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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 운항을 멈추면 울릉도 주민 삶도 멈춘다···'고립의 바다'는 국가 책임

겨울바다가 열리면 울릉도는 다시 고립된 섬이 된다. 포항·강릉·묵호와 울릉도를 연결하는 배들이 하나 둘 멈춰 섰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 올해도 이런 현상은 재현되고 있다. 대저건설의 ‘썬라이즈호’가 11월 9일부터 무기한 휴항에 들어가고, 강릉·묵호 노선도 11월 초부터 내년 3월까지 중단된다. 여기에다 울릉크루즈마저 12월 8일부터 15~20일간 정기검사로 멈추면 울릉도는 사실상 육지와 완전히 단절된다. 주민들이 말하는 “단절의 두려움”은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주민 김모씨는 “삭풍 몰아치는 울릉도에서의 겨울살이는 정말 힘든데 특히 이때 많이 아프면 정말 절단“이라고 말했다. 배는 이미 끊겨 있는데다 응급환자를 수송할 헬기도 날씨가 궂으면 뜨지 못해목숨이 위태롭게 된다며 걱정했다. 기존 엘도라도호에 이어 썬라이즈호까지 멈춘 대저건설의 결정은 기업의 책임 의식을 의심케 한다. ‘임대 종료’, ‘정비 불가’라는 명분 뒤에는 주민의 절박함을 외면한 경영 논리가 자리한다. 기업은 효율을 따질 수 있다. 하지만 공공항로를 운영하는 순간 그것은 공익의 영역이다. 그들의 배가 멈추는 것은 곧 울릉도 주민의 삶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정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양수산부는 여객선 공영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은 지난 수년 동안 반복돼 왔다. 법제화는 더디고, 제도적 장치는 허술하다. 예비선 확보는 의무가 아니며, 대체 운항은 선사의 ‘선의’에 맡겨져 있다. 최근 2년 간 전국 도서 지역에서 여객선 운항이 끊긴 사례는 33건, 누적 405일에 이른다. 섬 교통의 단절은 단순한 교통 문제가 아니다. 뱃길이 끊기면 관광객도 사라지고, 그것은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이 상황에서 ‘울릉도 관광 활성화’라거나 ‘독도 수호의 전초기지’라는 구호는 공허하다. 관광 비수기를 이유로 선사들이 운항을 줄이고 휴항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노선의 운항 중단을 경제 논리로만 판단하도록 방치한 것은 정부의 무책임이다. 수지타산만 따지는 민간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적자 보전과 긴급운항을 보장해야 한다. 섬의 교통권은 시장의 논리가 아니라 공공의 의지로 지켜야 한다. 정부는 긴급 운항비 지원제, 예비선 확보 의무화, 대체운항 책임제 등을 법으로 정비해야 한다. ‘공영제’라는 이름만 붙은 제도로는 섬의 겨울을 견딜 수 없다. 울릉도의 겨울 바다는 늘 험했지만, 올해의 바다는 유난히 거칠어 질 것 같다. 정부와 해운사, 그리고 울릉을 관할하는 경북도지사와 울릉군수 모두가 이를 직시해야 한다.

2025-10-21

‘경산대추축제’가 남긴 것

세상의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혹 ‘미완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이 미완성도 하나의 끝과 시작은 분명하다. 시작과 끝은 서로 보완의 관계로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고, 끝이 좋다면 시작에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경산시는 ‘제14회 경산대추축제 & 농산물 한마당’을, 청도군도 ‘2025 청도반시축제와 2025 COAFE 청도 세계코미디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 축제의 평가는 선명하게 나누어진다. 어쩌면 그 결과는 이미 시작부터 예측할 수 있었다. 청도의 축제는 10월에 접어들며 분위기 띄우기에 돌입했지만, 대추 축제는14일 오후에 기자에게 보도자료가 전달되는 등 개최 의지를 의심하게 했다. 지역의 축제 목적은 분명하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나 농특산품을 널리 알리며 지역민과 방문객들이 다 함께 즐기며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먼저 호응이 이어진 청도의 축제장에는 개막부터 끝날까지 어린아이의 손을 잡거나 유모차에 어린이를 태운 젊은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붐볐다. 즐길 거리와 먹거리도 넘쳤고, 풋풋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경산의 축제장에는 나이가 지긋한 지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방문객들도 “보고 즐길 것이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비가 내린 지난 토요일에는 더욱 선명하게 축제장의 모습이 갈렸다. 날씨는 엇비슷했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던 대추축제장과는 반대로 반시축제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아 축제를 즐겼다. 축제 구성도 한쪽은 특산품 판매에만 열을 올렸고, 다른 한쪽은 축제를 느끼며 지역의 특산품을 스스로 구매하도록 짜여진 모습이었다. 결실의 가을이 깊어가면서 도내에 각종 축제가 잇따르고 있다. 저마다 특성을 자랑한다. 다들 남다른 열정으로 준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물론 축제에서 행사장을 찾은 사람 수도 중요하다. 하지만 준비와 진행 과정의 최선,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진정성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다녀보면 감으로 알 수 있다. 축제의 개막식과 폐막식에 부른 초대 가수가 누군가로 급을 메기는 것이 아닌 축제장을 찾은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 먹거리의 다양성으로 웃음을 선물하는 것이 진정성이다. 청도의 올 반시축제는 다음 축제가 기다려지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반면 대추축제는 그러하지 못했다. 시간만 지나가면 되는 마친다는 그런 행사로 다가왔다. 다음 제15회 경산대추축제는 철저한 사전 준비로 시작부터 끝까지 방문객을 위한 축제로, 대추 생산 농가만을 위한 축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5-10-20

