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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소수 독재`의 함정에 빠지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폭발직전의 민심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넌더리가 `국회무용론`을 넘어 `국회해체론`의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국회가 왜 그러느냐”고 묻고, “차라리 국회의사당에서 의원들을 모두 내쫓고, 국민복지시설로 리모델링하는 게 어떠냐”고 흥분한다. 물론, 도무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정치행태에 치솟는 부아를 견디지 못해 쏟아내는 비명이겠지만, 유례없이 만연된 분노가 위태롭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혐오증`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회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회를 걱정하는` 일상이 지루하다. 눈 씻고 찾아봐도 칭찬받을 구석이라고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국회의 구태의연한 모습은 늘 국민들의 두통거리였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이 만큼 성장했으니, 국회의 역할과 정치인의 기여는 평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가는 웬만하면 “멱살잡이, 불법파업 말고 그들이 한 게 뭐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소수야당이 걸핏하면 의사당을 내팽개치고 길거리로 나서는데도 아무 일이 없을까. 여당은 어째서 매번 그런 상황을 어쩌지 못해 절절 매면서 무한정 요령부득의 막다른 골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작년 한 해는 여야 정치권이 국정원 댓글사건을 놓고 갑론을박 지지고 볶다가 허송세월했다. 올해는 `세월호특별법` 암초에 걸려 정치권은 아무것도 못하고 뒤죽박죽 망신살만 뻗치고 있다.정치권 케케묵은 살풍경에 지친 사람들이 너도나도 막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잘못됐을 때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보여주는 전범(典範)`이라는 자조마저 흘러나온다. 깊어질 대로 깊어진 붕당정치의 폐해로 인해 여론은 갈가리 찢겨 너덜댄다. 여당은 야당이 여당일 때 그랬다 들이밀고, 야당은 여당이 야당일 때 똑같았노라고 우문우답놀이를 지속한다. 그들의 응보주의(應報主義)식 설전은 도무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의 극치다.우리나라는 영국과 미국, 일본을 따라 `양당정치`의 정치구조를 꾸려왔다. 짧지 않은 권위주의 시대를 겪어오면서, 대척점을 분명히 하고 싸움판을 벌이기에는 그게 효과적이기도 했다. 국민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딱 청·백 두 패로 나뉘어 박 터지게 치고박는 연습을 했다. 세상은 `좋은 놈` 아니면 `나쁜 놈`만 존재한다고 믿으며 어느덧 `힘센 놈이 좋은 놈`이라는 `승자독식`의 가치관과 몹쓸 `불복`의 습성을 굳혀왔다.민주화시대가 도래하면서, `힘센 놈`앞에서 호기롭게 웃통 벗고 대들었던 용감한 이들은 영웅이 되고, 생각이 달랐던 많은 이들은 세파의 모다깃매를 맞았다. 국회는 씨름과 레슬링도 모자라 격투기장으로 변했다. 깃발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 치고 때려 부수는 유치한 청백전은 여전했다. 그래서 뭐 좀 확실하게 바꿔보자고 내놓은 것이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다.안타깝게도, 새롭게 전개된 정치판은 또 다른 가관의 경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육박전 싸움질을 가까스로 뜯어말렸더니, 이번엔 아예 일을 안 해버린다. `소수(少數)`에게는 뭐든 골치 아픈 조건 한 가지 걸어놓고 버티고 노는 게 남는 도박판이 됐다. 왜냐면, 그렇게 해도 `다수(多數)`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수결의 지혜를 버린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철 지난 `대선불복` 고질병 환자들의 `소수독재(少數獨裁)` 함정 깊숙한 곳에 처박혔다.지금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못한다. 정계개편이든, 비상조치든 하루빨리 이 답답한 정국을 뚫어낼 구처를 찾아내야 한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정치지도자들이 나서서 `통 큰`결단과 타협을 빚어내는 게 가장 좋다. 미국 국회의사당 어디에도 적혀있다던가, `좋은 결정이 가장 좋고 나쁜 결정은 좋지 않지만, 가장 나쁜 정치는 아무 것도 안 하는 정치`라는 말이 있다.

