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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안재휘 논설위원4월 보궐선거가 다가오면서 여야 정치권의 난타전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여권은 점증하는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과 폭로를 제압할 요량으로 공작에 가까운 정치 이슈 생산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세상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장난질들이다. 작금 연일 벌어지는 일들을 획책하는 측에서는 ‘정략의 묘수’라고 할지 몰라도,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망국적 ‘국민 모독’으로 읽힌다.지난 1년여 사이에 일어난 검찰의 혼란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뭉개기 위해 권부가 일으킨 소란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검찰개혁’으로 포장된 ‘검찰 장악’ 내지는 ‘검찰 해체’ 공작은 ‘추-윤(추미애-윤석열) 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혼란을 넘고서도 여전히 굴러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도 끝내 검찰의 칼을 완전히 빼앗지 못하자 이번에는 ‘중대범죄수사처’를 들고나와 검찰을 아예 쭉정이로 만들자고 돌진하고 있다.국정원이 던져준 ‘이명박(MB) 정권의 불법사찰’ 폭탄을 받아서 마구 터트려대고 있는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집중포화가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부산 보궐선거전에서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MB정권 때 정무수석이었던 박형준 후보를 거꾸러트리려는 은밀한 정치공작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여당 정치인들이 번갈아 나서서 “고백하라”고 아우성이더니 입법 추진을 위한 당내 TF팀까지 설치하겠단다.서울시장 선거전에서 가장 뜨거운 정책 이슈는 역시 ‘부동산’ 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토교통부에 대해 “부처의 명운을 걸라”고 주문했고 변창흠 장관은 전국에 83만6천 가구의 주택을 보급하기로 한 2.4주택 공급정책과 관련해 “7월까지 사업지역을 선정해 올해 내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규제만 외치던 정부가 이젠 붕어빵 찍어내듯 ‘공급’ 청사진을 마구 찍어낸다.무지개 바람개비 돌리기에 대통령도 직접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위로 지원금, 국민 사기 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한복판에서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라는 전제의 선심공세는 아무리 보아도 좀 이상하다. 야당은 대통령을 향해 “매표(賣票) 행위”라는 맹비난을 쏟아내는 중이다.단순한 논리로 말하면, 정치권에서 ‘속 보이는’ 장난질이 계속되는 이유는 ‘그게 통하기 때문’이다. 그런 포퓰리즘 장난질이 무효하다면 정치꾼들이 왜 얼굴에 철판 깔고 정치공작을 벌이고 선동에 혈안이 될 것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씨알의 소리’를 창간해 민중운동을 전개하면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힘을 기울였던 바보새 함석헌(咸錫憲)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던 외침이 떠오른다.시대를 앞서가는 혜지를 지닌 새로운 인재와 시스템과 사상을 발굴해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생각하는 백성’, ‘깨어있는 국민’이 아니고는 이 나라를 지켜낼 방법이 없다.

2021-02-21

‘문비어천가(文飛御天歌)’는 왜?

안재휘 논설위원방랑시인 김삿갓이 환갑 잔칫집에 들러 시 한 수로 떡 벌어지게 한 상을 받아먹은 이야기는 ‘아부(阿附)의 힘’을 상징하는 일화다. 잔칫집에 들어선 김삿갓은 ‘저기 앉은 저 늙은이 사람 같지 않구나(彼坐老人不似人)’라고 시운을 뗀다. 노인의 아들들이 분기탱천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태연히 다음 구절을 읊조린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도다(疑是天上降眞人)’ 과장된 찬사에 주인들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냈다던가.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벌어진 웃지 못할 유명한 아부 역사도 있다. 광나루에서 낚시 중이던 이승만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당시 경기도지사 이익흥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고 아첨했다는 기록이 1956년 8월 1일 자 국회 속기록에 남아있다.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1445년(세종 27)에 편찬된 조선왕조의 창업을 송영(頌詠)한 125장에 달하는 서사시다. 한글로 엮은 책으로는 최초인 이 노래는 오늘날 극진한 ‘아부’를 빗대는 부정적 용어로 곧잘 동원된다.얼마 전 전남 신안군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는 전남도청 직원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 문구가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대통령님은 우리의 행복’, ‘왜 이제 오셨어요ㅠㅠ’,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대통령님,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무원들이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는 손팻말에는 ‘우주 미남’, ‘문재인 별로, 내 마음에 별로’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발적’이라는 전남도청의 뒤늦은 해명이 더 초라하다.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트위터에 올린 “오늘 문재인 대통령님 생신, 많이 축하드립니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입니다”라는 글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기사 댓글과 SNS에 조롱 비판이 잇따른다.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단어는 가장 낯간지러운 문비어천가(文飛御天歌)로 기록될 것 같다.정상적인 정치소통집단이 아니라 정의적(情誼的) 유대관계인 친문(親文) 조직의 확증편향과 절대다수 민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빚어내는 의회독주는 이 나라의 심각한 걱정거리다. 주거안정 붕괴, 탈원전 패착, 일자리 실패…정치사에 기록될 문재인 정권의 실책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팬덤과 진영정치에 기댄 끊임없는 ‘민심 갈라치기’로 권력의 벽을 구축해온 일은 치명적이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관을 29명째나 일방적으로 임명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력화시킨 오만도 그 역학의 결과물일 따름이다.문비어천가는 친문에 어필하기 위한 강력한 주문(呪文)이 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이 말도 안 되는 정치 수준을 대체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아부는 생사람을 잡을 뿐만 아니라, 군주의 눈을 멀게 해 나라를 망친다”던 소크라테스의 경고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요즘이다.

2021-02-14

‘토착왜구’ 선동 망국론

안재휘 논설위원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스탠퍼드대 교수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수법’에 관한 정리가 진한 공감을 부른다. “전체 국민을 ‘진짜’와 ‘부패한 엘리트’로 양분한 뒤에, 반대편을 불법적이고 비애국적인 악마로 낙인찍는 전략을 구사한다. 다음은 사법부를 내 편으로 채운 뒤에, 언론의 독립성을 압박하는 한편, 공영방송과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 선거구와 선거제도를 유리하게 조작하고, 선거 주관 기관도 내 편으로 채운다.”지난해 10월,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과 벌인 ‘토착왜구’ 설전에서 이념에 찌들어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초라한 지식인의 민낯을 들켰다. 그는 등단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토착왜구,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라고 말했다. 진중권이 이를 ‘광기’라면서 “이분의 영혼은 아직 지리산 어딘가를 헤매는 듯하다”고 맹비판하자, 조정래는 “대선배 작가에 대한 무례와 불경”이라며 신경질을 냈다.조정래의 발언 중에 정작 놀라운 내용은 “반민특위를 설치해 인구의 150만, 160만에 달하는 친일파들을 처단하자”는 대목이다. ‘책 장사’를 위한 의도된 도발이라는 해석이 있다. 조정래가 꺼내 든 ‘친일파 처단’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먹히는 ‘선동언어’라는 현실이 끔찍하다. 헐렁한 민심의 틈새를 파고드는 선동정치와 국민의 단세포적 반응은 통한을 부른다.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가덕도’에 더해 제안한 ‘한일 해저터널’ 공약을 놓고 민주당이 또다시 ‘친일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해저터널이 우리보다는 일본에 더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 공약은 ‘토착왜구 행각’이라는 선동이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같은 정책을 검토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민주당은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뒤늦게 괴발개발 변명을 늘어놓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다.문재인 정권의 악착같은 ‘친일 프레임’, ‘토착왜구’ 선동은 고질병이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식민사관’을 청산하는 일에는 모든 정권이 비겁했다. 역사교육 현장이 ‘식민사관’에 붙박인 ‘강단사학자’들로 장악된 현실 때문에 어느 정권도 학문적 수술을 감행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해야 할 일은 못하면서 상대방을 ‘토착왜구’로 몰아 때리는 유치한 선동에만 몰두하는 민주당의 행태가 참으로 고약하다.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오래고 지독한 영남권 갈등의 역사를 깡그리 뭉개고 ‘가덕도 신공항’ 광풍이 불고 있다. 맞서기는커녕 ‘원 플러스 원(1+1)’ 개념으로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끄집어내야 하는 제1야당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게 됐다. 자기들도 숱하게 내놓고 검토했던 해저터널 공약을 ‘친일’로 몰아가는 민주당의 망국적 선동정치는 더 한심하다. 모두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중우정치(衆愚政治) 한복판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끌려가고 있나.

