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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물망초

“날 잊지 마셔요. / 그 음성 오늘따라 / 더 가까이에 들리네. / 들리네.”(김춘수 시 `물망초`)물망초는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로 더 유명한 꽃이다. 영어 명칭은 forget-me-not이다. 전설에 의해 물망초(勿忘草)는 신의와 우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문학 작품과 노랫말에도 등장한다. 유럽이 원산지인 물망초는 헨리 4세가 자신의 문장으로 채택한 꽃으로 유명해졌다. 이 꽃을 가진 사람은 연인에게 버림받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주변에서 치매와 관련된 강좌나 모임에 물망초가 들어가 있는 명칭을 볼 수 있다. 꽃말 때문이다. 고산에서 자라는 것들이라 키가 작고 바위틈에서도 잘 자란다. 개량된 원예품종들은 화단용으로 부케용으로 인기가 높다.옛날 독일에 살았던 루돌프와 벨타는 서로 사랑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다뉴브 강 기슭을 거닐다가 강가 서쪽에 본적 없는 연보라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참으로 예쁜 꽃이었다. 루돌프는 그 꽃을 벨타에게 주기 위해서 그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꽃을 따 가지고 헤엄쳐 건너오다가 그만 기진맥진하여 물에 휩쓸렸다. 루돌프는 물에 떠내려가면서 손에 쥐고 있던 꽃을 연인에게 던지며 외쳤다. “날 잊지 말아요!”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꽃을 꺾다가 죽은 연인을 생각하면서 평생 그 꽃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 이 이야기를 아는 젊은이들은 다뉴브 강 가를 거닐 때마다 가엾게 죽은 젊은 청년을 생각하며 그 꽃을 `물망초`라고 불렀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6-02-26

복숭아나무

“나의 살던 고향은 /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 아기 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 그립습니다.”(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복숭아는 신선이나 옥황상제가 먹는 장수하는 과일이다. 옛 사람들은 복숭아나무가 요사스런 기운을 몰아내고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귀신을 몰아낼 때 동쪽에 난 가지로 쫓았다. 불로장생의 영약인 영지도 복숭아나무에서 난 것을 최고로 친다. 집안에는 심지 않았다. 제사 때 귀신들이 복숭아나무가 무서워 차려 놓은 음식(飮食)을 맛보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쓰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복숭아나무 근처에는 묘를 쓰지 않는다.동의보감에 보면 버릴 것 하나 없는 약재이다. 잎, 꽃, 열매, 씨, 속껍질, 심지어 벌레까지 약이 된다. 도화차는 건강차로 해독작용을 하며, 변비와 미용, 각기병과 결석에 효험이 있다. 바닷고기를 먹고 중독되었을 때 복숭아를 껍질째 먹으면 치료가 된다. 씨는 도인(桃仁)이라고 해서 여성의 생리 불순, 어깨 결림, 두통의 약재료로 사용한다. 종자 속의 인은 혈액순환을 좋게 하며 중풍, 폐환자, 산후부인병, 진해, 거담, 화장독을 없애는 데 쓴다. 잎은 목욕물에 넣어 땀띠나 습진을 치료했다.마음씨 착한 김 씨 노인과 외동딸 도화 낭자가 복사 골에 함께 살았다. 도화 낭자의 아리따운 모습과 마음씨는 천관(天官)의 귀에까지 들려 옥황상제의 며느리로 간택되었다. 김 노인은 딸이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은 기쁘나 외동딸과 이별할 것을 생각하니 서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인의 마음을 애처롭게 생각한 천관은 천상의 천도복숭아를 하나 주고 갔는데 노인이 그 씨를 집 근처에 심고 복사나무를 딸처럼 보며 살았다. 노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마을 사람들은 노인과 도화 낭자를 생각해서 복사나무를 심어 가꾸면서 일대가 복사꽃으로 뒤덮였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6-02-19

시클라멘

겨울에도 활짝 피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꽃이 시클라멘이다. 보통 11월에서 3월까지 피며, 줄기 끝의 꽃은 아래로 향하고 있다. 땅을 보고 있는 꽃이 마치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녀를 생각하게 한다. 원산지인 지중해 시칠리아 섬에서는 돼지가 뿌리를 파먹는다고 돼지 빵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시클라멘은 미세먼지와 휘발성 유해 물질 제거 기능이 우수한 공기정화 식물이다. 물과 비료를 줄 때는 줄기나 잎에 닿지 않게 화분 둘레에 주어야 한다. 생장점에 물이 묻으면 죽기 때문에 저면 관수를 해야 한다. 시클라멘은 민간요법에 많이 활용됐다. 뿌리를 삶아 뱀에 물린 상처 치료에 썼고, 액운을 없애고 좋은 기운을 준다고 정원에 많이 심었다. 잎을 이용해 탈모 치료에 이용했다. 알뿌리를 가루로 만들어 팬케이크에 섞어 상대에게 먹이면 자신을 좋아하게 할 수 있다는 재미있는 기록도 있다. 뿌리는 산모의 순산을 도와주는 약으로도 쓰였다.선녀 중에 제일 예쁜 `시클라멘`에게 신은 꽃들에게 꽃을 피우도록 명령하는 소식을 전하는 일을 시켰다. 이렇게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아 보았으므로 꽃들도 시클라멘을 좋아했다. 지상에 내려올 때마다 보았던 한 목동을 사랑했지만, 목동은 그녀를 피했다. 왜 자신을 피하는지 물어보았더니, 양 떼들이 먹을 꽃과 풀을 찾아다니느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시클라멘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들판에 꽃이 피도록 전했다. 그러나 목동이 냇물의 여신과 사랑에 빠져 시클라멘에게 거짓말을 한 사실을 알게 되자, 배신감에 땅에 다시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특히 신의 명령까지 어긴 자신이 너무 싫어서 하늘로 올라가며 선녀 옷까지 벗어서 땅으로 던져 버렸다. 이때 옷이 땅에 닿자 꽃으로 변했다. 마치 하늘로 오를 듯 나비 모습을 한 시클라멘은 선녀의 옷이 변해서 핀 꽃이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6-02-12

