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사회

2025 대구선배시민대회, 고령친화도시 대구! 선배시민이 길을 열다

대구시 노인종합복지관협회(회장 김진홍)는 지난 24일 오전 대구보건대 인당아트홀에서 ‘2025 대구선배시민대회 – 고령친화도시 대구! 선배시민이 길을 열다’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대구광역시와 보건복지부가 후원하고,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iM금융그룹, 대구보건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주택금융공사 대구지사, ㈜마이하우스 등이 함께했다. ‘선배시민이 길을 열다’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이번 행사는 초고령사회를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어르신이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닌 ‘공동체의 주체’로서 지역사회를 이끄는 주도적 모델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뒀다. 행사는 1부 기념식, 2부 정책대회, 3부 지역경제활성화 캠페인으로 구성됐다. 기념식은 우지연 범물노인복지관장의 사회로 ‘한국 에어로폰 오케스트라’와 ‘함지노인복지관 북치고장구치고팀’의 식전 공연으로 흥겹게 막을 열었다. 이어 대구시 9개 구·군 26곳의 복지관 73개 선배시민 봉사단 대표단 입장을 시작으로 대구시장상, iM선배시민대상,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장상, 대구시 노인복지관협회장상 등 유공자 16명(단체 포함)에 대한 표창이 이어졌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시상과 축하의 자리가 아니라, ‘고령친화도시 대구’의 실현을 위한 시민주도적 정책 플랫폼으로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진홍 대구시 노인종합복지관협회장은 “고령친화도시 대구의 실현은 행정의 정책뿐 아니라 지역 어르신의 자발적 참여가 함께할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대회를 계기로 ‘선배시민 리더십 아카데미’, ‘세대공감 마을포럼’ 등 시민참여형 고령친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5-10-26

대구 지역 내 초등학교 가을운동회 일제히 열려

해마다 가을에는 초등학교 운동회가 열린다. 올해도 대구 시내 모든 초등학교가 이달 중순까지 어울림한마당 등 다양한 이름으로 운동회가 일제히 열렸다. 달서구에 있는 대구 용산초(교장 이석수)는 지난 16일 학교 운동장에서 ‘용산 가족 공감 행복어울림한마당’이란 제목으로 가을운동회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이날 개회식은 개회 선언과 국민의례, 우승기 반환, 학교장 대회사, 내빈 축사, 학생대표 선서, 준비체조 순으로 진행됐다. 운동장에는 모처럼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만국기가 펄럭였다.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경기가 진행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움에 차 있었다. 특히, 커피 트럭 운영돼 큰 호응을 끌었다. 학생들에게 미리 쿠폰을 나눠주며 각 가정에 커피 한 잔씩을 제공해 가을운동회의 즐거움을 더했다. 경기 종목은 각 학년의 트랙 개인 달리기, 필드 단체 경기, 청백 계주, 학부모 줄다리기, 조부모 고무신 날리기 등으로 구성됐다. 폐회식은 정리 체조, 성적발표, 우승기 수여, 대회장 말씀, 교가 제창, 폐회선언 순으로 이뤄졌다. 경기 때마다 질서 정연하고 함께 응원하는 모습이 평소 균형 잡힌 학교내 교육활동 모습으로 비춰졌다. 이웃 주민으로 함께 관람한 퇴임 교장 김 모 씨는 과거의 엄격한 질서 운동에서 벗어나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움직이는 체조가 보기 좋았으며 학부모를 고려한 커피 트럭 운영이 이색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경기 종목이 기존의 정형화된 모습에서 탈피해 창의성이 가미된 새로운 종목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0-26

선혜원(鮮慧院), 한옥의 고요와 현대 예술의 호흡

서울 삼청동에 자리한 한옥 선혜원은 SK그룹 창업주 고(故) 최종건 회장의 사저로 사용되던 곳이다. 그룹의 주요 경영진이 SK의 미래를 논의하던 이 공간은 3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한다. ‘선혜원 아트프로젝트’의 첫 전시로 김수자 작가의 개인전 ‘호흡-선혜원’(2025년 9월 3~10월 19일)이 열렸다. 입구에는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한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시선을 위로 두니 ‘선혜원(鮮慧院)’이라 새겨진 현판이 위엄 있게 걸려있다. 이 곳은 경흥각(京興閣), 하린당(賀隣堂), 동여루(同輿樓) 세 동이 디귿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선경(鮮京)을 흥하게 한다’는 뜻의 경흥각, ‘이웃을 돕는다’는 하린당, ‘사회와 함께 한다’는 동여루. SK의 창업 철학이 깃든 이름들이다. 한옥의 격조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고요하고도 품격 있는 기운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가파른 계단 끝에서 마주한 창연문(昌演門)은 마치 사찰의 일주문을 연상시킨다. 경건한 분위기의 문을 지나면 높고 기품 있는 지붕 선을 가진 경흥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길을 끄는 지붕 위 잡상에도 특별한 의미가 담긴다, 왼편의 ‘建賢戠人源株百(건현시인원주백)은 SK그룹 창업주와 후계자 그리고 100주년(2053) 등을 상징하며, 오른편에는 SUPEX(Super Excellent)의 경영철학을 형상화한 토우들이 놓여 있다. 잡상은 조선시대 궁궐 건축에서나 볼 수 있는 상징물로 선혜원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경흥각 내부에 들어서면 한옥의 품격이 곧 예술이 된다. 바닥 전체가 거울로 마감되어 천장의 목재 구조와 관람객의 모습이 끝없이 반사된다. 현실과 허상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에서 관람자는 ‘걷는 행위’ 자체로 작품의 일부가 된다. 전통과 현대, 개인과 타자가 공존하는 시공간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경흥각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전환시킨 작가의 대표 연작 ‘보따리’는 이동, 정체성, 기억을 품는다, 여행을 하거나 이사를 할 때 소지품을 천에 싸서 묶는 한국의 전통적인 생활 도구 ‘보따리’를 현대 미술 언어로 끌어올려 이주와 디아스포라 그리고 삶의 흔적을 담는 이동식 보금자리로 재해석 한다. 거실 역할을 하는 하린당에는 조선백자 달항아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반구형도자기가 전시 되어 있다. 두 그릇을 맞붙인 비대칭 구조는 보름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 그리고 보따리를 연상시킨다. 지하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는 해와 달이 상징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아래층에 전시된 세 개의 ‘보따리’ 작품이 또 다른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화장실조차도 예술의 일부다. 전시 관람 후 동여루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바라본 경흥각 전경은 웅장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절제의 미를 보여준다. 한때 재벌이 거주하던 사저이자 기업의 역사를 품은 이 한옥이 이제는 예술의 무대로 거듭난다. 김수자의 개인전 ‘호흡-선혜원’은 전통과 현대, 공간과 인간의 ‘숨’을 하나로 엮는다. 시간별 예약제로 운영되는 덕분에 관람객은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옥의 고요함을 만끽하며 유유자적한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 선혜원은 기업의 철학이 예술로 승화된 공간으로 앞으로 더 많은 작가와 더 깊은 예술이 머무는 ‘예술의 성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23

‘봉화 보부상 한마당’ 현장 가보니

2025년 제5회 봉화 보부상 한마당축제가 지난 18일 500여 명의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보부상 위령제로 시작해 길놀이, 전통민요 공연, 봉화 보부상 마당놀이, 보부상 퀴즈 등으로 신명 나고 즐거운 축제가 진행되었다. 조선 시대 봉화군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내성행상단은 대한제국 시기 상무사로 정비되면서 봉화 상무사로 활동했다. 이 보부상단의 문화와 유물을 보존하고 문화관광 자원화하기 위한 정례화 된 축제였다. 조선시대 보부상은 전국에 걸쳐 있었으며 구한말에는 상무사로 전국 모든 군에 설치하였고 봉화 상무사는 1860년경 조직되어 봉화군과 울진군 장시를 관리했다. 보부상은 복장, 인사법, 직업윤리, 조직체계와 규율을 갖고 1960년대까지 봉화·울진 십이령과 봉화군 물야면 애전마을에서 명맥을 유지했었다. 조선 보부상의 풍속은 그 자체가 한국의 상인문화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고 다양했다. 봉화 상무사를 통해 고유한 우리의 상인문화, 전통시장 문화를 보존하고 지역의 문화적 자원으로 콘텐츠화해 올해 5회째 축제를 열었다. 축제가 열린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애전마을은 봉화 보부상들의 활동 거점 중 한 곳으로 보부상 합동 위령비가 있는 곳이다. 애전마을의 보부상들은 홀아비 보부상들이 대부분이며 이들의 이름은 조선시대 보부상의 작명 관행과 일치하는 성과 출생지 지명을 합친 이름을 사용했다. 이 보부상들은 처자식이 없이 홀아비로 살다가 자신들의 논과 밭을 마을에 남기고 죽었고, 마을 사람들이 경작하고 토지세를 모아 80년 이상 추모제사를 이어가고 있다. 예전 보부상들이 살았던 삶터는 댐이 생기면서 수몰되었지만 마을 인근에 위령비를 세워 매년 합동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댐의 좌측으로 8기 이상의 보부상 묘가 있었으나 2000년대 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사라졌다. 애전마을은 강원도 영월, 울진 흥부장, 충북 단양, 봉화의 내성장, 안동, 영주, 풍기 등 150리길 내외의 중간지점으로 소설가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서 주인공인 보부상 천봉삼이 정착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는 곳이다. 애전마을 위쪽에는 보부상이 주인이었을 사기점이 있었으며, 조선 성종 때 보부상이 발견했다는 오전 약수탕이 있는 곳이다. 이런 귀중한 자원들과 애전마을 삶터, 주막 등을 재현한 기념관 또는 역사관 건립이 필요해 보인다. 보부상들은 엄격한 행상 윤리와 가치 규범, 조직의 실천규범을 두고 구성되었으며 특히 조직원 상호간의 유기적 관계를 강조해 병든 사람은 구해주고 죽은 사람은 장례를 치러주며 서로 호형호제했다. 또한, 윗사람을 공경하는 가치 규범과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관리되었다. 봉화 보부상들의 상부상조 정신과 토지를 남겨 기부로 이어진 교훈이 길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23

