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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자두밭 소나무 아래

비 내리는 새벽, 자두밭을 둘러보았다. 과수원 안쪽, 지난해 산불을 이겨내고 늠름하게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 곁에 어머니의 유해를 모셨다. 셋째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언제든 지켜보실 수 있는 자리, 어머님이 기꺼이 마음 두셨을 법한 그곳이 이제 어머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었다. 요양원에서 조심스럽게 며칠을 보내신 뒤, 4월 8일. 어머님은 체온이 38.5도를 넘어서며 119구급차를 타고 안동병원으로 옮겨지셨다. 응급실에서 어머님은 눈도 뜨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호흡기에 의지해 가쁜 숨을 이어가고 계셨다. “어머님.”하고 불러보니, 알아보신 듯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치며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 병실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뇌혈관은 혈전에 막혀 온몸으로 온기를 보내지 못했고, 신장과 폐마저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의사는 우리를 불러 위급 상황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와 연명치료에 관해 설명했다. 어머님은 영양공급을 위해 목 아래에 튜브를 삽입한 채 그날 저녁 중환자실로 옮겨지셨다. 그때부터 면회는 하루 두 사람, 각 5분으로 제한되었다. 그날 밤늦게, 아주버님에게 혈액투석이 시작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4월 10일, 짧은 5분의 면회 시간. 투석 덕분인지 어머님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손을 잡으니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다른 한 손으로 얼굴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어머님은 힘겹게 눈을 뜨고 나를 찬찬히 바라보며 무언가 말씀하셨다. 그러나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작은 소리는 끝내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머님,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 어머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셨다. 그것이 어머님과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이어 남편이 5분간 어머님을 만났다.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머님께서 웃는 얼굴로 따뜻하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눈을 조금 더 떠보시라 하며 사진도 몇 장 남겼다. 11일에는 큰아가씨가, 12일에는 남편이, 월요일 낮에는 남편과 아주버님이 차례로 면회했다. 비닐 방역복을 입고 손을 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머님은 끝까지 무언가를 전하려 애쓰셨다.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남편은 며칠 사이 달라진 어머님의 모습을 다시 사진으로 남겼다. 낮에 면회를 다녀온 그 날 저녁,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으로 향하는 사이 어머님은 이미 숨을 거두셨다. 우리는 마지막 모습을 함께하지 못했다. 4월 8일 입원하여 4월 13일 저녁 8시, 어머님은 끝내 말을 멈추셨다. 마지막은 길지 않았으나, 그 안에는 한 생의 시간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었다. 열한 살에 가족을 잃고도 살아낸 시간, 타인의 집에서 견뎌낸 세월,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을 키워낸 날들.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셨던 마음까지, 어머님은 마지막까지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계셨다. 어디에 머물 것인지, 누구 곁에 있을 것인지, 병원이 아닌 집, 낯선 침대가 아닌 익숙한 방, 그리고 따뜻한 가족의 손. 그 모든 선택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삶이란 어디에서 끝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봄은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사과밭은 여전히 손길을 기다리고, 마당의 진달래는 조금씩 꽃잎을 떨군다. 그러나 나의 봄은 이전과 같지 않다. 어머님은 유언대로 화장되어 자두밭이 내려다보이는 산, 큰 소나무 곁에 모셔졌다. 남편이 과수원에서 일할 때면 언제든 아들을 내려다보실 수 있는 자리다. 이제 밤마다 이어지던 모자의 이야기는, 자두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에 섞여 흐를 것이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2

유머로 삶을 어루만지는 문학의 힘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19일, 교보문고에서 수필가이자 본지 시민기자인 방종현씨의 문집 ‘유머산책’ 출간 기념 사인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한 권의 신간을 알리는 자리를 넘어, 오늘날 문학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되새기는 뜻깊은 시간으로 마련됐다. ‘유머산책’은 ‘유머’라는 가장 인간적인 언어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길을 제시한다. 날카로운 비판과 빠른 속도,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 된 시대 속에서, 이 책은 한 발 물러선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여유와 따뜻한 공감의 가치를 일깨운다. 방종현 작가는 기존의 긴장감 있는 문체에서 벗어나 한층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독자와 마주한다. 이는 단순한 표현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성숙을 의미한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인식 위에 인간적 온기를 더하고, 비판보다는 이해를 선택하는 그의 글쓰기는 문학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날 행사에는 많은 문단인사들이 찾아와 축하와 격려를 하며 다양한 평가도 했다. 김정길 전 대구문화예술진흥원장은 “한 가지 탤런트만 지니고 가꿔 나가기 어려운 숨가쁜 세태에 이모년(二毛年)을 훌쩍 넘긴 장(壯)청년이 문·악·주·극·논(文樂奏劇論)을 섭렵하는 도전과 열정이 놀라움을 넘어 경외와 큰 박수를 보낼 만한 백방미인이다“고 극찬했다. 문무학 문학박사는 “방종현의 삶을 담은 이 책은 노년의 삶을 고민하는 시니어들에게 밤길을 밝히는 가로등이 되어 고즈녁한 빛을 뿜고 있다”고 했다. 한국 문인협회 장호병 부이사장은 ”방 작가는 요즘시대에 보기 드문 풍류가객으로서 기자·시조창·가요·연극 등을 하는 팔방미인“이라고 했다. 그의 글이 단순한 유머를 넘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의 막역지우인 황인동 시인은 “방 작가는 늘 새로운 배움을 향해 나아가는 기발한 발상과 따뜻한 시선으로 독자를 사로 잡는다”고 평가했다. ‘유머산책’은 단순히 웃음을 유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된 문장은 어느 순간 삶의 본질을 되묻게 하고, 일상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확장된다. 이처럼 유머를 통해 성찰에 이르는 구조는 문학이 지닌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사회적 의미에서도 주목된다. 피로와 긴장이 일상이 된 현대인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날선 비판 대신 따뜻한 공감을 건네는 문장은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남기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한편 ‘유머산책’은 전국 교보문고에서 판매 중이며, 북랜드에서 출간됐다. 총 256쪽, 정가 2만 원. 앞으로 방종현 작가가 펼쳐갈 유머와 통찰의 세계가 독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유의 시간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4-21

(이사람) 아코디언으로 봉사하는 즐거운 인생

대구시 중구 동인동에 사무실을 둔 소담하모니라는 음악동호인 단체가 있다. 이곳에서는 매달 둘째 수요일에 20여 명의 음악인이 모인다. 이들은 평생을 음악으로 관계를 맺어온 생활속 예술인이다. 평균 나이 75세 이상의 노익장을 자랑하는 분들이다. 제각기 악기 하나는 기본으로 다룰 줄 알며 트로트로 다져진 야무진 목소리에 힘이 언제나 넘친다. 음악 속에 항상 젊음을 유지하며 생활한다. 이들이 다루는 악기는 드럼, 피아노, 트럼펫, 색소폰, 일렉기타 그리고 아코디언이다. 박순우씨(77)는 아코디언 연주자다. 대구에서 아코디언 연주자로서는 아주 귀한(?) 인물로 소문나 있다. 그는 영덕에서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했다.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에 대구시내 음반가에서 흘러나오는 아코디언 음색에 매료돼 아버지를 졸라 당시 거금인 5만 원으로 아코디언을 구입했다. 처음에는 학원에서 배우다가 1년 뒤 학업 때문에 잠시 접었다. 그러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아코디언 전문인에게 교습을 받기 시작했고, 직장생활을 하는 중에도 아코디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아코디언과 반세기를 함께 한 셈이다. 1960~70년대 카바레 악단에선 옛 가요를 연주할 때는 아코디언이 필수다. 다른 악기 연주자보다 아코디언 연주자의 급여는 더 많았다. 60년대 중반만 해도 이탈리아 아코디언 한 대 값이 외곽지 주택값만 했다. 정년을 앞두고 박 연주자는 지역봉사활동에 나섰다. 영덕, 울진, 봉화 등 지역축제마다 마다하지 않고 봉사하면서 이름난 연주자로 소문났다. 지금도 대구 시내 여러 악단에서 봉사한다. 상록봉사단(공무원 연금공단 중심의 재능기부봉사단), 굿밴드, 밀라노악단에서 활동을 한다. 요즘은 대구 인근의 버스킹 음악회에 나가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코디언은 추억의 악기다. 연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특히 악기의 독특한 음색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애조어린 음악, 구슬프고 애절한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그래서 어르신들로부터 인기가 폭발적이다. 그는 아코디언은 “10년을 배워야만 대중가요 한 곡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워 애정이 가는 악기”라며 “긴 세월 동안 배워 익힌 재능을 인생후반에 이웃에게 좋은 음악으로 선사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며 함빡 웃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4-21

(시민기자 단상) 헌법 전문에 새겨야 할 시작의 이름 2.28

근래 정치권에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 핵심은 헌법 전문에 특정 민주화운동을 명시하자는 데 있다. 헌법 전문은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인식을 압축하여 선언하는 공간이다. 무엇을 넣고, 넣지 않느냐는 곧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뿌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이름이 있다. 바로 대구에서 시작된 2·28 민주운동이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생들은 권력의 부당한 선거 개입에 맞서 거리로 나섰다. 오직 부정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 하나로 시작된 자발적 항거였다. 이 작은 불씨는 곧 전국으로 번져나가 3·15 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대한민국 현대 민주주의의 물줄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방향을 바꾸었다. 헌법 전문에 민주화운동을 새긴다면, 그 출발점은 과연 어디인가. 민주주의의 역사는 결과보다는 과정이다. 과정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다. 2·28은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이후 모든 민주화운동을 가능하게 한 ‘기원’이다. 일각에서는 특정 사건을 추가하는 것이 현실적 절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헌법은 절충의 산물이 아니라 원칙의 선언이어야 한다. 특정 사건 하나를 택하는 순간, 그 밖의 수많은 민주화의 희생과 기억은 상대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 헌법 전문에 민주화운동을 반영하려 한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포괄’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포괄은 반드시 역사적 순서와 인과관계를 존중해야 한다. 그 첫머리에 놓여야 할 이름이 바로 2·28이다. 더 나아가 2·28의 헌법적 의미는 단순히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 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맞서 시민, 그것도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저항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국민주권’의 원형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원포인트 개헌이 진정으로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민주화운동 전체를 포괄하는 원칙적 문구로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별 사건을 명시하되 그 출발점부터 역사적 연속성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후자를 택한다면 2·28의 배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헌법은 기억의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의 선언이다. 정치적 합의에 따라 일부만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으로는 그 권위를 얻을 수 없다. 오히려 국민을 나누고 지역의 감정을 자극할 위험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두를 아우르는 지혜다. 2·28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 이름을 헌법에 새기는 일은 특정 지역의 자부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시작을 지우고 미래를 말할 수 없다. 헌법이 대한민국의 민주정신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 첫 문장은 마땅히 ‘2·28’에서 출발해야 한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6-04-21