오미자나무

오미자(五味子)는 다섯(五) 가지 맛(味)을 가진 열매(子)란 뜻이다. 오미는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을 말한다. 오미자 열매는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약효도 뛰어나 약재와 차, 술의 재료로 많이 이용됐다. 요즘은 그 씨도 역시 약으로 쓰는데, 그 이용가치가 열매보다 더 높다. 껍질은 시며, 과육은 달고, 씨는 맵고 쓰며, 전체적으로는 짠맛이 난다. 잘 익은 열매는 향기가 나며 맛이 좋아서 어린 시절 즐겨 따먹었다. 다섯 가지 맛은 미각뿐만 아니라 오장(五臟)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간장(肝臟)은 신맛(酸), 심장(心臟)은 쓴맛(苦), 비장(脾臟)은 단맛(甘), 폐(肺)는 매운맛(辛), 신장은 짠맛(鹹)에서 기운을 얻는다.오미자나무는 중국, 일본, 만주, 대만 등과 우리나라 전역의 산야에 많이 자생한다. 중국 의서에 우리나라 산이 가장 우량하고 약용으로도 효과가 좋다는 기록이 있다. 오미자로 만든 음식으로는 오미자국, 오미자편, 오미자화채, 오미자차, 오미자술 등이 있다.칠석 전날 밤에 견우와 직녀가 건너는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고 하는데, 이 다리는 까치와 까마귀가 오미자나무의 가지를 물어다 만든다고 한다.고려 문종 때 이영간은 연동사에서 공부를 했다. 이 절에는 “마시면 신선(神仙)이 된다”고 해서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로 불리는 술이 있었다. 그가 오고부터 연동사의 술독이 자꾸 줄어들었다. 스님들은 그를 의심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이영간은 범인을 잡기 위해 술독을 지키고 있다가 술을 훔쳐가는 늙은 살쾡이를 잡았다. 살쾡이는 비서(秘書) 한 권을 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책을 얻은 대신 살쾡이를 풀어주었고, 그 책으로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였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6-02-05

양귀비

양귀비는 `아편꽃`, `약담배`라고도 한다. 인도의 국화다. 양귀비꽃의 덜 익은 씨방에서 영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까지 치르게 한 마취약인 아편을 얻기 때문이다. 흰색, 노란색, 붉은색, 자주색 등의 꽃이 줄기 끝에 한 송이씩 핀다. 당나라 현종의 황후이자 중국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히는 양귀비처럼 아름다운 꽃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밭에 심어 기르지만 마약의 원료이므로 마음대로 기르지는 못한다. 요즘은 마약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는 개량종 양귀비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양귀비와 흔히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개양귀비는 외형상의 구별이 쉽지 않으나, 양귀비는 줄기 및 전체에 털이 없으나 개양귀비는 털이 많다. 양귀비의 열매는 둥근 모양이지만 개양귀비의 열매는 거꾸로 된 달걀 모양이다. 양귀비는 중독성이 있는 아편을 생산하지만, 개양귀비는 아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양귀비의 꽃이 지고 열매가 막 맺었을 때 그곳에 날카로운 칼 등으로 흠을 내면 하얀 액이 나오고, 그 액이 굳어진 것이 아편(阿片)이다.옛날 인도에 아름다운 꽃밭을 가진 왕자가 있었다. 어느 날 다리에 금실을 맨 예쁜 새가 날아왔다. 왕자는 그 새를 사랑으로 길렀으나 울지를 않았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공주가 나타나서 자기는 아라후라의 공주이고, 그 새는 자기의 새이며, 새 이름과 자기 이름이 같다고 했다. 또 자기 이름을 아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새는 자기 정원에 있는 어떤 꽃을 보아야만 우는데 그 꽃 이름도 공주 이름과 같다고 하였다. 꿈에서 깨자 왕자는 새벽에 아라후라의 궁전으로 몰래 들어가서, 생전 처음 보는 꽃을 꺾어 가져와 새에게 보여주었다. 새는 “파파벨라! 파파벨라!”하고 울었다. 공주의 이름은 파파벨라야였다. 왕자는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을 해 행복하게 살았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6-01-29

