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몸짓으로 힌트를 준다. 그 대표적인 몸짓이 바로 꽃이다. 그래서 봄은 ‘본다’고 해서 봄이다. 말로 “나 봄이오” 하지 않고, 꽃을 쓱 내밀며 슬쩍 알려준다. “왔어.”
김춘수 시인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했지만, 봄꽃들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먼저 피어버린다. 인간이 알아보든 말든, 봄은 이미 자기 할 일부터 한다. 봄꽃의 면면도 화려하다.
동백꽃, 생강나무꽃, 산수유꽃, 매화,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자두나무꽃, 복사꽃, 앵두꽃, 목련까지.
풀꽃으로는 보춘화, 복수초, 얼레지,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나도바람꽃, 앉은부채, 노루귀, 할미꽃, 제비꽃, 봄맞이꽃, 냉이, 꽃다지, 처녀치마···.
이쯤 되면 봄은 꽃으로 인력 동원령을 내린 셈이다. 세시풍속이 해마다 되풀이되듯, 식물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새 삶을 시작한다. 식물에게 봄은 새해 첫 출근날이다. 지각도 결근도 없다.
가장 성실한 출근자는 복수초다. 눈 속에서도 고개를 불쑥 내민다. “나 여기 있소.” 복수초(福壽草)는 이름부터 야무지다. 복 받을 ‘복’, 오래 살 ‘수’. 이쯤 되면 꽃이 아니라 덕담이다.
땅꽃, 얼음새꽃, 눈색이꽃, 설연(雪蓮) 등 별명도 많다. 이름이 많은 건 그만큼 눈에 띄었단 뜻이다. 추위 속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봄꽃 계의 선구자다.
매화는 또 어떤가.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흥정하지 않는다. “이 정도 날씨면 할인 좀 하지?” 해도 매화는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고절한 선비에 비유된다. 사군자의 맏형답게 말수가 적고, 향기는 깊다.
양기를 상징하는 봄의 대표 꽃답게 병풍과 도자기, 시 속에서 늘 당당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흰매, 홍매, 만첩매까지— 단아한데 종류도 꽤 다양하다. 겉보기보다 다채로운 성격이다.
경칩과 춘분 무렵엔 진달래가 등장한다. 참꽃, 두견화라고도 불린다. 먹을 수 있어서 ‘참’이고, 못 먹으면 ‘개’다. 꽃도 세상살이가 냉정하다.
연분홍빛 꽃잎이 잎보다 먼저 피어 봄을 재촉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덕분에 이 꽃은 전국민적 정서를 하나쯤 품고 사는 국민 꽃이 되었다. 진달래는 피는 순간부터 이미 시 한 편을 안고 있다.
입춘에서 우수 무렵엔 동백꽃이 차례다. 겨울 끝자락에 피어 봄을 미리 예고하는 성급한 전령사다. 선운사의 동백은 미당 서정주의 시 한 줄 덕분에 명소가 되었다. 시가 관광 안내서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꽃보다 노래가 먼저 남아버린, 참 인간적인 풍경이다. 동백나무는 예부터 당산제의 주인공이었고, 혼례상에도 올랐다. 꽃이 곧 기원이고 약속이었다.
봄날 하면 역시 벚꽃이다. 봉오리가 맺히는가 싶더니 쌀 튀밥 터지듯 몽글몽글 터진다. 화려함으로는 단연 1등이다. 문제는 성격이다. 짠 하고 나타났다가 꽃샘바람 한 번 불면 우수수 떠난다.
벚꽃은 오자마자 이별을 준비하는 꽃, 봄꽃 계의 건달이 틀림없다. 그래서 시인들은 벚꽃만 보면 아쉬워진다. “봄날은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왕벚나무의 기원지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반갑다. 벚나무는 꽃만 예쁜 게 아니라 목재도 단단해 국궁과 팔만대장경 경판의 재목으로 쓰였다. 겉도 속도 실한 꽃이다.
봄은 이렇게 꽃으로 말한다.
떠들지 않아도 충분히 시끄럽고,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같은 봄을 맞으면서도, 매번 새롭다. 봄은 늘 꽃을 앞세우고 오기 때문이다.
/방종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