2014-09-16

`새바위`를 기억하라

▲ 안재휘 서울본부장신라 3대 왕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은 을소(乙素)라는 인재를 대신으로 등용해 나라의 기초를 다진 업적으로 유명하다. 그가 왕좌에 오른 지 5년째 되던 해에 `나라를 돌아보다가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는 노파를 보고는 반성하여 관리들을 시켜 홀아비와 과부·고아·자식 없는 노인 등을 보살피고 부양하게 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주목거리다. 온후한 통치에 감복한 이웃나라 백성들이 몰려들어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불렀다고 하니, 유리왕이야말로 수탈만 무성했던 고대 삼국시대에 진심한 `민생정치`로 강력한 천년 왕국의 힘을 일궈낸 위대한 통치자가 아니었을까. 지루한 세월호특별법 갈등 와중에 대한민국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혼미의 수렁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모습은 딱하다. 물밑 당권쟁탈전의 역학에 휘둘린 지도층은 갈짓자 행보를 모면하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당의 명운을 틀어쥔 강경파들은 해묵은 선명투쟁 구호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경제 활성화`와 `민생`을 화두로 들고 삶의 현장을 누비기 시작한 것은 썰물 지듯 민심이 이반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급소를 찌르는 뼈아픈 일격이다. 세월호 참극의 길고 깊은 애통 속에서 긴긴날 먹구름 아래 살아온 국민들은 시들어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천지에 드리운 납덩이처럼 무거운 비감을 이제쯤은 걷어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깊어지고 있다.예로부터 마을에 초상이 나면 이웃들은 `상주들마저 정신을 놓으면 어쩔 것인가`하는 염려부터 앞세웠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위로는 결코 사자(死者)에 대한 망발이나 무례가 아니다. 불행하게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의 해원(解寃)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은 남은 사람들의 멀쩡한 정신과 차가운 이성이다.세월호특별법을 놓고 두 차례나 합의에 이른 것을 보면,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그런 합리적 판단력을 아주 놓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지렛대로 당내 권력지도 재편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복잡한 내심들이 교차되면서 씨도 안 먹힐 장외투쟁 깃발을 들고 뻘밭을 구르고 있는 꼴이다. 야권인사들의 푸념을 종합해보면 `집단사고(集團思考)`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작동 현상이 빚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작금 새정치연합의 내부에서 현대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백미인 `집단지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게 맞다면, 이른바 `집단극화(Group Polarization)`의 부작용이 다분히 의심된다. 의원총회를 비롯한 집단 의사결정의 장이 벌어지기만 하면 어느 새 극단 강경파들의 설익은 논리가 판을 치고, 여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말문을 열지 못하는 기괴한 분위기가 형성되곤 하는 것 같다. 뜨거운 흥분으로 벼린, 서슬 퍼런 칼춤 앞에서 목을 내밀고 진심을 드러내기란 결코 쉽지 않으리라.그렇다고 새누리당의 앞날이 마냥 탄탄대로일 것 같지는 않다. 여당이라고 민심 퇴짜의 혼돈에 휘말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집단극화(集團極化)`의 비극은 `오만방자`의 우매 안에서 더 쉽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 짐작 끝에 문득, 7.30재보선 기간에 응급 가동됐던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새바위)`가 떠오른다. 새누리당이 진정으로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려면 `새바위`를 기억하고 기대해온 민심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 된다.`새바위`가 당 개혁을 위해 제기해온 이슈들과 혁신안에 대해 지도부는 성실하게 실천해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 `민생정치` 하나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들이 샛눈 뜨고 바라보고 있는 `혁신을 향한 진정성` 여부야말로 민심을 가르는 가장 냉혹한 잣대가 될 것이다. 정치는 변화무쌍한 생물임을 잊지 말이야 한다. 게임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2014-09-02

