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인구 1500만 명 시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인식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지만, 의료체계 만큼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진료비는 병원마다 들쭉날쭉하고 공적 지원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보호자들 사이에선 “동물이 아픈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병원비가 무섭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KB금융그룹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은 한 달 평균 약 19만 원의 양육비를 지출한다. 사료, 간식, 배변용품, 예방접종 등 기본 비용 외에도 병원비가 가세하면 부담은 급증한다. 실제 포항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반려견 디스크 치료에 수백만 원을 지출했다. 그는 “사람은 MRI 촬영도 건강보험 덕에 수십만 원 선이지만, 강아지는 검사 하나에 수백만 원이 들어 대출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진료비의 법적 기준 조차 없다는 점이다. 보호자들은 진료 전 비용을 제대로 안내받지 못하고, 치료가 끝난 뒤 고지되는 청구서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단순 엑스레이 촬영조차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까지 차이가 나며, 중성화 수술도 병원마다 방식과 가격이 제각각이다. 반려동물은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는 가정경제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구조적 부담이 큰 상황에서 치료를 포기하거나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고령층이나 저소득 보호자의 경우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생명권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진국들은 이런 문제에 제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영국은 ‘PDSA(People’s Dispensary for Sick Animals)’라는 공공기관을 통해 저소득층에게 무료 또는 저비용 진료를 제공한다. 반려동물 보험 가입률도 40%를 웃돈다. 스웨덴은 보험 가입률이 90%에 달하며, 정부가 진료 항목과 수가를 직접 관리한다. 일본은 민간보험사 중심으로 다양한 상품을 운용하며 최대 70%까지 진료비를 보장한다. 이들 국가는 민간보험과 공공지원의 조화를 통해 반려동물 의료의 형평성과 접근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단순히 ‘돈 있는 사람만 치료받는 구조’를 지양하고, 모든 보호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의료의 공공성을 제도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진료비 공개 수준의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며, 공공의료 항목 일부에 대해 국가가 보조하거나 민간보험을 유도·지원하는 방식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동물의료보험제도는 앞으로 인구 감소시대에 가족과 반려동물을 포함한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 복지 장치의 하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7-03
기후 위기의 심화로 전통적인 재난 개념이 송두리째 재편되고 있다. 장기적인 가뭄이나 계절성 장맛비 같은 익숙한 현상 대신 불과 수일 만에 전국적 타격을 주는 ‘돌발가뭄(flash drought)’, 불기둥처럼 치솟는 화염 토네이도, 그리고 이른 시기의 녹조경보 등 전대미문의 극한상황들이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안동댐, 임하댐, 영천댐, 운문댐 등 주요 수자원에 ‘돌발가뭄’이라는 용어가 언론과 전문가 사이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김승완 한국에너지공대 교수는 비영리 기후연구단체 ‘넥스트’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의 돌발가뭄은 기존 예·경보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경고했다. 극한 재난의 양상은 비단 가뭄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3년 예천, 문경, 영주 등에서는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23명이 숨졌고, 청양에는 단 이틀간 540mm의 폭우가 쏟아지며 천년 빈도의 기록을 경신했다. 서울 강남은 2022년 ‘물 폭탄’으로 불릴 만큼의 폭우에 침수됐다. 산불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 3월 경북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은 일명 ‘불 폭탄’과 함께 불기둥 비화(화염 토네이도)까지 동반해 1조1306억 원 규모의 피해와 함께 2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캐나다, 미국, 호주, 유럽 등 세계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 종말처럼 타오르는 산불’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기온도 점점 오르고 있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국내 평균기온은 평년 대비 1.7도 상승했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40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낙동강 오염도 결국 기후변화와 일맥 상통한다. 지난해 대구에서 부산까지 녹조 경보가 발령되며 낙동강 전 구간에서 중금속과 독성 미생물 마이크로시스틴으로 인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1300만 명의 생명줄인 식수원이 위협받고 있다. 또 하나의 ‘기후 재난’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존 일기예보 방식으로는 이러한 기후 재난들을 예측하거나 대비하기 어렵다”며 “산과 들에 7만 개의 소규모 저수지를 분산 설치해 400억t 규모의 홍수 유실수를 보존하고, 사계절 안정적인 수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환경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안전망을 위협하는 요소”라며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선 정책, 경제, 교육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이상 고온과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이 반복되는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형 담론이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체감되는 재난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재난의 정의조차 새롭게 써야 하는 지금,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시민단체 ‘기후정의안동’의 박선영 대표는 “더 이상 탄소중립을 말로만 외쳐서는 안 된다”며 “지역 기반의 에너지 전환과 친환경 교통 인프라 확충에 대한 실질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5-06-30
여러 시민들이 지켜보는 공공장소에서 시의회 사무국 직원의 뺨을 때리고 폭언을 하는 등 공개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구미시의회 안주찬의원에 대한 징계가 23일 본회의 안건심의에서 30일 출석정지로 당초예상보다 한단계 낮게 결정됐다. 안의원에 대한 제명과 처벌을 요구하며 잇따라 규탄집회를 열어왔던 구미시공무원노동조합은 물론 일부 시의원까지 당혹감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곽병주 구미시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이날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퇴출되어야할 동료의원을 감싸고 도는 지방의원들의 행위는 스스로를 범죄집단임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향후 경북공무원노조연맹과 시민단체 등과 연대한 규탄집회를 열어나갈 것"이라며 반발을 예고했다. 지난 9일 안 의원을 제명하기로 의결하고 본회의에 징계안건을 회부한 시의회 윤리특별위 허민근 위원장도 이날 징계처분 결과에 대해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해 죄송스럽다”며 “향후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박교상 구미시의장 역시 “의장 개인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시의원 개개인들도 표결 결과에 따른 시민들의 질책과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 아니겠냐”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날 징계 수위가 최종 결정되자 당사자격인 구미시의회 사무국 직원들은 더욱 격앙했다. 