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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주문화관 1918’ 심야 책 마당

초여름이 다가와서인지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제법 어둑어둑해졌다. 경주문화관 1918 앞 광장에서 ‘경주문화관 1918 심야 책 마당’ 행사가 열렸다. 광장 가운데는 빈백을 배치해 책을 읽게 해두었고 그 주위로 책방 부스와 기타 참여 부스들로 채워져 있었다. 잔디 위로 놓인 빈백에 사람들이 기대어 책을 읽는 모습이 낯설면서 평화로워 보인다. 늦은 시간이다 보니 책 사이 사이 반딧불 같은 독서 등이 놓여있다. 독서 등은 운영본부에서 무료 대여해주고 있다. 행사는 책 토크 콘서트, 책플리, 달빛 책 광장, 바퀴 달린 도서관 등으로 나눠져 있다. 그외에도 작가들이 참여하는 팝업스토어를 비롯해 선착순 신청 참여 가능한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책 콘서트는 6월 7일 백세희 작가의 ‘내 마음 속 그늘, 우울에 관하여’, 6월 14일 이소연 작가의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6월 21일 이유미 작가의 ‘오늘을 재료로 오늘도 쓰는 법’으로 진행된다. 책 토크 콘서트는 오후 4시부터 5시 30분까지며 5월 23일부터 30명 정원 마감시 까지 신청을 받는다. 책과 playlist가 합쳐진 책플리는 책을 읽으며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오후 7시에는 프로이데 트리오, 8시엔 여름밤 잔디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방문 당일 마침 연주가 진행 중이어서 책을 구입하러 다니며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책을 주제로 한 행사다 보니 작은 책방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달빛 책 마켓은 총 여섯 개의 동네서점이 참여한다. 어서어서, 책방매화, 서점북미, 너른벽, 책방봄날, 북샵라벤더로 저마다의 독특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평소 알지 못했던 서점들을 뷔페식으로 한 곳에서 만나 서점에서는 홍보 효과를, 고객 입장에서는 새로운 공간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돋보인다. 새 책뿐만 아니라 ‘달빛 책 바자회’ 코너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책장 속 헌책도 자유롭게 판매 및 구매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서관도 참여한다. 행사장 한 켠에 경주시립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바퀴 달린 도서관 버스가 세워져 있다. 누구나 현장에서 책을 빌려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사를 아우르는 달빛 책 광장에서는 모두가 편안한 자세로 책을 즐기면 된다. 그리고 공연을 감상하다 혹은 책을 읽다 허기가 지면 F&B존에서 간단한 간식을 구입할 수 있다. 그 옆 작가 팝업스토어에서는 이신희, 최정욱, 배지윤 작가가 참여해 직접 만든 아트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시민기자는 그곳에서 저절로 눈이 가는 작고 귀여운 돌조각 작품을 데려왔다. 팝업 스토어 옆에는 식물마켓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에서는 장식하기 좋은 반려식물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식물과 책의 조합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 끝으로 체험코너를 방문했는데, 이곳에서는 책, 등, 책갈피 등을 현장에서 직접 신청하여 1인 1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다. 심야책마당은 6월 7일, 6월 14일, 6월 21일, 총 3주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된다. 토크 콘서트와 책 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코너는 해가 지는 오후 6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 운영된다. 행사장에는 별도의 무료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오랜 역사가 담긴 곳에서 달과 함께 낭만적인 시간을 느껴보기 좋은 기회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12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포항 구룡포 ‘골목길 탐험’

계절은 기다렸다는 듯, 여름으로 들어서고 있다. 6월이 펼쳐놓은 짙은 초록을 따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구룡포로 향했다. 바다를 품은 골목 위의 역사는 열 마리의 용이 승천하다 한 마리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만큼 궁금해진다. 구룡포는 포항 시내에서 생각보다 먼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30여 분 넘게 달려 입구에 들어서니 벌써 창밖으로 바다 내음이 훅 끼친다. 휴일을 맞아 아침 시간이 이제 막 지났음에도 주차장은 빈자리가 안 보일 정도였다. 줄지어 서 있는 대게 전문 간판을 배경으로 울산에서 온 대형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과 포항역에서 구룡표행 버스를 타고 왔을 전라도에서 온 학생들의 왁자한 소리가 출렁댔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곧바로 마주한 골목길로 접어드니 어렵지 않게 길을 걸을 수 있다. 먼저 구룡포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나는 길에 언뜻 보이는 ‘모리국수’는 구룡포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노포인 ‘까꾸네 모리국수’를 시작으로 모리국수를 파는 식당만도 열 개나 있을 정도다. 이제는 모리국수만을 먹기 위해 구룡포를 찾는 사람이 생길 정도라니 확실히 명물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시장을 돌아 구룡포초등학교 앞에 70년 전통의 찐빵집으로 이름난 ‘철규분식’도 보인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상가들 사이로 몇몇 사람들이 가게 안을 기웃거리다 이내 안으로 들어간다. 가게 안은 나무 테이블과 벤치 의자 네 개가 오랜 세월을 지켜온 듯했다. 양은 냄비의 국수와 접시에 담겨 나온 찐빵은 단순하고 투박해 보였지만 오래된 정이 느껴졌다. 찐빵집을 뒤로하고 일본인 가옥 거리로 가는 길은 여행객이 즐겨 찾는 골목길이다. 어린아이 손을 잡은 가족, 연인들은 물론 중년의 여행객들로 골목이 가득했다. 일본인 가옥 거리는 100여 년 전 일본인이 건너와 살았던 장소에 조성된 근대 문화 역사의 거리다. 2010년 포항시에서 일본인들의 풍요로운 모습을 재현하고 반대로 경제적으로나 생활적으로 그들에게 착취당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남겨 기억하기 위해서 조성한 거리다. 일본 어부들이 살았던 이곳에는 현재 60여 개의 일본식 목조 건물이 남아있다고 한다. 거리는 대부분 상점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주택도 눈에 들어온다. 포항 여행으로 가볼 만한 곳인 이 거리는 호미곶과 내연산 등과 함께 포항의 12경 중 하나다. 이 골목에서는 드라마도 촬영되었다. 초등학교 때 재방송까지 열심히 챙겨봤던 ‘여명의 눈동자’와 동백이와 용식이의 ‘동백꽃 필 무렵’과 여러 예능까지 구룡포가 등장했다. 그 인기에 더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과메기 문화관에서 어촌문화까지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상회나 점빵이라는 말까지 정겹다. 피어라계단이라 불리는 중앙계단에 올라서면 구룡포항이 내려다보이고 옆에는 승천한 아홉 마리의 용의 동상이 함께한다. 이 계단에선 야간 볼거리로 미디어 아트도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구룡포를 소재로 삼은 문학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아동문학가 김일광 작가에서부터 소설가 성석제의 문학작품, 양광모 시인의 시에서도 배경이 되었다. 그림책에까지 구룡포가 등장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료 주차장과 여행자플랫폼라운지까지 갖추고 있으니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 찾아와도 좋을 시장과 일본인 가옥 거리다. 구룡포는 바다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골목길에서 언제나 피어나고 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10

오래 간직한다는 것에 대하여

무엇을 오래 간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한켠에 미뤄두고 시간만 흐르면 되겠지 싶지만, 새로운 물건이 사건이 밀고 들어오면 앉은 자리는 물론 그 존재마저 위태로워진다. 우리 동네에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길이 넓어졌다. 그 길에 오래 서 있던 벚나무가 벚꽃이 한창 필 시기에 뽑혀 사라졌다. 경주 보문단지 입구에서 포항으로 오는 길도 넓어지며 가을이면 노란 잎을 몇십 년 팔랑이던 키 큰 은행나무도 잘려 나가고 어린나무가 새로운 가로수가 되었다. 나이 든 나무를 옆으로 옮기는 일보다 묘목을 심는 게 경제적인지 한자리에 오래 서 있던 나무의 시간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경주는 오래된 도시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도 경주에 오면 머리에 기와를 얹고 경주와 어우러지려고 애를 쓴다. 발굴하려고 땅을 파면 시루떡처럼 단층이 보인다. 맨 위에는 얼마 전까지 살던 이의 흔적이, 더 내려가면 조선 시대, 그 아래에 신라인의 삶의 부스러기가 발견된다. 무엇이든지 오래 간직하는 일이 젤 쉬워 보이는 도시 경주다. 예전엔 경주로 여행을 올 때, 대부분의 사람은 경주역에 첫발을 내렸다. 안동이 고향인 필자도 그랬고, 장기에 살았던 남편도 수학여행을 와서 경주역에 내렸다. 전국의 많은 사람들의 추억 한 자락이 경주역에 머문다. 지금은 경주문화관 1918로 이름이 바뀌고 기차도 오가지 않는다. 높이 솟은 급수탑이 그간의 전성기를 말해주려고 아직도 우뚝 서 있다. 경주역이란 이름은 잃어버렸지만, 역에서 관사마을로 이어지는 육교는 아직 그대로다. 육교에서 내려다보는 철길 위에 금계국이 노랗다. 구 경주역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살았던 관사촌이 지금은 도시 재생 사업으로 행복황촌 마을로 변신했다. 역과 마을을 나누는 담장을 따라 걸으니 오래된 골목이 정겹다. 대문 앞 의자에 앉아 오가는 여행객을 구경하는 어르신이 계셨다. 행복황촌마을은 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많은 젊은이가 찾아오는 마을 같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부분의 마을 개발사업과는 달리 좁은 골목길,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역무원 관사 등 마을이 갖고 있는 옛 정취가 그대로다. 2020년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폐가를 리모델링해 주민들의 문화 활동 공간인 ‘황오동 사랑채’를 열었다. 가까운 문화센터를 가려고 해도 철길 때문에 마을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양한 수업이 열린다고 한다. 지금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주민제안공모사업 등을 통해 마을의 문제점을 해결했다. 소방차 진입이 되지 안는 좁은 골목길에 ‘보이는 소화기함’을 설치하는 것을 비롯해, 가스누출경보기 설치, 마을 그림책도 만들었다. 또한 ‘마을호텔’은 황촌마을 찾는 이들을 위한 숙박시설이다. 도시민박업은 행복황촌 마을호텔로 인증을 받은 곳은 국내외 관광객이 모두 머무를 수 있다. 골목을 탐색하다가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옛 경주역장 관사가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만든 카페 ‘보우하사’에 들어갔다. 문손잡이가 세게 잡아당기면 부서질까 조심해서 열어야 했다. 서까래가 그대로 다 보였다. 적산가옥이지만 구부러진 대들보는 우리 산에서 자란 소나무 같았다. 기차마을답게 모퉁이마다 기차를 그려 넣었다. 급수탑에서 물을 채우고 칙칙폭폭 달리던 모습이다. 벽이자 담장인 곳에 빨래가 널렸다. 그 옷이 마르면 입고 육교를 지나 경주역으로 출근해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를 타러 갔을 것이다. 기차표에 구멍을 뚫어주며 반가운 눈인사를 나눴을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의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10

