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진달래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김소월 `진달래꽃`)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이용복 `어린 시절`)진달래는 이른 봄부터 온 산을 붉게 수놓아 봄의 정취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꽃이다. 예로부터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 불렀고 화전을 만들거나 술을 담가 먹기도 하는데 진도의 홍주는 유명한 진달래술이다.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하기 때문에 꽃과 뿌리를 섞어 빚은 술을 두견주(杜鵑酒)라 한다. 이 술은 담근 지 100일이 지나야 맛이 난다고 백일주란 이름을 얻었다. 한꺼번에 많이 먹지 말고 조금씩 먹어야 몸에 좋다.진달래와 구별해야 할 꽃으로 철쭉이 있다. 진달래꽃이 진 다음에 연달아서 핀다고 하여 철쭉을 연달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철쭉은 꽃잎에 주름이 잡혀 있으며, 엷은 자줏빛에 검은 점이 박혀 있다. 꽃과 꽃대에 끈적끈적한 점액이 있는 점도 진달래와 다르다. 또 철쭉에는 독이 있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참꽃과 대조적으로 먹을 수 없다고 개꽃이라 한다. 곳에 따라 수달래라고 부르기도 한다옛날 진씨 성을 가진 나무꾼이 우연히 선녀의 상처를 치료해 주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부부가 되어 같이 살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 예쁜 딸이 태어났는데 이름을 달래라고 지었다. 그녀는 예쁘게 자라 모든 이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사또가 달래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 했지만 거절하자 화가 난 사또가 고문을 하다가 죽이고 말았다. 나무꾼은 딸을 부둥켜안고 울다가 같이 죽었다. 그런데 달래의 시체는 사라지고, 나무꾼의 무덤에는 빨간 꽃이 피었다.사람들은 이 꽃을 나무꾼의 성인 `진`과 딸의 이름인 달래를 붙여 진달래라고 불렀다./김한성(수필가·한문지도사)

2015-04-17

개나리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윤석중 시 `봄나들이`).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하나.( 최계락 시 `꼬까신`).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 처녀. (최숙자 `개나리 처녀`).봄 이야기 너무 하고 싶어 잎새도 달지 않고 달려 나온 네 잎의 별꽃 개나리꽃. (이해인 시 `개나리`).온 세상을 노란 꽃물결로 만들어 봄이 왔음을 알리는 개나리는 우리나라가 원산인 우리 고유의 특산식물이어서 학명(Forsythia Koreana)에 koreana가 붙어 있다.우리나라에는 몇 종의 개나리가 있다.장수산 계곡에 사는 장수개나리, 산속 깊은 곳에 피는 만리화, 산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산개나리, 경북 의성의 의성 개나리.개나리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가지가 땅에 닿으면 곧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잘라 놓으면 마디에서 뿌리가 나온다.옛날 시골 어느 마을에 가난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홀로 딸 개나리와 두 아들을 키웠다.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던 중 어머니마저 병이 들었다. 여섯 살 난 개나리가 대신 동냥을 하여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했다.추운 겨울에 아궁이에 불을 지펴둔 채 네 식구는 서로 껴안고 잠이 들었다.날이 밝자 그 집은 터만 남았을 뿐 몽땅 불타 버렸다.다음해 봄이 되자 그 집터에서 나무가 돋아났는데, 바람에도 하늘거리는 연약한 가지에 네 갈래로 갈라진 노란 꽃이 피었다. 앙상하게 뼈만 남았던 개나리네 가족처럼 가지가 가늘고, 꽃잎은 개나리네 식구 수처럼 네 갈래여서 사람들은 그 꽃을 개나리라 불렀다. 개나리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핀다./김한성 (수필가·한문지도사)

2015-04-10

벚나무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무궁화를 뽑아내고, 궁궐에까지 벚꽃을 심었다. 해방이 되자 벚꽃을 베어버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벚꽃은 제주도가 원산지인 우리 꽃이다. 벚꽃의 종류는 많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왕벚나무, 수양벚나무, 산 벚나무, 섬 벚나무를 알 필요가 있다. 공원이나 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왕벚나무이고,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늘어진 수양 벚나무, 울릉도 특산식물인 섬 벚나무, 계곡이나 언덕배기에 잘 자라며, 팔만대장경 경판의 64%인 135장을 새긴 것이 산 벚나무이다.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라고 밝혀진 과정은 이러하다. 1908년 프랑스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가 제주도에서 `왕벚나무`의 표본을 채집했다. 이를 전해 받은 독일 베를린 대의 쾨네 박사가 1912년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임을 처음 알렸다. 1932년에는 일본 쿄토대의 코이즈미 켄이치(小泉源一) 박사가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을 재확인했다.1960년대 들어 제주와 전남 해남 등 `왕벚나무`자생지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한라산 신예리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56호로 지정되었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 산림청 임업 연구원에서 왕벚나무를 대상으로 DNA 지문 분석을 수행한 결과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도 한라산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병자호란을 겪고 중국에 볼모로 잡혀간 효종은 그때를 설욕하기 위해 북벌을 계획하였다. 국력을 기르기 위해 활을 만들 준비로 서울 우이동에 많은 수양 벚나무를 심었다. 애석하게도 그 뜻을 펴지 못하고 세상을 뜨자 지리산 화엄사의 벽암 스님이 뜻을 이어 경내에 많은 벚나무를 심었다. 천연기념물 38호인 수령 300여년 된 벚나무가 지금까지 남아 구국의 염원을 이어오고 있다./김한성 (수필가·한문지도사)