2021-02-07

‘판관(判官)’들의 수난

안재휘 논설위원1952년, 자신을 살해하려는 육군 대위를 사살한 야당의 맹장 서민호(徐珉濠) 의원에 대해 1심 재판부가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하고 국회가 석방결의안을 통과시켰음에도 이승만 정권은 막무가내였다. 이때 안윤출(安潤出) 부장판사가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서 의원을 석방한다. 그러자 ‘백골단’, ‘땃벌떼’ 등 정체불명의 단체가 법원으로 몰려와 “안윤출을 죽이라”며 난장판을 벌인다.안윤출 판사는 그 후 3개월간 경기도 지방의 처가로 피신해 있었다. 대신 배석 판사들이 특무대로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이승만 정권은 기어이, 1958년부터 안윤출을 비롯한 연임 대상자의 4분의 1 이상인 20여 법관들을 잘라냈다. 4·19혁명 직전의 풍경이었다.지난해 21대 총선에서 국회 의석 절대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힘자랑이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점입가경이다. 아무래도 거대 여당은 다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해볼 기세다. 이번에는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가 현직 판사들을 ‘탄핵’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그 첫 번째 타깃이 된 인물은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다. 임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던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서 담당 재판장에게 유죄가 선고될 수 있도록 재판 진행을 지시하고 판결문을 미리 받아 직접 수정했다는 혐의를 받는다.직권남용 혐의의 재판에서 1심 재판부는 임 판사에게 재판개입은 인정되지만, 형사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지금은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임 판사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1심 판결문에 6차례 등장하는 ‘위헌적 행위’라는 대목이다.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여 인사들에 대해 한사코 ‘법적으로 무죄’라고 우겨오던 지금까지의 주장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또 다른 아시타비(我是他非)로밖에 읽히지 않는다.임 판사가 죄를 지었다면, 굳이 그를 두둔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야당의 비판대로 만약 민주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한 하나의 정략으로서 이 일을 벌인다면 심각한 문제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집행정지 인용, 정경심 동양대 교수 징역 4년,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의원직 상실형 선고 등 여권에 불리한 법원의 판결이 이어지던 끝이다. 행여라도 사법부를 겁박해 길들이겠다는 의도의 불장난이라면 이는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가뜩이나 ‘협치’·‘소수의견 존중’ 등 민주주의의 참다운 미덕이 모조리 사라져가는 시대에 ‘삼권분립’이라는 대들보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당은 이제 ‘할 수 있는 일’만 들여다보지 말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더 살펴보기를 바란다. 이승만 정권의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야당의 맹장 서민호 의원을 용감하게 풀어준 안윤출 판사는 “나는 석방 결정에 도장을 찍을 때 죽음을 각오했다”고 회고했었다.

2021-01-31

국민의힘, 또 ‘실패의 마법’에 걸렸나

안재휘 논설위원‘지는 것도 습관’이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 상대방에게 거듭 지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습관성 패배’를 의심해봐야 한다. 패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붙는다. 습관적으로 패배하는 자들은 대개 경우 ‘남 탓’이나 ‘핑계’를 달고 산다. 패배하는 습관의 결정적 이유는 뜻밖으로 간단하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번번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오는 4월 재보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또다시 ‘실패의 마법’에 걸려든 징조가 농후하다. 서울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밑도 끝도 없는 ‘단일화’ 논쟁 속에 기류가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다. 다 이긴 줄 알고 화려한 폭죽 준비에 여념이 없던 부산 선거판마저 정당지지율에서 순식간에 역전현상이 나타났다. 야권 후보들끼리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네거티브 선거전이 유권자들의 체머리를 흔들도록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집권당의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여론이 비등하면서 야당이 다소 유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보선은 철저하게 조직력 싸움이다. 서울에선 구청장 25명 중 여당이 24명, 국회의원 41명 중 여당이 35명이다. 부산지역 전체 구청장 16명 중 13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여론과는 상관없이,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조금도 유리한 구석이 없다.국민의힘은 지난해 총선참패의 원인을 잊은 채 여전히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여론이 기울었으니 ‘누워서 떡 먹기’일 거라는 오판이 똑같이 지배한다. 그래서 그런지 도무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능한 민주당은 더 밀어주기 싫다. 그런데 국민의힘을 선택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겠다”는 게 민심의 요체다.듣기 불편한 예감이겠지만, 이렇게 가면 더불어민주당이 또 크게 이긴다. 말썽이 나거나 말거나 민주당은 뭐라도 자꾸만 내놓는다. ‘가덕도 신공항’을 승부수로 띄우고 부울경 민심을 들쑤시는 전략은 대성공이다. 당 대표와 대통령이 짜고 친, ‘전 대통령 사면’ 논란도 영남 갈라치기를 노린 독약 묻은 먹잇감이다. 최대 이슈인 코로나19 대책을 놓고도 도무지 솔깃한 ‘대책’ 하나 선도하지 못하는 국민의힘 이슈파이팅 점수는 빵점이다.제1야당의 꼬리를 암팡지게 물고 통째로 삼키려는 안철수의 야망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국민의힘도 놀랄 정도로 과감한 ‘중도개혁’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꼴통보수’의 관성으로부터 확실하게 탈출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 못지않은 영남지역 중흥 비전을 당 차원에서 내놓고 설득해야 한다. 국민이 진정 원하는 감동적인 정책들을 선도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무조건 실패한다.여당 물어뜯기만으로는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국민의힘을 왜 찍어야 하지?”하는 유권자들의 근원적인 질문에 만족할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수구꼴통’의 악취에 자꾸만 발목이 잡히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한다. 집권당에 대한 비난에만 목을 매는 작금의 전략으로는 어림도 없다. ‘실패의 마법’을 끊어낼 극적인 반전이 필요하다.