봉화 화장산 전투와 600명 임란의병 ‘거룩한 희생’ 기리다

1592년 4월 16만 왜군이 부산에 상륙, 임진왜란이 시작됐다. 5월에 한양 그리고 함경도까지 진격했다. 왜군을 막기 위해 전국적으로 의병들이 일어났다. 봉화에서도 1600여 명의 왜군을 무찌르고 장렬히 전사한 600여 명의 의병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류종개 선생은 김중청, 김륵, 김성일 선생과 함께 의병 600여 명을 모집했다. 류종개는 의병장이 되어 훈련을 시키고, 진중규약 16조와 군령 5조의 규칙을 정해 탄탄한 조직으로 만들었다. 왜군 모리 요시나리는 조선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떠난 한양을 점령하고 강원도 삼척에 이르렀고, 원주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때 왜장은 좌의정이자 도체찰사인 류성룡 선생의 일가가 봉화에 피란을 갔다는 첩보를 접하고 류성룡 일가를 붙잡아 안동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류성룡 일가를 붙잡기 위해 두 갈래로 나뉜 왜군은 소천면 고선리에서 현동천을 따라 남하했다. 또 다른 왜군은 소천면 현동을 거쳐 산 능선을 따라 춘양 도심리에 피란 중인 류성룡의 형인 류운룡 등 100여 명의 식솔들을 붙잡기 위해 화장산으로 향했다. 이때가 1592년 8월 22일이다. 류운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모시고 전란을 피할 수 있는 봉화군 춘양면 감동골로 정하고 10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정감록’ 십승지인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왜군은 류성룡 일가를 붙잡기 위해서 화장산을 넘어야만 했다. 봉화의 의병장 류종개는 왜군이 화장산을 넘을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는 임흘, 김인상, 권경, 윤흠신, 권현수, 윤흠도 등 600여 명의 의병을 춘양 감동골로 가기 위한 길목인 살피재에 매복시켜 적군을 기다렸다.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 선발대가 살피재를 지나고 있을 때, 그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활과 칼 그리고 창으로 무장한 봉화 의병은 단숨에 1000여 명의 왜군을 살상하고, 깃발과 말 등을 빼앗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틀 뒤 3000여 명이 넘는 왜군 본진이 살피재에 도착했다. 조총을 앞세운 왜의 대군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병은 조총 앞에 하나둘 쓰러졌고, 결국 600여 명 모두 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봉화 류종개 의병장이 이끄는 600여 명의 의병은 모시 요시나리 왜군 1600여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전투로 인해 왜군은 류성룡 일가를 붙잡는 것은 물론 안동에 진출하려던 계획도 포기하고 울진으로 물러났다. 왜군이 더 이상 진격을 포기한 채 물러나도록 만듦으로써 임진왜란의 판도를 바꾸었다는 ‘수정실록’이 평가한 봉화 화장산 전투는 대단한 의의를 지닌 싸움이었다. 430년이 지난 지금, 봉화군 소천면 화장산 노루재에 북두칠성 모양으로 쌓은 적성봉과 임란의병전전기념비가 있다. 화장산 살피재에서 전사한 류종개가 이끌던 의병 600여 명을 두고, 조정에서는 이들의 순국충절을 기리어 류종개 의병장에게는 통정대부 예조참의를 증직했다. 또 김인상, 윤흠신,윤흠도와 함께 정려를 내렸으며, 금은 공조참의를 증직해서 공을 기렸다고 한다. 또한 이 전적지를 관리하기 위해 감관 1인과 산직2인을 두어 고종 36년(1899년)까지 지켜왔다고 한다. 왜군 3600여 명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600명의 의병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2006년 사당, 전시관, 의총 등 총 7개동(259㎡) 임란의병전적지 충렬사를 지었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7월 28일(의병전사날) 임란의병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류운룡 선생이 머무른 춘양면 도심리 감동골에는 그가 심었다는 감나무 세 그루 중 두 그루와 옹달샘이 남아있다. 류운룡 선생이 구국기도를 드렸던 기도단이 4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사과 과수원 중앙에 보존되고 있으며, 감동골 입구 도로변에 문경공겸암류선생도심촌유적비가 서 있다. 임진왜란 때 다른 지역 의병들의 활동은 잘 알려진 것과 달리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600여 명의 봉화 의병은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위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봉화 600여 명의 의병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널리 알리고, 거룩한 희생이 계승 발전되기를 바란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10

도동시비동산 현충일 추모행사

비영리법인 도동 시비동산(운영위원장 권대자·회장 여영희)은 지난 6일 오전 10시30분 도동시비동산 야외무대에서 문단과 사회 주요 명사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70회 현충일 추념식을 개최했다. 사설 단체로서 처음으로 회원들이 주관한 이번 현충일 추모 행사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의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동 문학 회원들은 과일과 떡으로 제단을 꾸미고, 한국차인연합회의 협찬으로 헌다식도 함께 진행했다. 한국문협 장호병 부이사장, 대구문인협회 도광의 고문, 하청호 대구문학관장, 국제펜한국본부 손수여 제6대 대구지회장, 정인숙 대구동구의회 의장 등이 다례에 동참했다. 이어 박혜진 하모니시스트의 연주와 신표균 고문의 자천시 ‘슬픈 뻐꾸기’ 낭송도 있었다. 여영희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대구 문단을 대표한 안윤하 회장의 추모사가 있었으며, 권대자 운영위원장은 도동시비동산에 물심양면으로 동참한 조력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특별순서에 국제펜한국본부 정삼일 대구지회장은 순국선열의 조국광복을 염원하는 뜻깊은 의미가 담긴 매헌 윤봉길 의사의 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를 낭송하여 박수 갈채를 받았다. 제2부 순서로는 ‘도동 시비동산 향산정 중수 및 조력록 편액 제막기념시회’가 열렸다. 도동시비동산의 향산정은 대구 명소인 ‘측백수림 천년기념물 제1호 지정 60주년’을 기념하여 대구동구청의 지원을 받아 건립됐다. 이곳은 방문객과 문인들에게 사유와 휴식의 공간을 제공해왔다. 지붕과 목조 대청처럼 창문없이 시원하게 설계가 됐으나 장마철이나 태풍 등 비바람의 피해로 관리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독지가 몇 분의 뜻에 문인들까지 가세해 중수공사를 하고 이들의 뜻을 담은 조력록 편액을 걸었다. 권대자 운영위원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현판 제막식이 진행되었고, 한국문협 홍성훈 시분과 회장의 축사가 있었다. 이어서 안자숙 시인의 ‘말없으매’, 정지홍 시인의 ‘운부암의 미소’, 조명선 시조시인의 ‘측백수림 읽다’ 등의 낭송과 영제 시조창, 여영희 회장의 ‘팔공산’ 시조창, 그리고 대금 연주로 황영달 국악예술인의 ‘청성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이어지며 힐링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또한 방종현 대구문협 부회장의 하모니카 연주는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손수여 시민기자

2025-06-08

주권행사의 소중함 깨닫는 시간

지난 3일 6·3 대통령 선거 투표가 있던 날, 나는 지인 4명과 함께 개표사무원에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다. 개표사무원은 정해진 시간에 신분을 증명한 후 개표장 안의 정해진 자리에 대기했다. 개표장은 개표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선거관리위원들이 가장 앞부분에 위치해 있었고, 개표장 입구엔 우편투표전담부가 있고, 개함부, 투표지분류기운영부, 심사 및 집계부의 세 부서가 차례대로 나뉘어 위치했다. 개함부에서 잘 정리한 투표지를 투표지분류기운영부에서 분류기와 컴퓨터로 분류를 하며, 마지막 심사 및 집계부에서 이를 심사 집계하면 개표 업무가 완료된다. 우편투표전담부는 사전 투표한 투표지를 전담한다. 개함부는 접혀진 투표지를 잘 펴서 아래위가 바뀌지 않도록 정리하고, 찢어지거나 오물(특히 끈적이는 오물)이 묻은 투표지를 골라낸다. 개함부에서 제대로 투표지를 정리하지 못하면 분류기에서 오류가 나며, 그 오류를 바로 잡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가장 간단한 업무인 개함부의 투표지를 정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국민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가 뽑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유권자들의 마음이 담긴 투표지를 정성스럽게 정리했다. 투표지는 원래 모양 그대로 인 것이 있었는가 하면, 가로 혹은 세로로 한 번씩 접은 것이 있고, 가로 혹은 세로로 두 번씩 접힌 것도 있었다. 세로로 접은 후 가로로 2번을 접은 것도 있었고 정사각형을 만들기 위해 네 가장자리를 접은 것도 있었다. 모든 후보자에게 도장을 찍은 유권자의 투표지와 빈 투표지도 가끔 발견됐다. 내 손보다 훨씬 커다란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투표지를 열 때마다 투표한 이의 마음을 열어보는 것 같아 한 장 한 장이 소중했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주권 행사를 위해 아흔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투표장에 갔었다. 내 마음이 그러했기에 투표지 한 장 한 장에 담겨있을 유권자들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함부가 투표지를 다 정리하면 투표지분류기운영부로 정리된 투표지를 넘기게 되는데 투표지분류기운영부의 개표사무원들은 개표일 전에 미리 교육을 받은 젊은 층이 많았다. 심사 및 합계부가 심사하고 집계를 하여 전체 합산을 하면 개표 작업은 완료된다. 개표 작업은 새벽 2시 가까운 시간에 끝이 났다. 나는 개표 사무원으로 참가하면서 시종 마음이 조심스럽고 무거웠다. 실수없이 개표작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우리가 뽑은 정치인에게 거는 국민적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주권 행사에 직접 나선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린 정치가 진정한 정치가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는 주권행사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하는 개표사무원 참가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장혜숙 시민기자

2025-06-08

호국보훈의 달, 현충일의 참뜻을 되새기며

6월, 호국보훈의 달이 돌아왔다. 매년 이맘때면 언론과 각종 매체에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긴다. 올해로 70회를 맞는 현충일은 1956년 6월 6일, 제1차 국무회의에서 제정된 법정기념일로, 6·25전쟁과 제2연평해전 등 국가적 아픔이 집중된 6월에 맞춰 지정되었다. 이날은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날이다. 현충일 아침, 전국 곳곳에는 조기가 게양되고, 오전 10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온 국민이 1분간 묵념에 들어간다. 이 짧은 시간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섰던 명예로운 호국영령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현충일의 의미를 얼마나 가슴 깊이 새기고 있을까? 현충일 노래의 가사처럼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라는 구절은 나라를 위한 희생이 결코 잊혀서는 안 됨을 일깨운다. 시민기자는 현충일 아침, 아파트 단지 내 태극기 게양 현황을 살펴보았다. 527세대 중 태극기를 단 집은 30세대 남짓. 북한과의 긴장 상황 속에서도 점점 무뎌져 가는 우리의 경각심과 애국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라 없는 삶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다. 6·25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은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민기자 역시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만 남아있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말처럼, 국방의 중요성과 국민의 단결이 곧 국가의 힘임을 역사는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승만 대통령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정치인들은 이 말을 가슴 깊이 되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가 근간을 흔드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내부의 분열은 외부의 침략보다 더 무섭고,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우리는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듯, 대한민국의 소중함도 종종 잊고 산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야 할 때다. 호국보훈의 달 6월, 단 한 번이라도 태극기를 달고, 1분간의 묵념에 진심을 담아보자.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 잊혀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작은 실천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나라를 위한 희생은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임을, 이 호국보훈의 달에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 본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6-08