폭력피해 당사자는 이 사안에 대해 묵묵부답하고 있지만 주변 동료 직원들은 “가해자인 안의원께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반성과 사과를 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 참회하지 않는 폭력가해자에게 방패가 되어주고 징계수위를 낮추어주는 동료 의원들의 태도를 보면서 역시 ‘가재는 게편’ 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난했다. 사실 이날 제명 징계처분이 부결된 것은 의외의 결과였다는 후문이다. 많은 의원들이 시민들의 공개적 비난과 언론의 거센 비판에 고개를 숙이며 ‘제명처분이 불가피하다’ 는 분위기가 당초 예상이었다. 예상됐던 징계수위가 갑자기 뒤틀린 과정을 놓고 확인되지 않은 여러 루머까지 나돌고 있는 지경이다. 과정이 어찌됐든 이날 징계수위 변경으로 징계대상자인 안의원은 제명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 대신 나머지 24명 시의원들은 ‘여론 비난의 짐’을 모두 함께 떠안게 됐다. 동료의원의 허물을 덜어주고 감싸주려는 얄팍한 호의와 동정심이 ‘가재는 게편’이라는 비판의 굴레에서 구미시의원들은 과연 자유롭고 떳떳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2025-06-23
울릉도는 세계적 식물 보고(寶庫)다. 지난 2008년부터 3년 동안 울릉도 실물 표본을 채집한 적이 있는 산림청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울릉에는 선모시대, 섬꼬리풀, 섬광대수엽, 섬국수나무, 섬양지꽃 등 전 세계에서 울릉도서만 자라는 특산 식물 28종과 실사리, 난장이이끼, 분홍바늘꽃, 나도생강 등 희귀식물 50종, 그리고 자생식물 464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중 ‘울릉도 특산 식물’은 28종은 대부분이 개체 수 100개 미만의 멸종위기여서 보존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했다. 섬벚나무만 해도 그렇다. 울릉도의 독특한 화산섬 생태계에서 진화한 고유종으로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한국 고유 나무로 생태적·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하지만 지금 멸종위기다. 관광 개발, 불법 채취, 기후변화 등의 위협으로 개체 수가 급감해 현재 약 700~1000그루에 그치고 있다. 환경부가 급한 나머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과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해 보존에 나서고 있다. 울릉에서는 식물 이름 앞에 섬(島)자가 붙은 식물은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로 일단 판단한다. 다행이라면 울릉도가 육지와는 130km 이상 떨어져 식물이 교잡(交雜) 되지 않아 울릉도 자생식물이 해마다 늘어난다는 점이다. 정부도 이를 눈여겨 보고 있다. 특히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개체 수가 수십 개에 불과한 선모시대, 섬꼬리풀 등의 종자를 수집·증식해 올해부터 복원에 나는 등 보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과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울릉군도 인공증식 기술로 증식 재배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큰바늘꽃(Epilobium hirsutum) 200개체를 울릉도 봉래폭포 인근에 이식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울릉도에는 벌써 두건의 산불이 발생,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서면에서 일어난 이 산불은 각각 1.5ha와 400㎡를 태웠다. 만약 이곳이 개체 수가 소수인 식물의 서식지였다면 세계적 희귀식물이 사라졌을 수 있다. 알다시피 산불이 나면 남는 건 잿더미뿐이다. 특히 울릉도의 산은 거의 절벽 수준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밧줄을 이용해 접근해 화재를 진압해야 해 산불끄기도 어렵다. 대형산불이라도 발생하면 육지에서 헬기가 와야 해 피해면적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한순간의 실수로 세계적으로 귀중한 희귀수목이 사라지는 것을 특별히 유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울릉도 산불은 대부분 실화였다. 이번 산불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당국의 철저한 지도와 감독이 필요하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힌남노’가 포항을 휩쓴 지 2여 년. 그 상처는 여전히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오천읍 냉천의 범람으로 인명피해 10명, 재산피해 약 1조7000억, 기업피해 포스코 포함 92개 기업이 약 1조5000여억 원 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끔찍했던 기억이 잊히기도 전에 또다시 올 우수기가 시작됐다. 포항은 태생적으로 침수에 취약한 도시다. 현재 시가지는 죽도·송도·대도·해도·상도 등 5개의 작은 모래섬 사이를 메워가며 형성됐다. 해수면과 고도차가 거의 없는 이 지형은 집중호우 시 배수가 지연되거나 역류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다. 여기에 국가하천인 형산강 하류와 동해에 접한 개방적 지형은 태풍과 집중호우가 겹치면 내륙과 해양 양쪽에서 물이 밀려드는 이중고를 초래하는 형태다. 포항시도 이에 대비는 해왔다. 현재 도심에 크고 작은 배수펌프장 14곳과 27개 간이펌프 시설을 운영 중이다. 환경부도 2022년 이후 포항을 하수도정비 중점관리지역으로 지정, 빗물펌프장 11개소 신ㆍ증설 총사업비 3557억 원을 투입하는 등 배수 능력 기준을 20~30년 빈도에서 50년 빈도로 상향(해당 사업은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마무리될 예정)시키고 있다. 수해 대비에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은 포항의 침수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자, 현장 유지 상태가 허술하면 언제든지 위험 요소가 발생해 인재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시는 올해도 우수기 대비 하수관로 33km를 정비하고, 빗물받이 2만여 개 준설 등 우수기를 앞두고 대응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치는 그저 일의 총량일 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직 포항에는 위험 현장이 수두룩하다. 형산빗물배수펌프장 경우는 대표적 사례다. 이곳은 전동기 1100마력 2대 등 배수 능력이 401만7600t/일(분당2790t)에 불과, 집중 호우 시 고장 나 잠시 멈추기라도 하면 일대가 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 야산 절취가 많은 KTX신도시를 포함한 대형 개발 현장 13곳에 대한 철저한 점검도 시급하다. 이곳은 장마철마다 반복되는 토사 유출과 임시 가설물 붕괴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지진으로 손상된 노후 하수관로는 우려스럽고 남구 일원, 오천읍, 학산지구 등의 지역은 하수 역류가 여전히 예상되고 있다. 특히 학산지구 도시침수예방사업은 우수저류시설, 배수펌프, 관로 정비 등 침수 저감 효과가 기대되는 프로젝트지만, 연계된 학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일정 지연을 겪고 있으면서 수량의 유입·유출 수리 체계의 불균형이 생기면 일대 피해가 불가피하다. GIS DB를 활용한 침수 이력 지도 구축, 실시간 강우·수위 감지, 배수시설 자동 제어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기술 기반의 선제 대응 체계를 마련한 스마트 도시침수 시스템도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시점에서 포항시는 현 상황에만 매몰되지 말고 국외의 침수 대응도 연구했으면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도시 침수 저감을 위해 주택과 건물에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지연배수(遅延排水)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이는 레인 가든, 빗물 저류 탱크, 침투 시설, 도시 저류 공간 등을 통해 빗물을 곧바로 하수도로 흘려보내지 않고 머물게 하여 하수처리 부담을 줄이는 분산형 빗물 관리 방식이다. 도쿄도, 오사카시, 요코하마시 등은 이를 법제화하거나 설치비 보조, 개발 허가 기준 등으로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저영향개발(LID)’ 개념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니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면 한다. 