벼농사 준비로 바쁜 삼백의 고장 상주

상주시 외서농협(농협장 김광출)은 올해 농협 사업계획 중 벼 육묘 사업을 확대키로 하고 모 농사가 반농사라는 벼 종자 침종, 최아, 상자 파종, 출아, 못자리 설치, 치상, 못자리 관리 등의 일손 돕기에 나서기로 했다. 외서농협의 벼 육묘장은 상주에서 제일 큰 육묘장이다. 조합원 170여 명이 미소진품 4만4000상자, 동진찰벼 7000상자를 이미 신청했다. 올해 못자리 육묘 계획 상자는 5만1000여 상자(170여ha)다. 작년 3만3000상자(110여ha)보다 51% 증가했다. 1차로 지난 7일 침종 최아 2500상자를 파종, 12~15cm 크기로 출아시켜 외서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 앞 육묘장에 상자를 펴놓고 물을 넣어 관리하고 있다. 18~19일에는 부직포를 제거 푸른 못자리를 만날 수 있는 기쁨을 주었고, 19일에는 7500상자가 육묘장에 나왔다. 12~17일간 묘를 튼튼하게 하는 경화 훈련을 시켜 5월 상순부터 본격 모내기를 시작할 계획이다. 상자당 판매 금액은 4500원이다. 2차로 17일에 침종 파종한 1만여 상자는 현재 출아실에 있고, 3차로 22일에 1만 상자분의 종자를 침종 파종할 계획이다. 외서농협은 못자리 상자를 펴놓는 육묘장 면적의 한계로 농협자체 육묘 2만9000여 상자 외 나머지 2만2000여 상자는 5개 농가에 위탁 육묘하여 모내기 때 농협에서 농가에 운반하여 모내기에 차질 없도록 할 계획이다. 농가 개인 못자리도 불이 붙어서 한창이다. 봉강리 김한숙씨, 길윤균씨는 일주일 전에 부직포를 덮어 못자리를 설치하였고, 정재명씨는 지난 18일 아들, 사위, 손자 손녀까지 참여 상자 파종을 하였다. 파종한 상자를 10~15단 높이로 쌓고 비닐을 덮어 출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벼농사는 통일벼 보급으로 획기적 발전을 했다. 1972년 통일벼가 처음 보급되면서 묘를 빨리 키워 일찍 모내기를 할 수 있었고, 묘판 위에 비닐을 덮는 보온절충 못자리가 보급되면서 눈부신 발전을 했다. 비닐피복은 야간 저온시 냉해 피해, 고온시 환기를 하지 않으면 고온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다. 1990년대부터 부직포가 보급되면서 냉해, 고온 피해가 없어 부직포를 덮는 못자리가 전면적으로 확대되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4-21

낮에 만나는 별···포항 죽천 바닷가로 오세요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적재의 목소리도 좋지만, 박보검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그냥 바로 “어!”하면서 따라나서게 만든다. 노래 속의 별은 밤에 보지만, 오늘은 낮에 별을 보러 갔다. 포항 죽천 바닷가로. 카페 ‘빈땅’이다. 이곳은 포항 해변에서 푸른 바다를 보며 맛있는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아니, 별 보러 가자고 했는데 왜 카페냐고 물으신다면 인도네시아 말로 ‘빈땅’은 별이란 뜻이다. 가게 앞에 주차장이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만차여서 동네 골목에 차를 세웠다. 평일 오후 1시인데 빈자리가 두 개뿐이었다. 그나마 좀 전에 단체 손님이 떠나서 그렇다고 했다. 멀리서 관광버스를 타고 포항에 여행 와서 무얼 먹을까 ‘제미나이’에게 물으니 빈땅카페를 추천하더란다. 카페라 다양한 음료가 맛있어서 자주 찾았지만, 오늘은 얼마 전에 화덕을 새로 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피자를 맛보러 갔다. 둘이 가니 여러 메뉴를 다 맛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피자 하나면 배부르니 말이다. 다섯 가지 피자 중에서도 하나만 먹어야 하니 선택 장애가 올 지경이다. 우리의 선택은 다양한 버섯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머쉬룸 피자와 흑임자라떼. 사실 흑임자는 내 선택이 아니라 이곳을 추천한 하원 선생님의 픽이다. 다른 곳에서 곡식 종류 음료를 마시면 꺼슬한 느낌의 목 넘김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선택하지 않는데 이 집 흑임자 한 모금만 마셔보라고 강추해서 마셨더니 깔끔했다. 다음에 오면 이걸로 시켜야겠다. 청으로 만든 차는 대체로 내 입맛에는 달았다. 그래서 따뜻한 물을 더 달라고 해서 섞어 마셨다. 드디어 피자가 나왔다. 버섯 향이 진하게 풍겼다. 한 조각 떼어내니 치즈가 길게 늘어난다. 안주인이 치즈 가루랑 핫소스를 들고 와서 뿌려 먹으라고 주면서 덧붙이기를, 소스를 드리긴 하는데 뿌리지 말고 그냥 먼저 먹어보라고 했다. 순수 우유로 만든 치즈만 쓰고, 올리브오일은 엑스트라버진만 쓴다고. 잠시만요, 치즈는 원래 우유로 만드는 거 아닌가요? 다시 물으니까, 보통의 피자에 올리는 치즈는 다른 게 섞였다고 한다. 순수하게 우유만 넣은 게 재료 값이 비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구나, 당연히 모든 치즈가 우유로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가게를 차린 것이라 좋은 재료만 찾아서 만든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함께 간 하원 선생님은 여러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지만, 이 집 피자와 파스타는 밀가루도 골라 써서 배탈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치즈가 식기 전이 맛있으니 열심히 먹는 중인데 피자 하나만 시킨 것이 안타까웠는지 바질파스타를 서비스로 내왔다. 잣 호두 생바질 엑스타라버진오일로 주방장이 직접 만든 수제 바질페스토를 쓴다고 했다. 파는 바질페스토로 만들어보니 해외를 여행하며 맛보았던 그 맛이 안 나더라고 했다. 연둣빛의 소스에 타이거새우가 어우러져 고소했다. 가게를 들어서며 눈에 뜨이는 장식이 조명이다. 천장에 달린 등이 여기가 동남아 어디쯤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풍긴다. 이런 건 어디서 파냐고 혹시 이것도 직접 만들었나 싶었더니, 인도네시아에서 하나씩 손에 들고 왔다고 한다. 부피가 있어서 하나 이상 가져올 수 없으니, 그것도 비행기에 타면서 승무원에게 따로 보관을 맡겼다가 내릴 때 받아오는 정성이 필요했다. 뭐든 대충은 없구나 싶었다. 처음 가게를 열 때 이곳은 빈 땅이었다고 한다. 거기에 하나하나 주인 내외의 정성이 들어가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한다. 남자 사장님이 서핑을 가르치기도 해서 서퍼들에게는 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니 ‘빈땅’이 분명하다. 나랑 빈땅카페에 빈땅(별)보러 가지 않을래···.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0

일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 플라스틱 줄이기

일상생활 속에서 플라스틱 줄이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최근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플라스틱의 원료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이는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한 편으로는 우리가 이렇게 플라스틱과 가까이 살고 있는지 새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 일상생활을 보면 식품 용기부터 생수병, 일회용 컵, 포장재, 의료 현장 등 플라스틱은 많은 곳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택배 상자 속의 완충재라던가 이중 삼중으로 된 비닐 포장도 마찬가지다. 주말이면 아파트의 리사이클 센터는 배달 음식으로 인한 플라스틱 용기가 넘쳐난다.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용기에 수거 자루는 금방 가득해진다. 길거리에 플라스틱이 마구 버려진 걸 보는 것도 흔한 일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면서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이건 우리가 이미 플라스틱 세상에 둘러싸여 있다는 증거다. 마트를 가서도 ‘플라스틱이 정말 많구나’를 단박에 느낄 수 있다. 값싸고 편리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까닭이다. 지난주 도서관 수업에서도 사서는 첫 시간, 수업 내용에 앞서 강조한 건 수강생들이 일회용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음료 컵 대신 텀블러 챙겨오기였다. 시민기자도 평소 생활 습관을 살펴봤다. 일단 평소에 커피나 음료를 즐겨 마시지 않으니, 카페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커피 컵이나 빨대는 줄이고 있다. 하지만 도서관을 갈 때는 자주 텀블러 챙겨가는 걸 깜빡하고 잊어버려 일회용 컵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필요할 때 쓴다며 자동차 트렁크에도 따로 일회용품을 챙겨 놓았다. 형제들이 많은 걸 핑계 삼아 시골집에도 설거지의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플라스틱 숟가락과 용기들을 쟁였다. 생수병도 마찬가지다. 지퍼백이나 위생 비닐백도 같은 이유로 쟁여 놓았다. 마트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살 때, 물건을 비닐에 아무 생각 없이 담는다. 집에 와서 보면 비닐이 수북하다. 집안에서는 플라스틱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이 주방이다. 수세미부터 랩, 냉장고의 냉동실 음식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통이나 비닐에 담겨 꽁꽁 싸여 있다. 생활 습관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는 게 첫 번째였다. 머릿속에서는 플라스틱 줄이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편리함을 앞세우며 일상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거다. 그래서 실천이 더 어렵다고 핑계를 댄다. 그렇다면 이 플라스틱을 어떻게 해야 잘 줄일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건 일회용 컵을 줄이는 거다. 한 사람이 매일 일회용 컵 하나를 덜 쓰면 한 해 동안 발생하는 플라스틱의 양 10%가 줄어든다고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보통 카페에서 커피나 음료를 마실 때 텀블러를 사용하면 된다. 앞으로 텀블러 사용은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배달 음식을 한 번이라도 줄이는 거다. 가끔 음식을 배달시키면 따라오는 플라스틱 용기가 너무 많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또 하나는 제대로 버리기다. 플라스틱 제품은 재활용을 위해 반드시 세척하고 버려야 한다. 세척이 깨끗하게 안 되면 재활용이 어렵다. 특히 배달 용기를 버릴 때가 그렇다. 또 플라스틱 용기에 붙은 라벨지를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플라스틱은 무조건 재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 재질 때 재활용된다. 복합 재질인 경우는 일반쓰레기로 배출한다는 걸 다시 알았다. 플라스틱 줄이기는 이처럼 자신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부터 하면 된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0