2015-04-03

목련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라. (조영식 시 김동진 곡 엄정행 노래 `목련화`)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양희은 `하얀 목련`)목련은 잎이 나오기 전에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먼저 핀다. 연꽃처럼 아름다운 꽃이 나무에 달린다 하여 목련(木蓮)이라 하고, 연못이 없는 절에서는 연꽃 대신 목련을 심어 향불화(向佛花)라 했다. 향기 나는 난초라 하여 목란(木蘭), 메운 맛이 나고 올라오는 싹의 밑동이 화살촉을 닮았다 하여 신이(辛夷)라 불렸다.정조 때 유금(柳琴)이 편찬한 사가시집(四家詩集)에 `이른 봄 목련꽃이 활짝 피는데/ 꽃봉오리 모습은 흡사 붓과 꼭 같구나.`라는 `목필화(木筆花)`에 관한 시(詩)가 실려 있다.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서기 48년 김수로왕이 왕비가 될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許黃玉)을 맞이하러 갈 때 `목란(木蘭)으로 만든 키를 바로 잡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서 그들을 맞이하였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목련은 오래전부터 건축이나 배(舟)를 만드는 목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옛날에 예쁜 공주가 살았다. 공주는 북쪽 바다 신을 사모하다 부모 몰래 궁을 빠져나와 그를 찾아 나섰다. 북쪽 바다에 도착한 공주는 그에게 아내가 있음을 알고 실망한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바다신은 공주의 넋을 달래기 위해 공주를 묻은 뒤 아내도 영원히 잠자는 약을 먹여 그 옆에 묻고 홀로 외롭게 살았다. 얼마 후 공주의 무덤에서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하얀 목련이 피어났고, 아내가 묻힌 무덤에는 못다 한 사랑 때문인지 붉은 목련이 피어났다. 무덤가에 핀 목련은 죽어서도 북쪽을 향해 꽃봉오리가 맺히고 있어 북향화(北向花)라 하고, 특히 하얀 목련을 공주의 넋이 피어났다 하여 `공주 꽃`이라 부른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03-27

산수유

전남 구례군 산동면은 산수유 산지로 유명하다. 약 1천년 전 중국 산동성의 처녀가 시집올 때 처음으로 가져다 심었다는 우리나라 최초 산수유 시목(始木)이 계천리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산동이라는 지명도 이 때문에 생겼다.경북 의성군에서도 산수유 꽃 축제가 열린다. 사곡면 화전리의 산수유 마을에는 300년생 산수유 3만 그루가 마을과 야산, 개울을 따라 20여리에 걸쳐 군락을 이루고 있다.산수유는 유기산이 많아 신맛이 나고 비타민도 풍부하여 건강식품과 미용 식품으로 쓰인다. 청력기능을 강화해 주고 눈의 피로회복과 월경주기를 규칙적으로 잡아주는데 도움을 준다. 산수유의 신맛은 근육의 수축력을 높여주고 방광의 조절능력을 향상시켜 아이들의 야뇨증과 노인들의 요실금에도 좋다.옛날에는 산수유 씨를 뺄 때 처녀들이 입으로 분리하였으며, 어릴 때부터 이 일을 한 산동 처녀들은 앞니가 많이 닳았다. 이런 산동처녀와 입맞추는 것은 보약을 먹는 것보다 이롭다고 알려져 산동 처녀를 서로 며느리로 들이려 했다. 이 지역에서는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산수유 꽃과 열매를 연인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편에 신라 48대 경문왕에 대한 설화가 있다. 왕은 임금 자리에 오르자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와 같아지니 왕후와 궁인들은 몰랐지만, 복두 만드는 공인(工人)만은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 이 일을 남에게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 도림사의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더니,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 뒤에는 다만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만 났다.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2015-03-20