2021-01-24

‘사면’과 ‘박해’ 사이

안재휘 논설위원1866년(고종 3년) 천주교 탄압 교령(敎令)으로 인해 베르뇌 주교를 비롯한 프랑스인 사제 12명 중 9명과 다수의 신자들이 체포된다. 사제들에게는 원한다면 본국 프랑스로 보내 주겠다고 제안하고, 신자들에겐 배교(背敎, 천주교 신앙을 버림)하면 석방해 주겠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사제들과 신자들은 이를 능멸로 받아들여 순교의 길을 택했다. 병인박해에서 십자가를 밟기만 하면 살 수 있는 길을 거부하고 잠두봉에서 순교한 교인들은 무려 8천 명을 헤아린다.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이 정가의 화두로 떠돈다. 애초에 ‘국민 통합’을 위한 사면론 애드벌룬을 띄웠던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그러잖아도 겨누고 있던 친문 세력의 집중포화를 받아 치명적 내상만 입고 무춤한 상태다. 언급을 삼가던 대권 주자 지지여론 1위 이재명 경기지사도 ‘부적절’ 쪽에 무게를 실어 또 한 번 약은 처신을 드러냈다.사면은 선고의 효력 또는 공소권 상실, 형 집행을 면제시키는 국가원수의 고유 권한이다. 헌법 제79조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는 조문에 근거한다. 좁은 의미로는 선고 효과의 전부나 일부 또는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일을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대상자들의 복권까지 모두 포함한다.우리 정치사 고비 고비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은 다양한 형태로 행사돼왔다. ‘국민 통합’을 명분으로 정적들의 족쇄를 풀어주는 쪽으로 단행되지만, ‘끼워 팔기’식으로 우군세력의 정계 복귀문을 열어주는 기능도 함께 해왔다. 대통령의 ‘사면’ 단행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현존하는 정치권 인사의 상당수는 정치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져 지금 볼 수 없었을 것이다.논란 중인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을 놓고, 집권당 민주당은 부정적인 지지층 여론을 핑계 댄다. 야릇한 일은, 가당치도 않은 사유들을 붙여서 ‘박근혜는 되고, 이명박은 안 된다’고 갈라치는 편견이다.항복문서 내지는 반성문을 내면 용서해주겠다는 식의 논법은 ‘사면권’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하긴 반성문을 쓰고 풀려난 뒤 시대가 바뀌어 대통령까지 오른 인사도 있으니 이런 논란들이 다 무소용하긴 하다. 정적에게는 ‘항복문서’를 전제로 베푸는 은전이 되고, 동지에게는 ‘훈장’이 되는 사면은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방종이다.지난 2019년 5월 21일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일찌감치 꺼냈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사족이 떠오른다. 문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성격을 아는데 민정수석 때 태도를 보면 아마 못 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인도주의적 결정 영역이라면 ‘형집행정지’나 ‘가석방’도 있다. 여론조사 수치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지지세력의 참섭(參涉)에 좌우되는 사면은 이미 사면이 아니다. ‘십자가를 밟으면 살려 주겠다’는 식의 천박한 권력 갑질은 오로지 인격 말살을 강제하는 가혹한 ‘박해’로 기록될 따름일 것이다.

2021-01-17

선동정치의 ‘먹이사슬’

안재휘 논설위원오랜 세월 지구촌 모범이었던 미국 민주주의가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도 훨씬 더 지독한 트럼피즘(Trumpism) 바이러스에 걸려 역사에 남을 오욕을 당하고 있다. 트럼피즘은 지난 2016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제45대 대통령의 극단적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지지자들의 광신주의를 뜻한다. 트럼피즘은 백인 보수층의 권익을 우선하는 국수적 정책을 선동하면서 세계를 선도해온 미국의 보편적 가치를 무참히 파괴해온 선동정치다.트럼프 시대에 지구촌은 이 트럼피즘에 입각한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허 언행에 몸살을 앓았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널뛰기식 돌발외교에 따른 북미 관계의 냉탕 온탕 변덕으로 한반도는 ‘북한 비핵화’라는 시대적 숙원을 둘러싼 널뛰기식 진동을 겪었다. 한때 한반도 평화에 획기적 진전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변화는 단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한 채 교착상태 내지는 악화일로다.지난해 11월 치러진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표를 도둑맞았다’며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트럼피즘 바이러스에 중독된 지지자들은 급기야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쑥대밭을 만들었다. 트럼프는 늦어도 한참 늦은 ‘정권 이양’ 다짐을 내놓았다. 의사당 난입에 대해서 “그들이 책임질 일”이라는 트럼프의 비열한 모습에서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극치를 본다.트럼피즘이 미국 민주주의를 무참히 망가뜨리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한걱정을 늘어놓는다. 팬덤정치의 폐해가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우리 정치의 현실과 정확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광신정치가 나라를 망가뜨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중국의 홍위병 사태와 독일의 나치즘이 남긴 상처는 깊고도 넓다.우리나라 팬덤정치의 병증(病症) 역시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있다. ‘태극기 부대(극단적 친박근혜계)’와 ‘대깨문(극단적 친문재인계)’이 문제다. 광신정치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정신장애 군중들을 양산한다.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친조국 집회에서 우리는 이성이 완전히 마비된 중우정치의 막장을 보았다. 미국 민주주의의 망신이 우리에게 주는 자각의 신호는 명징하다.이제 더 이상 팬덤에 기대는 정치와 정치인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극단적 편견과 확증편향을 유도할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선동질 유튜버들의 범람은 위험수위를 넘긴지 오래다. 결국은 우리 유권자들의 책임이다. 현실적 이해관계까지 얽힌 저질 정치꾼들의 농간질에 놀아나는 국민이 문제인 것이다. 정치가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그들 앞에서 딱한 먹이사슬이 되고 있는 유권자들이 각성해야 한다. 국민이 현명해지지 않으면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제발 더 이상 놀아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편향된 이념 장사꾼들의 흉계의 꼭두각시 놀음으로 나라를 망치는 열등 국민으로 치욕스럽게 살아갈 것인가. 아직 늦지 않았다.

2021-01-10

‘레임덕’이 보인다

안재휘 논설위원‘레임덕(lame duck)’은 임기 만료를 앞둔 공직자의 통치력 저하를 기우뚱거리며 걷는 절름발이 오리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권력 누수 현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국가와 국민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다.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접어들면서 ‘레임덕’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집권 4년 동안의 초라한 성적표가 드러나고, 무리한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로 민심을 크게 잃은 끝에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연말연시 개각과 청와대 비서진 교체는 흔들리는 국정 장악력을 다잡기 위한 안간힘 승부수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임덕’ 현상은 시시각각 다가와 이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윤석열 징계 전쟁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간접적일망정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집권 여당 의원들 사이에는 ‘윤석열 탄핵’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2개월 정직도 관철 못 시킨 검찰총장 찍어내기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주로 친문계(친 문재인계) 정치인들이 딴소리를 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충성심의 발로’라는 분석은 순진한 해석이다. 어디까지나 내리막길 대통령보다도 자기 정치가 더 중요해진 얄팍한 정치꾼들의 ‘레임덕’ 일탈로 보는 게 맞다. 1천 명을 헤아리는 재소자들이 무더기로 확진된 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감염 문제는 또 어떤가. 추미애 장관의 부실관리를 포함해서 영락없는 ‘레임덕’ 현상이다. 대통령의 제1 자랑거리인 ‘K-방역’을 국제적 망신거리로 만든 참사 아닌가.정초에 이낙연 대표가 터트린 ‘이명박-박근혜 사면론’ 메가톤급 뉴스도 그렇다. 국정 통수권자의 고유권한에 관련된 언급인 만큼 문 대통령과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극렬 지지자들이 심지어는 이 대표를 향해 대놓고 “탈당하라”고 을러댄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꾼들의 ‘레임덕’ 현상 말고 설명할 방법이 없다.위태로워진 나라와 민생의 형편을 생각하면 ‘레임덕’ 현상은 결단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의 선택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정책을 다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민생과 관련된 정책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탈원전’을 포함한 이미 실패가 확인된 정책들을 필두로 현실에 맞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필요하다.또 하나는 ‘불통’ 해소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는 ‘국민과의 대화’를 포함해 고작 6회밖에 되지 않는다. 지독한 ‘불통’으로 스스로를 무너뜨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5회보다 고작 1회 더 많다. 이명박 대통령도 20회의 기자회견을 기록했다. 생색낼 일이 있을 때 ‘쇼통’만 추구해온 이 정권의 ‘소통방식’은 완전히 구닥다리 행태다. 이런 ‘불통’ 고질이 ‘제왕적’ 대통령에서 ‘황제적’ 대통령으로 역주행했다고 지탄받는 이유다. 기회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

