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에서 전몰한 美 장병에 대한 보은 비 대구시민 자발로 세워 의미를 더해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앞산 골(앞산 공원 버스 종점 맞은편)에 위치한 ‘미 군사고문단 전몰장병 기념비’는 6·25 전쟁 직후 지역민의 뜻을 모아 만들어진 보은의 기념비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기념비가 있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한미동맹의 역사적 의미가 담긴 전적기념비를 찾아 그날의 감동을 새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대구지역에서는 이 비를 보은의 상징으로 여긴다. 전쟁직후 어려운 사회 여건 속에서 민관이 합동으로 정성을 모아 만든 기념비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주도가 아닌, 대구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과 지역 지도자들의 결단이 합쳐져 세워진 기념비란 점에서 역사성이 있다.
6·25 전쟁 직후 대구 시내 유지와 시민들은 미 군사고문단 전적비 건립위원회를 결성하고 당시 경상북도지사였던 최희송(崔熙松) 지사를 위원장으로 뽑았다. 최 위원장을 중심으로 위원회는 전쟁 직후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대구 시민들의 성금을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외국인 군대의 공적을 기리는 비를 세워 그들의 공적을 역사적으로 기록해 보자는 취지였다.
비문에는 당시 한국군의 현대화를 돕고 전장에서 함께 피 흘린 미 군사고문단(KMAG)의 희생을 한글과 영어로 함께 적어 기록했다.
“이 기념비는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의 한국전쟁에서 자유를 수호코자 한국의 전우와 나란히 싸우다 전몰한 주한 미 군사 고문단 장병의 영령 앞에 봉납한 것”이라고 기념비에 적혀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주한 미 군사 고문단 장병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며, 그들의 빛나는 업적을 영원히 기념하고자 한 대구 시민의 뜻이 잘 담긴 비라 하겠다.
6·25 전쟁 당시 고문단이 수행했던 역할(한국군 훈련 및 작전 지도)과 건립 취지, 그리고 건립 연월일(1954년 6월 30일)도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는 단순히 ‘도움을 주었다’는 표현을 넘어, ‘한국군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다’는 동지애적 표현이 강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이 비석은 수성교 인근(현재의 대구 중구 삼덕동)에 세워졌으나, 도시가 확장되면서 1973년에 지금의 남구 대명동 앞산 골로 이전되었다. 비문의 훼손을 최소화해 지금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그밖에 기념비에는 “자유를 위해 함께 싸웠다”라는 취지의 문구와 함께 고문단의 창설 과정, 그리고 그들이 한국군과 맺었던 끈끈한 전우애도 기록돼 있다. “이들은 단순히 가르치는 스승을 넘어, 가장 어두운 시기에 곁을 지켜준 진정한 친구이자 전우였다.”
이곳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근을 지나실 기회가 있으면 잠시 들러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 뒤에 숨겨진 낯선 이들의 헌신을 느꼈으면 한다.
/유병길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