최근 들어 나타나는 이상기후 변화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시는 지금까지 집중호우 시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빗물을 몇 년 빈도로 설계하여 통수단면을 확보해 왔다. 대형 펌프장 증설 등도 이에 근거, 강제 배수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나 이상기후로 인한 폭우에는 대응이 역부족이다. 포항시는 지금까지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 예산을 동원해 침수 대응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현재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수치와 실행계획, 실적 보고서보다 앞서야 할 것은 현장의 체감과 실효성일 것이다. 건축조례제정이나 제도개선을 통한 지연 배수 정책 등을 조속히 도입했으면 한다. 시민의 안전은 ‘대응’이 아니라 ‘예방’ 속에서 지켜져야 한다. 이 원칙이야말로 우수기를 맞은 지금, 가장 절실한 기준이다. 아직도 힌남노 태풍 피해에 대해선 인재냐, 자연재해냐를 놓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형사재판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민관이 잘 대응해서 이제는 그런 수준 이하의 논쟁이 사라졌으면 한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6-18
영덕군 병곡면 산골 마을 한쪽에 수십 년을 자리를 지켜온 조상의 묘가 어느 날 사라졌다. 국유림을 가로질러 낸 임도 공사 때문이었다. 공사를 진행한 기관은 영덕국유림관리소와 영덕군산림조합이다. 이들은 “묘지의 존재를 몰랐다”며 유족에게는 150만 원의 보상금을 제안했다. 하지만 묘 하나를 없애는 일은 단순히 ‘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가문이 세대에 걸쳐 지켜온 기억, 정체성, 그리고 뿌리를 파괴하는 행위다. 수십 년간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던 묘소를 국가기관이 몰랐다면 그것은 무능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어느 쪽이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당 관청은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이 묻는 것은 법적 정당성이 아니다. 그 절차가 과연 사람을 위한 것이었는가, 공동체를 존중했는가이다.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사건은 단지 한 가족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당장의 피해자는 해당 유족일지 몰라도 내일은 우리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번 무너진 공권력의 윤리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 피해는 특정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국가는 도로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이 사람의 기억과 역사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 조상의 묘를 파헤치고도 “몰랐다”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다면 그런 사회는 결국 공동체도, 역사도 지켜내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다. 책임 있는 공식 사과, 관련자 문책,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이 사안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영덕국유림관리소 입장에선 사라진 것이 묘소가 있던 땅 한 평이지 몰라도 그곳에는 유족들의 각가지 사연과 추억과 기억, 그리고 유구한 시간이 얽혀 있다. 우리들은 수천여년을 그런 인연을 통해 기대며 살아왔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뿌리이기도 하다. 사소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는 그런 국가기관을 옆에 두고 싶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6-17
울릉도와 강릉을 오가는 여객선 항로가 오는 24일부터 운항이 중단된다. 15년간 별 어려움 없이 이용해 온 강릉항의 접안시설과 터미널 사용에 대해 강릉시가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사용 연장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울릉도 관광 성수기를 앞둔 시점에서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행정 결정이다. 만약 안전이 우려된다면, 여객선 운항이 없는 겨울철을 활용해 보수하거나 정비를 시행하는 방식도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까마귀가 날자 배 떨어졌다’는 뜻의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말이 있다. 관계없는 두 사건이 공교롭게 겹쳐 의심을 사는 경우다. 하필이면 올해 3월 강릉해양경찰서가 신설된 직후, 15년간 아무 문제없이 사용되던 강릉항 여객선 시설이 돌연 사용 불허 처분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 고사(古事)가 떠오른다. 울릉~강릉 항로는 2022년 14만 7천 명, 2023년 10만 9천 명, 2024년에도 10만 6천 명이 이용할 정도로 수요가 높다. 과거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여객선 두 척이 연간 30만 명 이상을 실어 날랐다. 특히 2011년부터는 국내 최고급 초쾌속 여객선이 투입되며, 수도권과 강원 북부, 충청 지역 관광객들의 울릉도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강릉항 주변의 상가, 횟집, 숙박업소, 택시 업계 등도 여객선 이용객 덕분에 직접적인 경제적 수혜를 입었다. 이 같은 혜택을 강릉시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객선 운항을 막는 결정을 내렸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상식적이라면 오히려 강릉시는 이 항로를 활용해 지역 관광과 연계한 상품을 개발하고, 관광객 유치에 나서야 한다. 그게 순리다. 그런데 이번에 영 딴판의 결정이 내려졌다. 강릉시의 처사는 인근한 양양군과는 너무나 대비된다. 강릉보다 항로가 길고 조건이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울릉도 여객선 유치를 위해 수년간 노력해온 양양군은 최근에는 연간 100억 원 이상을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울릉군과 MOU까지 체결했다. 결국 강릉항에 이미 여객선이 운항 중이라는 이유로 사업 승인이 어려워 포기를 했지만, 강릉시는 주어진 기회마저 스스로 내던지며 지역 발전을 위해(危害)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해양경찰은 국민의 안전과 해상 교통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여객선 운항은 그 주요 업무 중 하나다. 해양경찰서 신설 직후 강릉시가 여객선 운항을 막는 결정을 내린 것을 단순한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까. 시중에는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강릉시와 해양경찰은 이번 조치에 대해 보다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울릉도는 대한민국 국민의 ‘쉼’을 위한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강릉시가 연장을 불허한 이 항로는 강릉지역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 활용할 경우 오히려 상생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행정의 본질은 국민 편익을 우선하는 것이다. 강릉시의 보다 책임 있는 대응을 기대한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6-09
