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라. (조영식 시 김동진 곡 엄정행 노래 `목련화`)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양희은 `하얀 목련`)
목련은 잎이 나오기 전에 꽃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먼저 핀다. 연꽃처럼 아름다운 꽃이 나무에 달린다 하여 목련(木蓮)이라 하고, 연못이 없는 절에서는 연꽃 대신 목련을 심어 향불화(向佛花)라 했다. 향기 나는 난초라 하여 목란(木蘭), 메운 맛이 나고 올라오는 싹의 밑동이 화살촉을 닮았다 하여 신이(辛夷)라 불렸다.
정조 때 유금(柳琴)이 편찬한 사가시집(四家詩集)에 `이른 봄 목련꽃이 활짝 피는데/ 꽃봉오리 모습은 흡사 붓과 꼭 같구나.`라는 `목필화(木筆花)`에 관한 시(詩)가 실려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서기 48년 김수로왕이 왕비가 될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許黃玉)을 맞이하러 갈 때 `목란(木蘭)으로 만든 키를 바로 잡고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서 그들을 맞이하였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목련은 오래전부터 건축이나 배(舟)를 만드는 목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 예쁜 공주가 살았다. 공주는 북쪽 바다 신을 사모하다 부모 몰래 궁을 빠져나와 그를 찾아 나섰다. 북쪽 바다에 도착한 공주는 그에게 아내가 있음을 알고 실망한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바다신은 공주의 넋을 달래기 위해 공주를 묻은 뒤 아내도 영원히 잠자는 약을 먹여 그 옆에 묻고 홀로 외롭게 살았다. 얼마 후 공주의 무덤에서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하얀 목련이 피어났고, 아내가 묻힌 무덤에는 못다 한 사랑 때문인지 붉은 목련이 피어났다. 무덤가에 핀 목련은 죽어서도 북쪽을 향해 꽃봉오리가 맺히고 있어 북향화(北向花)라 하고, 특히 하얀 목련을 공주의 넋이 피어났다 하여 `공주 꽃`이라 부른다.
김한성 <수필가·한문 지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