찔레나무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이연실 작사, 박태준 작곡, 이연실 노래 `찔레꽃`) 어린 시절 찔레 순을 꺾어서 껍질을 벗겨낸 후에 먹으면 아삭한 맛과 향이 입안에 번졌다. 보리를 수확하기 전, 먹거리가 없던 아이들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찔레 순을 따먹으며 이 동요를 불렀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딸네 집도 안 간다`는 속담도 있다. 쌀가루와 찔레꽃을 켜켜로 쌓고 찌면 떡이 익은 자리에 꽃은 사라지고, 고운 빛깔과 향기가 나는 달콤한 찔레꽃 떡이 된다.옛날 고려에서는 해마다 어여쁜 처녀를 원나라에 바쳐야만 했다. 어느 산골 마을에 찔레와 달래라는 두 자매가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관원들에 의해 두 자매가 공녀로 끌려가게 되었다. 병든 아버지가 있다는 이야기와 서로 자기가 가겠다는 모습에 감동을 하여 찔레만 가게 되었다. 원나라에 끌려간 찔레는 운이 좋게 좋은 주인을 만나 그렇게 힘들지 않은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찔레에게는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와 달래 생각뿐이었다. 찔레는 그리움 때문에 병이 들고 말았다. 찔레를 불쌍히 여긴 주인이 며칠 고향에 다녀오라고 보내주었다. 고향으로 돌아간 찔레는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찔레를 걱정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달래는 집을 나간 뒤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찔레는 달래를 찾으러 산과 들을 헤매다 지쳐서 죽고 말았다.그녀가 동생을 찾아 헤매면서 골짜기, 산, 개울에 흘린 눈물은 꽃이 되어 온 산천에 아름답게 피어났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6-01-22

금잔화

꽃 모양이 황금 술잔 비슷하다는 데에서 생긴 이름인 금잔화(盞花)는 금송화(松花) 라고도 불리고 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열을 내리게 하는 해열제로, 입안이나 몸 일부분에 상처가 생겼을 때는 소독제나 새살이 돋게 하는 데 사용하였고, 화장품의 재료나 수프 같은 음식의 재료로도 썼다. 이 꽃을 심으면 뱀이 싫어해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집 주위에 많이 심었다. 금잔화는 태양이 뜨는 낮에는 아름답게 활짝 피었다가 밤이 되면 꽃을 오므려 봉오리처럼 된다.힌두족은 사원의 제단을 꾸밀 때, 페르시아인과 그리스인들은 꽃잎을 음식의 색과 향을 내기 위해 사용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는 전쟁터에서 이 잎을 이용 상처 난 곳을 싸매주어 지혈, 항균 및 항염 작용을 도왔다. 위염과 위궤양 십이지장 등에도 효과가 있어서 소화기관이 약한 사람에게 좋은 치료약이 되었다. 감기, 두통과 피로해소에 도움을 주어서 금잔화를 욕조에 띄워 목욕제로 이용하기도 했다. 금잔화를 차로 이용 할 때는 1~2티스푼의 건조화를 1/4ℓ의 끓는 물에 넣고 10분간 우려낸 다음 마신다.`크리무농`은 어려서부터 태양을 좋아했는데 자라면서 점점 더 심해져 늘 하늘만 쳐다보며 살았다. 그는 태양이 보이면 무척 좋아했고, 서산으로 지거나 날씨가 흐리면 쓸쓸해했다. 질투가 심한 구름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 구름이 동쪽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해가 떠오르면 저녁때까지 해를 덮어버리기를 여드레 동안 계속하여 `크리무농`을 괴롭혔다. 태양을 볼 수 없게 된 것을 슬퍼한 그는 연못에 빠져죽고 말았다. 구름이 걷힌 후 `아폴로`는 땅 위를 내려다보고는 항상 자기를 기다리고 있던 `크리무농`이 죽은 것을 알고 슬퍼하여 그 시체를 `금잔화`로 만들었다. 그래서 금잔화는 날이 어두워지면 꽃잎을 닫아 버린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6-01-15