수선화

“그대는 신의 창작집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불멸의 소곡/ 또한 나의 작은 애인이니/ 아아 내 사랑 수선화야/”(김동명 시, 김동진 곡, 조수미 노래`수선화`)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는 본문에 수선화란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이 시에 곡을 부쳐 양희은이 노래했다.수선화 하면 추사 김정희를 빼놓을 수 없다. 제주에 유배 가서 대정 들녘에 피어 있는 수선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다. 추사가 권교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수선화 향이 물씬 난다.“삼월이 되면 산과 들, 밭두둑이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린 듯, 백설이 드넓게 쌓인 듯해지는데,` 특히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것이 귀한 줄을 몰라서 소와 말에게 먹이고 발로 밟아버리기도 합니다. 또 보리밭에 많이 나는 까닭에 마을의 장정이나 아이들이 호미로 캐어버리는데, 캐내도 다시 나곤 하기 때문에 마치 원수 보듯 합니다. 사물이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다.” 추사는 자신의 처지를 버림받는 수선화에 견주고 있었다. 제자리를 얻지 못한 자신을. 추사의 수선화 사랑은 시로 나타났다.옛날 그리스에 나르시스라는 아름다운 목동이 살았다. 이 청년의 아름다움에 반한 님프들이 저마다 구애를 했지만, 그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님프들은 복수의 신 네메시스에게 나르시스에 저주를 걸어 달라고 했다. 어느 날 목이 말라 샘가를 찾은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물속의 아름다운 사람을 잡을 수 없고 물 밖으로 나오지도 앉자 가슴앓이만 하다가 죽게 되었다 이 모습을 가엽게 여긴 님프들이 샘가를 찾았을 때 그는 없고 죽은 자리에 꽃이 피어 있었다. 물가에 핀 수선화는 지금도 머리를 숙이고 물속을 내려다보고 있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3-13

매화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촉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암향조차 부동 터라.” (안민영 `매화사`)퇴계 선생의 매화 사랑은 유별나다. 선생께서는 자신이 지으신 매화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을 만드셨다.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임종 모습을 매화분재에 보이기 싫어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하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매화분재에 물을 주라”는 말씀을 남기셨다.매화(梅)는 난초(蘭), 국화(菊), 대나무(竹)와 함께 사군자로 일컬어진다.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피는 것을 설중매라 한다. 매화에는 홍매와 백매가 있다. 백매는 종종 벚꽃과 혼동한다. 실제로는 차이가 있지만 바람 불면 흰 꽃잎이 우수수 떨어져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향기로 구별할 수 있다. 매화는 향기가 짙다.매실로는 매실주를 담그고, 매화는 차로 마신다. 매화차는 기침과 갈증 해소에 좋으며, 맛보다는 향기를 즐기는 차이다. 말린 상태에서 오므리고 있던 매화 꽃봉오리가 물을 부으면 예쁘게 핀다. 찻잔 위에 활짝 핀 모습은 눈을 즐겁게 한다.옛날 어느 산골에 질그릇을 만드는 청년이 살았다. 그에게는 연인이 있었는데 약혼한 지 사흘 만에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그는 매일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 감동했는지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매화나무가 돋아났다. 그는 나무를 약혼녀의 넋이라 생각하며 집 마당에 옮겨 심었다. 그리고 일생 동안 돌보며 살았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대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집에 들어가 보았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 예쁘게 만들어진 질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릇 뚜껑을 열자 휘파람새 한 마리가 나왔다. 새는 매화 곁을 떠나지 않았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3-06

달맞이꽃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김정호 `달맞이꽃`)달맞이꽃은 월견초(月見草), 야래향(夜來香), 월하향(月下香)이라 부르기도 한다. 달을 맞이하듯 밤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달과 연관된 이름을 가졌다.월견초는 오래전부터 약재로 쓰였다. 뿌리는 열감기, 인후염과 기관지염에, 씨앗인 월견자(月見子)는 피부병, 당뇨, 고혈압 치료에 썼다. 씨앗에서 짠 `달맞이꽃 종자유`는 건강식품, 의약품, 화장품 원료로 이용한다.이 기름에는 불포화지방산인 리놀렌산이 많이 들어 있어 스트레스 수준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옛날 태양신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마을에 로즈라는 예쁜 아가씨가 살았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달리 낮보다 밤을 좋아했고, 태양보다 달을 더 좋아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결혼축제가 열렸고 상대를 고르는 순서는 엄격히 정해져 있었다. 전쟁이나 사냥에서 공을 세운 총각부터 마음에 드는 처녀를 고를 수 있었다. 청혼을 받으면 절대로 거절할 수 없었다.축제 날, 로즈는 1년 동안 사귄 추장의 작은 아들이 자기를 원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다른 처녀를 선택했다. 실망한 그녀는 다른 총각의 청혼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귀신의 골짜기로 추방되었다. 로즈는 그곳에서 달님을 바라보며 추장의 작은 아들을 손꼽아 기다렸다.1년이 흐른 후 추장의 아들은 사람의 눈을 피해 그녀를 찾아 나섰다. 골짜기에서 큰 소리로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는 달빛에 비친 한 송이 꽃을 보았다. 죽어서 꽃으로 변한 로즈는 밤이 오면 달을 보고 피어났다. 추장의 작은 아들과 사랑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죽은 것처럼 달맞이꽃도 두해살이풀이 되었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2-27

