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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운제산 대골 계곡에 핀 청노루귀, 봄을 알리는 작은 기적

춘분이 지나니 봄기운이 공기처럼 스며든다. 청노루귀를 만나기에 다소 늦은 시기지만, 아직 남아 있기를 기대하며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에 위치한 운제산 대골 계곡으로 향한다. 대골로 이어지는 오어지 둘레길은 이미 봄기운 가득하다. 잎보다 꽃을 먼저 내민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물 오른 버드나무는 가지마다 연둣빛 숨결이 드리운다. 대지가 기지개를 켜자 겨우내 갇혀 있던 색들이 한꺼번에 풀려난다. 계곡에 들어서니 꽃잎을 활짝 열고 나비와 벌을 기다리는 청노루귀가 눈에 들어온다. 군락을 이룬 모습이다. 청노루귀는 노루귀 가운데 청색을 띠는 개체를 일컫는 애칭으로, 흰색, 분홍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나기가 힘들다. 정식 명칭은 노루귀(청색)이다. 하늘거리는 청색 꽃잎은 낙엽이 쌓인 무채색 계곡과 대비를 이루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을 들이민다. 숨을 고른 뒤 셔터를 누르니 심장이 가볍게 뛴다. 노루귀라는 이름은 꽃이 아닌 잎에서 유래한다. 꽃이 진 뒤 올라오는 잎의 모양이 노루 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너무 아름다워 노루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질 만큼, 소박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주는 꽃이다. 봄꽃의 개화 기간은 짧다. 벌과 나비 등 곤충의 활동이 활발해 수분(受粉)이 빠르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가을에는 곤충의 수가 줄어들어 더 오랜 시간 꽃잎을 열어두고 수분을 기다린다. 같은 꽃이라도 계절에 따라 생존방식이 달라지는 점이 흥미롭다. 이 밖에도 봄의 산과 들에는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식물들이 자란다. 원추리는 ‘노루서리’ 또는 ‘망우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노루가 서리하듯 싹을 뜯어 먹는 모습에서 유래되고, 근심을 잊게 할 만큼 꽃이 아름답다는 의미를 담는다. 민들레는 토종끼리만 교배하는 특징을 지녀 경주시 문무대왕면 감은사지 일대에서는 아이보리 빛 민들레를 만날 수 있다. 토종 노랑 민들레와 하얀 민들레가 자연 교배해 만들어 낸 색으로, 외래종과는 절대 교배하지 않는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노란 꽃이 비슷해 구분이 어렵다. 그러나 생강나무는 산에서 자생하는 토종 나무이고, 산수유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민가 주변에서 약초를 위해 재배를 한다. 말하자면 산에서 만나는 노란 꽃은 생강나무이고 마을이나 밭 주변에서 만나는 노란 꽃은 산수유일 가능성이 높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맑은 봄날, 대골 계곡에서 만났던 청노루귀와 복수초, 꿩의 바람꽃 등은 자연이 전하는 작은 기적과도 같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아쉬움도 남는다. 계곡 곳곳에 무더기로 사라진 흔적이 보인다. 일부 방문객들이 사진 촬영 후 꽃을 훼손하거나 채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은 꽃 한 송이를 꺾는 행동이 결국 그 지역의 봄 풍경 전체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야생초를 비롯해 산림 내 식물 채취는 법적으로 제한되며, 상황에 따라 처벌대상이 된다. 자연을 찾는 이들이 ‘눈으로만 즐기는’ 성숙한 관람 문화를 지킬 때, 비로소 앙증맞은 봄의 기적은 오래 이어질 수 있다. 봄이 한창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걸음을 늦추고 주변을 바라보면, 봄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운제산의 대골 계곡에서 마주한 청노루귀처럼, 우리가 지켜야 할 봄은 그렇게 조용히 피어나고 있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3-25

어머님의 유턴

병실 문을 열자마자 어머님과 눈이 마주쳤다. 심전도 센서를 단 손을 거칠게 휘저으며 눈을 감아버리신다. “어머님, 눈 좀 뜨고 말씀해 보세요. 손자도 왔어요.” 그제야 눈을 번쩍 뜨시지만, 이내 나가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내가 병원에 온 거냐, 죽으러 온 거냐. 나를 여기 버려두고 잠이 오더냐.” 잠시 숨을 고른 뒤, 낮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집에는 언제 갈꼬. 갈 수는 있을꼬.” 오늘도 일 마치고 씻지도 않고 달려온 우리는 어머님의 모습에 힘이 빠진다. 아흔셋의 시어머니는 열한 살에 돌림병으로 온 가족을 잃었다. 거죽데기에 싸여 나갔던 동생이 시신 더미 속에서 기어 나와 둘만 살아남았다. 자매는 친척 집 식모살이로 흩어졌다가 오십이 넘어서야 다시 만났다. 그 모진 풍파를 겪고도 어머니는 늘 웃는 낯이었다. 그렇게 버티며 살아온 분이었다. 입담 좋던 분이 코로나 시기 고립을 견디지 못해 시골로 오셨다. 시골에서 어머님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바깥출입은 우리 집을 오가는 정도였다. 재작년 여름, 사고가 터졌다. 다리가 불편해 집안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는데 잠깐 순간에 콘크리트 바닥에 꼬꾸라졌다. 고관절이 부러졌다. 한창 과수원 일로 바쁠 때였지만 매일 병원에 오가야 했다. 자두밭에 응애가 퍼져 그해 농사를 망쳤다. 수습하느라 병문안이 뜸했을 때 “돈 많이 벌었나?”라며 서운함을 보이셨다. 그 말에 울컥해서 “농사 망쳐서 울고 싶은 거 참고 있다”라며 반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말은 어머니보다 나를 향한 하소연이었다. 이번에는 손목을 다쳤다. 화장실에서 발을 씻으려다가 삐끗해 손목에 금이 갔다. 사고 후 혼자서 해결하려다가 상처가 깊어진 듯하다. 혼자 병원을 찾아 응급조치를 받고 돌아오셨다. 결국 안동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을 나온 어머니는 마치 중환자처럼 변해버렸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고통을 호소하셨다. 퇴원 후 옮긴 요양병원에서도 이성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부끄러움도 잊은 채 아프다는 소리만 반복하셨다. 정신을 놓은 듯 행동했다. 병실의 노인들은 비슷한 모습이었다. 누가 더 크게 아픈지 겨루는 듯했다. 가족들은 ‘이제 집으로 모시기는 힘들겠다’라는 체념 섞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자식들이 모두 불려 왔다. 어머님도 그 분위기를 감지하신 듯했다. 갑자기 집으로 가겠다고 하셨다. 마음 약한 아주버님께는 “안 데려가면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버리겠다.”라며 떼를 쓰셨다고 한다. 결국 남편은 병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 왔다. 집에 돌아온 어머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방에 멀쩡히 앉아계셨다. 끓여 놓은 호박죽도 달게 비우셨다. “그곳에 있으면 나도 그 사람들처럼 실려 나갈 것만 같아 정신이 번쩍 들더라.” 열흘 사이 세 명의 환자가 떠났다고 했다. 코 줄과 소변 줄 없이도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시 생기를 찾았다. 아흔세 해를 버텨온 그 질긴 생명력이 다시금 집이라는 안식처로 돌아오게 했다. 이제 더 조심하시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또 손을 내저으신다. “나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 가서 일 봐라.” 그 모습이 평소보다 밝아 보였다. 그러나 다리가 불편한데다 팔목까지 수술한 상태라 당분간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한다. 나는 대답 대신 마당을 바라본다. 시선은 사과밭으로 향한다. 봄볕 아래, 아직 손도 못 댄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넓은 밭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3-25

악기로 그려내는 그림, 아토 앙상블 콘서트

지난 7일, 대구 비원뮤직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동심을 그리는 ‘아토 앙상블 콘서트’가 열렸다. 피아노와 관악기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에 더해 현악기 콘트라베이스까지 어우러지며 다채롭고도 웅장한 무대를 완성했다. 관악 공연을 좋아하는 시민기자에게 이번 공연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비원뮤직홀에서 여러 차례 연주회를 관람했지만 그동안 현악 중심의 공연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무대는 마치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 관악부에서 플루트를 연주했던 경험이 있어, 플루트의 맑고 청아한 음색을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공연은 해설과 함께 진행되어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소개하며 “프랑스로 떠나보자”는 이혜원 작곡가의 안내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총 1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곡에는 닭, 당나귀,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등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각 악장이 시작되기 전, 해당 동물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악기의 소리를 먼저 들려주어 관객이 음악 속 동물의 이미지를 더욱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합주가 주는 풍성함은 물론, 무대에 오른 각각의 악기가 지닌 고유한 음색의 매력까지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함께 공연을 관람한 친구 시연이는 “오보에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는 감상을 전했고, 시민기자 역시 여기에 깊이 공감했다. 무대 뒤편 스크린에는 샌드아트가 펼쳐졌다. 모래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악장마다 등장하는 동물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하여 음악과 어우러져 시각적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자극했다. 덕분에 곡의 흐름을 한층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부모님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어린 친구들 역시 눈을 반짝이며 끝까지 몰입해 감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2부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의 작품들이 연주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익숙한 작품의 OST가 연주되자 객석 곳곳에서 반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평소 귀에 익은 선율이었지만, 눈앞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악기 소리를 들으니 곡이 지닌 감정의 깊이가 한층더 깊어지며 애니메이션을 접했던 어린시절 추억도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다. 1부에서 샌드아트가 펼쳐졌던 스크린에는 각 애니메이션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재생되었다. 대사 대신 음악으로 전하는 이야기에는 더 큰 마음의 울림이 존재했다. 앙코르 공연에서는 뜻밖에 깜찍한 공연이 이어졌다. 애니메이션 ‘타요’ OST와 동요 ‘고향의 봄’을 연주해 관객들은 다 함께 웃으며 손 박자를 맞춰 무대와 하나 되어 또 다른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이번 ‘아토 앙상블 콘서트’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설과 시각적 요소를 더해 관객이 음악을 ‘이해하고 상상하며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음악이 전하는 감동과 상상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비원뮤직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비원뮤직홀은 지역주민들을 위해 수준 높은 다채로운 공연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따스한 계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비원뮤직홀을 찾아 새로운 추억을 쌓아보길 추천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3-25