가을의 속삭임, 성주에서 만난 예술의 온기

지난 11일, 추석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 만학도 동기들은 가을 기운이 부드럽게 스며든 경북 성주군 월항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과거 문예지 출판 기념회를 함께 치렀던 인연을 따라, 변화한 공간을 기대하며 찾은 복합 문화공간이 있었다. 그 이름은 아트리움 모리와 브런치 카페 트리팔렛이다. 고요한 시골 마을 어귀에 위치한 아트리움 모리는 한때 제조 시설이던 공간을 완전히 정리하고 복합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해 있었다. 본관 전시장 아트리움 모리, 미디어 및 설치 중심의 아트스페이스 울림, 청년 작가 레지던시 공간 유촌창작스튜디오, 문화·상업 기능을 함께 지닌 아틀리에 샘,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결의 축인 브런치 카페 트리팔렛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공간을 연 구복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흔들림 없이 우직한 산처럼, 여린 작가와 맑고 투명한 작품들을 듬직하게 품어주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그 말처럼, 아트리움 모리는 단지 전시만 보여 주는 장소가 아니라 감각과 기억을 담아내는 ‘예술의 그릇’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본관에서는 임도 작가의 개인전 ‘잠 못 드는 이들의 나이테’가 전시 중이었다. 우리는 한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버려진 나뭇가지 하나, 조용히 쌓인 결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며 작가의 내면과 깊게 마주하려는 듯한 집중이 이어졌다. 작품은 말없이 속삭였고, 우리는 그 침묵을 듣고자 귀 기울였다. 본관을 나와 아트스페이스 울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선 두 개의 전시가 만학도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는 구영웅 작가의 작품 ‘Particles – 별, 고을’. 집 모양의 캔버스를 중심으로, 빛나는 판이 중첩되어 화면을 채웠다. 영웅신화처럼 찬란한 색채가 공간을 가로지르며, 관람자는 그 속으로 끌려 들어갈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두 번째로는 노진아·서해영·제승규 등 23인의 조형 작가들이 참여한 기획전 ‘Paradox’. 이 전시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한 설치 장치와 관람객 간 상호작용이 시도된다. 우리도 장치와 눈빛과 대화로 소통을 시도했는데, 인공지능이 응답할 때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이 공간에 스며들었다. 전시 관람 후 우리는 카페 트리팔렛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유리로 둘러싸인 실내에서 들판과 산의 풍경이 시야에 펼쳐지고, 자연을 배경으로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더불어 전시장과 카페를 연계한 관람 할인제도는 방문객이 공간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머무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었다. 한 지역 예술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의 예술 생태계 속에서, 아트리움 모리처럼 지속성과 정체성을 가진 복합 문화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귀한 일이다.” 그의 말처럼 모리는 2022년 개관 이후 전시 규모를 점차 확장했고, 청년작가 공모전 ‘모리 영 아티스트’를 운영하며 레지던시 공간까지 갖춘 예술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왔다. 청년 예술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관객들에게 문화를 향유할 공간을 마련하는 이 복합 문화공간이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다만, 공간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 측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구복순 대표의 초심과 의지 외에도, 지자체의 지원과 관심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날의 동기생들의 나들이는 단순한 문화 체험을 그 이상으로, 예술과 삶이 조용히 섞이는 순간을 만나는 기회였다. 아트리움 모리와 트리팔렛은 그 감성을 오래도록 간직해 줄 추억의 장소로 우리들 마음에 새겨졌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23

고슬고슬 방금 지은 하얀 쌀밥에 특별한 가자미 조림 ‘이맛이야!’

김떡순을 아는가, 동생은 김튀순. 학교 앞 분식집의 메뉴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하굣길에 김밥, 떡볶이, 순대를 친구들과 다 시켜서 나눠 먹곤 했다. 학교마다 교문 앞에는 분식집이 꼭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듯 학생들은 꼭 들러 어묵을, 라면을, 쫄면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아마 시작은 분식이었으나 지금은 백반집이 된, 이름만 분식일 뿐 밥이 맛있는 집이 있다. 영덕 야성초 옆에 자리했다. 토마토라고 하면 신세대, 도마도라고 알면 쉰세대라는데, 간판에 신세대와 쉰세대를 섞어서 ‘도마토 분식’이라고 붙었다. 간판도 외관도 바래서 장사 안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낡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에 손님이 벗어놓은 신발이 가득하다. 거실과 방에 앉은뱅이 테이블이 두 개 놓인 아담한 가게이다. 벽에 영화 그랑블루 포스터가 걸렸다. 1988년 뤽 베송 감독의 영화다. 오래된 노포라는 듯 창문이며 벽지, 장판, 벽에 불을 켜는 스위치도 시골 외할머니댁에 온 듯하다. 심지어 에어컨도 없다. 그래서 한여름에는 이곳에 가기가 쉽잖다. 하지만 오래되었을 뿐 끈적거리지도 않고 찌든 냄새도 없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자마자 영덕에 사는 언니와 함께 찾았다. 근처 공무원들의 점심시간에 맞춰 가면 두 명이 한 테이블 차지하는 게 미안해서 한소끔 지나갔다. 메뉴는 주문할 필요도 없다. 몇 명인지만 말하면 알아서 차려준다. 자리에 앉으면 먼저 물을 내온다. 생수병에 든 것은 갈색 물, 보리차다. 이 집은 물 맛집이다. 반찬이 먼저 나왔다. 무생채, 오뎅볶음, 콩나물무침, 초록색의 나물은 그때그때 나는 제철 나물무침, 배추겉절이, 한 장 한 장 양념 바른 깻잎무침, 멸치볶음이거나 코다리조림일 때도 있고, 도라지무침. 나물 반찬은 모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다듬고 데치고 무치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슬로우푸드다. 그러고도 맛이 없는 음식점이 많지만 도마토 분식은 다 맛나다. 그리고 이 집만의 특별한 반찬으로 가자미조림이 때깔 좋은 양념을 입고 군침을 삼키게 했다. 가자미조림이 뭐 그리 특별하냐고 되묻는다면, 나는 보통 다른 집에서 가자미조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 두 손 다 써서 애를 써도 발라지지 않으려고 바싹 붙어서 입에 들어오는 것보다 버려지는 게 많고 열 손가락에 양념이 손톱 사이에 다 스며들어 기분도 찜찜해지기 때문이었다. 도마토 분식의 가자미는 성격 좋은 시누처럼 젓가락으로 발라도 슬 벗겨진다. 간도 딱 맞아서 사장님께 늘 더 주실 수 있냐고 물어보면 덤을 주신다. 하지만 워낙 비싼 재료란 걸 안다. 반찬과 함께 대접에 고슬고슬하게 방금 한 밥이 나온다. 구 첩 반찬을 넣고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내며 마지막에 상에 오르는 된장찌개를 넣고 비벼 먹으라고 대접에 밥을 주는 거다. 밥은 먹고 싶은 만큼 더 먹어도 된다. 하지만 먼저 깻잎 한 장 떼서 하얀 쌀밥에 싸서 맛본다. 그래, 이 맛이야! 구 첩 반찬을 골고루 먹다 보면 밥이 모자라 떠오고, 보탠 밥에 찬이 모자면 또 더 준다. 어느새 배가 턱까지 차오른다. 문 앞에는 후식으로 믹스커피를 셀프로 타서 먹도록 했다. 말 잘하면 근처에 단체배달도 한다고 했다. 도마토 분식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영업한다. 일요일은 휴무이니 미리 연락해 보는 게 좋다. 주차 공간은 따로 없고 바로 근처에 공영주차장이 있고, 길가에 적당히 대야 한다. 영덕읍 덕곡4길 5-1이며 네이버에는 ‘도마토’를 ‘토마토’로 고쳐 적어놓았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21

역사의 흔적을 걷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에 자리한 일본인 가옥거리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선 목조 가옥과 일본식 기와지붕, 미닫이문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정착하며 남긴 생활의 흔적을 지금의 우리에게 전한다. 이 거리가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구룡포가 동해안 어업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부터다. 일본인들은 이곳에 대거 정착해 어업권을 장악했고, 집과 상점을 짓고 마을을 형성했다. 그 시절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여겨진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꼭 들러볼 만한 장소다. 이곳은 1920년대 일본 상인의 저택을 리모델링해 만든 전시관으로,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비롯해 구룡포 근대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내부에는 생활용품, 가구, 어업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어 외형과 함께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일상을 살았는지를 생생히 체감할 수 있다. 거리 한쪽에 놓인 계단에는 당시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이주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들이 떠난 후, 구룡포 주민들은 시멘트를 발라 그 흔적을 모두 지워버려 시멘트가 발린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서면 만날 수 있는 충혼탑은 해방 이후 지역을 지켜낸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떠난 흔적 위에 세워진 충혼탑은, 그 자체로 시대가 남긴 상처와 극복의 역사를 함께 보여준다. ‘구룡포’는 ‘아홉 마리의 용이 바다로 승천했다’는 전설로부터 만들어진 이름이다. 이를 형상화한 9마리 용 조각상이 구룡포를 지키듯 서 있어, 마치 전설 속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듯한 특별한 인상이 남았다. 이곳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으로 더 잘 알려진 장소가 되었다. 주인공 동백이 운영하던 가게 ‘까멜리아’의 배경을 비롯해 극의 주요 장면들이 바로 이 거리에서 촬영되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고, 일본인 가옥거리는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문화·관광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기념품 가게들도 여럿 만날 수 있다. 포항 바다를 형상화한 소품부터 재미있는 디자인의 상품까지 다양한 기념품이 즐비했는데, 시민기자 역시 집게 모양 빨간 볼펜으로 추억을 챙겼다. 손에 쥐자 마치 이곳에서의 기억을 집어 온 듯한 기분이 들어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특별한 상징이 되었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계단에 새겨진 이름과 충혼탑, 그리고 근대역사관과 용 조각상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와 전설을 되새기게 했고, 드라마 촬영지와 기념품 가게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추억을 선물해줬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거리는 기억을 간직하고 나누는 일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21

