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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모초

등록일 2015-02-13 02:01 게재일 2015-02-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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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모초는 꿀풀과 두해살이풀로 꽃말은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이다.
“오월 오일에/ 아! 수릿날 아침 약은/ 천 년을 길이 사실 약이라고 바치옵니다./ 아으 동동 다리”(고려가요 `동동`)

조선 후기의 `동국세시기`에도 단오의 풍습에 익모초 즙을 마신다는 대목이 있다. 익모초는 중국의 시경에 퇴라는 한자로 쓰여 지다가 송대(宋代)에 편찬된 `본초도경`에 익모초(益母草)로 이름이 바뀐다. 육모(育母), 임모(姙母)라는 별명으로 보아 여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때의 암눈비앗, 고려시대 때의 목비야차(目非也次)는 모두 눈과 관련이 있다. 익모초는 생리통 치료, 눈 건강, 신장 기능 개선, 자궁출혈 지혈, 체력향상, 더위 먹었을 때, 가려울 때, 수족냉증, 고혈압, 피부질환, 습진, 간 보호, 중풍예방 등에 좋다.

약용으로 쓰는 익모초는 충위라고도 불리는데 씨앗은 충위자(充蔚子)라고 한다. 이년생이 되었을 때 잘라 그늘에서 말려야 약효가 뛰어나다. `신농본초경`에 익모(益母), 익명(益明)한다고 했고, 이시진의 `본초강목`에서는 풀과 씨는 부인병의 치료에 알맞고 눈을 밝게 한다고 했다.

옛날 어린 소년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고 병을 얻어 고생이 심했다. 소년은 먼 마을의 약초꾼을 찾았다. 가난하여 이틀 분의 약만 주문하고 숨어서 살폈다. 다음 날 아침 어디론가 가는 그를 몰래 따라갔다. 캐는 약초를 멀리서 보고 있다가 같은 풀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약초꾼이 와서 두 첩의 약을 주면서 하루 한 첩씩 달여 어머니께 드리라고 했다. 소년은 약초꾼이 가자마자 자기가 가져 온 풀과 비교해 보니 똑같았다. 소년은 약초를 캐서 열심히 어머니께 달여 드렸더니 병이 깨끗이 나았다.

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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