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인 2월 28일, 대구 서구문화회관에서 극단 헛짓의 연극 ‘춘분’이 관객들을 만났다. 함께 연극을 보았던 친구 시연이의 말을 빌리자면,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는 서사지만, 막이 내린 뒤 우리의 마음속에 남는 여운은 결코 뻔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재개발 지역의 낡은 집에서 살아가는 노부부 춘분과 소무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그리고 노년의 현실적인 문제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우리 삶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연극은 소무와 동네 사람 정팔의 대화 속에서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는 대화 속에서 곧 등장하는 춘분의 말투와 행동은 관객들에게 그녀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묵묵히 돌보는 딸, 말순과 집을 떠난 아들, 동하가 대비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춘분은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말순보다도 집 나간 동하를 기다리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춘분이 말순에게 “재수 없는 년”이라 소금을 뿌리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이는 과거 춘분이 시어머니로부터 딸을 낳았단 이유로 학대받은 트라우마가 현재 말순에게 투영된 결과였다. 치매로 흐려진 기억 속에서도 과거의 상처를 재현하는 춘분의 모습은 관객에게 깊은 아픔을 전달한다. 말순의 희생적 돌봄에도 오직 집을 떠난 아들 동하만을 기다리는 춘분의 모습은, 가족 관계의 균열과 노년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극 후반, 춘분은 소무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두 사람은 눈이 내리는 날 자전거를 타고 ‘소풍’을 떠나며, 이 비극적 결말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역설적으로 묘사된다. 한편 말순은 소무가 남긴 작은 구두를 애써 신어보지만 발에 맞지 않아 포기한다. 눈물 대신 미소를 띤 말순의 모습에서 관객은 체념과 받아들임의 복잡한 감정을 읽는다. 이처럼 인물들의 엇갈린 마음과 남겨진 자의 고통이 함축적으로 표현되며 여운을 남긴다.
관객들은 공연 내내 배우들과 함께 호흡했다. 평소 무뚝뚝하던 경상도 남자였던 시연이도 눈물을 흘렸다. 공연 후 그의 눈물 자국을 보며 놀리자 여운이 더 깊어졌다.
연극 ‘춘분’의 장면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의미를 지니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사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도 그저 흘려보내기 아까울 정도로 소중한 장면이었다. 춘분과 소무의 자연스러운 분장과 연기, 그리고 극의 분위기를 적절히 풀어주는 정팔의 유쾌한 연기는 마치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직접 보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연극이 끝나고 주인공 ‘춘분’의 이름을 떠올리며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춘분은 24절기로 낮과 밤이 같은 날이며, 이후 낮이 길어진다. 춘분이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두 사람의 마지막 ‘소풍’은 절망의 밤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춘분과 소무가 소풍을 떠난 그날, 그들에게 밝은 낮의 기운이 많은 날들이 찾아왔을까?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와 결말이지만, 어둠을 이기는 빛처럼 그들의 이야기가 밝게 빛나는 해피엔딩으로 연극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싶다.
/김소라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