포항 중앙상가, ‘페니 전략’ 늪 끊고 ‘로컬 콘텐츠 혁명’ 일으켜야

포항 중앙상가는 지금 구조적 붕괴의 벼랑 끝에 서 있다. 일시적 불황이 아니라 대형 유통자본의 ‘페니 전략(푼돈 잠식)’이 상권의 뿌리를 흔들고, 고질적인 주차난과 지방소멸의 흐름이 겹치며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수년간 도시재생 사업에 1500억 원 이상이 투입됐지만, 상점 매출과 공실률 개선은 거의 제자리다. 도심재생 뉴딜 사업(1442억 원), 문화예술팩토리(58억 원), 주차장 확충(71억 원), 청년플랫폼(27억 원), 야시장(10억 원) 등 굵직한 사업들이 이어졌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깔끔한 거리와 조형물이 만들어졌어도 접근성, 주차 인프라, 콘텐츠 부재는 그대로 남았다. 중앙상가 상인협의회 관계자는 “도심재생 사업에 수천억 원을 쏟아붓고도 상권은 더 썰렁해졌다. 누가 책임지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문제의 핵심은 접근성이다. 소비의 첫 기준이 ‘편리함’인 시대에 주차와 교통이 불편한 중앙상가는 고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한다. 공영주차장은 멀고 실시간 안내 시스템도 없다. 정작 예산은 조형물과 전시성 사업에 집중됐다. 성과 평가나 사후 관리도 부실하다. 한 상인은 “시설만 지어놓고 손 떼는 행정이 문제에요. 주차장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놓고 무슨 재생입니까”고 반문했다. 경주 황리단길은 적은 예산으로 ‘로컬 콘텐츠 혁명’에 성공했다. 전통 한옥거리와 개성 있는 상점이 어우러져 역 정체성을 살리면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접근성 개선과 콘텐츠의 힘으로 도시재생의 정석을 보여준 셈이다. 그와 반대로 포항 중앙상가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리’에 머물러 있다. 전문가들은 중앙상가 재생의 해법을 ‘로컬 콘텐츠’와 ‘접근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도시계획 전공교수는 “도심 활성화는 조형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콘텐츠에서 시작된다”며 “주차와 교통망,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앙상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인근 유휴 부지를 활용한 주차타워 조성, 대중교통과의 연계 강화, ‘차 없는 거리’가 아니라 ‘차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걷기 좋은 거리’로의 개념 전환이 필수다. 빈 상가는 청년창업·공유공간·로컬숍으로 전환하고, 상인 공동체가 주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임대료 상생 협약도 병행돼야 한다. 포항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상인들이 주체가 돼야 합니다. 행정이 끌고 가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상권 부활의 열쇠는 상인 공동체와 행정의 정밀한 협업, 그리고 포항만의 콘텐츠 개발에 달려 있다. /lch8601@kbmaeil.com

2025-10-15

트럼프 ‘노벨상 불발’과 철강 도시의 그림자

지난 10일 마침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됐지만, 그 명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없었다. 트럼프는 상을 못 받자 “미국 모욕”이라며 노르웨이 등에 관세 보복까지 시사하며 노골적인 협박을 일삼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힘의 논리를 거부하고 베네수엘라의 민주화 투사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선택하며 평화의 근본적 가치를 역설했다. 이 국제적 헤프닝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포항의 현실과 뼈아프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명예욕을 채우기 위해 ‘관세’라는 보복 카드를 꺼내 드는 모습은 포항의 경제를 지탱하는 철강 산업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포항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철강 산업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한국산 철강 제품에 고율의 관세 폭탄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포항을 비롯한 국내 철강 업계에 수출 감소 등 막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미국이 2025년 6월 철강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50%로 두 배 인상하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올해 한해 동안 미국에 내야 할 관세 추산액은 무려 4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가 노벨상 불발에 관세 보복을 위협하는 행태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언제든 국제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슈퍼파워의 자기중심적 민낯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이 ‘슈퍼파워’의 변덕스러운 정책 하나가 철강 도시 포항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지역경제 전체를 4000억 원의 관세 폭탄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힘없는 개인이나 작은 나라에게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때는 관세라는 폭력적 수단을 꺼내 드는 미국의 행보는 우리가 믿고 싶었던 ‘정의로운 슈퍼파워’의 이미지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노벨위원회가 베네수엘라의 민주투쟁에 상을 주며 인권과 평화의 원칙을 지켰듯이 국제사회는 강대국이 내세우는 힘의 논리가 아닌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무역 질서를 추구해야 한다. 포항 시민들은 이 노벨상 헤프닝을 보며 “국제사회의 정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힘을 앞세운 강대국의 변덕이 언제까지 우리지역 기업들과 노동자들을 불안에 떨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트럼프의 노벨상 집착과 관세 위협은 철강도시 포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남고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0-12

긴 연휴의 명암… 포항 도심 상권에 닥친 ‘역내수 쓰나미’

최대 9일에 달했던 긴 추석 연휴는 포항 지역 경제에 기대했던 ‘대목’ 대신 싸늘한 ‘역내수 효과’를 낳았다.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 등 주요 관광지는 잠시 활기를 띠었으나, 도심의 중심상권까지 확산하지 못했다. 포항 도심의 핵심인 중앙상가는 연휴 내내 거대한 ‘경제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듯 황량했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은 연휴 전 일시적인 ‘제수용품 특수’를 누렸을 뿐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소비 절벽에 직면했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장기 휴가를 이용해 해외 여행을 떠났고, 지역 내에서 선순환돼야 할 소비자금은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됐다. 긴 연휴가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소비 유출을 가속화했다. 중앙상가 상인회 A 대표는 “이 긴 연휴는 ‘황금연휴’가 아니라 ‘보릿고개’가 된 셈이다”며 “관광객이 늘어도 도심까지 와서 돈을 쓰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경기도 소비 급감에 한 몫을 했다. 포항은 지금 핵심 산업인 철강 산업이 장기간 위축되면서 지역민의 소득은 감소한 반면 가계 부채는 늘어만 가고 있어 실질적인 구매력도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긴 연휴였지만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았던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예년보다 냉랭했던 죽도시장 등 재래시장 경기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명절차례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문화여서 사실상 한가위 특수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여건을 뚫고 경제력이 힘든 서민층의 시민들이 나서 역내 내수를 떠받치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지역 내 소비 기반이 취약해진 국면에서 맞은 추석의 긴 연휴는 ‘휴식과 소비의 양극화’라는 포항 경제의 민낯을 여과없이 속속 드러냈다.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앞으로 이러한 소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지역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해 마냥 경기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항시와 역내 경제인, 그리고 지역 정치인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포항시의원은 “긴 연휴가 지역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경제인들은 혁신적인 지역 투자와 고용 창출에 나서야 하고, 시와 정치권은 소득 증대와 가계 부채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소비 침체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포항의 모든 주체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공동의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글·사진/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10-09

"포항시, 그래핀 산업 육성 조례 전국 최초 제정···철강 이후 미래 전략산업으로 도약"

