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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민도 안다, 10억 ‘웰니스’는 실패였다!

“웰니스”라는 화려한 구호 뒤에는, 남은 것은 예산 낭비 지적과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사법 판단뿐이었다. 경상북도와 영덕군이 산업통상자원부 후원으로 벌인 ‘국제 웰니스 페스타’는 보건소 신고조차 하지 않은 외국 의료진의 시술, 강풍 속 강행된 행사, 부상자 발생 후 책임 공방으로 얼룩졌다. 수년째 반복된 불법 의료행위와 재단 본부장 횡령 기소에도, 군은 이제야 원점 재검토라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았다. 이미 늦은, 뒷북 행정이다. 영덕군 재정 상황은 심각하다. 인구 3만 3천여 명 중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이고, 재정자립도는 7.72%에 불과하다. 통합재정수지는 수백억 원 적자가 예상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10억 원이 넘는 혈세를 국제 행사에 쏟는 것은 주민과 지역 경제를 외면한 무책임한 도박이다. 특히 외국 의료진과 산업전 관계자 초청 비용에만 1억 7천여만 원이 집행됐다. 주민 참여는 배제된 채, ‘국제’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지출이었다. 견제 없는 권한과 감시 없는 행정이 낳은 구조적 실패. 지난해 웰니스 사업을 전담해온 영덕문화관광재단 본부장이 횡령으로 기소된 전례에도 군은 교훈을 얻지 못했고, 주민 안전과 혈세는 또다시 위험에 노출됐다. 같은 경북 지역의 성공 사례는 영덕 행정의 무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구미라면 축제는 예산 3억 9,500만 원으로 35만 명을 모으며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고, 김천 김밥축제도 소규모 예산에서 출발했지만, 주민 참여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공통점은 명확하다. 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 정체성을 살렸다. 영덕군은 ‘국제’라는 허울 뒤에 숨기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감시의 자리를 비워둔 책임은 군의회에도 크다. 군민이 맡긴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의회는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지금 영덕군의회가 받아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4년 차를 맞은 프로젝트는 방향을 잃었고, 주민은 철저히 배제됐다. 행정은 책임을 회피했고, 군의회는 침묵했다. 군민은 이미 혈세가 잘못 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이다. 행정과 군의회 모두 반복된 무책임 속에서 손을 놓았다. 주민 삶 위에 내려앉은 책임의 무게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만약 그 10억 원이 개인 돈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함부로 쓸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경상북도의 책임도 면할 수 없다. 상급 행정기관으로서 예산 지원과 행사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면서 구조적 실패를 방치했다. 영덕군이 지금 당장 필요한 진정한 치유는, 무너진 행정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 어떤 선언보다, 바로, 이 행동이 치유의 시작이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11-16

강릉~울릉도 항로 중단 이유, 강릉시-국민 이해 하도록 해야

지난 2011년 3월 첫 운항을 시작한 울릉도~강릉항 간 여객선 노선이 10월 말 15년 만에 행정조치로 강제 중단 사태를 맞았다. 이 노선은 강원·충청은 물론 서울 등 경인지역에서 울릉도를 찾는 가장 가까운 필수 노선이다. 하지만 15년간 큰 문제 없이 운영되던 강릉항 여객선 접안시설이 ‘사용 불허’ 처분을 받았다. 행정조치 그 자체만 보면 절차상 문제는 없다지만, 공교롭게 겹친 시기적 정황이 지역사회에 불필요한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 속담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서로 무관한 사건이 맞물려 억측을 낳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부 지자체는 울릉도 여객선 유치를 위해 수년째 경쟁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정작 강릉시는 이미 보유한 노선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혹을 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강릉~울릉 항로는 15년 동안 수도권·강원·충청 이용객의 울릉도 접근성을 책임져 온 노선이다. 연간 10만 명 이상이 이용했고, 강릉항 인근 상권·숙박·운수업계까지 직간접적 혜택을 누렸다. 안전 문제를 사유로 들었다면, 동절기 휴항 기간을 활용한 보수·보강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는 ‘사용 연장 불허’라는 가장 강한 조치를 선택했다. 묻고 싶은 질문은 단순하다. “왜 지금이어야 했는가” 물론 해당 선사가 터미널 이전·신축 조건을 장기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은 크다. 그러나 행정은 공공성 위에 서 있다. 단일 기업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지역 접근권을 사실상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대안 제시 없이 ‘불허’만 남긴 행정은 결국 주민 이동권·관광 산업·지역경제라는 훨씬 큰 피해로 돌아온다. 더구나 올해 개서한 강릉해양경찰서가 해당 부지를 일부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됐다. 해양경찰은 해상교통과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이런 기관의 신뢰는 투명함에서 나온다. 그런데 여객선 운항과 해경 시설 활용 가능성이 겹쳐 버리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의혹까지 스스로 자초하게 된다. 양양군은 울릉도 여객선 유치를 위해 매년 100억 원 투자를 공언하고 울릉군과 MOU까지 체결했다. 반면 강릉시는 이미 존재하는 항로를 강제적으로 끊어내며 지역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밀어냈다. 이것이 과연 지역 전략으로서 합리적인 선택인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강릉시와 해양경찰은 이 조치가 어떠한 공익적 판단 위에서 내려졌는지, 다른 선택지는 정말 없었는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의혹은 설명 부재에서 싹튼다. 울릉도는 국민의 휴식, 관광, 삶의 균형을 책임지는 중요한 공간이다. 강릉~울릉 항로는 단순한 뱃길이 아니라 동해권 관광·경제의 동맥과도 같다. 지역은 상생의 기회를 필요로 한다. 행정 결정은 그 기회를 절단하는 칼이 아니라, 연결하는 다리가 돼야 한다.강릉시의 보다 책임 있는 대응을 기대한다. kimdh@kbmaeil.com

2025-11-16

울릉도 저동항, 스파보다 중요한 건 ‘어민의 땀’

