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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스러운 하늘”···가을 장마에 벼 수확률↓·수발아 피해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5-10-26 15:58 게재일 2025-10-2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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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포항에 20일 넘게 비···벼 수확률 10%·2~3등급 머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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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추수철에 이어진 긴 가을 장마로 벼 수확에 차질이 생기면서 큰 피해가 우려된다. 26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매산리 들녘에서 농민 남상식씨(65)가 논에 고인 물을 빼면서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사진 왼쪽). 남씨는 벼 낟알에 싹이 튼 ‘수발아’ 피해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26일 오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매산리 논을 바라보던 남상식씨(65)의 표정은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10년째 벼농사를 짓는 남씨는 “폭염도 견뎠는데, 끝이 없는 이번 비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독한 10월 가을비가 참 잘된 벼농사를 망쳐버렸다”라면서 “식용으로 쓸 수 없는 수발아 벼 뿐”이라면서 혀를 찼다.

물이 빠지지 않은 논에 허리 높이까지 자란 벼들이 힘없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낟알에는 하얗게 싹이 돋았다. 손끝으로 문지르자 낟알 사이로 짧은 뿌리털이 밀려 나왔다. 진흙에 바퀴가 잠긴 콤바인의 운전석 창문에는 농민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처럼 빗방울이 흘러 내렸다.

남씨 논 옆에서 쓰러진 벼를 세우던 박정훈씨(47)는 “이 정도면 벼가 다 죽은 것이다. 이삭에서 새싹이 나면 도정도 못 한다”며 “콤바인이 들어갈 수 없어 결국 사람 손으로 해야 한다. 하루 종일 일해도 한두 줄밖에 못 한다”고 했다. 박씨는 “기름값, 인건비 오른 거 고려하면 적자가 뻔하다”라면 “하늘이 원망스럽다”며 힘겨워했다.

포항에서는 8800여 농가가 5630㏊ 면적의 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10월 들어 포항에 비가 오지 않은 날은 나흘 뿐이다. 20일 넘게 이어진 비에 논이 잠기면서 도복 피해가 전체 재배면적의 15%(845ha)에서 발생했고, 잠긴 논을 중심으로 수발아 피해가 번져 전체의 25%(약 1400ha)에 이르렀다. 누적 강우량은 175㎜로 평년(7.4㎜)의 22배에 이른다. 

수확도 늦어졌다. 포항의 벼 수확률은 예년 80%에 비해 올해는 10% 남짓이다. 젖은 벼는 등급이 떨어져 1등급 벼가 2~3등급으로 밀리고, 수발아가 심한 벼는 도정률이 평소 72%에서 65% 이하로 낮아진다. 

흥해농협은 피해 접수에 바빴다. 김현석 센터장은 “비가 이어지면서 누운 벼에 수발아가 집중적으로 생겼다”며 “보험 접수와 보험사 현장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포항시는 수발아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해 31일까지 신고를 받고 있다. 피해가 확인되면 1㏊당 약 100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재해보험 가입 농민은 별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차승형 포항시 식량대책팀장은 “자연이 만든 피해라서 행정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며 “비록 하늘이 만든 재난이지만, 농민들이 한 해 농사를 허무하게 날려버리지 않도록 끝까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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