포항시가 민간 자본 유치를 통해 추진하던 주요 관광개발 사업들이 잇따라 좌초되며 민자사업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시의 계획 수립 미비에 따른 결과여서 비판이 나온다. 최근 포항시는 영일만 해상케이블카 사업 시행자인 포항영일만해양케이블카㈜에 대해 시행자 지정 취소와 실시협약 해지를 위한 행정 절차에 착수했다. 시는 관련 청문회 개최 후 책임 소재가 가려지면 시행자 지위를 해제한다는 계획이다.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은 데 따른 조치다. 사업자의 반발이 예상돼 법정 다툼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일만 해상케이블카 사업은 2017년 대한엔지니어링(주)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본격화됐고 시민들의 기대도 컸다. 3여 년에 걸친각종 인허가 완료 후 2020년 11월에는 실시계획 인가까지 받았다. 총 사업비 950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여객선터미널 주차장과 환호공원을 잇는 1.8km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딱 거기까지였다. 시중 금융기관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한 발짝도 나아기지 못했다. 한때 2019년에는 GS건설이 참여를 검토, 반전의 기회를 맞는 듯 하기도 했지만, 이 회사도 얼마 후 사업성이 부족하다고 판단, 발을 빼면서 백지화됐다. 시행사는 이후 시민 출자 형식의 ‘포항관광문화진흥조합’을 통해 자금 조달을 시도했으나, 조합원 참여가 저조해 이마저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켜보던 시는 더 이상 현 시행자로는 진척이 어렵다고 보고, 조만간 지위 박탈에 나서기로 했다. 민자로 진행된 두호마리나 항만개발 사업도 제자리 상태다. 2016년 ㈜동양건업이 민간투자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사업비 1946억 원 규모로 진행됐다. 2018년까지 두호동 일원 22만㎡ 부지에 200척 규모의 계류시설과 클럽하우스를 조성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행사는 사업성 문제를 이유로 대단위 공동주택 허가를 요구했고 시가 들어주지 않자 사업을 중단했고, 이후 더 이상 진전은 없다. 이 두 사례의 실패 책임은 전적으로 과도한 장밋빛 청사진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인가를 받은 시행자에게 있다. 그러나 민자유치에 나선 포항시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스럽지는 못하다. 따라서 이제라도 민간투자 유치 정책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포항시가 민자사업을 유치하면서 적용하고 있는 ‘순수 민간투자 방식’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문제가 있다. 공익적 기능이 있을 경우 자치단체가 일부라도 직접 투자하거나 재정지원을 하는 것은 시대적 추세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 추진 동력이 크게 약화되고 사업비 조달 또한 벽에 부딪히기 일쑤다. 최근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도비 보조를 통한 인센티브 제공, 또는 민관이 공동 출자하는 제3섹터 방식 등을 활용하고 있는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포항시는 이런 대안적 접근엔 애써 외면해 왔다. 이는 포항시가 이차전지 관련 민간기업을 유치할 때 부여한 세제 혜택, 저렴한 부지 제공은 물론 공업용수 및 전력 공급 등 여러 방면에서 국비·도비·시비를 투입한 것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것이다. 이차전지가 성장산업이라면 케이블카 또는 마리나 개발도 포항의 관광지도를 바꿀만한 사업이다. 그런 점에서 민간투자 성공을 위해 공공이 일정 부분 리스크를 분담하고 뒷받침했어야 했다. 현재의 방식대로라면 앞으로도 주요 민자사업들이 줄줄이 난항을 겪을 것이 뻔하고, 포항시의 해양관광도시 육성 전략도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포항시의 관광 분야 민간 투자 진행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민간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민간의 수익 구조를 고려한 정책 설계와 더불어, 지자체의 일정한 역할 분담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책임을 지고 추진할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6-08
육상은 태고적부터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탄생한 원시 스포츠인 만큼 중력과 저항을 거부해온 온몸의 드라마이자 인간 능력의 한계치를 조금씩 확장해온 신기록의 서사(敍事)이다. 육상은 또 포환던지기 등 극히 일부 종목을 제외하곤 온전히 몸뚱아리 하나만으로 촌각과 거리를 다투며 버티는 스포츠 종목이다. 그만큼 얄팍한 속임수나 번지르한 꾸밈이 없는, 순수하고도 경이로운 운동으로 칭송받고 있다. 아시아 43개국에서 빨리 달리고, 높이 뛰어 오르고, 멀리 내닫는데 내노라하는 젊은이 803명이 같은 날 한자리에 모여 기량을 겨루는 드라마 같은 육상의 명승부, 제26회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가 지난 31일 5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지난 5일간 대회 메인스타디움인 구미시민운동장에서는 0.01초 찰나의 순간에 새로운 영웅이 등극하고, 1cm의 짧은 뺨 차이로 불패의 황제가 몰락했다. 육상대회 기간 중 출전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전력을 다해 온 힘을 쏟아 붇고 사자처럼 포효했다. 이번 대회 남자 높이뛰기에서는 우상혁 선수가 대회 2연패를 달성하고, 남자 400m 계주 결승에서는 한국 신기록을 세우는 성과를 냈다. 또 누적 인원 8만 명의 관중이 몰리고, 주한 외교관 30여 명이 방문하는 등 국제스포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구미시의 국제무대 인지도도 한껏 올리게 됐다. 그러나 빛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잡음이 없지 않았다. 이번 대회 최고의 하이라이트 경기로 기대를 모았던 남자높이뛰기에서 우상혁의 라이벌 바르심(카타르)은 대회 하루를 앞두고 결장을 통보해 언론의 오보가 잇따르는 등 혼선을 빚었다. 대회를 빛낼 최고의 명장면이 사라진 순간이기도 했다. 출전선수들의 일정과 컨디션을 꼼꼼히 챙기지 못한 대한육상연맹과 조직위의 미숙한 대처란 지적이 뼈아프다. 대회 운영과는 상관없지만 이란 선수와 코치진 등 3명의 한국 여성 성폭행 사건 또한 훌륭한 대회성과를 훼손시켰다. 국제스포츠행사에 참가한 외국선수· 코치진이 타국에서 몹쓸 범법행위를 자행한 이 사건은 숭고한 스포츠 정신으로 출전한 다른 선수단들에게도 낯부끄러운 일이 되고 말았다.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구미시 인동 야시장 행사에서 구미시의회 모 의원이 의전에 불만을 품고 시의회 직원을 폭행한 사건도 대회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육상대회를 코앞에 두고 이같이 ‘후진적인 갑질행위’가 발생하자 “국제적 망신이다”라는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이제 대회는 끝났다. 대회성과를 차분히 복기하고 미흡했던 점을 채울 때다. 시도민들은 육상대회에서 메달을 딴 승자는 물론 상위권 탈락으로 패배의 눈물을 삼킨 꼴찌들에게도 응원과 위안을 보내야 마땅하다. 선수들은 다음 대회의 재도약을 기약할 시간이다. 대회 운영 기간 어려운 여건에도 눈물겨운 활동을 펼친 33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대회 관계자에게도 뜨거운 박수와 격려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2025-06-02
이제 하루만 지나면 아시아 육상스타간 ‘별들의 전쟁’ 구미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가 구미일원에서 화려한 막을 올린다. 27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육상대회에는 세계 최고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을 포함해 한국남자육상 100m 유망주인 고교생 조엘진, 3000m 장애물경기 한국신기록 보유자 조하림, 우상혁 라이벌인 카타르의 바르심, 세계육상대회 장대높이뛰기 은메달리스트인 필리핀의 어니스트 존 오비에나 등 한국과 아시아 육상 스타들이 대거 출전한다. 이들 참가 선수들은 트랙과 필드, 도로를 아우르는 총 45개 세부 종목에서 210개의 메달을 놓고 불꽃 튀기는 명장면을 연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구미아시아육상대회는 당초 예정에도 없던 조기 대선으로 대회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당초 기대보다는 가라앉은 모양새다. 오죽하면 김장호 구미시장이 지난달 13일 한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에게 “예기치 않게 대선 일정이 육상대회 일정과 겹쳐 국민들의 관심이 대선에만 쏠릴까 걱정”이라며 대회 홍보와 관심을 당부할 정도였다. 이러한 응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관심은 온통 대선에 쏠리고 있다. 이 때문에 구미시와 육상대회조직위는 글로벌 스포츠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마치 ‘거인 골리앗’과 같은 대선 열기가 상대적 약자인 ‘다윗’ 같은 육상대회 분위기간 대결 양상까지 연상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에는 각 대선 후보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중계되는 반면 구미아시아육상대회에 관한 소식은 ‘가뭄에 콩나듯’ 하고 있다. 구미아시아육상대회는 대형 국제도시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기초자치단체가 아시아 최초로 유치한 국제육상 대회란 점도 특이하다. 구미시는 2023년 12월24일 구미 보다 인구가 6배나 많은 중국 샤먼시를 물리치고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까지 이 대회는 베이징·도쿄· 뉴우델리· 도하· 방콕· 자카르타· 쿠알라룸프르 등 유명한 국제도시에서만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인천 등 수도와 광역시에만 개최됐던 대회이다. 