경주 봄꽃 절정···첨성대 튤립·불국사 겹벚꽃관광객 줄이어

매년 벚꽃을 필두로 봄꽃 릴레이가 시작된다. 벚꽃이 한차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면 뒤이어 불국사 겹벚꽃과 튤립이 또 한 번 발길을 사로잡는다. 겹벚꽃이 한창인 불국사는 이른 새벽부터 주차장이 만석일 정도로 인기다. 또한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동부사적지 일대 꽃밭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관람은 무료이며 주차는 천마총 노상 공영주차장, 혹은 쪽샘 구역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주말에는 황리단길을 찾는 인파까지 겹쳐 주차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최근에 조성된 황리단길 공영주차장 이용이 권장된다. 도보 이동 거리가 다소 있지만 혼잡 시간대에는 차량 이동보다 보행 이동 속도가 더 빠른 편이다. 벚꽃에 이어 봄꽃의 흐름은 튤립으로 이어진다. 첨성대를 기준으로 7만 송이 이상의 튤립으로 조성된 꽃밭은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과거에는 졸업식 등 특정 시기에 주로 접하던 튤립을 이제는 일상 속에서도 볼 수 있게 되면서 계절 경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꽃밭의 인기에 맞춰 인스타그램 및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연일 튤립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올해는 다양한 색의 튤립이 각각의 구역으로 나눠 심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색이 분리돼 있어 원하는 색을 골라 사진을 촬영하는 재미도 있다. 빨강과 노랑 등 익숙한 색상의 튤립뿐 아니라 줄무늬를 띠는 연분홍 튤립, 여러 겹의 꽃잎을 가진 노란 튤립 등 평소 보기 어려운 품종도 다양하다. 일부 구역은 색 대비를 강조해 구성됐고, 다른 구역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러데이션 형태로 연출됐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대형 꽃밭 경관을 제공하며 시민과 관광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장에서는 첨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특히 많으며, 문화재와 자연경관을 함께 활용한 사례로도 주목된다. APEC 영향으로 관광객 국적도 이전보다 다양해진 모습이다. 꽃밭 일대에서는 다양한 자세로 사진을 촬영하는 방문객들의 모습이 이어진다. 꽃 가까이에서 촬영을 시도하는 모습도 눈에 띄며, 촬영 과정에서 웃음이 이어지는 장면도 자주 관찰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즐기는 방문객들도 많다. 튤립은 햇빛에 반응하는 특성이 있어 오전부터 오후 3시 이전에 방문하면 보다 화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꽃밭을 둘러보는 사이 관광형 이동수단인 ‘비단벌레차’가 운행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용객이 많아 온라인 예매는 빠르게 마감되는 경우가 많으며, 오프라인 티켓은 오전 9시부터 구매 가능하지만 잔여 좌석 상황에 따라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 탑승 시간은 회차당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운행 코스는 계림과 향교, 교촌마을, 월정교를 거쳐 출발지로 돌아오는 순환형이다. 도보 이동이 어려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유용하다. 이용 요금은 성인 4000원, 군·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0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니어모델 선발대회 성료

대구예술대학교(총장 허용) 평생교육원은 지난 15일 효목동 본 교육원 1층 석암미술관에서 ‘패션 모델 과정’ 홍보를 위한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회는 ‘모리모델협회’ 이원호 회장 등 50여 명이 참관해 시니어들의 모델 도전 과정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냈다. 이날 행사는 패션쇼로 유명한 모리텍스가 주관하고 인비 인어공주비, 풀리가 후원했다.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은 2026년부터 모리텍스 모델협회와 함께 하군자교수, 김선옥교수가 참여하는 패션모델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은 특별한 제한 없이 누구나 수강할 수 있는 모델 강좌로 자세 교정, 워킹, 포토 포즈, 패션쇼 콘티, 패션쇼 모델 참가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교육과정을 마치면 직접 패션쇼 모델로 활동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번 대구예술대 평생교육원 시니어모델 선발대회에서는 20명이 참가했으며 각종 경연을 통해 영광의 대상은 권소희씨가 차지했다. 최우수상에 전인수씨, 우수상에 천순이씨가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대상을 차지한 권소희씨는 “훌륭한 출전자들이 많았는데 부족한 제가 대상으로 선발되어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하며 응원해 준 가족과 지인들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 무대에 설 수 있었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또한, 이번 행사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들에게 제품을 후원하고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프리미엄 식품 브랜드 ‘풀리’의 대표인 김도연씨는 “단순한 외모가 아닌 인생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내면의 멋과 당당한 자신감을 핵심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며 “참가자들의 연륜에서 나오는 깊은 매력과 당당한 워킹, 개성미 넘치는 스타일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심사소감을 밝혔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4-20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장원급제’

세상에 상(賞)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하물며 내 실력을 인정해 주는 상이라니요. 그중에서도 ‘장원급제(壯元及第)’네 글자는 듣기만 해도 콧구멍이 벌렁거릴 만큼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사실 상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모두가 받을 수 없어서 더 안달이 나죠. 학창 시절 성적표를 기다리던 그 ‘심멎’의 순간들, 0.01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비정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평생을 ‘줄 세우기’의 희생양(혹은 주인공)으로 살아왔습니다. 상의 끝판왕을 꼽으라면 단연 조선 시대 ‘알성급제’입니다. 요새 오디션 프로그램은 저리 가라입니다. 초시, 복시 등 총 8번의 지옥 서바이벌을 뚫고 올라온 33인이 마지막으로 임금님 앞에서 파이널 라운드, 즉 전시(殿試)를 치릅니다. 거기서 딱 1등을 찍어야 ‘장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죠. 조선시대 과거 제도는 꽤나 복잡했습니다. 칼 좀 휘두르는 무과(武科), 외국어와 의술에 능한 전문직 잡과(雜科), 그리고 뼈대 있는 집안의 자존심 문과(文科)가 있었죠. 특히 문과는 예선 격인 소과(小科)에 붙어 ‘생원’이나 ‘진사’ 타이틀을 따야 성균관 입학증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던 ‘박 초시’, ‘윤 초시’ 할 때 그 초시(初試)합격자도 전국에 700명뿐이었다니, 사실 이분들도 동네에서는 “우리 집안에 천재 났다!”며 잔치를 벌였을 ‘능력자’들이었습니다. 왕의 질문, “너는 세상에 대책이 있느냐?” 대망의 마지막 시험, 임금님이 직접 문제를 내는 책문(策文)은 요즘의 논술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스케일이 다릅니다. “나라의 위기를 어찌 구할 것인가?” 같은 심오한 질문에 응시생은 대책(對策)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단순히 글 솜씨가 좋다고 뽑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 했으니 장원급제자는 그야말로 조선의 브레인이었던 셈입니다. 장원이 되면 종6품의 벼슬을 제수받고 보너스도 화끈했습니다. 임금이 하사한 꽃, 어사화를 귀 뒤에 꽂고 3일 동안 동네를 휘젓는 ‘유가행렬(遊街行列)’이 허락됐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오픈카 타고 시내 퍼레이드를 하는 격인데, 이때 장원급제자의 기분은 아마 “우주 정복도 가능하겠는데?” 싶은 ‘근자감(근거 있는 자신감)’의 정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1등만 기억하는 이 더러운(?) 세상에 반전의 묘미가 있습니다. 바로 상의 이름입니다. 요즘은 경제 논리에 따라 금상, 은상, 동상으로 줄을 세웁니다. 1등은 금(Gold)이라 비싸 보이고, 3등은 구리(Bronze)라니 왠지 좀 억울합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들이 쓰셨던 ‘수·우·미·양·가’를 보십시오. 이 얼마나 낭만적인 ‘정신 승리’입니까? 수(秀):빼어나게 잘했다. (말해 뭐해, 최고!) 우(優):우수하다. (넉넉하게 잘했다.) 미(美):아름답다. (비록 3등이지만 네 실력은 예쁘다.) 양(良):양호하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가(可):가능하다. (옳다! 너도 할 수 있다.) 낙제나 실패의 단어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꽃이고 모두가 가능성입니다. 0.1점에 벌벌 떠는 지금의 점수제보다, “너는 참 아름답고 가능성이 있구나”라고 추켜 세워주던 그 시절의 성적표가 훨씬 인간적이지 않나요? 장원급제면 어떻고 ‘가(可)’면 어떻습니까. 장원이 나라를 이끄는 머리라면, ‘수우미양가’를 골고루 갖춘 우리 모두는 나라를 지탱하는 든든한 몸통입니다. 1등만이 선(善)은 아닙니다. 오늘 내 삶에 ‘수’가 아니라 ‘미’나 ‘양’을 받았더라도, 조상님들의 지혜를 빌려 스스로에게 말해줍시다. “괜찮아, 너는 충분히 아름답고(美), 가능성이(可) 있어!“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19

대구 달서구 선사시대 역사현장을 찾아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선사시대 공원과 유물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길가 전신주에 험상궂은 원시인이 돌도끼를 들고 작업하고 있는 광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지나니 지하철 1호선 진천역 부근에는 ‘이만옹’이란 원시인이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며 사자처럼 누워 있다. 이곳을 지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뜬금없이 나타나는 선사시대 사람의 모습에 당황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선사시대 유물들이 많이 출토돼 그 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 자료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아직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고 한다. 지난 2006년 월성동 한 아파트 개발지역에서 1만3184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구석기 문화의 기초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5000년 대구 역사가 2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 계기다. 이 거대한 선사시대 역사 자료가 달서구 지역에 있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대구 전역으로 또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 고대 역사를 익히는데 도움이 되고, 자라나는 2세들에게는 중요한 학습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진천동 입석’은 국가지정 유산(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1997년 발견 당시 제단, 동심원, 석관묘 등이 한 자리에 있어 청동기 원시신앙 흔적을 한눈에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달서구 명예 홍보대사로 지정된 원시인 이만옹은 2018년 2월 27일 설치되었는데 총 길이 20m, 높이 6m로 그 웅장함이 대단하다. 마지막으로 선돌공원을 거쳐 ‘한샘청동공원’에 가보았다. 선사시대 집의 구조, 원시인들의 사냥 모습 구조물, 선돌, 돌 널 무덤, 선사시대 학습 안내 입간판 등이 갖춰져 있었으나 한눈에 봐도 다소 방치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아파트개발로 인해 출토된 선사시대 유물과 역사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달서구 전역에 학습장을 설치한 것은 훌륭한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보존을 위해서는 유지 보수 등 개선 조치가 지속 뒤따라야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이곳을 다녀간 참관 실적을 살펴보니 이 또한 아쉬운 게 많다. 이 지역 유치원과 어린이집 어린이들이 대부분이고 초중고 학생들과 이 지역 학교조차 다녀간 자료가 보이지 않아 좀 더 많은 홍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공원에 설치된 유물과 구조물 등이 20년이 넘어 낡은데다 야외에 노출된 탓에 훼손된 것도 적지 않아 보수가 시급해 보였다. 대구 달서구는 대구시교육청과 연계하여 공동으로 이 귀중한 교육 자산을 더욱 다듬고 널리 활용하는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4-19