2021-01-03

외눈박이들의 ‘탄핵’ 놀이

안재휘 논설위원조선 숙종 때 당하관(堂下官) 벼슬에 있던 이관명(李觀命)이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뒤 돌아와 왕에게 아뢴다. “황공하오나, 대궐의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는 통영의 섬 하나에서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이 참혹하옵니다” 숙종은 화를 벌컥 내면서 책상을 내리쳤다. “과인이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그러나 이관명은 굴하지 않고, “누구 하나 전하의 거친 행동을 막지 않았으니 저와 대신들을 아울러 법으로 다스려주십시오”라며 엎드린다. 숙종은 화가 치밀어 올라 승지를 불러 전교를 쓰라고 명한다. 그리고는 “전 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고 명했다. 그리고 곧 명을 고쳐 ‘홍문제학’을 제수한다고 했다가, 마지막에 “예조참판을 제수한다”고 다시 명을 바꿨다.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정직 2개월’ 징계 결정이 법원에서 뒤집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재가가 난 징계결과를 일개 판사가 어떻게 뒤엎을 것이냐 하고 벌인 막장 싸움에서 완패했다. 또다시 나타난 여권의 치사한 분기탱천이 기가 막힌다. 어째 이렇게들 끝까지 쪼잔한지 도통 모르겠다.때마침,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1심 판결도 나왔다. 정 교수는 입시 비리 등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판결에 볼복하는 친여 세력들이 서울중앙지법 재판관들의 이름을 낱낱이 적시하며 탄핵 국민청원을 냈다. 이 청원에 순식간에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다.‘윤석열 찍어내기’ 집착에 빠진 민주당 쪽의 광기 또한 가관이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 총대를 멨다. 김 의원은 윤 총장을 국회에서 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추미애 장관에게 징계위원회를 다시 열어 해임하라고 떼를 썼다. 입법을 통해 검찰의 수사권을 아예 제거하겠다는 격앙된 반응도 등장했다.이쯤 되면 이 나라는 ‘법치’뿐만 아니라, 국가의 근본 틀인 ‘3권분립’에도 통째로 빨간 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 국민청원 놀이터에서 올곧은 ‘판사’들을 쫓아내라고 ‘난리굿’을 치기 시작한 무리는 한낱 패거리 맹신주의에 빠진 외눈박이 좀비들에 불과하다. 선택적 ‘정의’에 만취해 몰려다니는 홍위병 망령의 허수아비들이 이 나라를 망국의 블랙홀로 내몰고 있다.“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이라는 김두관의 험구에서 ‘검찰 해체’를 노리는 확증편향 조폭 조직의 가없는 복수심 같은 살기마저 읽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작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외눈박이들의 ‘탄핵 놀이’를 허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임금의 잘못을 탄원하는 당하관 이관명을 단숨에 예조참판으로 임명해 오히려 나라의 큰 그릇으로 쓴 숙종처럼 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라면 패거리 적개심에 취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검찰총장과 판사들을 물어뜯는 추한 모습을 연출할 리가 절대로 없다.

2020-12-27

칼날 위의 ‘법치(法治)’

안재휘 논설위원러시안-룰렛(Russian roulette)은 회전식 연발 권총에 총알을 한 발만 넣고 총알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탄창을 돌린 후 차례로 자기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끔찍한 자살 도박이다. ‘디어 헌터’라는 미국영화로 인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정직 2개월’ 징계로 귀결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마구잡이식 징계 소동이 끝내 러시안-룰렛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윤 총장은 법정투쟁으로 맞서고 있고, 징계를 재가한 문재인 대통령도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추미애 장관을 앞세워 사달을 기획하고 관리한 청와대와 문 대통령의 야릇한 처세는 궁색하다. 나라의 최고지도자 국가경영술로는 초라하다는 비판이 난무한다.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판사 출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소위 법률전문가 정치인들이 벌여온 지루한 패싸움 소동을 바라보는 국민은 ‘법은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폄범한 진리마저도 헛갈리기 시작했다. ‘법 논리’를 빙자한 교졸하기 짝이 없는 궤변 공방은 실로 짜증스럽다. 이현령비현령식에다가 아전인수, 내로남불 방식의 논쟁들이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국가의 가장 건강한 민주적 의사결정 기관이어야 할 입법부가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천박한 밀림이 됐다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를 형해화하는 입법독주는 말할 것도 없이, 말도 안 되는 누명으로 검찰총장을 꽁꽁 묶어놓고 벌이는 그들의 잔인한 모다깃매가 눈 뜨고 보아주기 어려울 지경이다. 윤 총장을 향해 “중세 군주 같다”는 비난을 퍼붓다가 “대통령에게 항명하고 있다”고 하는 종잡기 힘든 적반하장 언변들이 난무한다.안민석 민주당 의원의 “우리 문 대통령은 사실은 아주 무서운 분”이라는 말은 실소를 부른다. 같은 당 홍익표 의원이 윤 총장을 향해 “찌질해 보일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찌질한 쪽은 어디일까. 도무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입에서 나올 말들이라고 믿어주기가 버겁다. 번갈아 나서서 윤석열에게 퍼붓는 온갖 저주와 모략성 발언들은 우리 입법부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넉넉히 대변한다.어쨌거나 이제 국민의 이목은 윤 총장이 제기한 징계 결정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의 심판 결과에 쏠려있다. 정치가 자꾸만 사법기관 밑으로 기어드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만간 결정 날 가처분 신청의 심사결과에 따라서 정국은 또 한차례 요동칠 게 분명하다. 이제 윤석열의 문제는 이 나라가 진정한 법치의 국가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분기점으로 떠올라 버렸다. 문자 그대로 법치가 칼날 위에 떠밀려 올라선 형국이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이 문제는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려는 검찰총장의 생목을 잘라내려고 하는 희대의 야만극이다. 이런 추악한 러시안-룰렛의 최종 희생자는 애꿎은 국민일 수밖에 없을 텐데, 어쩌다가 나라 꼴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이 무참한 ‘법치 파괴’의 폐허를 누가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2020-12-20

독재의 ‘꿀단지’

