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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보호구역’의 민낯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6-02-26 14:26 게재일 2026-02-2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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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민 기자.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 시후 같은 아이가 다시는 나오지 않게만 해주세요”

아들의 빈방에 남겨진 새 중학교 교복을 붙잡고 아버지는 절규했다. 입학을 앞둔 열세 살 오시후 군은 자전거를 타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포항 북구 이인로의 사고 현장은 거대한 ‘안전의 착시’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바닥은 선명한 붉은색이었고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노란 글씨는 이곳이 튼튼한 울타리임을 약속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기만이었다. 지자체가 붉은 페인트만 칠해놓고 법적 지정 고시를 미루는 사이, 아이들은 이곳을 완벽한 보호막이라 믿었다. 

반면 운전자들은 단속 카메라 없는 허점을 노려 가속 페달을 밟았다. 아이들에겐 ‘안심’을, 운전자에겐 ‘방심’을 심어준 행정의 치명적 엇박자가 소년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행정이 판을 깐 함정”이라 일갈했다.

비극의 이면에는 어른들의 추악한 이기심이 도사렸다. 사고 지점에 안전 펜스가 없었던 이유는 인근 상가들의 ‘주차 편의’ 민원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생명줄보다 상권 이익이 우선순위였다. 

도로를 성벽처럼 에워싼 불법 주정차 차량들은 소년을 차도 중앙 벼랑 끝으로 등 떠밀었다. 여기에 카메라 설치비 3000만 원을 추경 절차 뒤로 밀어낸 지자체의 인색함이 소년의 마지막 탈출구마저 봉쇄했다.

포항시의 해명은 관료주의의 전형적인 알리바이였다. “준공 전이라 관리권이 없었다”, “인사 이동 후 업무 파악 중이었다”는 변명은 직무 유기를 감추려는 얄팍한 수사에 불과하다. 

차들이 질주하는데 ‘서류상 준공’을 핑계로 현장을 방치하는 행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불이 났는데 소화전 사용을 준공 허가 뒤로 미루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 나태함의 대가는 가혹하다. 사고 후에도 행정 착오는 반복돼 보호구역 지정은 개교 이후인 4월로 밀렸다. 내달 문을 여는 초등생들은 최소 한 달간 ‘법적 보호막’ 없는 위태로운 등굣길을 걸어야 한다. 화려한 포장지만 씌우고 안전의 본질은 빼버린 비겁한 행정이 오늘도 아이들을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무늬만 보호구역’은 방패가 아닌 아이들을 도로 위로 유인하는 흉기였다. 국가는 실재하는 위험 앞에 절차라는 장막을 치고 책임을 유예했다. 서류를 앞세운 관료주의가 소년의 마지막 안전판마저 걷어찬 셈이다. 비극은 되풀이되고 행정은 면피에 급급하다. 도대체 아이들의 죽음이 몇 번이나 더 반복돼야 이 ‘서류상의 안전’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질 것인가.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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