(이사람) 반세기 성실로 일군 삶

대구 서문시장과 칠성시장을 오가며 반세기 넘게 ‘주방기구’ 외길을 걸어온 이우현 대표. 그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다. 초등학교 졸업 후 1974년, 어린 나이에 고향 경북 고령을 떠나 대구로 올라온 그는 자취와 친인척 집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사회 첫발인 주방기구와의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연탄불 마개를 사러 들른 가게에서 사장의 권유로 일을 배우며 이 길에 들어섰다. 이후 52년, 단 한 번도 업종을 바꾸지 않고 한 우물을 팠다. 그러나 그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 거래처의 연쇄 부도로 타격을 입었고, 설상가상으로 서문시장 화재까지 겹치며 모든 것을 잃었다. 한때 하루 매출 수천만 원을 올리던 사업가는 결국 부도를 맞고 자동차에서 노숙 생활하는 신세가 됐다. 절망의 끝에서 그는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학업에 도전, 중·고등 검정고시에 합격한다. 늦깎이 배움은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됐다. 이후 지인의 도움으로 다시 장사를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 800만 원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신뢰를 무기로 다시 일어섰다. 처음 7평 점포에서 출발해 350평 규모 매장 두 곳을 운영하며 업계 선두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이 대표의 경영 철학은 단순하다. “성실과 신뢰” 그는 물건을 팔기 전에 “나를 먼저 판다”고 말한다.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는 자세로 고객과의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을 남기는 장사’라는 것이다. 거래처가 부도를 내고 도망간 상황에서도 빚을 독촉하기보다 “잔액은 받은 것으로 정리할 테니 힘들면 밥 한끼하고 차한잔 마시고 가라”며 관계를 이어갔다. 오히려 이들을 협력자로 끌어들여 함께 재기에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는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지만, 사람은 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철학은 수많은 인연을 귀인으로 바꾸는 힘이 됐다. 지금 업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온라인 유통 확대와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오프라인 상권이 전례 없는 불황을 맞고 있다. 그는 “손님이 크게 줄어 상인 모두가 힘든 시기”라며 철저한 품질 확인과 사후 책임으로 신뢰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고 바쁜 생업 속에서도 요즘은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문학에 입문해 수필가로서 활동하며 자신의 삶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4-19

봄나물의 제왕 두릅

봄이 오면 식탁 위에도 계절의 변화가 찾아온다. 많은 봄나물 중에 두릅을 빼놓고 설명을 할 수는 없다. 두릅은 4월부터 5월까지 수확이 가능하다. 우리가 먹는 두릅은 줄기의 끝에 있는 순이다. 한 가지에서 한 송이 만 수확할 수 있는 봄나물이다. 두릅은 땅 두릅과 나무 두릅이 있다. 땅 두릅은 다년생 초본 식물로 땅에서 새순이 나오고, 나무 두릅은 나무의 끝 성장점에 새순이 나온다. 두릅은 독특한 향과 맛 그리고 풍부한 영양 때문에 ‘봄나물의 제왕’이라 부른다. 두릅을 먹으며 느끼는 쌉싸래한 맛은 사포닌이다. 인삼의 대표 성분인 사포닌은 입맛을 돋우고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성분이다. 지친 몸의 피로를 풀어 주고 봄철 몸의 기운을 돋우는데 제격이다. 또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당뇨병 환자에게도 좋다. 항암 및 항염증 작용, 항산화 작용도 하고 혈관 내 노폐물을 배설해 줌으로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에도 이롭다고 전해진다. 두릅의 독특한 향은 신경 안정과 집중력 향상, 숙면에 도움을 준다. 두릅에는 비타민 B, C, K와 엽산, 미네랄이 골고루 함유돼 있고 단백질 함량이 높아 면역력을 증가시키고 노화 방지에 도움을 준다. 우리가 흔히 보는 두릅은 나무 두릅이다. 두릅은 흔히 먹는 숙회 외에도 무침, 전, 튀김, 김치, 장아찌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잘 데친 두릅은 고기를 씹는 것처럼 쫄깃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일품이다. 입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쌉싸래한 맛과 특유의 향은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한다. 두릅요리는 숙회가 대표적이나 전이나 삶아 무쳐서 먹을 수도 있는데 더 오래 먹으려면 장아찌가 좋고 소금에 절이거나 데쳐서 얼려도 된다. 두릅을 보관할 때는 두릅에 물을 살짝 뿌려 신문지나 키친타월에 싸서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그러나 향을 즐기는 산채라 수확 후 빨리 요리해 먹는 것이 좋다. 두릅 숙회를 만들 때는 채취하여 가시가 있는 끝부분을 잘라내고 다듬은 다음, 소금을 조금 넣어 끓는 물에 20초 정도 데친 후에 찬물로 헹궈 물기를 짜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삶은 두릅을 상온에 오래 두면 색깔이 변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19

어머니의 텃밭에서 시작된 봄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들어서던 세 여인이 동시에 환호한다. “어머! 싹이 올라오고 있어!” 생전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지만 작업복만큼은 제대로 챙겨 입는다. 곡괭이와 삽, 호미를 동원해 밭을 일구고 씨를 뿌렸더니 대지가 마술을 부리듯 싹을 밀어 올린다. 마치 처음 보는 듯 그 흔한 기적 앞에서 그녀들의 가슴이 가볍게 뛴다. 김은희 씨의 친정엄마는 경북 포항 월포 인근의 집 앞 작은 텃밭을 평생 일구셨다. 사계절 내내 밭일을 놓지 않았던 흙 묻은 손을 털 듯, 지난해 11월 그렇게 삶을 내려놓으셨다. 봄이 오니 주인 잃은 텃밭에도 다시 숨이 돈다. 겨우내 굳어 있던 땅이 풀리고, 사람 손길 닿지 않은 곳에 보약 같은 봄비가 내리니 풀들이 좋다고 아우성이다. 어머니의 밭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지 직접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그녀에게 오랜 지기 두 친구가 함께하자고 나선다. 서로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 침묵조차 편안히 나눌 수 있는 묵은 친구들이다. 세 사람 모두 농사는 처음이다. 그래서 오히려 시작할 수 있었다. 모른다는 것이 때로는 용기가 된다. 일주일에 두 번 시간 맞추어 텃밭에 모인다. 풀을 뽑고, 흙을 뒤집고, 거름을 섞고, 고랑을 만든다. 작은 텃밭이라지만 곡괭이와 삽, 호미를 번갈아 들고 허리를 굽히다 보면 금세 숨이 찬다. 그래도 웃음이 난다. 힘든데도 재미있다. 흙이 고르게 정리되고 고랑이 생기니 ‘텃밭’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기 시작한다. 상추, 시금치, 당귀, 엄마가 쓰던 얼갈이배추 씨앗까지 뿌리고 씨감자도 심는다. 누군가는 텃밭에 들인 1년 씨앗 값만 수십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많이 거두는 것 보다 제대로 길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마음을 모은다. 귀농한 젊은 부부가 텃밭 가장자리에 작은 평상 하나를 놓아준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쉬엄쉬엄 하세요” 격려도 던진다. 평상에 앉으니 가까이 월포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스친다. 땀에 젖은 몸을 바닷바람에 맡긴 채 나누는 소박한 새참 시간이 밭일보다 더 소중한 순간이다. 친정엄마는 힘든 밭일을 평생 하시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계절을 따라 씨를 뿌리고 거두셨다. 지금 와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챙겨주시면 무심히 받아가던 그 푸성귀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 끝에 얻어진 것인지. 그 노동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방식이었다. 호미를 들고 흙을 다듬다 보면 “문득 엄마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좋다”는 그의 말처럼, 이곳은 단순한 밭이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 사람은 여전히 서툴다. 그 서툼이 서로를 웃게 하며 하루를 채운다. 텃밭은 채소만 기르는 곳이 아니다. 박경리 작가는 말년에 “미련 없다”고 말하며 텃밭에 정성을 쏟았다. 무엇을 더 가지기보다, 지금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 텃밭에서는 그 연습이 절로 된다. 그녀들의 봄은 그렇게 텃밭에서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우리가 이렇게 서로에게 맞춰가며 함께하는 이 시간이 참 좋다”고 말하는 김은희 씨. 월포 인근 작은 텃밭에서 시작된 이들의 농사는 올봄 또 하나의 작은 풍경이다. 돋아난 새싹처럼, 또 다른 삶이 그 자리를 채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7

라원 개장···신라 정원과 AI 전시 결합한 복합문화공간

지난 3일 개장한 라원은 ‘신라의 정원’을 뜻하는 이름이다. 야외 정원과 디지털 실내 정원을 포함해 총 6만8810㎡ 규모로 조성된 복합문화정원으로, 신라 8괴를 모티브로 구성되어 있다. 실내 정원은 제1 전시관과 제2 전시관으로 나뉘어 총 8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가까운 제1 전시관에 들어서자 ‘라원, 플라뇌르의 정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플라뇌르는 ‘산책자’ 또는 ‘열정적인 구경꾼’을 의미하며, 현대 사회의 관찰자로서 목적지 없이 걷고 경험하며 풍경을 이해하는 존재로 설명되어 있다. 프롤로그 공간에서는 찌르레기의 초대 영상이 상영된다. 전시 스토리를 담은 일러스트 영상으로, 이를 감상한 뒤 ‘하이, 에브리버디!’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벽면 터치를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벽면 속 새 이미지를 터치하면 날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형식이다. 대형 공작새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으며, 함께 동행한 아이는 모든 새를 찾아다니며 손을 가져다 대는 모습을 보였다. 공간 내 거울이 함께 비치되어 있어 공간이 확장되어 보이고, 사진 촬영 시 이색적인 재미도 더한다. 다음 공간 ‘소리 없는 노랫소리’에서는 바닥에 표시된 위치에 서면 꽃이 피어나고 해당 식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토치진저, 무쎌라, 캐리안드라, 아칸서스 에브락테리아투스, 알칸타레아 임페리얼리스 등 익숙하지 않은 식물들이 흥미를 더한다. 이어지는 ‘숨, 쉬는 숲’은 풍선으로 만들어진 나무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빛을 머금은 대형 풍선 나무들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1 전시관의 마지막 공간 ‘불빛에 이끌려’에서는 오두막에 들어선 듯한 느낌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가 공간을 채운다. 자연 풍경과 춤추는 악기 등 변화하는 이미지들이 이어지며 색다른 공간에 머무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제2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공간 또한 유리창에 색을 입혀 또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 구성되어 있다. 무지개빛 길을 지나듯 이동하면 제2 전시관에 이르게 된다. 이 구간에는 유아용 실내 카페가 마련돼 있으며, 인원 제한이 있어 이용 시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또한 제2 전시관 안내데스크에서는 돗자리와 바구니가 포함된 피크닉 세트를 무료로 대여하고 있어 날씨가 좋을 경우 야외 정원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제2 전시관은 AI 아트 특별관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나만의 식물을 만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으며, 별도의 그림 실력이 없어도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완성된 이미지는 QR코드를 통해 휴대폰에 저장하거나 전시장 내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미지의 화원’은 국내 최초 360도 생성형 AI로 제작된 실감형 콘텐츠 공간이다. 약 7분간 상영되는 영상은 높은 화질로 실제와 같은 느낌을 주며, 대형 고래와 바다거북 장면은 어린 아이들의 인기를 얻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매표는 오후 6시에 마감된다. 입장료는 성인 1만6000원, 청소년 및 군인 1만3000원, 어린이(7~12세) 8000원이다. 다만 4월 한 달간은 개장 기념으로 지역민과 동일하게 7000원에 입장할 수 있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7