문화가 되어 가는 동물 장례식

반려동물 소유의 사례는 북부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사람과 개가 함께 묻혀있는 약 1만2000년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발견되어 증명된다. 이 무덤에서 발견된 사람의 한쪽 팔이 개의 어깨 위에 놓여 있는 모습은 주인과 개 사이의 깊은 애정과 애착 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동물의 가축화는 식량자원으로써의 역할과 운송을 위한 사역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인류의 오랜 초기 역사 이전에 이루어졌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화석의 발견은 동물들이 반려감을 목적으로 사람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구석기 유적지인 경남 사천의 늑도라는 곳에서 기원전 약 8000년 전 신석기 후기와 청동기 전기의 화석으로 발견되었는데 고고학자들은 개들의 뼈가 온전하고 그중에는 작은 개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반려용으로 키운 개들로 추정하였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의 견우직녀도(408년)에도 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반려견과 교감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의미의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은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한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라는 주제로 하는 국제심포지엄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애완동물이란 용어를 사용했지만, 소유의 개념이 강해서 근래에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강조되면서 반려동물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이러한 반려동물도 결국에는 죽음을 맞아야 하는데 사람의 장례와 유사한 과정으로 이별을 하게 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2025년 5월 현재 전국에 73곳의 반려동물장례식장(화장장)이 운영되고 있다.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지역에도 여러 곳이 운영되고 있다. 행정구역 상 대구시 군위군, 경상북도 성주군, 칠곡군, 구미시, 김천시, 경산시, 청도군에 각 한곳씩 운영되고 있지만 시설의 가동률은 30% 정도에 그친다. 예전에는 매장하거나 동물병원에서 의료폐기물로 처리하였지만, 환경관련 법에서 매장이 금지되고 반려동물의 가족화가 심화 되어가면서 장례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다. 매장(埋葬)으로 인한 2차 감염이나 훼손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례식장을 통한 이별의 절차가 유족의 마음 챙김에는 도움이 된다고 한다. 교감을 통해 받은 사랑을 온전히 돌려주는 장례 의식이 문화가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6-08

대구 비원노인복지관,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개강식

대구 서구(구청장 류한국) 비원노인복지관(관장 권덕환)은 지난달 30일, 2025년 서구 노인복지기금사업 사회적 취약 독거노인의 정서안정을 위한 집단상담 프로그램인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개강식을 개최했다.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개강식에서 비원노인복지관은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참여 어르신들 사이의 유대감을 증진 시키고, 긍정적이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데 동기를 부여하는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본 과정은 오는 6월 10일부터 10월까지 정서상담, 관계나눔, 만들기, 나들이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집단상담 프로그램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노년기에 빠지기 쉬운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사회적 관계망 강화 및 정서적 안정을 통한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예정이다. 비원노인복지관 회원 이남희 어르신은 이번 프로그램에 대하여 “내가 여든 해를 살아왔다. 요즘 들어 같이 웃던 얼굴들이 그리워 자꾸 마음이 허전하였는데, 여기서 마음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모처럼 설레인다.”라고 말했다. 비원노인복지관 권덕환 관장은“외로움에 다소 빠지기 쉬울 수 있는 어르신들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이곳에서 희망찬 인생을 기대하며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6-04

인생 첫 선거 치른 고3 미래 위해 ‘투표 인증’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이번 대선의 선거권은 2007년 6월 4일 이전에 태어난 만 18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에게 주어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고3 학생 45만3812명 중 유권자는 19만2439명이라고 한다. 대략 42.4%의 학생이 투표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2007년은 황금돼지띠의 해이다. 그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재물복과 길운이 따른다고 하여 출산율이 반짝 오르기도 했다. 올해 고3인 수험생 이정은 학생 또한 황금돼지띠다. 생일이 상반기에 있어 이번에 첫 투표권을 행사했다. 같은 반 친구 중 대략 1/3 정도가 유권자였다고 한다. 5월 30일 금요일, 사전 선거 이틀째 날 가족과 함께 투표를 마친 이정은 학생이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기분이 좋아요. 첫 투표를 대선 투표로 해서 그런지 그 느낌이 더 특별해요. 운동 경기로 치면 예선전이 아닌 결승전을 치른 기분이랄까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전 선거일 이틀 모두 평일이었던 것과 고3으로서 직관적으로 와 닿는 교육 공약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한다.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의 다양한 방법 중 ‘투표 인증’을 빼놓을 수 없다. 기존 선거에서는 투표소 앞에서 찍은 사진, 기표 도장을 찍은 손등 인증샷 등이 흔했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포토카드나 각종 캐릭터가 있는 인증 용지, 리플릿이나 가랜드 형태의 인증 용지를 이용해 개성 만점의 투표 인증샷을 남겼다. 혹 인증 용지를 잊었더라도 투표 확인증을 받아 찍어오기도 하는 등 ‘핫’하고 ‘힙’한 세대는 선거조차 축제처럼, 이벤트처럼 즐겼다. 이정은 학생은 담임선생님이 준 용지로 투표 인증을 했다. 인생 첫 투표를 앞둔 고3 제자들을 위해 선생님이 기념으로 주셨다고 한다. 인증 용지의 모음 ‘o’자에 기표를 해 글자를 완성하면 된다. 고3을 위해 완성된 문구는 ‘수능대박’이다. 그리고 학업에 지친 아이들에게 반짝이는 응원의 문구가 함께 적혀 있다. “반짝반짝 빛날 너의 내일에 투표해.”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03

지구환경을 위한 소비생활, 가치소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환경은 우리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소비도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소비를 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소비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지구환경을 위한 소비생활은 무엇일까. 지난 금요일 꿈마루 작은 도서관에서 마련한 찾아가는 지구환경 수업이 있었다. 수업의 주제도 ‘가치 사서 같이 살자’였다. 포항환경학교에서 나온 환경 교육 강사와 함께 수업에 참여한 시민들은 자신의 소비 모습을 돌아보며 지구환경을 위한 지속 가능한 소비, 소비문화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사는 먼저 경제와 환경을 연결 지으며 우리들이 하루에 만들어내는 쓰레기가 엄청난데 그 쓰레기가 문제라고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가 사용한 쓰레기를 볼 때면 한 번쯤은 절로 인상이 찌그러지고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소비하고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이 지구는 병들어 가고 있다. 소비로 인한 많은 쓰레기 가운데 첫 번째는 플라스틱이다. 1인당 사용량을 보면 부끄럽지만 우리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소비로 인한 많은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는데 ‘fast fashion’ 영향으로 이제는 재활용보다는 대부분 소각되고 있는 의류 폐기물도 하루에 880t이나 된다. 먹거리로 인한 오염, 파괴되는 산림, 모두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가전제품, 생활에서 쓰는 물 사용량도 많아 1인당 사용량이 하루에 300L를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이 2L가 안 되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양이다. 이렇게 쓰레기로 오염된 환경이 결국은 우리에게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이라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지구를 생각하고 우리들의 생활을 위한 가치소비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가치소비는 보통 가성비보다는 가심비를 생각하는 소비라 할 수 있다. 가심비 소비는 비용에 상관없이 만족스러운 것을 구매하는 소비다. 가성비와 반대되는 말로 성능보다는 심리적 만족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가치소비와 맞닿아 있다. 가치소비에는 친환경, 사회적 약자,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어찌 보면 넘쳐나는 소비문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다. 가치소비에는 MZ세대가 가장 적극적이다. 10명 중 8명이 가치소비를 하고 있어 가치제품 판매도 증가하고 있다. 선(善)행 업체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모습, 플로킹, 업사이클링, 재활용 등. 적극적인 소비모습이 그렇다. 이전 세대와 다른 이들의 소비성향을 대신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제로소비도 마찬가지다. 제로소비는 ‘사지 않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노 쇼핑 챌린지, 제로 웨이스트 카페, 공유경제의 확산, 중고 거래의 확산, 디지털 디톡스 등이다. 단순히 아끼는 절약이 아닌 의식적으로 소비를 절제하고 환경과 사회,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환경을 위한 소비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한은미(46·포항시 북구 장량동) 씨는 “환경을 위한 소비에 인식은 잘하고 있지만 실천이 쉽지 않다. 가치소비와 지속 가능한 소비는 가정에서 가족들이 잘 동참해 주어야 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03

고향을 그리게 하는 콩잎물김치

휴일이라 늦은 저녁상을 차렸다. 친정에서 보내온 겉절이, 오이김치, 물김치에 지난주부터 콩잎김치가 새로 등장했다. 초록색 여린 잎이 존재감을 잃지 않고 푸릇푸릇 살아있는 물김치다. 압력솥에 방금 한 밥을 퍼서 빡빡장과 함께 쌈을 싸서 먹으니 콩밭을 가득 품은 듯 뿌듯하다.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딱 요맘때, 경상도에서만, 아니 모든 경상도가 아닌 포항 근처에서만 즐겨 먹는 음식이다. 안동이 고향인 나는 중학교 2학년에 포항으로 전학오며 처음 콩잎도 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점심시간 친구의 반찬통에 얌전히 누운 노란 잎, 호기심에 한 잎 떼어 입에 넣었다가 질겅거리는 식감에 몰래 뱉어야만 했다. 깻잎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물으니, 콩잎도 모르냐고 친구가 어이없어했다. 낙엽을 먹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부드러운 깻잎과는 식감이 완전히 달랐다. 고향인 안동보다 포항에 더 오래 살다보니 이젠 노란 콩잎김치를 사랑하게 되었다. 젓갈과 제피 향이 가미된 맛은 밥도둑이다. 하지만 초록 콩잎을 맛있게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젊을 때는 특유의 풋내가 싫었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물들어 이젠 늦봄 잠깐 나오는 이때 열심히 찾아 먹는다. 제철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한다고 몸에서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벌써 이 백 재기 넘게 콩잎김치를 담궜다. 한 묶음을 엄마의 입말인지 포항 사투리인지 한 재기 두 재기 이렇게 사고팔았다. 해 뜨기 전에 새순을 따서 친정에 새벽 3시면 자루 가득 담아 배달해 주신다. 그것을 이웃 친구들과 나눈다. 벌써 세 번째 주문이라고 했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초곡리에 콩 농사하시는 분들은 이틀에 한번 여린 순을 따서 내다 팔아 자식 다 키웠다고 했다. 콩보다 잎 농사였다. 그러다 어느 날 밭을 갈아엎어 가을콩을 심는다고. 푸른 콩잎 쌈을 싸던 남편이 서울 작은 아버님께 택배로 보내드리고 싶다고 했다. 오래 병석에 누워 입맛이 없으니 고향 음식이 그리운 것이다. 8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서울 시동생에게 매년 이즈음 보낸 고향 소식이었었다. 죽도시장에서 사서 보냈더니, 그 맛이 아니라 하셔서 올해는 친정엄마 손을 빌렸다. 넉넉히 담궈서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서울로 보냈다. 만드는 방법을 물으니, 된장 풀고 양파 썰어 넣고 그럼 된다고 힘든 거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니 콩잎은 너무 씻으면 짓물러 특유의 풋내가 나서 살살 씻고 참쌀풀을 쑤어 국물을 준비한다. 된장을 풀고 양파를 채 썰어 넣고 숨이 죽을 때까지 그냥 놔둔다. 오랜 세월 몸에 익힌 방법이라 그냥 하면 된다고 ‘숩다’고만 하셨다. 함께 싸 먹는 빡빡장도 꼭 필요하다. 강된장이라고도 부른다. 다양한 채소와 된장을 이용해 만드는 걸쭉한 한국 전통 요리다. 주로 쌈이나 비빔밥에 곁들여 먹으며, 깊은 풍미와 감칠맛이 특징이다. 기본 재료 애호박, 양파, 대파, 청양고추, 버섯 등 다양한 채소를 잘게 다져 준비한다. 두부도 추가할 수 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파와 호박을 먼저 볶다가 된장을 넣고 함께 볶아준다. 쌀뜨물이나 해물 분말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다진 마늘, 고춧가루 넣고 끓여준다. 마지막에 청양고추와 버섯을 넣고 한 번 더 끓여 마무리한다. 된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짤 수 있으니, 끓이면서 간을 보며 조절하는 것이 좋다. 빡빡장은 냉장고에 보관하면 다른 국물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콩잎에 따끈한 밥 올려 빡빡장 곁들여 먹으니 밥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설거지 후 손을 씻고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잡다가 시큼한 향에 왼손 냄새를 맡았다. 콩잎김치가 그대로 거기 있었다. 작은 아버님이 그리워하는 고향 냄새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03

