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5일 포항 죽도시장.
대형 장바구니를 든 시민들이 오가지만 예년처럼 활기가 넘치진 않는다.
상인들의 표정에는 명절 특수를 기대하기보다는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
수산물 코너에서 문어 한 마리가 1kg당 9만 원을 훌쩍 넘자, 계산대 앞에서 망설이는 손님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전 같으면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지금은 손님이 와도 살지 말지 고민만 하다 그냥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도시장에서 30년째 장사하는 김모(63)씨는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상인 박모(58)씨도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안 좋으니 명절 특수도 옛말입니다. 장사하는 우리 마음만 바쁘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는 특히 차례상 간소화와 제사문화 변화가 전통시장 매출에 또 다른 타격을 줬다.
한국소비자연맹 조사에 따르면,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은 작년보다 평균 8~12% 상승했지만, ‘간소하게 차린다’ 혹은 ‘차례를 생략한다’는 응답이 40%를 넘어섰다.
제사음식 재료를 사러 오는 손님이 줄자, 상인들은 “명절이 점점 평일처럼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전통시장은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좁은 골목과 불편한 주차, 현금 중심의 결제 시스템은 현대 소비자에게 불편하다. 반면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은 ‘한 번의 결제, 빠른 배송’이라는 편리함으로 지역 소비를 빨아들이고 있다.
포항의 홈플러스와 이마트는 연휴 내내 주차장이 만차였고, 온라인몰에서는 선물세트와 간편식 주문이 폭주했다.
소비자 박모(47)씨는 “시장 물건이 싱싱한 건 알지만, 마트는 결제 한 번에 끝나고 배송까지 되니 선택이 쉬워요.”라며 현실적인 이유를 밝혔다.
포항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지역 중소상인 68%가 매출 감소를 체감했다고 답했다.
물가 상승, 경기 둔화, 소비 패턴의 변화가 한꺼번에 전통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항시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올해만 50억 원 안팎의 예산을 투입했다.
주요 사업으로는 온누리상품권 10% 할인 지원(약 12억원), 공영주차장 무료 개방(12개 시장 1100면), 시장 환경정비·가스·위생관리 지원(7억원), 시장 환경개선 및 간판 정비 사업(5억원) 등이 있다.
또한 전통시장 내 스마트 결제 시스템 도입(3 원)과 디지털 홍보·예약 포장 서비스 지원(2억원)을 추진해 젊은 세대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죽도시장 일부 점포에서는 간편결제(QR)와 예약 포장제를 도입했고, 떡집은 송편 예약제를 운영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일부 수산물 상가는 시식·체험 공간을 마련해 시장 특유의 체험 요소를 강화하고 있다.
죽도시장 상인회 김모 회장은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만의 재미, 사람 냄새 같은 ‘정(情)’이 살아야 손님이 돌아옵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단기 이벤트보다 시장 체질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동해경제연구소 A 연구위원은 “전통시장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얼굴이자 생활문화의 현장이다. 디지털 결제, 체험·문화 콘텐츠, 예약·포장 서비스 등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올해 추석을 맞아 12개 전통시장에 대해 안전·가스·위생 점검, 문화공연 지원, 상인회 자율정비사업을 병행했다. 그러나 상인들의 체감 효과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정과 편리함이 공존해야 한다. 시장만의 고유 가치와 현대적 편의성을 동시에 제공할 때, 전통시장은 명절 특수를 넘어 연중 지속 가능한 지역 경제의 중심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전통시장의 생존 전략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다. 찾아오게 만드는 매력, 그리고 지역경제와의 상생이 새로운 돌파구다.
디지털 결제, 예약·체험 프로그램, 문화 이벤트와 정책적 지원이 결합될 때, 전통시장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온기와 경제적 활력을 잇는 생활형 명절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다.
전통시장의 체질개선을 요구하는 대목에 힘을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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