안재휘 논설위원유신헌법 제53조에 규정된 ‘대통령 긴급조치권’은 단순한 행정명령 하나만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무너뜨린 초헌법적 권한이었다. 1975년 5월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판과 보도를 금지한 긴급조치 9호는 살벌했다. 긴급조치 9호는 800여 명에 달하는 무고한 지식인·청년 학생들을 마구 잡아 가뒀었다.‘긴급조치’는 국민을 굶주림의 도탄에서 구한 박정희 대통령의 영웅적 일생에 큰 흠집을 낸 독재의 상징으로 역사책에 남았다. 3선 개헌·유신헌법에 이어 ‘긴급조치’를 추동한 배경은 일말의 가책이 빚어낸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최근 민주당이 벌이는 입법독주 쇼의 배경에도 유사한 현상이 얼비친다. 그들을 비상식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 역시 일종의 ‘두려움’일 것이다.‘윤석열 찍어내기’에 혈안이 된 여권(與圈)의 칼춤이 금도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대표 발의한 검찰청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실소를 부른다. 개정안은 검사·판사 등에 대해 ‘선거일 90일 전’까지로 돼 있는 현행 사직규정을 ‘1년 전’으로 늘리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법안 발의에는 민주당 의원 10명도 참여했다.누가 보아도 이 법안은 ‘윤석열 출마 금지법’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마저 “당장 최강욱 자신도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을 감시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그만둔 지 한 달 만에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느냐”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표적인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헌법의 피선거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지적했다.그러거나 말거나, 여권은 ‘윤석열 출마 금지법’을 밀어붙일 개연성이 높다. 이 정권엔 당장의 ‘위헌 시비’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도 대략 자기들 편이라고 믿고 있거니와 위헌심판은 워낙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우선 칼을 휘둘러 처치한 다음 시간을 벌고자 하는 전략이 작동하는 까닭이다.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5.18역사왜곡처벌법’은 박정희 시대의 ‘긴급조치 9호’를 연상케 한다. 이 법에는 5·18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 처분의 끔찍한 처벌조항이 들어있다. 몇몇 인사들이 5.18에 대해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하는 방종을 두둔할 이유는 없지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소지’ 를 지적한다.민주당은 세월호 관련 범죄 공소시효를 2022년 6월까지 정지시키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요청안도 일방적으로 가결했다. 내년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까지 계속 세월호를 붙들고 선동을 하겠다는 뜻이다.여기저기에서 “제발 세월호 좀 그만 우려먹으라”고 외치고 있으니, 머지않아 ‘세월호왜곡처벌특별법’도 나오게 생겼다.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야당의 비토권을 거세한 ‘공수처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면서 국민의힘을 향해 외친 ‘독재의 꿀’ 힐난은 어처구니가 없다. 작금 ‘독재의 꿀단지’를 노골적으로 탐하는 자들이 정녕 누구인가.

2020-12-13

구팽(狗烹)의 시간

안재휘 논설위원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구천(句踐)으로 하여금 월나라의 패권을 장악하도록 도운 범려(范8821)는 뒤늦게 구천이 의심스러워 탈출하여 제나라에 은거했다. 그는 함께 일했던 문종(文種)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狡5154死走狗烹’라는 글을 보내어 피신토록 충고했다. 그러나 문종은 주저하다가 반역자로 몰린 끝에 자결하고 만다. 사기(史記)의 월왕구천세가에 나오는 이야기다.‘검찰개혁’이라는 용어가 아전인수를 넘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선동 구호로 악용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단칼에 잘라내려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전격작전은 일단 실패로 돌아간 양상이다. 4일 열겠다던 징계위원회는 10일로 연기됐다. 법무차관이 징계위 개최에 반대해 돌연 사표를 내자, 청와대는 즉각 후임을 임명해 스스로 온갖 사달의 배후임을 증명했다.윤 총장의 직무배제 시점과 월성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혐의 공무원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과정이 얽히면서, 추미애 장관의 무리한 행태 이유가 유추되고 있다. 정권의 ‘검찰개혁’ 구호가 ‘검찰 장악’이나 ‘검찰 무력화’의 다른 말이었음도 속속 입증되는 중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숨겨둔 흑심도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이 시점에 진정한 ‘검찰개혁’의 의미를 새로 곱씹어보게 된다. 검찰의 엄정한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무리한 수사로 애먼 국민을 잡는 일을 더는 못 하도록 과도한 권한을 분산하는 게 검찰개혁의 핵심가치다. 아무도 그런 개혁에 불만이 없다. 공수처도 정치적 중립성을 전혀 의심받지 않는 기구 운영이 핵심요건이다.윤 총장 찍어내기도 잘 안 되고,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사건 수사도 막지 못하자 민주당에서는 “그러니까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어불성설의 쩨쩨한 궤변들을 쏟아낸다. 직역하면 “검찰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으니, 검찰 때려잡는 무소불위의 우리 편 핵무기 공수처가 시급하다”는, 속이 훤히 보이는 얍삽한 말 아닌가.윤석열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문재인 정권이 무참히 휘두른 ‘적폐청산’의 칼잡이였다. 이 정권은 정치보복의 칼맛 피 맛에 취하여 진정한‘제도개혁’을 실기(失期)하고 말았다. 그들은 명검(名劍)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앉히면서 이 땅에 반대할 수 있는 자유의 씨를 말리고자 했을 것 같다는 끔찍한 짐작마저 든다. 돌이켜보니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던 문 대통령의 말은 그냥 멋있게 보이려고 해본 췌사(贅辭)에 불과했음이 자명하다.그들은, 사냥이 모두 끝났으므로 이제 ‘사냥개를 삶을’ 시간이라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그 사냥개가 한사코 몸부림을 치고 있다. 오죽 답답하면, 많은 국민이 그 사냥개에게서라도 희망을 찾자고 목을 빼어 기다리고 있을까. 참으로 딱한 세상이고 야릇한 나라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기어이 사냥개를 삶고 ‘공수처’를 만들어 휘두르면 상황이 끝이 날까.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고작 그 수준일까.

2020-12-06

야만(野蠻)의 ‘풍문 탄핵’

안재휘 논설위원성종 때 대간 박효원(朴孝元)은 승정원 회의 때 도승지 현석규(玄碩圭)가 삿대질을 일삼는 등 다른 승지들에게 무례를 범했다면서 탄핵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대간 혼자서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왕이 출처를 엄히 추궁한 결과, 승지 임사홍(任士洪) 등이 현석규를 쳐내기 위해 정보를 흘렸고, 박효원이 공개적으로 현석규를 탄핵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간 제도를 사적으로 오용한 자들은 엄한 처벌을 받았다.조선 시대 풍문탄핵(風聞彈劾)은 어두운 시대에 공론만으로도 문제를 삼도록 해 고관대작의 도덕성을 높이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당쟁이 심화하면서 이 제도는 폐해를 양산했다. 순수한 ‘공론’은 사라지고 더러운 ‘당론(黨論)’만이 무성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인류가 발전시킨 민주주의는 그런 참담을 방지하고자 법치(法治)를 대원칙으로 삼는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윤석열 검찰총장을 한사코 찍어내려는 여권(與圈)의 몰매질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판사 불법사찰’이라는, 어마어마한 범죄 프레임을 들고나와서 검찰총장직은 물론 아예 감옥에 보내겠다’는 악심까지 드러낸다. 그러나 들고나온 혐의도 허술하거니와, 1년 가까이 지난 일을 새삼 끄집어낸 저의가 온당치 않으니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명분치고는 참으로 유치하다.검찰 내부에서 난리가 났다. 법치의 일선 전문가 집단인 검찰 구성원들 거의 모두가 반기를 들었는데, 이 정권은 눈도 하나 깜짝 안 한다. 조국 전 장관의 말처럼 “검사들 모두 사표 받고 검사보라도 하고 싶어 하는 로스쿨 출신들로 다 채우는” 사변이 정말 일어나는 건가.재판을 위해 판사의 성향과 이력을 관행적으로 알아본 것을 중죄(重罪)로 뒤집어씌우려는 행동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한 지청장은 “코치가 심판의 경력과 경기 운영방식, 스트라이크 존 인정 성향, 선수들 세평 등을 분석해서 감독과 선수들이 공유하면 불법사찰이냐”라고 비꼬았다는데, 공감이 간다.지난 2012년 조국 전 장관이 SNS에 작성한 개념이 또다시 소환됐다. 그는 “대상이 민간인이거나 영장 없는 도청, 이메일 수색, 편지 개봉, 예금계좌 뒤지기 등등”을 하는 게 불법사찰이라고 주장했다.채동욱과 윤석열을 찍어냈다고 정홍원 전 총리를 몰아세웠던 7년 전 추미애의 동영상도 다시 돌아간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은 손자병법의 진수다. 그런데 상대를 알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는 것도 중범죄가 된다고 욱대기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옛날 순 엉터리였던 풍문탄핵도 제3의 사찰 기관에서 탄핵 내용을 정밀조사하는 ‘추고(推考)’ 과정을 거치고, 사실이 아닐 때는 탄핵을 주장한 대간이 물러나야 했다. 대간들 전원이 한꺼번에 직책을 내려놓는 일도 있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일어나고 있는 이 야만(野蠻)의 풍문탄핵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