기초자치단체란 왜소한 체구로 ‘거구 도시’와의 외로운 싸움 끝에 대회를 열게된 구미시는 이제 또다시 예기치 않게 대선 이슈란 거대한 복병을 만나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늘 거인과 난장이 싸움에서 약자의 선전을 응원하듯 ‘작은 용사 다윗’의 활약을 상상한다. ‘다윗 같은 작은 거인’ 구미가 개최하는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대구와 경북 시도민은 물론 전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열기가 모아지길 기대한다.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2025-05-25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개별 사업 위주의 접근으로 인한 갈등과 비효율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육상풍력과 해상풍력은 입지, 환경, 주민 수용성 등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어 체계적인 기본계획 수립 없이는 사실상 실효성 있는 추진이 어렵다. 육상풍력은 주로 산지에 입지하는 경우가 많아 산지관리법 등의 관련 법령이 적용되는 개발행위허가와 환경영향평가 등 엄격한 인허가 절차를 요구한다. 해상풍력 또한 해역 이용, 어업권 보장, 생태계 보호 등 다양한 고려사항이 존재해 단순한 민간 주도의 개별 추진 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실제로 많은 풍력 사업이 주민 반대, 행정절차 지연, 경관 훼손 등의 문제로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이제는 도시기본계획이나 경관기본계획 등 처럼 풍력발전 역시 상위 차원의 종합계획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 풍력발전 기본계획에는 적정 입지의 사전 확보, 인허가 기준과의 정합성 검토, 지역 여건에 맞는 추진 전략이 포함돼야 하며, 주민 갈등을 예방하고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참여 기반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특히 해상풍력은 해양공간의 공공성, 어업권 침해 문제, 생태계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계획 수립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발전 사업 허가, 산지전용허가, 해양환경영향평가 등 주요 인허가 절차를 계획 단계에서 통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불필요한 행정 중복과 시간 낭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 기본계획은 정책이나 사업을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도시기본계획, 경관기본계획, 에너지기본계획 등에서 지역의 공간 구조, 환경 여건, 사회적 요구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중장기적인 방향성과 원칙을 제시하면 개별 사업 간 충돌을 줄이고, 행정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와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분야에서는 기본계획을 통해 입지, 인허가, 주민 수용성, 환경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있으면 행정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사업자는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지금처럼 현장에서 계획 없이 추진되는 개별 풍력 사업은 갈등, 중복 투자, 계획 부재 등으로 그 비효율이 상상을 초월한다. 풍력발전사업은 단순한 시설 설치를 넘어 지역사회와 환경, 에너지 수급까지 고려한 복합 조정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과학적 분석과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풍력발전 기본계획 수립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 그렇게 하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개별 사업도 없어질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 탄소중립 실현 등을 구호와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 선제적 대응을 해줘야 한다. 그게 규제 타파이자 개혁이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5-18
동해안에 오징어가 고갈되면서 90% 이상이 오징어 조업에 종사하는 울릉도 채낚기 어민들이 생계가 위협받고 있어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울릉도는 수년째 오징어가 잡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울릉수협에 위판된 울릉도 어민들의 오징어 생산량은 예년에 채낚기 1척이 1년 동안 잡은 양에 불과한 2여억 원 정도다. 매년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오징어가 잡힌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울릉도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폐업을 통해 전업해야 하는 실정이다. 폐업을 하지 않으면 어선관리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1994년부터 수산자원에 맞는 적정 어선세력을 유지하고자 연근해 어선에 대한 감척 사업을 하고 있다. 수십 년간 어업에 종사한 어민들은 감척을 통해 부채청산도 하고 일부 생활비로 사용한다. 따라서 울릉도 채낚기 오징어 어선 어민들이 감척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울릉도 어민들에게는 간단하지 않다. 울릉도 오징어뿐만 아니라 동해 연안이 전체적으로 고기가 잡히지 않자 감척하려는 어민들이 많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산 부족으로 감척이 쉽지 않아 울릉도는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또한, 감척 조건에 연간 조업일수가 60일이 넘어야 하기 때문에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도 조업 일 수를 맞추고자 무조건 60일 이상 출어를 해야 한다. 이렇게 불합리한 조업 일수를 맞추고자 어민들은 소득 없이 유류대를 지출하는 2중 3중의 고충을 겪고 있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조업일수 맞춰도 소용이 없다. 예산 때문이다. 올해 감척이 안 되면 내년에 또 60일 조업일수를 맞추고자 출어를 해야 한다. 울릉도 2024년 어선 감척 현황은 14척이 신청해 6척이 선정됐다. 2025년 26척의 어선이 감척을 신청했지만 몇 척이 될지 알 수 없다. 감척이 안 된 어선은 다음해 또다시 60일 출어일수를 맞춰야 한다. 울릉도는 조건불리지역이다. 조건불리지역은 ‘어업 생산성이 낮고 정주 여건이 불리한 도서 및 접경지역 등에 거주하는 어업인’이다. 직접지불제 지원으로 소득 보전과 어촌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제정됐다. 울릉도는 2018년부터 금징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어업조건불리지역이다. 오징어채낚기 어업에만 의존하는 울릉도어민을 위한 법이지만 그만큼 어업이 어려운 지역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어선감척사업에 조건불리지역 어선에 대한 우선순위를 줘야 한다는 것이 어민들의 설명이다. 어업 소득이 높지 않아 조건불리지역이 됐지만, 어업소득이 없으면 감척 지원금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울릉도 어민들은 3중 4중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같은 울릉도 어민들의 사정을 고려해 특단을 조치를 취해 최소한 울릉도 어민들이 요구하는 감척에 대해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정, 울릉도 어민들이 생계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5-13