익모초

▲ 익모초는 꿀풀과 두해살이풀로 꽃말은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이다. “오월 오일에/ 아! 수릿날 아침 약은/ 천 년을 길이 사실 약이라고 바치옵니다./ 아으 동동 다리”(고려가요 `동동`)조선 후기의 `동국세시기`에도 단오의 풍습에 익모초 즙을 마신다는 대목이 있다. 익모초는 중국의 시경에 퇴라는 한자로 쓰여 지다가 송대(宋代)에 편찬된 `본초도경`에 익모초(益母草)로 이름이 바뀐다. 육모(育母), 임모(姙母)라는 별명으로 보아 여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때의 암눈비앗, 고려시대 때의 목비야차(目非也次)는 모두 눈과 관련이 있다. 익모초는 생리통 치료, 눈 건강, 신장 기능 개선, 자궁출혈 지혈, 체력향상, 더위 먹었을 때, 가려울 때, 수족냉증, 고혈압, 피부질환, 습진, 간 보호, 중풍예방 등에 좋다.약용으로 쓰는 익모초는 충위라고도 불리는데 씨앗은 충위자(充蔚子)라고 한다. 이년생이 되었을 때 잘라 그늘에서 말려야 약효가 뛰어나다. `신농본초경`에 익모(益母), 익명(益明)한다고 했고, 이시진의 `본초강목`에서는 풀과 씨는 부인병의 치료에 알맞고 눈을 밝게 한다고 했다.옛날 어린 소년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고 병을 얻어 고생이 심했다. 소년은 먼 마을의 약초꾼을 찾았다. 가난하여 이틀 분의 약만 주문하고 숨어서 살폈다. 다음 날 아침 어디론가 가는 그를 몰래 따라갔다. 캐는 약초를 멀리서 보고 있다가 같은 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다음 날 약초꾼이 와서 두 첩의 약을 주면서 하루 한 첩씩 달여 어머니께 드리라고 했다. 소년은 약초꾼이 가자마자 자기가 가져 온 풀과 비교해 보니 똑같았다. 소년은 약초를 캐서 열심히 어머니께 달여 드렸더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2-13

호박꽃

“호박꽃을 따서는/ 무얼 만드나/ 무얼 만드나/ 우리 애기 조그만/ 초롱 만들지/ 초롱 만들지.”(강소천`호박꽃 초롱`)“사랑의 꿀 가득 담고/ 어디든지 뻗어 가는/ 노오란 평화여/ 순하디순한 용서의 눈빛이여”(이해인`호박꽃`)못생긴 여자를 호박꽃이라 하지만 호박꽃을 자세히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잘못된 표현인지 알게 된다. 화려한 꽃일수록 질 때는 볼품이 없다. 그러나 호박꽃은 탐스러운 애호박까지 남겨 놓고, 몸을 조용히 오므린다. 애호박으로 된장국을 끓이고, 연한 호박잎은 데쳐서 쌈을 싸거나 국에 넣으면 맛이 일품이다. 호박엿, 호박죽, 호박전은 모두 건강식품이다.동의보감에 호박은 이뇨제여서 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부기가 심한 사람이 달여 먹으면 효험이 있다. 잘게 썬 호박을 햇볕에 바짝 말려 가루로 만들어 하루에 20그램씩 꾸준히 복용하면 인슐린 분비를 돕는다.호박씨는 질 좋은 불포화 지방산과 머리를 좋게 해주는 레시틴이 많이 들어 있다. 동맥경화, 편도선염, 이뇨제, 부종, 고혈압, 뇌졸중, 간이 약한데, 만성적인 기침, 천식, 어린이 백일해에 좋다. 호박에는 암을 억제하는 성분도 있다.옛날에 한 스님이 황금 종을 만들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금을 모았다. 정성을 다해 황금 범종을 만들다가 늙어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스님은 만들다 만 종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세상으로 보내 달라고 애원했다. 세상에 내려와 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 자신이 살았던 절은 흔적조차 없었다. 실망하여 바위에 앉아 있던 스님은 범종과 닮은 황금색 꽃을 발견하고 꽃줄기를 따라 파 보았더니 그곳에 만들다만 황금 종이 묻혀 있었다. 노력 끝에 종을 완성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지 쳐보았더니 종에선 황금빛 꽃이 피면서 누런 황금 열매가 달렸다. 황금빛 꽃은 호박꽃이었고 황금빛 열매는 호박이었다. 노란 호박꽃은 스님의 정성에 감동하여 범종을 찾게 하기 위해 부처님이 만들어 낸 꽃이었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2-06