청송의 맛과 멋을 담다, 전통 고추장 만들기 체험기

지난 4월 8일, 청송군 부남면 남관문화센터에서 열린 전통 고추장 만들기 수업에 참여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여러 번 실패했던 찹쌀고추장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신청하게 되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청송문화관광재단이 기획한 ‘2026 구석구석 문화가 있는 날’ 4월 행사로, ‘전통음식-청송의 맛과 멋을 잇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으며, 전통 발효음식의 가치와 지역 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수업은 한국 맥꾸룸 성명례 명인과 따님인 권혜나 전수자가 함께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명인의 설명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중했다. 명인은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음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전해주고자 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 진심이 전해져 수업 분위기는 더욱 진지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참가자들은 명인의 설명에 따라 전통 방식으로 고추장 2kg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된 찹쌀 발효액을 사용해 메줏가루를 넣고, 조청과 고춧가루를 더해가며 고추장을 완성했다. 고추장을 청송 옹기에 담고, 청송 한지를 이용해 포장하는 과정까지 이어졌는데, 단순한 음식 만들기를 넘어 지역 전통문화를 온전히 체험한 좋은 기회였다. 고추장을 활용한 요리 체험도 함께 진행되었다. 고추장닭불고기와 고추장찌개를 회차별로 나뉘어 운영했는데, 우리가 참여한 날에는 고추장찌개를 만들었다. 제한된 시간이라 육수를 내지 않고 맥꾸룸의 맥간장과 어간장을 사용했다. 간편하게 고추장과 간장, 어간장을 이용한 고추장찌개 맛도 신선했다. 참가자들의 구성도 다양했다. 젊은 새댁부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주부, 그리고 남성 참가자까지 여러 연령층이 함께했다. 평소 요리에 익숙한 주부들도 명인의 설명 앞에서는 초심자의 자세로 진지하게 배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고추장 담그기의 핵심이 ‘염도’라는 사실이었다. 찹쌀 발효액의 염도를 18%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실패의 원인이라 생각했던 검은 물이 사실은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간장이었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단순한 체험을 넘어,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소중한 배움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수업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찹쌀 발효액은 미리 준비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는데, 발효액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들을 수 있었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수업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각자 만든 2kg의 고추장을 용기에 담아 가져가고, 함께 만든 고추장찌개도 준비해온 그릇에 나누어 담았다. 모두의 얼굴에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프로그램이 전통 발효음식인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뿐만 아니라, 청송옹기와 청송한지의 활용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군민들이 청송의 가치를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통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뜻깊은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체험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 청송문화관광재단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7

<노당익장(老當益壯) 문인을 찾아서> 금태남 수필가

금태남 수필가는 팔순을 넘긴 노익장으로.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집필 활동과 활발한 사회 참여를 이어가며 ‘노당익장’의 표본으로 꼽힌다. 금 수필가는 대구 수성구청 총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수성구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행정과 의정 발전에 기여했다. 현재는 수성구 행정동우회를 수년간 이끌어오면서 지역 환경개선에도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그는 또 선친의 업적을 기리는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 관장을 맡아 지역 문화예술 계승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자유대한민국 희망연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 공헌상을 받았고, 대구시 행복진흥원에서 주관한 ‘사랑의 편지 쓰기’ 공모전에서 ‘팔순에 쓴 어머님 전상서’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 금촌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한국 근대미술의 중요한 인물인 금경연 화백의 예술혼이 깃든 공간이다. 금 화백은 서양미술 도입기의 선구자로, 일본이나 서구 유학없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 1회와 입선 5회를 기록한 보기 드문 작가다. 그는 하양·안동·경주 등지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고, 이후 고향인 영양 수비초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하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금 화백의 작품 세계는 탄탄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인상파의 빛의 표현을 거쳐 후기 인상파, 야수파, 표현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현재 남아 있는 도록과 유작들은 그의 예술적 궤적과 잠재력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금태남 수필가는 젊은 시절 월남전에 참전해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경험도 겪었다. 그는 ‘팔순기념 출판기념회’ 인사말에서 부친을 회상하며 “서양화를 우리나라에 알리는 데 앞장섰던 천재 화가이자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깊이 존경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가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한 채 33세에 요절한 것이 통한스럽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의 예술적 DNA가 후손들에게 이어져 손자·손녀 가운데 다수가 정규 미술대학을 졸업했다”며 “저승에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경연 화백의 예술적 유산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차남인 금태남 수필가의 장녀 금영숙씨는 프랑스 국립대학에서 예술조형학 박사학위를 받고 화단에서 활동 중이며, 외손녀 박진주씨 역시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수학했다. 또한 금 화백의 장녀 금계영씨는 시인으로 등단해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의 두 딸 이원순·이원희씨도 미술을 전공해 가문의 예술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장남 고(故) 금도춘씨의 손자 금재성씨 또한 국민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증조부의 뒤를 잇고 있다. 한 가문의 예술적 유산이 세대를 넘어 계승되고 있는 가운데, 금경연 화백의 정신은 오늘도 후손들의 창작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금태남 수필가의 왕성한 활동 역시 이러한 문화적 계보를 잇는 또 하나의 증거다. 앞으로 이들 가문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의 인물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14

겹벚꽃이 활짝 핀 월곡역사공원에서 호국정신을 배운다

대구시 상인동에 있는 월곡역사공원은 역사와 자연이 잘 어우러진 시민의 안식처이자 월곡역사박물관과 낙동서원을 품고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도시철도 월촌역에 내려서 고층아파트 숲을 따라 걸어 월곡역사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마침 만개한 겹벚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족과 연인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활짝 핀 겹벚꽃 나무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곳은 4월 중순이면 겹벚꽃이 만개하는 대구지역 겹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연못 둑에 두 줄로 핀 겹벚꽃과 길옆, 낙동서원 앞에 흐드러지게 핀 겹벚꽃은 화사함을 더해 이곳을 찾은 많은 시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월곡역사박물관은 단양 우씨 월촌 종중에서 2002년 5월에 개관한 사립 박물관이다. 외관부터 전통의 멋을 물씬 풍긴다. 이곳의 핵심은 단연 보물 제1334호로 지정된 ‘화원 우배선 의병장 관련 자료’다. 우배선 의병장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1등 선무원종공신에 봉해진 인물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공 보고서인 ‘성주화원의병군공책’은 당시 의병 활동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농기구, 생활 도구, 고문서 등 8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한 낙동서원은 1708년(숙종 34년) ‘덕동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졌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1965년 후손들에 의해 지금의 낙동서원으로 재건되었다. 이곳에서는 우배선 장군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의 대학자 우현보, 우탁선생 등 다섯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매년 향사를 통해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주변에는 월곡 우배선장군상, 덕양재, 열락당, 우종식 공적비, 의마비, 하늘 높이 솟은 민족 정기탑이 있다. 박물관 맞은편 장지산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공원 내 조성된 울창한 대나무 숲길은 도심 속에서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곳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곳을 넘어, 우리 고장을 지켰던 조상들의 호국 정신을 배우고 느끼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알리는 데 최선을 다 하겠다”라고 말했다. 도심 속에서 임진왜란 의병의 호국 정신을 되새기고,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 하겠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4-14

봉사하며 공부하는 수성시니어클럽

대구수성시니어클럽(관장 전태수) 소속 일하는노인회자원봉사단(회장 겸 단장 신현구) 회원 68명은 지난 10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수성못 상화동산 일대에서 문화유산을 배우고 자연보호 활동을 병행하는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 자원봉사단은 총 136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평소 월 1회 50~100명이 참여한다. 이날은 68명이 함께했다. 이날 행사는 신현구 회장의 인사로 시작해 수성못에 대한 개요 설명과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감상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수성못(약 2㎞)을 한 바퀴 돌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등 환경정화 활동을 펼쳤다. 이어 단군국조성전과 수성못을 건립한 미즈사키 린타로의 묘, 상동 지석묘를 둘러본 뒤 수성그림책도서관에 다시 모여 일정을 마무리했다. 수성못 관광안내소 모퉁이에서 서쪽으로 약 10여 m 지점에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새긴 시비와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상화는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이 작품을 발표해 민족혼을 일깨운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대구시 수성구는 그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과 문학적 가치를 기리기 위해 2017년 9월 23일 이곳에 시비와 흉상을 건립했다. 단군국조성전 내 천진전에 대해서는 황승민(수성시니어클럽) 복지사가 설명을 맡았다. 현재의 천진전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달성공원 내 일본 신사 터에 있던 것을 1966년 대구시 수성구 용학로 116-34로 옮겨와 단군 영정을 모시며 ‘천진전’이라 이름 붙였다. 수성못 남쪽에 위치한 미즈사키 린타로의 묘에 대해서는 서예가 신동호(78) 씨가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개척농민으로 대구에 온 미즈사키 린타로는 1924년 9월 수성못 공사에 착수해 1927년 4월 24일 완공했다. 이후 1939년 12월까지 수성못의 수량을 관리하다 임종을 앞두고 “장례는 조선의 전통 방식으로 치르고, 수성못이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이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안장된 것으로 전해진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회원들은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봉사까지 할 수 있어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정모(75) 씨는 “쓰레기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면 줍기 쉬운데, 구석에 숨겨 놓은 경우가 많아 더 꼼꼼히 살펴야 한다”며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려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14

KBS1 TV ‘브라보 내 인생 ’ 방영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는 지난 9일 대구 동구 효목동 평생교육원 강의실에서 진행된 목요대학 수업 장면을 KBS 대구방송총국이 촬영했다고 밝혔다. 이번 촬영분은 15일 오후 7시 KBS 1 TV ‘브라보 내 인생’ 에서 방송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대구지역 어르신들의 다양한 일상을 소개하는 콘텐츠로, 이번 방송에서는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 학생들의 활기찬 하루 수업 모습을 담아낸다. 첫 번째 장면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7·8학년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밝은 표정으로 교실로 향하는 모습을 담았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를 소개하며 학장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카데미의 설립 배경과 운영 과정, 학생 규모 등 전반적인 내용이 소개됐고, 학감은 연간 교육 프로그램의 구성과 지향점, 이날 수업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세 번째 장면은 1교시 수업으로, 웃음치료사이자 보건학 박사인 양기영 강사의 ‘오장육부 건강법’ 강의가 진행되는 모습을 담았다. 제작진은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이 대학에 오게 된 계기와 강의를 들으며 느낀 점 등을 물었다. 네 번째 장면은 2교시 수업으로, 대구예술대학교 전속 이서영 가수의 가요 강의가 진행됐다. 제작진은 수업에 앞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지난 시간에 배운 노래를 복습하는 모습과 최근 ‘미스트롯4’에 소개된 최신 곡을 배우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 수업이 즐거운 이유와 학습을 이어가고 싶은 기간 등에 대해 물었다. 김태호 학장은 “이번 방송이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의 우수한 시설과 수준 높은 교육을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15일 방송되는 ‘브라보 내 인생’에 많은 관심과 시청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4-14