붓꽃

식물의 이름은 꽃이나 잎 또는 열매의 모습을 따서 붙이는 경우가 많다. 활짝 핀 붓꽃의 모습에서는 이름의 근원을 찾을 수 없지만, 꽃봉오리의 모습을 보면 쉽게 붓을 연상하게 된다. 사용했던 붓을 잘 빨아서 말려놓은 모양처럼 생긴 꽃이다. 꽃창포와 붓꽃은 특징이 비슷하고 꽃 모양이 거의 같아 구분하기 힘들다. 붓꽃은 외화피 안쪽에 다양한 색깔의 그물 무늬가 있는데 꽃창포는 단조로운 한 가지 색깔의 줄무늬가 가늘게 있어서 구별할 수 있다. 꽃이 아름다워 온실에서도 재배하는데 씨와 포기나누기로 번식한다. 씨는 봄과 가을에 뿌린다. 물오름이 좋아 꽃꽂이용으로 많이 쓰인다. 뿌리와 줄기는 피부병 치료제로 사용한다. 옛날, 이탈리아에 아이리스라는 미녀가 있었다. 그녀는 로마의 한 왕자와 결혼을 했지만 10년 만에 왕자가 병으로 죽고 말았다. 홀로된 그녀의 미모와 교양에 반해 많은 사람이 결혼을 원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리스는 젊은 화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리스를 사랑하게 된 화가가 청혼했지만 역시 응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구혼하는 화가의 열정에 감동해서 “정 그렇게 결혼을 원하신다면 조건이 있어요.”아이리스는 살아있는 것과 똑같은 꽃을 그려달라고 했다. 나비가 날아와서 앉는 그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화가는 온 정열을 기울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해 만에 완성했다. 아이리스는 그림을 본 순간 오랫동안 원하던 꽃 그림이라서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뻤다. 그러나 못마땅한 투로 말하였다. “이 그림에는 향기가 없네요.” 그러자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그림 꽃에 앉았다. 아이리스는 감격에 찬 눈을 반짝이면서 화가의 품에 안겼다. 그 꽃이 바로 붓꽃이었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6-01-08

포인세티아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빨간 것 3가지,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 루돌프 사슴의 빨간 코, 크리스마스 꽃 포인세티아 일명 홍성목(紅星木)이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릴 때 모서리 한 쪽에 포인세티아를 그려야 성탄절 분위기가 났다. 뾰족뾰족한 빨간색 잎의 한 가운데에 노란 색 꽃이 그야말로 별빛처럼 반짝인다. 우리가 즐겨 보는 포인세티아의 붉은 잎은 꽃이 아니라 꽃의 아랫부분을 감싸는 포엽이 발달한 것이다. 멕시코 주재 미국 초대 대사이며 탁월한 아마추어 식물학자인 조엘 로버트 포인세트(Joel Roberts Poinsett)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1828년 멕시코에서 아름다운 야생화를 미국으로 가져왔는데 미국에서는 그를 기념하여 꽃의 이름을 포인세티아라고 불렀다. 훗날 유럽으로 건너간 포인세티아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장식하는 관습과 잘 어울리게 된다.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신부님이 오셔서 구유에 누운 예수님을 덮을 담요를 짜 달라고 루시다 어머니께 부탁했다. 어머니는 정성을 들여 담요를 짜서 아기 예수에게 선물로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동생들과 집에 남게 된 루시다는 급한 마음에 자신이 담요를 짜다가 망쳐버렸다. 아기 예수에게 드릴 선물이 아무것도 없던 루시다는 밖을 서성이다 할머니를 만났다. 루시다의 걱정스런 마음을 위로해주며 네 정성이 담긴 것은 무엇이든 아기 예수가 좋아 할 거라는 말에 용기를 얻고 근처에 있던 풀을 한 묶음 꺾어 성당으로 들어갔다. 수군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아기 예수 앞에 풀을 놓고 정성껏 기도했다. 그런데 그 풀이 점점 빨갛게 변하더니 그 가운데서 노란별이 반짝거리며 아기 예수를 빛나게 했다. 밖으로 나오니 마을의 풀들이 모두 빨간 별들로 빛나고 있었다. `포인세티아` 이 꽃을 멕시코에서는`라 플로르 데 노체부에나(La Flor de Nochebuna)`라고 부른다. `성스러운 밤의 꽃`이라는 뜻이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2-18

아네모네

“아네모네는 피는데 아네모넨 지는데/ 아련히 떠오르는 그 모습 잊을 길 없네.”(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 `아네모네`) `아네모네의 마담`은 여성심리를 잘 묘사한 주요섭의 소설 제목이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이 자리를 잡고 데라우치 총독 암살 작전을 모의하는 바의 이름이 `아네모네`다.아네모네는 바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Anemos에서 유래했다. 1147년 2차 십자군 원정 때 성지에서 가져온 흙 속에 아네모네의 알뿌리가 들어있어서 이 흙을 사용한 순교자의 묘지에서 피와 같이 붉은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이 꽃을 순교자의 피가 되살아 난 것이라 믿었다.다른 꽃과는 달리 다양한 꽃말을 가지고 있다. 기대, 허무한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배신, 속절없는 사랑, 기다림, 사랑의 괴로움, 이룰 수 없는 사랑, 제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등이다.우리나라에도 여러 종류의 바람꽃이 있다. 너도바람꽃,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회리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들바람꽃, 숲바람꽃, 세바람꽃, 나도바람꽃, 등등. 그렇지만 변산바람꽃은 특이한 꽃이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특산식물이다.옛날 꽃의 신 플로라에게 아네모네라는 아름다운 시녀가 있었다. 남편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이 사실을 안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멀리 떨어진 궁전으로 내쫓았다. 제피로스는 바람을 타고 그녀를 뒤쫓아 가서 사랑을 이어갔다. 제비로 변한 플로라는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그 광경을 보고 질투에 불탄 나머지 아네모네를 꽃으로 만들어버렸다. 제피로스는 그녀를 잊지 못해 봄이 되면 부드러운 바람을 보내어 화려한 꽃을 피우게 했다.이 꽃을 아네모네(anemone), 즉 바람꽃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꽃이 피고 지는 원인이 다 바람이기 때문이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2-11