질경이

질경이는 길 가운데나 옆에 무리 지어 산다. 생명력이 강하고 질겨 밟히고 밟혀도 끄떡하지 않고 자란다. 쓸모없어 보이는 이 풀이 인삼이나 녹용 못지않은 훌륭한 약초이며, 맛있는 나물이 된다. 질경이는 이름이 많다. 마차가 잘 다니는 길가나 바퀴자국이 난 곳에 잘 자라기에 차전초(車前草), 차과로초(車過路草), 차전채(車前菜)라 한다. 길옆에서 자란다하여 길경이, 길짱구, 길장귀라는 이름도 있다. 잎 모양이 개구리 배를 닮았다고 배부장이, 배짜개, 빼빼장이로 부른다. 이밖에도 부이, 대차전(大車前), 차피초(車皮草), 야지채(野地彩), 차화(車花), 우모채(牛母彩), 배합조개, 뱀조개씨, 마의초(馬醫草), 마제초(馬蹄草)라 한다. 씨는 차전자(車前子)로 중요 한약재로 쓴다. 동의보감에는 감기, 기침, 기관지염에 탁원한 효능을 보이고 간을 튼튼하게 해주며, 이뇨작용에도 도움을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질경이를 차전초(車前草)라 부르게 된 데에는 유래가 있다. 마무(馬武)라는 이름난 장군이 있었다. 어느 해 여름에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승전을 거듭하여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다가 넓은 들을 지나게 되었다. 가뭄이 심하여 강물이 바닥까지 말랐고 식량마저 떨어져 수많은 병사와 말들이 허기와 갈증으로 죽어 갔다. 살아남은 말과 병사들도 병에 걸려 피오줌을 누면서 차례로 죽어갔다. 군대는 전쟁에 이기고도 전멸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어느 날 마부가 수많은 말 가운데서 세 마리만 피오줌을 누지 않고 건강한 것을 알았다. 유심히 관찰했더니 마차 앞에 있는 이상한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그도 국을 끓여 먹었다. 하루쯤 지나자 피오줌이 그치고 기력을 되찾게 되었다. 이 사실을 장군께 알렸다. 모든 병사와 말이 이 풀을 먹고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1-30

솜다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서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브리 모닝 유 그리트 미” 하고 따라 불렀던 노래 때문에 에델바이스는 만년설 속에서 피는 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에델바이스가 국내에도 있다는 잘못된 생각은 `솜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들을 `한국의 에델바이스`라고 부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에델바이스를 떠올리면서 `한국의`를 빼고 그대로 에델바이스로 받아들이게 된 때문이다. 솜다리는 한라산·설악산·금강산 등 높은 산에서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이름의 유래는 `솜털이 달린 식물`이라는 뜻이다. 마치 솜으로 만든 별과 같다. 생명력이 강해서 눈보라치는 고산지대의 바위틈에서 가냘픈 뿌리를 내린다. 예전에는 조선화융초(朝鮮火絨草)라 했다. 화융은 부싯돌에 불이 붙도록 대는 물건을 뜻하므로 솜과 같은 의미가 있다. 얼마 전까지 설악산에서 자라는 것을 금강산에서 자라는 솜다리와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연구 결과 서로 다르다고 알려지면서 산솜다리로 분류 되었다. 산악 관련 단체에서 로고로 사용하는 것은 산솜다리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종류에는 산솜다리·솜다리·한라솜다리·설악솜다리·왜솜다리가 있다.이런 전설이 있다. 눈으로 뒤덮인 높고 험한 산꼭대기에 아름다운 소녀가 얼음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원래 천사였지만 하늘나라 생활에 싫증이나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어느 날 등산가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넋을 잃게 되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소녀에 관해 이야기했다. 젊은이들은 앞을 다투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많은 사람이 등산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이 사실을 안 소녀는 몹시 슬퍼하며 신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다. 천사는 빛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얼마 후 얼음집에 새하얀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은 그 꽃을 솜다리라고 불렀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1-23