한끝차이

노인복지대학에 이름난 3총사가 있다. 군의원에 출마한 이력이 있는 황만보씨와 부면장(副面長)을 끝으로 은퇴한 고주태씨와 마지막으로 초등학교에서 교감을 역임한 강만태씨다. 세 사람 중 성격이 활달한 호걸풍의 황만보씨는 사업 수완이 좋아 벌어놓은 재산이 많아 돈도 제법 잘 써서 무리 중에 대장 격이다. 흠이라면 두 번이나 군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일이다. 군의원에 당선되어 의원님 소리 들어보는 것이 꿈이었을 터 두 번째 출마했을 때 고작 두 표 차이로 낙선했다 하니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더욱 기가 막힌 사연은 가까이 지내든 지인이 투표 날 외양간에 불이나 경망 중에 투표하지 못했다. 나중 복기(復記)를 해보니 그 지인 가족 4인이 갔으면 자기가 두 표 차로 이겨 당선되었을 것이다. 땅을 칠 일이지만 더는 군의원에 출마할 꿈을 접고 마음의 군의원으로 남기로 했다. 고주태씨는 공무원의 로망인 사무관에 진급해서 면장님 소리를 들어 보는 게 꿈이었을 테고 강만태씨는 만년 교감에서 교장 선생님 소리 들어 보는 게 꿈이었을 테니 세 사람은 모두 부(副)자 콤플렉스를 가진 셈이다. 어느 날 술자리를 했을 때이다. 황 낙선의원이 한마디 한다. “우리 갑장이니 거추장스럽게 말을 들지 말고, 트도록 하자” 며 제안하고 화투판에 갑오나 여덟 끗 은 한 끗 차이로 별 차이가 아니니 오늘부터 우리 호칭도 한 끗 올리기로 하잔다. 눈치 빠른 고 부면장이 손뼉을 치면서 한마디 거든다. “아 강만태 교감 오늘부터 자네는 교감에서 교장으로 한 끗 승진한 것이네!” 하며 “황 의원님 내 말이 맞지요” “그렇고 말고지 이 사람 고 면장” 하하하 삼총사의 웃음소리가 골목길을 메운다. 그 후로 복지대학에서 셋은 스스로 올림 직함이 대견한지 평소에는 넌지시 부르든 소리가 이제는 “어이 강 교장 차 한잔하시게” 하며 부르기도 하고 “고 면장 점심 먹으러가세” 하는 둥 기고만장하다. 하모니카 반에는 원래 강 교장 혼자 수강했는데 나중 두 사람을 끌어들여 이제 삼총사가 모두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강 교장은 홍 여사와 같은 책상에 나란히 앉아 수강하는 짝꿍이다. 홍 여사는 말수가 조용하고 싱글이라 소문이 나 뭇 할배들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홍 여사를 강 교장은 매일 볼 수 있고 옆자리에 앉히고 독점하기에 하루하루가 즐겁다. 어느 날 강 교장이 조금 늦게 나온 날이었다. 오매도 불망인 홍 여사 옆에 황 의원이 떡 하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수완 좋은 황 의원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두 사람이 수업시간 내 키득거려 강 교장의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수업이 끝나자 황 의원이 강 교장을 부른다. “어이 강 교장 고 면장 불러오게 홍 여사랑 점심 같이하세” 평소에는 구내식당에서 하는 게 상례인데 이쯤 되면 괜찮은 식당에서 황 의원이 한턱을 내는 게 십상이라 속은 쓰리지만, 말없이 따른다. 식당에서도 황 의원의 구수한 입담이 좌중을 휘어잡는다. 황 의원의 농담에 손을 가리고 웃는 홍 여사가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조금 전 식당을 나서며 홍 여사에게 은근한 눈길을 보냈는데 고개를 숙이는 품새도 전과 다른 것 같아 애가 탄다. 강 교장은 내심으로 이러다가 홍 여사를 황 의원한테 뺏기는 건 아닐까 봐 속이 탄다. 내일은 일찍 나와서 홍 여사 옆에 앉으리라 다짐해 본다.

2025-06-01

한국전쟁이 낳은 전선문화의 보고

대구근대역사 골목길을 걷다보면 한국전쟁이 낳은 전쟁문화의 기록들을 모아 놓은 한국전선문화관을 만날 수 있다. 대구시 중구 대구근대역사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북성로에 위치해 있으며 대구시가 6·25전쟁 당시 술집이었던 대지바 건물을 철거직전 인수해 리모델링을 거쳐 작년 3월 개관했다. 대구를 찾는 여행객들이 한국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문화를 꽃피었던 당시 모습을 상상하며 이곳을 많이 찾는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대구는 피란민의 도시이자 한국문학과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전국서 피란 온 예술인들이 대구에 모여 전쟁의 포화 중에도 문화예술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 흔적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한국전선문화관을 개관하게 된 동기는 한국전쟁 시기 대구를 무대로 맹활약했던 예술인들의 자료를 보존하고 대구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자원인 ‘전선문화’를 기념하기 위해서다. 또 당시 문화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그 기억을 시민들과 공유하면서 대구문화예술의 현재와 미래 가치를 조명하고자 하는데도 목적이 있다. 1층은 기억의 공간, 2층은 재현의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전선문화란 가장 어두웠던 시대의 우리의 기록이다. 그래서 한국 문화예술의 소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후대인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란 생각으로 전선문화관을 둘러보면 나름의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곳에는 구상 시인이 육군 종군작가단 부단장으로 활동하며 기관지인 ‘전선문학’을 발행하고 문학방송을 하던 기록들이 보존돼 있다. 육군, 공군기자단과 이중섭 화가 등이 피난시절 군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시도 쓰고 토론하던 흔적도 만나볼 수 있다. 또 육군종군 작가단에서 발행한 ‘전선문학’ 창간호를 연극 장르로 재해석한 프로그램 등 ‘전선문학’을 다양한 장르에서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지역 문화예술 협력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전선문화관은 대구시 중구 북성로 104-11에 있다. 전화는 (053)426-1231. /유병길 시민기자

2025-06-01

“품격있는 노후생활 영위에 힘 보태자”

대구광역시노인종합복지관(관장 전용만) 노인대학 총학생회(회장 차세희)는 지난달 27일 김태령 안현진 복사의 안내로 경북 경산시 남천면 일원에서 2025학년도 봄 야유회를 개최했다. 이번 야유회는 노인대학의 각 반을 대표하는 회장 23명이 참석해 어르신 간의 소통과 연대의식을 높이는 소중한 교류의 시간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행사는 노인대학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는 반 회장단의 노고를 격려하고, 향후 학사 운영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기획됐다. 본 회의에서는 상반기 운영에 대한 각 반의 성과를 나누고, 하반기 일정에 대한 건의사항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각자의 반에서 체감한 학습 만족도와 개선점, 건의사항 등을 활발히 제안하였으며, 복지관 운영진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실제 반영 방안을 함께 모색하였다. 차세희 총학생회장은 “노인대학은 단순한 교육 공간을 넘어, 어르신들이 주체적으로 노후를 설계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며 “오늘의 봄 야유회처럼 어르신 스스로가 리더로서 성장하고 주도하는 문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큰 나무 봉사단 정병진 단장은 “학생회 각반 회장님은 각자 반에서 모두가 묵묵히 앞장서며 봉사정신이 몸에 밴 분”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학생회 이계동 변춘열 부회장은 “앞으로 어르신들이 보다 주체적이고 품격 있는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대구광역시노인종합복지관은 오는 6월 9일 개관 30주년을 맞는다. 대구 최초의 노인복지관으로, 대구시가 설립하고 아시아복지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창조하는 노후’를 운영 이념으로 내세운 대구시노인복지관은 현재 약 60개의 취미여가교실과 평생교육, 특강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지역 노인들에게 다양한 배움과 여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대구 지역 노인복지관 중 유일하게 이용자 자치기구인 ‘총학생회’를 통해 회원 주도의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또한 회원들을 대상으로 모금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지역 내 취약계층 노인의 권익 향상에도 지속적으로 힘을 쏟고 있다. 2024년 기준 연간 이용 회원 수는 27만 명을 넘었고, 하루 평균 약 1100명의 회원이 복지관을 찾고 있어 명실상부한 대구노인복지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06-01

“독도는 우리 땅, 확실하게 말하자”

