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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벗어나 제주 올레길을 걷다

등록일 2026-02-25 16:13 게재일 2026-02-2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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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방향으로 걸었던 16코스 종점 고내포구에서 패스포트가 없는 일행은 손등에 스탬프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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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을 걷다 만난 나무가 이뻐서 포즈를 취했다. 제주 유채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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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 오름 수산봉(물메오름)에 있는 그네를 타면 한라산이  품으로 들어오는 듯하다. 물메오름의 자연 숲길을 적시던 매화 향을 잊을 수 없다.

사업체를 운영하던 지인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잘 되던 사업을 정리하고 당분간은 오롯이 회복에만 집중하겠다는 선택이었다. 등산을 즐기던 그녀에게 의사는 무리한 산행 대신 가벼운 유산소 운동 ‘걷기’를 권했다.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 그렇게 시작한 걷기가 제주올레길로 이어졌다.

제주올레가 운영하는 제주올레길은 총 27코스, 약 437km에 이른다. 한 번에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한 코스씩 천천히 채워가는 여정이다. 저렴한 항공편이 있는 날이면 당일로 한 코스를 걷고 오기도 한다. 그녀가 16코스를 걷는다는 날 네 명이 동행하기로 했다. 일정이 빠듯해 이른 아침 KTX를 이용, 대구국제공항에서 출발했다. 저녁에 돌아오는 도착지는 포항·경주공항이다. 다소 분주한 동선이지만 하루를 온전히 걸을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 일정 또한 즐기며 감내한다.

5~6시간 소요되는 16코스의 거리는 15.8km다. 공식 정방향은 고내 포구에서 시작하지만 이번 일정은 동선을 고려해 역방향으로 걸었다. 종점인 광령1리 사무소에서 출발한 것은 도착지를 공항 가까운 곳에 두기 위해서다. 여행은 때로 효율이 필요하다. 그래야 걷는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코스마다 시작과 중간, 종점에 스탬프 지점이 마련되어 있어 ‘올레길 패스포트’에 도장을 찍으며 완주를 기록한다. 패스포트는 온라인 주문으로 택배 또는 제주공항에서 수령, 현장 안내소에서 구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매 가능하다. 색상은 바당과 감귤 두 종류이다. 제주 방언으로 ‘바다’를 뜻하는 ‘바당’에서 제주만의 정서가 느껴진다.

올레길에서 16코스가 ‘가장 덜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걷는 내내 마음이 흥겹다. 바다를 끼고 마을을 지나 들과 오름 사이를 잇는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아름다운 한라산은 어디에서도 보인다. 오름에서 만났던 매화나무 숲에서 그 향에 취하며 이른 봄을 마음껏 누린다. 길에서 만난 식당 바오밥에서 맛난 점심을 먹고, 바다를 마주한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바다가 보이는 널따란 바위에 앉아 무인가게에서 샀던 감귤을 나눠 먹는 여유도 즐긴다. 감귤 향과 파도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져 한결 마음을 느슨하게 한다. 놀듯이 걷고 쉬듯이 걸음을 이어가다보니 복잡했던 생각들이 단순해진다.

걷기를 마치고 택시에 오르자 기사님의 익숙한 경상도 억양이 하루의 끝을 따뜻하게 장식한다. 잔잔한 즐거움을 주던 올레길을 걷는 동안은 각자의 속도로 숨을 고르고 생각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시간이었다.

일상을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서는 사실 항공료가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훌쩍 떠나기란 쉽지 않다. 현실 앞에서 온전히 ‘하루 비우기’는 결코 가벼운 결심이 아니다. 그러나 꼭 제주 올레길이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는 일이다. 그녀가 말했다. 건강에 이상이 오기 전에는 일이 전부였노라고. 일은 늘 그렇게 건강을 우선했더라고.

촘촘히 짜인 일상을 잠시 내려놓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일이 곧 나 자신이라 믿어온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진정한 나를 위해 한 번쯤은 과감하게 일상에서 놓여나는 용기를 내어보면 어떨까. 그 용기가 외려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 우리들 마음에 소소한 행복이 인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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