요즘 달라진 결혼식 풍경

주말에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2주 전에 도착한 모바일 청첩장엔 짧은 소개 글과 부모님의 성함과 당사자의 이름, 예식장의 지도와 함께 축의금 송금 계좌번호도 따라왔다. 축의금을 직접 손으로 건네면 아날로그의 맛이 있지만 축의금을 받고 봉투를 열어 직접 돈을 세고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이 적잖이 신경 쓰이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결혼식장으로 향하기 전 바로 송금한다. 최근에는 절도 방지를 위해 키오스크를 설치한 결혼식도 있다지만 축하해야 할 일에 돈이 앞서는 것 같아 아직까지는 내키지 않는 풍경이다. 버진로드에 장식한 꽃들은 딱 필요한 만큼만 있어 예식을 보기에 편하고 기분까지 좋아졌다. 신랑 측 하객이었지만 평소에 신랑 측인지 신부 측인지 별생각 없이 지인들 따라 앉았던 자리도 신부 측은 하객 기준으로 오른쪽이라는 것도 알았다. 버진로드로 입장하는 신부의 위치와 같은 방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식은 경쾌하게 흘러갔다. 예식 선언과 신랑 부모가 덕담을 한다. 신부가 입장할 차례가 되자 당연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신부는 홀로 입장했다. 그 모습이 새로웠지만 당당해 보였다. 결혼식 후 식사하며 지인에게 이야기를 하니 요즘은 신부가 홀로 입장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손을 넘겨잡는 게 부계사회의 전통에 따라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 있다가 남편에게 인도된다는 의미를 Z세대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한다면 신랑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결혼식은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다. 주례사를 듣는 대신 신랑 신부는 서로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를 낭독했다. 신부가 신랑에게 마음 깊이 사랑한다는 말로 끝맺자, 하객들은 박수로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신랑과 신랑 친구들의 노래와 춤으로 이어졌다. 한 편의 작은 공연이었다. 결혼식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공연 중간 추임새처럼 웃고 즐거운 눈빛을 보내는 하객들도 결혼식에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어 모두 즐거웠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도 요즘의 대세가 된 결혼식 풍경이다. 예전의 주례와 주례사를 떠올려 보면 결혼식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확실히 지루했다. 은사님이나 사장님 등 자신이 잘 아는 분이라도 훈화 같은 말씀에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용은 기억나지도 않고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멋진 주례사대로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 많던 주례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30분이 안 되는 짧은 결혼식 시간이 지루했던 주례사를 조용히 사라지게 만든 것도 있다. 여기에 2030 세대들은 자신들만의 결혼식을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늦은 나이에 하는 결혼이 많아지면서 더욱 그런 분위기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 중 하나가 주례였는데 우리의 전통결혼식에도 주례는 원래 없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양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결혼식에도 주례가 생긴 거였다. 요즘은 결혼식을 간단하게 하고 본인들의 결혼식에 집중하려는 분위기로 인해 주례가 없어지고 있다. 결혼식도 시대를 반영한다. 주례와 주례사 없는 결혼은 누군가 나이 지긋한 분의 권위에 기대어 하는 약속보다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하는 말로 서로에게 전하는 약속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환영하는 시대다. 결혼식을 끝내고 첫걸음을 내딛는 한 쌍의 앞날이 행복하길 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21

가을장마에 벼 수확 차질···농민 깊은 한숨

올해 대구·경북지역은 7~8월 태풍 없이 가뭄이 지속되며 골짜기 논마다 논물이 말라 붙었다. 농민들은 더위 속에서 저수지와 수로의 물을 2단, 3단 끌어올려 사용하는 등 고된 농사를 이어갔다. 다행히 병해충 발생이 적었고, 8월 중순까지 벼가 순조롭게 출수하여 고개를 숙일 때는 올해 풍년을 기대하기도 했다. 상주 지역의 경우, 예년 같으면 9월 하순부터 콤바인으로 벼 수확을 시작하여 10월 20일경이면 대부분의 작업이 마무리된다. 자가 식량을 위하여 논에서 벼알을 말려 수확하는 등 일부 논만 남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올해는 9월 하순부터 추석 연휴 기간 내내 비가 내렸고 10월 중순까지 비가 이어져 벼 베기를 못한 농민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비가 안 온다해도 무논은 논이 질어 콤바인 진입이 어려운데 대부분 논이 물이 빠지지 않아 콤바인 작업이 어렵다. 특히 콤바인이 없는 위탁농가들은 벼 수확을 위한 일정잡기가 어려워 속만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부 조생종 품종은 이삭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현상이 나타나고 쓰러진 논의 벼 이삭에서 싹이 나는 등 품질 저하나 수확량 감소도 우려된다. “농사는 하늘이 짓지, 사람이 짓는 게 아니다”라는 옛 어르신의 말이 생각난다. 지난 주말인 19일까지 비가 이어져 벼의 수발아 피해가 확산될 우려가 있고 쓰러진 논의 벼에서 싹이 트고 있어도 농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발만 동동 구르는 농민들의 한숨만 커진다. 비가 그친 뒤에는 조속히 논둑의 물고를 깊게 잘라 배수 작업을 실시하고, 가능한 빠르게 수확을 진행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상주시 외서면에서 평생 벼를 재배하고 있는 토박이 길윤균(82)씨는 “작년에는 10월 16일에 동네에서 제일 늦게 벼를 베었는데, 올해는 15일인데도 아직 벼베기를 시작한 농가가 없다”며 “이번 주에도 비가 예보돼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가을 장마로 인한 수확 지연과 품질 저하로, 상주를 비롯한 경북 내륙지역 벼 재배 농가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1990년대 콤바인이 보급되기 전 상주 지역에서는 낫으로 벼를 베면서 큰 단으로 묶어 두 단의 이삭 부분은 붙이고 밑부분은 벌여 논바닥에 세워서 벼 이삭이 다 마르면 탈곡기로 탈곡을 하였다. 올해 같으면 세워둔 볏단에서 싹이 다 났을 것이다. 달성, 고령, 청도 등 남부지역에서는 벼를 베면서 논에 깔아 말려서 작은 단으로 묶어 탈곡하였다. 콤바인이 보급되면서 농협이나 개인이 미곡종합처리장을 설치, 물벼를 받아 건조를 하고 있으니 비가 오지 않으면 콤바인이 빠지지 않는 논부터 들어가서 빨리 벼를 베야 한다. 동시에 탈곡 작업을 실시해 최소한의 피해를 줄여야 할 것이다. 농민들의 시름을 달래줄 화창한 날씨만 기다리는 요즘이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5-10-19

인공지능 기반 주민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본격 시동

대구광역시 남구(구청장 조재구)는 지난 15일 남구보건소에서 'ABB 융합기술 헬스케어존 시연회’를 열고,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주민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 실증사업에 나섰다. 이번 시연회는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이 주관하는 ABB(AI·Big Data·Blockchain) 융합기술 개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남구는 지난 6월 AI·빅데이터 전문기업 ‘더아이엠씨’와 비대면 진료 전문기업 ‘솔닥’ 컨소시엄과 함께 대표 실증 지자체로 선정되어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를 선보이게 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혈압, 체성분 등 주요 건강지표를 자동으로 측정하고, 인공지능이 분석한 건강 상태를 모바일 기기를 통해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시연됐다. 수집된 데이터는 대구시가 운영하는 ‘다대구(DA-Daegu)’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을 통해 안전하게 저장돼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신뢰성을 확보했다. 남구보건소 이명자 소장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건강관리 서비스가 남구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모든 세대가 건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재구 남구청장은 “이번 헬스케어존 구축은 민관 협력을 통해 구민 건강증진과 행복한 노후를 지원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며 “보건소와 배나무샘골마을문화센터 등 두 곳에 시범 설치한 만큼, 향후 지역 전역으로 확대해 건강 측정·예방관리의 거점 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남구청은 앞으로도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보건서비스 확대를 통해,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포용적 건강도시 남구를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0-19

제39회 대구전국사진촬영대회 성료

한국사진작가협회 대구광역시지회(지회장 이호규)가 주관한 ‘제39회 대구전국사진촬영대회’가 지난 18일 대구 수성못 인근 수성아르떼랜드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진애호가 200여 명이 참가해, 흐린 날씨 속에서도 카메라 셔터 소리를 쉼 없이 울리며 열정을 쏟았다. 개회식에는 주호영 국회부의장, 이재화 대구시의회 부의장, 윤영애 기획운영위원장, 정일균 문화복지위원, 김대권 수성구청장, 조규화 수성구의회 의장, 최미경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장, 이창환 대구예총 회장, 강정선 수석부회장 등 내외 귀빈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들은 “사진을 통한 문화 교류가 지역의 예술 역량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행사장은 이른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인 참가자들로 활기가 넘쳤다. 모델들은 전통 한복, 현대 패션, 이색 콘셉트 등 다양한 복장으로 무대를 장식했고, 외발자전거의 묘기와 옛 보부상 부부의 전통복장 모습들을 한 참가자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피사체로 담아내며 예술적 감각을 겨뤘다. 특히 올해 대회는 ‘비 속의 감성’을 주제로 한 자유 촬영이 가능해, 우중의 안개와 빗방울을 배경으로 한 독창적인 작품이 다수 탄생했다. 또한 전국 각 시·도에서 참가한 사진단체 지회·지부장들도 함께해 사진예술을 통한 우정과 단합의 장을 마련했다. 대회는 단순한 경연의 의미를 넘어 사진인들이 작품 세계를 공유하고 창작의 영감을 나누는 소통의 축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소담하모니밴드의 신명나는 공연이 더해져 축제 분위기를 한층 끌어 올렸다. 이호규 지회장은 “올해 39회 맞는 대구전국사진촬영대회는 오랜 전통과 명성을 이어온 전국 규모의 행사”라며 “앞으로도 지역의 아름다움을 전국에 알리고, 사진예술을 통해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장을 지속적으로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 촬영된 작품들은 심사를 거쳐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 전시되며 우수작은 한국사진작가협회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0-19

가을장마, 사라진 농사의 계절감

“가을비 한 번으로 농사 반을 잃는다” “가을비 하루에 곡식이 열섬 준다”는 속담은 농부의 가슴에서 나온 말이다. 수확을 앞둔 들녘에 비가 내리면 알곡은 젖고 낱알은 썩는다. 그래서 가을비는 수고를 앗아가는 원수였다. 그런데 요즘의 가을비는 예전과는 다르다. 하루 이틀로 그치지 않고 장마처럼 길게 내린다. ‘가을장마’다. 올해도 한여름의 폭염이 끝나자마자 가을장마가 들이닥쳤다. 연일 이어지는 비구름에 벼는 눕고, 과수는 떨어지고, 콩밭은 진흙 속에 잠긴다. 기후변화가 계절의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예전에는 장마가 7월의 한철이었지만, 이제는 10월까지 이어진다. 기온이 높아지면서 대기 중 수증기가 늘고, 북태평양 고기압이 늦게 물러나기 때문이란다. 가을장마의 과학적 배경은 이렇다. 여름철의 북태평양 고기압이 평년보다 오래 지속되며, 그 북쪽에서 찬 대륙성 공기와 부딪쳐 정체전선을 만든다. 이 전선이 한반도 상공에 머무르면 남쪽의 따뜻한 수증기가 계속 유입되어 장마와 유사한 강수 패턴이 형성된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기층이 더 많은 수증기를 품게 되면서 한 번의 강우량이 과거보다 크게 늘었다. 기상청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가을철 강수량은 평균보다 20% 이상 증가했고, 장마 기간도 1~2주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환경의 변화는 단순히 일시적인 이상기후가 아니다. 농사는 계절의 리듬에 맞춰 흙과 하늘이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그 리듬이 깨지면, 모든 농작물의 파종 시기, 수확 시기, 병충해 방제 계획이 모두 틀어진다. 기계화로 노동은 줄었지만, 자연의 변덕 앞에서는 인간의 계산이 늘 뒤처진다. 가을장마는 농작물의 품질에도 직격탄을 준다. 벼는 낟알이 여무는 시기에 과습을 만나면 미질이 떨어지고, 과일은 당도가 낮아진다. 곰팡이와 병충해가 번식하면서 저장성도 크게 줄어든다. 결국 시장의 가격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소비자 역시 그 피해를 나눠 지게 된다. 이제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대책도 일회성 재난지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기후 패턴의 변화에 맞춘 품종개발과 농업 인프라 재편으로 나아가야 한다. 논과 밭의 배수 체계, 저장시설의 확충, 재해보험의 현실화가 모두 시급하다. 무엇보다 농업을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생태적 기반산업으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 가을장마가 길어질수록 ‘하늘이 도와야 농사가 된다’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인간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연의 균형이 무너지면 먹거리의 안정은 없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조화를 되찾는 일, 그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농정의 출발점이다. 물기 품은 나락, 알갱이가 털어지지 않는 들깨. 설익은 콩깍지를 바라보는 농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5-10-19