2020-11-29

위원회… 그 ‘승자독식’의 덫

안재휘 논설위원‘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생각하고, 정치인은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말이 참이라면 지금 이 나라는 절망적이다. ‘가덕도 신공항’ 악성 분열 바이러스가 시나브로 대한민국 민심을 강타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도 갈피를 통 못 잡는 제1야당 국민의힘 영남 권역은 남북으로 확실히 쪼개지고 있다.정부 여당의 ‘김해신공항 백지화-가덕도 신공항 추진’ 이야기는 어제오늘 등장한 주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짜놓고 다 결정된 김해신공항 건설을 미적거리며 물밑작업을 해왔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선거를 ‘가덕도 선거’로 몰고 가서 큰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나서는 곤란한 처지의 국토교통부를 배제하고 국무총리실에 악역을 맡겼다.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근본적인 검토’라는 알쏭달쏭한 여섯 글자를 검증결과라고 내놓았다. 결과발표가 나기도 훨씬 전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부산에 가서 “더 이상 희망 고문을 하지 않겠다”는 수상한 말을 했고, 국토교통부 차관은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로부터 ‘가덕도 신공항 검토 용역비’ 문제로 쌍욕을 얻어먹었다.검증결과 발표가 나던 날은 아침나절부터 국회 정론관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의 ‘가덕도 신공항’지지 선언 릴레이가 벌어졌다. 검증위원회 김수삼 위원장은 뒤늦게 “김해공항 백지화라는 건 한 번도 생각 안 했다”는데 정치권은 ‘가덕도 신공항’ 합창부터 부르고 있으니 다들 제정신인가 모를 일이다.결론 다 정해놓은 다음 알량한 ‘위원회’를 만들어서 정당성을 조작하는 협잡질은 비단 이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대 정권들이 다 그렇게 ‘승자독식’의 덫을 민주적 절차로 위장해서 써먹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들도 검증결과를 ‘백지화’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검증 과정부터 샅샅이 뒤져보는 게 순서다.‘가덕도 신공항’과 관련한 비판 중에서 가장 정확한 것은 권영진 대구시장이 내놓은 “부산의 정치권 몇몇하고 부동산업자하고 건설업자 카르텔이 이어져 부산시민들도 속이고 영남권 전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는 분석이 가장 정확하다. 4년 전에 끝난 육상경기에서 꼴등을 한 선수를 이상한 수작질로 갑자기 1등으로 바꾸는 건 우리 젊은이들이 기겁하는 ‘불공정(不公正)’의 문제이기도 하다.벌써 조국 전 장관은 ‘가덕도 신공항’ 작명에 들어가서 ‘노무현 공항’으로 하자고 초를 치고 있다는데, 8년 전에 “신공항 10조면 고교 무상 교육 10년이 가능하다”며 반대했던 SNS 글이 소환되며 또 한판 웃음거리가 됐다. 아무래도 조 전 장관은 일구이언(一口二言) 기록으로 머지않아 기네스북에 오르게 생겼다. 그나 마나, 검증위의 발표조차ㅁ 수상쩍은 판에 빛의 속도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안’을 제출한 부산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을 어찌해야 하나. ‘정치꾼’ 말고 어디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곤 이 나라에 정녕 한 명도 없는 것인가?

2020-11-22

‘윤석열’이 온다

안재휘 논설위원중국 전국시대 말엽, 진나라가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공격하자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平原君)을 초나라에 보내 원군을 청하기로 한다. 평원군이 수행원 스무 명을 뽑을 때 마지막에 나타나 스스로를 추천한 인물이 모수(毛遂)다. 평원군은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로 거절한다.낭중지추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말로 인물이라면 주머니를 뚫듯 저절로 나타나는데 모수는 3년을 평원군 집에 식객으로 있었지만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모수는 “한 번도 저를 주머니에 넣어 주시지 않았지 않았느냐”는 절묘한 답변으로 수행원에 포함되고 이후에 눈부신 활약을 펼친다.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나 정치판을 요동치게 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를 받아 지난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천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석열이 24.7%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낙연 대표는 22.2%로 2위, 이재명 경기지사는 18.4%로 3위를 차지했다.이어진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정례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처음으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한 것도 주목거리다. 이 조사에서는 윤석열 총장은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의 각각 19%에 이어 3위였다. 윤석열의 지지도는 11%로 한 달 만에 무려 8%나 수직상승했다.‘윤석열 현상’으로까지 회자되는 이 흐름을 놓고 정치권은 엇갈린 분석들을 쏟아내고 있다. 여당은 대체로 떨떠름한 표정이고, 야당 또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야릇한 처지에 빠져들고 있는 양상이다.윤석열의 대권후보 지지율 선두권 부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윤석열 부각의 일등공신은 모두가 알듯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추 장관은 윤석열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지휘권·감찰권·가족 수사·공개 저격 등 오만 핍박을 다 펼치고 있다.‘김대중을 만든 건 박정희’라는 말이 떠오른다. 박정희의 가혹한 탄압이 오히려 담금질이 되어 연철에 불과하던 김대중을 강철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같은 원리를 적용하면 추미애의 말도 안 되는 채찍질·발길질 횡포가 윤석열을 날로 단단한 강철로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현 단계에서 윤석열의 부각을 가장 두려워해야 할 쪽은 국민의힘이다. 가뜩이나 마땅히 떠오르는 주자가 없는 마당에 윤석열이 야당의 잠재영역을 다 차지해 여지를 말살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여야를 불문하고, 날로 까발려지는 정치권의 온갖 추잡한 이면들을 바라보면서 ‘법치의 위기’를 절감하는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 ‘입법부를 행정부에 종속시키는 것이 파시즘의 본질’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진보지성 버트런드 러셀의 파시즘 정의가 아니더라도, 3권분립이 무너지고 있는 이 나라는 진실로 위험하다. 아직은 그를 담아낼 마땅한 그릇조차 없는데, 어쨌든 ‘윤석열’은 온다. 검찰청 앞 화환에 붙은 ‘낭중지추’ 응원 문구가 새뜻하다.