금오산에서 찿은 조선 정신의 뿌리

지난 11일 문장작가회(회장 이병욱)는 문학적 소재 발굴을 위한 답사로 금오산을 찾았다. 화창한 봄날 아침 9시,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계절의 정취를 가슴에 안고 출발한 여정은 시작부터 따뜻한 배려로 물들었다. 사무국장 김숙현, 편집국장 고경아, 재무국장 임미숙이 정성껏 준비한 간식은 길 위의 소소한 기쁨을 배가시키며 일행의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했다. 첫 답사지인 구미 성리학역사관에서는 전문 해설사의 안내 속에 조선 정치이념의 근간을 이룬 성리학의 흐름을 되짚는 뜻깊은 시간이 마련되었다. 성리학의 뿌리가 이 지역에서 비롯되었음을 상기시키며, 야은 길재를 필두로 점필재 김종직, 신당 정붕, 송당 박영, 여헌 장현광에 이르는 학맥이 조선 사림 정치의 중심축을 형성했음을 확인했다. 더불어 사육신의 한 사람인 하위지와 생육신의 인물 이맹진 또한 구미 출신이라는 사실은 영남 인재의 산실로서 구미가 지닌 역사적 위상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이어 찾은 채미정은 자연과 절의가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의 정자는 고려 멸망 이후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킨 길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이곳에 서린 그의 정신은 단순한 역사적 기억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도덕적 지표로 남아 있다. 채미정 입구에 새겨진 시조 한 수는 오백 년 왕조의 흥망을 초월한 인간사의 허무와 성찰을 절절히 전하며, 방문객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답사단은 다시 야은 역사체험관으로 이동했다. 2020년 개관한 이 공간은 길재의 학문과 충절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교육의 장으로, 다양한 사료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성리학의 정신적 근간을 오늘의 시점에서 재해석하게 한다. 금오산이라는 이름 또한 흥미로운 유래를 지닌다. 본래 ‘대본산’이라 불리던 이 산은 신라 승려 아도화상이 황금빛 까마귀, 곧 태양의 상징인 금오가 노을 속으로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명명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곧 이 산이 지닌 영험함과 생명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일행은 도립공원 주차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약 10분 만에 해운사에 도착했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도량이다. 임진왜란의 화마로 소실된 뒤 오랜 세월 방치되었으나, 근대에 이르러 재건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해발 450m 절벽에 자리한 도선굴은 수행과 피난의 역사가 중첩된 장소로, 난세 속에서도 생명을 지켜낸 민초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대혜폭포는 수직 27m 높이에서 쏟아지는 장쾌한 물줄기로 답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명금폭포’라는 별칭처럼, 떨어지는 물소리는 산천을 울리며 자연의 위엄을 실감케 했다. 일행은 이곳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답사는 단순한 탐방을 넘어, 역사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어우러진 총체적 체험의 장이었다. 문학은 결국 삶과 시대를 비추는 거울임을 상기할 때, 금오산에서의 하루는 문장작가회 회원들에게 깊은 사유의 원천이자 새로운 창작의 밑거름으로 자리할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4-14

봄소풍에는 ‘죽장휴게실’ 김밥이지

요즘 우리 집 밥도둑은 고추장아찌이다. 열흘 전 벚꽃투어 전 답사길에 들른 포항 죽장휴게소에서 사 왔다. 희정언니가 맛보고는 맛있다며 칭찬하던 것을 지날 때마다 들러 물어봐도 늘 솔드아웃이었다. 그렇게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아 맛보지 못한 장아찌를 김밥 사러 들렀더니 맛보라며 손에 쥐어 주셨다. 혀끝이 알싸한 게 내 입맛에 딱이었다. 산초가 들어가서 느끼한 음식 뒤에 사이다 한 잔 들이켜는 느낌이었다. 김밥과 함께 먹으니 찰떡궁합이다. 이번 답사길에 동행한 하원씨는 죽장휴게소에 잠시 쉬어가자고 하니, 겉모습이 허름해서 늘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주말이 아닌 화요일 오전이라 어르신 내외만 가게를 지키고 계셨다. 시골은 동네 점방에서 온갖 잡동사니를 판다. 여기가 그곳이다. 블링블링한 운동화, 색색의 모자와 명품을 닮은 목걸이 시계까지 구경만 해도 한나절이 지난다. 우리 처음 목표가 김밥이라 도시락 두 개를 샀다. 할머니는 우리가 반가운지 자신의 여러 음식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새댁아, 유과 먹어봤나 내가 오래 끓인 조청으로 만들어서 맛있다. 엿도 맛볼래, 이래 많아 보여도 주말에 손님 들이닥치면 세 개 네 개씩 달라캐가 금방 다 나간다.” 냉장고에 넣어 둔 엿을 꺼내 입에 넣어주신다. 너무 달지 않고 맛있다. 하원씨는 유과를 좋아한다고 해서 두 봉지 선물로 사주었다. 둘이 무슨 사이인데 사주고 그라노 하셔서 함께 근무한 동료라고 하니 둘이 닮았다고 한다. 엿이 입에서 다 녹을 무렵 냉장고에서 고추장아찌를 꺼내 맛보라 했다. 입에 넣자마자 사야겠다 싶어 한 통 담아 달라고 했다. 할머니 인심까지 꾹꾹 눌러 담으셨다. 두 손 가득 들고 영천 벚꽃백리길 답사를 떠났다. 3월 30일, 아직 꽃이 하나도 피지 않아 서울에서 오는 친구들과 이 길에 서지 못했다. 일주일 후, 포항은 벚꽃이 거의 떨어져 남편과 다시 영천 벚꽃을 보려고 죽장휴게소로 향했다. 오후 2시 즈음이라 배가 고파 김밥을 사서 차에서 한 줄 후딱 해치웠다. 남편은 더 먹으라 하고 다시 어르신께 김밥 비법을 들으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자세히 보더니 그때 유과랑 장아찌 사 갔던 새댁이구나 하며 알아보셨다. 언제부터 조청김밥을 만들었냐고 여쭈니, 옆에 있던 따님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소풍날에 엄마가 어묵을 늘 끓이던 조청에 졸여서 싸준 김밥이 친구들에게 제일 인기였다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30년 넘게 이 자리에서 김밥을 말았다. 어르신은 도라지 조청을 달여 고추장을, 유과와 엿을 만들어 자식들을 키웠다고 한다. 지금도 조청에 어묵을 여섯 시간 졸여서 김밥을 싼다. 그 정도 끓여야 어묵에 조청 맛이 깊이 스며들기 때문이란다. 말이 여섯 시간이지 불 앞에 그렇게 오래 있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검게 물든 어묵 옆에 곱게 채로 썬 당근, 길게 자른 단무지와 오이, 두툼한 달걀지단이 차려졌다. 고슬한 밥을 김에 얇게 펴고 재료를 올려 스르륵 말아 썰어 담는다. 어묵 말고는 별 특별한 재료는 없는데 맛있다. 한 줄 4천 원 두 줄 7천 원! 우동이나 국수가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컵라면 하나 사서 테이블에 앉아 먹으면 된다. 간판은 휴게소가 아닌 휴게실이다. 동네 마실 가듯 찾아오라는 뜻인가 보다. 매장 앞과 옆에 주차할 공간이 넉넉해서 좋다. 벽에 영화감독 봉준호님이 다녀갔다고 써 있어 언제냐고 물으니, 청송에서 원빈과 김혜자 나오는 영화('마더') 찍으러 지나다가 들러서 김밥 먹어보고는 영화 찍는 동안 자주 들러 사 갔다고 한다. 조청 고추장 청국장 가루 등 여러 가지 판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3

환호공원을 즐기는 사람들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산과 들, 길가의 나무들도 때맞춰 새 옷을 갈아입었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바야흐로 봄과 꽃을 찾는 상춘객의 발걸음이 바쁜 때이다. 새뜻한 봄을 맞이하러 환호공원 산책을 나섰다. 길가엔 이미 활짝 핀 벚꽃이 꽃등을 이루었고 한차례 비를 뿌리고 난 후, 연두색 잎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민다. 그 사이를 부지런히 걷거나 달리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렸다. 공원 계단으로 막 올라서는 순간, 노란 원복의 어린이집 원아들이 봄을 즐기려는 소리가 발 앞까지 걸어온다. 눈앞의 활짝 핀 개나리꽃을 지나치지 못하고 선생님들은 원아들의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느라 손길이 바쁘다. 그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공원 안에서는 아이들과 성인들, 그리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섞인 가운데 한 무리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보아하니 벚꽃 아래서 졸업식 사진을 찍는 대학생들이었다. 까르르 소리가 하늘 위로 펴졌고 준비해 온 캐릭터 옷을 입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뭐가 저렇게 좋을까 싶지만, 삼삼오오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젊어지는 기분이다. 봄과 청춘은 동의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또 하나의 봄을 구경한 느낌이었다. 카톡 단체방에 소식을 전하니 ‘젊음이 좋다’는 답이 곧장 날아온다. 한참 그 모습을 구경하다 대학생들의 웃음을 뒤로하고 스페이스워크로 발길을 옮겼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 또한 스페이스워크를 오르기 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건 필수다. 어느새 포항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스페이스워크는 포항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인기 관광지다. 누군가는 환호공원은 몰라도 스페이스워크는 안다고 말한다. 오늘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여유로운 관람이다. 옆에는 대구에서 단체로 나들이 온 어르신들이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두런두런거린다. 스페이스워크를 오르지는 못하고 전쟁 이야기와 기름값 오른 이야기, 어제 마트에서 장 본 이야기를 이어갔다. 스페이스워크에서 바라본 봄 바다는 고요했지만, 바다 위의 배들은 멀리서도 쉼 없이 움직였다. 다시 미술관으로 내려오는 길은 곳곳에 조각 작품이 배치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공원 속의 미술관이라 접근하기도 좋다. 아이들과 놀다가 전시 작품을 관람할 수도 있고 산책하러 왔다가 자연스레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기도 쉽다. 입구 앞에는 제2미술관 건립으로 인해 지난 3월 중순부터 시작한 공사 안내판이 붙어있다. 또 ‘미술관 무엇이 될 것인가’의 포럼도 진행했는데 내년 상반기 지나 완성된 모습으로 시민들을 만날 예정이다. 미술관은 지난 1월 27일부터 김창영 작가의 샌드플레이, 존재와 기억의 방식, 그리고 2026 소장품전을 전시하고 있었다. 설렁설렁 감상하는 사이에도 작가가 모래에 진심인 듯 보였다. 모래를 회화로 풀어냈다는 게 새롭다. 특별히 이 전시를 위해 죽천 바닷가의 모래를 가져왔다고 하니 작가의 열정이 남달라 보였다. 2층으로 올라서자,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20대 여성 배낭 여행객이 소장전을 감상 모습도 보였다. 서울과 부산뿐 아니라 포항을 찾아온 것에 감사하며 포항 여행이 멋진 추억으로 남길 바랐다. 환호공원은 테마파크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시민들이 공원을 즐기는 다양한 모습과 가까이에서 계절이 오가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앞으로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3