“오징어배 불빛이 다시 저동항 바다를 비추려면, ‘스파보다 중요한 건 어민의 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울릉도 저동항이 해양수산부가 주관한 ‘2026년도 어촌신활력증진사업’ 공모에서 최종 선정됐다. 전국 4개소만 뽑힌 어촌경제도약형 사업으로, 낙후된 어촌의 생활·경제·관광 기반을 동시에 강화하는 핵심 어촌 재생 프로젝트다. 특히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되는 ‘해양심층수 스파·찜질복합센터’는 사계절 운영 가능한 체류형 해양 힐링 시설로 주목받고 있다. 울릉군수협이 투자의향서를 제출했으며, 향후 민간사업자 공모를 통해 본격 추진될 예정이다. 하지만 화려한 개발 계획 뒤에 놓인 현실은 냉혹하다. 밤마다 오징어 불빛이 가득하던 저동항은 이제 고요하다. 급격한 어획량 감소와 유가 상승, 인건비 부담으로 어민들의 생계는 벼랑 끝이다. 한때 활기로 넘쳤던 항구 상권은 텅 비었고, 어판장은 썰렁하다. 이런 현실에서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선정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낙후된 어항 정비를 넘어 체류형 관광으로 울릉 경제의 새 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광객이 늘어나면 어민도 함께 웃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직 불투명하다. 스파와 산책로, 바다마당 같은 시설은 분명 지역 이미지를 바꾸겠지만 ‘시설 중심 개발’이 어민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활력은 또다시 외부에 머무를 뿐이다. 과거 정부사업 중 상당수가 ‘관광 인프라’만 남기고 지역 일자리나 소득 창출과는 괴리된 채 끝난 전례가 이를 증명한다. 지금 울릉도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관광지 조성이 아니라 어업과 관광이 함께 살아 숨 쉬는 순환경제 모델이다. 예컨대 해양심층수 스파가 지역 어획물 판매나 식음업,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된다면 관광객의 소비가 어민의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신활력’이다. 또하나의 과제는 청년 어업인 육성과 귀어 정착 지원이다. 고령화로 어업 인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현실에서 어촌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단기 시설사업이 아닌 장기적인 인력 양성과 정착 정책이 병행돼야 진정한 지역 도약이 가능하다. 울릉도 저동항의 재도약은 이제 막 닻을 올렸다. 행정의 구상과 민간의 투자가 지역민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kimdh@kbmaeil.com

2025-11-10

유권자들의 눈은 언제나 당신을 향하고 있다

내년 6·4 지방 선거가 7개월 정도 앞두고 전국 각 시·군이 벌써부터 선거의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설렘과 희망찬 기대로 가득해야 할 이 소중한 시기에, 때로는 ‘내가 앉은 이 자리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일부 현직 후보자들의 모습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비단 특정 자치단체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국민의 봉사자로서 부여받은 소중하고 막중한 책무를 잠시 잊은 이들에게, 우리는 이 엄중한 시기에 그들이 마땅히 기억해야 할 본연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주고자 한다. 우리 속담에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처럼,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진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는 권력이나 부, 명예 등 모든 일시적인 것들에 적용되는 흔들림 없는 진리이며, 모든 공직 또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자치단체장이라는 자리 역시, 한 개인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 오직 유권자들이 잠시 부여한 소중한 권한이자 동시에 엄중한 책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각 시·군 자체단체의 경우, 재선·3선에 도전을 공론화 하며 오랜 시간 지역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자치단체장의 노고는 분명 우리 모두의 뜨거운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때때로 ‘현직’이라는 이름 아래, 유권자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존재감만을 과시하려 하거나 오직 다음 선거만을 위한 근시안적인 행정에 몰두하는 모습은 유권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따뜻하고 유능한 리더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자리는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겸손하고 낮은 마음을 잊을 때, 리더십의 빛은 서서히 바래고 군민과의 소중한 신뢰는 조용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공직은 본질적으로 ‘봉사’를 위해 존재하는 자리다.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우리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사회의 그늘진 곳에 소외되는 이웃 없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자치단체장에게 주어진 가장 참된 역할이자 사명이다. 처음 그 자리에 오르겠다고 뜨겁게 다짐했던, 열정과 순수함이 가득했던 초심을 되새겨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유권자들은 지금,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예리한 눈으로 당신의 모든 언행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형식적인 의례와 상투적인 발언, 혹은 일방적인 독백으로 귀한 시간을 채우기보다는, 진심으로 유권자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선거는 지난 날의 공적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 지역을 어떻게 더 밝고 행복하게 이끌어갈 것인지 그 비전을 유권자들과 투명하게 공유하고, 그들의 현명한 선택을 겸허히 구하는 진정한 소통과 약속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천군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자치단체가 미래를 향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 중대한 시기, 자치단체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권세를 뽐내고 자랑하는 오만한 태도가 아닌, 오직 유권자들의 삶을 최우선에 두는 확고한 철학과 굳건한 신념이다. ‘내 자리’가 아닌 ‘우리의 지역’, ‘나의 영광’이 아닌 ‘모두의 행복’을 향한 나침반이 흔들림 없이 가리킬 때, 비로소 군민의 깊은 신뢰를 얻고 지역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진정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들의 표심은 언제나 냉정하며, 동시에 지역의 밝은 미래를 향한 따뜻한 기대감을 담고 있다. ‘영원한 자리’는 이 세상에 없지만, ‘영원히 기억될 봉사’는 분명 존재한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모든 후보자들이 겸허하고 겸손한 자세로 유권자들을 마주하고, 지역의 밝고 희망찬 미래를 위한 진솔한 노력과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정안진기자 ajjung@kbmaeil.com

2025-11-09

울릉도오징어, 이제는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돼야

울릉도의 바다는 한때 ‘오징어 황금어장’으로 불렸다. 울릉도 주민들의 생계, 울릉도의 경제, 그리고 한 세기 넘는 섬의 근현대사가 오징어와 함께 흘러왔다. 그러나 지금, 그 산업은 붕괴 직전의 위기에 놓여 있다. 2000년 1만1000여t에 달하던 오징어 어획량은 최근 4년 평균 447t에 불과하다. 사실상 산업 기반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어(郡魚)’로 지정된 오징어는 한때 울릉도의 수산물 판매액 중 96%를 차지하기도 할만큼 독보적 존재였으나 이제는 지역 경제를 지탱하기는 커녕 어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왜 이렇게 절대 산업에서 사양 산업으로 바뀌었을까? 김윤배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대장의 분석은 명확하다. 첫째, 동해 표층수온의 급격한 상승이다. 9월에도 27~28도를 오르내리는 수온은 오징어가 머물 수 없는 환경이다. 표층과 중층의 온도 차가 커지며 영양염의 순환이 약화되고, 결국 먹이망 자체가 붕괴됐다. 둘째, 남획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연간 1만 톤을 유지하던 오징어 위판량은, 북한 수역에 중국어선 2천 척 이상이 들어와 싹쓸이 조업을 시작한 2004년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북한 수역과 맞달아 있는 울릉도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이제는 ‘감척’과 ‘문화자산화’라는 해법을 찾아야한다. 오징어 자원 감소를 막기 위해선 어선 감척 지원과 어업인 소득 보전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오징어 어업을 역사·문화 콘텐츠로 승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저동항의 ‘펭귄 얼음공급 구조물’ 보존 논의는 상징적이다. 오징어와 함께 울고 웃어온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오징어역사문화홍보관은 이제 선택이 아닌 시급한 과제다. 울릉도의 오징어는 단순한 수산물이 아니다. 1910년대 일본인의 이주, 1970~80년대 인구 5만 명에 달했던 호황, 그리고 지금의 몰락까지, 울릉도의 모든 굴곡은 오징어의 흥망과 맞닿아 있다. 이제 오징어 어업은 기후 위기 시대를 버텨낸 지역 어업 기술이자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돼야 할 시점이다. 산업으로서의 회복은 요원할지라도, 문화와 역사의 자산으로 보전할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울릉군민의 상징, 군어(郡魚) 오징어가 다시 날개를 펼 수 있을지는 알수가 없다. 하지만, 문화유산으로서의 보전은 지금 우리가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달려 있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11-06