당당함에도 정직과 겸손이 필요하다

지난 추석, 차례상 장을 보기 위해 죽도시장을 찾았다가 마음이 편치 않은 경험을 한다. 죽도시장에 들어서면 ‘손님이 왕’이라는 말이 무색할 때가 있다. 가격을 묻거나, 영수증을 요청하거나 카드를 내밀면 단호히 거절하면서도 외려 당당한 상인들이 적지 않다. 묻고, 요구하고, 내미는 쪽이 잘못된 분위기다. 평소 죽도시장보다 대형마트나 로컬푸드 직매장을 더 자주 찾게 된다. 가격이 명시되어 있어 흥정이 필요 없고, 생산자의 이름까지 적혀있는 로컬푸드 직매장은 신뢰감을 더한다. 그러나 추석 명절을 맞아 일부러 죽도시장으로 향한다.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으로 명절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상인들을 걱정 하는 언론 보도, 그리고 국산 농축산물과 수산물을 구매시 온누리 상품권 환급 행사도 진행한다는 소식이 있어 지역 상권도 돕고 환급행사도 참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염려와 달리 죽도시장은 주차부터 전쟁이었고 시장 골목은 대목장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손이 모자라는 듯 분주히 움직이는 생선가게 앞에서 잘 마른 생선을 고르니 이미 팔린 거란다. 다른 생선을 고르고 포항사랑상품권을 내밀며 영수증을 요청하니 영수증 발급은 안 된단다. 카드기기가 없다며 선심 쓰듯 “상품권을 받아주지 않았냐”기에 환급행사에 영수증이 필요하다니 “우린 그런 행사가 있는 줄도 모른다”며 약간의 언성을 높인다. ”영수증 발급을 못해 주시면서 왜 그렇게 당당 하시냐“고 물으니 ”이렇게 장사한 지가 몇 십 년인데 안 당당할 게 뭐 있냐“며 도로 역정을 낸다. 바쁜데, 뜬금없는 영수증 요구가 너무 성가시다는 표정이다. 영수증을 포기하고 문어 사러 간다. 역시나 가격이 올라 있다. 그래도 차례 상에 늘 오르던 것이 안 오르면 섭섭하니 좀 비싸도 한 마리 고른다. 영수증을 요청하니 이곳도 발급이 안 된다. 역시나 환급 행사를 어디서 하는지 모르겠다며 “저쪽 시장에서 하나?” 얼버무린다. 온누리 상품권 환급은 그냥 포기한다. 시장 중앙 노점상 할머니께 콩나물 2000원 어치 달라 하니 “요즘 2000원이 어딨노. 기본이 3000원이다”라며 툭 던지는 말에 그냥 돌아선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이 많으니 민생지원금도 포항사랑카드도 무용지물. 명절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던 상인들의 하소연이 무색할 만큼 시장은 활기차고 손님들은 넘쳐난다. 왠지 속은 기분으로 죽도시장을 빠져 나온다. 전통시장 이용을 장려하기 위한 포항시의 배려로 공영주차장은 3시간 무료다. 못다 본 장을 보기 위해 로컬푸드 직매장으로 향한다. 포항시에서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50억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뉴스를 접한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전통시장의 생명력은 정(情)과 신뢰, 그리고 편리함의 공존에 있다”고.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인들의 ’정직‘과 ’진심‘이다. 그들의 당당함은 오랜 경험과 자부심에서 비롯되지만, 그 속에 정직과 겸손이 더해질 때 진짜 신뢰가 완성된다. 그러나 그 당당함이 고객을 향한 배려를 잃는 순간 오만이 된다. 젊은 감성의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정직하고 친절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려 노력하는 죽도시장이지만 일부 잘못된 당당함이 정직한 상인들의 노력에 흠집을 낸다. 전통시장의 지속가능한 발전은 제도보다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당당함에도 정직과 겸손이 필요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16

‘밤의 도산서원’이 궁금하세요?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74년에 지어진 서원이다. 안동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이자 안동시민이 자랑하는 품격 있는 공간이다. 그간 도산서원은 낮 동안 관람객을 맞이했는데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후 이듬해인 2020년 가을, 445년 만에 처음으로 야간에 개방했다. 6회째 되는 올해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과 추석 연휴를 맞아 9월 27일부터 10월 12일까지 16일간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입장료 없이 야간 특별 개장을 하였다. 매표소 앞에서는 한복, 갓, 유건 등을 무료로 대여해 주었는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영향으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통 복식에 갓을 쓰고 입장하는 등 진중했던 유교의 공간이 즐거운 시민의 공간으로 변모해 그 의미를 더했다. 주차장에서 서원에 이르는 길에는 호랑이 장식 등의 전통 조명등을 달아 고즈넉한 분위기에 익살과 즐거움을 더했고 서원 앞마당에서는 ‘도산풍류’를 주제로 버스킹이 열렸다. 진도문에서 광명실을 지나 전교당에 이르기까지 매화처럼 환하게 피어난 조명등이 주는 운치는 낮에는 보지 못했던 도산서원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더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호수에 뜬 달과 같이 덩그러니 어둠을 밝히는 시사단의 야경이 깊어가는 가을밤 도산에서의 흥취를 돋우었다. 특히 주차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입구와 출구를 분리하여 안내해 밤길 안전을 대비하였고, 관람객들의 차분한 관람 문화도 인상적이었다. 박약재, 홍의재 툇마루에 앉아 기념 촬영을 하고 고직사와 전사청을 둘러보는 발걸음도 밤의 고요함만큼이나 차분한 모습이었다.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용상동에서 관람을 온 길주중학교 임연지 양은 “'케데헌' 2편이 나온다면 도산서원을 배경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야경이 너무 멋지고 힙하잖아요”라는 소감을 밝혔다. 도산서원의 건축물은 간결하고 소박한 가운데 품격 있고 군더더기가 없는 멋을 지녔다. 선비의 고아한 멋이 담긴 풍경을 더욱 많은 이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야경과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밤의 도산서원을 매년 가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16

손에 희망을 가슴에 역사를, 호미곶이 전하는 이야기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포항 호미곶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특별한 장소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떠오를 때, 바다와 하늘, 땅이 하나가 되는 이곳은 단순한 해맞이 명소를 넘어, 평화와 공존, 그리고 시간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호미곶은 그 풍경만큼이나 깊은 의미를 가진 조형물과 문화유산들을 품고 있어, 포항을 찾는 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사한다. 호미곶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조형물은 바로 ‘상생의 손’이다. 바다 위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친 이 거대한 손은 인간의 상생과 평화, 협력의 의미를 담아 설치된 것이다. 이는 2000년 새천년 해맞이 행사를 위해 1999년에 조각하고 설치된 것으로, 육지에는 그와 마주 보는 또 하나의 손이 세워져 있다. 두 손은 마치 서로를 향해 닿으려는 듯한 형상을 이루며, 바다와 육지가 조화롭게 연결된다는 상징을 표현한다. 특히 새해 첫날, 찬란한 해가 바다 위 손바닥 위로 떠오를 때의 아름다움은 매년 수많은 방문객들을 이끌어, 새해의 시작과 희망의 순간을 함께 나누는 장소가 된다. 호미곶의 또 다른 보물은 ‘호미곶 등대박물관’이다.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등대 중 하나로, 1908년에 완공된 이후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동해안을 지나는 수많은 선박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박물관 내부에는 국내외의 다양한 등대 관련 유물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등대의 역사와 항로의 변화, 그리고 바다를 지키는 이들의 삶을 느끼고 체험하는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상징들 속에서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은 특히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 불꽃은 2000년 새천년의 시작을 기념하여 설치된 것으로, 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 임청각에서 채화한 불꽃,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채화한 불꽃, 그리고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가져온 평화의 불꽃이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졌다. 이는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상징하며,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불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이 불꽃은 우리 민족이 겪어온 고난과 희생, 그리고 화해와 공존을 향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이 ‘영원한 불꽃’은 전국 여러 기념 장소에서도 점화의 근원으로 삼아 활용되고 있으며, 국민들의 기억 속에 대한민국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상징물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매년 현충일이나 주요 기념일에는 이 불꽃을 중심으로 추모와 기념 행사가 열리고, 불꽃을 통해 독립운동가들과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기리는 의미가 강조된다. 호미곶은 이처럼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자연과 인간,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곳에 서 있으면, 한반도의 시작점에서 모든 이야기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바다 위에 떠오르는 손, 백 년 넘게 불을 밝히는 등대, 그리고 꺼지지 않는 불꽃은 우리에게 말없이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포항을 찾는다면, 그 이야기의 시작점인 호미곶에서 천천히, 그러나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16