지난 달 30일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에서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가 주최 하고 교육부, 경상북도, 한국연구재단이 후원하는 독도 학술포럼이 열렸다. 영남대 독도연구소 설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날 학술포럼은 ‘우리나라 독도 연구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포럼에는 독도 단체 대표와 독도의 역사와 지리학 교수, 독도 연구자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최재목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장(영남대 철학과 교수)은 인사말에서 “이달로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가 전국 대학 최초의 전문연구소로 설립된 지 20주년을 맞았다”며 “그동안 독도연구, 독도자료 수집과 학술대회와 세미나, 전시회를 개최하여 독도 연구의 허브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독도 교육에서도 교육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면서 연구 성과의 대부분은 외교부와 교육부의 정책에 반영되었다”고 했다. 또 이번 포럼이 독도 연구의 성과를 뒤돌아보고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하여 한일 간의 갈등 해소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주제 발표에 나선 김병렬 명예교수(국방대학교)는 광복 이후 한국과 일본 간의 독도 문제는 조용했던 적이 없었다고 밝히고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 △1954년 등대 건설 및 독도 기념우표발행 △1996년 독도 접안시설 착공 △2005년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일본 외무성의 다케시마 10포인트 등 이런 움직임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반박자료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가 설립되면서 독도연구에 수많은 업적을 냈다고 칭찬하는 한편 17세기 독도영유권, 마쓰시마(松島) 도해면허설, 대일강화조약 등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설명하며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나는 “현재대로 우리가 독도를 게속 차지하고 있으면 일본이 포기하게 될 것이고 독도는 아무 문제없이 우리의 땅이 되는가?” 또 하나는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독도 문제는 절대로 국제사법제판소에 가지 않아도 되는가? 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포럼에 참석한 많은 교수와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은 내지 못했다. 이어서 패널토론에서 문철영 명예교수(단국대)는 역사학 분야 독도 연구의 회고와 방향을 독도학 정립을 위한 학제 간 연구의 시작, 독도영유권 확립을 위한 연구, 독도연구소의 강점에 대해 발표했다. 손승철 명예교수(강원대)는 도서(島)관리정책 분야 연구 전망을 도서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이어서 이상태 한국영토학회장 은 지리학 분야 독도 연구의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서 독도의 지리학적 연구, 고지도가 증명하는 독도영유권, 조선 후기의 고지도에 나타난 독도, 조선 고지도의 우산도 위치에 대해 발표했고, 이석용 한남대 명예교수는 국제법 분야 독도 문제에 대해 울릉도 경계, 도해 금지령, 안용복 사건, 삼국사기, 세종신록지리지, 고려사 등에 대하여 역사적 지리적 사실에 대해 발표했다. 이날 포럼은 독도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독도 단체 대표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였다는데 모두 공감하고 독도학술포럼의 잦은 개최를 희망한다며 마무리 되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5-06-01

‘칠서생태공원 청보리·작약축제’ 푸르름과 꽃향기의 향연에 젖다

경남 함안군 칠서면에 위치한 함안강나루생태공원에서 ‘제3회 칠서생태공원 청보리·작약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축제는 5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진행됐으며, 따뜻한 봄날의 정취와 함께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이번 축제는 ‘푸르른 청보리밭, 작약꽃 향기 흩날리다’를 주제로, 41만㎡ 규모의 청보리밭과 41만6000㎡에 이르는 작약꽃밭이 장관을 이뤘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 물결과 화려한 작약꽃의 향연은 많은 방문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행사장 곳곳에는 푸드트럭과 농·특산물 직거래 장터, 생필품 장터, 다양한 시음 행사 등이 마련되어 풍성한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했다. 맛과 멋이 어우러진 현장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축제 첫날에는 지역 문화 공연과 함께 개막식이 진행되었으며, 인기가수 박서진을 초청하여 축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저녁 시간에는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져 축제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렸다. 시민기자가 직접 방문한 5월 10일에는 ‘제3회 청년버스킹 경연대회’가 열려, 젊은 음악인들의 열정적인 무대가 이어졌다. 관객들은 치열한 예선을 통과한 참가자들의 수준 높은 공연에 뜨거운 박수와 응원을 보냈으며, 심사위원들의 냉철한 평가가 더해져 경연은 긴장감 넘치게 진행되었다. 행사장 일대에서는 승마 체험, 작약 화분 만들기, 어린이 타투 체험, 그립톡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었고, 마술쇼와 현장 즉석 노래방 같은 참여형 공연도 함께 진행되어 남녀노소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청보리와 작약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 시민기자는 엄마와 함께 포토존마다 사진을 남기며 소중한 모녀의 추억을 쌓았다. 축제에 참석한 당일, 친구에게 청보리·작약축제를 즐기러 함안에 왔다고 자랑하니 “함안에 갔다면 보리밥은 꼭 먹어야 한다”고 추천을 받았다. 그러나 축제 현장의 풍성한 음식에 이미 배가 불러 결국 보리밥은 맛보지 못했다. 시민기자는 다음 함안 여행 계획에 ‘꼭 보리밥 먹기’를 포함하기로 다짐하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푸르름과 꽃향기, 사람들의 웃음이 가득했던 이번 청보리·작약축제는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봄날의 힐링 공간으로 오래 기억될 추억으로 남았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9

‘지나온 시간’ 돌이켜 보여주는 전시회

달빛이 만들어 내는 시간, 개구리 소리로 옮겨진 시간의 이야기. 한 편의 함축적인 시와 같은 그림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자 색면화처럼 단색의 강렬한 색채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나하나 뚜렷한 자신만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이질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낮과 밤이 극명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하나의 몸을 유지하듯 작품들도 그러한 모습이다. 시간은 거대한 유기체가 되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언제나 우리 곁에 함께인 시간이지만 언어로, 이미지로 나타내라면 막연한 느낌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는 온전히 작가의 감정과 신체 반응을 통해서 표현이 가능하다. 박미희 작가는 단순화된 색채와 겹겹이 쌓아올린 마티에르를 통해 그녀가 지나온 시간을 시각화시켜 보여주고 있다.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물감이 서로 높낮이를 달리해 놓여있다. 박 작가는 요철의 무게감을 달리해 시간의 다양성을 표현했다고 한다. 선명한 기억은 좀 더 높게 뚜렷하게, 흐릿한 시간들은 먼 풍경처럼 녹아있다. 전시장 한가운데 바다가 떠 있다. ‘시간의 바다’란 작품이다. 바다가 품은 무수한 시간이 들어있다. 심해는 깊고 어두운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도 해는 뜨고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크기의 작품이 시리즈로 함께 한다. ‘시간-자취’에서는 ‘시간과 바다’ 작품을 제작하면서 사용되었던 색상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시간이 기록되었다. ‘시간-공존’이란 작품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간극이 필요하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기에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맹목적인 믿음이 만들어내는 큰 목소리들이 자신의 영역을 넘어 다른 이의 공간마저 강요한다. 자연과 인간의 거리, 사람과 사람의 거리. 그 거리가 적정선에서 유지되지 않으면 평화는 파괴된다. 다정한 느낌마저 드는 ‘그날’은 늘 있던 보통의 날이 특별하게 와닿았던 순간을 담았다고 한다. 무엇하나 특별한 일 없이 조용한 하루였지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하루가 화폭 속에 담겨있다. 붉게 타오르는 느낌마저 들었던 ‘시간-정열’은 작가가 힘들었던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한 에너지를 얻고 싶었던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시간-기회’는 모두가 힘들었던 코로나19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만이 아닌 다음으로 도약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들어있다. 박 작가는 작품에서 시간을 이야기하며 그 다음 단계로 희망을 말한다. 끝으로 작가노트에서 발췌한 내용을 기록한다. “···. 해가 뜨고 달이 뜨고 하루가 흐르고 한 달이 흐르고 일년, 이년···. 아무리 막막했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좋든 나쁘든 해결이 된다. 그 막막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절대 잃지 않는 것이다 있다. 희망이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141 갤러리 2전시실 (141미니호텔 지하1층)에서 진행된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9

오월의 향기가 묻어난 방송대 포항총동문회 역사•문화탐방

울진으로 역사·문화 탐방을 다녀왔다. 관광 명소가 많은 지역이라 욕심을 부려 보지만 한울원자력발전소, 봉평리 신라비, 성류굴,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를 둘러보고 나니 하루해가 저문다.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직원이 나와 친절히 설명을 해주고 신라비에 얽힌 이야기는 해설사의 유머 섞인 설명으로 재미를 더한다. 사생대회가 열린 듯 원자력 발전소 정원 곳곳에 자리 깔고 앉아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풍경에서 오월의 향기가 묻어난다. 시끄러운 세상이 무색해진다. 주말 아침 포항종합운동장 호돌이 탑 앞은 늘 부산스럽다. 산악회, 결혼식 참석 및 각종 모임의 행사 참여를 위한 대형버스들이 차창 앞 유리에 해당 단체 이름을 붙여두고 비좁도록 얼기설기 주차해 있다. 들뜬 마음으로 새벽을 설친 사람들은 타야 할 버스를 찾아 분주히 오간다. 6·3 선거를 앞두고 띠 두른 사람들까지 부산스레 오가니 그야말로 새벽 죽도시장만큼이나 생기 넘친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같은 버스에 오른다. 나이, 직업, 사는 곳이 다른 사람들. 서먹서먹하다. 공통분모는 관광버스 차창에 붙어 있는 ‘방송대’라는 세 글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공식 줄임말이다. 동문회 임원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꿀 같은 아침을 삼사해상공원에서 함께 나눈 후 달리는 버스에서 통성명이 시작된다. 가장 오랜 동문은 81학번이다. 우연히 동문 행사 소식을 접하고 전주에서 여행하듯 부인과 함께 전날 포항 와서 하룻밤 묵었다는 그는 추억을 찾아 먼 거리 마다하지 않고 왔노라 인사말 끝에 눈시울을 붉힌다. 포항에 있다는 같은 학번의 두 분까지, 그 시절 포항제철을 다니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노라 이구동성으로 말하던 세 분이 총 동문 행사에서 오랜만에 뭉친 듯하다. 마이크가 넘겨지며 저마다의 추억으로 인사말이 이어진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삶의 여유를 즐기고자 방송대를 찾지만 80년대 당시는 ‘인생을 바꾼 대학’이었다. 출석 수업도 많아 휴가를 모두 사용하고도 모자랐다 하니 졸업을 위해서는 특별한 각오와 뚝심이 필요했을 터이다. 00학번 선배는 또 말한다. 당시 포항시 학습관은 포항종합제철 협력회관 지하였고 지금 흥해 학습관을 얻기 위해 학우들이 학교와 무던히도 싸웠노라고. 시차를 둔 40여 년의 추억담이 오가니 격동기를 함께한 방송대의 변천사가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친다. 술을 하든 못하든, 선배든 후배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건배 제의를 받아들이며 저마다의 건배사에 힘을 싣는다. 어느새 격이 없어진 망년지우(忘年之友)들의 수다는 짧은 하루해가 그저 아쉽다. 등기산 스카이워크의 아찔한 경험을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하며 후포 바다를 마주한 쉼터에 둘러앉는다. 힘들었지만 희망을 꿈꿨던 그때가 그리운 오월의 향기를 품은 사람들과 바닷바람 마시며 지난 세월을 함께 추억한다. 열심히 살아온 그들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40여 년의 선후배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총동문회가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활기를 되찾기까지 많은 이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현재 방송대 포항총동문회를 이끄는 오낙률 회장은 ‘포항 12경’외 다수의 시집을 출간하고 국악인으로도 활동하며 선후배 간의 원활한 소통과 교류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인생길에서 마음을 나누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든든함이 아닐까?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9