아직 벚꽃 나들이 못 하셨나요···봉화에서 “벚꽃엔딩”

남한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봉화.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봄이 가장 더디게 찾아온다. 전국 곳곳에서 벚꽃이 지고 난 뒤에야 봉화의 벚꽃은 절정을 맞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늦게 피는 벚꽃으로 알려진 이곳은 올해도 4월 14~15일께 만개가 예상되며, 늦게 찾아온 봄의 아름다움이 더욱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물야댐을 에워싸고 있는 벚꽃길은 다른 벚꽃 명소와는 또 다른 인상을 남긴다. 찬란한 분홍빛 벚꽃 사이사이로 비치는 물빛은 ‘벚꽃엔딩’의 감성을 자아내며, 화려하게 피어난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눈송이처럼 수면 위로 떨어지는 풍경은 그리움과 아쉬움을 함께 전한다. 물야댐은 선달산(1236m) 늦은목재 옹달샘에서 발원한 물이 모여 형성된 곳으로, 내성천 300리의 시작점이다. 영주와 문경을 지나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해발 400m에 자리한 이곳은 이른 아침이면 차가운 기온이 잔잔한 수면 위로 내려앉아 신비로운 안개를 만들어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댐을 채우고, 벚꽃길에는 잔도와 데크길, 야자매트 길이 설치돼 있어 누구나 여유롭고 낭만적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둘레길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의 속삭임은 계곡 바람을 타고 은은한 봄의 향기로 번지고, 떨어진 꽃잎이 수면 위를 떠다니는 모습은 올봄 벚꽃엔딩의 감성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특히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시간대에는 푸른 물과 벚꽃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며,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을 선사한다. 벚꽃은 짧은 시간 피었다 지지만, 그 찰나의 아름다움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물야댐 벚꽃길은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이야기를 품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과거 애전 마을이 자리했던 곳으로, 보부상들의 집단 거주지이자 임방이 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저수지 건설로 마을은 수몰됐고, 지금은 역사로만 남아 있다. 당시 보부상들은 대부분 홀아비로 살다가 생을 마감하며 많은 전답을 마을에 남겼고, 묘소 또한 댐 건설과 함께 사라졌다. 현재는 후세가 기억하는 11분의 이름이 위령비로 남아 있으며, 매년 10월 셋째 주 토요일 위령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 주민들이 벚꽃길 일대 대청소를 마치고 관광객 맞이에 나서는 등 방문객을 위한 준비도 마무리했다. 이곳은 오전약수 관광지와 인접해 있어 봉화군민은 물론, 전국에서 마지막 벚꽃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벚꽃길 위쪽에는 오전약수터가 자리해 있어 볼거리와 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약수 백숙과 송어회, 화덕피자 등 다양한 먹거리가 유명해 외지 방문객들도 많이 찾는다. 또한 주변에는 천년고찰 축서사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이몽룡 생가인 계서당 등이 있어 하루는 물론 1박 2일 일정으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여행지다. 빼어난 산과 계곡, 그리고 맑은 물이 어우러진 물야댐 일대는 사계절 내내 많은 이들이 찾는 산책 명소다. 특히 수변을 따라 이어지는 벚꽃길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봄의 풍경으로 기억되고 있다. 봄날의 낭만이 흐르는 봉화 물야댐 벚꽃길. 늦게 찾아온 만큼 더욱 특별한 이곳에서, 곧 지나갈 짧은 봄의 아쉬움을 달래고 오래도록 간직될 추억을 만들어보길 권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13

대구콘서트하우스 ‘2026 봄의 합창’ 개최

대구콘서트하우스(관장 박창근)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21개 팀이 참석하는 특별연주회 ‘2026 봄의 합창을 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개최했다. 신록의 계절 4월을 맞아 개최되는 봄의 합창에는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아마추어 시니어 합창단, 직장인, 혼성, 여성 등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총 21개의 합창단들이 참여했다.매일 7개 합창단들이 무대에 올라 각기 다른 색깔의 화음을 선보이는 릴레이 형식으로 공연해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번 연주회에 참여한 21개 합창단은 상원한마음합창단, 칼리오페코러스, 권유진청춘코랄, 하프문합창단, 대구중구문화원 시니어여성합창단, 나유타합창단, 덴탈하모니, 월드미션콰이어, 대구CBS혼성합창단, 필그림쥬빌리싱어즈, 수성OB싱어즈, 달서은빛합창단, 영남일보합창단, CTS대구권사합창단, 보아스청합창단, 대구레이디스싱어즈, 아마빌레여성합창단, 수성행복싱어즈, 대구소리온합창단, 한울림여성합창단, 아남카라합창단 등이다. 박창근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은 “합창은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완성되는 가장 인간적인 종합예술”이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일상에 지친 여러분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이 되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4-13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지공선사(地空善士)'

혹시 지공선사’라는 법명을 들어보셨는지요? 불가(佛家)에는 대사나 선사가 있지요. 대사란 말 그대로 “큰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교학(경전 연구), 수행, 포교 등 전반적으로 업적이 큰 인물에 종파와 관계없이 사용하지요. 대표적인 예가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이죠. 선사는 “선(禪·명상 수행)을 지도하는 스승”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선종(禪宗) 계통에서 깨달음을 중시하는 수행자를 가리킵니다. 참선, 좌선 등 직접 체험을 통한 깨달음 강조주로 선종 계통에서 제자들에게 수행을 지도하는 역할을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혜능선사, 지눌선사가 있지요. 위대한 스승 원효대사나 초의선사는 익히 아시겠지만, 지공선사는 아마 생소하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은밀하고도 영광스러운 법명은 제가 명명하여 저만 알고 있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신비로운 ‘지공선사’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잠시 우리네 술자리 풍경을 한번 떠올려 볼까요? 단합의 상징인 건배사에도 시대의 결이 묻어납니다. 5·16 직후엔 투박하게 “재건합시다!”를 외쳤고, 요즘은 암호같은 삼행시가 대세지요. “변함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는 ‘변사또’,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라는 ‘개나발’ 같은 것들 말입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 ‘청바지’ 등 이 모든 수다를 한데 버무려 결국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위하여!”라는 우렁찬 외침으로 밤은 깊어가지요. 자, 이제 제가 만든 지공선사(地公善士)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눈치 빠른 분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바로 ‘지하철 표를 공(空)짜로 선물받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만 65세라는 고개를 넘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자격이지요. 그런데 왜 하필 ‘선사’일까요? 스승 사(師) 자를 쓰기엔 제 삶이 그리 거창하지 않아, 그저 선비 사(士) 자를 빌려왔습니다. 평생을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노년의 품격을 기리고자 ‘착할 선(善)’ 자를 보탰지요. 청춘을 다 바쳐 일군 이 나라가 이제야 노병(老兵)의 노고를 알아보고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하며 건네는 따뜻한 예우표 같아 마음이 뭉클합니다. 덕분에 저도 오래전 이 영광스러운 지공선사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 법명을 얻고 보니, 인생길이 어느덧 황혼이 지는 마루턱에 서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제는 서서히 산을 내려가야 하는 하산(下山)의 시간이지요.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한 발짝씩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지만, 짐짓 모른 척 허허 웃어넘길 뿐입니다. 다만 침침해지는 눈과 어두워지는 귀, 예전 같지 않은 근력 앞에 자꾸만 마음이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얼마 전, 저의 ‘할망구’가 발바닥에 가시가 박혔다며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할망구’란 표현이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나, 본래 망구(望九)란 아흔(90세)까지 장수하기를 바란다는 귀한 뜻이 담겨 있지요. 저는 돋보기를 코끝에 걸치고 가시를 찾아보았지만, 희미한 형체만 보일 뿐 도무지 잡히질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둥지를 틀어 떠나고, 휑한 큰 집에 노부부만 덩그러니 남았으니 눈 밝은 구원 투수가 없더군요. 며칠을 씨름하다 결국 주말에 이웃 동네 딸아이를 찾아갔습니다. 딸애가 뾰족한 바늘로 몇 번 툭툭 건드리더니 단숨에 가시를 뽑아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 젊음이 좋구나, 밝은 눈이 참으로 부럽구나’ 싶어 코끝이 찡했습니다. 지공선사가 되어 지하철을 마음껏 누비게 된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몸 상태가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니 문득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귀야 좀 어두워지면 어떻겠습니까. 골치 아픈 세상사 안 들으면 그만이지요. 하지만 눈만은 부디 조금만 더 버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망구’ 발바닥에 박힌 가시라도 직접 뽑아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공선사의 혜택은 달콤하지만,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은 참으로 야속합니다. 오늘도 저는 공짜 지하철 표 한 장을 손에 쥐고, 노을 비치는 차창 밖을 보며 이 아름다운 하산길을 음미해 봅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12

(이사람) “붓끝으로 영남의 기개를 깨운다'

