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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당익장(老當益壯) 문인을 찾아서> 금태남 수필가

등록일 2026-04-14 16:46 게재일 2026-04-1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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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넘긴 고령에도 왕성한 집필 활동..문화예술 공헌상 수상도
부친 금경연 화백의 예술적 재능으로 가문 전체가 예술적 전통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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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남 수필가. 

금태남 수필가는 팔순을 넘긴 노익장으로.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집필 활동과 활발한 사회 참여를 이어가며 ‘노당익장’의 표본으로 꼽힌다.

금 수필가는 대구 수성구청 총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수성구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행정과 의정 발전에 기여했다. 현재는 수성구 행정동우회를 수년간 이끌어오면서 지역 환경개선에도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그는 또 선친의 업적을 기리는 현창사업의 일환으로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 관장을 맡아 지역 문화예술 계승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자유대한민국 희망연대가 수여하는 문화예술 공헌상을 받았고, 대구시 행복진흥원에서 주관한 ‘사랑의 편지 쓰기’ 공모전에서 ‘팔순에 쓴 어머님 전상서’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 금촌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한국 근대미술의 중요한 인물인 금경연 화백의 예술혼이 깃든 공간이다. 금 화백은 서양미술 도입기의 선구자로, 일본이나 서구 유학없이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 1회와 입선 5회를 기록한 보기 드문 작가다.

그는 하양·안동·경주 등지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고, 이후 고향인 영양 수비초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하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금 화백의 작품 세계는 탄탄한 데생력을 바탕으로 인상파의 빛의 표현을 거쳐 후기 인상파, 야수파, 표현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현재 남아 있는 도록과 유작들은 그의 예술적 궤적과 잠재력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금태남 수필가는 젊은 시절 월남전에 참전해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경험도 겪었다. 그는 ‘팔순기념 출판기념회’ 인사말에서 부친을 회상하며 “서양화를 우리나라에 알리는 데 앞장섰던 천재 화가이자 교육자였던 아버지를 깊이 존경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가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한 채 33세에 요절한 것이 통한스럽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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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교대 평생교육원 자서전교실 일행이 금경연 화백 예술기념관을 견학했다. 좌측 끝이 금태남 작가.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의 예술적 DNA가 후손들에게 이어져 손자·손녀 가운데 다수가 정규 미술대학을 졸업했다”며 “저승에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경연 화백의 예술적 유산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차남인 금태남 수필가의 장녀 금영숙씨는 프랑스 국립대학에서 예술조형학 박사학위를 받고 화단에서 활동 중이며, 외손녀 박진주씨 역시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수학했다.

또한 금 화백의 장녀 금계영씨는 시인으로 등단해 문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의 두 딸 이원순·이원희씨도 미술을 전공해 가문의 예술적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장남 고(故) 금도춘씨의 손자 금재성씨 또한 국민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증조부의 뒤를 잇고 있다.

한 가문의 예술적 유산이 세대를 넘어 계승되고 있는 가운데, 금경연 화백의 정신은 오늘도 후손들의 창작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금태남 수필가의 왕성한 활동 역시 이러한 문화적 계보를 잇는 또 하나의 증거다. 앞으로 이들 가문에서 ‘후생가외(後生可畏)’의 인물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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