미 군사고문단 전몰장병 기념비를 찾아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앞산 골(앞산 공원 버스 종점 맞은편)에 위치한 ‘미 군사고문단 전몰장병 기념비’는 6·25 전쟁 직후 지역민의 뜻을 모아 만들어진 보은의 기념비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기념비가 있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한미동맹의 역사적 의미가 담긴 전적기념비를 찾아 그날의 감동을 새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대구지역에서는 이 비를 보은의 상징으로 여긴다. 전쟁직후 어려운 사회 여건 속에서 민관이 합동으로 정성을 모아 만든 기념비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주도가 아닌, 대구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과 지역 지도자들의 결단이 합쳐져 세워진 기념비란 점에서 역사성이 있다. 6·25 전쟁 직후 대구 시내 유지와 시민들은 미 군사고문단 전적비 건립위원회를 결성하고 당시 경상북도지사였던 최희송(崔熙松) 지사를 위원장으로 뽑았다. 최 위원장을 중심으로 위원회는 전쟁 직후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대구 시민들의 성금을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외국인 군대의 공적을 기리는 비를 세워 그들의 공적을 역사적으로 기록해 보자는 취지였다. 비문에는 당시 한국군의 현대화를 돕고 전장에서 함께 피 흘린 미 군사고문단(KMAG)의 희생을 한글과 영어로 함께 적어 기록했다. “이 기념비는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한국전쟁에서 자유를 수호코자 한국의 전우와 나란히 싸우다 전몰한 주한 미 군사 고문단 장병의 영령 앞에 봉납한 것”이라고 기념비에 적혀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주한 미 군사 고문단 장병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며, 그들의 빛나는 업적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한 대구 시민의 뜻이 잘 담긴 비라 하겠다. 6·25 전쟁 당시 고문단이 수행했던 역할(한국군 훈련 및 작전 지도)과 건립 취지, 그리고 건립 연월일(1954년 6월 30일)도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는 단순히 ‘도움을 주었다’는 표현을 넘어, ‘한국군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다’는 동지애적 표현이 강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이 비석은 수성교 인근(현재의 대구 중구 삼덕동)에 세워졌으나, 도시가 확장되면서 1973년에 지금의 남구 대명동 앞산 골로 이전되었다. 비문의 훼손을 최소화해 지금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그밖에 기념비에는 “자유를 위해 함께 싸웠다”라는 취지의 문구와 함께 고문단의 창설 과정, 그리고 그들이 한국군과 맺었던 끈끈한 전우애도 기록돼 있다. “이들은 단순히 가르치는 스승을 넘어, 가장 어두운 시기에 곁을 지켜준 진정한 친구이자 전우였다.” 이곳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근을 지나실 기회가 있으면 잠시 들러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 뒤에 숨겨진 낯선 이들의 헌신을 느꼈으면 한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3-24

(시민기자 단상) 지방선거를 지켜보며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공천 경쟁이 뜨겁다. 특히 우리가 사는 대구·경북 지역에선 시장, 도지사, 군수 후보들이 우후죽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경상북도에선 기초의원만 하더라도 국민의힘에 지역구 381명, 비례대표 71명 총 452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 숫자가 많음에 놀랍다. 단체장의 경우도 많게는 6명에서 7명까지 출마 신청하는 곳도 많아 지역민의 정치적 수요가 적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공천장을 받아들면 바로 당선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정치인을 정치꾼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금권 선거와 상대방을 비방하는 잘못된 선거 관행이 지방 민심을 어지럽히지 않을까 하는 근심도 든다. 권력과 금전에 눈먼 정치꾼이 국민을 위한 봉사나 제대로 할지 걱정이 돼서다. 이들에게 어떻게 군정, 도정, 국정을 맡길 것인가. 의사와 간호사도 직무에 임하기 전에 생명을 다루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지 않는가. 팬데믹을 거치며 의료인들의 희생적인 활동을 보며 느낀 점이 많다. 목숨을 걸고 한 생명이라도 더 건지려는 그들의 행동에서 진정한 의료인의 모습을 보지 않았는가. 하물며 백성을 다스리는 공직자들이 아무런 맹세나 준비 없이 직무에 임해서야 되겠나. 어떤 시군의 경우 군수가 온갖 물의를 일으켜 온 신문 지상과 방송에 보도되면서 그 지역을 욕 먹이고 있다. 군민들을 상대로 욕지거리나 하고 일반인도 하지 않는 불손한 자세를 보여 민망할 때도 있다. 대대손손 청정지역으로 내려오던 도불습유(道不拾遺)의 아름다운 고장을 먹칠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정약용 선생이 저술한 목민심서는, 수령이 지방을 통치할 때 필요한 도덕적 규율, 행정 지침, 통치 방안 및 통치 이념을 다루고 있다. 핵심 주제는 수령의 도덕적 규율인 청렴, 절검, 절용 등과 행정 지침인 세금, 호전, 예전, 병전, 형전 등을 제시한다. 백성을 사랑하고 공정하게 다스리는 통치 이념을 강조하며, 부패·횡포를 척결하려는 정신이 담겨 있다 목민심서는 오늘날 공직자들에게 무엇을 교훈하는가. 정치인을 꿈꾸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 번쯤은 목민심서를 읽어보기 바란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를 되새기자. 실천 중심, 민생 중심 정치, 선물과 뇌물을 구분할 줄 아는 식견과 청렴과 공정, 백성 중심의 책임을 되새기게 하는 참된 목민관으로서 책임을 가슴 속에 되새기길 바란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3-24

행복의 솟대 높이 날아라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으로 전래돼 왔던 솟대를 주제로 한 작품 전시회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대구경북솟대작가협회(회장 박영식)는 지난 17일부터 22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솟대작품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정회원 8명이 제출한 작품 100여 점이 출품됐다. 솟대는 농경시대, 민속신앙으로 마을 어귀에 풍농과 안녕을 기원하며 수호신의 상징으로 세워 둔 긴나무의 장대다. 이것이 현대적 디자인과 예술적 미를 가미하면서 예술계의 한 영역으로 어느덧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전통적 투박함을 벗어 던지고 ‘세련미’를 입힌 솟대 작품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잘 다듬어진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를 모으는가 하면 금속, 유리, 세라믹, 수석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만든 솟대는 주거 공간의 장식용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또 손바닥 크기의 미니 솟대는 책상 위나 선반, 창가 등에 배치하기 좋아 MZ세대들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솟대 작품은 디자인뿐 아니라 복을 부른다는 전래적 의미 때문에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솟대 끝에 앉은 새(오리나 기러기)는 ‘희망’과 ‘행운’을 실어 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솟대가 주는 정서적 안정감도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는 이유다. 하늘을 향해 뻗은 기상, 마을을 지켜주던 수호의 의미, 새 집에 복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 등이 담겨 장식을 넘어 선물용으로도 수요가 늘고 있다. 박영식 대경솟대작가협회 회장은 “솟대 전시회가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솟대가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3-24

대구예총 첫 여성회장 취임식 열려

사단법인 한국예총 대구광역시연합회는 지난 21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 제12대 이창환 회장 이임식 및 제13대 강정선 회장 취임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문화예술계 및 각계 인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새로 출발하는 대구예총과 지역예술계의 발전을 응원했다. 레조나 앙상블의 식전 공연을 시작으로 한 이·취임식에서는 제12대 이창환 회장에 대한 공로패와 감사패가 전달되었고, 제13대 대구예총을 이끌어 갈 김신효 대구예총 수석부회장(대구국악협회 지회장)과 이호규 부회장(대구사진협회 지회장), 안희철 부회장(대구연극협회)에 대한 임명장과 특별회원단체 인준서가 수여되었다. 이창환 제12대 회장은 이임사에서 “임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신임 회장을 중심으로 화합해 대구예술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예총 역사상 첫 여성회장으로 당선된 강정선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그동안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대구예총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며 “회원단체 상호 간의 소통과 화합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구예총을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강훈 한국예총 회장은 축사를 통해 “예술인들의 처우와 창작환경이 개선되는데 대구예총이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황보란 대구광역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을 비롯해 강은희 대구광역시 교육감과 박윤경 대구상공회의소 대표 등이 축사자로 무대에 올라와 “신임 회장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는 대구예총의 활약을 기대한다”며 축하했다. 이날 이·취임식은 단순한 직위 교체를 넘어, 지역예술문화와 함께하는 예술단체로서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로 의미를 더했다. 지역정치권에서는 주호영, 윤재옥, 추경호, 이인선, 김승수, 권영진, 유영하, 최은석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으며 이만규 대구시의회의장, 강은희 대구시 교육감, 박윤경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조재구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 이태훈 달서구청장, 류규하 중구청장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3-24

기계 유씨 대구 경북 종친회 정기총회 성료

기계유씨 대구 경북 종친회(회장 유성근)는 지난 21일 대구 그랜드관광호텔 5층 프라자 홀에서 70여 명의 대구 경북 시군지역 종친회 회원들이 참석 한 가운데 정기총회 및 회장 이·취임식을 가졌다. 정기총회는 매년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인 3월에 개최하고, 회장이·취임식은 3년마다 개최 한다는 규정에 따라 이날 행사가 준비됐다.. 1980~90년대만 해도 시군 종친회에서 버스를 맞추어 200~300여 명의 회원이 참석, 성황을 이루었으나, 숭조 사상이 빛을 잃어가고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매년 참석 회원이 줄어드는 분위기다. 기계유씨 대구 경북종친회는 1956년 9월에 조직되었다. 유성근 회장이 27대 회장을 지냈고 28대 회장에 유춘근씨가 맡았다. 회의는 유병훈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유성근 회장이 환영사를 하였고, 유락 부운제 책임 유사가 축사하였다. 유진웅 대종회장의 공로상을 유락 부운제 책임 유사가 유성근 종친회장과 유병국 종친회 부회장에게 각각 전달했다. 유성근 회장은 유병덕 대구 경북 청장년 회장, 유병도 대구 경북 청장년 감사에게 공로패를 수여하였다. 유병윤 종친회관 건립기금 추진위원장이 종친회관 건립기금 경과 보고를 하였고, 유병오 감사가 감사 보고를 하였다. 유성근 기계유씨 우봉이씨 상덕사 종중회장이 상덕사 비각 이전 설치 경과 보고를 하였다. 유병훈 사무국장이 기계유씨 대구 경북 종친회 기금 결산보고를 하였다. 유춘근 신임 회장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조상님에 대한 공경과 뿌리에 대한 인식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며 “이러한 때일수록 뜻을 함께하는 종인들이 적극으로 참여하여 이 시대에 걸맞은 소통과 화합 그리고 실천의 종친회를 만들어 가자”고 했다. 유춘근 신임회장은 전임 유성근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2부에는 종인간의 흥겨운 화합의 장을 가졌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3-24