경북 영덕군 칠보산 자연휴양림 인근 임도에서 발생한 원목 운반 차량 화재 사건을 접하고 한편으로는 충격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력감을 느꼈다. 사고는 겉보기엔 단순한 불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영덕국유림관리소의 관리 소홀과 법 무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은 말 그대로 산림을 지키기 위한 강제 법령이다. 산림 내 재선충병이 확산되면 피해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우리는 이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 특별법에 명시된 이동 제한, 감염목 제거, 방제작업 등은 모두 재선충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강제 조치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영덕국유림관리소는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고 불법 원목 운반을 방치했다. 그것도 이동 제한기간 중에 말이다. 관리소의 방임으로 불법 반출 의혹까지 제기됐고, 주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법은 무슨 소용있냐”는 한 주민의 말에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 법과 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집행할 책임이 있는 관리소가 이를 무시하고 눈감았다. 이제 누구도 이 사건을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할 수 없다. 이 사건은 단지 관리 소홀을 넘어 산림 보호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의 무능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장 책임자 문책, 감사, 불법 반출 의혹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은 영덕국유림관리소가 얼마나 관리 소홀과 비리의 온상이었는지를 더욱 명백히 드러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산림청이 어떻게 이 사태에 대응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사건 발생 직후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이는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잃고 더 나아가 국민 전체의 신뢰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산림청은 이제 ‘조직 보호’에 급급해선 안 된다. 이 사건을 조직 개혁의 기회로 삼고, 투명하고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통해 지역민과 국민에게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 지역 산림을 지킬 책임은 관리소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단지 산림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 사회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산림 행정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5-11
산림조합중앙회가 14일∼16일까지 3일에 걸쳐 영덕군산림조합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돌아갔다. 이번 감사는 내부직원들로부터 출장비 상납, 인건비 허위 청구, 송이공판 감량률 조작에다 회계 비리 의혹 <본지 2025년 4월 1일자 5면 보도 등>이 잇따라 제기된데 따른 조치라고 한다. 회계 자료를 확보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한 감사팀은 “현재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며 “감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영덕군산림조합 비리의혹이 워낙 방대함에도 중앙회 감사가 3일 만에 마무리되자 뒷말이 무성하다. ‘처삼촌 벌초하듯 한 감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제대로 된 감사가 된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런 회의적인 시각은 산림조합중앙회장을 142개 일선 시군의 산림조합장들이 선출하는 시스템과도 무관치 않다. 영덕군산림조합도 중앙회장 선거에 1표를 행사하는 마당인데 감사팀이 이를 의식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각에선 일선조합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중앙회가 그냥 있을 수도 없고 하니 마지못해 그냥 형식적으로 내려 온 감사가 아닐까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지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중앙회 감사팀은 전력을 기울여 감사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영덕군산림조합은 앞서 산림청으로부터도 지난해 연말부터 올 초까지 특별감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아직까지 그 감사 결과를 알 수가 없다. 산림청이 미공개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다. 저렇다는 등의 온갖 설과 말만 가득하다. 그런 마당에 산림청은 감사 결과 공개 대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법을 선택해 조합원들의 궁금증만 더 키웠다. 영덕군산림조합의 여러 의혹은 조직이 정상 가동된다면 자체 감사로도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다. 조합원들이 선출한 감사가 자체 감사에 나서거나 외부회계감사 의뢰 등으로 시시비비를 조기에 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합집행부가 감사자료 제출 거부는 물론 자료 조작에다 직원들에게 일절 협조하지 말 것을 지시하면서 감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심한 대립을 하던 집행부와 대의원들은 시간이 지나자 더 아슬아슬해졌다. 마주 보며 달리던 열차는 끝내 멈추지 않고 충돌했다. 집행부와 대의원들은 서로 이사진 해임, 고소 고발 등 막판을 보여주면서 맞섰다. 중심이 흔들리는 사이 이번에는 직원들 간에도 파열음이 났고, 결국은 안팎의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더니 내부 비리 제보 등으로 이어지며 자체 폭발해 버렸다. 만신창이가 된 영덕군산림조합은 이제 경찰 수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염려되는 것은 경찰수사가 제대로 될까하는 부분이다. 일단, 수사는 경북경찰청과 영덕경찰서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영덕 경우 지역사회가 좁다보니 조사담당 경찰관들과 영덕군산림조합 임직원들과는 평소에도 너무나 잘 아는 사이여서 시원하게 파헤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조사가 예상외로 지연되면서 시중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산불로 영덕이 큰 피해를 입은 부분도 경찰의 조사를 멈칫거리게 할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산림 복구과정에 영덕군산림조합의 역할이 적잖은데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쪽에선 조사를 지연시키기보다 빨리 마무리,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산불피해복구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도 있다. 지금 상태로는 조합 업무와 주어진 일이 먼저가 아니라 산림조합 상하 직원 모두가 향후 수사 방향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어 제대로 된 업무 진행이 안된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가 끝나 후 조직을 재정비해야 본격적으로 일이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다. A 조합원은 “한때 전국에서도 모범적이었던 영덕군산림조합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면서 “일부 조합장들과 간부들의 일탈로 지역에서도 고개를 들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합이 차제에 재도약하려면 다소 아프더라도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을 확실하게 도려내는 길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산림청과 산림조합중앙회, 경찰은 영덕산림조합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한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4-17
