경닦이 등 소모품 부속들은 매장 입장에서는 비용이다. 하지만 김 원장은 웬만한 수리는 무상으로 제공한다. ‘돈이 들더라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게 원칙이다. 당장의 금전적 이익은 작을지 모르나, 고객의 감동이 입소문을 타고 구전되면 “신뢰의 자본”이다.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매출 성장 동력이다. ‘박리다매’를 신조로 한 경영철학이 업계 선두대열에 서게 한 비결이다. 김 원장의 경영 노하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생전 아버지가 ‘나눔의 집’과 ‘천사의 집’ 등에 정기적으로 쌀과 기부금을 보내며 헌신했던 모습은 김 원장 자매에게 가장 큰 가르침이었다. “아버지가 30년 넘게 거래하던 쌀가게 사장님께서 아버지의 선행에 감동해 본인도 봉사에 동참하셨던 말이 기억납니다. 그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저 역시 지역 봉사 단체와 보육원에 정기 후원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저소득층 학생 지원 사업’에 적극 참여한다. 직원들에게도 늘 ‘이익을 떠나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안경사가 되자’라고 당부한다고 한다. 김 원장에게 직장은 단순한 일터 이상이다. 함께 고생하는 8명의 안경사 동료와 그들의 가족들, 즉 열 식구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거룩한 터전’이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이 소명을 지키기 위해 김 원장은 매일 새벽 무거운 책임감 앞에 무릎을 꿇는다.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대를 이어온 50년의 정직함. 그리고 그 너머에 신앙심. 어떤 경제 위기 속에서도 도중하차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김 원장의 다짐에서, 단순히 안경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보게 하는 동산안경원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3-03

대구, 문학으로 도시의 품격을 세운다

문학은 한 도시의 정신을 형성하는 근원이다. 문학이 시민의 일상에 스며들 때 비로소 진정한 문화로 완성된다. 이러한 인식 아래 지난달 27일 오후 대구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 열린 ‘대구문학공원과 복합문학관 조성 공청회’는 도시의 정체성과 문화적 품위를 새롭게 세우려는 뜻깊은 행사라 할만하다. 여성 최초의 대구문인협회 안윤화 회장은 문학이 인간을 품격 있게 만들고 도시를 빛나게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문학공원과 복합문학관이 조성되면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문학을 향유하고, 대구가 문화와 품격이 조화를 이룬 도시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자립 의지와 지속 가능한 운영 방안을 다 각도로 준비 중이라며, ‘살아 움직이는 문학의 집’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김성문 추진위원장은 폐교를 활용한 문학공원 조성을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유휴 공간을 문화적 자산으로 재탄생시켜 시민과 문학이 만나는 열린 플랫폼을 만들자”고 제안하며 창작·출판·공연·전시가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문화 생태계를 통해 대구 문학의 미래를 확장할 것을 주장했다. 이어 김동원 대구시인협회 회장은 ‘대구 문인의 염원’을 주제로, 문학과 다른 예술 장르의 융·복합이 대구 문학 르네상스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 역설했다. 그는 시·소설·수필·평론·낭송을 아우르는 복합문학관 구상과 함께, 세계 문인대회를 유치해 대구를 세계 문학의 중심지로 성장시키자는 비전을 제안했다. 서정길 대구수필가협회 회장은 실천적 접근을 강조하며, 문학관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다섯 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역사적 당위성, 콘텐츠의 차별성, 폐교 활용의 경제성과 상징성, 지역경제 활성화, 그리고 구체적 운영 체계 확립 등을 핵심 요소로 꼽으며, 문학관 조성을 구상 단계에서 실현 단계로 이끌 구체적 지침을 제시했다. 또한 신노우 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은 책자를 통해 복합문학·예술공간의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김종헌 김성도기념사업회 이사는 지역 문학사 계승의 의의와 김성도문학관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오철환 현진건기념사업회장은 대구문학관이 지역 정체성의 구심점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최규목 이상화기념사업회 고문은 상화문학관을 중심으로 ‘문학 클러스터’ 구축의 비전을 내세우며 문학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공청회 후반부 질의응답 시간에는 손수여 회원이 시민 서명 추진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으며, 이규석, 김복근, 서기화, 노병철, 류시경, 김경 회원 등이 운영 모델, 재정 확보, 시민 참여 확대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제안해 청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공청회는 단순한 문학관 조성 사업이 아니라 도시의 정신과 문화를 되살리는 장기적 문화 비전이다. 문학이 다시 시민의 일상 속으로 들어설 때 대구는 문화적 품격과 예술의 생명력을 함께 갖춘 문학 르네상스의 도시로 도약할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3-03