오스트리아 슈니첼보다 맛있는 ‘그냥’의 돈가스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입국해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독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떠나기 바로 전, 개그맨 유재석이 하는 유튜브 ‘풍향고’에서 우리가 가려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먼저 다녀와서 정독했다. 풍향고팀은 패키지인 우리와 달리 자유여행이었고 핸드폰으로 검색 따위 안 하고 숙소도 식사도 기차도 무작정 닥치는 대로 해결했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슈니첼은 꼭 먹어야 한다고, 유명한 맛집 앞에 줄을 섰다가 예약한 사람만 입장 가능하다고 하니 아쉬워하다가 근처 줄 없는 식당에서 맛보았다. 맛있다고 하면서 케첩과 잼을 뿌리거나 가져간 튜브 고추장을 곁들여 먹었다. 우리 패키지는 모차르트가 살았던 짤즈부르크를 둘러보고 모차르트 어머니의 생가가 있는 할슈타트 호수 보러 가는 길, 산골 작은 읍내같은 곳에서 점심으로 먹었다. 풍향고 팀이 먹었던 그 슈니첼을 우리도 먹는다니 기대가 컸다. 화장실이 급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달려갔다. 손을 씻고 내 자리로 오니, 수프와 샐러드와 빵이 놓였다. 따뜻한 수프는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대량 생산한 것 같은 라면 스프 맛이 났다. 그래서 다들 맛있다며 먹었다. 샐러드도 경양식집의 그 샐러드였다. 빵도 달콤해서 금방 해치웠다. 그러자 본식 메뉴인 슈니첼을 들고 종업원이 들어왔다. 우와아~~, 크기가 얼마나 큰지 서울 남산에서 본 세숫대야 돈가스만 했다. 혼자 먹기엔 진짜 컸다. 우리나라 돈가스와 닮았는데 다른 점은 레몬 4분의 1조각과 감자 튀김이 사이드에 잔뜩 토핑으로 얹혔다는 것, 또 돈가스 소스가 없었다. 슈니첼 맛집이 아닌지, 칼로 썰어 한 입 먹었더니 짜다. 또 돼지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나서 내 입에는 맞지 않았다. 옆에 함께 나온 감자튀김에 캐첩을 뿌려 배를 채웠다. 옆에 일행들은 반 정도 먹고 남겼다. 워낙 크기가 한국인 여행객들이 다 먹기엔 컸다. 그 위에 돈가스 소스와 오뚜기 수프와 단무지나 깍두기가 있었다면 남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여행에서 돌아와 포항제일교회 근처 돈가스 맛집 ‘그냥’에 갔다. 이 집은 메뉴가 돈가스 하나뿐이다. 오르막길에 자리한 곳이라 모르는 사람은 간판도 못 보고 휙 지나쳐 간다. 가게 입구에 들어서니 봄이라고 사장님이 키우는 화분에 꽃이 만발했다. 수선화가 꽃대를 올렸고 연보랏빛 긴기아난이 향을 내뿜었다. 칼랑코에도 햇살을 향해 목을 길게 뽑고 곧 꽃을 피울 기세다. 창가 자리에 앉아 기다리니 따뜻한 물과 기본 반찬 세 가지가 나왔다. 쫑쫑 썬 고추장아찌와 부채를 편 듯 다소곳한 단무지, 잘 익은 깍두기였다. 뒤이어 돈가스 접시가 입장했다. 사각의 접시는 가장자리가 레이스 뜨기 무늬를 닮아 그 자체로 우아했다. 소스를 가득 부었고 그 위에 익은 양파를 토핑했다. 사이드에는 양배추샐러드에 참깨드레싱을 뿌려 고소한 향이 풍겼다. 샐러드 주위에 빨간 딸기와 초록 브로콜리를 둘러 꽃 같았다. 귤 반쪽에 달걀 반쪽과 파인애플 반쪽이 앙증맞게 입맛을 당겼다. 고기 냄새에 민감해서 어지간한 집의 돈가스는 입에 맞지 않는다. ‘그냥’의 돈가스는 어떨까 조심스럽게 썰었다. 소스와 함께 한 입 맛보았다. 오스트리아의 슈니첼과 달리 짜지도 비리지도 않았다. 양배추 채가 얌전하고 가지런해 기계로 썰었냐고 사장님께 여쭈니 손으로 해야 일정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소스도 직접 이것저것 넣고 빼보며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맛이라고 한다. 천연 재료만 넣었다고 자랑이 길었다. 나름 장인정신으로 만든 돈가스였다. 그냥 사장님이 할슈타트에 가서 오픈하시면 대박 날 집이 확실하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6-03-23

전쟁과 파병 반대 시민 성명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직후 유가 급등으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 기름값이 2000원에 육박하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유소마다 차량 행렬이 이어지며 혼잡을 빚었다. 정부의 긴급 개입으로 기름값은 잠시 안정세를 보였으나, 석유 의존도가 높은 생활필수품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며 일부 품목의 품귀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렇듯 사소한 일상용품까지 이미 우리는 하나의 세계로 묶여있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경주시청 앞에서는 이란 전쟁 및 파병 반대 시민성명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경주 지역 8 개 정당과 시민단체가 연합해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는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황성동 시의원 출마 예정자 문연지 씨, 진보당 경주시위원회 여호수 위원장, 시민사회위원회 김성대 위원장 등이 발언자로 나섰다. 참가자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파병을 거부한다”, “전쟁 공조 아닌 평화를 선택하라”는 구호를 세 차례 제창한 뒤, 문연지 씨가 첫 발언자로 나서 “전쟁 도구가 된 군대가 아닌,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며 미국의 외교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 독자적 결정을 촉구했다. 이어 경주겨레하나 최성훈 대표는 “국제법 위반 소지가 분명한 이번 전쟁에 동조한다면 청년들의 목숨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라며 파병 반대를 호소했고, 환경단체 대표들은 “전쟁은 생태계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시청 건물 전광판에는 “경주시 초등학생 입학축하금·중고교 교복비 지원 안내” 광고가 반복 송출되었다. 한 참가자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학교 잔해 아래 깔린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이 광고를 보니 참담하다”며 전쟁의 비극성과 일상 속 평화의 소중함을 대비시켰다. 회견 말미에는 시민사회단체 공동명의 성명서가 낭독되었다. 성명서는 “대한민국 헌법 제5조 1항(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파병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며 마무리되었다. 시민 김모(65) 씨는 “전쟁 소식만 들려도 숨이 턱 막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정치인들은 군인과 국민의 생명을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먼저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총칼이 아닌 희망 가득한 내일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6-03-23

그림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곳곳에 봄이 넘실대고 있다. 언제 떠나도 자연과 함께하기 좋은 때다. 한결 상큼해진 공기와 수줍게 얼굴을 내민 꽃을 마주하며 흥해어리골작은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림책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지난 금요일이 첫 시간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작은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강사님이 도서관 문을 열고 수업할 그림책을 가방 가득 챙겨오신 모습이 보였다. 강사님은 수업할 몇 권이 아니라 가방 가득 챙겨오신 그림책을 책상 위에 펼쳐놓는다. 오늘 여행을 떠날 그림책은 프랑스 작가 에릭 바튀의 책들이다. 그림책을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오랜만에 펼치다 보니 작가들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 강사님도 이 작가는 잘 모를 수도 있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에릭 바튀는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라고 하셨다.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책이라고 소개하면서 ‘공기처럼 자유롭게’를 먼저 읽어주신다. 책을 보니 파란색과 초록색 붉은색 등의 색이 잘 드러났고 다른 그림책에 비해서 사람들은 작게 그렸다. 이어진 책들도 색깔은 다양하게 그려졌고 군데군데 프랑스의 삼색기도 작가는 세심하게 그려 넣었다. 스무 권 가까이 펼쳐놓은 책들을 보니 그중 ‘새똥과 전쟁’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띈다. 지금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떠올랐다. 강사님이 읽어주신 책을 보며 전쟁이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전쟁은 왜 하는지, 피해자는 누구이고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스갱아저씨의 염소’는 작가의 첫 책이었는데 안전한 울타리 안을 택할 것인지 위험하지만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책상 위에 펼쳐진 책들을 강사님은 계속 읽어나갔다. 처음엔 이 책들을 다 읽어주실 줄 몰랐는데 2시간 동안 읽어 내려갔다. 이야기 할머니 앞에 모여든 유치원 아이들처럼 이야기에 집중했다. 작가는 책에서 답을 내리지 않았다. 독자들이 자신이 느끼는 대로 답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책 군데군데 프랑스 삼색기를 그려 넣었고 태양, 나무, 달, 동물도 많이 보였다. 작가의 자연에 대한 애착을 그림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림책은 어린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에게 관심이 많지만 어릴 때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그림책이 이제는 자신이 좋아져서 책을 읽게 된다고 수업에 참여하신다는 분이 두 분 계셨다. 돌아보면 시민기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있어 도서관을 더 부지런히 다녀야 했다. 그때 그림책에도 처음 입문을 했다. 그림책을 읽던 중 아이들보다 스스로가 더 감명받은 적도 많았다.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과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그리고 지금 나의 삶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노 요코의 그림책 ‘백만 번 산 고양이’이나 ‘두 사람’, ‘알사탕’ 등의 책을 만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한 개라도 백 개인 사과’와 ‘내 이름은 자가주’도 다시 읽으니 저절로 마음이 반짝반짝한다. 그 덕에 문외한이던 미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림책 속에는 사람과 세계가 들어 있었다. 그림책에는 나이도 성별도 없다. 책을 읽다 보니 어린아이부터 100세까지 보는 책이라는 게 맞는 말이다. 봄과 함께 그림책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허명화 시민기자