메꽃

메꽃에는 큰메꽃, 갯메꽃, 애기메꽃 등이 있는데 갯메꽃에는 약간 독이 있어서 먹을 수 없고 다른 종류는 모두 먹을 수 있다. 새벽에 피어 저녁이면 시들므로 `낮 얼굴 꽃(晝顔花)`이라 하기도 하고, 잎이 단검 칼날처럼 뾰족해 `하늘 칼 풀(天劍草)`이라고도 한다. `미초(美草)`라고 부르는 것은 꽃이 예뻐서다. 메꽃을 선화(旋花)라고도 하는데 꽃이 선풍기처럼 태양을 따라 도는 향일화(向日花)이기 때문이다. 꽃이 피어도 열매를 보기가 어려워서 고자화(鼓子花)라 부르기도 한다. 씨가 아닌 포기나누기로 번식한다. 메꽃과 나팔꽃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혼동하기 쉽지만 나팔꽃의 화려함과는 달리 은은한 연분홍색 꽃이 핀다. 나팔꽃은 대낮에, 메꽃은 저녁에 오므라든다. 나팔꽃은 씨를 잘 맺지만 메꽃은 씨를 보기가 쉽지 않다. 꽃의 크기도 나팔꽃이 더 크다. 잎 모양을 보면 바로 구별할 수 있다. 나팔꽃의 잎은 둥근 하트 모양인데 비해 메꽃의 잎은 로켓이나 길쭉한 창 모양이다.메꽃은 구황식물로 어려운 시절 어린잎을 데쳐서 나물로 먹었다. 뿌리는 날것으로, 삶아서, 가루를 만들어서도 먹었다.옛날 장군의 연락병으로 근무하는 충성스런 병사가 있었다. 그는 돌격부대와 장군의 주력부대가 만날 수 있도록 길 안내를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돌격부대가 적진을 돌파하고 다음 목적지로 진격을 하였다. 병사는 갈림길에서 주력부대를 기다리다가 패전하여 후퇴하는 적군의 눈에 띄어 죽고 말았다. 적군은 주력부대의 방향을 바꾸려고 병사가 표시해 놓은 방향표지판을 돌려놓았다. 이 사실을 모르고 진격을 하던 장군은 충성스런 병사가 없음을 이상히 여겼다. 그때 나팔모양의 꽃이 눈에 띄었다. 그 꽃은 무언가를 호소하듯 간절한 모습으로 피어있었다. 장군은 연락병이 죽었음을 알아차리고 표지판을 따라가지 말고 꽃이 가리키고 있는 표지판의 반대쪽으로 전진하라고 명령했다. 장군은 앞서간 돌격부대와 만나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1-16

나팔꽃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나팔꽃을 보면 동요 `꽃밭에서`가 떠오른다. 나팔꽃은 왼쪽으로 감는 덩굴 식물이다. 새벽 서너 시에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해 아침에 활짝 핀다.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로 불리는 이유다. 오후가 되면 꽃잎이 시들어 떨어진다. 꽃의 수명이 짧지만 그 사이에 씨를 맺는 것이 놀랍다.나팔꽃은 대기오염 물질인 오존이나 이산화황에 민감하게 반응해 들깨, 사루비아와 함께 오염의 정도를 알아보는 지표식물로 쓰인다. 새까맣게 광택이 나는 나팔꽃의 씨를 `견우자(牽牛子)`라고 하며 약재로 쓴다. 이런 이름이 붙은 까닭은 소가 끄는 수레에 나팔꽃을 싣고 다니며 팔았기 때문이다.옛날 그림을 잘 그리는 화공이 예쁜 부인과 살고 있었다. 화공의 부인은 세상에 둘도 없는 미인이었다. 마을을 다스리는 원은 마음씨가 아주 나빴다. 부인을 잡아들여 꾀었으나 거절하자 조그만 창문 하나만 뚫려 있는 어두컴컴한 성 꼭대기 방에 가두었다. 부인은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아내를 뺏긴 화공은 원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방에 틀어박혀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을 가지고 부인이 갇혀 있는 성으로 달려갔다. 그림을 성 밑에 파묻고 높은 성벽만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 후 아내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며칠 동안 계속 똑같은 꿈을 꾸었다. 남편이 꿈에 나타나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들을 수 없었다. 부인은 이상히 여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둘러보았다. 그런데 감옥 창살 바로 아래에, 지금까지 없었던 가느다란 한 줄기 덩굴이 올라와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꽃이 남편의 넋임을 알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꽃은 아내의 작은 소리라도 듣기위해 그리고 아내에게 잘 들리게 하기위해 나팔 모양의 꽃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나팔꽃`이라 불렀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1-09

인동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꿋꿋이 견뎌내는 인동(忍冬)은 오른쪽으로 감는 덩굴 식물이다. `겨우살이덩굴`, `인동`, `인동초`, 금은등`, `금은화` 등으로 불린다. 중국에서는 금은화를 `만병의 약`이라고 하며, 인삼보다 효과가 우수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일본에서도 건강을 지키는 `약(藥)의 영웅`으로 취급하여, 신사(神社)에서 행하는 약의 제(祭)에 인동덩굴의 잎과 인동술을 올린다.흰 꽃이 노랗게 변하는 건 벌과 나비에게“나는 수정을 끝냈으니 옆의 꽃을 찾아주세요”라는 신호라고 한다. 이웃 꽃을 생각하는 인동의 아름다움을 알고 나니 더욱 곱고 향기롭다. 나는 남을 위해 얼마나 배려하며 살았는가? 나를 돌아보며 인동에게 배우게 된다.옛날 어느 부부가 예쁜 쌍둥이 두 딸을 낳았다. 두 딸이 너무 예뻐서 언니는 금화, 동생은 은화라고 불렀다. 자라면서 아름답기가 선녀 같고 마음씨가 고와 마을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정다운 두 자매는 그림자처럼 같이 행동하며 늘 우리는 같은 날 태어났으니 헤어지지 말고 오래오래 살다 같은 날 죽자고 했다.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금화가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 은화는 온 정성을 다하여 언니를 간호했지만 불행하게도 은화마저도 같은 병을 얻었다. 자매는 죽어서 약초가 되어 병들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같은 날 죽고 말았다. 금화와 은화가 묻힌 무덤가에서는 한 줄기 덩굴식물이 자라더니 희고 노란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며 향기를 그윽하게 내품었다. 얼마 후 이 마을에 열병이 돌기 시작하였고, 그때 이 꽃을 달여서 먹고 나서 병이 낫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꽃을 두 자매의 넋이라 여기며 금은화(銀花)라 하였다. 그 후 사람들은 겨울의 북풍한설에도 잎이 시들지 않고 떨어지지 않는다 하여 인동이라 부르게 되었고, 꽃은 해독, 해열 등 약용으로 쓰게 되었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5-01-02