(시민기자 단상) 의사 증원 논란, 집단 반발은 과연 바른 선택인가

대한민국에서 의사 수 증원 문제는 더 이상 의료정책의 한 항목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과 신뢰, 직역(職域)의 공공성, 전문성과 책임이 뒤엉킨 사회적 갈등의 상징이 되었다. 몇 해 전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한 의료계의 집단 반발은 환자들에게 불안과 혼란을 안겨주었고, 국민 다수에게는 깊은 상처와 불신을 남겼다. 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 정부의 증원 방침에 대해 또다시 집단 반발을 예고하고 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의사들의 이기주의” 혹은 “정부의 밀어붙이기”로 재단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가리는 일이다. 의사의 숫자, 지역 간 의료격차, 필수의료의 붕괴는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동시에 의사들이 제기하는 교육여건, 수련 시스템, 의료수가(醫療酬價), 법적 책임 문제 역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점이다. 의사는 직업 이전에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이다. 의사가 집단으로 진료를 멈추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바로 이 점이 의료 직역을 다른 어떤 직종과도 구별되게 만든다. 사회가 의사(醫師)에게 높은 신뢰와 존경을 부여해 온 이유도, 그만큼의 공공성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의사의 집단행동은 곧바로 생명권과 충돌한다. 여기에서 국민 다수가 느끼는 불편함과 분노가 비롯된다. 그렇다면 정부의 의사 증원 정책은 바른가? 선진국 대비 의사의 수, 지역의료 격차, 필수의료 분야 등 구조적 왜곡은 단순히 의사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의료수가와 법적 위험, 근무환경이 만들어낸 기형적 합산물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다시 묻게 된다. 해법은 무엇인가. 증원을 반대하기 위해 진료를 중단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가? 사회는 이제 의사들에게 묻고 있다. 전문직의 권리 이전에 전문직의 책무를 먼저 보여줄 수는 없을까? 정부 역시 성찰해야 한다. 의사를 단순히 ‘숫자’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의사 양성에는 긴 수련 체계와 교육 인프라가 받쳐주지 않으면 의료의 질은 떨어질 수 있다. 증원이 핵심이 아니라 왜 필수 의료가 무너졌는지, 왜 지방 의료가 공백인지, 왜 의사들이 특정 분야를 기피 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처방이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의사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정부가 의료계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의사 증원은 필요하지만 능사는 아니다. 의사들의 우려도 타당하다. 그러나 집단 진료 거부는 바른 선택이 아니다. 의사는 환자 곁에 남아 있으면서 말해야 하고, 정부는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다시 의료를 신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신뢰 위에서만, 의사 증원도, 필수의료 회복도, 지역 의료 정상화도 가능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의사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예전처럼, 아픈 사람 곁에 서 있는 모습을 다시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 모습이야말로 어떤 주장보다 강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6-03-03

두류은빛복지관, 정월대보름 맞아 ‘윷놀이 한마당’ 개최

두류은빛복지관(관장 김진홍)은 지난달 27일 복지관 평생학습실에서 지역주민 1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월대보름 윷놀이 한마당’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정월대보름을 맞아 한 해의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주민 화합과 공동체 결속을 다지기 위해 마련됐다. 기념식에는 이태훈 대구달서구청장, 정창근 달서구의회 부의장, 윤재옥 국회의원 등 지역 인사와 주민들이 참석했다. 내빈들은 덕담으로 주민들의 건강과 지역 발전을 기원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박 터뜨리기 퍼포먼스’였다. 정월대보름의 전통 풍속에서 착안한 이번 퍼포먼스는 묵은 액운을 떨쳐내고 새해의 복을 맞이하자는 의미를 담아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부럼 깨져 액운 가고”, “박 터져 복이 오고”, “달 밝아 소원 이루니”, “운수대통, 만사형통”을 함께 외치며 2026년의 희망찬 출발을 다짐했다. 기념식 이후 김세화 소리마당 풍물단이 신명나는 가락과 함께 무대에 입장해 축제의 흥을 한껏 돋우었다. 본격적으로 주민들이 참여하는 윷놀이 한마당에서는 ‘윷이야’, ‘모야’ 하는 흥겨운 추임새와 함께 전통 놀이를 즐기며 소통과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김진홍 관장은 “정월대보름을 맞아 주민들과 함께 웃고 소망을 나눌 수 있어 뜻깊다”며 “앞으로도 지역 주민과 가까이 소통하며 활력 있는 지역공동체 조성에 힘쓰겠다”라고 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3-03