2026-03-23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수성못에서 ‘팔경’을 찾다

중국에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있고, 우리나라엔 ‘관동팔경(關東八景)’이 있다. 예부터 이름 좀 깨나 날린다는 동네는 너도나도 ‘팔경’을 내세웠다. 중국 동정호의 비경을 그린 ‘소상팔경도’가 고려 시대에 수입된 이후, 우리 선비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니, 남의 나라 물가만 예쁘냐? 우리 집 앞마당도 끝내준다!” 하며 붓을 들기 시작한 것이 팔경 문화의 시작이다. 송강 정철 선생은 강원도에서 ‘관동별곡’을 읊으며 총석정, 경포대 등 여덟 곳을 찍어 ‘관동팔경’이라 이름 붙였다. 그 시절 사대부들에게 팔경은 단순한 명승지가 아니었다. “나 이 정도 경치 보며 노는 사람이야”라는 일종의 ‘플렉스(Flex)’였고, 정자 하나 지어놓고 시 한 수 읊는 시회(詩會)는 요즘으로 치면 힙스터들의 루프탑 파티나 다름없었다. 전주, 삼척, 안동, 남해, 군산···. 전국 방방곡곡이 ‘팔경 경쟁’에 뛰어들며 지역의 자부심을 세웠다. 우리 대구도 빠질 수 없다. 서거정 선생은 일찌감치 ‘대구 10경’을 선정했다. 그중 제2경이 ‘입암조어(笠巖釣魚)’, 즉 건들바위 앞에서 낚시하는 즐거움이다. 지금이야 건들바위 앞이 매연 가득한 도로지만, 옛날엔 신천 물줄기가 굽이쳐 들어와 커다란 웅덩이를 이뤘다니, 거기서 낚싯대 드리우고 세월을 낚던 서거정 선생의 뒷모습이 자못 부럽기까지 하다. 제10경인 ‘침산낙조(砧山落照)’는 또 어떤가. 오봉산에 붉게 지는 해를 보며 감성에 젖었을 선조들의 모습은 요즘 인스타그램 ‘노을 맛집’ 인증샷을 찍는 청춘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자, 그런데 명색이 대구의 랜드마크인 ‘수성못’이 이 팔경 레이스에서 소외되어서야 되겠는가? 한국관광공사가 ‘야간관광 100선’으로 공인한 이곳을 위해, 필자가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이름하여 ‘수성 팔경’이다. 시인 묵객들이 산천을 유람하며 이름을 붙이던 그 호기를 담아, 필자가 새로 짠 ‘사언율시(四言律詩)’ 버전의 수성못 탐방기를 소개한다. 제1경 지중고도(池中孤島):둥지 섬에 학이 무리 지어 춤춘다. 고고한 학의 자태를 보노라면 “너희가 진정한 수성못의 주인이다” 싶어 고개가 숙여진다. 제2경 구압선유(龜鴨船遊):거북이 배와 오리배가 물 위를 유유히 노닌다. 연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을 밟는 모습은 가히 수성못의 백미다. 사랑은 역시 ‘노동’인 법이다. 제3경 화류춘앵(花柳春櫻):봄날 벚꽃 구경에 인산인해다. 꽃보다 사람이 많지만, 그 속에서 ‘건달꽃(벚꽃)’의 화사함을 즐기는 것이 봄의 도리다. 제4경 야경분수(夜景噴水):달빛 아래 뿜어지는 분수는 휘황찬란하다. 밤공기를 가르는 물줄기에 근심도 씻겨 내려간다. 제5경 연리지목(連理枝木):두 몸이 하나 된 부부 나무. 솔로들에겐 눈꼴시려울 수 있으나, 사랑의 오묘함을 증명하는 자연의 신비다. 제6경 난간시건(欄干施鍵):선남선녀의 자물통 맹세. “우리 사랑 영원히!”라고 걸어둔 자물쇠들이 난간의 무게를 위협한다. 부디 그 열쇠, 못 속에 던지진 마시라. 수질 오염된다. 제7경 상화시비(尙火詩碑):“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읊조리던 이상화 시인의 우국충정. 못가를 걷다 잠시 숙연해지는 포인트다. 제8경 왕양노수(王楊老樹):이 모든 풍경을 묵묵히 지켜봐 온 왕버들 노거수. 수성못의 산증인이자 가장 어른스러운 풍경이다. 시민기자가 선정한 이 ‘수성못 팔경’이 널리 알려져, 수성못을 찾는 이들에게 소소한 재미가 되길 바란다. 혹시 아는가? 훗날 어느 시인이 이 팔경을 따라 걷다가 “방종현이 참으로 장난스럽지만 예리하게 잘 뽑았구나!” 하며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켤지. 수성못이 단순히 걷는 곳을 넘어, 이야기가 흐르는 ‘진정한 명소’가 되기를 염원해 본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22

수필사랑문학회, ‘600회 토론’금자탑 세웠다

척박한 문학의 토양 위에서 오직 ‘글쓰기’라는 일념 하나로 뭉친 이들이 600번째 뜨거운 담론의 장을 펼쳤다. 지역 수필 문학의 산실로 자리매김한 수필사랑 문학회가 그 주인공이다. 수필사랑문학회(회장 정근식)는 지난 19일 대구 남구 소재 매일가든에서 회원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 600회 토론 기념식’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기념식을 넘어 지난 2001년 창립 이후 사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온 문학적 열정을 되새기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오랜 시간 회원들의 창작 눈높이를 끌어올려 준 신현식 지도교수에 대한 감사의 순서였다. 회원들은 정성껏 준비한 꽃다발을 전달하며, 문학적 스승에 대한 깊은 존경과 신뢰를 표했다. 신 교수는 그간 회원들의 작품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피며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헌신해 왔다.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세 시간 동안 이어진 본 행사에서는 기념식의 열기가 고스란히 토론회로 이어졌다. 이날 토론대 위에는 무철 양재완 수필가의 ‘직업 아닌 직업’을 포함해 총 14편의 신작 수필이 올랐다. 참석자들은 한 달간의 고뇌가 서린 작품들을 놓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담긴 함의를 분석하며 날 선 비평과 따뜻한 격려를 주고 받았다. 작품의 구성과 주제 의식은 물론 현대 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 수필사랑문학회의 발자취는 곧 지역 수필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2001년 7월 첫발을 뗐을 당시,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 관장의 지도로 기틀을 잡았으며 2017년부터는 신현식 수필가가 그 맥을 이어 창작 지도의 전문성을 강화해 왔다. 그간의 성적표는 눈부시다. 600회에 이르는 토론 과정을 거쳐 간 작품은 약 4800여 편. 이를 수필집으로 환산하면 무려 11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동인지 ‘수필사랑’ 역시 37호까지 발간하며 꾸준한 기록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내공은 대외적인 성과로도 증명됐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 주요 일간지 공모전에서 다수의 당선자를 배출했음은 물론 권위있는 ‘평사리 토지문학상’에서만 2025년 기준 총 8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며 전국적인 위상을 공고히 했다. 현재 문학회는 매월 3·4주차 목요일마다 거르지 않고 정기 토론회를 운영 중이다. 특히 등단반과 심화연구반을 이원화해 예비 작가에게는 체계적인 기초를, 기성 작가에게는 치열한 자기 갱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수필 산책’과 정기적인 문학기행을 통해 현장에서 글감을 발굴하는 등 살아있는 문학 활동을 지향한다. 정근식 회장은 발언을 통해 “600회라는 숫자는 결코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기적 같은 기록이다. 매 순간 마감의 고통을 이겨내고 토론장에 발걸음을 해준 회원들의 숭고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앞으로도 수필사랑문학회가 지역 문학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수필가들의 영원한 고향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로 맺어진 이들의 끈끈한 유대감은 기념식 이후 이어진 교류의 시간에서도 빛을 발했다. 글쓰기가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이라면, 토론은 그 외로움을 함께 나누는 치유의 과정임을 증명한 뜻깊은 하루였다. 600번의 만남이 쌓아 올린 이들의 문학적 금자탑이 앞으로 또 어떤 향기로운 수필의 꽃을 피워낼지 지역 문단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22

(이사람) 고향 찾아 안경점 연 정지현 사장

대구 경제가 어렵다. 대로변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빈 점포가 즐비하고 인기 없는 빌딩은 경매로 넘어가는 곳도 종종 눈에 띈다. 지난주엔 시내를 벗어나 청도를 가보았다. 시골이어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시내가 무척 조용하다. 왕래하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역시 대구와 같이 여기도 경제가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대구 시내처럼 빈 점포는 보이지 않았다. 상인들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 건물이 자기 소유라 점포세를 주지 않아 그나마 현상 유지는 된다고 한다. 옛날 이곳 역전 삼거리는 대구 반월당보다 땅값이 더 높았을 정도였다. 마침 점포 외부가 유난히 예쁜 장식을 해놓은 안경점이 눈 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더욱 밝고 예쁘게 꾸며 놓았다. ‘작지만 알찬 가게’라는 게 이 가게의 자랑이다. 마침 손님이 없어 혼자 점포를 지키고 있는 젊은 여사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안경학과 정규 학사과정을 나온, 올해로 20년째 안경사 경력을 갖춘 베테랑 안경나라 정지현(41) 사장이다. 정 사장은 대구 시내에서 안경점을 개업하여 일하던 중 농사짓는 부모님 건강 때문에 고향으로 온 게 벌써 7년째라 한다. 정 사장은 고향에 내려와 보니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많고 형편이 어려워 안경을 제 때에 바꾸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모두가 내 부모 같아 봉사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효성이 지극하고 노인들을 대하는 자세가 아름다워 마음이 흐뭇했다. 영업은 대구에 비하면 좀 저조하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의 수입보다 내 고향 어른들께 양질의 안경을 직접 제공하여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나날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나도 안경 알을 갈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즐겨 다니던 단골 가게보다 훨씬 싼 가격이라 놀랐다. 정 사장은 “일부 지역주민이 청도에 있는 안경점을 믿지 못하고 대구로 나갈 때가 제일 섭섭하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과 양질의 서비스를 해줘도 대구로 가면 더 나을 거란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대구의 상당수 고객이 입소문을 타고 거꾸로 청도로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부는 일가친척까지 대동해 올 때는 자신의 진실을 알아주는 것 같아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고향 사람들의 눈 건강을 책임지고 지키기 위해 묵묵히 저렴한 가격과 양질의 서비스로 꾸준히 봉사해 나가겠다고 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3-22