얇아진 주머니 사정에 착한 가게 이용은 어떤가요

다시 물가가 오르고 있다. 기름값이 내려간 것과는 달리 먹거리나 서비스 요금 등이 올라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도 점점 얇아지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의 4월 소비자 물가동향에 따르면 1년 전보다 2.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식품 가격의 오름은 고물가와 생활비 부담을 어려워하고 있는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지난 5월 초, 황금연휴에도 사람들은 소득은 오르지 않는데 생활비가 올라간 것을 이유로 들어 비용을 크게 지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념일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6살 아이를 둔 정희경 (41·포항시 북구 환호동) 씨도 지난 어린이날을 맞아 부모님과 아이를 데리고 당연한 듯 가까운 환호공원으로 향했다. “최근 물가가 올라 가족과 멀리 여행을 가기에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대신 환호공원에서 아이의 체험 거리가 많아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직장인들에겐 점심시간이란 행복한 마음으로 메뉴를 고르며 잠시 쉼표를 찍으며 행복해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얇아진 주머니 사정으로 가성비를 따지며 구내식당이나 편의점 도시락을 이용하는 직장인들도 많아졌다.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던 김밥도 이제는 한 줄에 6,000원까지 하는 메뉴도 등장했다. 양덕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모(35) 씨도 “근처에 있는 김밥이 대부분 한 줄에 5500원이다. 두 줄이면 1만 원이 넘는다. 가격이 너무 비싸 자주 사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이제는 점심때 조금 더 저렴한 편의점을 이용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반대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60대 사장 김모씨는 “ 점심때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점심 장사를 했다. 하지만 식당을 찾는 손님도 줄어 지난 4월부터는 점심때는 가게를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재룟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고정적으로 나가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매일 같이 가족들을 챙겨야 하는 주부들도 마트에서 20만 원이 훌쩍 넘게 장을 보아도 며칠이면 또다시 마트를 가야 하는 상황이라 더 그렇다. 그래서 인가. 외식하기에도 쉽지 않은 요즘, SNS에서는 가성비로 인기 있는 가게나 착한 가게 이야기가 자주 올라오고 주부들에게는 늘 인기 관심사다. 한 착한 가게에서 배달을 이용한 시민 김 수진(39) 씨는 “웬만한 메뉴는 모두 만 원 이하였다. 먹어보니 맛도 정석인 것 같다. 음식도 뜨거웠는데 만들자마자 바로 와서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자주 이용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착한가격업소’는 물가안정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다른 가게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서비스가 좋은 가게 들이 선정된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가 2011년부터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포항에서도 2025년 현재 233개의 가게 들이 착한 가게로 지정되어 있다. 전국 시군구 중에 가장 많은 착한가게가 있지만 홍보 부족으로 시민들이나 착한 가게들이 혜택을 못 누린다는 지적이 있다. 착한 가게가 있다는 것을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다가 누군가의 기분 좋은 경험이 SNS에 올라오면 그때 서야 주위 사람들은 가게의 상호나 위치를 물으며 반응을 한다. 또 단순히 가게 앞에 붙은 ‘착한 가격’이라고 붙은 표시가 다인지라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라 아쉽다. 우리 동네 ‘착한 가게’를 SNS는 물론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관공서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도 함께 홍보해 어디에서도 쉽게 알 수 있기를 바란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7

금계국이 만발한 조박지에서 맨발로 걷다

포항시에는 맨발로 걷기 좋은 둘레길이 여러 개다. 그중에 걸어본 길은 흥해북천수, 송도솔밭, 기계서숲, 영일대해수욕장, 용한리해변, 형산강둔치, 오어지둘레길, 천마지둘레길, 양덕나무은행둘레길을 걸었다. 경북수목원에도 키가 큰 나무 사이로 흙길이 있어서 발바닥에 마사토를 느끼며 걸을 수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곳에는 시민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길을 즐긴다. 이번 주말에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친환경 녹색도시를 위한 ‘포항 그린웨이 프로젝트’의 사업 중 하나인 조박저수지둘레길을 처음 걸었다. 아직 덜 알려진 곳이라 그런지 주차장이 한적했다. 금계국이 한들거리며 걷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았다. 나비와 꿀벌도 이때다 싶어 팔랑거렸다. 길 따라 노란빛이 일렁거려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금계국 너머에 들이 훤하게 펼쳐졌다. 물을 담아 모내기하려고 준비하는 논, 오늘이 날인지 빨간 해병대 복장의 군인들이 모판을 나르고 있었다. 모를 넘겨받은 기계가 논에 박음질하듯 어린 모를 콕콕 박으며 지나갔다. 옆 논에는 어르신이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모를 바로 잡느라 허리를 못 폈다. 포항시 연일읍행정복지센터는 조박지 둘레길에 금계국 꽃씨 1.4km을 파종했다. 연일읍 전체 도로변 총 18.3km, 약 3만7000㎡에 씨앗 280kg을 파종해서인지 조박지를 찾아오는 길목에도 온통 노란 물결이었다. 꽃길 따라 맨발로 걸으며 바닥을 보니 왕개미들도 맨발로 줄지어 어디론가 부지런히 걸었다. 개미집이 보일 때까지 길이가 한참이나 됐다. 어디로 이렇게 바삐 가는 길일까 하니, 옆에서 남편이 연일 부조장에 가는 길이겠지 해서 웃었다. 조선 3대 시장이었으니 개미도 사고 싶은 것이 있겠지. 남구 연일읍 인주리와 대송면 남성리에 걸쳐 위치한 조박저수지(적계지)는 1949년 10월 준공된 오래된 농업용수용 저수지로, 연일 읍내는 걸어서 8분, 대송면은 걸어서 4분밖에 걸리지 않아 접근성이 좋다. 또한, 여름엔 연꽃이 한가득 피고, 가을에는 모내기 한 들판이 황금 들판이 되어 멋진 풍경을 만들 것이고, 갈대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은 철새들이 찾아오게 한다. 여러 종의 새가 서식하고 있어 지역주민들에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힐링공간이다. 1.5km의 산책로 구간은 데크를 설치했고, 나머지 1.5km는 마사토 포설로 건강증진으로 각광받는 맨발걷기길을 조성함으로써 일반걷기와 맨발걷기 모두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맨발걷기 후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 시설과 중간에 쉴 수 있는 등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어 언제든지 편하게 와서 걸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데크로드는 저수지를 가로지르게 설치해 마치 저수지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편안하게 수변공간과 저수지를 감상할 수 있도록 데크로드 중간에는 전망데크가 자리잡았다. 조박저수지 둘레길은 모든 구간이 경사가 없는 평탄한 지형이다. 그래서 남녀노소 모두가 부담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너른 주차장과 화장실까지 시설이 완벽했다. 단점이라면 북천수나 서숲과 다르게 이곳은 나무 그늘은 없다. 그래서 흐린 날을 선택해서 걸었다. 오늘따라 바람도 제법 불어 한 시간을 걸어도 바람이 땀을 말려주었다. 또한, 낚시 금지라는 경고문에도 많은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웠다. 한사람이 네댓 개씩 담그고 붕어를 잡는 중이라 했다. 담당 부서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다 걷고 발을 씻으려고 손수건을 들고 세족장에 앉았다. 내 뒤로 낚시 자리를 찾으러 차에서 내린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지나갔다. 노란 버스에서 아이들이 우루르 내려 산책길로 선생님을 따라 걸었다. 저 아이들에게 연기가 날아가지 않길 바랐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7

봉화 물굽이길과 전설로 남은 도호왕국

고향의 풍경과 추억을 찾아볼 수 있는 봉화. 들꽃 한 송이도 정겨운 산골 마을에는 산, 물, 사람이 만나고, 강줄기 따라 이어지는 기찻길은 오지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었다. 고향을 찾아가는 설렘으로 걷는 봉화 산골 물굽이길, 아련하게 다가오는 향수 짙은 기찻길이 이어지고, 명경 같은 맑은 물과 어울린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봉화 분천역에서 수십 번 굽어진 물길을 따라 이어진 산골 물굽이길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한 채 두 채 나오는 풍애마을을 지나고, 강물은 산자락을 휘감으며 섬 같은 도호마을을 지나, 암돌마을, 그리고 현동역까지 이어진다. 분천역에서 풍애로 이어지는 평지길은 강물이 산을 감싸고 돌아가는 굽이마다 큰 소와 기암절벽이 비경을 이룬다. 풍애교, 풍애1교를 지나, 철길을 건너면 소박한 산골 마을 풍애가 나온다. 기차는 터널을 지나고, 옛날 산골마을 아이들이 학교 다니던 산길로 접어들게 된다. 산길을 내려오면 섬은 아니지만, 섬이라 불리는 도호마을을 강물이 휘감아 돌아가면서 비경을 만든다. 물길이 만들어준 작은 토지 위에 오지의 삶이 이어지는 곳이다. 도호마을은 옛 부족 국가시대에 소라국이라는 불리던 작은 왕국이 있던 곳이다. 고대 부족 국가시대 여러 소왕국이 각지에서 형성되었을 무렵, 이곳에도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 작은 왕국을 만들었다. 도호마을에서 서쪽 춘양면까지 이어진 소라국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는데,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소라국은 춘양 옛 현의 남쪽에 있었고, 수구가 소라국 터에 남아 있다”고 전한다. 춘양면의 야산에 지금도 성곽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또 다른 부족국가였던 구령국과 싸우면서 소라국이 진을 쳤던 흔적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정감록’에는 ‘화산북거 소라고기 내성현동 태백에서 북쪽으로 가면 소라국의 옛 터가 있는데 내성현(현 봉화)의 동쪽으로 태백 산하 양지로 향한 곳’이란 기록이 남아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명당으로 구전되는 도호는 석포면의 섭재, 안동의 하회와 더불어 3대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낙동강 물이 크게 굽어지는 형상이 산 위에서 보면 섬 같아 도호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세월교를 건너면 적광사라는 사찰이 멋진 풍광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조금 지나 강 건너 암벽 밑에 ‘소라동천’ 42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소라동천은 고대 왕국 소라국의 흔적이고, 신선들이 이곳에 내려와 노닌 무릉도원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도호마을에는 도호 모형 성문이 있고 성문 앞에는 한여울 수력발전소 취수보가 있으며, 강물이 돌아가는 굽이마다 기암절벽이 비경을 만들고, 몽돌이 깔린 강변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예전에는 초등학교 단골 소풍 장소였다고 한다. 풍애마을에서 터널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던 기찻길은 피암터널로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고, 강물과 철길이 만나고 산과 새들이 있는 풍경이 삶의 무게를 저절로 덜어주는 곳이다. 산과 강물이 가로막아 아무나 갈 수 없었던 오지, 빠르게 흘러가는 바깥세상과 달리 고요한 순수의 땅, 물길 따라 기찻길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야 만나는 봉화 산골 물굽이길에서 바람과 자연을 느끼며 걸어보길 권한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7