늘푸른실버타운 신경용 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수상

사회복지법인 금화복지재단 늘푸른실버타운의 신경용 원장(사진)이 노인장기요양제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보건복지부는 매년 노인복지 증진과 장기요양제도의 내실화에 헌신한 유공자를 발굴해 포상하고 있다. 이번 시상식은 지난달 25일 개최됐다. 현장 지키며 서비스 질 향상을 주도한 신 원장은 지난 2009년 늘푸른실버타운을 설립한 이래, 약 17년간 장기요양서비스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현장 중심의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 왔다. 특히 ‘어르신을 섬기고 존중하는 돌봄’이라는 운영 철학을 바탕으로 ▲시설 운영의 투명성 확보 ▲장기요양 서비스의 질적 개선 ▲현장 종사자 처우 개선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모범적인 시설 운영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인복지의 공공성을 강화한 신 원장은 현장 운영뿐만 아니라 제도적 환경 개선에도 힘을 쏟았다. 노인요양시설을 포함한 사회복지시설의 ‘사설 안내 표지판 설치 대상 확대’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에 기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장기요양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시설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신 원장은 “이번 표창은 현장에서 묵묵히 어르신들을 위해 헌신해 온 모든 직원과 함께 받은 상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어르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노인요양시설이 되도록 정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03

