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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식이 되어 떠난 월남전 참전기

등록일 2026-05-03 17:02 게재일 2026-05-0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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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날 특집) 어머님 전 상서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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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말하지 않고 참전한 월남전 현장에서 동료들과 찍은 사진. 맨 오른쪽이 금태남 작가.

어머님, 이 불효자식이 뒤늦게 붓을 들었습니다.

생전에 끝내 전하지 못했던 참회의 말을 이제야 꺼내려 하니, ‘어머님’ 세 글자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곁에 계셨다면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을 터인데, 이제는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로 남아 그저 서럽기만 합니다.

당시 저는 대구 제2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며 비교적 안정된 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관의 신임도 받았고, 제대까지도 불과 6개월 남짓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대로라면 무사히 군복을 벗고 어머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머나먼 월남의 전황은 점점 격해졌고, 젊은이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혈기와 시대적 소명이라는 명분에 이끌려, 어머님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파월 지원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그것이 자식으로서 얼마나 큰 불효였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출정을 앞두고 강원도에서 특수훈련을 받던 중, 짧은 휴가를 얻어 고향을 찾았습니다. 어머님은 “왜 또 왔느냐”고 물으시면서도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셨습니다. 저는 차마 전쟁터로 간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잠시 쉬러 왔습니다”라고만 둘러댔습니다. 밥을 먹는 내내 목이 메어 한 숟가락 삼키기도 힘들었습니다.

끝내 진실을 숨긴 채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만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그날 어머님이 흔드시던 손길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아 지워지지 않습니다.

4주 훈련은 혹독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와 고된 훈련 속에서도 저는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그리고 월남으로 떠나던 날, 산골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눈발 속에서 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군용열차를 타고 대구에 도착해 전우들과 작별할 때, 저는 끝내 눈물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전장에 대한 두려움이자, 어머님을 두고 떠나는 아들의 뒤늦은 회한이었습니다.

부산 제3부두는 환송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태극기가 나부끼고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졌지만, 수송선에 오르는 장병들의 마음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출항 사흘째, 대만 해협에서 만난 태풍은 인간의 무력함을 절감하게 했습니다. 거센 파도 속에서 저는 오직 어머님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도착한 퀴논항은 숨이 막힐 듯한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완전무장을 한 채 내려선 그곳은 이미 전쟁터였습니다. 저는 기갑연대에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고, 밤낮없이 이어지는 포성과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그 속에서도 저는 매일 어머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서 온 편지를 통해 어머님께서 뒤늦게 제 참전 소식을 아시고 통곡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저는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매일 편지에 번호를 매겨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살아 있습니다’라는 말을 대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밤이 되면 별을 바라보며 어머님을 떠올렸습니다. 그 생각이 저를 버티게 했습니다.

수많은 포화 속에서도 저는 기적처럼 살아남았습니다. 귀국 명령을 받던 날, 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어머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고국에 돌아와 대구를 거쳐 고향 집 앞에 섰을 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다녀왔습니다.”

그 한마디를 전하는 데,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머님의 손을 잡는 순간, 저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어머님은 아무 말 없이 저를 품어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험한 세월을 견디게 한 것은 제 힘이 아니라 어머님의 사랑과 기도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한 불효자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머님, 이 늦은 사죄를 부디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무 근심 없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죄송합니다. 

/정리=방종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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