대구 봉산동 문화거리. 영남의 서단 ‘도심명산장(道心名山藏)’에서 율산(栗山) 리홍재(李洪宰) 선생을 만났다. 변함없는 생활 한복에 긴 머플러 두른 정장 차림이다. 영남의 산세를 닮은 획, 율산 선생의 글씨를 마주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압도적인 ‘기운’이다. 그가 긋는 획은 때로는 영남의 가파른 산맥처럼 단단하고, 때로 굽이치는 낙동강 줄기처럼 유연하다. 세간에서 그의 글씨를 ‘율산체’라 칭송하는 이유는 그만큼 독보적인 조형미와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자신의 서체를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설명한다. 글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율산이 추구하는 예술의 정점이다. 그의 대작에서 볼 수 있는 파격적인 공간 구성과 대담한 필치는 전통 서예의 틀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을 보인다. 율산 선생의 예술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원칙이다. “전통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며 그 안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법을 지키되 법을 넘어서는 것, 그것이 서예가가 평생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선생은 매일 새벽 수천 번의 획을 그으며 기본을 다진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탄생한 그의 행초서(行草書)는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엄격한 질서를 유지하며 영남 서예만의 묵직하고도 파격적인 힘을 대변한다. 팔공산 취락지구 중심가에 세운 ‘대동방 서예술문화관(大東房 書藝術文化館)'에 들어서면 분위기부터가 압도된다. 육십 년 내공이 쌓인 율산의 먹물 예술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벽면 계단에 80폭 병풍이 대동방 문화관의 수문장처럼 보였다. 이천여 평을 가득 채운 대작(大作)들은 관람객을 압도한다. 그는 영남 유림의 곧은 절개와 타협하지 않는 선비정신이야말로 자신의 서예를 지탱하는 뿌리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내공이 단단한, 진실함이 묻어난다. 그는 퍼포먼스 타묵(打墨)의 개척자다. “예술은 창작이어야 하며 글씨는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그만의 예술적 일화가 있다. 1999년 KBS 방송에서 시연해달라는 제의를 받고 16mm 큰 붓을 사용했는데 첫 번째 글자에서 붓이 나가지 않았어요. 제자가 “선생님 술 한잔하세요!” 소주 한 컵을 물 마시듯 들이키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붓에 힘이 붙어 일필 휘하 성공리에 마쳤다는 것이다. 마음이 굽어 있으면 필획이 흔들리고, 정신이 흐트러지면 글이 탁해짐으로 그래서 서예는 마음을 닦는 기본이라고 한다. 선생은 최근 디지털 문명에 밀려 서예가 소외되는 현실에서도 역설적으로 서예의 가치가 더 빛날 것이라고 했다.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찰나의 순간에 영원을 담아내는 서예야말로 현대인들의 메마른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장(藏)이라는 것이다. 율산의 계보는 영남 서예의 거목인 석재 서병오와 죽농 서동균의 제자 죽헌(竹軒) 현해봉으로 이어지는 영남 서예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서예가들이 영남 서예를 ‘투박하다’라고 평할 때마다, 선생은 오히려 “그 투박함이 바로 꾸밈없는 기개며 생명력”이라고 일러 준다. 자신의 호(號) 율산처럼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알차고 부드러운 영남 서예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서예가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4-12

가야의 시간이 스며 있는 산성을 찾아

가락국 시대에 축조된 여러 산성이 오늘날까지 그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산성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자연의 지세를 최대한 활용한 방어 유산이자,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삶의 흔적이다. 우리나라 산성의 기원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등장하는 강화도 삼랑성은 그 시원을 짐작하게 한다. 기원전 2300여 년 전 단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성은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제천의 자취를 전한다. 따스한 봄 햇살이 내려앉은 날, 가락국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산성들을 찾아 나섰다. 성곽은 흙으로 쌓은 토성과 돌로 축조한 석성으로 나뉜다. 먼저 찾은 곳은 김해시 진례면의 진례토성이다. 수로왕이 쌓았다고 전해지며, ‘진례면지’에는 신월리·신안리·송정리를 감싸던 토성이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산월마을 중심에 성벽 일부만 남아 있고, 주변이 밭으로 개간되어 보존이 절실해 보였다. 조상들은 ‘판축’ 기법으로 서로 다른 흙을 층층이 다져 성을 쌓았다. 무너져 드러난 흙층을 보며, 먼 곳에서 흙을 실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진례토성을 뒤로하고 양동산성으로 향했다.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해발 333m 정상부에 자리한 이곳은 테뫼식으로 축성된 석성이다. ‘가곡산성’ 또는 ‘내삼산성’이라 불리며, 둘레는 약 860m에 이른다. 동쪽과 남쪽 성벽 일부가 남아 있고,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삼한시대의 토기가 출토되어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삶터였음을 보여 준다. 양동산성에는 동·남·북 세 방향에 문터가 남아 있다. 줄이나 도르래로 여닫는 ‘현문식’ 구조는 신라의 특징이고, 문터 바깥 벽의 곡선은 백제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다른 요소가 함께 드러나는 이 모습은 경남 지역에서도 드문 사례라 한다. 성 위에 오르자 김해평야와 낙동강 하구가 한눈에 펼쳐졌다. 이곳에서 사방을 살피며 외적의 동태를 헤아렸을 사람들의 긴장감이 아득히 전해지는 듯했다. 바람은 땀을 식혀 주고, 눈앞에 열린 풍경은 산성이 지닌 자리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마현산성이었다.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무척산 서쪽 해발 215m의 독립 산봉우리에 자리한 이 산성 역시 수로왕이 쌓았다는 설이 전해진다. 둘레는 약 600m이며, 고려시대의 보수 흔적과 조선 후기까지의 사용 흔적이 남아 있다. ‘김해읍지’에는 이미 사라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번 답사에서 서쪽 능선 일대에 비교적 잘 남은 성벽 일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현산성은 가파른 지형에 맞춰 보조 성벽을 세워 2단으로 쌓았고, 자연 암반을 활용해 방어력을 높였다. 동·서·북 세 곳에 성문을 두었으며, 특히 북문은 내부가 곧장 드러나지 않도록 곡선 형태로 처리되어 있었다. 지형을 읽고 그에 맞춰 성을 쌓은 세심한 고려가 엿보인다. 마현고개는 예로부터 밀양과 김해를 잇는 관문이었다.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을 피해 피난처로 쓰였다는 전설은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짐작하게 한다. 이처럼 산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는 위태로운 시대를 견디고 삶을 지켜 내려 했던 사람들의 의지가 배어 있다. 가야 시대의 산성은 대부분 산지에 자리하며, 전시에는 방어의 전초기지로, 평시에는 행정과 통치의 중심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성벽의 흔적은 오래된 돌과 흙의 자취에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는 가야의 시간이 스며 있고, 그 시간을 지켜 낸 사람들의 삶이 함께 남아 있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6-04-12

불교 동자상 연원 알아보기

국립대구박물관에서는 1년짜리 기획물로 오는 10월 5일까지 동자상을 주제로 한 ‘알록달록 동자상’전을 복식문화 브랜드와 연계해 전시 중이다. 동자석 4점(복제품)과 목조 동자석 4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는 작년 9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석조물을 중심으로 조성한 ‘모두의 정원’과 연계해 전시 중이다. 동자상은 유교의 능묘미술에서 비롯됐다. 주로 돌로 만들어 무덤 앞에 설치하고 돌아가신 주인 곁을 지킨다는 의미다. 불교 동자상은 나무로 만들어 사찰의 명부전이나 지장전 안에 배치하여 보살 또는 시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시종으로 여겨졌다. 유교 동자상의 모습을 보면 머리 양쪽에는 상투를 틀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옷의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 같은 형태의 의복을 입고 붉은색 바탕에 초록색이나 파란색으로 장식된 것도 많다. 손에는 붓, 연꽃, 과일, 동물, 향 등의 물건을 들고 있다. 연꽃은 깨끗함을 상징하고 복숭아는 장수, 방망이는 무덤을 지킨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죽은 사람의 선과 악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붓을 쥐기도 하고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을 들기도 한다. 불교의 나이 어린 동자상은 청정한 세계를 표현한다. 사찰의 명부전이나 시왕상 좌우에 시자 형상으로 봉안된 동자상이 가장 많다. 동자는 사람의 생전 선업·악업을 기록해 두었다가 사후에 시왕에게 고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불교 동자상은 삼국시대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쌍으로 출토된 2.5㎝ 정도의 작은 유리제동자상이다. 이는 왕비 생존시 수호신격으로 옷에 부착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통일신라시대 동자상은 많지 않으나, 월출산 마애여래좌상에는 본존상의 무릎 옆에 부조로 합장 하고 있는 동자상이 있다. 고려시대 대표적 동자상은 수월관음도불화의 선재동자다. 조선시대의 동자상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오대산 상원사의 목조문수동자상이다. 이 상은 크기가 98㎝인 대형 상으로 복스러운 얼굴과 당당한 자세다. 1473년 건립된 도갑사 해탈문의 문수동자상과 보현동자상은 크기가 1.8m에 이르는 대형 목조상이다. 조선 후기의 동자상도 다수 전해지는데, 화엄사, 해인사같은 대규모 사찰들이 중창되는 과정에서, 조성된 상들이다. 완주 송광사 명부전의 소조동자상은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가장 이른 예이다. 지장보살상에서 발견된 복장문에 의하여, 1640년에 명부전의 다른 존상들과 더불어 일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8구가 전해지고 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12

작은 나눔이 이어준 치료의 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170여 명이 함께하는 한봉우리봉사단 단체 채팅 방에 메시지 하나가 올라온다. 평소에도 크고 작은 나눔이 이어지는 공간이지만 이날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짧은 문장 뒤로 무연고 독거 어르신의 긴급한 사연과 함께 ‘앰뷸런스 이송비 지원 요청 공문’이 첨부된다. 메시지는 길지 않았지만 상황의 절박함이 충분히 전해진다. 채팅창이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해진다. 글을 올린 이는 더휴재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는 하시현 센터장이다. 그는 포항시 해도동에서 홀로 사는 한 어르신의 위급한 상황을 조심스레 전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르신은 위암 판정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 항암치료를 이어오고 있었다. 쉽지 않은 치료과정 속에서 4차 치료를 앞두고 저혈압 쇼크로 포항 기독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시 임상치료를 위해 서울로 이동해야 하지만 장거리 대중교통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의료진 역시 안전한 이송을 위해 앰뷸런스 이용을 권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50만원의 이송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임상치료를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동이지만 앰뷸런스 비용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센터장은 먼저 행정적인 지원 방법을 알아본다. 긴급복지 제도를 포함해 적용 가능한 지원책을 하나씩 검토해 보지만 기준과 절차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결국 그는 마지막 방법으로 봉사단체 채팅 방에 용기를 내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채팅창에 알림이 하나둘 울리며 3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각자의 형편에서 보탠 작은 정성이 모이기 시작했다. 금액은 다르지만 마음의 무게는 같다. 순식간에 목표 금액을 훌쩍 넘긴 170여만 원이 모이며 채팅창을 따뜻한 온기로 채운다. 누군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모금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된다. 모금된 후원금으로 어르신은 무사히 앰뷸런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혼자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지만 많은 사람의 온정으로 다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마침 사설 앰뷸런스의 구급대장도 봉사단원으로 함께하고 있어 이송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는다. 이 일을 계기로 어르신은 도시락 봉사 대상 명단에도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나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하시현 센터장은 “정말 감사하다”면서도 “마음 한 편은 큰 빚을 진 것처럼 무겁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사각지대의 어르신들을 마주할 때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재가센터의 역할 중 하나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과 지원 가능한 자원을 연결하는 일이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며 “도움이 꼭 필요한 분들이 제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이 일은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냈고, 또 누군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민다. 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손길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지켜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어낸다. 채팅방에 올라온 짧은 문장 하나가 만들어 낸 작은 온정. 그 과정을 지켜보는 봉사단원들의 마음에도 따스한 온기가 번진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