주민과 함께 여는 새로운 행정의 장

대구 수성의 중심, 만촌2동이 새로운 도약의 문을 열었다. 지난 20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2동 행정복지센터 신청사 개소식이 많은 주민과 내빈 등의 축하 속에 성대히 개최됐다. 이날 개소식은 전통의 흥과 공동체의 기원을 담은 고산농악단의 지신밟기를 시작으로 인칸토 솔리스트 앙상블의 품격 있는 공연과 내빈 소개, 테이프 커팅 순으로 진행됐다. 이번에 준공된 만촌2동 행정복지센터는 작년 12월 건립됐으며, 총사업비 102억 원을 투입된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 건물이다. 연 면적 약 914평, 부지면적 약 322평에 달하는 이 건물은 기존 동 행정복지센터보다 약 3배 넓은 복합 주민시설이다. 1층은 민원실, 2층은 행정사무실, 3층은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4층은 예비군 동대와 다목적 강당·주민 행사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오후 4시부터는 청사 관람에 이어 김대권 구청장이 참여하는 ‘행복 수성 공감토크’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최진태 구의원과 조경구 시의원, 김중근 위원, 박영환 주민 자치위원장 등 지역 인사들이 함께해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했다. 이날 행사에서 주민들은 생활 속 불편과 지역 현안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털어놓았고, 구청장 등은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는 공동의 시간을 가졌다. 특히 한해동 수성구 노인지회장은 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고 시설이 낙후된 노인지회 건물의 현실을 언급하며 노인들의 편의를 위한 개선을 건의했다. 또 다른 주민은 기존 행정복지센터 건물이 비어있는 상황과 관련해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시설의 개소를 넘어 지역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적 대화의 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정은경 만촌2동장은 “앞으로 행정복지센터가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행정 서비스와 지역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충실히 해내겠다”고 밝혔다. 새롭게 문을 연 만촌2동 행정복지센터는 단순한 공공청사가 아니라, 주민이 주인으로 참여하고 소통하며 미래의 행복한 수성을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의 공간이다. 행정이 사람 속으로, 주민이 중심으로 다가서는 변화의 현장이 이제 만촌2동에서 시작되고 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3-22

단종의 비극 뒤에 가려진 이름, 경혜공주

최근 역사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한 달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 영화는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 이야기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어린 왕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그를 지키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영화는 폐위된 어린 왕의 유배생활과 마지막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역사적 비극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의 긴장과 슬픔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특히 배우 유해진은 극적인 깊은 감정으로 역사 속 인물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극장을 나선 뒤 비극의 중심에 서 있던 어린 왕 단종을 떠올리며 조선의 역사를 다시 들춘다. 그러다 단종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인물들을 만난다. 그 중 한 사람 경혜공주. 그녀는 세종의 손녀이자 문종의 딸이며, 세조의 조카다. 그리고 단종의 하나뿐인 누이이다. 경혜공주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평탄하지 않았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동생 이홍위(훗날 단종)를 낳은 뒤 세상을 떠난다. 이어 자신을 아끼던 할아버지 세종이 승하하고, 아버지 문종마저 재위 2년 만에 요절한다. 열두 살의 어린 동생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실은 이미 권력을 둘러싼 긴장이 시작된다. 결국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왕위를 찬탈하고,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로 유배 보낸다. 왕이었던 동생마저 그렇게 유배지에서 열일곱의 나이에 사사(賜死)를 당한다. 경혜공주는 정종(鄭悰)과 혼인했지만 왕좌를 둘러싼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왕실의 공주로 태어나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경혜공주. 미남으로 알려진 아버지 문종을 닮아 그녀 역시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러나 어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동생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보며, 숙부의 권력 장악 속에서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은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유배 길을 따라 나선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남편 역시 단종 복위를 도운 역적으로 몰려 처참한 형벌로 생을 마감한다. 역적의 집안이 된 가족에게 내려진 운명은 가혹했다. 어린 자식들과 함께 그녀 역시 관노비로 전락한다. 왕의 손녀이자 공주였던 삶은 그렇게 무너져 내린다. 왕위에 오른 세조는 시간이 흐른 뒤 이들을 다시 궁궐로 불러들인다. 흔들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정종의 아들과 딸은 연좌하지 말라” 세조의 명이 내려졌다. 궁궐로 들어간 그녀는 아들과 딸을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에게 부탁한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궁궐 안의 불교 수행처인 정업원으로 들어간다. 비극이 연속이던 생을 서른아홉의 나이에 조용히 마감한다. 경혜공주는 조선 왕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인물이라 전해진다. 세조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희생을 강요했을까. 우리는 단종의 비극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주변에 더 많은 눈물과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혜공주의 아픈 삶은 그 가운데 하나다. 권력을 둘러싼 싸움은 왕 한사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여파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처참히 무너뜨린다. 역사는 지나갔지만 권력과 욕망의 그림자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에 드리워져 있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3-18

사과나무 앞에서 다시 초보가 되다

지난 11일, 청송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친환경 사과반’ 첫 수업에 청강생으로 참여했다. 재작년 응애 피해로 자두 과원을 사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이 절실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덜컥 교육 신청을 했다가 떨어졌다. 실망하던 우리 부부에게 지인은 “청강생으로라도 한번 들어보라”라고 권유했다. 첫날 청강생으로 들어갔지만, 빠듯한 자리 사정에 괜히 눈치가 보여 다음 수업부터는 발길을 접었다. 아쉬움은 오래 남았다. 올해는 달랐다. 농업경영체 종목 추가 등 자격 요건을 꼼꼼히 갖춰 다시 도전해 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남편은 교육생으로, 나는 청강생으로 다시 나란히 책상에 앉았다. 작년에는 주눅 들었던 그 자리가, 올해는 왠지 조금 든든하게 느껴졌다. 교육은 3~12월까지 80시간 내외로 진행된다. 시기별 재배 기술부터 전정 원리와 실습, 사과 재배 선진지 및 관련 시설 현장학습까지 일정도 알차다. 작년 막 사과를 시작한 우리 부부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배움의 시간이다. 수업 시작 전에 권영문 부군수가 참석해 교육을 응원하며 올해 군의 중점 사업을 설명했다. 이어 함께할 40명의 교육생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했다. 귀농 1년 차 청년부터 은퇴자, 고령의 귀농인까지 면면이 다양했다. 무엇보다 2~30대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어 반가웠다. 인구 소멸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 청송의 미래가 그 순간만큼은 조금 밝아 보였다. 내년에 귀농 예정인 아들의 앞날을 떠올리니 마음도 든든해졌다. 다만 사과 재배 기술이 뛰어난 현동·현서면에 비해 내가 사는 파천면의 인원이 적은 점은 못내 아쉬웠다. 첫 강의는 사과 재배의 기초였다. 핵심은 전정이었다. 햇빛과 통풍을 위해 실시하는 동계전정과 하계전정의 원리를 초보자도 알기 쉽게 풀어주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꽃눈에 대한 설명이었다. 흔히 관리를 잘못하면 꽃눈이 잎눈으로 바뀐다고들 말하지만, 강사님은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내년에 필 꽃은 이미 올해 6월 20일경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멘토에게서 듣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믿었던 말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 비로소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청송군은 지난 5일 ‘2026 청송군 농업인대학 입학식’을 열었다. 지역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전문 농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올해도 사과 사관학교, 친환경 사과반, 미래 농업반의 3개 과정이 운영된다. 특히 ‘미래 농업반’에는 올해부터 자두 과정이 신설되었다. 이는 지역 농업인의 수요와 변화하는 농업 환경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지난 1월 ‘자두GAP 사업단 총회’에서 윤경희 군수가 자두를 사과 못지않은 청송의 대표 품목으로 키우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는데, 이번 과정 신설에서 그런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작년 교육 신청에서 떨어졌을 때는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지 않는 행정’이 불합리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며 수업을 들어보니, 현장 경험과 함께하는 공부가 얼마나 실효성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무를 모르고 듣는 수업과, 나무를 만져본 뒤 듣는 수업은 확실히 달랐다. 배움도 결국 손끝의 감각 위에서 단단해진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강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 방금 배운 내용이 휘발되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그래도 며칠 전 적어둔 메모를 다시 들춰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귀농 15년 차인 남편도 사과 품목만큼은 막 시작한 초보다. 우리 부부는 아직 서툴고 배울 것도 많다. 하지만 꾸준히 배우고 익히다 보면, 머지않아 고수익을 올리는 어엿한 사과 농장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난해의 낙방이 올해의 배움을 더 단단하게 받쳐주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3-18

경상도 남자를 울린 연극 ‘춘분’

2월의 마지막 날인 2월 28일, 대구 서구문화회관에서 극단 헛짓의 연극 ‘춘분’이 관객들을 만났다. 함께 연극을 보았던 친구 시연이의 말을 빌리자면,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는 서사지만, 막이 내린 뒤 우리의 마음속에 남는 여운은 결코 뻔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재개발 지역의 낡은 집에서 살아가는 노부부 춘분과 소무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그리고 노년의 현실적인 문제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우리 삶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연극은 소무와 동네 사람 정팔의 대화 속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는 대화 속에서 곧 등장하는 춘분의 말투와 행동은 관객들에게 그녀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묵묵히 돌보는 딸, 말순과 집을 떠난 아들, 동하가 대비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춘분은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말순보다도 집 나간 동하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춘분이 말순에게 “재수 없는 년”이라 소금을 뿌리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이는 과거 춘분이 시어머니로부터 딸을 낳았단 이유로 학대받은 트라우마가 현재 말순에게 투영된 결과였다. 치매로 흐려진 기억 속에서도 과거의 상처를 재현하는 춘분의 모습은 관객에게 깊은 아픔을 전달한다. 말순의 희생적 돌봄에도 오직 집을 떠난 아들 동하만을 기다리는 춘분의 모습은, 가족 관계의 균열과 노년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극 후반, 춘분은 소무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두 사람은 눈이 내리는 날 자전거를 타고 ‘소풍’을 떠나며, 이 비극적 결말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역설적으로 묘사된다. 한편 말순은 소무가 남긴 작은 구두를 애써 신어보지만 발에 맞지 않아 포기한다. 눈물 대신 미소를 띤 말순의 모습에서 관객은 체념과 받아들임의 복잡한 감정을 읽는다. 이처럼 인물들의 엇갈린 마음과 남겨진 자의 고통이 함축적으로 표현되며 여운을 남긴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배우들과 함께 호흡했다. 평소 무뚝뚝하던 경상도 남자였던 시연이도 눈물을 흘렸다. 공연 후 그의 눈물 자국을 보며 놀리자 여운이 더 깊어졌다. 연극 ‘춘분’의 장면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사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도 그저 흘려보내기 아까울 정도로 소중한 장면이었다. 춘분과 소무의 자연스러운 분장과 연기, 그리고 극의 분위기를 적절히 풀어주는 정팔의 유쾌한 연기는 마치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직접 보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연극이 끝나고 주인공 ‘춘분’의 이름을 떠올리며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춘분은 24절기로 낮과 밤이 같은 날이며, 이후 낮이 길어진다. 춘분이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두 사람의 마지막 ‘소풍’은 절망의 밤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춘분과 소무가 소풍을 떠난 그날, 그들에게 밝은 낮의 기운이 많은 날들이 찾아왔을까?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와 결말이지만, 어둠을 이기는 빛처럼 그들의 이야기가 밝게 빛나는 해피엔딩으로 연극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싶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3-18