‘영일만대로, 이제 고속국도로 격상돼야 할 시점이 됐다‘

오는 11월 7일 포항~영덕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포항의 교통 지도가 새롭게 그려진다. 부산·울산·대구 등 남부 산업벨트의 교통망이 포항을 거쳐 영덕, 강릉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동해안을 따라 U자형으로 연결되는 구조인 국가 도로망도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접어드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영일만대교다. 하지만 이 사업은 현재 노선조차 확정치 못해 언제 완공될지도 불투명하다. 그때까지는 영일만대교의 역할을 ‘영일만대로’가 해야 한다. 포항 동해면에서 영일만항까지 가로지르는 이 도로는 울산과 부산·영덕 방향으로 가거나 대구 방향으로 진출입할 때 이용해야 해 U자형 도로 체계에서는 중심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지금까지 고속도로 수준의 차량 흐름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영일만대로의 관리 체계와 시설 수준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직 일반국지도와 시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영덕~포항 간 고속도로 개통 이후 영일만대로에는 교통량과 물류 수요의 폭증이 예상되나 과연 이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벌써부터 나온다. 교통분야 전문가들은 이제 영일만대로는 ‘고속국도’로 승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더 이상 논의가 아닌 실행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고속도로 처럼 사용되면서도 관리체계는 시·도 수준에 묶어 놓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포항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이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영일만대로의 고속국도 승격을 정부에 꾸준히 요청하며 협의했음에도 아직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런 관계로 교통안전, 도로 포장, 조명, 방음벽, 제설 등 유지관리 전반에서 한계가 있다고 토로한다. 영일만대로의 모순은 이원화된 관리 체계에서도 드러난다. 이 도로는 동해면에서 흥해읍 소티재까지는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관리청이, 소티재에서 영일만항 구간은 포항시가 각각 관리하고 있다. 도로 하나에 두 기관이 걸쳐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예산 배정부터 공사 발주, 시설물 교체에 이르기까지 행정 절차는 복잡하고 민원 처리 속도는 느리다. 실제로 일부 구간의 도로 포장 불균형과 방음벽 미설치는 ‘관리청 간의 협의 부재’라는 이유로 수년째 방치돼 있다. 도로가 하나의 체계로 운영되지 않은 결과는 책임 불분명과도 연결되고 이용자들은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단일 관리기관을 통한 통합 운영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일만대로가 한국도로공사에서 관리하는 고속국도로 전환돼 통합관리 될 경우 예산확보 등이 원활해져 교통 체계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유지보수 기준은 고속도로 수준으로 상향되고, 사고 대응은 물론 도로정보 서비스 등이 통합되면서 대시민 서비스 개선이 예상된다. 나아가 도심과 항만, 공단을 잇는 물류 흐름이 빨라져 포항 산업단지의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다. 또 영일만항을 기점으로 해상 물류와 육상 운송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포항이 환동해 물류 중심지로의 기능과 역할을 더 다질 수도 있다. 포항은 포항~영덕 간 고속도로 개통이라는 환경 변화가 생긴 만큼 교통체계를 다시 다듬을 때가 됐다. 특히 일반국지도인 영일만대로의 고속국도 승격은 매우 시급하다. 영일만대교의 역할을 영일만대로가 할 것이기 때문에 논리도 충분하다. 포항시와 지역 국회의원, 지방의회가 한목소리로 영일만대로의 고속국도 승격과 관리 일원화를 정부에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 정부도 이 사안이 단순히 지방도로의 국도 승격 문제가 아니라 환동해 경제권 확장과 국토 균형발전 전략의 핵심 인프라 구축 문제로 봐야 한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1-05

‘RE100’ 수출 생존의 조건…포항시·포스코 대응 전략 있나

전 세계 기업들이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이니셔티브에 속속 합류하면서 재생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한 수출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RE100은 기업이 2050년까지 전력 사용량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자발적 약속이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공급망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애플·구글·BMW·볼보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업체에도 RE100 이행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친환경 선언이 아니라 계약의 전제 조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 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에서 RE100 대응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 셈이다. 수출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환을 이행하지 못하면 공급망에서 제외되고 수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아직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발전 단가가 높고 입지 여건도 까다롭다 보니 기업이 자력으로 RE100을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부담을 떠안는 곳이 바로 제조업 중심의 수출 거점이다. 포항도 이에 해당된다. 대표적인 산업도시인 포항에는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 및 2차전지 관련 산업이 밀집해 있다. 포항의 산업 구조 자체가 전력 다소비형이기 때문에 RE100 이행 부담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포스코는 이미 탄소중립을 기업 전략으로 내세우고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재생에너지 확보,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지역 차원의 인프라와 제도적 지원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글로벌 기업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재생에너지 조달 수단으로 자가발전, PPA(전력구매계약), REC(재생에너지 인증서), 녹색 프리미엄 등이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제도 활용 폭이 좁고 절차도 복잡해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 포항시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RE100은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지역의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특히 철강산업 중심의 포항은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 단순한 ‘기업 몫’이 아니라 지자체 차원의 에너지 전환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생산 기반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PPA·REC 거래 구조를 촉진하는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 됐다. 관건은 포스코의 기술적 대응과 별개로 포항시가 지역 차원의 ‘RE100 지원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느냐 여부다. 공업용수 문제 처럼 에너지전환도 지역의 산업 생존과 직결되는 인프라 과제인 만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RE100은 더 이상 선언이나 캠페인이 아니고 글로벌 시장의 문을 열어주는 ‘입장권’이다. 포항시와 지역기업이 이 흐름을 제때 따라가지 못한다면 세계시장에서 철강도시 포항의 존재감도 흔들릴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선언’이 아니라 실행 전략이다. /임창희 선임기자