히아신스

히아신스는 원산지는 터키이고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다. 네덜란드에서 개량된 덧취(Dutch) 계통과 프랑스에서 개량된 로만(Roman) 계통이 있다. 히아신스는 보통 덧취 계통을 일컫고 있으며, 현재 이 계통이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다. 꽃은 가늘고 긴 검(劍) 모양의 잎이 사방으로 나오고 그 중심부에서 꽃대가 나온 후 다시 그 끝에 작은 꽃들이 이삭 모양으로 달린다. 화단이나 화분에 재배하지만 구근에 양분이 들어 있으므로 수경재배로도 꽃을 감상할 수 있다. 미의 신 비너스는 아름다워지기 위하여 이 꽃의 이슬로 목욕하였다.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는 이 꽃을 잠자리에 깔았다. 꽃향기를 어여쁜 여인의 향기에 비유하기도 하며, 향기를 이용해 향수를 만든다.색깔에 따라서 꽃말이 다르다. 흰색은 행복, 붉은색은 기억, 노란색은 승부, 보라색은 비애, 청색은 사랑의 기쁨이다. 스파르타에서는 히아신스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축제를 열고 있다.옛날 그리스에 아름다운 소년 히아신스가 있었다. 그는 태양의 신 아폴론과 바람의 신 제피로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나 제피로스보다 아폴론을 더 좋아하였다. 제피로스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어느 날 함께 원반던지기를 하면서 즐겁게 놀고 있는 것을 본 제피로스는 갑자기 질투심이 솟아올라 거센 바람을 불게 하여 아폴론이 던진 원반을 히아신스의 이마에 맞게 하였다. 그는 아폴론의 무릎에 기대어 죽고 말았다.피가 떨어진 땅에서 꽃이 피었다. 씩씩하고 아름다운 히아신스의 모습을 닮은 꽃이었다. 아폴론은 꽃을 어루만지며 슬퍼했다. “히아신스, 결코 너를 잊지 않겠다.” 그때부터 이 꽃은 `기억`이라는 꽃말과 함께 히아신스라 부르게 되었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2-04

석류나무

“메마른 가지에 석류 한 송이 / 가을은 외로운 석류의 계절”(장은숙 노래 `석류의 계절)석류의 원산지인 페르시아를 중국에서는 안석국(安石國)이라 한다. 처음 석류를 본 사람들이 그 울퉁불퉁한 모양이 마치 혹과 같다고 유(溜)라고 했고, 안석국에서 왔다고 하여 안석류라고 부르다가 후에 석류가 되었다.생김새 때문에 수류탄을 손 수(手), 석류 류(榴), 탄알 탄(彈)으로 쓴다. 손으로 던지는 석류 폭탄이란 의미이다. 석류는 여성에게 참 좋은 과일로 알려졌다. 석류에는 여성호르몬의 일종인 에스트로겐이 들어 있어서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녀들의 사랑을 받았다. 중국의 절세 미녀로 알려진 양귀비는 석류를 무척 좋아해서 당 현종은 양귀비를 위해 궁궐에 석류나무를 심었다. 서양에서는 코가 높은 미녀로 알려진 클레오파트라가 석류를 즐겨 먹었다.석류는 안에 많은 씨가 들어 있으므로 다산의 상징이었다. 혼례복인 활옷이나 원삼의 문양에는 포도와 석류문양이 많이 보인다. 포도·석류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처럼 자손을 많이 낳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혼례복뿐 아니라 민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또 석류의 모양이 보석을 간직한 보주머니 같아서 사금대(沙金袋)라는 별명까지 겸하여 부귀(富貴)의 뜻을 지니고 있어서 직물에 수놓이고, 건물 단청에도 그려졌다중국 제(齊)나라 안덕왕 연종이 이조수의 딸을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뒷날 황제가 왕비를 총애하자 왕비의 어머니인 송씨가 두 개의 석류를 황제에게 바쳤는데 여러 사람에게 물어도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이때 이조수가 말하기를 “석류는 껍질 속에 알갱이가 많은 과일입니다. 왕께서 혼인하시었으므로 왕비의 어머니가 그 자손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바친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황제는 크게 기뻐하여 이조수에게 좋은 비단 두 필을 하사하였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1-27