황인무 대구 본사 산불 진화 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만 벌써 2건의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6일 경북 의성과 지난 6일 대구 북구에서 벌어진 사고. 각각의 산불을 진화중이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구체적인 상황을 들어보면 더욱 안타깝다. 지난 6일 북구 서변동 헬기 추락사고의 정확한 원인 규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시 사고를 목격한 이는 헬기가 저수지에서 물을 담은 뒤 저공비행을 하다 잠시 멈췄고, 물주머니가 위로 튀어 오른 직후 꼬리 날개가 비닐하우스에 걸린 뒤 추락했다고 전했다. 지난 7일 국토부 등으로 꾸려진 합동조사단이 사고 현장에서 헬기 잔해물 분포도, 인근 폐쇄회로(CC)TV, 전소된 보조 기억 장치,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감식을 다각도로 진행했으나, 사고 헬기의 고도나 속도를 추적할 수 있는 장비를 찾지 못했다. 해당 장치는 불에 타 소실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답답한 마음이 가득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체 노후화를 헬기 추락 원인으로 꼽고 있다. 통상 헬기는 운항 기간 20년이 넘으면 ‘경년 항공기(기령이 일정 기간을 초과한 항공기)’로 분류돼 국토교통부가 특별 관리하지만, 도입 헬기의 내구연한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대구지역 산불진화 헬기 역시 노후화된 것으로 알려져 불안감이 커진다. 지역에는 대구소방안전본부가 2005년식, 2019년식 헬기 2대를 보유하고 있고 달성군청, 동구청, 군위군청, 수성구청이 각 1대의 산불진화 헬기를 민간에서 임차해 운용하고 있다. 임차 헬기는 각각 1975년, 1981년, 2001년, 2010년에 제작됐다. 짧게는 15년부터 최대 50년이 지난 노후 헬기들이다. 이들 노후된 헬기로 산불 위험 기간인 1월∼6월, 11월∼12월 사이에 산불예방활동, 산불진화, 기타(재난 등) 등을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임차비용도 지자체들에게는 부담이다. 정부는 산불 진화가 지자체 소관이란 이유로 국비 지원을 해주지 않고 있다. 매년 10억원이 넘는 예산이 기초지자체로서는 부담인 것이다. 여기에 헬기 정비를 민간업체가 전담하다보니 지자체가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다. 지자체가 정비 내역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조종사의 나이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산불 진화 헬기조종사 90% 이상이 육해공군 출신 퇴역 조종사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산불 현장은 특히 연무가 끼어 시야가 나쁜데다 돌풍이 부는 경우도 있어 70대 조종사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중한 목숨이 잃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는 당국이 나서 산불진화에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him7942@kbmaeil.com
2025-04-10
최근 대구염색단지 내 하수관로로 보랏빛 염료로 추정되는 물질이 유출된 것과 관련해 인근 주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단속할 관계당국이 매뉴얼이 없어 사실상 원인 규명과 진원지를 찾을 수 없다는 말에 허탈해 하는 반응이다. 누가 밤사이 몰래 염료 등을 흘러보내도 된다는 것인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염색산단에 대해 행정당국이 유독 관대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대구염색산단은 1981년 설립 이후 대구경북의 경제 성장을 이끈 산업역군으로 누구도 부정 못한다. 지금도 그런 점에서 그들의 경제활동에 대해 응원한다. 비록 예전같지 않은 경기로 어려움을 겪지만 산단의 중요성이 변할리가 없다. 다만 환경문제가 우리 삶의 질과 관련해 중요 과제로 대두되면서 주민들은 기업도 환경기준에 맞는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구 서구청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후 대기방지시설 교체를 진행했다. 73%는 염색산단에 집중했다. 그 결과, 서구청은 2019년보다 지난해 9월까지 주요 악취 물질인 암모니아 수치와 황화수소 수치가 감소하는 성과를 냈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이 노후시설 개선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대구염색산단은 환경문제 유발로 2030년까지 군위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목표대로 이전이 되지 않으면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에 맞춰 석탄화력발전소를 친환경 에너지로 바꿔야 하는 큰 부담도 안고 있다. 하수관로 이물질 유출 사건이 비록 미제로 남았으나 산단 주변 주민들에게는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남았을 소지가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2025-04-04
경북부 김두한 기자 울릉도의 한 식당에서 시킨 7만 원어치 백반 정식을 두고 “이게 다냐”고 항의하자, 식당주인이 “여긴 울릉도”라며 대답했다는 일부 보도가 울릉지역 바가지요금으로 비쳐져 관광지 이미지를 크게 흐리고 있다. 심지어 어느 매체는 제목을 “기가 막히네! 평생 갈일 무(無)” 를 달아 네티즌들에게 당연히 1인분 7만 원을 착각하게 했다. 관광시즌을 앞두고 있는 울릉에 치명상을 입힌 악의적 횡포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논란을 촉발시킨 첫 영상에는 울릉군을 여행하며 식당에 간 에피소드가 담겼다고 했는데도 불구, 일부 네티즌들은 울릉도는 바가지요금으로 못 갈 곳으로 낙인찍었다. 또 실제 내용은 알려진 것과는 천차만별이다. 몇달 전 6명이 모 식당에 들어가 정식을 시켰고 나온 밑반찬은 어묵, 김치, 메추리알, 멸치볶음, 미역무침, 나물, 버섯볶음, 오징어 내장 등 다양했다. 가격도 인당 1만 2000원이라고 메뉴표에 분명 적혀 있었다. 식당 주인은 6명 식사 값으로 총 7만 2000원을 받았다. 이게 바가지 요금으로 둔갑됐으니 울릉군민들이나 식당 관계자들은 속이 뒤집혀질 일이다. 특히 수년전 부터 울릉도에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 오징어내장을 구하기도 어려운 마당이다. 선술집에서 오징어 내장 합 접시에 2~3만원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판임에도 일부 기사의 제목은 “이게 7만 원” 항의에 식당주인은 “여기는 울릉도야.” 고 적시했다. 다행히 같은 영상에 대구에서 관광을 왔다는 A씨(50)는 댓글을 통해 “가족들과 관광 오기 전 바가지 섬이라는 말들이 많아 걱정했는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 육지보다 렌터카 가격이 오히려 저렴해 놀랐고, 소고기도 육지보다 싸고 맛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한 평도 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이런 것들은 무시하고 자극적인 것만, 부풀려 공격해 대 울릉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돌을 던지는 사람을 장난삼아 던지지만, 개구리는 목숨이 달렸다는 말이 있다. 간단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울릉군은 몇 년 전에도 바가지요금과 1인분은 판매하지 않는다는 유튜브 방송 때문에 곤욕을 치른바 있다. 요즘 울릉군은 물가 관리 정책 등으로 지역 물가 안정에 힘쓰고, 관광지, 식당, 숙박, 렌터카 등 관계자들과 주민 모두에게 바가지요금에 대해 관광객들의 원성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튜버는 왜 하필이면 6개월이 지난 울릉도 관광시즌에 이 같은 내용을 올렸을까, 의문이 든다. 잘못은 당연히 지적해야하지만 허구를 구독자 널리기 위한 얄팍한 수단으로 사용하면 더욱 안 될터다. 울릉군의 대처도 한심하다. 유튜버에게만 항의할 것이 아니다. 보도 자료를 내고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물가는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싸면 왜 비싼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울릉도가 전국 유명관광지라고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할 수 없는 않는가. 울릉군은 물가를 잡기 위해 지원도 하고 안간힘을 쓰지만, 사건이 발생하면 대처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 관광업 종사자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울릉도는 관광을 갈 곳이 못 된다“고 한다면, 그래도 참야햐 하는가.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5-03-12