2025-10-30

10억원 짜리 웰니스, 정작 지역은 치유하지 못했다

도비와 군비 등 총 10억 원이 투입된 ‘영덕 국제 H 웰니스 페스타 2025’가 곧 막을 올린다. 영덕군은 15개국 65명의 해외 전문가, 86개 부스라는 숫자를 내세우며 ‘국제행사’임을 강조하지만 그 화려한 규모 뒤에는 지역민의 자리는 없다. 올해 열린 영덕대게축제는 8억 5000만 원의 예산으로 10만 명이 방문해 153억 원의 직접경제효과를 거뒀다. 행사 후 지역 상권의 매출이 늘고 지역 이미지와 위상도 높아졌다. 반면 4년째 이어지는 웰니스 페스타는 ‘치유’라는 이름과 달리 지역민이 철저히 소외된 행사로 전락하고 있다.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영덕에서 한방·치유 체험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스마트폰 기반의 QR 입장 시스템, 외국어 중심의 안내, 고가의 체험 프로그램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군민 다수는 이 행사가 왜 필요한지, 무엇을 위한 행사인지 조차 모른다. “지역 주민은 구경꾼, 외부 전문가가 주인공”이라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10억 원의 혈세가 어디에, 왜 쓰이는지에 대한 설명 조차 부족하다는 점이다. 해외 전문가 초청과 부스 운영을 위해 항공권·숙박·통역·요리사 초청까지 부담하는 이유에 대한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다. 행정당국이 말하는 ‘국제행사’의 실체가 실질적 교류인지, 단순한 외형 부풀리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영덕군은 이번 행사를 ‘국제 H 웰니스 엑스포’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다. 행사의 성공적 평가를 통해 미래의 대형 국제행사를 준비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엑스포도 지역민의 공감과 참여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축제의 중심은 외국 전문가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어야 한다. ‘지역을 치유한다’는 웰니스의 본뜻은 화려한 개막식이 아니라 주민 한 사람의 삶 속에 변화를 남기는 것이다. 행사장의 불빛이 꺼진 뒤에도 지역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건 치유가 아니라 10억 원짜리 행정 쇼에 불과하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10-27

배 운항을 멈추면 울릉도 주민 삶도 멈춘다···'고립의 바다'는 국가 책임

겨울바다가 열리면 울릉도는 다시 고립된 섬이 된다. 포항·강릉·묵호와 울릉도를 연결하는 배들이 하나 둘 멈춰 섰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올해도 이런 현상은 재현되고 있다. 대저건설의 ‘썬라이즈호’가 11월 9일부터 무기한 휴항에 들어가고, 강릉·묵호 노선도 11월 초부터 내년 3월까지 중단된다. 여기에다 울릉크루즈마저 12월 8일부터 15~20일간 정기검사로 멈추면 울릉도는 사실상 육지와 완전히 단절된다. 주민들이 말하는 “단절의 두려움”은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주민 김모씨는 “삭풍 몰아치는 울릉도에서의 겨울살이는 정말 힘든데 특히 이때 많이 아프면 정말 절단“이라고 말했다. 배는 이미 끊겨 있는데다 응급환자를 수송할 헬기도 날씨가 궂으면 뜨지 못해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며 걱정했다. 기존 엘도라도호에 이어 썬라이즈호까지 멈춘 대저건설의 결정은 기업의 책임 의식을 의심케 한다. ‘임대 종료’, ‘정비 불가’라는 명분 뒤에는 주민의 절박함을 외면한 경영 논리가 자리한다. 기업은 효율을 따질 수 있다. 하지만 공공항로를 운영하는 순간 그것은 공익의 영역이다. 그들의 배가 멈추는 것은 곧 울릉도 주민의 삶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양수산부는 여객선 공영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은 지난 수년 동안 반복돼 왔다. 법제화는 더디고, 제도적 장치는 허술하다. 예비선 확보는 의무가 아니며, 대체 운항은 선사의 ‘선의’에 맡겨져 있다. 최근 2년 간 전국 도서 지역에서 여객선 운항이 끊긴 사례는 33건, 누적 405일에 이른다. 섬 교통의 단절은 단순한 교통 문제가 아니다. 뱃길이 끊기면 관광객도 사라지고, 그것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이 상황에서 ‘울릉도 관광 활성화’라거나 ‘독도 수호의 전초기지’라는 구호는 공허하다. 관광 비수기를 이유로 선사들이 운항을 줄이고 휴항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노선의 운항 중단을 경제 논리로만 판단하도록 방치한 것은 정부의 무책임이다. 수지타산만 따지는 민간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적자 보전과 긴급운항을 보장해야 한다. 섬의 교통권은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공공의 의지로 지켜야 한다. 정부는 긴급 운항비 지원제, 예비선 확보 의무화, 대체운항 책임제 등을 법으로 정비해야 한다. ‘공영제’라는 이름만 붙은 제도로는 섬의 겨울을 견딜 수 없다. 울릉도의 겨울 바다는 늘 험했지만, 올해의 바다는 유난히 거칠어 질 것 같다. 정부와 해운사, 그리고 울릉을 관할하는 경북도지사와 울릉군수 모두가 이를 직시해야 한다.

2025-10-21

‘경산대추축제’가 남긴 것

세상의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혹 ‘미완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이 미완성도 하나의 끝과 시작은 분명하다. 시작과 끝은 서로 보완의 관계로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고, 끝이 좋다면 시작에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경산시는 ‘제14회 경산대추축제 & 농산물 한마당’을, 청도군도 ‘2025 청도반시축제와 2025 COAFE 청도 세계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 축제의 평가는 선명하게 나누어진다. 어쩌면 그 결과는 이미 시작부터 예측할 수 있었다. 청도의 축제는 10월에 접어들며 분위기 띄우기에 돌입했지만, 대추 축제는14일 오후에 기자에게 보도자료가 전달되는 등 개최 의지를 의심하게 했다. 지역의 축제 목적은 분명하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나 농특산품을 널리 알리며 지역민과 방문객들이 다 함께 즐기며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먼저 호응이 이어진 청도의 축제장에는 개막부터 끝날까지 어린아이의 손을 잡거나 유모차에 어린이를 태운 젊은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붐볐다. 즐길 거리와 먹거리도 넘쳤고, 풋풋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경산의 축제장에는 나이가 지긋한 지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방문객들도 “보고 즐길 것이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비가 내린 지난 토요일에는 더욱 선명하게 축제장의 모습이 갈렸다. 날씨는 엇비슷했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던 대추축제장과는 반대로 반시축제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아 축제를 즐겼다. 축제 구성도 한쪽은 특산품 판매에만 열을 올렸고, 다른 한쪽은 축제를 느끼며 지역의 특산품을 스스로 구매하도록 짜여진 모습이었다. 결실의 가을이 깊어가면서 도내에 각종 축제가 잇따르고 있다. 저마다 특성을 자랑한다. 다들 남다른 열정으로 준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물론 축제에서 행사장을 찾은 사람 수도 중요하다. 하지만 준비와 진행 과정의 최선,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진정성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다녀보면 감으로 알 수 있다. 축제의 개막식과 폐막식에 부른 초대 가수가 누군가로 급을 메기는 것이 아닌 축제장을 찾은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먹거리의 다양성으로 웃음을 선물하는 것이 진정성이다. 청도의 올 반시축제는 다음 축제가 기다려지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반면 대추축제는 그러하지 못했다. 시간만 지나가면 되는 마친다는 그런 행사로 다가왔다. 다음 제15회 경산대추축제는 철저한 사전 준비로 시작부터 끝까지 방문객을 위한 축제로, 대추 생산 농가만을 위한 축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5-10-20