꽈리

“청사초롱 꽈리 초롱 / 육모 초롱 불 밝혀라 / 청사초롱 불 밝혀라 / 꿈길 천 리 아득한 길 / 꼭두각시 사뿐 온다.”(김영일 작사 `꽈리 초롱`)“꽈리 속에 / 잘디잔 씨알처럼 / 내 가슴에 가득 찬 얘기들을 / 후련히 쏟아 내며 꽈리를 불고 싶다.”(허정자의 시 `꽈리`)꽈리 모양을 닮은 것에 `꽈리`를 붙인다. 의학에서는 허파꽈리라는 말이 쓰이며, 꽈리를 닮은 풋고추를 꽈리 고추라 한다. 멸치조림에 들어 있는 쪼글쪼글한 고추가 꽈리 고추다. 열매 모양이 밤길을 밝히는 청사초롱 같다고 하여 `등롱초(燈籠草)`라고도 한다.꽈리 불기는 익은 꽈리 열매의 씨를 빼고 이것을 불어서 소리를 내는 놀이이다. 먼저 손으로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만지면 하얀 씨가 삐져나온다. 그다음에 입 안에 넣어 조심스레 굴리면서 씨를 다 빼낸다. 쌉쌀하면서도 달달한 맛을 즐기며 씨를 빼낸 뒤 뽀드득 소리를 냈다. `빨간 꽈리 입에 물고 뽀드득뽀드득 / 동글동글 굴리다가 뽀드득 뽀드득…. / 병아리야, / 너희들도 빨간 꽈리 불어보고 싶으냐.` 동요를 부르며 즐겁게 불었다.옛날에 노래를 잘 부르는 꽈리라는 소녀가 있었다. 어느날 꽈리는 마을의 큰 잔치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질투심이 많은 양반집 딸이 음모를 꾸몄다. 잔치에서 꽈리가 노래를 시작하자 동네 불량배들이 나서서 모욕을 주며 방해했다.수줍어서 도망친 꽈리는 마음의 병이 커져 몸져누웠다가 죽고 말았다. 이듬해 봄, 꽈리의 무덤가에는 한 포기의 풀이 돋아났다. 가을이 되니 새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는데 가만히 밖을 내다보는 붉은색의 열매 모습이 꽈리의 수줍어하던 모습 그대로였다.사람들은 그 꽃을 꽈리라고 불렀고, 꽈리는 특히 소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입에 물고 다니면 노래를 잘 부른다 하여 꽈리를 물고 다녔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1-20

감나무

“목이 시린 하늘 드높이 /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 새 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 쭈구렁 바가지로 쪼아 먹히고”(황송문의 시`까치밥` )감나무는 알수록 경이롭다. 잎이 넓어서 글을 쓸 수 있으니 문(文), 단단하여 화살촉을 만드니 무(武), 겉과 속이 똑같이 붉으니 충(忠), 홍시는 이가 빠진 노인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효(孝), 서리 내린 후에도 떨어지지 않으니 절(節). 감나무는 오상(五常)을 지녔다.잎이 푸르고, 꽃은 노랗다. 열매는 익으면 붉고. 곶감 분은 희며, 나무의 속심은 검다. 청(靑) 黃(황) 赤(적) 白(백) 黑(흑), 감나무의 오행색(五行色)을 예찬한다.조선시대 의서 `향약집성방`에는 감나무를 칠덕수(七德樹)라 했다. 오래 살며(壽), 그늘이 있어 시원하고(多陰), 새가 집을 짓지 않으며(無鳥巢), 벌레가 모이질 않고(無蟲襄), 단풍이 아름다우며(桑葉萬玩), 동짓날에도 먹는 생과일로 (冬至鮮果), 낙엽이 커서 글씨를 쓸 수 있는(葉肥大)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좋은 나무라 했다.깊은 겨울밤 배고픈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왔다. 불 켜진 집을 들여다보니 엄마가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있다. 엄마는 밖에 호랑이가 와 있다며 겁을 주었다. 호랑이는 자기가 온 줄 아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는 더 크게 울었다. 아기가 자기를 무서워 않아서 또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곶감을 주겠다고 하자 울음을 뚝 그쳤다. 호랑이는 곶감이 자신보다 더 무섭고 사나운 짐승인 줄 알고 달아나 버렸다.정건은 공부하고 싶었지만, 종이와 붓을 살 돈이 없었다. 큰 감나무가 있는 절에 가서 감나무 잎을 한 아름 가져왔다. 그 잎에 글을 써서 공부를 하여 후에 장원 급제를 하였다. 관리가 된 장건은 예전에 감나무 잎에 써 놓았던 글과 그림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황제에게 바쳤다. 현종은 매우 기뻐하며 뛰어난 실력과 노력을 칭찬하고 큰상을 내렸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1-13