능소화

일명 양반꽃. 옛날에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다. 일반 상민집에 능소화를 심어 가꾸면 곤장을 때려 다시는 심지 못하게 했다.이 꽃은 아름다운 이별 자세를 보여준다. 자신을 꽃피운 가지에서 시들지 않는 꽃이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이별의 시간이 찾아오면 스스로 땅으로 떨어져 땅 위에서 시든다. 세상의 많은 꽃들은 가지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그 가지에 매달려 시든다. 능소화는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뒷모습처럼 아름다운 순간에 자신의 가지를 떠난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비어 있는 골목길을 아득히 바라보면서 능소화는 기다리고 있다.이 꽃을 `구중궁궐의 꽃`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옛날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이 되었으나 후궁들의 시샘과 음모로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빈은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오다가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걱정하며 담장을 서성이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 너머를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을 보냈다.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으로 세상을 뜬다. 잊혀진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루지 못한 채 “담장가에 묻혀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다”라고 말한 그녀의 유언에 따라 묻힌다.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다. 이꽃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 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하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4-12-26

작약

일명 함박꽃이라고도 하는 작약은 모란이 지고나면 따라 핀다. 꽃이 아름답고 약용으로 뛰어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중국에서는 모란을 `꽃의 왕`이라 하여 화왕(花王)이라 했고 작약을 `꽃의 재상`이라 하여 화상(花相)이라 했다. 약재로 뛰어났던 것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작약의 속명은 패오니아(Paeonia)이다. 패오니아는 그리스 신화에 여러 신들이 서로 싸울 때 받은 상처를 의사 패온(Paeon)이 작약을 최초로 사용하여 치료하였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작약은 한방에서 기본적으로 갖춰 놓아야할 5대 약재 가운데 하나이다. 뿌리를 말린 것을 달여 복용하면 신경이나 근육의 긴장을 누그려 뜨려 복통이나 신경통 등 통증을 멈추게 한다. 빈혈로 인해 일어나는 팔이나 다리 등의 근육경련에도 감초와 함께 섞어 사용하면 효과가 있다. 아침부터 피었다가 해가지면 꽃봉오리를 오무린다고 해서 인지 꽃말은 수줍음, 부끄러움이다. 작약은 부케로도 많이 쓴다. 꽃이 크고 화려해서 조금만 꾸며도 멋진 부케가 되기 때문이다. 작약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 파에온이라는 공주가 사랑하는 왕자를 싸움터에 보내고 혼자서 살고 있었다. 공주는 왕자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왕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수많은 세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눈먼 악사 한 사람이 대문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공주는 그 노랫소리가 너무 구슬퍼 귀를 기우려 자세히 듣다가 깜짝 놀랐다. 그 노래는 왕자가 공주를 그리워 하다가 마침내 죽었다는 사연이었다. 왕자는 죽어서 모란꽃이 되어 머나먼 이국땅에서 외롭게 살고 있다고 했다. 공주의 슬픔은 헤아릴 수 없이 컸다. 공주는 장님이 부르던 노래 속에 나오는 나라를 찾아갔다. 과연 모란꽃이 있었다. 공주는 그 모란꽃 곁에서 열심히 기도했다. “다시는 사랑하는 왕자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해 주소서!” 공주의 정성은 마침내 하늘을 감동 시켰다. 공주는 모란꽃 옆에서 예쁜 작약으로 변하게 되었다. 모란이 남성적이라면, 작약은 여성적인 꽃이라 할 수 있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4-12-19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바구니 철철철 다 넘는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요….” 민요가락에 오르내릴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도라지는 그만큼 밥상에도 자주 오르는 산나물이다. 도라지는 꽃봉오리가 풍선처럼 생겼기 때문에 영어로 Balloonflower(풍선꽃)라 한다. `풍선꽃`은 밤에 활짝 터지는데 그 모양이 밤하늘의 별과 같아 여름밤 도라지 밭은 별 밭이 된다.한방에서는 도라지를 길경(桔梗)이라 하고 약재로 쓴다. 길경은 동의보감의 주된 약재 42가지 중 하나로 길경이 포함된 처방 종류만 278종이다. 도라지는 숨이 찬 것, 목이 아픈 것, 가슴·옆구리가 아픈 것을 낫게 한다. 인삼에 비해 수명은 짧지만 땅속 양분을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흡수해 영양분은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오래 생장할수록 이눌린 성분이 풍부해져 혈당강화, 면역력 강화는 물론이고, 강력한 항암효과까지 나타낸다.옛날, 어느 마을에 이름이 도라지라는 소녀가 의지할 곳 없이 오빠와 단 둘이 외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오빠는 10년 기약으로 중국에 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다. 도라지는 날마다 오빠의 안녕을 빌며 기다렸다. 10년이 지나도 오빠가 돌아오지 않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세월을 보냈다.그러던 어느 날 중국에서 오빠와 함께 공부를 했다는 사람이 찾아 왔다. 그는 오빠와 같이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풍랑을 만나 자기는 구사일생으로 살아왔지만 오빠는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도라지는 이 말을 듣자 그 자리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듬해 여름, 그 지리에 보랏빛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도라지꽃이라고 불렀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4-12-12