포항 중앙상가, ‘페니 전략’ 늪 끊고 ‘로컬 콘텐츠 혁명’ 일으켜야

포항 중앙상가는 지금 구조적 붕괴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일시적 불황이 아니라 대형 유통자본의 ‘페니 전략(푼돈 잠식)’이 상권의 뿌리를 흔들고, 고질적인 주차난과 지방소멸의 흐름이 겹치며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수년간 도시재생 사업에 1500억 원 이상이 투입됐지만, 상점 매출과 공실률 개선은 거의 제자리다. 도심재생 뉴딜 사업(1442억 원), 문화예술팩토리(58억 원), 주차장 확충(71억 원), 청년플랫폼(27억 원), 야시장(10억 원) 등 굵직한 사업들이 이어졌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깔끔한 거리와 조형물이 만들어졌어도 접근성, 주차 인프라, 콘텐츠 부재는 그대로 남았다. 중앙상가 상인협의회 관계자는 “도심재생 사업에 수천억 원을 쏟아붓고도 상권은 더 썰렁해졌다. 누가 책임지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문제의 핵심은 접근성이다. 소비의 첫 기준이 ‘편리함’인 시대에 주차와 교통이 불편한 중앙상가는 고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한다. 공영주차장은 멀고 실시간 안내 시스템도 없다. 정작 예산은 조형물과 전시성 사업에 집중됐다. 성과 평가나 사후 관리도 부실하다. 한 상인은 “시설만 지어놓고 손 떼는 행정이 문제에요. 주차장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놓고 무슨 재생입니까”고 반문했다. 경주 황리단길은 적은 예산으로 ‘로컬 콘텐츠 혁명’에 성공했다. 전통 한옥거리와 개성 있는 상점이 어우러져 역 정체성을 살리면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접근성 개선과 콘텐츠의 힘으로 도시재생의 정석을 보여준 셈이다. 그와 반대로 포항 중앙상가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리’에 머물러 있다. 전문가들은 중앙상가 재생의 해법을 ‘로컬 콘텐츠’와 ‘접근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도시계획 전공교수는 “도심 활성화는 조형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콘텐츠에서 시작된다”며 “주차와 교통망,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상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인근 유휴 부지를 활용한 주차타워 조성, 대중교통과의 연계 강화, ‘차 없는 거리’가 아니라 ‘차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걷기 좋은 거리’로의 개념 전환이 필수다. 빈 상가는 청년창업·공유공간·로컬숍으로 전환하고, 상인 공동체가 주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임대료 상생 협약도 병행돼야 한다. 포항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상인들이 주체가 돼야 합니다. 행정이 끌고 가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상권 부활의 열쇠는 상인 공동체와 행정의 정밀한 협업, 그리고 포항만의 콘텐츠 개발에 달려 있다. /lch8601@kbmaeil.com

2025-10-15

트럼프 ‘노벨상 불발’과 철강 도시의 그림자

지난 10일 마침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됐지만, 그 명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없었다. 트럼프는 상을 못 받자 “미국 모욕”이라며 노르웨이 등에 관세 보복까지 시사하며 노골적인 협박을 일삼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힘의 논리를 거부하고 베네수엘라의 민주화 투사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선택하며 평화의 근본적 가치를 역설했다. 이 국제적 헤프닝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포항의 현실과 뼈아프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관세’라는 보복 카드를 꺼내 드는 모습은 포항의 경제를 지탱하는 철강 산업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포항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철강 산업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한국산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 폭탄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포항을 비롯한 국내 철강 업계에 수출 감소 등 막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미국이 2025년 6월 철강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올해 한해 동안 미국에 내야 할 관세 추산액은 무려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노벨상 불발에 관세 보복을 위협하는 행태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 국제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슈퍼파워의 자기중심적 민낯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 ‘슈퍼파워’의 변덕스러운 정책 하나가 철강 도시 포항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지역경제 전체를 4000억 원의 관세 폭탄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힘없는 개인이나 작은 나라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는 관세라는 폭력적 수단을 꺼내 드는 미국의 행보는 우리가 믿고 싶었던 ‘정의로운 슈퍼파워’의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노벨위원회가 베네수엘라의 민주투쟁에 상을 주며 인권과 평화의 원칙을 지켰듯이 국제사회는 강대국이 내세우는 힘의 논리가 아닌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무역 질서를 추구해야 한다. 포항 시민들은 이 노벨상 헤프닝을 보며 “국제사회의 정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힘을 앞세운 강대국의 변덕이 언제까지 우리지역 기업들과 노동자들을 불안에 떨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과 관세 위협은 철강도시 포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남고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0-12

긴 연휴의 명암… 포항 도심 상권에 닥친 ‘역내수 쓰나미’

최대 9일에 달했던 긴 추석 연휴는 포항 지역 경제에 기대했던 ‘대목’ 대신 싸늘한 ‘역내수 효과’를 낳았다.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 등 주요 관광지는 잠시 활기를 띠었으나, 도심의 중심상권까지 확산하지 못했다. 포항 도심의 핵심인 중앙상가는 연휴 내내 거대한 ‘경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듯 황량했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은 연휴 전 일시적인 ‘제수용품 특수’를 누렸을 뿐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소비 절벽에 직면했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장기 휴가를 이용해 해외 여행을 떠났고, 지역 내에서 선순환돼야 할 소비자금은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됐다. 긴 연휴가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소비 유출을 가속화했다. 중앙상가 상인회 A 대표는 “이 긴 연휴는 ‘황금연휴’가 아니라 ‘보릿고개’가 된 셈이다”며 “관광객이 늘어도 도심까지 와서 돈을 쓰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경기도 소비 급감에 한 몫을 했다. 포항은 지금 핵심 산업인 철강 산업이 장기간 위축되면서 지역민의 소득은 감소한 반면 가계 부채는 늘어만 가고 있어 실질적인 구매력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긴 연휴였지만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았던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예년보다 냉랭했던 죽도시장 등 재래시장 경기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명절차례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문화여서 사실상 한가위 특수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여건을 뚫고 경제력이 힘든 서민층의 시민들이 나서 역내 내수를 떠받치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지역 내 소비 기반이 취약해진 국면에서 맞은 추석의 긴 연휴는 ‘휴식과 소비의 양극화’라는 포항 경제의 민낯을 여과없이 속속 드러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 이러한 소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지역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해 마냥 경기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항시와 역내 경제인, 그리고 지역 정치인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포항시의원은 “긴 연휴가 지역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경제인들은 혁신적인 지역 투자와 고용 창출에 나서야 하고, 시와 정치권은 소득 증대와 가계 부채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소비 침체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포항의 모든 주체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공동의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글·사진/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0-09

"포항시, 그래핀 산업 육성 조례 전국 최초 제정···철강 이후 미래 전략산업으로 도약"