30년을 한결같이···부드러운 탕수육 올려 먹는 간짜장 맛집

‘진아’반점은 이름부터 좋았다. 오래 함께한 ‘철학의 위안’ 독서 모임에 진아라는 이름을 가진 회원이 두 명이라서 그랬다. 어디서나 행동이 엽렵한 이진아 선생님, 깊은 독서를 하며 깜찍한 김진아 선생님. NAVER에서 우리 집 근처 반점을 검색하니 진아 반점이 제일 가까웠다. 별점 점수도 높아서 아들에게 소문이 어떠하냐고 물으니, 이미 예전부터 맛집으로 알려진 집이라 했다. 첫날 시킨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다. 그렇게 7년 가까이 단골이 되었다. 요즘엔 반점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중국집이란 표현도 드물다. 초등학생 수업에서 중국집 자주 시키는 메뉴 적기 해보자 하니, 그게 뭐냐고 되물어 짜장면 파는 집이라 하니 알아들었다. 세대에 따라 자주 부르는 명칭도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커피숍이라 하던 것을 카페라고 한다. 반점은 飯(밥) + 店(가게)로, ‘밥을 파는 가게’라는 뜻이 기본 어원으로 중국식 식당·숙박시설을 가리키는 말로, 중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다. 중국의 전통적 여관이 밥도 함께 팔았기 때문이다. 동유럽 여행 전 오늘 저녁은 한국적인 식사로 중식을 정했다. 짜장면과 탕수육은 중국 음식이라기보다는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한식이라고 할만하니까. 진아 반점은 간짜장 맛집이다. 하지만 오늘은 옛날식 짜장면을 먹고 싶어서 기본 짜장면과 탕수육과 밥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잡채밥을 시켰다. 30분 후 사장님이 직접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은색의 철가방이 아닌 벽돌색 철가방에서 음식을 꺼내놓았다. 계산은 포항사랑카드로 결재했다.(나중에 계산서를 자세히 보니 천 원을 덜 받으셨다. 다음번 주문에 꼭 말씀 드려야지.) 가장 마음에 드는 사실은 담아 온 그릇이 일회용이 아니라 다회용이었다. 요즘 배달 음식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그릇에 담겨 온다. 음식과 함께 분리수거 해야 할 쓰레기가 함께 오는 것 같아 다회용기를 쓰는 가게가 드물어 더 반가웠다. 카드를 돌려주고 사장님께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여쭈니,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몇 달 전 가게를 이전했고, 가게에 직접 방문해서 먹을 수는 없고 배달이나 포장만 가능하다고 했다. 배달비는 없다. 식탁에 술 한 병과 함께 상을 차렸다. 짜장면을 먼저 비볐다. 그 전에 위에 올려진 달걀을 먹었다. 반이던 것이 4분의 1쪽이다가 달걀값이 치솟자, 오늘은 6분의 1 크기였다. 머지않아 짜장면 위에 달걀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배달 속도에 따라 떡이 되어 한 덩어리가 되면 비벼지지 않는데 신속하게 달려온 사장님 덕에 술술 잘 버무려졌다. 한 입, 달달한 맛이 중학교 졸업식 날에 엄마가 시내에 나가 사 주시던 그 맛이었다. 노란 단무지를 곁들이니 그저 그만이다. 아들 앞에 놓인 잡채밥을 한 숟가락 떴다. 잡채 면은 부드럽고 짜장 소스에 밥까지 잘 어우러졌다. 짝꿍인 달걀국은 비린 맛 없이 후루룩 넘어갔다. 서비스로 준 만두도 맛있었다. 탕수육을 맛 볼 차례, 찍먹이냐 부먹이냐 따질 시간에 한 점이라도 더 먹자는 의견에 한 표 던지며 바쁘게 젓가락질의 속도를 높였다. 어떤 집은 너무 바삭해서 입천장이 긁히기도 해서 몇 점을 탕수육 소스에 담궈 놓았다가 눅진해지면 먹었는데 진아 반점의 탕수육은 부드러워서 그럴 필요가 없다. 바삭파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기를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지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는 전혀 없어서 좋았다.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아들이 다음엔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간짜장과 국물에 별거 없는 거 같은데 깔끔하고 시원한 짬뽕을 시키자고 했다. 진아반점 경북 포항시 북구 삼흥로100번길 54 가동 1층 107호 (054)248-9434. /김순희 시민기자