신한국 인성대학원 2026년 1학기 개강식 열려

신한국운동추진본부 부설 인성교육대학원(원장 심후섭)이 지난 3일 담수회관 3층 대강당에서 제15기 1학기 개강식을 열고 학업을 시작했다. 이날 개강식에는 서정학 이사장과 수강생 등 총 150여 명이 참석했으며, 김도현 학봉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우정’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김 이사장은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의 우정인 ‘애학지교(厓學之交)’를 중심으로 두 사람의 위대한 우정과 두 사람의 교류 속에서 드러난 나라사랑 정신을 오늘날의 교훈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인성교육대학원은 6월 16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총 15회에 걸쳐 강의를 진행한다. 주요 강사와 강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이관형(내일교회 담임목사) ‘갈등 극복을 위한 마음 다스리기’, 송의호(전 중앙일보 기자) ‘천원지폐 그림에 담긴 온고지신’, 김원길(안동대학교 교수 역임) ‘안동의 실화에 담긴 해학’, 최태연(전 계성고 국어 교사) ‘잘못 쓰고 있는 일상어’, 최윤대(미해군대학 및 캐롤라이나 주립대 박사) ‘자연에서 배우는 창의성’, 김구철(KBS 정치부 기자) ‘선비와 과거 제도-한국 근대화의 비밀’ 이재덕(전 연신초 교장) ‘리코더와 건강’, 김도상(행정학 박사) ‘선비 정신과 종류’, 권오춘(해동 경사연구소 이사장) ‘주역의 기초’, 이종원(대구문화지킴이 전 회장) ‘국보중의 국보 24점’, 이구동(전 경구중 교장) 아름다운 한시 여행, 이수만(전 언론인) ‘재미있는 정치 뒷 이야기l’, 박남철(도산선비문화수련원 지도위원) ‘인성교육과 공부 방법’, 김선완(전 경북외국어대 교수) ‘리더와 리더십’-누가 지역의 올바른 정치인인가. /권정태 시민기자

2026-03-17

안동의 전통국수 안동국시를 아세요

안동에는 두 종류의 국수가 있다.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다. 건진국수는 양반가를 방문하면 귀한 손님에게 내놓는 고급 음식이다. 안동지방에서는 국수를 ‘국시’라고 부른다. 따뜻한 국물로 내놓으면 누름국시고, 차가운 국물로 내놓으면 건진국시다. 안동국수가 타 지역국수와 다른 것은 밀가루에 콩가루를 3대 1의 비율로 섞어서 만든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일반국수는 밀가루로 만들었고, 안동의 국시는 밀가리로 만들었으며, 밀가루는 봉지에 담겨있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담겼다”는 말이 있다. 안동국시에는 서글픈 사연이 있다.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다. 일종의 구휼음식으로 시작한 것이다. 안동은 농사지을 땅이 많지 않아 양식이 넉넉하지 않았다. 특히 논이 적어 쌀은 항상 부족했다. 보리가 다 여물기 전 4월쯤에는 굶는 농가가 많았다. 덜 익은 보리 이삭을 디딜방아로 찧어서 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한 여름이면 보리쌀도 부족해 때를 늘리기 위해 국수를 많이해 먹었다. 콩가루를 섞는 것은 영양가와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함도 있지만, 국수의 양을 늘리려는 것이다. 국수 반죽을 얇게 밀어 종잇장 같이 만들면 밀가루만으로는 구멍이 난다. 이때 콩가루 반죽을 떼어서 구멍을 메웠다고 한다. 안동국수의 면은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어 반죽하여 아주 얇게 밀어서 가늘게 칼로 썬다. 썰어 낸 면을 다시 콩가루를 뿌려서 끓는 물에 삶는다. 삶아 낸 면을 건진 다음 찬물에 행궈 한 사리씩 소쿠리에 담아 놓는다. 이 한번 삶아 건지는 과정 때문에 ‘건진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콩가루가 더해져서 면이 뚝뚝 잘 끊긴다. 면을 입에 넣고 씹어보면 콩가루 특유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특히 뜨거운 국물로 먹으면 콩 맛이 강해진다. 안동국수의 국물은 종가마다 차이가 있다. 알려진 방식으로는 은어, 양지머리, 닭, 꿩 등으로 국물을 낸다. 낙동강과 그 지류를 끼고 있는 종가는 대체적으로 은어를 많이 사용하고, 지류에서 멀리 떨어진 종가는 양지머리와 닭, 꿩 등으로 대신한다. 국물에 참깨와 콩 등을 섞어 내는 국물도 있고, 건진국시는 맑은 국물이 대부분이다. 식당에서는 멸치로 육수를 낸다. 안동에서조차 은어 육수를 맛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란다. 안동국수의 고명은 은어로 국물을 냈다면 말린 은어 살을 찢어 올려내고, 양지머리로 국물을 냈다면 양지머리를 찢어 고명으로 올리거나 수육으로 낸다. 닭, 꿩도 마찬가지. 또 달걀을 황, 백으로 나눠서 지단을 만들어 올리고, 애호박을 살짝 볶아서 올린다. 간장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다. 조선간장은 각 종가마다 맛이 미묘하게 차이가 있어 전통 안동국시에 방점을 찍는 역할을 한다. 안동국수와 나오는 음식도 귀한 음식들이다. 문어숙회, 돔배기, 수육, 흰살 생선찌짐, 배추전 등이 있다. 재료와 만드는 방법만 보더라도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래서 안동지방에서 양반 이외의 일반 평민들이 먹는 국시는 맹물이나 멸치육수를 곁들인 국시가 대부분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 먹던 국수가 바로 안동식 국수인 안동국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자주 먹었다는 곳도 전형적인 안동국시집이다. 종가 제사나 불천위 제사에 밥 대신 국수가 올라오는 곳이 안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가의 이야기이고, 실제로 안동에서 안동국시 또는 건진국시를 먹으러 가면 쌈 채소와 밥을 같이 준다. 안동은 국수와 밥을 쌈 싸 먹기도 한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3-17

청도, 오누이 시인의 마을 찾아

최근 근대 문화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경상북도 땅 끝 청도 유천마을을 찾았다. 화악산의 정기와 청도천을 끌어안은 그림 같은 마을이다. 다리를 건너서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근대로 여행 온 기분이다. 6~70년대나 볼 수 있었던 고풍스러운 모습에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마을 안이 괴괴하기 짝이 없다. 이층집 일본식 건물이 먼저 행인을 맞는다. 나무판자로 켜켜이 엮어 올린 벽면이 고색창연하다. 일제의 잔영이 남아있는 듯 나라 잃은 슬픔이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근대 골목을 거닐다 보니 빛바랜 옛날 나무간판이 즐비하다. 구생당 약방, 중앙소리사, 사료상회, 정미소, 극장이 차례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소리사와 극장이 눈에 띈다. 소리사 안의 널브러진 유성기 속에서 거리를 온통 메웠던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청춘 남녀가 줄지어 매표소에서 극장표를 사는 모습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고샅길에 들어서니 청동으로 만든 현대식 간판이 나타난다. 담장 너머로 말끔하게 정비된 아담한 집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이호우·영도 오누이 시인의 생가다. 입구에 커다란 감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고즈넉한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시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본다. 시인은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물에 삭힌 감또개를 간식으로 즐겼을 것이다. 강변에 오누이 공원이 있다고 하여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다. 은어가 노니는 명경 같은 청도천과 동창천이 만나는 둔치에 두 시인의 시비가 서 있다. 이영도 시인은 1916년 이곳에서 태어나 주로 부산 경남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통영여중 교사로 재직했으며, 폐결핵으로 남편을 잃었다. 당시 청마 유치환 시인이 같은 학교에 근무했다고 한다. 유부남인 그는 이영도의 단아한 여성미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청마는 줄기차게 정운에게 연모의 편지를 보냈다. 청마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장장 20년 동안 5000여 통을 썼다고 한다. 청마의 장례식장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여성이 있었다. 5000통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근대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 여기 유천 마을이다. 이영도 시인을 만나고 오누이 공원을 나오니 애틋한 감정을 삭일 수가 없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노라.’ 유치환의 고백이 가슴을 후벼 파는 심정을 억누를 수 없다. 백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했던가. 오천 번 찍어도 넘어가지 않았던 이영도 시인의 인내는 어디서 나왔을까. 규범과 규범의 이중 굴레 속에서 이영도 시인의 인생 승리가 공원에 잔잔히 메아리친다. 시인의 고향, 근대마을을 돌아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지만은 않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3-17

(시민기자 단상) 서로를 지켜 주는 새해

달력의 마지막 날을 짚어보며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기쁨과 감사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걱정도 많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사회를 떠받쳤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은 그분들에게 드리는 작은 감사와 새해를 향한 조용한 다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쟁의 현장에 익숙해 있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크게가 성공의 기준처럼 여겨졌습니다. 우리를 버티게 한 것은 화려한 성과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배려와 책임감이었습니다. 골목 상점을 지켜 낸 상인, 묵묵히 현장을 지킨 노동자, 위험 속에서 안전을 책임진 제복 입은 공무원 그리고 가족과 이웃을 돌본 수많은 시민들. 그분들의 삶 자체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위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진짜 소중한가.” 성장과 편리함만을 좇다 보면 공동체의 끈이 느슨해지고 서로의 상처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송년의 덕담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방향을 고쳐 세우는 약속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에는 조금 느려지더라도 옆 사람의 걸음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공정함과 신뢰 역시 새해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서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가득하면 사회는 거칠어집니다. 오히려 규칙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함께 지켜야 한다는 공감이 생기면 갈등은 줄어듭니다. 공정은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한 칼이 아니라 모두가 안심하고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름을 품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세대 간의 생각이 다르고, 지역과 직업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의견이 충돌할 때 목소리만 높이면 결국 더 멀어질 뿐입니다. 새해에는 “내 말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겸손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를 기대합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덕담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수고 많았다”, “고맙다”, “같이 가자.” 이 짧은 말 속에는 지난 과거를 인정하고, 내일을 함께 열겠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이 말을 더 자주 건넬수록 사회는 조금씩 단단해질 것입니다. 새해는 누구에게나 빈 공책처럼 주어집니다. 그 위에 무엇을 적어 넣을지는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시민기자는 작은 소망을 적어 봅니다. 일터에서의 안전이 일상이 되고, 가족의 웃음이 더 오래 머물며, 이웃과의 인사가 자연스러워지는 사회. 갈등보다 신뢰가, 냉소보다 희망이 더 자주 선택되는 사회가 되기를.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족했던 시간은 성찰로, 아팠던 기억은 나눔으로, 새해의 첫걸음은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6-03-17