포항시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그래핀 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 9월 포항시의회를 통과한 이 조례는 그래핀 산업을 미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종합계획 수립, 기업 지원, 연구개발 거점화의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철강산업 이후 포항의 산업 정체성을 바꿀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2차원 물질로, 강철보다 200배 강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는 ‘꿈의 신소재’다. 투명하고 유연하며 열 전도성이 뛰어나 반도체, 배터리, 전자소자, 복합소재, 센서 등 거의 모든 첨단산업에 적용 가능하다. 세계 각국이 그래핀의 상용화를 미래산업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대규모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포항은 이 흐름 속에서 선제적으로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 시는 ‘그래핀산업육성위원회’를 설치하고 산·학·연 협력체계를 마련해 기업 유치와 실증사업을 추진한다. 포스텍과 한동대, 포항테크노파크가 중심이 되어 연구개발과 인력양성, 시험평가 인프라를 연계하는 구조다. 시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그래핀 산업 생태계 매출 1조원, 관련 일자리 3000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항은 이미 소재산업의 기반이 탄탄하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철강 생태계와 블루밸리국가산단의 2차전지·양극재 기업 집적지가 맞물려 있다. 여기에 그래핀이 결합하면 기존 금속·화학소재와의 융복합이 가능해진다. 철강이 도시의 산업근대를 상징했다면, 그래핀은 미래 지능 소재 도시로 가는 디지털 산업의 교두보다. 기술적 진전도 이어지고 있다. 포항 연구진은 3D 그래핀 폼, 주름 그래핀 등 구조 변형을 통한 전도성 향상 기술을 확보했고, 국내 기업들도 대량생산과 품질균일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포항테크노파크는 그래핀 소재 실증기반 구축사업을 통해 연구소 수준의 기술을 산업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테스트베드와 평가 장비를 확보하고 있다. 실험실의 기술을 기업 현장으로 끌어내는 ‘실증 허브 도시’로의 진화가 시작된 셈이다. 이와 함께 시는 중소기업이 그래핀을 접목한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방형 공동장비와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 철강·기계업체들이 그래핀 복합소재로 전환할 경우, 단순 제조를 넘어 고부가가치 기술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한 지역 중소기업 대표는 “그래핀을 활용하면 경량화·고내열 부품 개발이 가능해 수출 시장의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제도 남아 있다. 그래핀은 물성이 우수하지만 생산 단가가 높고, 품질 제어가 어려워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조례가 선언적 수준에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과 장비 인프라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초기 투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제지원, 기술이전 촉진, 전문인력 양성 등 실질적 지원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래핀이 단순한 신소재가 아니라 도시경제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산업 플랫폼 기술’로 본다. 포항공대 김 모 교수는 “그래핀은 반도체, 배터리, 수소산업 등 다양한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기반 소재”라며 “포항이 이를 제도적으로 선점했다는 점에서 향후 기술 실증과 기업 집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주목된다. 포항시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그래핀 산업이 본격화될 경우, 직접고용 3천 명, 간접고용 1만 명 이상의 파급효과가 발생하고, 관련 장비·화학소재·전자부품 산업으로의 기술 확산이 가능하다. 특히 청년층 연구인력의 지역 정착과 창업 활성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핀 산업의 잠재력은 아직 완전한 궤도에 오르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확실하다. 포항의 그래핀 육성조례는 그 가능성을 제도화한 첫 사례로서 지역이 기술혁신의 실험장이자 산업전환의 선도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철강으로 도시의 근대화를 이뤘던 포항이 이제는 그래핀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과거의 ‘단단한 강철’이 포항의 뼈대를 만들었다면, 미래의 ‘투명한 그래핀’은 그 위에 혁신의 신경망을 세울 것이다. 산업의 전환은 결국 준비된 도시에서 일어난다. 포항의 도전은 이미 그 문턱을 넘어섰다. 임창희선임기자/lch8601@kbmaeil.com

2025-10-07

추석장(전통시장) VS 대형유통 - ‘정(情)’과 ‘편리함’ 사이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포항 죽도시장. 대형 장바구니를 든 시민들이 오가지만 예년처럼 활기가 넘치진 않는다. 상인들의 표정에는 명절 특수를 기대하기보다는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수산물 코너에서 문어 한 마리가 1kg당 9만 원을 훌쩍 넘자, 계산대 앞에서 망설이는 손님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전 같으면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지금은 손님이 와도 살지 말지 고민만 하다 그냥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도시장에서 30년째 장사하는 김모(63)씨는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상인 박모(58)씨도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안 좋으니 명절 특수도 옛말입니다. 장사하는 우리 마음만 바쁘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는 특히 차례상 간소화와 제사문화 변화가 전통시장 매출에 또 다른 타격을 줬다. 한국소비자연맹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은 작년보다 평균 8~12% 상승했지만, ‘간소하게 차린다’ 혹은 ‘차례를 생략한다’는 응답이 40%를 넘어섰다. 제사음식 재료를 사러 오는 손님이 줄자, 상인들은 “명절이 점점 평일처럼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전통시장은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좁은 골목과 불편한 주차, 현금 중심의 결제 시스템은 현대 소비자에게 불편하다. 반면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은 ‘한 번의 결제, 빠른 배송’이라는 편리함으로 지역 소비를 빨아들이고 있다. 포항의 홈플러스와 이마트는 연휴 내내 주차장이 만차였고, 온라인몰에서는 선물세트와 간편식 주문이 폭주했다. 소비자 박모(47)씨는 “시장 물건이 싱싱한 건 알지만, 마트는 결제 한 번에 끝나고 배송까지 되니 선택이 쉬워요.”라며 현실적인 이유를 밝혔다. 포항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지역 중소상인 68%가 매출 감소를 체감했다고 답했다. 물가 상승, 경기 둔화, 소비 패턴의 변화가 한꺼번에 전통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항시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올해만 50억 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온누리상품권 10% 할인 지원(약 12억원), 공영주차장 무료 개방(12개 시장 1100면), 시장 환경정비·가스·위생관리 지원(7억원), 시장 환경개선 및 간판 정비 사업(5억원) 등이 있다. 또한 전통시장 내 스마트 결제 시스템 도입(3 원)과 디지털 홍보·예약 포장 서비스 지원(2억원)을 추진해 젊은 세대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죽도시장 일부 점포에서는 간편결제(QR)와 예약 포장제를 도입했고, 떡집은 송편 예약제를 운영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일부 수산물 상가는 시식·체험 공간을 마련해 시장 특유의 체험 요소를 강화하고 있다. 죽도시장 상인회 김모 회장은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만의 재미, 사람 냄새 같은 ‘정(情)’이 살아야 손님이 돌아옵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단기 이벤트보다 시장 체질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동해경제연구소 A 연구위원은 “전통시장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얼굴이자 생활문화의 현장이다. 디지털 결제, 체험·문화 콘텐츠, 예약·포장 서비스 등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올해 추석을 맞아 12개 전통시장에 대해 안전·가스·위생 점검, 문화공연 지원, 상인회 자율정비사업을 병행했다. 그러나 상인들의 체감 효과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정과 편리함이 공존해야 한다. 시장만의 고유 가치와 현대적 편의성을 동시에 제공할 때, 전통시장은 명절 특수를 넘어 연중 지속 가능한 지역 경제의 중심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전통시장의 생존 전략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다. 찾아오게 만드는 매력, 그리고 지역경제와의 상생이 새로운 돌파구다. 디지털 결제, 예약·체험 프로그램, 문화 이벤트와 정책적 지원이 결합될 때, 전통시장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온기와 경제적 활력을 잇는 생활형 명절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다. 전통시장의 체질개선을 요구하는 대목에 힘을 실어본다. /lch8601@kbmaeil.com