2026-03-02

류운룡 선생 작은 기도단, 430년 동안 보존되어오다

겸암 류운룡 선생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형으로, 임진왜란(1592년) 당시 피난을 내려왔다가 160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정유재란(1598년)까지 이어진 전쟁 속에서 그는 노모와 10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약 4년간 봉화 춘양면 감동골에 머물며 나라를 구하기 위한 기도를 올렸다. 현재 그곳에는 그의 기도단이 사과밭 한가운데 보존되어 있다. 이 기도단은 밭 소유주와 마을 주민들의 순수한 정성으로 400여 년 동안 지켜져 왔다. 겉보기에는 소박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희생과 노력의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기도단은 비만으로 쉽게 사라질 듯한 모습이지만, 50cm 높이의 비석 돌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술잔을 올릴 수 있는 편평하고 납작한 돌이 제단처럼 놓여 있다. 사방을 2m 정도 작은 돌들로 둘러쌌으며, 단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백두대간의 한 줄기인 문수산 자락에 자리한 이 마을은 태백산, 구룡산, 옥석산에서 발원한 운곡천이 흐르고, 사방이 1200m 이상의 고봉들로 둘러싸인 산골짜기이다. 그럼에도 마을 앞에는 넓은 경작지가 있어 피난민들이 잠시 머무르기에 적합했다. 풍수지리에 밝았던 류운룡은 정감록에 언급된 십승지 중 하나인 봉화 감동골을 은신처로 삼았을 것이다. 당시 동생 류성룡은 좌의정(도체찰사), 영의정의 자리에 있었으나, 노쇠한 어머니 봉양과 전쟁 구호를 위해 해직을 청하고 고향을 떠나 감동골로 피난했다. 이곳에서 그는 ‘징비록’(국보 132호) 집필을 시작했다. 왜군 모리 요시나리는 조선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떠난 뒤 강원도 삼척까지 진격해 원주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류성룡 일가가 봉화로 피신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그는 전쟁 승기를 잡기 위해 두 갈래 군사를 보냈다. 한 부대는 소천면 고선리에서 현동천을 따라 남하했고, 다른 부대는 소천면 현동을 거쳐 화장산으로 향하며 류운룡 일가를 포획하려 했다. 이에 봉화 의병장 류종개는 6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살피재에 매복시켰다. 왜군 선발대가 살피재를 지날 때 의병은 활과 창으로 공격해 1000여 명을 사살하고 깃발과 말을 빼앗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틀 뒤 3000여 명의 본진이 도착하자 조총 앞에 의병은 장렬히 전멸했다. 이 전투로 왜군은 류성룡 일가 포획과 안동 진출 계획을 포기하고 울진으로 퇴각했으며, 류운룡 선생과 식솔은 구사일생으로 화를 면했다. 당시 움막 생활 중이던 류운룡 선생이 심은 세 그루의 감나무 중 두 그루는 지금도 열매를 맺고 있으며, 그가 사용한 샘물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감동골 입구 도로변에는 20여 년 전 문중에서 세운 겸암 류운룡 유적비(文敬公謙菴柳先生道心村遺蹟碑)가 역사를 알리고 있다. 사과밭 한가운데 자리한 기도단은 마을 주민 외에는 알기 어렵다. 평범한 돌로 세워졌지만 430년 동안 지켜온 정성과 류운룡·류성룡 선생의 효심, 구국 정신은 후대에 전할 가치가 크다. 관에서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2026-03-02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지난 화요일은 3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둘째 아이의 예비 소집일이었다. 이날은 1월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이가 공식적으로 처음 학교 문을 들어선 날이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중학교 전화번호가 아닌 새로운 학교의 전화번호로 예비 소집일에 대한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이 새로운 전화번호에도 익숙해져야지 하고 내용을 훑었다. 아침부터 시간에 늦지 않게 준비했다. 준비한 새 교복을 챙겨 입고 가방도 확인했다. 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안내해 준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벌써 많은 수의 아이들이 부모님 차에서 내리거나 삼삼오오 걸어서 교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급히 택시를 타고 온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아이를 정문에서 내려주고 뒷모습을 바라본다. 벌써 이렇게 자랐나 싶기도 하고 학교에서의 3년을 잘 꾸려가기를 미리 응원했다. 그리고 아이의 방학 생활이 스친다. 방학이고 예비 고등학생이라 학원도 평소보다 가는 날이 늘었다. 같은 시내권이어도 집에서 30분 거리다. 방학이라 차량 운행을 하지 않으니 먼 거리를 매일 아이를 태워 주고 태워 왔다. 차에서 내리는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 말하지만 아이는 밝은 대답 대신 큰 반응 없는 무덤덤한 표정이다. 학원 가까이 도착하면 손가방을 들고 거리를 오가는 아이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눈에 들어온다. 초등학생부터 그보다 더 덩치 큰 중·고등학생들까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아파트를 마주한 상가에는 대부분이 수학과 영어 학원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어느 날은 입구의 그리 크지 않은 상가의 학원 수를 세어보니 수학학원만 다섯 개다. 그 사이를 방학임에도 아이들은 쉼 없이 학원을 오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바쁜 걸음 속에는 부모들의 한 가지 생각도 분명 들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 자식이 남들보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업을 마치고 온 아이와 대화하다가 친구 이름을 대며 일주일의 시간표를 비우고 서울 강남의 입시컨설팅 업체에서 상담을 받고 왔다고 전했다. 명문대라는 입시의 성공을 위해서였다. 내 자식이 이름만 다 들으면 아는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서 좀 더 나은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를 아이들은 받고 있다. 아이의 친구도 마찬가지였을 터다. 예비 소집일이 마치는 시간이 가까워지니 아이들을 다시 태우러 온 부모님들의 차량이 주차장으로 부지런히 올라오고 있다. 어느새 주차장은 금세 가득 찬다. 가운데 이중 주차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모두 차 안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익숙한 자신의 아이가 나오길 목을 빼고선.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먼저 차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온다. 오늘 인사한 같은 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어땠는지 먼저 물었다. 담임 선생님은 여자 수학 선생님이라고 전하며 같은 반이 된 중학교 친구들과도 인사를 했다고도 했다. 새로 받은 교과서를 강당에서 3층인 교실까지 옮기느라 시간이 걸렸고 급식소도 좀 멀다고 말했다. 교문을 지나가며 3년간 이 길을 함께 해야 하는구나 싶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야 하고 밤늦게 아이를 마중 나가야 한다. 교문을 수없이 드나들어야 하는 시간 속에서 아이의 앞날이 반짝이길 바라는 마음이 함께 얹혔다. 그러면서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을 떠올렸다. 내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일상의 삶에서 보여 주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세상에 큰 인물은 되지 못해도 해를 끼치지 않는 부모의 뒷모습을 말이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6-03-02