소 잘 키우는 안동 사람들의 자부심을 찾다

안동은 우리 가족의 고향이다. 그래서 가족과 또 친구들과 자주 다니러 간다. 병산서원의 노을을 본 후나 채화정의 눈꼽째기창으로 내다뵈는 연꽃을 보고 나서 허기를 채우는 곳은 늘 갈비 골목이었다. 안동 우시장은 봉화 등 경북 북부 지역의 한우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예로부터 좋은 소가 많기로 유명했던 안동은 지금도 전국의 소 장수가 몰려드는 곳이다. 안동이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유림의 활약도 있었지만, 낙동강을 끼고 낮은 구릉과 평지가 골고루 발달해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2.5배에 달하는 면적에 태조 왕건이 ‘동쪽을 편안하게 한 곳’이라는 뜻으로 안동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근대에 들어서 안동에서 가장 컸던 우시장은 용상장이었다. 장날이면 음식점과 간이 마방이 성행할 정도로 번성했다. 이처럼 우시장이 크다 보니 이곳을 찾는 상인들을 위한 국밥집이 많이 형성되고 안동 경제를 이끌었다. 1980년대 주거시설이 늘고 우시장은 송천동 포진으로 이전했다. 지난 2004년 송천동에서 현재 자리인 서후면 죽전길로 옮겼다. 안동 한우가 유명해진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찌감치 브랜드사업을 벌이면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적으로 소를 키우는 농가에서 소를 도축해 유통하던 것을 1993년 ‘안동황우촌’이란 브랜드를 상표 등록해 공동 사육, 공동 판매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안동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음식 중 하나가 안동찜닭이다. 안동찜닭 골목만큼 인기를 끄는 곳이 바로 안동갈비 골목이다. (구)안동역 앞에 자리한 안동갈비 골목에는 20여 개의 갈비집이 즐비하다. 질 좋은 한우를 저렴하게 유통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 1970년대부터 형성됐다. 갈빗대는 따로 떼어서 갈비찜으로 제공하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골목의 모든 집의 갈비가 다 맛있지만, 우리가 찾아가는 집은 본가갈비다. 사장님이 유독 친절하다. 가게 앞에 주차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시내를 돌아보는 시간에도 차를 그냥 두고 다녀오라고 웃으신다. 친절보다 더 이곳을 찾는 이유는 상차림에 나오는 밑반찬 때문이다. 삼색나물, 동치미, 풋고추무침 다 맛있다. 그중에 우엉샐러드는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어서 특별하다. 두세 번 리필 해 먹는다. 소스에 16가지 넘는 재료가 들어간다니 따라 해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된장찌개인지 국인지 구분 짓기 힘든 탕을 고기를 다 먹고 나면 갈비찜과 함께 뚝배기에 담겨 내온다. 시래기가 기본으로 들었고 이른 봄에는 냉이가 향을 더하기도 한다. 시원한 국물과 시래기를 건져 쌀밥에 비벼 먹으면 갈비 먹은 입이 말끔해진다. 20년 그 자리에서 깊은 맛을 우려낸 사장님 어머니의 솜씨라고 한다. 안동 사람들이 소를 잘 키운다고 한다. 게다가 안동댐이랑 임하댐이 있어서 일교차가 큰 편이라 고기 숙성이 잘돼 맛도 좋다고. 인심 좋은 본가갈비가 그 맛을 극대화시켰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14

경주 황금정원···'가을 나들이' 설레는 마음

경주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 적이 있던가 싶다. 봄가을이야 늘상 복닥거리긴 했지만 이번 추석 연휴는 연중 가장 절정이라는 벚꽃 계절 그 이상이었다. APEC 특수에 긴 연휴까지 겹쳐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관광지는 물론 외지와 연결될만한 지역은 모두 차들로 가득 찼다. 경주사람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연휴엔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대도시에서 익숙한 복잡함이 익숙지가 않아서다. 그렇다고 지난 추석 연휴 10일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내내 집에만 있기는 아이에게 미안했다. 연휴 시작부터 사고 싶었던 책과 소품을 고집하며 외출을 졸랐다. 그 핑계로 내키지 않는 용기를 애써 내어 나들이를 감행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보고 싶다는 아이의 요청에 버스 정류장 근처에 주차를 하고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배낭형 가방에 우산 두 개와 물티슈 등을 챙기고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도 연휴 특수를 맞은 건지 손님들이 많다. 얼마지 않아 버스는 가다 멈추기를 한없이 되풀이 했다. 평소면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20분 이상 걸려서야 겨우 도착했다. 길로 보이는 곳은 모두 차로 가득 차 있었다. 경주시민 인구를 다 합쳐도 저 차들 숫자만큼은 안 될 것 같았다. 터미널 근처에 이르자 교통 혼잡은 더 심해졌고 내려서 걷기로 했다. 그 덕분에 황금정원 나들이 방문이라는 일정이 하나 더 추가 되었다. 마침 목적지인 황리단길과 중간 지점이니 겸사겸사 들러보기로 했다. 행사장이 주차는커녕 걷기도 힘든 황리단길을 끼고 있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멀리 주차하고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올해로 6번째를 맞이하는 황금정원나들이로 평소 비교적 한적했던 황남동 고분군 앞은 굳은 날씨에도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첨성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불때마다 금빛으로 찰랑거렸다. 황금정원 나들이라는 타이틀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조형물이었다. 주변은 말 그대로 꽃천지였다. 오는 동안 조금 불편했던 마음이 화사한 꽃들을 보자 이내 풀려버렸다. 유난히도 길어지는 더위가 아직은 조금 남아있지만 가을답게 국화들이 주를 이뤘다. 노란 국화는 언제봐도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여러 식물들로 모양을 만들어 꾸민 조형물 앞에서 사진부터 찍었다. 코끼리에서부터 거대한 나비까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혹시나 비가 세게 내릴까 포토존이라 보일만한 곳을 찾아 서둘러 사진을 찍었다. 관광객이 많다보니 찍을 수 있는 곳에 사람이 비면 얼른 가서 찍는 방식이었다. 찍다 보면 그새 또 누군가 대기 중이라 최대한 빨리 움직였다. 그런 복작거림 속에서도 누구 하나 인상 쓰는 사람이 없었다. 긴 휴식 시간과 아름다운 자연이란 훌륭한 조합 덕분일 것이다. 몇 장의 만족스런 사진을 얻고 반쯤은 사람 구경인 행사장을 느긋이 둘러보았다. 작은 수박이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이 귀엽다. 아이를 데리고 가다 보니 체험부스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대기자 명단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소 2시간은 걸려야 가능했다. 명단을 본 뒤 빠른 포기를 결정한 아이 덕분에 황금정원 나들이는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14

당신 마음속의 포항은 어떤 모습인가요?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올해는 연휴가 길었던 만큼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전통적인 명절 분위기를 벗어나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추석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밀린 드라마를 보거나 자기 계발을 위한 시험공부를 하고 평소에 두꺼워서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벽돌 책을 꺼내기도 했다. 또 하나, 기다렸다는 듯이 떠나는 여행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는 물론이고 그간 외면하던 제주도를 방문한 사람도 꾸준히 늘어나 올 추석에는 34만 명 가까이 제주도를 찾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환동해 중심 도시인 ‘포항(浦項)’을 찾은 관광객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들에게 포항의 이미지는 무엇이고 어떤 추억으로 남아있을까 궁금해졌다. 포항으로의 여행을 말하자면 지금은 자연스레 포항역을 떠올린다. 지난 1월에는 동해선 개통으로 강원도와 경북, 울산, 부산은 그간의 여행길보다 조금 더 쉬워졌다. 그 길 위에서 포항이 열렸고 오가는 발걸음도 편해지긴 마찬가지다. 포항시에 따르면 연휴 기간인 3일부터 9일까지 포항으로 여행 온 사람들이 16만 명이라고 전했다.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과 야간 관광이 체류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지난해보다 23% 더 증가했다. 체류형 관광은 올해 포항 시티투어에서도 1박 2일 코스로 추가되기도 했다. 포항은 철이라는 산업의 이미지에 자연과 문화가 섞여 있다. 그중에서 포항의 이미지는 당연히 바다다. 새해 첫날 호미곶 상생의 손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는 모습은 누가 뭐래도 최고다. 챗 GPT에게 물어도 호미곶을 첫 번째 이미지로 알려준다. 그 바다 위에 철이 있다. 용광로의 불과 영일만이 뿜어내는 빛이 합쳐져 ‘불빛 축제’를 만들었다. 여름의 대표 축제다. 포항이 고향이 아닌 시민기자도 포항과 가까워진 계기는 바로 ‘불빛 축제’였다. 최근에는 원래 있던 바다와 자연을 가지고 문화예술이 덧입혀졌다. 포항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스페이스워크라는 새로운 건축물로 시민들도 즐겨 찾고 멀리서도 포항을 찾는 계기를 만들었다. 어둠이 내린 저녁 스페이스워크에서 맞이하는 포스코의 불빛은 포항이 걸어온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것 같다. 스페이스워크라는 새로운 포항의 이미지가 하나 더 추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지난해 영일대 바다를 배경으로 열린 ‘ 2024 대한민국 독서대전’은 여러 작가들이 포항을 찾았고 그 열기는 올해도 이어졌다. 연오랑세오녀테마파크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보다 이야기가 시나브로 풍성해지고 있다. 포항이라는 도시가 익숙하게 된 계기는 드라마 촬영지의 배경지가 인기 관광 명소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와 청하공진시장이 그곳이다. 청하공진시장은 이제 외국인이 찾아올 정도가 됐다. 천안에서 온 30대 직장인은 연휴에 구룡포를 방문하며 “드라마 하나로 골목을 살릴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고 말했다. 바다와 함께 길도 이어진다. 장기읍성의 성곽길, 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걸으면 좋을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11월 말까지 완주하면 메달과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포항은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스페이스워크를 오르고 죽도시장의 대게 맛을 기억한다. 또 바다에서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누군가는 드라마 명소를 찾는다.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는 구룡포 과메기문화관에서 하는 체험에 푹 빠져있다. 당신의 포항은 어떤 모습인가요.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14