자귀나무

합환목(合歡木),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 합혼수(合婚樹)라 부르며, 소가 잘 먹는다고 소쌀나무라고 한다. 자귀나무는 신혼부부 방 창가에 심어 부부 금실이 좋아지기를 바랐다. 그 이유는 밤이 되면 펼쳐져 있던 작은 잎들이 서로 합해져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식물에는 미모사, 자귀풀, 괭이밥이 있다. 낮에는 광합성을 해야 하니까 최대한 잎 면적을 넓혔다가 밤이 되면 에너지나 수분 증발을 방지하고, 초식 동물에게 뜯어 먹히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잎을 닫는다. 꽃을 따서 말려 베개 속에 넣어두면 향긋한 꽃향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고 한다. 잎은 말렸다가 차로 달여 먹기도 하고, 사찰에서는 향 대신 피우기도 했다. 꽃 핀 모습이 분홍색 우산을 펼친 것처럼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면서 무려 백여 일 동안 화려하게 핀다.옛날`장고`라는 청년이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집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 집에 들어가고 말았다. 꽃구경에 정신이 팔렸는데 부엌문이 살며시 열리며 예쁜 처녀가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했고, 장고는 꽃 한 송이를 꺾어서 처녀에게 주며 청혼을 했다. 신혼 생활 몇 년간은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읍내로 장을 보러 갔던 장고가 그만 술집 여인에게 빠졌다. 장고의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다시 돌리기 위해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백 일째 되던 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언덕 위에 피어있는 꽃을 꺾어다가 방안에 꽂아 두어라.` 하였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언덕에 올라가 꽃을 꺾어다 방안에 꽂아 두었다. 남편은 그 꽃을 보고 옛 추억에 사로 잡혔으며, 잘못을 깨닫고 아내에게 돌아왔다. 그 꽃은 아내를 얻기 위해 꺾어 바쳤던 자귀나무 꽃이었기 때문이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1-06

목화

“목화는 / 일 년에 두 번 꽃이 핀다네. / 봄날 피는 꽃만이 꽃이랴. / 눈부신 꽃만이 꽃이랴.”(박노해의 시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꽃으로 솜 꽃으로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는 시를 읽으면 정순 왕후 간택 이야기가 떠오른다. 영조는 꽃 중에는 어떤 것이 제일 좋으냐고 물었다. 왕비 후보들은 저마다 모란꽃, 연꽃, 매화꽃이라고 대답했지만, 정순왕후만은 목화라고 답했다. 왕이 이유를 묻자 다른 꽃들은 한 시절만 좋은 데 불과하지만 오직 목화는 천하 사람들의 옷이 돼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공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문익점은 1363년 이공수를 따라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뜻하지 않은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고려에서는 볼 수 없는 무명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목화에서 실을 뽑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려도 저런 목화를 재배하기만 하면 백성들이 따뜻하고 질긴 무명옷을 입을 수 있겠구나. 저 목화씨를 우리나라로 가지고 가야겠다.` 문익점은 백성들을 추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당시 원나라에서는 목화씨와 그 재배 방법이 나라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1363년 귀양이 풀려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문익점은 관리들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붓두껍 속에다 목화씨를 숨겨 나오는 데 성공했다. 고려로 돌아온 문익점은 고향 산청으로 가서 장인 정천익을 찾았다. 문익점은 중국에서 어렵게 가져온 목화씨 10개 중에 다섯 개는 자신의 밭에 심고 나머지 다섯 개는 장인에게 주어 심게 했다. 문익점이 심은 씨는 모두 썩었고 정천익이 심은 것은 겨우 한 개만 싹을 틔웠다. 두 사람은 정성껏 그 싹을 키웠다. 초가을 드디어 목화가 피었다. 3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목화 재배에 성공하여 전국에 목화씨를 퍼지게 하였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0-30

백합

어여뻐라 순결한 흰 백합화야 그윽한 네 향기 영원하리라.(김호 작사, 김성태 작곡 `한 송이 흰 백합`)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찬송가 88장)기독교에서 가장 예찬하는 꽃이다. 기독교 의식에 많이 애용되어 온 백합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꽃이다.성경에는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라.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하고 있다.꽃의 향기가 좋아 꽃꽂이로 많이 이용되며 알뿌리로 번식한다. 비늘줄기는 먹고, 뿌리는 보약과 기침약의 원료로 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에서 백합을 장례식 때 사용하기 때문에 병문안 꽃 선물로는 꺼린다.백합에는 전설이 무척 많다. 기독교와 관련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이브는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 먹었다. 그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그 뒤 세상의 악과 괴로움 속에서 살면서 흘린 후회의 눈물이 땅에 떨어져 백합이 되었다.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겪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올랐을 때 모든 꽃은 슬픔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오직 백합만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자신만이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달이 밝게 비추게 하여 다른 꽃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백합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그 후로 고개 숙인채 꽃이 핀다.옛날 아리스라는 소녀를 탐내는 못된 성주가 있었다. 그녀는 갖은 방법으로 성주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힘이 모자랐다. 아리스가 꿇어앉아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어 향기 높은 백합꽃이 되게 했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0-23