경북부 김두한 기자 '명이'는 울릉도 심심 산골 눈 속에서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봄에 싹을 틔워 울릉주민들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북돋아 주는 봄철 최고의 특산품이다. 그 명품 `명이`가 내륙지방에서 대량 재배돼 유통되면서 울릉도 고유명인 ‘명이’ 이름을 잃어가고 있다. 울릉도 명이는 자라는 환경과 토질이 전혀 달라 육지 산마늘과는 비교가 안 된다. 쌉싸래하면서 맵고 달콤한 그 맛은 독특, 육지에서 대량 재배되는 생산품과는 에초부터 차원이 다르다. '명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울릉도로 이주해 온 개척민들이 이른 봄 먹을 것이 없자 명이를 먹고 명을 이었다 해서 지어 졌다. 60년대 만해도 마늘처럼 생긴 명이의 뿌리는 말린 뒤 가루를 만들어 다양하게 음식재료로 이용했고, 줄기는 김치로 잎은 쌈을 싸서 먹었다. 울릉도 토속 주민들은 명이나물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명이(맹이)라고 부른다. 생명을 이어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이름에도 격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지금도 '명이'하면 웬지 마음이 찡하다. 향토 식물로 울릉의 섬 애환을 같이 해 왔기 때문이다. 그 '명이'가 육지에서 지금 고유의 맛을 잃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다. 돌아보면 '명이'가 이 지경이 된데는 울릉주민들의 책임도 크다. 우선은 울릉은 '명이'라는 상표등록을 했어야 했다. 그걸 안해 놓은 탓에 명이가 돈이 되자 뿌리가 육지로 무분별하게 반출됐고 시험재배들을 거쳐 본격적으로 대량 수확되고 있다. 뒤늦게 원래 이름을 유지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차 떠난 뒤 손 흔드는 격이 됐다. 울릉도 명이는 생채로 먹어야 독특하고 신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해상교통이 원활하기 전 명이의 생채 반출이 어렵자 절임을 통해 대량 반출시킨 장본인들도 울릉주민들이다. 특히 명이 절임을 위해 설탕, 간장 등 각종 조미료가 들어가면서 육지에서 생산된 산마늘 절임과 맛이 큰 차이가 없게 됐다. 명이는 산마늘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결국 조미료가 맛을 내도록 해 분별력이 크게 떨어져 버린 것이다. 울릉도 명이는 화산섬에서 겨우내 2~3m가 넘는 눈 속과 나무가 우거진 그늘에서 어렵게 자란다. 하지만, 육지 산마늘은 주로 시설하우스에서 재배되거나 산에서 자생한다해도 산새가 험하고 그늘지고 습한 화산섬 눈 속에 자라는 울릉도 명이와 식생환경이 전혀 다르다. 때늦었지만 '명이' 제이름 찾기가 시급하다. 울릉군에서 본격 나서줬으면 한다. 육지에는 산마늘이라는 학명이 있다. 그걸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작금 육지에서 사용하는 '명이'라는 명칭은 솔직히 상표 도용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당국의 허술한 대처로 등록은 못했지만 겨우내 굶주렸던 울릉도 개척민들의 허기를 채워주며 생명을 이어줬던 '명이'의 고귀한 이름을 본래 제 자리로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지난 2019년 최혁재 창원대 교수, 한국한의학연구원 양성규 박사, 국립수목원 양종철 박사, 러시아의 니콜라이 프리센 박사가 참여한 공동연구팀이 전세계에 분포하는 10여 종의 자생 산마늘을 조사한 적 있다. 그 결과 ‘명이’는 울릉도가 생성된 직후인 약 157만 년 전부터 울릉도에 자생하기 시작한 고유종으로, ‘Allium ulleungense’라는 학명의 새로운 종으로 학계에 보고돼 육지의 산마늘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게 밝혀졌다. 산마늘이 육지 어느 곳이든 생산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재배 여건과 환경이 완전히 다르고 종자도 다른데 '명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맞지 않다. '명이'는 울릉도에서만 사용되는 고유 명칭으로 육지 산마늘과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또한, 울릉군이나 농협, 명이 농가도 명이 상품 차별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명이와 산마늘을 구분할 수만 있으면 구태여 '명이' 이름을 찾지 않아도 산마늘이 명이로 변할 수 없을 것이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5-03-05
경북부 김두한 기자 울릉도 나리분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자연 자원을 갖고 있다.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활화산 분지 안에 마을이 형성돼 그 가치만으로도 세계를 대표하는 관광마을이다. 나리분지는 신생대 제3기 말의 화산활동으로 인해 점성(粘性)이 강한 조면암·안산암·응회암이 분출되면서 칼데라 화구(火口)가 함몰, 형성된 화구원(火口原)이다.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나리분지의 규모는 동서의 폭이 1.5㎞, 남북의 길이가 2㎞, 면적이 1.5∼2.0㎢크기다. 나리분지는 주변에 해발고도 약 500~1000m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중 가장 높은 곳이 남쪽에 있는 성인봉(987m)이다. 분지 안에는 북남쪽으로 치우쳐 알봉(611m)이 위치하고 있다. 알봉의 남쪽 산록에는 지름 100∼200m, 깊이 10m 전후의 작은 분화구있다. 분화구 속 분화구인 셈이다. 이곳에서 흘러나온 용암(조면암)이 100m 정도의 두께로 쌓여, 화구원을 북동쪽의 ‘나리마을’과 남서쪽의 ‘알봉마을’로 분리시키고 있다. 나리분지는 겨울철 눈이 녹아 스며드는 물과 빗물이 외부로 나갈 출구가 없어 집중호우에는 일시적으로 호수를 형성하지만 즉시 빠진다. 지하로 스며든 물은 북쪽 사면 250m 지점에서 용출(용출소)돼 추산발전소의 원천은 물론 울릉도 전역에 깨끗하고 맑은 풍부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약 60만평 규모의 나리분지가 울릉도 수원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리분지는 형성 과정 등이 백두산 천지연, 한라산 백록담과 거의 엇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차이점이라면 나리분지는 오랜 기간 흙과 먼지 나뭇잎 등이 퇴적되면서 땅이 기름지다보니 이곳을 일궈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나리분지는 무억보다 750종의 식물을 품은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특히 나리분지내에 조성된 나리마을은 울릉도 지역의 자연경관과 농업유산, 지역특산물과 특화 체험을 핵심 구성요소로 세분화하고 있다. 장점은 나열이 어렵다. 칼데라 분지의 아름다운 자연을 연계한 경사가 아주 원만한 트레킹 코스도 있는가 하면 자생하는 식물을 활용한 음식 브랜드화, 눈꽃잔치 등 다설지 특색을 반영한 액티비티 개발 등 다양하다. 나리분지를 포함한 지질공원의 우수성도 갖췄다. 제9호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울릉 화산섬 밭 농업 등의 문화자원, 1차 산업 강화 및 특산물도 나리마을만의 상품이다. 나리마을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분화구 속 마을이라는 점과 지질의 우수성, 신령수 생명의 숲길, 다양한 생물자원의 보고 등의 차별화된 특성을 갖추고 있어 세계 최우수마을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고 세계적인 지질 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곳인 이 나리마을이 유엔이 지정하는 최우수관광마을로 선정돼 많은 외국인도 나리마을의 자연과 신비성, 우수성을 체험하고 함께 공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5-02-27
황인무 대구본사 대구 서구에서 염료로 추정되는 폐수 유출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직선 거리로 약 1㎞ 거리의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이 사고로 불안에 떨고 있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와 염색산단이 인접해 있는데다 그 주변에는 각종 환경기초시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더 문제는 주민들이 가진 행정당국에 대한 불신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에도 비슷한 폐수방류 사고가 일어났으나 행정당국이 아직까지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인근 다른 구로 편입됐으면 좋겠다’, ‘구청의 방관으로 염색공단 업체들이 법을 어기며 계속 운영한다’, ‘당국이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구환경청, 대구시, 서구청, 대구염색산단관리공단,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달서천 사업소가 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로선 속 시원한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다. 알다시피 지난번처럼 흘러나온 폐수가 하천으로 떠내려가 원인 규명할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도 폐수가 흘러간 이후 뒷북 조사로 원인도 찾지 못하고 사실상 흐지부지된 모양새다. 이번에는 지난번 보다 기관간 협조와 초동 대응이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달서천사업소와 북구청이 시료채취나 간이검사, 현장상황 전달 등으로 기민하게 대응했지만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왜일까. 사고발생에 대한 체계적인 사전준비가 없었던 탓이 아닐까. 제3의 폐수 방류사고가 또 다시 생긴다면 행정이 요란하게 움직이다가 원인 규명을 못한 채 끝나는 일이 반복될 지 우려된다. 이번에도 지난달처럼 원인 규명을 못한다면 주민들의 원성이 더 커질 것은 뻔한 일이고 관련기관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질 것이다. 당국의 끈질긴 점검과 조사로 이번에는 반드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행정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him7942@kbmaeil.com
202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