2020-11-15

미리 보는 ‘윤석열 축출’, 그 후

안재휘 논설위원우리에게 ‘판관 포청천(包淸天)’으로 잘 알려진 포증(包拯)은 중국 역사에서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는 북송 인종(仁宗) 천성 5년(1027) 진사 급제를 시작으로 1061년 추밀부사에 오른 인물이다. 포증은 송사를 처결할 때 명민하고 정직했다. 억울한 사람이 직접 찾아와 시비곡직을 따지도록 정문을 열어 놓아 간교한 아전들의 개입을 차단했다. 거무튀튀한 얼굴의 그가 “개작두를 대령하라!”고 호령하는 연속극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포증이 송나라 수도를 책임지는 개봉(開封) 부윤으로 임명돼 귀척(貴戚·임금의 인척)과 환관들마저 덜덜 떨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한 인종의 결단이 있었다. 그는 1062년 5월 24일에 개봉에서 향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항간에는 그를 꺼려한 자들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돌 전선이 확대일로에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 이어 정세균 총리까지 ‘윤석열 찍어내기’에 합세한 형국이다. 민주당과 추 장관은 드디어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를 시비하기 시작했다. 야사(野史)에나 등장하는, 정적 제거용 ‘호주머니 뒤지기’에 돌입한 꼴인데, 구경하기조차 불편하다.윤석열 검찰총장의 직위 고수가 참으로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약 여권의 ‘윤석열 찍어내기’ 자귀질이 성공할 경우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친정부 성향 정치검사가 검찰총장 자리를 꿰어 찰 공산이 크다. 한차례 거센 인사 광풍 이후 검찰은 온전히 여당 정치권 손아귀로 들어가게 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검찰상이란 형해(形骸)도 없이 소멸할 것이다.조국 재판, 김경수 선거여론 조작 의혹 사건 등의 ‘물타기’ 공작이 분주해지고, 청와대의 울산 선거개입, 여권 인사들의 라임·옵티머스 사기사건 연루 의혹 따위는 흐지부지 사라질 개연성이 높다. 대통령·국회의원·법관·지방자치단체장·검사 등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마저 정부·여당의 의도대로 편파적으로 꾸려질 경우, 명실공히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폐허만 남게 된다.집권세력은 전매특허인 ‘사정(査正)’ 드라이브를 새로 걸고, 야당 정치인들과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더 참혹한 ‘적폐청산’의 공동묘지로 갈지도 모른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걸핏하면 내지르던 ‘20년 집권, 50년 집권’ 시나리오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다.그러나 정말 그렇게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어떤 사악한 바람에도 아주 쓰러지지 않고 끝내 일어서온 억센 민초(民草)의 정신이 있다. 광신적 확증편향주의 마약에 찌든, 오도된 악성 권력 바이러스를 일거에 제압할 계기가 어떻게든 만들어질 것이다. 나라를 좀먹는 거악(巨惡)들을 무릎 꿇리고 힘차게 “개작두를 대령하라!” 외치는 포청천은 살아 있어야 한다.

2020-11-08

‘팬덤(Fandom) 정치’ 망국론

안재휘 논설위원지구상에 광신정치(狂信政治)가 처음 나타난 게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여전히 치밀한 선동전략에 의해 지도자를 신격화하여 미친 듯이 지지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긴 왕조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는 백성의 섬김이란 충효(忠孝) 사상을 중심으로 강요된 복종이었다. 나라는 온전히 왕의 소유물이고 백성은 오로지 얻어먹는 비렁뱅이 취급을 당했다.북한은 그 인민들이 동족이라는 사실을 빼고 나면 완전히 다른 행성의 나라다. 그 독재구조를 보면 왕조시대에서 오히려 퇴보한 국가체제라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발전해온 우리나라에서도 양태는 조금 다를지언정 결과는 마찬가지인 전체주의의 비극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대한민국 건국 이래 팬덤(Fandom) 정치는 늘 있었다. 8·15광복 이후 나타났던 팬덤 정치는 교육받지 못한 국민이 일부 명망가를 중심으로 한정된 정보를 갖고 극소수가 따로 뭉치는 정도였다. 전혀 새로운 양상의 선진적 팬덤 정치를 만들어낸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노무현이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에서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나타난 팬덤 현상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독창적인 정치모델이었다. 투신자살이라는 비극적 종말을 맞았지만,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팬덤 정치의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 가능성을 상속받아 더욱 정교해진 선동기술에 의해 정치를 만들어갔다. 작게는 25%에 이르는 범(凡)친문계열 골수 지지층의 정서는 독특하다.친문계열은 친노가 그 핵심이다. 하지만 친노와의 차이점은 분명하다. 친노의 핵심인 노사모는 ‘노무현이 그저 좋은’ 사람들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친문은 다르다. 특히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의 준말)으로 불리는 핵심은 노사모와는 달리 이익 집단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진중권 같은, 한때 진보 논객이었던 사람들은 그 변질에 치를 떤다.조국 사태 때는 물론이고, 작금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해괴한 권력 힘자랑 현상에서 나타나는 그 자신감의 저변에는 바로 그 팬덤 정치에 대한 확신이 존재한다. ‘대깨문’들의 행태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이성 따위는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 오로지 확증편향으로 굳어진 아적(我敵) 개념만이 그들의 언행 양식 일체를 결정한다. 누군가 좌표를 찍어주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몰려가 때려 부수는 원초적 복종만이 작동할 따름이다.더불어민주당이 당헌을 뒤집고 내년 4월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래도 이기고, 저래도 이긴다는 팬덤·광신정치에 물든 자신감이 그들의 행태를 뒷받침한다. 이제 이 문제는 온전히 국민의 판단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었다. 괴물처럼 변해버린 팬덤 정치가 이 나라의 또 다른 치유 불능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우정치(衆愚政治)의 망령이 어른거리는 우울한 11월이다.

2020-11-01

‘윤석열 드라마’가 시작됐다

안재휘논설위원‘권위주의’와 ‘권위’는 완전히 다르다. 소위 ‘진보’와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이 나라 정치인들이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는 바로 ‘권위주의’를 청산한다면서 실질적으로는 ‘권위’까지 무너뜨린 일이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흔한 말 중에 “요즘 나라에 어른이 없다”는 푸념은 참이다.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그 치명적인 만행은 점점 더 광기(狂氣)로 치닫고 있다.지난 22일 여의도 국회에서 벌어진 ‘윤석열 드라마’는 생방송 시청률 9.91%를 기록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윤석열 드라마’의 결정적 흥행요인은 불과 1년여 전 ‘윤석열 찬가’를 부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똑같은 입으로 마구발방 물어뜯는다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적 요소다.2013년 국정원 댓글 외압사건을 폭로할 당시에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기록한 윤 총장은 이번에는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또 하나의 어록을 남겼다. “검찰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면서 한낱 자신을 졸개 취급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무례에 대한 통쾌한 카운터블로였다.적지 않은 법률전문가들이 추 장관의 5가지 실정법 위반을 적시한다. 검찰청법 제8조에 명시된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조항이 추 장관 수사지휘권의 권원(權原)이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처리 방향 지휘가 아니라 아예 총장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게 법조계의 보편적 해석이다.수사지휘권 박탈은 ‘정직’에 해당하는 징계다. 검찰청법 제37조 ‘징계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검사가 해임, 면직, 정직 등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과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공표죄도 위반했다는 견해마저 분분하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수사지휘권 횡포가 일상화된다면 이 나라는 ‘검찰독립’이 완전히 무너진 독재국가가 되고 말 것이다.청와대와 여당이 입버릇처럼 쓰는 ‘민주적 통제’라는 말은 ‘사법기관의 사유화’를 뜻하는 사탕발림이고, ‘검찰 개혁’이라는 말은 ‘검찰 장악 음모’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다.‘윤석열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플래카드와 함께 검찰청사 앞에 줄지어 선 100여 개의 화환은 결코 즐거운 풍경이 아니다. “(나만 빼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반어법(反語法) 괄호 부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윤석열은 ‘바보’라는 야당 정치인의 야유는 차라리 슬프다.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검찰독립’의 미덕을 담보하기 위한 일종의 불문법적(不文法的) 관례였다. 그러나 이제 이 정권이 오래된 전통을 붕괴시키고 있다. 삼권분립을 망가뜨린 정권의 하수들이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온갖 ‘중상모략’으로 멀쩡한 검찰총장의 ‘권위’를 파괴하며 검찰권 찬탈을 음모하고 있다. 백전노장 ‘윤석열’의 다음 드라마가 벌써 궁금해진다.