비린 맛 없이 싱싱함 가득한 가자미 미역국

필라테스하러 가서 강사님이 오늘은 스쿼트를 시켰다. 30분 만에 어지러워 주저앉고 말았다. 체력이 훅 떨어진 상태라 한 시간을 못 채우고 돌아왔다. 해외여행을 열흘 다녀온 뒤라 더 힘들었다. 비위가 약하고 입이 짧아 강행군인 패키지여행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못 하고 돌아다녔다. 낮엔 과자로 저녁에 숙소에서 컵라면으로 버텼다. 점심 약속으로 샐러드를 먹기로 했는데, 급히 장소를 바꾸자고 톡을 남겼다. 몸보신으로 소화가 잘되는 미역국을 먹자고. 마침, 우리 집 가까이 맛집이 있었다. 약속한 12시 30분이 되자 고을국수방은 빈자리가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이 마지막 남은 한 테이블을 차지했다. 사장님, 미역국 두 개요! 국수방이라는 이름에 맞게 국수 종류는 참가자미 회국수, 백합조개칼국수, 계절 별미로 콩국수와 전복죽도 있다. 다 맛있지만, 이 집은 가자미찜과 가자미 미역국이 단연 압권이다. 새벽 시장에서 싱싱한 가자미를 사 와서 손질한 가자미를 사용하니 비린 맛 하나 없이 시원함만 가득하다. 큰 대접에 푸른 바다를 가득 담아 손님상에 내온다. 호록호록 떠먹다 보니 몸속 가득 뜨끈한 기운이 퍼졌다. 필라테스하다 핑 돌던 어지럼증이 싹 달아났다. 안동이 고향인 나는 미역국을 끓일 때 넣는 생선은 한 가지뿐이다. 북어. 명태는 생선 중에 그나마 덜 비리지만 그 비린 맛조차 말리며 다 날려버리고 햇살과 협업한 감칠맛만 푸석한 몸속에 간직한 북어와 불린 미역을 달달 볶으면 뽀얀 국이 된다. 이런 초딩 입맛은 결혼 후 어머님이 끓여주신 가자미 미역국을 맛보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신혼 초, 그때는 토요일에 오전 근무를 했다. 남편이 퇴근할 무렵 1박 2일의 짐을 미리 싸놓고 기다렸다가 시댁으로 향했다. 일요일 새벽 어머님은 아들을 깨워 양포항으로 나갔다. 멸치가 싱싱한 날은 그걸로 젓갈을 담고, 홀띠기를 만나면 밥식해를 만드셨다. 그러다 가자미가 눈에 들어온 날에는 미역국을 끓이셨다. 어느 날엔 삶은 가자미를 소쿠리로 살살 흔들어가며 뼈와 살을 분리하는 방법을 내게 알려주셨다. 어머니는 잔가시 없이 잘 걸렀는데 내가 하면 꼭 가시가 목에 걸렸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정육점에서 끊어 온 쇠고기는 이미 손질이 다 된 상태라 참기름에 볶기만 하면 되지만, 가자미는 살아서 펄떡거리니 까다로운 재료다. 일단 어떤 놈이 싱싱한 것인지조차 모르니 20년 넘게 옆에서 보기만 하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금도 가자미 미역국 만들기는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래서 몸이 허할 때나 어머님의 손맛이 그리울 때면 고을국수방을 찾는다. 이곳은 밑반찬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제철 재료로 만든 것들이 나온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물 위주의 찬이라 더 좋다. 들에서 나는 시금치, 마늘쫑, 콩나물무침과 바다에서 건진 미역, 다시마무침, 멸치볶음이 함께다. 특히 멸치볶음은 눅눅하지 않고 바삭해 한 번 더 달라고 해서 먹는다. 김치와 물김치, 그리고 봄동물김치가 이 집 시그니처 반찬이다. 봄동 한 장을 밥에 올려서 강된장이나 젓갈을 올려 먹으면 공기밥은 무조건 추가다. 물론 미역국만으로도 충분한 곳이니 반찬은 덤이다. 실내에 6개의 테이블뿐이라 조금만 늦으면 웨이팅은 필수다. 테이블이 비자마자 다른 손님이 와서 앉는다. 미역국은 통에 담아 팔기도 하는데 전날 미리 전화하거나, 일찍 가야지 가능하다. 곧 날씨가 따뜻해지니 가자미회국수와 가자미찜을 먹으러 가자고 친구랑 약속했다. 주차장은 따로 없어서 가게 앞 골목길에 눈치껏 해야 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2026-03-16

봉화 천년고찰의 천년을 다져온 숲길에서 만나는 봄 내음

겨울이 꼬리를 사리지 못하고 미루적거려도 어느새 바람결의 매운맛은 풀이 죽어 한결 부드러워졌고, 양지쪽의 따사로움에 정겨운 봉화 천년고찰의 숲길의 솔 내음은 완연한 봄이다. 겨울에 묻혀 시간이 멈춘 고즈넉함 속에서 천년 세월의 역사와 함께한 산사의 숲길을 향긋한 봄 내음과 또랑또랑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걸어보자. 며칠 전 태백산은 눈이 내려 설산처럼, 봉우리에는 마지막 겨울 풍경을 선사하듯 시선을 끌고 있다. 한때 국내 3대 사찰이었던 각화사, 백두대간 능선으로 석양이 아름다운 문수산 축서사, 수려한 청량산이 품은 풍광이 아름다운 청량사, 계곡 물소리 은은한 불교계의 성지 비룡산의 홍제사 등 천년의 고요가 흐르는 고찰에는 고찰과 함께한 천년의 숲, 천년을 다져온 길이 있다. 축서사는 천년 역사의 심산 고찰로, 영주 부석사의 ‘모절’ 또는 ‘큰집’으로 불린다. 신라 문무왕 13년(673년), 의상대사가 봉화 물야면 북지리의 지림사에서 빛을 보고 이곳에 절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소백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축서사는 봉화 8경 중 제7경으로 꼽힐 만큼 황홀한 석양을 자랑한다.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공기,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절집의 정취는 자연이 빚은 예술 작품 같다. 탁 트인 전망과 고요한 숲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탑과 절집이 경관의 깊이를 더한다. 각화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태백산 사고의 수호 사찰로,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로 800여 명의 스님이 수도한 한국 불교의 대표 수행 도량이다. 신라 원효대사가 686년 창건했으며, 태백산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울창한 산림 속에 위치한 각화사는 정교하게 쌓인 석축과 30계단 위에 세워진 월영루가 특징이다. 월영루를 지나면 삼층석탑이 있는 요사채 마당이 나타나며, 산새 소리와 함께 고요한 분위기가 감돈다. 향긋한 봄 내음과 유구한 역사가 어우러진 숲길은 방문객에게 평온함을 선사한다. 청량사 가는 길은 입석에서 청량사 선학정으로 이어지는 2.3km의 최단 코스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가벼운 산책길이다. 숲속의 외진 길은 낭만을 더하고, 굽이도는 고갯마루에서는 먼 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굴참나무와 노송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소나무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송진 채취 흔적이 남아 있어 역사적 아픔을 상기시킨다. 청량사 가는 길의 우측 오르막길에는 금탑봉 아래 응진전과 그 위쪽에 신라 명필 김생이 10년간 서예를 연마한 김생굴·폭포가 있다. 순탄한 산길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 좋으며, 산수의 아름다움을 즐기다 보면 청량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청량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본래 이름은 연대사였으며 27개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제사와 도솔암은 한국 불교계를 빛낸 선승들이 수도한 심산유곡의 고요함 속에 자리한다. 홍제사는 신라 진평왕 시기 자장율사 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공신 사명대사에게 선조가 내린 ‘홍제존자’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소박한 법당과 금강송 송림이 에워싼 고즈넉한 풍경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부속 암자 도솔암은 만공스님, 성철스님 등 대종사들이 수행한 장소로 유명하다. 낡은 모습이지만 깊은 역사를 간직한 채 고요한 정적을 품고 있다. 천년 고찰의 고요함부터 탁 트인 산봉우리의 웅장함, 그리고 단순해서 여유까지 생기는 선승들의 수도처 홍제사의 경내를 거닐면 절집을 감싸는 솔 내음과 바람의 소리가 어우러져 명상의 순간을 만들어준다. 사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사찰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며 고요한 산사의 풍경을 수놓는다. 느긋한 여유로움이 가득한 호젓한 봉화 천년고찰 산사길에서 봄을 시작하면 어떨까? /류중천 시민기자

2026-03-16

영화와 만난 문화유산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관람객 천이백만 명을 훌쩍 넘기고 거침없이 흥행 중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관람객들은 단종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유산을 직접 찾기 시작했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된 영월이 그렇다. 청령포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줄이 도로까지 길게 늘어져 있고 오픈런까지 해야 하는 지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문화유산이 평소와 달리 이렇게까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나 싶어 놀랍고 반갑다. 시민기자도 지난 월요일, 천만을 넘겼다는 소식에 조금 늦은 관람을 했다. 관람평에 ‘관람객으로 들어갔다가 백성이 되어서 나온다’, ‘역사의 빈틈을 온기로 채웠다’ 의 글들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영화의 뜨거운 분위기 탓인지 상영관 앞에서는 이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영월로 유배 온 단종과 마지막 그의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의 인간적인 이야기였다. 처음엔 영화가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역사적인 사실에다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에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그 가운데 단종 역의 20대 배우와 엄홍도 역할의 배우가 연기한 마지막 장면이 울컥했다. 방 밖에서의 긴장감과 그 슬픔이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해졌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곧장 영월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었다. 영월과 청령포, 장릉, 선돌. 이곳은 오롯이 단종의 슬픔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들이다. 그 장소가 주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영화가 만들어 준 힘이기도 했다. 영화의 인기에 영월군은 바빠졌다. 현장관리와 편의 시설을 정비하고 관람 동선을 안내해 방문객들의 편의를 높이고 있다. 단종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다른 지자체들도 마찬가지였다. 금성대군의 신단과 은행나무가 있는 영주, 조선 충신 엄홍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울산의 원강서원과 원강서원비가 그것이다. 그리고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문종, 세조와 한명회, 계유정난, 사육신과 생육신의 관련된 이야기가 줄줄이 흘러나온다. 그야말로 국사책을 찢고 나온 살아있는 역사 공부의 계기가 되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높은 관심이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일 뿐일까. 지난해 개봉한 영화 ‘케이팝데몬헌터스(케데헌)’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국립중앙박물관의 방문객 수는 갈수록 증가해 부동의 1위인 루브르 박물관의 관람객 수를 넘보고 있다. 호랑이와 갓 등의 굿즈는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영화로 인해서 우리의 문화가 K-문화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관심을 두고 찾아보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된 역사와 문화유산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근대문화역사관이 있는 포항 구룡포에서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동백이와 용식이를 떠올리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다. 또 ‘갯마을 차차차’가 청하를 배경으로 방영되고 나서 평일에도 시골 마을은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다.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야간자습을 마친 아이를 데려오면서 오늘 본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단종과 엄홍도, 지금 우리가 단종을 노산군이 아닌 단종으로 부를 수 있는 건 숙종의 힘이었다고 같이 이야기했다. 시험과 교과서 속에서만 존재하던 역사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모든 세대가 알고 싶어하는 살아있는 역사로 다시 돌아왔다. 영화 한 편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 마중물이 되고 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6-03-16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수작부리기’