아양루에 울려 퍼진 풍류 한마당

가을 정취가 깊어가는 지난 9일, 대구 아양루가 우리 전통의 선율로 물들었다. ‘영판 좋다’라는 구호 아래 열린 이번 풍류 한마당은 영남인의 기개를 담은 시(詩)와 창(唱), 무(舞)가 어우러진 흥겨운 무대였다. 무대를 주도한 이는 영제시조의 명맥을 잇는 백강 허화열 시조명인과 대구예술상을 수상한 문강 방종현 수필가였다. 무대에는 대구광역시 무형유산 제5호 가곡 이수자 곽홍란, 박순금, 이은미, 전수 장학생 윤차옥(대한시조협회 달서구지회장), 최근영(안동시조경창대회 대상 수상자), 시인 이현정, 김윤숙, 이창국, 능수국악예술원장과 임태순 회장, 여병동(정악대금 이수자), 한대곤 전 대구예술문화대학 학장, 고흥선 고수 등이 참여해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였다. 허화열 명인은 2021년부터 대구무형유산전수교육관과 경주 금장대 등지에서 영제시조 101수, 신라향가 17수, 근현대시 10수의 전곡 발표회를 이어오며 전통문화 전승과 대중화에 힘써왔다. 영제시조는 경상도 지역의 토리(音調)로 전승된 시조창으로, 뚝뚝 끊어지는 선율 속에서도 깊은 정감을 표현하며 웅장한 음조로 영남인의 기개를 드러내는 창법으로 평가된다. 허 명인은 대구광역시 무형유산 제6호 영제시조 2대 보유자 박선애 선생에게 사사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100세를 바라보시는 스승님께 배운 영제시조 101수를 바친다”며 “후대에 온전히 전승하겠다”라고 다짐했다. 박선애 선생은 “허화열 명인은 수십 년간 영제시조를 익히고 제자를 길러온 유일한 완창자”라며 “이번 무대는 영제시조의 백미를 세상에 드러낸 뜻깊은 자리”라고 평가했다. 김성혜 경상북도 문화재전문위원은 “판소리 완창무대를 정착시킨 박동진 명창처럼, 허화열 명인의 전곡발표회는 영제시조의 예술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전했다. 허화열 명인은 동국대학교 한국음악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전국시조·가사·가곡경창대회 가곡부 장원, 2005년 임방울국악제 시조부 장원, 2006년 전국시조·가사·가곡경창대회 시조부 종합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6년 학습자들을 위한 ‘시조제요(時調提要)’ 보정판을 펴내고, 150여 수의 근현대시를 시조창으로 편곡했다. 현재 경상북도 영제시조연구소장, 서라벌정가단장, 신라향가음악협회장을 맡고 있다. 허 명인은 신라향가와 근현대시를 시조창으로 재해석해 현대 감성에 맞는 창법을 선보이고, 장단에 맞춘 반주음악을 직접 제작하여 시조창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작업은 시조 본래의 정서인 시절가조(時節歌調)를 현대 무대에 되살리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날 대구문인협회 안윤하 회장, 가야문화 연구회 김성문 회장, 대경 언론인회 김선완 부회장, 대구노인종합복지관 차세희 학생회장, 영남문학 박치명 시인 겸 낭송가, 영화감독 신제천, 전 고령시조회 회장 노선조, 사진작가 권정태, 원로 무용가 김기전, 모델 박병형, 전 달구벌수필문학회회장 문병달, 수필가 유무근 등 150여 명이 함께했다. 이번 ‘영판 좋다’ 아양루 풍류 한마당은 방종현 수필가와 협업으로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우리 전통음악의 맥을 잇고 시조의 본래 정신을 시민들에게 전한 뜻깊은 자리였다. 아양루에 울려 퍼진 영제시조의 선율은 옛 정가의 품격과 영남인의 기개를 함께 느끼게 했다. 허화열 명인의 예술혼과 시조창의 새로운 부흥이 시작되고 있다. ‘영판 좋다’는 구호처럼, 영남인의 시조는 오늘도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10-12

대구사회문화대학, 창립 35주년을 맞아

대구사회문화대학(학장 이종환)이 올해로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1990년 ‘효목독서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대학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배움의 등불을 밝혀왔다. 당시 화랑공원이 ‘효목공원’으로 불리던 시절, 도서관을 거점으로 한 작은 배움터는 이제 지역을 대표하는 평생교육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1997년 3월, 사단법인 대구사회문화복지원 부설로 정식 개교한 대구사회문화대학은 ‘실버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년의 삶을 배움과 문화로 풍요롭게 물들이는 터전이 되었다. 35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이며, 배움의 길은 나이와 상관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열리는 정규 강좌다. 음악 수업을 시작으로 저명 인사들의 특강이 이어진다. 지금까지 무려 2480여 회의 강연이 열렸으며, 약 1600여 명의 강사가 초청됐다. 인문과 사회, 과학과 예술, 정치와 법률은 물론 첨단과학과 명리학까지-다양한 주제는 삶의 지혜와 교양을 넓히는 자양분이 되었다. 특강에 나선 한 분 한 분은 우리 근현대사의 증인이자 살아 있는 역사였다. 또한 학생 스스로 인생 체험담을 나누는 무대도 마련되어, 배움은 곧 삶의 공유이자 공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학문은 강의실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매년 봄·가을이면 대구와 경북의 명소를 찾아가는 현장 실습이 진행됐다. 현장을 걸으며 배우는 수업은 단순한 답사를 넘어, 고향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애향심의 토대가 되었다. 다가오는 2025년,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다. 이 같은 현실 앞에서 대구사회문화대학은 배움의 자리를 넘어, 인생 후반기를 풍요롭게 살아갈 지혜의 터전으로 더욱 빛나고 있다. 교육과 복지,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아우르는 실버대학의 역할을 누구보다 앞서 실천해온 것이다. 대학은 ‘무학년·무시험·수시모집’의 원칙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문을 지향한다. 매주 화·금요일 오전 9시 40분부터 이어지는 수업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나누고 공감하는 문화적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이종환 학장은 “송승달 이사장을 비롯해 정종재, 박석돈, 심상철, 이옥분, 이종환, 김홍석, 박중곤 박사 등 수많은 이사진과 교수진이 정성과 열정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신장훈 학생회장, 김동진 이사, 추연식 감사, 백태현 감사, 그리고 정운돌 행정실장 등이 소임을 다해 주어 대학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함께하고 있다” 고 했다. 또한 대학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교지 ‘문화대학’은 올해로 제26호를 맞는다. 창간 이후 거의 매년 발간을 이어온 교지는 학생들의 글과 연구, 체험담을 담아낸 기록집이자 세월을 건너온 또 하나의 역사책이다. 대구사회문화대학의 35년은 단순한 세월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노년의 삶이 배움과 함께할 때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 걷는 이 길 위에서 대학은 이제 새로운 100년을 향해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0-12

대구수필가협회 창립 20주년 기념 세미나

대구수필가협회(회장 서정길)는 지난달 30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시민과 예술인이 함께하는 문학세미나를 가졌다. 협회는 매년 시민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인문학 세미나를 개최해 왔으나 올해는 협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의 특별한 세미나를 준비했다. 이날 세미나는 문학적 통찰과 미적 감성이 어우러지는 미학을 주제로 했다. 대구수필가협회는 문학단체 단일분과로서는 대구시인협회와 쌍벽을 이룰만큼 300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학을 주제로 시민들과 소통은 물론 시민 정서함양에도 앞장 서 왔다. 이날 행사에 앞서 서정길 회장은 “이번 세미나가 아름다운 가치와 새로운 영감, 창작의 동력이 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인사를 했다. 주제 강연에 나선 화가이자 시인인 김의규 작가는 ‘문학과 미학의 다리를 건너’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그는 “문학으로써 예술을 알겠다면 예술보다는 문학에 머물기 쉽다. 예술로써 문학을 아는 것이라면 문학보다는 예술에 머물기 쉽다”며 그럼에도 문학은 분명히 예술 영역에 있다고 역설했다. 또 “예술은 생명과 삶의 생생한 증거이며 기록된 존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대구가 ‘교육의 수도’라고 불리듯 ‘문학의 수도’이기도 하다. 이를 입증할 만한 것으로 대구문인협회 작가 수가 1200여 명을 상회한다. 이는 서울을 제외하고는 전국 최고다. 이뿐만 아니라 시, 아동문학, 소설, 수필 등 문학의 모든 장르에서 타 시도를 압도할 정도로 주요 작가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특히 수필 분야는 2015년 9월 홍억선 수필가에 의해 장르별 문학관을 전국 처음으로 만들었다. 대구시 중구 명륜로에 있는 ‘한국수필문학관’이 그것이다. 이곳에는 10주년 사업 등 자료발굴을 통해 수필 관련 자료 4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국 문예지 창간호 400여 권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한국문단의 정체성이며 대구인의 긍지이자 자랑이라 할 것이다. /손수여 시민기자

2025-10-12

서미숙 수필가의 ‘종점기행’ 북토크

안동에서 활동하는 수필가이자 여행작가 서미숙이 최근 대구시 중구 ‘북랜드 문화공간 라온’에서 ‘종점 기행’ 북토크를 열었다. ‘안동 시내버스 종점 기행’은 저자가 4년간 안동의 24개 종점 마을을, 시내버스를 타고 직접 찾아가 기록한 작품이다. 그 속에 담긴 지역의 문화와 사라져가는 풍경을 수필과 사진으로 포착했다. 안동 시내버스 종점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구수한 안동 토박이말로 들려주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각별하다. 이 책은 독자에게 두 가지 길을 제안한다. 책을 읽고 종점 기행에 나서도 좋고, 책장을 넘기며 와유(臥遊)하듯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종점 기행’은 한 지역의 기록을 넘어, 일상에서 발견하는 삶과 여행의 가치를 일깨우는 작품이다. 이번 북토크는 북랜드 라온 문학 TV 주관으로 마련되었다. 평론가 신상조의 진행으로 ▲저자의 집필 배경과 현장 취재담 ▲책 속 주요 작품 낭독 ▲독자와의 질의응답 ▲사인회 순으로 이어졌다. 종점 사진 슬라이드를 감상하면서 현장감 있는 저자 이야기와 독자 낭독을 듣는 즐거움이 있었다. 안동 사투리 느낌을 제대로 살린 서정오 동화작가, 권순이 수필가, 김경숙씨, 남은숙씨가 책 속 이야기 낭독에 참여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장호병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은종일 수필과 지성 원장, 서정오 동화작가, 번남댁 종손, 지리산문학관 김윤숭 관장, 정만진 소설가, 김용락 시인, 문장작가회 회원, 수필과 지성 동인, SNS 통한 신청자 등 독자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장호병 교수 축사와 신상조 평론가의 재치 있는 진행으로 질의응답이 이어져 분위기가 훈훈했다. 독자 최윤정씨는 “책 한 권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을 줄 몰랐다”라고 했다. ‘수필과 지성’ 동인 윤흥용씨는 “'종점 기행' 책을 내기까지의 여정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첫차를 타고 가 막차를 타는 그 수많은 시간의 흔적이 오롯이 책 속에 담겨 있어서 고개가 숙여졌다. 오랜만에 글의 힘이 느껴졌던 시간이었고 내 마음속 한쪽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글 샘이 솟아나는 기분을 느낀 시간이었다"라고 했다. /이병욱 시민기자

2025-10-12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는 지난 10월 1일과 2일, 방종현 수필가를 초청해 ‘평전 풍운아 김삿갓’을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열었다. 이날 방종현 강사는 김삿갓의 해학적인 시와 함께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풀어내며, 그가 평생 삿갓을 쓰게 된 이유를 흥미롭게 설명했다. 또한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구조와 양반 신분제의 변화를 알기 쉽게 해석했다. 방 강사는 “조선시대에는 3대에 걸쳐 벼슬을 하거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양반 자격이 상실되었다”며, “이 때문에 가문마다 글을 가르치는 독선생을 두었고, 김삿갓은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강의 중 하모니카 연주와 시조창, 노래를 곁들이며 특유의 재담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강의에 몰입한 수강생들은 함께 노래하고 손뼉을 치며 ‘풍류’를 즐겼다. 수요대학 이재희 학생회장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방 강사의 이야기는 1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목요대학 김화순 학생회장은 “방 강사의 강의는 스토리텔링이 살아 있고, 하모니카 연주와 시조창이 어우러져 시청각이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인문학 강의였다”며 “시니어대학의 새로운 아이콘”이라고 극찬했다. 한편, 대구예술대학교 평생교육원 시니어아카데미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에 인문학 강의를, 3시부터는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종식 학감은 “옛 가요부터 현대가요까지 배우며 친목을 도모하고, 매번 다른 주제로 인문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시니어아카데미 입학은 수시로 가능하며, 문의는 ☎ 010-8568-9528로 하면 된다. 장혜숙 시민기자