내 한 표는 책임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국민이 권력을 위임하는 신성한 절차이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실질적인 도구다. 나의 한 표가 공동체의 방향을 결정하고 세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선택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작금 대한민국의 선거 풍경은 성숙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지역 간 정치적 정서의 충돌이다. 그중에서도 영남과 호남의 뚜렷한 표심 차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닌 오랜 역사와 상처가 만들어낸 굴레다. 해방 후 한국 정치의 이념과 노선은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과 유신체제는 영남을 중심으로 한 개발 우선 정책을 펼쳤고 반면 호남은 상대적 소외를 경험했다. 결과는 정치적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었으며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은 그 갈등을 극단으로 몰고 갔고. 영 호남 지역 간의 골은 깊어졌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총선과 대선을 치를 때마다 각 지역의 결과는 대체로 예측 가능한 양상을 띤다. 영남은 보수, 호남은 진보라는 프레임이 고착되어 있으며 후보의 정책보다 출신 지역과 배경이 부각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구도는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 지역이 정치를 포용해야 하며 정치로 인해 지역이 분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러한 프레임을 흔드는 변화의 조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97년 소위 ‘DJP연합’ 이나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다. 최근에는 호남에서 보수 정당의 득표가 증가하고 영남에서도 진보 후보에 대한 표심이 일부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정적인 지역 정서에 균열의 양상이 보이기도 한다. 선거권을 가진 국민은 단지 감정이나 이념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할 철학과 비전을 기준 삼아 투표에 임해야 할 것이다. 후보의 공약과 전문성과 삶의 흔적을 냉철하게 비교해보는 신중함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인 나의 한 표가 법을 만들고 사회의 기본을 설계하며 국민의 안정과 번영을 약속하고 평화를 지키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유권자는 단순한 선거 소비자가 아니라 국가의 주권자이자 공동체의 책임자이다. 그 책임의 시작은 투표소 안에서 시작된다. 선거 결과는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로 나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민심의 척도이며 우리가 어떻게 과거를 딛고 미래를 선택할지를 나타내는 분명한 지표다. 시민기자는 유권자가 지역을 넘어 정책과 가치로 뭉친다면 그 선거는 분열의 장이 아닌 진정한 통합의 장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의 한 표는 바로 나의 책임이다. 그 책임은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할 수 있는 큰 희망이기도 하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5-05-25

최치원 흔적이 있는 유산곡수를 찾아서

오늘은 가야산에서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사라진 인물을 찾아 해인사를 간다. 해인사가 어디인가? 합천에 있는 가야산 자락의 해인사는 법보종찰 아니던가.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많은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신라시대의 문장가 최치원의 흔적인 학사대와 유상곡수가 남아 있는 곳이다. 흔히들 유상곡수라 하면 경북 경주에 있는 포석정을 떠올린다. 신라의 이궁으로 현재 정자는 없고 유상곡수연을 하던 곡수거만 남아 있다. 곡수거란 중국 정나라(B.C. 816~375)때의 풍속에 기원을 둔 것인데, 둥글게 도랑을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하고 여기에 술잔을 띄우며 노는 것이다. 잔이 자기 앞에 도착할 때까지 시를 지어 잔을 들고 읊은 후 다음 사람에게 잔을 띄워 보내는 풍류놀이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유상곡수연은 안학궁으로 고구려 장수왕(A.D. 413~491)때 평양 인근 대성산 남쪽 기슭에 조성된 후원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에 있는 포석정은 심오한 역사성이 인정돼 일제 때 국가유산 문화재 사적 제1호로 지정된 바 있다. 그럼 해인사에 있는 유상곡수연은 언제,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문헌에는 1625년 허돈이 쓴 ‘유가야산기'에는 “일주문 위에는 석천 임억령이 지은 오언절구가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문 밖에는 돌을 깎아 빙 돌아가게 하여 유상곡수를 만들었는데 이것 또한 최치원의 자취라고 한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1725년 정식의 ‘가야산록’에도 “최치원이 손수 심었던 소나무가 있어 비바람을 피할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대가 갈라져 아래로 향한 것은 최치원이 유상곡수를 하던 곳이다”라고 했다. 해인사를 만나는 첫 지점인 일주문 옆 공터, 둥근 돌로 도랑 같은 구조물이 있는데 개화기 때 분수로 개조돼 쓰였다가 지금은 그대로 방치된 채 흔적만 남아 있다. 유상곡수의 역사를 아는 이들에게는 많은 아쉬움을 남게 하는 대목이다.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던 문장가 최치원. 궁궐이나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풍류 생활을 즐기기 위한 정원시설로 한국정원 문화의 가치를 충분히 알 수 있게 하는 유상곡수의 흔적이 그냥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류의 삶이야말로 우리 고유의 선풍(仙風)의 원류가 아니던가. /김성두 시민기자

2025-05-25

씨앗을 심으면 마음도 자란다

요즘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대구 시내 도심 속 공영텃밭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적게는 70가구에서 많게는 200가구가 공영텃밭을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수성구 팔현농장의 텃밭은 가장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있다. 아침 일찍 텃밭에 나와 풀을 뽑고 물을 주는 도시농부들의 행복한 모습은 텃밭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준다. 도시 농부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대구시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에는 26만명, 2023년에는 28만명이었고, 2025년에는 30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이 도시농업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텃밭에 나가 채소를 기르고 이를 수확하는 과정에서 도심에서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팔현농장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는 배영민 씨(62)는 “도시농부로서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 과정은 마치 복권을 사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설렘을 준다. 며칠 후의 변화를 기대하며 매일 아침 텃밭을 찾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수확하는 날에는 동네 이웃들에게 나눠줄 생각을 하면 기쁨과 뿌듯함이 가득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제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구 수성구는 이런 시민들의 반응에 찾아가는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월 공고해 운영자(단체)를 선정했고, 사단법인 한국도시농업진흥연구회(이사장 문병채)가 선정됐다. 문병채 이사장은 “치유농업이란 농업·농촌 자원이나 이를 이용해 국민의 신체, 정서, 심리, 인지, 사회 등의 건강을 도모하는 활동과 산업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이번에 진행하는 찾아가는 치유농업 프로그램 ‘페트병 채소 기르기’를 통해서 사회 취약계층에 다가가겠다고 했다. 문 이사장은 치유농업의 효과로 △아동청소년에게는 집중력 향상, 정서 조절, 주의력 결핍장애(ADHD) 개선 등을 들 수 있으며 △장애인에게는 직업재활운동, 감각통합 훈련 △노인들에게는 인지능력 유지, 우울증 예방, 고립감 완화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도시농업이 단순한 재미에 그치지 않고 치유농업과 같은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도 예상된다. /이병욱 시민기자

2025-05-25

김광석길, 문화의 중심으로 되살아나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김광석길이 문화의 중심으로 다시 살아나다’. 대구 중구 김광석길 야외콘서트홀에서 지난달 마지막 토요일인 26일, ‘라이브온 언플러그드(LIVE ON UNPLUGGED)’라는 제목의 특별한 무대가 펼쳐졌다. 중구문화원이 주최하고 중구청이 후원한 이번 공연은 김광석길의 관광 활성화와 지역 부흥을 위해 5년째 이어져 오는 ‘매마토(매월 마지막 토요일)’ 시리즈의 첫 번째 행사. □ 평범한 거리가 특별한 공연장으로 변신 이날 공연에는 서울 홍대 앞에서 주목받는 브라스 밴드 ‘더스트릿’ 과 인디 밴드 ‘윈섬’(피아노·기타·첼로 조합의 3인조)이 초청됐다. 평소 지역에서 접하기 어려운 도시적 감성의 공연은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윈섬의 감성 발라드와 더스트릿의 화려한 브라스 연주가 어우러지며, 공연장을 찾은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음악에 빠져들었다. 5월 31일에는 ‘나도 가수다’ 라는 참여형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가족, 연인 등 누구나 무대에 올라 노래 솜씨를 뽐내고, 우승자에게는 소정의 상품이 수여된다. 이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지역민이 직접 문화 생산자가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박수 소리가 김광석길을 뒤흔들었다” 이팝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 4월 공연에서는 윈섬의 공연 종료 후 젊은 관객들의 기립박수와 함성이 쏟아지며, 김광석길은 일상의 공간에서 예술의 현장으로 재탄생했다. 한 관객은 “서울에서만 누리던 공연을 대구에서 체험하다니, 김광석길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 문화로 재탄생하는 도시, 그 중심에 선 김광석길 2019년 시작된 매마토 행사는 기존의 단발성 행사를 탈피해 ‘월간 문화정기전’으로 자리매김했다. 4월부터 6월, 9월부터 10월까지 총 5~6회 진행되며, 계절적 특성을 고려한 프로그램 구성이 특징이다. 중구문화원 관계자는 “김광석길이 단순히 추억의 공간이 아닌, 살아 숨 쉬는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 여름 휴식기 뒤 찾아올 9월의 매마토 더위가 한풀 꺾이는 9월에는 ‘업그레이드, 업템포’라는 주제로 더욱 다채로운 공연이 예고돼 있다. 매월 새로운 콘셉트로 시민들을 사로잡는 이 행사는 김광석길을 대구 문화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원동력이 될 전망이다. “음악이 흐르는 거리, 김광석길에서 만나는 특별한 토요일”. 단순한 공연을 넘어 지역민과 함께 성장하는 매마토 행사. 매달 마지막 토요일, 김광석길은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05-25

보고, 만지고, 즐기는 2025 울산 옹기축제

‘2025 울산 옹기축제’가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웰컴투 옹기마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울산시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행사가 열린 외고산 옹기마을은 우리나라 최대의 옹기 생산지로, 전국 옹기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옹기 장인들의 마을이다. 이 지역에는 옹기박물관, 전시 가마, 옹기문화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어, 방문객들은 전통 옹기를 보고, 배우고,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긴 연휴 기간 동안 열린 이번 축제는 가족 단위 관람객의 비중이 높았으며, 이에 맞춰 울주군은 전 연령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옹기 만들기, 아이들이 흙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흙놀이터, 옹기축제 캐릭터 ‘옹이’를 과자로 만드는 과자콜라주, 옹기 불빛을 마음에 담는 옹기 불멍 체험, 체험의 추억을 케이크 속에 담는 ‘옹케이크 PART’, 다양한 체험을 즐기며 도장을 모으는 ‘옹이 찍 GO’ 스탬프 투어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축제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아이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도 마련되었다. 4일에는 청소년 댄스경연대회 ‘발악’이 열렸으며, 시민기자가 방문한 5일에는 ‘옹기 사생대회’가 진행되었다. 온양체육공원에서 자유롭게 자리를 잡은 어린이들이 저마다의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모습은 축제의 따뜻한 감동을 더했다. 다양한 공연도 축제의 즐거움을 더했다. 신명나는 퍼레이드 ‘옹기로 길놀이’, 옹기 장인들의 제작 시연 ‘장인의 손길’,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주민자치공연’, 어린이를 위한 참여형 ‘옹기로 공연’이 펼쳐졌다. 특히 개막식에서는 화려한 드론 라이트쇼와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았고, 폐막식에는 장윤정, 윤수일 밴드, 소찬휘 등 인기 가수들의 공연이 축제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울산을 대표하는 축제인 만큼 지역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장터도 함께 운영됐다. 전통 옹기 제품은 물론, 고추장, 액젓, 옹기로 구운 삼겹살, 한정 판매된 옹기축제 맥주와 막걸리 등 다채로운 먹거리가 방문객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다. 축제를 찾은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요소는 ‘포토존 이벤트’였다. 옹기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에서 SNS 이벤트에 참여하면 울주군 에코백을 증정받을 수 있어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추억을 남겼다. 시민기자는 가족과 함께 방문해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모두 즐길 수 있었다. 넉넉한 주차 공간과 넓은 행사장,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 덕분에 긴 시간 동안 편안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옹기의 역사나 제작 과정에 대한 안내문이나 해설 등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옹기를 잘 모르는 방문객들을 위해 정보 제공이 보완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축제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시민기자는 이번 축제를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어, 가족들과 가벼운 마음으로 사전 기대 없이 방문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와 알찬 구성 덕분에 큰 만족감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축제의 열기와 즐거움을 한껏 만끽한 후, 언양불고기로 마무리한 하루는 입도, 마음도 모두 풍성하게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2