포항시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그래핀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9월 포항시의회를 통과한 이 조례는 그래핀 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종합계획 수립, 기업 지원, 연구개발 거점화의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철강산업 이후 포항의 산업 정체성을 바꿀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2차원 물질로, 강철보다 200배 강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는 ‘꿈의 신소재’다. 투명하고 유연하며 열 전도성이 뛰어나 반도체, 배터리, 전자소자, 복합소재, 센서 등 거의 모든 첨단산업에 적용 가능하다. 세계 각국이 그래핀의 상용화를 미래산업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대규모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포항은 이 흐름 속에서 선제적으로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 시는 ‘그래핀산업육성위원회’를 설치하고 산·학·연 협력체계를 마련해 기업 유치와 실증사업을 추진한다. 포스텍과 한동대, 포항테크노파크가 중심이 되어 연구개발과 인력양성, 시험평가 인프라를 연계하는 구조다. 시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그래핀 산업 생태계 매출 1조원, 관련 일자리 3000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항은 이미 소재산업의 기반이 탄탄하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 생태계와 블루밸리국가산단의 2차전지·양극재 기업 집적지가 맞물려 있다. 여기에 그래핀이 결합하면 기존 금속·화학소재와의 융복합이 가능해진다. 철강이 도시의 산업근대를 상징했다면, 그래핀은 미래 지능 소재 도시로 가는 디지털 산업의 교두보다. 기술적 진전도 이어지고 있다. 포항 연구진은 3D 그래핀 폼, 주름 그래핀 등 구조 변형을 통한 전도성 향상 기술을 확보했고, 국내 기업들도 대량생산과 품질균일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포항테크노파크는 그래핀 소재 실증기반 구축사업을 통해 연구소 수준의 기술을 산업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테스트베드와 평가 장비를 확보하고 있다. 실험실의 기술을 기업 현장으로 끌어내는 ‘실증 허브 도시’로의 진화가 시작된 셈이다. 이와 함께 시는 중소기업이 그래핀을 접목한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방형 공동장비와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 철강·기계업체들이 그래핀 복합소재로 전환할 경우, 단순 제조를 넘어 고부가가치 기술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한 지역 중소기업 대표는 “그래핀을 활용하면 경량화·고내열 부품 개발이 가능해 수출 시장의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제도 남아 있다. 그래핀은 물성이 우수하지만 생산 단가가 높고, 품질 제어가 어려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조례가 선언적 수준에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과 장비 인프라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초기 투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제지원, 기술이전 촉진, 전문인력 양성 등 실질적 지원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래핀이 단순한 신소재가 아니라 도시경제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산업 플랫폼 기술’로 본다. 포항공대 김 모 교수는 “그래핀은 반도체, 배터리, 수소산업 등 다양한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기반 소재”라며 “포항이 이를 제도적으로 선점했다는 점에서 향후 기술 실증과 기업 집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주목된다. 포항시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그래핀 산업이 본격화될 경우, 직접고용 3천 명, 간접고용 1만 명 이상의 파급효과가 발생하고, 관련 장비·화학소재·전자부품 산업으로의 기술 확산이 가능하다. 특히 청년층 연구인력의 지역 정착과 창업 활성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핀 산업의 잠재력은 아직 완전한 궤도에 오르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확실하다. 포항의 그래핀 육성조례는 그 가능성을 제도화한 첫 사례로서 지역이 기술혁신의 실험장이자 산업전환의 선도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철강으로 도시의 근대화를 이뤘던 포항이 이제는 그래핀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과거의 ‘단단한 강철’이 포항의 뼈대를 만들었다면, 미래의 ‘투명한 그래핀’은 그 위에 혁신의 신경망을 세울 것이다. 산업의 전환은 결국 준비된 도시에서 일어난다. 포항의 도전은 이미 그 문턱을 넘어섰다. 임창희선임기자/lch8601@kbmaeil.com

2025-10-07

추석장(전통시장) VS 대형유통 - ‘정(情)’과 ‘편리함’ 사이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포항 죽도시장. 대형 장바구니를 든 시민들이 오가지만 예년처럼 활기가 넘치진 않는다. 상인들의 표정에는 명절 특수를 기대하기보다는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수산물 코너에서 문어 한 마리가 1kg당 9만 원을 훌쩍 넘자, 계산대 앞에서 망설이는 손님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전 같으면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지금은 손님이 와도 살지 말지 고민만 하다 그냥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도시장에서 30년째 장사하는 김모(63)씨는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상인 박모(58)씨도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안 좋으니 명절 특수도 옛말입니다. 장사하는 우리 마음만 바쁘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는 특히 차례상 간소화와 제사문화 변화가 전통시장 매출에 또 다른 타격을 줬다. 한국소비자연맹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은 작년보다 평균 8~12% 상승했지만, ‘간소하게 차린다’ 혹은 ‘차례를 생략한다’는 응답이 40%를 넘어섰다. 제사음식 재료를 사러 오는 손님이 줄자, 상인들은 “명절이 점점 평일처럼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전통시장은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좁은 골목과 불편한 주차, 현금 중심의 결제 시스템은 현대 소비자에게 불편하다. 반면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은 ‘한 번의 결제, 빠른 배송’이라는 편리함으로 지역 소비를 빨아들이고 있다. 포항의 홈플러스와 이마트는 연휴 내내 주차장이 만차였고, 온라인몰에서는 선물세트와 간편식 주문이 폭주했다. 소비자 박모(47)씨는 “시장 물건이 싱싱한 건 알지만, 마트는 결제 한 번에 끝나고 배송까지 되니 선택이 쉬워요.”라며 현실적인 이유를 밝혔다. 포항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지역 중소상인 68%가 매출 감소를 체감했다고 답했다. 물가 상승, 경기 둔화, 소비 패턴의 변화가 한꺼번에 전통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항시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올해만 50억 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온누리상품권 10% 할인 지원(약 12억원), 공영주차장 무료 개방(12개 시장 1100면), 시장 환경정비·가스·위생관리 지원(7억원), 시장 환경개선 및 간판 정비 사업(5억원) 등이 있다. 또한 전통시장 내 스마트 결제 시스템 도입(3 원)과 디지털 홍보·예약 포장 서비스 지원(2억원)을 추진해 젊은 세대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죽도시장 일부 점포에서는 간편결제(QR)와 예약 포장제를 도입했고, 떡집은 송편 예약제를 운영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일부 수산물 상가는 시식·체험 공간을 마련해 시장 특유의 체험 요소를 강화하고 있다. 죽도시장 상인회 김모 회장은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만의 재미, 사람 냄새 같은 ‘정(情)’이 살아야 손님이 돌아옵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단기 이벤트보다 시장 체질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동해경제연구소 A 연구위원은 “전통시장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얼굴이자 생활문화의 현장이다. 디지털 결제, 체험·문화 콘텐츠, 예약·포장 서비스 등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올해 추석을 맞아 12개 전통시장에 대해 안전·가스·위생 점검, 문화공연 지원, 상인회 자율정비사업을 병행했다. 그러나 상인들의 체감 효과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정과 편리함이 공존해야 한다. 시장만의 고유 가치와 현대적 편의성을 동시에 제공할 때, 전통시장은 명절 특수를 넘어 연중 지속 가능한 지역 경제의 중심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전통시장의 생존 전략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다. 찾아오게 만드는 매력, 그리고 지역경제와의 상생이 새로운 돌파구다. 디지털 결제, 예약·체험 프로그램, 문화 이벤트와 정책적 지원이 결합될 때, 전통시장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온기와 경제적 활력을 잇는 생활형 명절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다. 전통시장의 체질개선을 요구하는 대목에 힘을 실어본다. /lch8601@kbmaeil.com