2025-10-06

“포항, 글로벌 AI 혁신 전진기지로 우뚝 설까”

포항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철강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 포항에, 이제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붙으려 한다. 대통령실이 지난 2일 밝힌 오픈AI-삼성 협력에 따른 데이터센터 유치 소식은 단순한 개발 뉴스가 아니다. 지역 산업 지형을 바꿀, 어쩌면 포항의 미래 좌표를 바꿀 수 있는 변곡점이다. 데이터센터 규모부터 눈길을 끈다.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1만3000평 부지에 세워질 이 시설은 초기 20MW에서 최대 200MW까지 확장 가능한 초대형급이다. 초기 투자만 3조~4조원. 국내는 물론 글로벌 차원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번 프로젝트는 ‘스타게이트’라는 700조원 규모의 세계적 인프라 사업의 일환이니, 포항이 단순 분산지로 선택된 것은 아니다. 삼성SDI가 시행을 맡고, 삼성전자가 AI 반도체와 메모리 역량을 증명할 무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기술적·산업적 상징성도 크다. SK가 전남에서 같은 구조로 협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항은 삼성이, 전남은 SK가 각각 책임지는 양축 구도다. 이 자체가 이미 국가 균형발전 차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포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지역 전략산업과 AI 융합이다. 철강과 2차전지, 그래핀 산업까지-이들 산업은 방대한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필요로 한다. 고도화된 AI 인프라가 뒷받침되면 공정 혁신, 생산성 향상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 제고로 직결된다. 둘째, 지역 생태계 활성화다. 대학·연구소·스타트업이 밀집한 포항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그 자체로 혁신 클러스터의 허브가 된다. 지역경제 연구원 관계자의 말처럼, “튼튼한 산업 기반에 AI라는 신경망이 더해지면 체질 개선의 속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포항시 역시 이를 ‘AI 철강도시’, ‘스마트 배터리 밸리’라는 전략 브랜드로 연결하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다만,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있다. 데이터센터는 전력·용수·환경 문제와 직결된다. 200MW 규모라면 소규모 원전 하나에 가까운 전력을 소모한다. 과연 포항이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출 수 있을지, 지역 환경에 미칠 파장은 없을지, 앞으로 치열한 검증과 논의가 불가피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의 회동에서 “한국이 세계 모범적 AI 테스트베드가 될 것”이라며 포항을 글로벌 혁신 전진기지로 강조했다. 올트먼 CEO 역시 “삼성과의 협력은 특별하다”며 포항을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선언은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다. 실제로 지역의 산업, 대학, 행정, 시민사회가 이 기회를 어떻게 흡수하고 소화하느냐가 진짜 성패를 가를 것이다. 포항은 이미 철강에서 배터리로, 다시 AI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회와 위기가 함께 찾아오는 지금, ‘AI 허브 포항’이라는 새로운 간판이 빛을 발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미완의 과제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준비에 달려 있다. /lch8601@kbmaeil.com

2025-10-03

울릉공항, ‘조류 충돌 위험’ 사실과 달라…진짜 위험은 1200m 활주로

최근 새만금국제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여파는 곧장 다른 신공항 건설 사업으로 번졌다. 울릉도 공항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이 ‘조류 충돌 위험’을 들며 울릉공항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을 알고 있는 울릉도 주민의 눈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적이다. 과연 울릉도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우려 지역일까? 울릉도에 살면서 공항 예정지와 주변 환경을 직접 지켜봤다. 울릉도는 바다 한가운데 솟아난 섬으로 철새도래지와는 거리가 멀다. 과거 독수리와 깍새(슴새), 흑비둘기 등이 무리를 지어 살았으나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흑비둘기는 사동 일대에서 가끔 한두 마리 보일 정도다. 새로 늘어난 조류는 꿩인데, 이들은 높이 날지 않고 바닷가로 내려오지도 않는다. 항공기 충돌 위험과는 거리가 있다. 울릉도에서 조류 충돌 가능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종은 괭이갈매기다. 그러나 이 또한 공항 부지와는 무관하다. 괭이갈매기는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는 습성이 강하다. 실제로 유람선을 타고 관음도 주변을 돌아보면 관광객들이 새우깡으로 괭이갈매기를 불러 모은다. 하지만 일정 구역을 벗어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만큼 영역성이 뚜렷한 새라는 이야기다. 울릉공항 예정지는 울릉도 남서쪽 사동리에, 괭이갈매기 서식지는 북면 관음도 인근에 있다. 직선거리로도 멀고, 산을 사이에 둔 ‘다른 세계’다. 결국 울릉공항을 두고 조류 충돌을 걱정하는 것은 울릉도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의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공항 건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없는 위험을 있는 것처럼 부풀려 개항 전부터 ‘위험 공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건 지역사회에도, 국민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아닐까. 오히려 울릉공항의 진짜 과제는 다른 데 있다. 활주로 길이와 안전 설계다. 현재 1200m로 계획된 활주로는 소형항공기 기준이다. 하지만 향후 80인승 항공기 운항을 고려하면 최소 300m 이상 연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고하는 종단안전구역(RESA)은 180m인데, 울릉공항은 절반인 90m로 설계됐다. 기상이 급변하는 울릉도의 특성을 고려할 때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줄이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추진위원회가 전국적인 서명운동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한 지역 이익 챙기기가 아니다. ‘국민 이동권 보장, 생명과 안전 확보’라는 명분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공항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울릉도는 철새도래지도, 조류 충돌 위험지역도 아니다. 잘못된 정보로 공항 안전 논란을 키우기보다, 활주로 연장과 안전설계 보완이라는 진짜 과제에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한 때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10-02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시정 질문이 되길 바라며