민족의 스승 ‘세종대왕 나신 날’

지난 스승의 날 ‘5월 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탄신일인 1397년 음력 4월 10일을 태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15일이 된다. 이 날을 기리기 위해 작년 11월 ‘세종대왕 나신 날‘을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하면서 스승의 날과 기념을 겸하는 첫해를 맞이했다. 두 기념일은 단순 겹친 것이 아니다. 세종대왕의 상징이 시대를 초월한 겨레의 참 스승으로서 백성을 가르치고 삶을 개선하는데 교육의 큰 본보기가 되므로 1965년 당시 대한민국 정부와 교육자는 세종대왕의 교육에 대한 근본정신을 따르고 기리고자 ’세종대왕 탄신일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공식 지정한다. 그리고 지난해, 이러한 성군 탄신일을 온 국민이 함께 축하하고 기리고자 ’세종대왕 나신 날‘을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한 것이다. 법정공휴일은 아니다. 재위 32년 동안 대부분을 경복궁에 머무르며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하여 경제·사회·문화·국방 다방면에 걸쳐 업적을 이룬다. 당시 관청에서 일하는 여성 노비의 출산 휴가를 7일에서 130일로 늘이는가 하면 여성 노비의 남편까지 한 달의 휴가를 주는 등 출산휴가 정책과 더불어 백성들의 복지 정책에 많은 힘을 쏟는다. 전국 백성을 대상으로 시행한 논과 밭에 대한 세금제도 의견을 묻는 대규모 여론조사를 처음 시행하기도 했다. 세종대왕이 시행한 모든 정책은 깊은 애민사상이 바탕이 된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제3대 국왕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첫째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되면서 셋째였던 충녕대군이 세자에 책봉된다. 될성부른 떡잎은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 병을 앓으면서도 책을 놓지 않아 건강을 해칠까 서책이 모두 압수되기도 했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은 읽어야한다는 논어를 8세 때 이미 백 번을 넘게 읽었다고 전해진다. 21세에 왕위에 오르며 ‘백성을 위한 왕’이 될 것을 다짐한 그는 백성들이 농사를 망쳐 굶어죽는 일이 없도록 측우기와 해시계를 만들고, 글을 몰라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인 ‘훈민정음’을 창제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글’은 훗날 세계적인 언어학자들로부터도 우수성을 인정받는다. 예나 지금이나 성군(聖君)을 만난다는 것은 백성들의 복이다. 민심이 천심이라지만 백성들의 삶은 군주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자의 이론에 따르면 ‘말에 진실 됨이 없고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 멀리하라’ 지만 순박하고 어리석은 백성은 교언영색 하는 자를 따르기가 쉽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공자는 더 이 말을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첫해를 맞은 ‘628돌 세종대왕 나신 날’,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성군에 대한 업적을 되새기고 한글의 가치를 제고하는 축제행사가 포항 우리지역에서는 따로 없었던 것 같다. 찾아보니 서울 경복궁과 광화문광장 그리고 세종시 등에서 성군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한글에 대한 가치를 체험하며 탄신일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가 세종대왕 탄신일을 기리기 위해 만든 15초짜리 홍보 영상에 일본 신사와 중국 절 형상의 건물 모습이 담겨 뒤늦게 삭제한 해프닝은 단순 실수로 보기에는 지켜보는 소시민 마음이 불편하다. 세종대왕을 깊이 존경하고 기리는 것은 우리의 당당한 자부심이다. 내년에는 우리지역에서도 ‘세종대왕 나신 날’을 기리는 기념행사가 있기를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2

사람은 가고 꽃은 오고

공원에 산책을 갔더니 이팝꽃이 만발했다. 가지마다 하얗게 와서 얹힌 꽃송이들. 지난 겨울 쏟아졌던 눈송이가 돌아온 것일까. 눈부신 꽃숭어리에 오래 눈길을 주었다. 문득 유독 이팝꽃이 화사하던 어느 해가 떠올랐다. 그해의 이팝꽃은 정말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문학의 꿈을 키우며 시 창작 수업을 함께 듣던 문학 지망생들이었다. 모임을 통해서 격주로 도서관에 모여 강의를 듣고 작품 합평을 했다. 그날 수업 전에 우연히 지나다 이팝꽃을 보고 그 눈부심에 사로잡혔던 터라 수업 마치고 보러 가자고 제안을 했었다. 이팝꽃 핀 언덕에 다다르자 다들 탄성을 지르며 꽃가지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미친 듯이 피었다는 말을 공감하겠다며 꽃 속에서 오래 웃고 떠들었다. 우리 팀은 주말이면 시간을 맞춰 유명 문화유적지를 정해 문학기행을 떠나기도 했다. 모두 가족처럼 친밀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문학기행을 떠나는 날이면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설레고 즐거웠었다. 멀리 강진 바닷가에 가서 고니 떼를 보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정약용 유배지의 뿌리의 길을 오르기도 했다. 붉은 동백을 쫓아 지심도를 가고 유치환 문학관을 가고 미당문학관을 찾았다. 어느 때는 눈보라 치는 마이산 탑사를 전사들처럼 몰려가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곳은 참으로 많았다. 시 창작에 도움이 되는 곳이라면 많이도 다녔다. 한 줄의 영감이라도 얻는다면 그걸로 족했고 행복했었다. 누군가 그곳을 소재로 멋진 시를 써내면 찬사와 함께 질투의 시선도 던지곤 했다. 그때의 재잘거림이 아직도 선명하다. 하지만 지금 이 꽃나무 그늘에 그들은 없다. 환한 꽃을 보며 웃고 탄성 질렀던 이들. 함께 공부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고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냈던 이들. 인연의 시간이 다했는지 어느 날 하나 둘 사라진 사람들. 사람의 인연이란 이렇게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일까. 한때 눈부시지만 떨어지면 감쪽같이 사라지는 꽃잎처럼. 사람은 갔으나 봄은 다시 돌아와 이팝꽃 이리 만발해서 조금은 슬프다. 봄날 이팝꽃 핀 언덕에 혼자 서서 떠난 이들을 그리워한다. 누구는 이사를 가고 누구는 문학의 꿈을 접고 누구는 암 투병을 하고 누구는 영영 저쪽 세상으로 떠나기도 했다. 코로나라는 암흑을 만나 모임도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한때는 가족보다 더 친밀하고 좋았던 사람들. 꽃과 추억만 남고 사람은 갔다. 다시 그때의 파릇하던 때는 오지 않으리라. 꽃 시절은 갔고 가끔 사진 속에서나 그들의 미소를 만나곤 한다. 그때의 그리운 이들이 어느 곳에 있던 다 잘 살아가리라 믿는다. 봄이 오면 다시 꽃이 와서 이렇게 만발하듯이 다 제 자리에 빛나고 있으리라. 나의 문청 시절을 함께 했던 정다운 이들. 모두가 희고 풍성한 이팝꽃처럼 풍요롭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빌어본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2

경주 ‘제16회 청소년 문화경연대회 백일장’을 가다

경주문인협회 주관의 제16회 청소년 문화경연대회 백일장이 지난 18일 오전 10시부터 경주예술의전당 분수대 옆 잔디밭에서 열렸다. 전국 초·중·고 학생이 참여해 운문과 산문 분야로 나눠 글짓기 솜씨를 뽐냈다. 화창한 날씨에 봄바람도 솔솔 분위기를 보태 백일장 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운문 부문 - 초등부(비눗방울, 어버이날), 중등부(줄, 낙화), 고등부(초원, 심장), 산문 부문 초등부(우리 집, 벚꽃길), 중등부(축제, 화마), 고등부(나의 꿈, 고목). 시제가 발표되고 원고지를 받아 든 참가자들이 벤치와 나무 그늘로 찾아 들어갔다. 낮 12시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각자의 이야기를 가득 채운 원고지를 들고 학생들이 본부석으로 모여들었다. 글씨를 너무 흘려 쓴 남학생에게 이러면 심사하는 분들이 보기가 힘들어 감점될지 모른다니, 새 원고지를 달라고 하더니 좀 더 정성들여 고쳐 적어서 가져왔다.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은 마무리가 덜 되었는지 5분만 더 달라며 바로 코앞에서 의자에 놓고 적기도 했다. 얼마나 긴장되고 떨렸으면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이게 백일장의 현장감이다. 참가자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제출한 뒤 받은 간식을 가족과 두런두런 나누고, 이제 심사자의 시간이다. 2시까지 한 글자 한 글자 아껴 읽으며, 심사위원들이 원고지를 돌아가며 읽고 점수를 매겼다. 원고지 위에는 심사위원 수만큼의 점수가 쓰였다. 그중에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장원, 우수, 가작 순으로 가려냈다. 대상은 고등부에서 나왔다. 뽑힌 작품이 표절인지 검색하고 2시 30분까지 시상식에 참여하라고 문자를 보냈다. 백일장은 현장에 와서 시제를 받고 짧은 시간에 솜씨를 겨루는 대회이다. 그런데 대상 받을 학생이 경주에서 서너 시간 거리의 도시에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 오지 않고 전화로 세제를 받아 적어서 대필로 냈거나, 본인이 쓴 것이 아닐 수 있는 상황이다. 한참의 의논 끝에 다른 참가자에게 대상이 돌아갔다. 대상은 경주고 학생이 받았다. 상을 받고 자신이 쓴 작품을 많은 사람 앞에서 낭독했다. ‘심장’. “아버지가 그토록 믿던/일자리를 잃던 날/아버지의 심장에/작은 금이 갔다//아버지는 금을 웃음으로 가리고/우리 앞에선 듬직한 가장의 /강인한 심장을 보이셨다//분명 난 괜찮으면서/슬퍼도 멈추는 눈물과 달리/항상 흐르는 붉은 눈물처럼/아버지는 웃으셨다//그러던 어느 날 새벽/나는 곤히 잠들고/심장마저 편안하게 잤다/아버지의 심장에 난 금도/모르고 그렇게 편하게// 문틈 사이 은은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 나는 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눈물보다 맑은 술/들며 울고 계셨다// 아버지의 심장이/ 그 작던 금에 술을 붓자/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져/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그 강인하고 멀쩡했던/그 심장이 한 순간에//내 심장에도 금이 가는 소리/적날하게 울려 퍼졌다//모른 체 했던 심장이/그 심장이 한 순간에. ”시를 들은 관객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이 시와 유사한 작품이 있는지 창의적인지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이 시 구절은 인터넷이나 기존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았고 검색 결과로는 이 시와 정확히 일치하거나 유사한 작품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이 시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거나, 개인적으로 창작된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이 시는 아버지의 감정과 가족 간의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특히 아버지의 내면의 아픔과 그로 인한 가족의 감정 변화를 잘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독창적이며 감동적이라는 답을 얻었다. 대상에게는 상장과 상패가, 부상으로 문화상품권 30만 원도 함께 주어졌다. 상을 받은 학생들과 학부모와 심사위원이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고 행사는 끝을 맺었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