2025-10-09

보스포루스 노을 아래서 형제의 나라를 다시 보다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동유럽에 걸쳐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은 한때 유럽을 위협하는 강력한 패권 국가였다. 2200년을 이어온 로마제국을 무너뜨렸던 그 위엄의 흔적을 따라 떠난 여정, 그 길 위에서 한국과의 의외의 우정,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남긴 찬란한 흔적을 마주한다. 튀르키예는 흑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천혜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아시아 대륙 97% 유럽 대륙 3%로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다.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교차하는 독특한 문명적 색채를 지닌 그들은 흥미롭게도 한국을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라 부른다. 그들이 유독 한국에 더 친근감을 보이는 것에는 오랜 역사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와 돌궐(오늘날 튀르키예의 기원 민족)은 동맹관계를 맺고 당나라와 맞서 싸운다. 연개소문 장군이 돌궐 공주와 혼인하면서 양국의 유대는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참전, 1000여 명의 전사자를 내며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라는 명칭을 현실로 만든다.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이 관계는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당시 조별리그 튀르키예 vs 브라질 전에서 한국인 주심의 오심으로 튀르키예 선수가 퇴장 당하자 그들은 격분한다. 그들의 분노는 현지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공포에 떨게 할 정도였다. 3,4위전에서 또 다시 만난 한국 vs 튀르키예. 그들은 오심에 대한 앙갚음을 제대로 하리라 벼르며 경기장을 들어서다 무려 5만개의 튀르키예 국기를 흔드는 한국 응원단과 마주한다. 경기에 앞서 그들의 국가가 울릴 때 태극기보다 더 큰 월성기(月星旗)까지 펼쳐지니 그들은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는다. ‘터키는 1000명의 용사를 잃었지만 5000만의 한국인을 얻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그날 흔들렸던 대형 튀르키예 국기는 지금, 앙카라 국립박물관에 소중하게 보관 전시되어 있다. 실크로드의 종착지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의 전통시장에 들어서면 값비싼 양탄자와 유리공예품, 향신료 등 5000여 개가 넘는 미로 같은 상점들에서 화려한 상업문화를 실감한다. 아디야만 넴루트산 정상에 자리한 고대 콤마게네 왕국의 돌자갈 무덤 위를 붉게 채우던 아름다운 일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외심을 안긴다.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인 카파도피아의 버섯바위와 파묵칼레의 석회온천 등 히에라폴리스의 고대유적은 잦은 지진으로 많이 훼손되었음에도 그 흔적만으로 찬란한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로마제국시대 만들어진 1800년 된 다리를 여전히 온전히 사용하고, 537년에 건설되었다는 성소피아 성당의 광대함은 짧은 글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다만 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며 새로 지어진 돌마바흐체 궁전은, 400여 년간 오스만 제국의 정궁이었던 톱카스 궁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웅장함과 화려함의 사치가 극에 달해 제국의 마지막을 암시한다. 황제의 접견실 천정 돔에 드리워진 750개의 전등이 달린 4.5톤의 샹들리에가 눈을 압도한다. 사치와 권력의 상징이던 궁전의 호화로움이 한 제국의 영화가 어떻게 쇠락으로 향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한국인을 반겨주던 튀르키예 사람들.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해협을 물들이는 붉은 노을을 보며 ‘역사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나간 자리 위에 쌓인 시간의 흔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제국의 영광과 몰락, 그리고 형제의 나라로 이어진 우정이 한데 어우러진 그곳에서 인간의 욕망과 시간의 무게를 동시에 느낀다. 훈훈함이 더했던, 오래 기억될 여행이었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09

10월, 다양한 축제 즐기러 봉화로 오세요

가을은 여행을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10월의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 춥지도 덥지도 않아 홀가분한 옷차림으로 훌쩍 떠나기 좋은 시기다. 들길 질러 산길 돌며 물길 따라가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가을여행은 깨끗하고 수려한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봉화가 제격이다. 골마다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고, 청량한 소나무 숲에서는 송이가 익어간다. 송이 향이 퍼지는 가을 산자락과 볼을 붉히며 익어가는 사과밭, 자생하는 꽃들과 전통문화의 축제가 봉화의 가을을 보여준다.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는 10월 2일부터 10일간 봉화 자생꽃 페스티벌인 ‘2025년 백두대간 봉자페스티벌’이 열린다. 평소에 만나기 힘든 우리 산야에서 자라는 다양한 자생꽃을 볼 수 있고, 각종 가을꽃들이 백두대간수목원에 지천으로 피어 있다. 10월 12일 백두대간수목원 일원에서는 2025년 외씨버선길 11구간 중 춘양목 솔향길에서 ‘봉화 함께 걷기’ 행사가 개최된다. 로컬 푸드, 버스킹 공연, 호랑이 관람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는 제29회 봉화송이축제와 제42회 청량문화제가 동시에 열린다. ‘송이 향에 반하고 한약우 맛에 빠지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송이축제는 전국 최고 품질로 인정받는 천년의 솔 향을 간직한 봉화송이와 다섯 가지 한약재를 사료에 배합해 키운 한약우를 맛볼 수 있다. 이몽룡 선발대회, 오색 비빔밥 퍼포먼스, 풍류 한마당, 도전 골든벨, 씨름왕 선발대회 등이 열리고, 개막식엔 이수연, 정다경, 최재명 등의 가수가 함께 한다. 제42회 청량문화제에서는 전국 한시백일장, 제27회 경북도민 민속장기대회와 봉화의 고유전통문화인 삼계 줄다리기 재연행사와 봉화 보부상 마당놀이가 펼쳐진다. 10월 18일엔 제5회 봉화보부상 한마당축제가 보부상위령제와 함께 열린다. 80여 년 이어온 애전 보부상 위령제와 울진 봉화지역 장시를 담당했던 봉화상무사의 보존 및 전승을 위한 공연이 지역민과 함께 하는 축제다. 봉화는 1000m 이상의 산이 13개나 있다. 소백산과 태백산이 기둥이 돼 백두대간 32km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천혜의 자연과 남한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청량산의 가을 단풍은 기암괴석의 열두 봉우리가 조화를 이뤄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퇴계 이황을 비롯한 수많은 선비들이 청량산의 빼어난 경관을 시문으로 남겼다. 단풍철이 되면 불쑥불쑥 솟은 바위 봉우리가 가을 단풍과 잘 어우러진다. 청량산의 청량사와 응진전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선 고요한 가을 속 낭만과 만날 수 있다. 청량산 자소봉과 장인봉 봉우리를 연결하는 하늘다리 아래로 펼쳐지는 경관 역시 절경이다. 매년 가을이면 가보고 싶어지는 곳 태백산 백천계곡 단풍축제는 10월 하순쯤에 열린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10월. 선선한 바람과 깊은 숲에서 나오는 송이 향,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봉화의 가을축제 현장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09

송도 바다와 함께 달리다

마라톤에 참가했다. 지난 9월 28일 송도에서 열린 ‘2025 포항2차전지 전국마라톤대회’였다. 일주일 전부터는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완주할 수 있을까 괜히 신경도 쓰였다. 함께 참가하는 둘째 아이도 그런 모양이었다. 전날 밤부터 내린 비로 이날 있을 마라톤이 살짝 걱정되었다. 6월에 있었던 ‘2025 포항 철강마라톤 대회’ 접수를 놓쳐 아쉬웠는데 혹시 날씨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니 걱정은 기우였다. 흐린 날씨였지만 밀려드는 차들과 공영 주차장은 이미 대형버스와 자동차로 꽉 차 있었고 도로 옆으로 줄 선 차들 사이로 경찰의 교통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라톤 참가자들은 준비한 기념품 티셔츠를 입고 차 사이로 오가며 빈 도로를 가득가득 채웠다. 7000명의 사람들은 인파를 이루었고 바다의 흐린 색과 반대로 참가자들이 입은 주황색의 티셔츠가 가을 운동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분위기를 돋우었다. 자연스레 그 분위기에 아이와 함께 섞였다. 참가자들은 어린아이와 함께 참가한 가족들,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에서 단체로 참가한 학생들, 마라톤 동호회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온 사람들이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마라톤 시작을 기다리며 송도 여신상 앞에서 모여 오늘의 마라톤 코스를 이야기하거나 조금 뛰어보기도 했다. 부산에서 온 동호회 사람들은 원을 만들며 마라톤 시작하기 전 몸을 푸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송도의 카페에서는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다 주황색 물결의 마라톤 참가자들의 와글와글한 풍경을 구경하느라 모두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우렁찼다. 오전 9시가 되자 먼저 하프마라톤 참가자들이 출발했다. 축포와 드론과 함께였다. 이어서 10km가 10분 뒤에 출발하고 5km가 마지막 순서였다. 시민기자도 아이와 함께 5km 출발선에 섰다. 5km는 송도 여신상에서 출발해 수협 앞에서 유턴, 포항 운하 육교를 돌아 나오는 코스였다. 다른 코스보다 송도 바다와 함께하는 코스여서 기분 좋게 출발했다. 출발 소리가 들리자 뛰기 시작했는데 5km는 그냥 걸어도 한 시간 안에 도착하는 거리니 애쓰지 말라는 아나운서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1km쯤 달리니 벌써 반환점을 돌아 나오는 세 분이 보였다. 대단하다 싶어 함께 뛰면서 응원했다. 뛰지 않고 걷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젊은 엄마, 아이를 응원하며 같이 속도를 맞추는 아빠, 이야기하며 걷거나 뛰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4km가 다가오자 조금 힘들었다. 조금씩 걷는 듯 뛰었다. 그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음료대를 만나 물을 마시고 포항 운하 육교를 지나니 보라색의 결승점이 보였다. 다시 힘이 났다. 아이와 따로 기록을 만들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먼저 결승점에 골인했다. 시간은 38분이었다. 뒤에 도착한 아이는 43분이었다. 무언가 시원한 게 몸속을 흘렀다. 달리는 동안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이라 마라톤 분위기를 느끼는 것만 생각했는데 5km를 뛰어보니 10km도 할 수 있겠다 싶다. 완주 메달을 받은 아이도 처음에 걱정과는 달리 눈을 반짝반짝한다. 송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완주 메달을 받고 기쁜 건 10km를 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다. 불볕더위가 물러가니 남녀노소 달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선선해진 날씨와 함께 독서는 물론이고 운동과 친해지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09