문경시의회가 제287회 임시회에서 37건의 시정 질문을 통해 지역의 크고 작은 현안을 짚어냈다. 축제와 관광, 농업과 환경, 주거와 교통, 복지와 청년정책까지 다양한 주제는 곧 시민들의 일상과 직결되는 문제들이다. 의원들의 질문 속에는 지역을 걱정하는 마음, 그리고 시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남기호 의원은 국가유공자 이야기 기록사업부터 청년 일자리, 영강변 생태 둘레길 조성까지 폭넓은 관심을 드러냈고, 김경환·황제용 의원은 지역 축제와 경제 활성화, 시니어 정책, 재생에너지 등 미래를 향한 의제를 다뤘다. 신성호·서정식·고상범 의원은 교통, 환경, 인구 정책 등 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꼼꼼히 짚었으며, 박춘남·김영숙 의원은 공공임대주택과 공공기관 유치, 개발사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물론 시정 질문은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질문들이 단순한 지적이나 요구에 머무르지 않고, 집행부의 정책으로 이어져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구현되는 것이다. 축제 운영의 효율화가 지역경제의 활력을 불러오고,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젊은 세대와 다자녀 가구의 부담을 덜어주며, 폐기물 처리나 도시가스 보급 문제가 실질적 대책으로 풀려나가는 모습이 바로 시민이 바라는 결과다. 우리는 이번 시정 질문을 통해 의원들이 지역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해결의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집행부 역시 이러한 목소리를 정책으로 수용해 시민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음을 기대한다. 문경의 발전은 혼자서 이룰 수 없다. 의회와 집행부, 그리고 시민이 함께 손을 맞잡을 때 가능하다. 이번 시정 질문이 그 협력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문경이 더 따뜻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9-30

“불법 정치현수막, 시청은 왜 방치하는가”

포항 시내 곳곳을 뒤덮은 정치현수막 문제가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면서 시민 반응이 뜨겁다.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 분노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들은 “시청은 뭘 하고 있었느냐”, “시장출마 예정자만을 위한 도시냐, 시민을 위한 도시냐”는 쓴소리가 이어졌다. 이는 행정의 무기력과 제도의 허점에 관한 집단적 항의표시이기도 하다. 현행법은 정당이나 국회의원 등 일부에만 도로변 현수막 설치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시장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이 거리 곳곳에 무더기 현수막을 내걸었음에도 초기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 시민은 “시청이 눈감아준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작은 홍보물 하나를 걸기 위해서도 까다로운 검인을 받아야 하는 일반시민과 달리 시장출마 예정자들만은 예외처럼 거리 곳곳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시장출마 예정자에게는 열린 하늘이고, 시민에게는 좁은 문”이라는 표현은 이런 불평등을 겨냥한다. 현수막 설치 과정에서의 무질서와 안전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현수막 위치 선점을 둘러싸고 현수막 업자 간 경쟁이 도를 넘었다. 소위 ‘목이 좋은 곳’은 4단 내지 5단으로 현수막을 겹겹이 내걸어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고, 교통사고 위험을 높였다. 포항시와 일선 행정복지센터가 뒤늦게 현수막 철거에 나섰지만, 현수막 업자와 현수막 설치를 주문한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볼썽사나운 일도 빚어졌다. 실제 북구 흥해읍 남송리교차로 등 6개소에서는 읍사무소 직원들이 출동해 장애 현수막을 철거하거나 옮기는 과정에서 현수막 업자와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현수막 철거 과정도 녹록지 않다. 설치업체는 아예 높이 5m가 넘는 곳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나몰라라 떠나버린다. 일선 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다리를 타거나 장비를 동원해 철거·수거를 반복한다. ‘설치는 업자가, 책임은 공무원이’라는 기형적 구조가 되풀이되는 셈이다. 이같은 여러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청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일부에서는 “시청이 차기 선거를 의식해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결국 행정이 불법을 방치하면 시민은 합법을 지킬 이유를 잃는다. 시민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대대적인 단속과 함께 ‘시장출마 예정자의 이름값’이 아닌 시민 우선의 거리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강력한 행정 의지와 공정한 법 집행이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9-29

울릉공항, 1200m 활주로에 묶인 ‘안전과 수익성의 딜레마’...감사원, 울릉도 주민요구 객관적 증명

울릉도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인 울릉공항 건설이 속도를 내고 있다. 2027년 완공, 2028년 상반기 개항을 목표로 현재 공정률은 7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차갑다. “여객수요 과다 산정, 활주로 길이 안전 취약, 관리·감독 부실” 세 가지 키워드로 울릉공항 건설사업이 도마에 올렸다. 국토교통부는 울릉공항의 향후 수요를 GDP 성장률을 기준으로 수요가 일정 비율로 증가한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2040년 울릉공항 여객수요를 111만 명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는 과거 해운 여객 추세를 반영, 101만명으로 보다 보수적인 예측을 내놨다. 국토부 수요가 10만 명 과다하게 산정된 셈이다. 여객수요는 공항 건설의 근거이자 명분이다. 이 숫자가 왜곡될 경우, 수천억 원의 예산이 허공으로 흩어질 위험이 있다. 이번 감사원 지적은 국토부의 수요 산정 방식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활주로 길이다. 울릉공항은 당초 50석급 항공기(2C 등급)를 기준으로 설계돼 활주로가 1200m이지만 단거리 항공기 단종 추세와 소형항공운송사업자 수익성을 이유로, 2023년 울릉공항 등급을 80석 급 항공기가 취항 가능한 3C로 상향했다. 하지만 활주로 길이는 그대로 였다. 설계 항공기 두 기종의 최소 이륙거리는 각각 1289m와 1615m. 이미 활주로 길이를 초과한다. 부산항공청은 이 문제를 ‘승객 수와 화물량 제한’으로 보완했다. 하지만 제한 기준 산정 과정에서 구형 모델의 운항중량(1만2800㎏)을 적용해 실제보다 700㎏ 가볍게 잡았다. 그 결과 이륙 가능 승객 수가 최대 7명이나 과다 산정됐다. 더 심각한 건 우천 시 상황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 기준에 따르면 활주로가 젖어 있으면 착륙거리는 15% 늘어난다. 설계 항공기 중 한 기종은 승객이 한 명도 타지 않은 상태에서도 착륙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민간 조종사 20명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70%가 “현 활주로 길이에서 운항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고, 95%는 “안전을 위해 활주로 연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전문가의 경고를 외면한 채 ‘1200m 고수’라는 편의적 선택을 한 국토부의 책임이 무겁다. 소형항공기가 울릉공항에 취항하려면 최소 72명의 승객을 태워야 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안전 확보를 위해 탑승 인원이 줄면 항공사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감사원 조사에서 소형항공사 전문경영인 3명 모두가 “72명 이하라면 수익성이 없다”고 답했다. 수익성 없는 공항은 곧 유휴시설로 전락한다. 울릉공항은 단순한 SOC 사업이 아니다. 주민의 이동권 보장, 관광산업 육성, 안보, 그리고 독도와 맞닿은 전략적 상징성까지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진행 방식은 불안하다. 주민들은 이미 활주로 연장 추진위원회를 꾸려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감사원의 지적은 주민들의 우려를 객관적으로 확인해준 셈이다. 이제 남은 건 국토부와 정부의 결단이다. 울릉공항이 진정으로 ‘안전한 하늘길’이 되려면, 활주로 연장과 수요 재 산정이라는 근본적 처방이 더는 미뤄져서는 안 된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09-25