2020-10-25

그러니까, 특검(特劍)

안재휘 논설위원옛날, 역모나 종실 관계 범죄들이 발생했을 때 국왕의 친림하에 직접 혐의자를 심문하는 것을 친국(親鞫)이라고 불렀다. 친국의 사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범죄가 중대하거나 혐의자들의 권세가 너무 강해서 사정(査正) 기관이 감당하여 진실을 밝히기 어려울 경우였다. 옛날의 친국을 굳이 오늘날 사정 문화에서 찾자면 바로 특별검사제(特劍)일 것이다. 여론이 권력층의 올곧음을 믿지 못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하면 참주인인 국민의 친국을 받는 건 당연지사다.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 수사를 놓고 정치권에 ‘특검’ 도입 논란이 점차 무성해지고 있다. 여당은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시작했으니 도입을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우기고, 야당은 이미 검찰이 수개월을 수사하지 않고 뭉개왔으니 수사를 지속할 자격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여야 정치권은 오만가지 변설(辯說)들을 다 동원하여 제 주장만 재탕하고 있는 양상이다.이 사건은 여야 정치권 모두가 상대방을 옭아매려고 혈안이 된 흙밭 드잡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검경(檢警)이 해결할 수 있는 논란의 경계선을 훌쩍 넘었다. 여야 정치권은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사기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패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그의 한마디에 분노하거나 반색하여 일희일비하는 양상이다.김봉현의 “강기정에게 5천만 원을 전달하라고 넘겼다”는 법정 진술에 오리발 찾느라고 전전긍긍하던 더불어민주당이 또 다른 진술 하나에 살판 난 표정으로 돌변했다. 수감 중인 김봉현은 자술서 형식의 서신에서 ‘지난해 7월 현직 검사들을 상대로 술 접대를 했으며, 이 중엔 라임 수사팀에 합류한 검사도 있다’고 주장했다.특히 ‘검사장 출신 야당 쪽 유력 정치인, 변호사에게 수억 원을 지급했다’는 대목 때문에 여당 쪽은 거의 만세를 부르는 수준으로 반색이다. ‘강기정’ 이야기가 나올 적에는 희대의 사기꾼 말이라고 뻗대던 같은 입으로 온갖 궤변들을 창작하고 있다.펀드 사기 사건 수사가 특검으로 가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정권이 라임·옵티머스 등 권력형 의혹 사건에 대비해 검찰의 발톱과 송곳니를 미리 뽑아버렸다는 비판이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권 수사에 관여했던 검사 35명이 좌천을 당했다. 하필이면 수사조직의 전문성을 높여야 할 때 법무부는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했다.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옵티머스 사건을 특수수사 전담 부서가 아닌 조사부에 배당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운용사 문건에 대한 보고를 최근에야 받았다고 한다. 검찰총장 눈을 가린 채 수사가 진행됐다는 얘기다.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는 검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하기 하루 전날 외국으로 도피했다. 국민의 눈에 비친 지금 검찰은 하나가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직할하는 이성윤 중앙지검장의 검찰과 힘 빠진 윤석열 총장의 검찰이 따로 논다. 어디로 보아도, 어떻게 보아도 다른 길이 없다. 그러니까, 이젠 ‘특검’ 외길만 남았다.

2020-10-18

‘차벽(車壁)’ 너머 ‘맹탕’

안재휘 논설위원광화문 일대에 쳐진 물 샐 틈 없는 차벽(車壁) 설치물 장관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경찰은 세계적인 설치미술 그룹이 됐다’는 우스개가 생각났다. 우리 경찰은 현존하는 그 어떤 예술가도 할 수 없는 ‘재인 산성’이라는 제목의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였다. 이명박 정권 때의 ‘명박 산성’ 실험과 박근혜 정권의 ‘근혜 산성’이라는 시행착오를 맹비난하면서 배워 완성한 새로운 버전의 산성이니 그 완벽성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을까.광화문 ‘재인 산성’을 외신들은 어떻게 볼까, 세계인들은 서울의 현실을 어떻게 해석할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가장 훌륭한 장비가 마스크이고 그 다음으로 손 소독제, 에틸알코올 정도라는 건 지구촌의 상식이다. 거리 두기도 한 방안일 수는 있을 것인데, 기발한 수단인 ‘산성’이 신종 방역장치로 등장한 셈이다.정권의 잘못을 비판하려는 모든 집회를 봉쇄하기 위해 수백 대의 경찰 버스로 광장을 틀어막고, 차량 시위마저 금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원지·관광지는 내버려 두고, 굳이 광장만 다 틀어막고 행인들 모두를 검문 검색하는 일을 ‘방역’이라고 우기는 건 야릇한 일이 아닐 수 없다.수십 수백 대 차량이 사람을 가득 채우고 교통신호를 기다리거나 주차장에 몰리는 건 괜찮고, 깃발이나 현수막을 단 차량엔 단 1명만 타야 한단다. 그것도 일행이 9대를 넘기면 안 된다니, 이런 코미디가 어디 또 있을까. 그야말로 코로나19는 작금 문재인 정부의 정권 안보를 담당하는 으뜸 방패다.정치 전략적인 차원에서 보면, 코로나19를 무기로 써먹는 문재인 정권의 용의주도함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것도 실력’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야당은 도무지 마땅한 대안세력으로서의 미더움을 장만해 내놓지 못하고 있다. 치열한 투쟁도 안 보이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도 흐릿하다. 뭘 어쩌자는 심산인지 도통 모르겠다.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지금 이 정국 속에서 야당이 더불어민주당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과거 ‘명박 산성’과 ‘근혜 산성’ 때 했던 그들의 행태를 돌이켜보면 상상은 어렵지 않다. 방역이라는 변수가 다른 요소이긴 해도, 아마도 광화문에 둘러쳐진 경찰 버스 몇 대쯤은 부서지거나 불이 붙지 않았을까. 상황을 꿰뚫는 기발한 시위수단이 고안됐을 수도 있다.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의힘은 예상대로 전혀 맥을 못 춘다.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인 국회 안에서 절대다수인 여당은 불리한 증인신청을 모조리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의 전략에 제1야당은 고작 ‘야당 간사직 사퇴’ 같은 영양가 없는 저항 정도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쳐진 ‘다수 횡포의 차벽’에 막힌 견제세력은 절멸 상태다. 완고한 ‘차벽’ 너머의 참담한 ‘맹탕’ 정치에 한숨이 절로 난다. 불임 정당의 초라한 몰골인 국민의힘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흔들리는 국운을 바로잡을 지혜, 열정이 조금이라도 있긴 한 건가.

202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