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포항 포은흥해도서관에서 열린 ‘K-국정설명회’에서 던진 화두는 단연 TK통합이었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찬반을 떠나 지역 사회의 구조를 근본부터 흔드는 중대한 의제다.
그 자리에서 김 총리는 “통합 이후 그것이 발전의 길이 될지 여부는 전적으로 주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통합의 성패를 중앙정부가 아닌 주민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셈이다.
TK통합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는 이미 여러 차례 행정통합을 공식 의제로 올렸고, 공동연구용역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특별자치단체 모델까지 검토해왔다.
통합이 현실화될 경우 인구 약 500만 명, GRDP 기준 전국 상위권 규모의 초광역 경제권이 형성된다. 권한과 재정 규모 역시 확대된다.
일부에서는 ‘수도권에 맞설 유일한 비수도권 블록’이라는 기대도 내놓는다.
하지만 숫자와 외형만으로 통합의 정당성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김 총리가 강조했듯 “통합의 의미는 단순히 권한이나 재정이 늘어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통합이 또 하나의 거대 행정조직을 만드는 데 그친다면, 지역 소멸의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
지금 TK가 직면한 현실은 냉혹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경북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청년층 순유출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대구 역시 제조업 침체와 일자리 감소로 성장동력이 약화된 지 오래다.
결국 통합의 본질은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구조의 전환’이어야 한다. 김 총리가 배경으로 제시한 ‘지방주도 성장전환’은 이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서울에 인구·자본·청년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성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진단은 이미 여러 국책연구기관 보고서에서도 반복돼왔다. 수도권 인구 비중은 50%를 넘어섰고, 청년 고용의 질 좋은 일자리 역시 서울·경기 지역에 몰려 있다. 지방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갖추지 못하면 통합 역시 껍데기에 불과하다.
포항을 예로 들면 문제는 더 선명해진다.
포항시는 한때 대한민국 제조업을 상징했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 산업은 지역 경제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탄소중립 흐름, 중국발 공급과잉, 철강 시황 변동성 속에서 구조전환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김 총리가 언급한 것처럼 수소 산업, 2차전지, 반도체, SMR 등 미래 산업과의 결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질문은 더 구체화된다.
TK통합이 포항의 산업전환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가. 통합 광역정부가 들어서면 산업정책의 조정 권한이 커지고, 국비 확보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 예컨대 초광역 교통망, 연구개발 특구,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정 등에서 통합 단위의 전략 수립이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행정 중심이 대구로 쏠릴 경우 경북 동해안권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공존한다.
행정통합은 필연적으로 권한 재배분의 문제를 동반한다. 청사 위치, 의회 구성, 예산 배분 방식, 공공기관 이전 등 민감한 사안이 줄줄이 대기한다. 과거 다른 지역의 광역 통합 논의가 번번이 좌초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합이 ‘균형발전’이 아닌 ‘중심 재편’으로 비쳐질 경우 지역 내부 갈등은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그래서 김 총리의 발언 중 가장 주목할 대목은 “시민의 권한이 더 강해지고, 견제와 균형 속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나는 정치 개혁적 통합으로 가야 한다”는 부분이다. 통합 논의가 행정 효율성이나 예산 규모의 확대에만 머문다면 주민 설득은 쉽지 않다. 주민투표, 공론화위원회, 권역별 자치권 보장 장치 등 구체적 제도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TK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개편이 아니다.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지방이 스스로 생존 방식을 재정의하는 시험대다. 그러나 방향을 잘못 잡으면 또 하나의 거대 담론에 그칠 위험도 있다. 통합 이후 4년, 10년 뒤 청년이 돌아오고 기업이 투자하며 인구 감소세가 완화될 수 있는지, 그 실증적 시나리오를 제시하지 못하면 통합은 구호로 끝난다.
정치권은 통합의 명분을 말하고, 정부는 구조 전환을 강조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부 설계도다. 권한은 어디로, 재정은 어떻게, 산업 전략은 무엇으로 재편할 것인가. 무엇보다 포항과 같은 산업도시가 통합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 축으로 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가.
TK통합은 규모의 정치가 아니라 책임의 정치여야 한다. 권한이 커질수록 책임도 무거워진다.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 청년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지 못한다면 어떤 통합도 성공이라 부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을 위한 통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통합이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