“울릉도는 망하지 않았다"…울릉도 망치는 것은 삼겹살 아닌 왜곡된 프레임

“드디어 울릉도 망했다” 구독자 49만 명을 가진 한 유튜버가 내건 제목이다. 그는 제작 영상에서 바가지요금, 불친절, 삼겹살 논란을 이유로 관광객이 절반 가량 줄어들 것을 예고했다. 이 영상은 하루 만에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확산됐다. 일부 언론도 “울릉도 이러다가 망한다”는 등 검증없이 잇따라 추측성 기사를 쓰면서 ‘울릉도 몰락’이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웠다. 과연 그럴까. 실제 울릉도의 관광통계를 들여다보면 그와 정반대의 현상이 확인된다. 지난 6월 말 삼겹살 파동이 일었지만 7월 울릉도 관광객은 3만9864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보다 16.3% 늘었다. 울릉썬플라워크루즈 운항 중단도 과거의 적자 누적이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이 울릉썬플라워크루즈는 운항을 시작한 이후 올해 가장 많은 관광객을 수송하기까지 했고, 삼겹살 파동 이후 지난 여름 성수기 두 달(7~8월) 동안의 이용객은 지난해보다 19.2%나 증가했다. 이런 수치는 한때 논란이 된 주민의 바가지요금·불친절·비곗덩어리 삼겹살과는 전혀 상관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유트버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울릉을 무차별 폭격해댔다. 마치 울릉 주민들 때문에 관광객이 줄어 들었고, 그로 인해 여객선이 경영난으로 운항을 멈춘 것 처럼 비치게 하려고 온갖 장난질을 했다. 물론 몇해 전 보다 전반적으로 관광객이 감소한 것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교통’과 ‘환경’이라는 요인으로 발생했다. 세계 최고 속력을 자랑하던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가 기관고장으로 운항을 중단했고, 코로나19 이후 폭발한 해외여행 수요가 결정적이었다. 이런 복합요인을 무시한 채 일부 유튜버와 언론은 ‘울릉도 주민 탓’으로 몰아갔다. 울릉 주민들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울릉도는 지질공원 팸투어, 문화·역사 체험, 해양관광 프로그램 등으로 관광 콘텐츠를 확장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와중에 ‘망했다’는 자극적 제목 하나는 그간 쌓아온 울릉군과 주민들의 노력을 송두리째 흔든다. 왜곡된 프레임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자극적 콘텐츠가 낙인효과를 키운다. 부정적 이미지가 외부에 각인되면, 다시 회복하는 데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관광은 신뢰 산업이다. 울릉도는 ‘망했다’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다’는게 진실이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09-23

선물과 뇌물의 경계, 마음속에 답이 있다

“선물을 잘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이나 선물을 인정해 주고, 그 가치를 잘 살려 주고, 즐겨 주고, 좋아해 주는 것이다.”(최송목의 저서 ‘사장의 품격’ 중에서)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서 선물 문화에 대한 고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선물은 분명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선물은 뇌물로 변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그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해 갈등과 불편함을 반복해 왔다. 2016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했다. 공직 사회와 기업을 흔들던 ‘명절 선물세트 관행’은 이제 법의 테두리 속에서 사라졌다. 한우·굴비·상품권이 오가던 시대에는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늘 불편한 마음을 감췄다. 받는 이는 ‘대가를 치러야 하나’ 하는 부담을, 주는 이는 ‘관행이니 어쩔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를 반복했다. 이때 선물은 이미 뇌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김영란법은 선물과 뇌물 사이의 모호한 공간을 잘라냈다. 5만 원, 10만 원이라는 가액 기준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이로써 주는 사람은 ‘여기까지는 괜찮다’는 확실한 선을 긋고, 받는 사람은 ‘거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을 얻었다. 제도의 도입은 곧 청렴 문화로 이어졌다. 이제는 선물을 받는 순간 ‘혹시 법에 저촉되지 않을까’ 하는 자기 검열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제도 시행 이후 공직사회의 풍토가 맑아졌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불필요한 의심과 눈치가 사라졌고, 선물 본래 의미가 조금은 되살아났다. 선물은 결국 받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관계를 따뜻하게 만드는 삶의 지혜다. 하지만 대가를 떠올리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뇌물이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분명해질수록, 주고받는 풍경은 덜 화려해졌지만 사회는 더 건강해지고 있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9-22

울릉도 ‘관광객 감소=붕괴’라는 프레임을 경계한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울릉도를 두고 “여객선도 끊겼다”, “바가지 논란 요금”, “울릉도 이러다 다 죽는다”는 식의 자극적인 제목을 내세운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제목만 보면 울릉도는 관광객이 끊겨 생존을 위협받는 지역처럼 비친다. 그러나 현장의 사정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소 다르다. 실제로 여객선 운항 문제는 심각하다. 울진 후포~울릉도를 잇던 썬플라워크루즈가 경영난으로 이달부터 멈췄고, 970명을 태울 수 있는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도 지난 4월부터 휴항 상태다. 대신 8월 29일부터는 썬라이즈호가 투입됐다. 성수기마다 표가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던 관광객 입장에서는 분명 불편이 크다. 울릉군의회와 울진군의회가 연석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관광객 감소도 수치상 사실이다. 2022년 46만1천여 명이던 울릉도 관광객은 2023년 40만8천여 명, 2024년에는 38만여 명으로 줄었다. 올해 1~8월 기준 26만9000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6%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한 것이 가장 큰 배경이지만, 불친절·바가지요금 논란이 겹치며 울릉도의 이미지가 악화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삼겹살 고기질 논란, 예상의 두 배에 달한 택시비, 고가 렌터카 사례는 실제 소비자 불만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들을 ‘울릉도 다 죽는다’는 프레임으로 엮어내는 건 지나치다. 6% 감소는 수치상 줄어든 것이 맞지만, 정원 970명이 타는 엘도라도호가 빠진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선박 수송 능력에 비해 관광객이 꾸준히 유지됐다. 운항이 정상화되면 다시 회복할 가능성도 크다. 더욱이 울릉도 경제의 모든 기반이 관광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울릉도는 전국에서 고용률 1위를 10년 넘게 유지해온 섬이다. 관광업이 중요한 축임은 분명하지만, 여객선 운항 차질과 일부 바가지 논란이 곧 지역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언론의 보도 태도다. 주민의 불안과 관광객의 불편을 지적하는 것과, 사실을 과장해 “울릉도 붕괴”라는 이미지로 소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지나친 위기론은 울릉도의 신뢰를 더욱 해치고, 되레 관광객 발길을 끊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울릉도는 지금 ‘죽어가는 섬’이 아니다. 여객선 문제는 제도 개선과 준공영제 도입 같은 구조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사안이고, 관광업계는 서비스 개선과 바가지 근절로 신뢰 회복에 힘써야 한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다 죽는다”는 자극적 문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 대안을 비추는 것이다. 섬은 위기 속에서 더 강해진다. 울릉도가 지금 필요한 건 위기의 과장이 아니라, 냉정한 진단과 차분한 해법이다. kimdh@kbmaeil.com