튤립

꽃에는 꽃말이 있다. 튤립의 꽃말은 사랑이다. 색깔에 따라 다르다. 빨강색은 `당신을 사랑합니다`하는 사랑의 고백이다. 보라색은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 둘 다 긍정적인 사랑이다. 노란색은 가망 없는 사랑, 하얀색은 실연, 검은색은 짝사랑이 꽃말이다. 튤립은 완전히 개화되지 않은 상태가 가장 아름답다. 모양은 계란형이나 끝은 장미 한 송이를 넣어둔 것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17세기 경제적 호황을 맞은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은 부의 상징이었다. 우아한 자태와 이국적인 모양은 부호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는데 튤립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튤립 구근 한 뿌리이면 집 한 채도 살 수 있을 정도였다.작은 마을에 튤립이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녀에게 세 명의 청년이 동시에 청혼했다. 한 명은 왕자였고, 두 번째 청년은 용감한 기사, 세 번째 청년은 돈이 많은 상인의 아들이었다. 왕의 아들은 “만일 나와 결혼해 준다면 나의 왕관을 그대의 머리에 얹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기사는 “나는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인 보검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돈 많은 상인의 아들은 “내 금고 속에 가득 들어있는 황금을 전부 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소녀는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들은 너무나 좋은 분들이군요”라고 말하면서 모두 거절해버렸다. 청년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제일 좋은 조건을 걸었다는 생각에 결혼해달라고 끈질기게 청혼을 했지만 소녀가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자, “나중에 너는 평생 동안 결혼도 하지 못할 여자”라는 욕을 퍼붓고 모두 떠나버렸다. 소녀는 병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이 세상을 떠났다. 꽃의 여신 플로라는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꽃으로 만들어 주었다. 꽃은 왕관을 닮았고 잎은 칼 모양에 구근은 황금빛이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0-16

꽃며느리밥풀

붉은 보라빛으로 아래 꽃입술에 도드라진 두개의 하얀 밥풀 같은 무늬를 머금고 피어나는 꽃며느리밥풀은 흔히 며느리밥풀꽃이라 불리우는 반기생 풀이다. 반기생이란 다른 식물(숙주)로부터 영양분을 완전히 의존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엽록소를 가지고 광합성을 하면서 숙주로부터는 부족한 일부를 흡수하여 살아가는 식물을 말한다. 꽃며느리밥풀을 비롯해서 흰며느리밥풀, 애기며느리밥풀, 흰애기며느리밥풀, 알며느리밥풀 새머느리밥풀, 수염며느리밥풀, 흰수염며느리밥풀, 털며느리밥풀 등이 있다. 민간에서 풀 전체를 진정제와 혈압을 내리는데 사용한다.산골 마을에 젊은 내외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착하고 부지런한 두 사람은 열심히 일했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심한 흉년이 들어 끼니를 이어가기 힘들게 되자 남편은 아랫마을에 머슴으로 갔다. 오두막집에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남게 되었다. 며느리는 남편이 머슴살이로 가면서 미리 받은 곡식을 아껴 시어머니에게는 죽을 끓여드리고 자기는 부엌에서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시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머슴살이하는 남편은 주인이 보내주지 않아 집에 오지 못하고 시어머니와 둘이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며느리는 꼭꼭 간직해두었던 쌀 한 줌으로 제삿밥을 짓다가 밥이 다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밥 몇 알을 입에 넣었다. 시어머니는 솥뚜껑 여는 소리가 나자 문구멍으로 부엌을 훔쳐보다가 며느리가 밥알을 입에 넣는 것을 보자 뛰어나가 부지깽이로 며느리에게 심한 매질을 했다.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온갖 일에 약해져 있던 며느리는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무덤에 며느리의 입술빛을 닮은 꽃이 피어났다. 그 꽃에는 흰 밥풀 두 알이 묻어 있었다. 며느리의 슬픈 이야기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불렀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10-09

개구리 밥

개구리밥을 부초(浮草), 평초(萍草) 또는 부평초(浮萍草)라고 부른다. 부평 같은 이내 신세 혼자서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고복수 노래`타향살이`) 너는 알리라 내 마음을 부평초 같은 마음을(현철 노래 `내 마음 별과 같이`) 이외에도 박윤경의 `부초`와 김용임의 `부초 같은 내 인생`은 노래 제목이 `부초`이다. 몸과 마음이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신세타령이다. 개구리밥도 잎 뒷면에 흰색 꽃이 피지만 너무 작아서 보기 어렵다. 템나 공주는 태어날 때 유명한 점술가로부터 점괘를 받는다. 밤에 춤추는 것을 삼가라. 만약 밤에 춤을 추면 공주가 제일 아끼는 것을 모두 잃게 되리라. 원래 내성적이고 남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공주에게는 이 말이 별로 걱정거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왕과 결혼하고 난 뒤부터 공주에게 춤추는 기회가 많아졌고 자주 춤을 추다 보니 밤에 춤추지 말라고 하는 예언이 떠오를 때마다 춤추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산에 해가 지려고 하면 춤을 딱 멈추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공주가 춤출 일이 줄어들었다. 이웃 나라와 긴 전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왕도 세 왕자도 모두 전쟁터로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승리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왕과 세 왕자가 모두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밤이 되자 횃불을 들고 승전의 노래를 부르는 백성들로 거리는 만원이었다. 이제까지 춤을 추지 못했던 백성들은 축하의 마음을 담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공주도 예언 때문에 지금까지 잘 지켜오던 밤에는 춤추면 안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함께 춤을 추고 말았다. 얼마 되지 않아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왕과 세 왕자를 태운 배가 돌아오는 길에 뒤집혔다는 불행한 소식이었다. 공주는 기가 막혀서 맨발로 냇가로 달려갔지만 모두 사망한 뒤였다. 백성들은 강가 언덕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공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흘렀다.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방울 하나하나가 개구리밥이 되어 떠내려가고 있었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