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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의 도구가 된 도시관리계획’···포항시는 행정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한다

임창희 기자
등록일 2025-12-18 10:39 게재일 2025-12-1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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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가지 전경. /경북매일 DB

도시관리계획은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공의 약속이다. 토지이용의 질서를 세우고 기반시설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행정 장치다. 그러나 최근 포항시의 도시관리계획을 둘러싼 흐름을 보면 이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특정 이해집단의 요구가 계획 변경의 출발점이 되고, 그 결과가 투기 수단으로 작동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계획의 ‘공공성’ 보다 ‘속도’와 ‘편의’가 앞서고 있는 점이다. 충분한 수요 검증과 장기적 도시 구조에 대한 검토 없이 용도지역 변경이나 개발 가능성만 부각되면 정보에 먼저 접근한 소수에게 막대한 이익이 주어진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교통 혼잡, 교육·환경 인프라 부족, 주거 불균형이라는 형태로 시민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 도시관리계획이 부동산·건설시장을 안정시키기는 커녕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신호로 작동하는 순간 행정은 신뢰를 잃는다.

물론 포항시는 항변한다. 이번 ‘2030 포항시 도시관리계획 재정비(안)’이 투기나 개별 개발을 위한 계획이 아니라 변화하는 도시환경과 인구 구조에 대응하고 장기적인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종합적 공간계획이라는 것이다. 또 용도지역·지구의 지정 및 변경, 기반시설 설치와 정비, 지구단위계획 수립 등 도시 공간 전반에 대해 종합 검토한 법정계획이었고, 상위계획에서 제시된 도시 비전과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재정비는 과거 외연 확장 중심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인구 감소와 재정 여건을 고려한 내실 있는 도시공간 관리, 이른바 ‘압축도시(Compact City)’ 구현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힌다. 그동안 다소 미진한 것으로 판단된 도심 교통 순환축 구축과 교통망 체계 개선 등을 통해 침체된 도심 기능을 회복하고, 지역 간 연계를 강화하는 균형 발전의 기반도 담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래 신성장 산업 중심의 도시 구조 전환과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 확보를 이번 계획에 포함했으며 오랜 기간 유지돼 온 각종 용도규제와 개발 제한도 합리적으로 정비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토지 이용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주민 불편을 해소하고 실효성 있는 공간 관리 체계를 구축하도록 설계됐다고도 했다.

그러나 계획의 취지와는 별개로 도시관리계획은 ‘요청을 처리하는 창구’가 아니라 ‘원칙을 집행하는 기준’이어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개별 사업의 타당성은 전체 도시 전략 속에서 검증돼야 하며, 도시관리계획 변경의 필요성은 수치와 데이터로 입증돼야 한다. 인구 구조, 산업 변화, 교통 수요, 환경 수용력 등 기본 지표가 흔들리는데도 계획이 바뀐다면 이는 행정의 오류다. 더구나 반복되는 변경은 계획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려 정상적인 투자와 시민의 생활 계획마저 어렵게 만들어 버림을 알아야 한다.

도시관리계획 재정비안 공람 공고 후 논란이 일자 이강덕 포항시장은 “열람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향후 도시의 균형 발전과 경쟁력 강화, 시민 삶의 질 향상을 함께 키우는 공간계획을 목표로 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제출된 의견들은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 “향후 관련 기관 협의와 시의회 의견 청취,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법정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며 시민들의 여론을 듣고 또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시장이 전문분야까지를 다 숙지하고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최종 결재권자다. 시민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겠다는 발언은 그나마 크게 진전된 변화다.  

포항시는 이번 재정비안과 관련해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특정 이해집단의 민원을 ‘신속 처리’로 포장할 것인지, 아니면 도시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집행’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시간이 부족해 신속 처리로 가더라도 행정의 집중도를 높여 사전 검토를 강화하고, 변경 기준과 판단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도시계획위원회 역시 견제와 균형의 본령으로 돌아가 전문성과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며, 이후 제대로 된 조언과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도시는 한 번 바꾸면 되돌리기 어렵다. 오늘의 편의가 내일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포항시 도시관리계획은 투기의 통로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지키는 방파제가 돼야 한다. 도시관리계획의 주인은 소수가 아니라 시민 전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변경이 아니라 더 단단한 원칙이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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