1985년부터 줄서서 먹던 곳···포항 토박이 식당으로 어엿한 중년

학창 시절, 친구와 만나려면 장소는 무조건 경북서림이었다. ‘시내서 보자’라고 말하는 그 시내는 포항우체국을 중심으로, 밑으로 역전까지였고 위로는 육거리까지를 말했다. 늘 사람들의 발길로 붐비는 곳이었고, 시민극장을 비롯한 영화관이 밤식빵에 밤처럼 중간중간 박혀있었다. 지금은 카페라고 하지만 그때는 다방과 구분 지어 커피숍이라고 불렀다. 투투쓰리, 르네상스, 핑크펄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아련해지는 추억의 장소가 즐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스멀스멀 자취를 감추더니 지금은 포항 토박이 몇몇 형님 누님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1969년에 태어났다는 시민제과점과 만두 맛집 명승원, 운동회마다 단체로 배달시켜 먹던 초원통닭의 삼계탕은 건물주가 직접 운영하는 시내의 터줏대감이다. 그중에 1985년부터 사람들을 줄 세우게 만들었던 조방낙지를 오랜만에 찾아갔다. 조방낙지의 조방은 ‘조선방직주식회사’의 약자라고 한다. 낙지전골이 부산 범일동의 그 회사 앞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예전에는 줄 서서 먹던 곳이라고, 주인장이 볶아주면서 옛날에는 상견례를 이곳에서 하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40년 동안이나 포항의 토박이 식당으로서 어엿한 중년이 되었다. 공자가 마흔 살부터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았다고 불혹이라 했다. 낙지볶음이 끓고 있는데 지인의 문자가 와서 답장으로 조방낙지라고 사진을 보냈더니, 와우! 아직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어 주어 반갑다고 했다. 이처럼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라면 추억이 한두 방울 묻어 있는 식당이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벽에 걸린 누런 차림표 위에 그 옛날 간판을 흑백 사진으로 남겨놨다. 메뉴를 알려주는 글씨도 궁서체로 아주 진지하다. 볶음과 전골 두 가지뿐이다. 2인분 주문하면서 새우도 맛보고 싶다고 했더니, 반반 섞어 가능하다고 했다. 먼저 기본 반찬이 차려졌다. 할아버지 밥상에 놓였을 것 같은 종지보다 조금 큰 모양의 반찬 그릇에 오뎅볶음, 감자샐러드, 미역줄기볶음, 젓갈, 무말랭이 김치, 김치, 특히 대접에 담긴 물김치가 시원해서 매운 낙지볶음 한술에 곁들여 속을 달래라는 뜻인 듯했다. 다시마에 비빈 밥을 싸서 쿰쿰한 젓갈에 찍어 먹는 게 별미였다. 우동과 당면 중에 선택하라고 해서 우리는 당면을 사리로 넣었더니 간이 잘 배 입에 착 감겼다. 밥은 기본으로 대접에 나와서 비벼 먹는 거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었다. 맛이 예전 그대로인지 단맛이 덜했다. 최근 집 주변 유명 체인의 음식은 간이 달고 짜다. 포항을 떠나 서울에 오래 살아온 친구들이 고향에 내려와 함께 식사할 때면 무심코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 짜고 맵기만 할 뿐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가면 실망할 뿐이라고 자주 말한다. 그럴 때마다 평생 경상도를 떠나본 적 없는 나로서는 언짢다. 그 말은 내가 이탈리아 여행 가서 현지 음식이 내 입에 맞지 않아 못 먹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세월이란 양념이 친구들 입맛을 변화시킨 것이 분명하다. 전골을 국자로 떠서 비벼 먹었다. 조방낙지는 달지 않아 반가웠다. 시대에 맞춰 맛이 바뀌었다면 오히려 서운할 뻔했다. 밑반찬도 골고루 먹으며 가끔 물김치 한 모금으로 소화제를 대신했다. 식당에 손님들은 이전부터 찾아온 단골로 보인다. 기둥에 포장하면 가격이 2000원 저렴하다. 이것도 매력적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둑해졌다. 썰렁하던 중앙상가에 조명이 들어와 그나마 아늑했다. 실개천에 물도 졸졸 흘렀다. 시내를 살리려고 행사를 하고, 벼룩시장도 열린다. 조방낙지보다 한 골목 위에 공영주차타워도 있어 주차도 수월하다. 사라지기는 쉬워도 되살아나긴 어려운 추억이 시내에 있다. 포항시 북구 중앙상가 6길 10, 전화 (054)242-1467.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30

사진가 강병두가 들려주는 ‘활 이야기’

‘활쏘기’는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이다. 씨름, 택견도 이에 해당한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활쏘기’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조선시대 선비들의 문집, 당대 풍속화에서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무예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활쏘기’는 ‘국궁’으로도 불리는데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활’ 또는 ‘그 활을 쏘는 기술’을 일컫는다. 바른 자세로 정신을 집중해 과녁에 활을 쏘는 이 고요하고도 비범한 스포츠는, 전국 약 400개의 활터에서 오늘도 습사(활쏘기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안동시 상아동에 자리한 안동시 궁도장 ‘영락정’에 아침 안개를 뚫고 가 ‘자만이 없기를 바라며 남의 허물을 보지 않기를 기원’하며 하루를 여는 사람이 있다. 그리그 그 경험을 담아 에세이집 ‘사진가 강병두의 활 이야기’를 펴낸 이가 있으니, 바로 사진가 강병두 씨다. 대구 출신 강병두 씨는 오래전 안동에 정착해 안동의 문화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런 그가 국궁을 시작했을 때 그저 잠깐의 취미생활이겠거니 여긴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명궁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5단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강병두는 사진가이자 영락정 접장으로 불린다. 접장이란 다섯 개의 화살을 과녁에 명중시키는 ‘몰기’ 과정을 통과한 사수를 일컫는다. 입문 전에 그는, 국궁은 한량이나 어르신들 혹은 돈 많은 사람들의 유흥거리겠거니 생각한 적도 있다. 마음속으론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으나 그런 편견이 있던 차에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의외로 젊은 사람도 많고 심신이 건강해지는 운동에는 국궁만 한 게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2018년 입문해 코로나 시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경험을 틈틈이 기록한 것을 책으로 내놨다. “무형의 자아를 찾아가는 분야라 사실 늘 재미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고통이 따르고 고비를 넘어 새로운 방법을 찾다 보면 어느덧 변화된 자신을 만나게 되잖아요. 그걸 인지할 때 기쁨과 즐거움,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더라구요.” 1부 ‘화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2부 ‘활을 배운다, 인생을 배운다’, 3부 ‘과녘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로 구성해 활쏘기에 임하는 자세와 철학 등을 담아냈다. 평소 그의 모습처럼 솔직하고 직관적으로 구성한 활쏘기 입문서, 활쏘기 에세이집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 요즘 가장 화제인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시간을 채집하는 것’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는 시간을 채집하고 찰나를 채집해 사진과 활쏘기라는 결과물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활도 사진도 실은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응시하는 일이다. 그 응시를 멈추지 않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만의 행보가 기대된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30

다시 만난 한국 근현대미술, 4인의 거장들

중간고사를 마친 아이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4인의 거장들’ 전시를 다시 보기로 했다. 예매된 표가 두 장이 남아 있기도 했고 시험을 마친 아이의 오후 시간이 괜찮기도 해서였다. 지난 7월 더위를 피해 관람한 후, 두 번째 만남이다. 미술관으로 들어서니 전시를 막 시작했을 때의 북적거림이 없어서 좋았다. 차분한 관람이 되겠다 싶었다. 입구에선 마침 도슨트의 전시 해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굳이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됐지만 도슨트 앞에는 서너 명의 관람객들만 서 있는지라 조용한 미술관 분위기에 잔잔한 설명을 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그 앞에 반짝이는 눈빛을 보탰다. 작품을 전시한 이유와 화가들의 이름 터널을 지나니 작은 방처럼 꾸민 눕는 소파 위에선 4인의 거장들에 대한 소개가 영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먼저 돌아가신 분들부터 차례로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가장 먼저 만나는 화가는 이중섭이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많이 표현한 화가는 독특하게 은지화를 남겼다. 지금은 은지화 600여 점 중 반이 사라지고 그중 3점은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 전시되어 있다. 은지화가 모마에 전시될 때 화가가 돌아가셨다 하니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애틋한 편지화를 지나니 넓은 공간의 박수근이 기다리고 있다. 서민의 삶을 그린 화가. 박수근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고 도슨트가 소개한다. 화강암의 재질이 먼저 떠오르는 박수근의 그림에는 세 가지가 없다. 사람의 얼굴 표정이 없고 배경이 없고 젊은 남성이 없다. 화가는 탁본과 프로타주 기법을 즐겨 썼고 석불과 석탑에서도 영감을 얻고자 경주도 많이 방문했다고 적혀있다. 소설가 박완서의 ‘나목’의 표지로 쓰인 ‘수하(樹下)’도 볼 수 있었다. 김환기의 작품은 저작권 문제가 있어 사진 촬영 불가다. 그래서인지 관리자들도 민감하게 관람객을 살피는 듯했다. 작품들은 ‘환기 블루’라는 이름처럼 파란색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파란색은 화가의 고향인 신안 앞바다의 색이라 하니 서양에서 파란색을 우울과 연상시키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파란색이 좋다는 아이도 서양에서 우울과 연결했다는 게 별로라고 말한다. 이제 파란색이라면 김환기의 파란색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몇 년 전, 홍콩의 경매에서 우리나라 미술품 최고가인 132억 원에 ‘우주’가 낙찰된 것부터 상위 10개의 작품 중 9개가 김환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부인인 김향안, 달항아리, 점화로 이야기는 이어졌다. 마지막은 장욱진의 작품을 보았다. 장욱진의 작품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화가를 생각하면 나무와 새가 먼저 떠오르는데 부인과의 다정한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된 걸 보니 순수한 아이의 동심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작품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여기에도 천진난만한 동심이 들어있는 건가 생각해 본다. 아이 같은 따뜻한 그림이지만 아이가 그린 것 같지는 않은 화가의 그림 속에 단순함이 느껴졌다. 아이와 다시 둘러본 4인의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음에도 다르게 표현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에 한 번 더 새긴 시간이었다. 경주예술의 전당 알천미술관에서 열리는 ‘4인의 거장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긴 추석 연휴에 뭘 할지 정하지 않았다면 ‘4인의 거장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아직 관람전이라면 어서 만나기를 바라고 두 번째 관람이어도 좋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