2025-09-18

정부는 활주로 연장 요구하는 울릉 섬 주민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아야

울릉공항 공정률이 66%를 넘어섰다. 수십 년 꿈꿔온 하늘길이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마냥 기뻐하지 못한다. 활주로 길이 때문이다. 울릉공항은 당초 활주로 1200m로 설계됐다. 이는 50인승 소형항공기 기준이다. 하지만 소형항공업계는 이미 80인승 기체를 주력으로 운용하고 있다. 짧은 활주로, 미래가 불안하다. 활주로 연장 없이는 이착륙 과정에서 안전사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종단안전구역도 90m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권고 기준에 미달한다. 울릉도의 기상이 전국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것은 이미 정평나 있다. 연간 138일이 강풍에 시달리고, 안개와 돌풍은 언제든 비행기를 위협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활주로와 안전지대 확보를 미루는 건 ‘위험을 제도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안 참사를 잊었는가” 울릉군민들이 지금 외치는 소리다. 2024년 무안국제공항 사고는 아직도 국민 기억 속에 생생하다. 짙은 안개 속 활주로 이탈로 아까운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활주로 안전 기준을 무시한 결과가 어떤 참사로 이어지는지 우리는 이미 뼈 아프게 경험했다. 울릉공항은 그보다 더 가혹한 조건, 돌풍과 안개, 급변하는 날씨 속에 지어진다. 무안의 비극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안전의 기준을 높일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추진위원회는 지난 5일부터 전국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서명운동은 단순한 지역 이슈 아니다. 그래서인지 온라인과 국회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종교계와 정계 인사들까지 나서면서 운동은 더 이상 ‘섬 주민들의 호소’에 머물지 않는다. 국민 전체의 안전을 위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울릉공항은 단순한 교통편의 시설이 아니다. 주민들의 생명선이자 대한민국 안보는 물론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이다. 활주로 길이와 안전구역 확보 없이 개항을 서두른다면, 이 하늘길은 미래 번영의 초석이 아니라 두 번째 참사의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안전 없는 공항은 존재 이유가 없다”이 당연한 명제를 정부와 관계기관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그 태도가 울릉공항의 운명을 가를 것이다. 울릉 섬 주민들은 육지와 단절돼 수십 년간 불편과 고립을 감내해야 했다. 줄기차게 공항을 외쳤던 이유다. 그 결실이 목전에서 또다른 암초를 만났다. 외딴 섬 울릉 주민들에게는 활주로 연장이 생명줄일터다. 개항하면 대한민국 국토 균형발전과 영토 수호의 상징이기도 할 을릉공항. 정부는 섬 주민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절규하는 외침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 kimdh@kbmaeil.com

2025-09-16

보문관광단지 또 ‘장밋빛 청사진’만 남을라

경주의 보문관광단지가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새로운 50년’을 약속했지만, 지역 안팎에서는 “과거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1975년 국내 최초 관광단지로 출범해 한때 전국 최고 명소였던 보문단지는 민간투자 부재와 시설 노후화로 사실상 슬럼화된 지 오래다. 이번에도 구호만 요란한 채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경북도문화관광공사는 15일 보문관광단지 10개 부지, 11개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고 2030년까지 5000억 원을 투자해 600여 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복합리조트와 관광형 증류소 등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고, 지역 인재 채용·장학금 지원 같은 공공기여도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실제로 언제 얼마나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이번 사업은 관광진흥법 개정으로 신설된 ‘복합시설지구’ 제도를 전국 최초 적용한 사례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해서 투자 유치와 사업 완수가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보문단지가 그동안 수차례 규제 완화와 개발 구상을 내놨지만, 실행력 부족으로 번번이 물거품이 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공사는 ‘2년 내 착공, 5년 내 준공’을 원칙으로 강력한 이행 목표를 내세우지만 투자기업의 의지와 자금력, 경기 여건에 따라 지연·무산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협약 불이행시 해제·원상복구·보증금 몰수 같은 제재를 명문화했지만, 실제로 제재가 작동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김남일 문화관광공사 사장은 “보문관광단지의 재도약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문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정하다. 시민들은 “이번에도 보여주기식 발표로 끝나는 것 아니냐”, “5000억 투자라지만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있을까”라는 불신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보문관광단지는 이미 국제 경쟁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세계적 관광지와 겨루겠다는 포부를 밝히기 전에 과거 실패에 대한 냉정한 자기반성과 실질적 대책이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POST-APEC 보문 2030’ 역시 화려한 구호만 남긴 채 또 하나의 ‘헛된 약속’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hsh@kbmaeil.com

2025-09-15

국가연구기관, 왜 수도권에만 몰리는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연구기관의 수도권 집중 문제가 대두된 가운데 국립치의학연구원 입지 선정을 둘러싼 지역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번 입지 선정은 ‘공정한 공모’와 ‘지역 간 분산’ 원칙을 실현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2023년 기준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의 65%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국립보건연구원·질병관리청 등 보건의료 R&D 핵심 기관도 충북 오송에 위치해 있다. 의학계 역시 국립중앙의료원(서울), 국립암센터(고양) 등 중앙집중형 구조가 고착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미래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립치의학연구원 입지 선정이 지역 균형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강원권과 충청권까지 수도권으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지방은 경상권, 전라권밖에 없다. 대구는 국내 유일의 치과 전주기 R&D 생태계를 갖춘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북대 치과대학, 대구첨복단지, 케이메디허브 등이 연계돼 있으며, 치과 의료기기 수출의 30%를 차지한다. 특히 임플란트·핸드피스 등 수출 중심의 산업체가 집적돼 있어 연구개발(R&D)과 산업계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 국립치의학연구원이 대구에 설립된다면 수도권 R&D 편중 해소와 더불어 비수도권 내에서도 집중도 높은 자립형 과학도시 모델의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다. 동시에 향후 국립연구기관 설립 시 공모 기반 입지 선정의 제도화, 지역 간 분산 배치 원칙의 정착이라는 선례도 만들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4월 18일 대통령 후보 시절에 대구를 찾아 “서울·수도권과의 이격 거리에 따라 가중치를 둬 지역 예산을 분배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또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수도권 집중에서 발생한다”며 “수도권과의 거리에 비례한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는 1990년대 이후 구조적 산업 침체와 청년 인구 이탈을 겪으며 지역 내총생산(GRDP) 최하위권을 기록해왔다. 국립연구기관 유치는 단지 연구와 산업적 가치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장기적인 경제 구조 재편과 인재 정착을 위한 실질적 해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도권 편중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국립치의학연구원은 또 하나의 ‘서울 중심 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번 입지 선정은 지역 균형발전의 내용과 실질을 시험하는 기회다. 연구는 수도권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구시대적 관성에서 벗어날 때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5-09-14