수작(酬酌). 이 단어를 듣고 “어머, 저 사람 수작 거네?”라며 눈을 흘긴다면 당신은 현대인입니다. 하지만 원래 수작은 참으로 정겨운 말입니다. 술잔을 따라주는 ‘수(酬)’와 그 잔을 받는 '작(酌)‘이 만난, 즉 ’주거니 받거니‘의 미학이죠. 요즘 회식의 꽃은 단연 건배사입니다. 옛날 선비들에게도 이게 있었으니, 바로 '권주가(勸酒歌)‘입니다. 송강 정철 선생은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라며 낭만을 떨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의 최고급 버전쯤 되겠네요. 그 시절엔 황진이 같은 명기들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하며 노래를 불러줬으니, 어떤 선비가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버텼겠습니까? 술잔을 비우기도 전에 목소리에 먼저 취해 ‘헤벌쭉’해졌을 게 뻔합니다. 요즘은 기생 대신 좌중의 ‘높으신 분’이 건배사를 주도합니다. 시대별 유행도 참 버라이어티하죠. 5·16직후: “잘 살아보세!”, “재건합시다!” (거의 노동요 수준) 사회 초년생 시절: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 발음 주의) 로맨티스트 시절: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중한 인연을 위하여! - 당나귀 귀와는 상관없음) 최근 문학 동네에서 유행하는 화답형 건배사는 거의 예술의 경지입니다. 주창자:“맥.취.오!” (맥주에 취하면 오늘 밤이 즐겁고!) 좌중들:“당.취.평!” (당신에게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 소주를 마실 땐 ‘소취오’, 막걸리 땐 ‘막취오’로 변주도 가능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하모니카 동호회에서는 한술 더 떠서 ‘하.취.평’을 외칩니다. “하모니카에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는 뜻이죠. 아전인수격 해석이지만, 하모니카 불다 숨이 가빠질 때 술 한잔 들어가면 그게 바로 무릉도원 아니겠습니까? 술 주(酒)자를 파자해보면 ‘삼수변(水)’에 ‘닭 유(酉)’ 자가 붙어 있습니다. 닭이 물 한 모금 머금고 하늘 한번 보듯 천천히 즐기라는 뜻이죠.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어떻습니까? “원샷!”을 외치며 닭이 아니라 고래처럼 마십니다. 못 마시는 사람에게 벌칙을 주는 ‘벌주(罰酒)’는 거의 고문 수준입니다. “낮술에 취하면 애비애미도 몰라본다”는 옛말은, 아마 낮부터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사고 치지 말고 제발 밤까지 기다리라는 조상님들의 간절한 ‘경고’였을 겁니다. 사실 ‘수작’이 나쁜 의미로 변질된 건, 술자리에서 몰래 밀약을 하거나 음모를 꾸미는 ‘검은 수작’들 때문입니다. 남을 등쳐먹으려는 꼼수를 수작이라 부르다니, 술잔 입장에선 억울할 노릇이죠. 술도 적당히 마시면 인생의 활력소가 됩니다. 오늘 저녁, 좋은 사람과 마주 앉아 닭처럼 천천히, 하지만 하모니카 소리처럼 흥겹게 진짜 ‘수작’ 한번 부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당취평”을 외쳐줄 파트너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방종현 시민기자

2026-03-15

따뜻한 봄날에 찾아가는 팔공산 갓바위

지난 일요일, 봄기운을 느끼면서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다. 갓바위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100여m를 오르니 안내 표지판이 나왔다. 주차장에서부터 계속 오르막길로 내리막은 한 번도 없다. 1365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갓바위까지는 2km다. 중간 지점에 관암사가 있고 중간중간에 쉼터와 벤치가 있다. 앉는 것 보다 선 채로 조금씩 쉬어 가는 것이 좋다. 기자는 부산에서 왔다는 대학생 동아리 팀들과 함께 올랐는데, 갓바위 부처님께 정성껏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면서 취업을, 여자 친구를, 동생의 합격 등을 바란다고 했다.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경사가 더욱 가팔라지면서 돌계단이 등장했다. 아! 이제 목적지가 가까워 오는구나 하면서 중간 중간에 손잡이를 잡고 호흡을 조정하며 오르니 드디어 갓바위다. 주차장에서 48분 걸렸다. 갓을 쓴 듯한 갓바위 부처님.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그만 절집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오르고 있다. 저런 집에서 며칠 쉬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눈을 감고 양반질 하고 앉은 사람, 계속 절을 하는 사람, 서서 기도하는 사람 등이 보였다. 갓바위 부처님은 머리가 좋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많은 사람을 다 기억하여 바라는 것을 다 이루어 주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양초에 불을 붙이는 사람, 쌀 포대를 올리는 사람, 모두의 기도가 통했으면 좋겠다. 갓바위를 돌다가 바위에 동전을 붙이는 어머니를 보았다. 동전이 바위에 붙으면 반드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한 바퀴 돌아 우연히 쓰레기 자루를 들여다 봤다. 다 타기도 전에 빼어버린 촛농들이다. 갓바위 부처님께 간절히 바라며 바친 초가 꺼지기도 전에 자리가 없다며 관리인이 다음 사람을 위해 정리한 촛농들이다. 기자는 초도 쌀도 가져오지 못했지만 지금, 나에게는 오늘 같은 날이 계속되기를 빌며 손을 모아 머리를 숙이고 내려오면서 갓바위에 대해 공부를 했다. 팔공산 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은 불상과 받침대가 하나의 바위로 만들어졌고, 머리 위의 보개(탑이나 불상의 덮개 부분)는 다른 돌을 올렸다. 받침대와 불상의 전체 높이는 5939cm이고 무릎 너비는 319.6cm로 부처님 몸에서 나는 빛을 표현하는 광배는 뒤에 둘러쳐진 바위로 대신했다. 이 불상은 9세기경 양식으로 ‘전통 사찰 총서’에는 신라 선덕여왕 7년(638)에 의현 스님이 조성했다고만 적혀 있는데, 조각을 한 사람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보개가 학사모와 비슷하여 수험생을 위하여 기도하면 특별히 효험이 있고, 갓바위 부처님이 부산을 향하고 있어 부산 쪽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소문이 나 있다. 주차장 식당가로 내려왔다. 시계를 보니 출발에서 돌아오는데 2시간 30분이 걸렸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 도토리 묵과 비빔밥에 막걸리 한 통을 시켰다. 묵채 비빔밥에 무, 물김치, 부추 찜, 된장이 나왔다. 된장을 놓고 쓱쓱 비벼서 몇 숟가락 떴는데 그릇이 다 비어 간다. 막걸리를 큰 대접에 반 정도 부어 마시고, 무, 물김치를 안주로 먹으니 제맛이다. 막걸리 1통에 도토리묵 한 그릇,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3-15

1만그루 편백나무로 조성된 건천 편백나무숲

경주 건천에 가면 아토피 피부병에 효능이 있다는 편백나무숲으로 조성된 공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동료 사진작가들과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경주 건천 편백나무숲은 건천읍 송선리 단석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식 이름은 건천 편백나무숲 내음길이고 보통 피톤치드 공원이라 부른다. 숲 해설가의 이종백(전 경주시 강동면장)씨의 해설을 들으며 전체 숲을 둘러보면서 모처럼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공원은 1975년 이곳 출신 재일 교포가 약 1만여 그루의 편백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이다. 지금은 편백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서 피톤치드 천국으로 소개되고 있다.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왕복 1km 테크 길이 조성돼 어르신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다. 산책코스 중간중간에는 쉼터 의자가 준비돼 있고, 정자도 2곳에 만들어져 있다. 여름철에는 윗도리를 벗고 피톤치드의 내음과 자연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입구까지 차량이 진입할 수 있어 5~6대 정도는 주차도 가능하다. 2024년 경주시가 이를 매입해 지금은 시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국도 20호선과 경부고속도로 건천 IC에서 멀지 않아 교통도 편리하다. 피톤치드란 식물이 병원균, 해충, 곰팡이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휘발성 물질을 총칭해서 하는 용어다. 식물을 뜻하는 피톤(phyton)과 죽이다는 뜻의 치드(cide)가 합쳐진 말로 살균 및 항균 작용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기정화, 탈취, 스트레스 해소, 면역력 증진, 아토피 개선, 불면증 개선, NK세포 활성화 등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요 성분은 테르펜이며 페놀 화합물 알카로이드 당분 등의 다양한 물질도 포함돼 있다. 피톤치드 향기는 식품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특수 물질로도 알려져 있다. 1928년 러시아의 생물학자 보리스 토킨이 처음 발견, 1937년에 명명했다고 한다. 이곳 편백나무숲의 식물 분포를 조사해보니 목본류 56종(갈참, 물푸레, 광대싸리, 고욤, 작살 등)과 초본류 10종(꿀풀, 조뱅이, 벌노랑이, 노랑장대나물, 백선 등)이 분포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토피 피부병이 아니더라도 맑은 공기와 피톤치드 향에 흠뻑 젖는 기분만으로도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쯤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