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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등록일 2014-12-26 02:01 게재일 2014-12-2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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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소화는 능소화과 갈잎덩굴나무로 꽃말은 명예.
일명 양반꽃. 옛날에는 양반집 정원에만 심을 수 있었다. 일반 상민집에 능소화를 심어 가꾸면 곤장을 때려 다시는 심지 못하게 했다.

이 꽃은 아름다운 이별 자세를 보여준다. 자신을 꽃피운 가지에서 시들지 않는 꽃이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이별의 시간이 찾아오면 스스로 땅으로 떨어져 땅 위에서 시든다. 세상의 많은 꽃들은 가지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그 가지에 매달려 시든다. 능소화는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뒷모습처럼 아름다운 순간에 자신의 가지를 떠난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비어 있는 골목길을 아득히 바라보면서 능소화는 기다리고 있다.

이 꽃을 `구중궁궐의 꽃`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옛날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이 되었으나 후궁들의 시샘과 음모로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빈은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오다가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걱정하며 담장을 서성이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 너머를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림의 세월을 보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으로 세상을 뜬다. 잊혀진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루지 못한 채 “담장가에 묻혀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다”라고 말한 그녀의 유언에 따라 묻힌다. 빈의 처소 담장에는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다. 이꽃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담장을 휘어 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꽃잎의 모습이 정말 귀를 활짝 열어 놓은 듯하다.

김한성<수필가·전 군위초등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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