2025-10-06

“포항, 글로벌 AI 혁신 전진기지로 우뚝 설까”

포항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철강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 포항에, 이제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붙으려 한다. 대통령실이 지난 2일 밝힌 오픈AI-삼성 협력에 따른 데이터센터 유치 소식은 단순한 개발 뉴스가 아니다. 지역 산업 지형을 바꿀, 어쩌면 포항의 미래 좌표를 바꿀 수 있는 변곡점이다. 데이터센터 규모부터 눈길을 끈다.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1만3000평 부지에 세워질 이 시설은 초기 20MW에서 최대 200MW까지 확장 가능한 초대형급이다. 초기 투자만 3조~4조원. 국내는 물론 글로벌 차원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는 ‘스타게이트’라는 700조원 규모의 세계적 인프라 사업의 일환이니, 포항이 단순 분산지로 선택된 것은 아니다. 삼성SDI가 시행을 맡고, 삼성전자가 AI 반도체와 메모리 역량을 증명할 무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술적·산업적 상징성도 크다. SK가 전남에서 같은 구조로 협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항은 삼성이, 전남은 SK가 각각 책임지는 양축 구도다. 이 자체가 이미 국가 균형발전 차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포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지역 전략산업과 AI 융합이다. 철강과 2차전지, 그래핀 산업까지-이들 산업은 방대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필요로 한다. 고도화된 AI 인프라가 뒷받침되면 공정 혁신, 생산성 향상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 제고로 직결된다. 둘째, 지역 생태계 활성화다. 대학·연구소·스타트업이 밀집한 포항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그 자체로 혁신 클러스터의 허브가 된다. 지역경제 연구원 관계자의 말처럼, “튼튼한 산업 기반에 AI라는 신경망이 더해지면 체질 개선의 속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포항시 역시 이를 ‘AI 철강도시’, ‘스마트 배터리 밸리’라는 전략 브랜드로 연결하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다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력·용수·환경 문제와 직결된다. 200MW 규모라면 소규모 원전 하나에 가까운 전력을 소모한다. 과연 포항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출 수 있을지, 지역 환경에 미칠 파장은 없을지, 앞으로 치열한 검증과 논의가 불가피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의 회동에서 “한국이 세계 모범적 AI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며 포항을 글로벌 혁신 전진기지로 강조했다. 올트먼 CEO 역시 “삼성과의 협력은 특별하다”며 포항을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선언은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다. 실제로 지역의 산업, 대학, 행정, 시민사회가 이 기회를 어떻게 흡수하고 소화하느냐가 진짜 성패를 가를 것이다. 포항은 이미 철강에서 배터리로, 다시 AI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회와 위기가 함께 찾아오는 지금, ‘AI 허브 포항’이라는 새로운 간판이 빛을 발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미완의 과제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준비에 달려 있다. /lch8601@kbmaeil.com

2025-10-03

울릉공항, ‘조류 충돌 위험’ 사실과 달라…진짜 위험은 1200m 활주로

최근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여파는 곧장 다른 신공항 건설 사업으로 번졌다. 울릉도 공항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이 ‘조류 충돌 위험’을 들며 울릉공항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을 알고 있는 울릉도 주민의 눈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적이다. 과연 울릉도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우려 지역일까? 울릉도에 살면서 공항 예정지와 주변 환경을 직접 지켜봤다. 울릉도는 바다 한가운데 솟아난 섬으로 철새도래지와는 거리가 멀다. 과거 독수리와 깍새(슴새), 흑비둘기 등이 무리를 지어 살았으나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흑비둘기는 사동 일대에서 가끔 한두 마리 보일 정도다. 새로 늘어난 조류는 꿩인데, 이들은 높이 날지 않고 바닷가로 내려오지도 않는다. 항공기 충돌 위험과는 거리가 있다. 울릉도에서 조류 충돌 가능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종은 괭이갈매기다. 그러나 이 또한 공항 부지와는 무관하다. 괭이갈매기는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는 습성이 강하다. 실제로 유람선을 타고 관음도 주변을 돌아보면 관광객들이 새우깡으로 괭이갈매기를 불러 모은다. 하지만 일정 구역을 벗어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만큼 영역성이 뚜렷한 새라는 이야기다. 울릉공항 예정지는 울릉도 남서쪽 사동리에, 괭이갈매기 서식지는 북면 관음도 인근에 있다. 직선거리로도 멀고, 산을 사이에 둔 ‘다른 세계’다. 결국 울릉공항을 두고 조류 충돌을 걱정하는 것은 울릉도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의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공항 건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없는 위험을 있는 것처럼 부풀려 개항 전부터 ‘위험 공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건 지역사회에도, 국민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아닐까. 오히려 울릉공항의 진짜 과제는 다른 데 있다. 활주로 길이와 안전 설계다. 현재 1200m로 계획된 활주로는 소형항공기 기준이다. 하지만 향후 80인승 항공기 운항을 고려하면 최소 300m 이상 연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고하는 종단안전구역(RESA)은 180m인데, 울릉공항은 절반인 90m로 설계됐다. 기상이 급변하는 울릉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줄이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추진위원회가 전국적인 서명운동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한 지역 이익 챙기기가 아니다. ‘국민 이동권 보장, 생명과 안전 확보’라는 명분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공항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울릉도는 철새도래지도, 조류 충돌 위험지역도 아니다. 잘못된 정보로 공항 안전 논란을 키우기보다, 활주로 연장과 안전설계 보완이라는 진짜 과제에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한 때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10-02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시정 질문이 되길 바라며