인사철마다 유언비어에 흔들리는 경주시정

경주시의 인사 풍토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인사철만 되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으로, 유언비어와 투서가 난무하고, 승진 대상자를 둘러싼 뒷말이 조직을 뒤흔든다. 실제로도 공직사회의 성과와 전문성은 뒷전이고, 누가 누구와 가까운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어 버렸다는 세평이 파다하다. “일은 잘하지만, 업자와 유착됐다더라”, “시장 측근에 줄을 댔다더라”, “청사 내 힘 있는 세력이 따로 있다더라”라는 식의 소문이 꼬리를 물고, 확인되지 않은 투서까지 난무한다. 승진하려면 인사 전에 시장에게 의견이 전달돼야 한다는 뒷말도 무성하다. 성과보다 줄서기가 인사의 기준처럼 작동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행정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런 풍토가 단순한 잡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세력이 파벌을 형성하고, 누가 요직에 오를 때마다 ‘측근 인사’라는 잡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그 결과, 경주시 공직사회에서의 사기 추락은 눈에 비칠 정도다. 시민들도 경주시 인사가 공정성과 투명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지하고 있다. 인사는 조직의 가장 큰 동기부여이자 갈등의 원천이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이런 무질서한 인사 관행을 비난하고 있는 시 직원들도 막상 승진때가 되면 친분과 줄서기에 나서는 모습을 볼 땐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행위다. 또 공정하지 못한 인사가 남기는 것은 불신과 냉소, 그리고 행정에 대한 무력감뿐이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더 이상 이 악습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인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평가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성과와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세우지 못한다면 경주시정은 끝없는 유언비어와 파벌 싸움에 휘둘릴 것이며 공무원 사회의 신뢰 회복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주 시장이 경주 수장에 오른지도 8년이 다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인사를 둘러싸고 말썽이 생기면 그는 ‘승진하지 못한 직원의 불만"이라면서 “공정하게 인사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지금 경주시의 돌아가는 사정을 들여다보면 과연 그런지 의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직사회에선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조금 어긋나서도 안되지만 많이 일탈한다면 시장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경주시는 성과가 아닌 줄서기로 움직이는 낡은 풍토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일은 잘하지만, 업자와 유착됐다더라", “누구 줄에 섰느냐”가 아니라 “무슨 성과를 냈느냐”로 평가받는 경주시정은 언제 가능할까. 이제는 시장이 답을 내야 할 시간이다. /황성호 기자 hsh@kbmaeil.com

2025-09-14

“물부족 포항시, 이제는 지하댐을 고민할 때다”

물은 도시의 혈관이다. 포항은 바닷가에 기대어 성장해온 대표적인 해안도시다. 철강산업으로 성장했고, 최근엔 2차전지와 수소산업 등 신산업의 중심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도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물’이다. 포항은 연평균 강수량이 1100mm 안팎으로 전국 평균(약 1300mm)과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지형이다. 내륙처럼 산과 계곡이 깊어 물을 가둬둘 곳이 거의 없다. 하천은 짧고, 빗물은 순식간에 바다로 흘러간다. 현재 포항은 공업용수의 80% 이상을 인근 댐 등에서 끌어다 쓴다. 연간 공업용수 사용량은 1억 4000만 톤에 달한다. 신산업단지 조성과 기업 유치로 수요는 매년 늘고 있지만, 외부 수원에 의존하는 방식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기후 변화로 극심한 가뭄과 불규칙한 강수량이 반복되면서 불안은 더 커졌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해수담수화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초기 건설비만 수천억 원대, 생산된 물값은 기존 육상댐보다 5배 이상 비싸다. 농축염수 처리 등 환경 문제도 풀기 쉽지 않다. 결국 포항만의 물그릇이 필요하다. 그 대안이 바로 지하댐이다. 지하댐은 땅속에 흐르는 지하수를 막아 저장하는 구조다. 평소에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고이게 하고, 필요할 때만 취수해 쓸 수 있다. 특히 포항처럼 하천이 짧고 해안에 인접한 도시는 빗물이 금방 바다로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지하에서 이를 붙잡아 두면 물부족 문제를 크게 덜 수 있다. 실제 일본 오키나와, 대만 등에서는 이미 지하댐이 가뭄 극복의 실질적 대안이 됐다. 제주도 역시 육상댐 건설이 어려운 지형적 한계를 지하댐으로 해결해 연간 800만 톤 이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지하댐은 육상댐 대비 건설비는 30~40% 수준이면서도 홍수와 가뭄을 함께 잡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강원도 사례는 포항에 주는 교훈이 크다. 요즘 강릉시는 국가재난에 버금가는 심각한 가뭄으로 생활용수까지 부족해 시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반면 인근 속초시는 상황이 다르다. 속초시는 일찍이 지하댐을 건설해 하루 63만t 규모의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극심한 가뭄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물을 공급하고 있다. 불과 수십 킬로미터 차이지만, 지하댐을 선제적으로 준비했느냐의 차이가 도시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포항에도 지하댐은 물부족 해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 포항 도심은 해수면과 높이 차가 거의 없는 저지대다. 우수기마다 불어난 빗물이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해 도심에 고인다. 이를 막기 위해 해마다 대형 배수펌프장을 돌려야 한다. 펌프 가동과 유지에만 연간 수십억 원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매년 반복되는 침수 피해는 여전히 시민의 몫이다. 지하댐이 들어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강우기에 넘치는 빗물을 지하로 흡수해 임시 저류조 역할을 하고, 평소에는 저장된 지하수를 취수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도심 침수 위험과 배수펌프장 운영 비용을 줄이고, 가뭄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하댐은 대규모 토지 수용이나 주민 이주가 필요 없다. 하천 하류나 평야 지하 등 여러 곳에 소규모로 나눠 지을 수 있어 현실성도 높다. 필요한 만큼 물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뽑아 쓰는 ‘작은 물그릇’이 여러 개 만들어지는 셈이다. 물부족과 침수방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발상의 전환이다. 한 지역 물관리 전문가는 “포항은 물을 남이 가져다주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물을 모으고 지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하댐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물은 도시의 생명이다. 더 이상 다른 지역에서 가져다 쓰거나 비싼 담수화 기술에만 기대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어렵다. 기후위기 시대, 물을 지키는 일은 도시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강릉과 속초의 대비된 현실은 포항에 던지는 경고다. 이제 포항이 ‘땅속 물그릇’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임창희 부국장

202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