일상을 벗어나 제주 올레길을 걷다

사업체를 운영하던 지인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잘 되던 사업을 정리하고 당분간은 오롯이 회복에만 집중하겠다는 선택이었다. 등산을 즐기던 그녀에게 의사는 무리한 산행 대신 가벼운 유산소 운동 ‘걷기’를 권했다.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 그렇게 시작한 걷기가 제주올레길로 이어졌다. 제주올레가 운영하는 제주올레길은 총 27코스, 약 437km에 이른다. 한 번에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한 코스씩 천천히 채워가는 여정이다. 저렴한 항공편이 있는 날이면 당일로 한 코스를 걷고 오기도 한다. 그녀가 16코스를 걷는다는 날 네 명이 동행하기로 했다. 일정이 빠듯해 이른 아침 KTX를 이용, 대구국제공항에서 출발했다. 저녁에 돌아오는 도착지는 포항·경주공항이다. 다소 분주한 동선이지만 하루를 온전히 걸을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 일정 또한 즐기며 감내한다. 5~6시간 소요되는 16코스의 거리는 15.8km다. 공식 정방향은 고내 포구에서 시작하지만 이번 일정은 동선을 고려해 역방향으로 걸었다. 종점인 광령1리 사무소에서 출발한 것은 도착지를 공항 가까운 곳에 두기 위해서다. 여행은 때로 효율이 필요하다. 그래야 걷는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코스마다 시작과 중간, 종점에 스탬프 지점이 마련되어 있어 ‘올레길 패스포트’에 도장을 찍으며 완주를 기록한다. 패스포트는 온라인 주문으로 택배 또는 제주공항에서 수령, 현장 안내소에서 구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매 가능하다. 색상은 바당과 감귤 두 종류이다. 제주 방언으로 ‘바다’를 뜻하는 ‘바당’에서 제주만의 정서가 느껴진다. 올레길에서 16코스가 ‘가장 덜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걷는 내내 마음이 흥겹다. 바다를 끼고 마을을 지나 들과 오름 사이를 잇는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아름다운 한라산은 어디에서도 보인다. 오름에서 만났던 매화나무 숲에서 그 향에 취하며 이른 봄을 마음껏 누린다. 길에서 만난 식당 바오밥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바다를 마주한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바다가 보이는 널따란 바위에 앉아 무인가게에서 샀던 감귤을 나눠 먹는 여유도 즐긴다. 감귤 향과 파도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져 한결 마음을 느슨하게 한다. 놀듯이 걷고 쉬듯이 걸음을 이어가다보니 복잡했던 생각들이 단순해진다. 걷기를 마치고 택시에 오르자 기사님의 익숙한 경상도 억양이 하루의 끝을 따뜻하게 장식한다. 잔잔한 즐거움을 주던 올레길을 걷는 동안은 각자의 속도로 숨을 고르고 생각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시간이었다. 일상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서는 사실 항공료가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훌쩍 떠나기란 쉽지 않다. 현실 앞에서 온전히 ‘하루 비우기’는 결코 가벼운 결심이 아니다. 그러나 꼭 제주 올레길이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는 일이다. 그녀가 말했다. 건강에 이상이 오기 전에는 일이 전부였노라고. 일은 늘 그렇게 건강을 우선했더라고. 촘촘히 짜인 일상을 잠시 내려놓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일이 곧 나 자신이라 믿어온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진정한 나를 위해 한 번쯤은 과감하게 일상에서 놓여나는 용기를 내어보면 어떨까. 그 용기가 외려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 우리들 마음에 소소한 행복이 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