갈대

파스칼이“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약하지만 생각할 수 있으므로 위대하다는 말이다. 갈대를 노래한 시와 가요도 수 없이 많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박일남)“바람에 흔들리는 나는 갈대 눈보라 몰아쳐도 말없는 신세”(윤시내`갈대`)“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집 창가에”(이정옥`숨어우는 바람 소리`)“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베르디의 오페라`리골레토` 제3막에 나오는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오페라는 쟝발장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환락의 왕`을 그 모티브로 한다.갈대는 쓰임도 다양하다. 어린 순은 식용하며 이삭은 빗자루를 만들고 이삭의 털은 솜대용으로 사용하였다. 줄기는 갈대발, 삿자리 등을 엮는데 쓰이고, 펄프원료로도 이용한다. 한방에서는 봄에서 가을 사이에 채취하여 수염뿌리를 제거하고 햇볕에 말린 것을 약재로 사용하며, 부위에 따라 뿌리줄기를 노근(蘆根), 줄기를 노경(蘆莖), 잎을 노엽, 꽃을 노화라 하여 이뇨·해열·해독에 사용한다.우리나라 4대 갈대밭은 시화호갈대밭 (경기), 순천만갈대밭 (전남), 고천암호갈대밭 (전남), 신성리갈대밭 (충남)이다.공자의 제자 민자건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와 함께 살았다. 계모는 두 아들을 낳자 그를 몹시 구박하였다. 추운 겨울 두 아들에게는 두꺼운 솜옷을 입히고, 그에게는 갈대이삭에 붙은 털을 넣어 만든 외투를 입혔다. 그러나 불평 없이 추위에 떨면서 견뎠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노하여 계모를 쫓아내려하였지만, 그는 계모를 감쌌다. 계모는 그동안 자신을 친아들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며 아버지를 설득했고, 아버지는 자건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하여 계모를 용서하였다. 계모도 그 일이 있은 후 친아들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민자건은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24효자 중의 한 사람이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4-12-05

억새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지만 갈대와 억새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단풍은 기상상황에 따라 기복이 심하지만, 갈대와 억새는 크게 변동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그래서 단풍을 잘 토라지는 까칠한 애인에, 갈대와 억새는 넉넉한 미소가 아름다운 동반자와 닮았다고 한다.억새는 하나일 때보다는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여럿보다는 커다란 무리로 모여 있을 때 더 아름답다. 갈대와 억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갈대는 우리나라 전역의 습지 및 냇가, 강가에 흔히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며 색은 옅은 갈색이다. 어떠한 땅에서도 억척같이 잘 자란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인 억새는 주로 산에서 살며, 꽃은 하얀색이다. 산에는 억새풀 해안가나 호수가는 갈대로 생각하면 쉽다. 그러나 산의 계곡 물가에도 갈대가 자라고 있으므로 특징을 잘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 우리나라 5대 억새 군락지는 창녕 화왕산, 장흥 천관산, 포천 명성산, 밀양 사자평, 정선의 민둥산이다. 으악새는 억새의 경기도 사투리이다.옛날, 천상과 지상을 오가며 신의 명령을 전달하던, 흰 깃털을 가진 작은 새가 있었다. 사람들은 흰 종이에 소원을 적어 그 새의 깃털에 매달아 신들에게 전달했다. 가장 많은 소원은 겨울이 어디에서부터, 언제 오는지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은 그것만은 알려주지 않았다. 겨울을 다스리는 신은 게으른 자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던 새는 신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아주 몰래 흰 깃털을 휘날려 주어 겨울이 오는 방향을 일러주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겨울이 오는 방향을 알게 되었고, 무사히 겨울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은 곧 새가 한 짓을 알게 되었고, 새를 작은 섬에 가둔 뒤 다시는 하늘을 날지 못하도록 벌을 내렸다.새는 죽어서도 가녀린 풀로 다시 태어나 흰 깃털을 펄럭이며 사람들에게 겨울이 오는 길목을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그 풀를 억새라고 불렀다.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201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