문경시의회가 제287회 임시회에서 37건의 시정 질문을 통해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을 짚어냈다. 축제와 관광, 농업과 환경, 주거와 교통, 복지와 청년정책까지 다양한 주제는 곧 시민들의 일상과 직결되는 문제들이다. 의원들의 질문 속에는 지역을 걱정하는 마음, 그리고 시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남기호 의원은 국가유공자 이야기 기록사업부터 청년 일자리, 영강변 생태 둘레길 조성까지 폭넓은 관심을 드러냈고, 김경환·황제용 의원은 지역 축제와 경제 활성화, 시니어 정책, 재생에너지 등 미래를 향한 의제를 다뤘다. 신성호·서정식·고상범 의원은 교통, 환경, 인구 정책 등 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꼼꼼히 짚었으며, 박춘남·김영숙 의원은 공공임대주택과 공공기관 유치, 개발사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물론 시정 질문은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질문들이 단순한 지적이나 요구에 머무르지 않고, 집행부의 정책으로 이어져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구현되는 것이다. 축제 운영의 효율화가 지역경제의 활력을 불러오고,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젊은 세대와 다자녀 가구의 부담을 덜어주며, 폐기물 처리나 도시가스 보급 문제가 실질적 대책으로 풀려나가는 모습이 바로 시민이 바라는 결과다. 우리는 이번 시정 질문을 통해 의원들이 지역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해결의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집행부 역시 이러한 목소리를 정책으로 수용해 시민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기대한다. 문경의 발전은 혼자서 이룰 수 없다. 의회와 집행부, 그리고 시민이 함께 손을 맞잡을 때 가능하다. 이번 시정 질문이 그 협력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문경이 더 따뜻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9-30

“불법 정치현수막, 시청은 왜 방치하는가”

포항 시내 곳곳을 뒤덮은 정치현수막 문제가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면서 시민 반응이 뜨겁다.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 분노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들은 “시청은 뭘 하고 있었느냐”, “시장출마 예정자만을 위한 도시냐, 시민을 위한 도시냐”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이는 행정의 무기력과 제도의 허점에 관한 집단적 항의표시이기도 하다. 현행법은 정당이나 국회의원 등 일부에만 도로변 현수막 설치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시장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이 거리 곳곳에 무더기 현수막을 내걸었음에도 초기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 시민은 “시청이 눈감아준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작은 홍보물 하나를 걸기 위해서도 까다로운 검인을 받아야 하는 일반시민과 달리 시장출마 예정자들만은 예외처럼 거리 곳곳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시장출마 예정자에게는 열린 하늘이고, 시민에게는 좁은 문”이라는 표현은 이런 불평등을 겨냥한다. 현수막 설치 과정에서의 무질서와 안전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현수막 위치 선점을 둘러싸고 현수막 업자 간 경쟁이 도를 넘었다. 소위 ‘목이 좋은 곳’은 4단 내지 5단으로 현수막을 겹겹이 내걸어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고, 교통사고 위험을 높였다. 포항시와 일선 행정복지센터가 뒤늦게 현수막 철거에 나섰지만, 현수막 업자와 현수막 설치를 주문한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볼썽사나운 일도 빚어졌다. 실제 북구 흥해읍 남송리교차로 등 6개소에서는 읍사무소 직원들이 출동해 장애 현수막을 철거하거나 옮기는 과정에서 현수막 업자와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현수막 철거 과정도 녹록지 않다. 설치업체는 아예 높이 5m가 넘는 곳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나몰라라 떠나버린다. 일선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다리를 타거나 장비를 동원해 철거·수거를 반복한다. ‘설치는 업자가, 책임은 공무원이’라는 기형적 구조가 되풀이되는 셈이다. 이같은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청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일부에서는 “시청이 차기 선거를 의식해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결국 행정이 불법을 방치하면 시민은 합법을 지킬 이유를 잃는다.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대대적인 단속과 함께 ‘시장출마 예정자의 이름값’이 아닌 시민 우선의 거리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력한 행정 의지와 공정한 법 집행이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9-29

울릉공항, 1200m 활주로에 묶인 ‘안전과 수익성의 딜레마’...감사원, 울릉도 주민요구 객관적 증명

울릉도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울릉공항 건설이 속도를 내고 있다. 2027년 완공, 2028년 상반기 개항을 목표로 현재 공정률은 7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차갑다. “여객수요 과다 산정, 활주로 길이 안전 취약, 관리·감독 부실” 세 가지 키워드로 울릉공항 건설사업이 도마에 올렸다. 국토교통부는 울릉공항의 향후 수요를 GDP 성장률을 기준으로 수요가 일정 비율로 증가한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2040년 울릉공항 여객수요를 111만 명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는 과거 해운 여객 추세를 반영, 101만명으로 보다 보수적인 예측을 내놨다. 국토부 수요가 10만 명 과다하게 산정된 셈이다. 여객수요는 공항 건설의 근거이자 명분이다. 이 숫자가 왜곡될 경우, 수천억 원의 예산이 허공으로 흩어질 위험이 있다. 이번 감사원 지적은 국토부의 수요 산정 방식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활주로 길이다. 울릉공항은 당초 50석급 항공기(2C 등급)를 기준으로 설계돼 활주로가 1200m이지만 단거리 항공기 단종 추세와 소형항공운송사업자 수익성을 이유로, 2023년 울릉공항 등급을 80석 급 항공기가 취항 가능한 3C로 상향했다. 하지만 활주로 길이는 그대로 였다. 설계 항공기 두 기종의 최소 이륙거리는 각각 1289m와 1615m. 이미 활주로 길이를 초과한다. 부산항공청은 이 문제를 ‘승객 수와 화물량 제한’으로 보완했다. 하지만 제한 기준 산정 과정에서 구형 모델의 운항중량(1만2800㎏)을 적용해 실제보다 700㎏ 가볍게 잡았다. 그 결과 이륙 가능 승객 수가 최대 7명이나 과다 산정됐다. 더 심각한 건 우천 시 상황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가 젖어 있으면 착륙거리는 15% 늘어난다. 설계 항공기 중 한 기종은 승객이 한 명도 타지 않은 상태에서도 착륙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민간 조종사 20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70%가 “현 활주로 길이에서 운항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고, 95%는 “안전을 위해 활주로 연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전문가의 경고를 외면한 채 ‘1200m 고수’라는 편의적 선택을 한 국토부의 책임이 무겁다. 소형항공기가 울릉공항에 취항하려면 최소 72명의 승객을 태워야 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안전 확보를 위해 탑승 인원이 줄면 항공사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감사원 조사에서 소형항공사 전문경영인 3명 모두가 “72명 이하라면 수익성이 없다”고 답했다. 수익성 없는 공항은 곧 유휴시설로 전락한다. 울릉공항은 단순한 SOC 사업이 아니다. 주민의 이동권 보장, 관광산업 육성, 안보, 그리고 독도와 맞닿은 전략적 상징성까지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진행 방식은 불안하다. 주민들은 이미 활주로 연장 추진위원회를 꾸려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감사원의 지적은 주민들의 우려를 객관적으로 확인해준 셈이다. 이제 남은 건 국토부와 정부의 결단이다. 울릉공항이 진정으로 ‘안전한 하늘길’이 되려면, 활주로 연장과 수요 재 산정이라는 근본적 처방이 더는 미뤄져서는 안 된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