`정치`가 사라졌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어린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이 감당키 어려운 엉뚱한 요구를 한다. `하늘에 있는 별을 따 달라`며 울고불고 생떼를 쓰는 경우도 있다. 대개의 경우, 어른들은 아직 이성이 여물지 못한 아이를 꾸짖거나 굳이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줄 알면서도 그저 웃으면서 “그래, 알았다. 그만 울어라. 이따가 별 따줄게.”하고 달랜다. 아이들 역시 `별을 따주겠다`는 어른들의 약속을 기억하고 계속 칭얼대지는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여진 속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이 오히려 온갖 불합리가 판을 치는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다. 혼란의 와중에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정치인`만 득실대고 `정치`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좀 더 과격하게 말하면, `세월호 사건`을 고리로 정치적 이득을 챙겨보려는 정치꾼들의 저의만 판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세월호 특별법`을 만들고자 하는 참뜻은 일차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혀내어서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가리고 가해자들에게 응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자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물질만능주의에 오염된 사회의 뒤안길에 만연된 수많은 부정부패와 부조리에 맞닿아 얽히고 설켜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인식이다.그렇다면 `세월호 특별법`은 가해자를 처벌하고자 하는 보복 차원에서만 그 가치가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개혁`, `국민개조`의 시발점이라는 큰 기치를 세우는 하나의 계기로 만들어가는 것이 맞다.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진 유가족들은 우리처럼 평범한 이웃들이다. 그럴진대, 여야가 진통 끝에 만들어낸 합의를 번번이 퇴짜 놓는 강단은 단순한 억하심정을 상회하는 무엇인가를 의심케 한다.필경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그들이, 정치권이 어렵사리 합의해낸 `세월호 특별법`의 내용과 전망을 어떻게 그렇게까지 삐딱하게 분석하고 투철하게 반대할 수 있는가. 누군가, 극단의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의식화시켜 이용하려는 영악한 세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혹여 아직도 `대선불복`의 몰상식에 갇힌 채 `박근혜 퇴진`갈망의 노예가 되어 `세월호 비극`을 먹잇감 삼아 선동에 집착하는 불순한 작자들이 뒷배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최근 야당 정치인들에게서 `수치심`이 아예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머리를 맞대고 근근이 만들어낸 `특별법` 합의의 당사자이면서도 두 번이나 입장을 뒤엎어 웃음거리가 된 쪽은 새정치민주연합이다. 그런 그들이 뒤늦게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뻔뻔하고도 초라한 면피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결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무참한 모습은 그악한 파벌다툼으로 피폐해진 야당의 내부세계를 적나라하게 노정한다.문재인의 어설픈 `단식투쟁`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영오 씨 단식중단 및 유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내세우지만,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속내를 깊이 의심받고 있다. 대선후보였던 그가 고작 존재감을 키우려고 `단식`쇼를 벌이는, 시시한 `밥 굶은 국회의원`의 아류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교황도 만나주었는데, 대통령은 왜 안 만나주느냐`는 비난은 세월호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교활하다. 세월호 유족들과 그 주변세력들은 결코 `달을 따 달라`고 보채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아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또 다시 “대통령이 사기를 쳤다”고 아우성칠 게 뻔하다. 물론, 상대방이 어린아이일지라도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소통의 참가치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경계는 있어야 한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깨우쳐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정치`다.

2014-08-26

`아전인수(我田引水)`의 늪

▲ 안재휘 서울본부장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든, 두 번의 충격이 있다. 영화 `명량`에 몰려드는 관람객의 범람과, 2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바티칸의 교황 `프란시스코` 신드롬이 그것이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불과 12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전선을 거느리고 들이닥친 왜군을 깨부순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소재로 다룬 `명량`은 이미 관객 수가 1천500만으로 치달으면서 모든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1천8백만의 어마어마한 관객동원을 예상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지난 14일 방한해 4박5일 간의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탈하고 겸손한 행보로 한국 천주교신자는 물론 일반인까지 감동시켜 `교황앓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교황은 급속한 경제발전이 초래한 배금주의가 빚어낸 잇단 비극 속에서 슬프고 외롭고 혼란스러운 한국인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와 용기의 씨앗을 퍼트리며 큰 숙제들을 남기고 떠났다.영화 `명량`이 히트를 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이 앞 다투어 극장을 드나들었다. 이어서 교황 프란치스코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연일 전해지는 그의 언행에 담긴 뜻을 헤아리느라고 분주했다. `명량`을 감상한 정치인들은 저마다 어떤 감회들을 느끼고 깨달았을까. 또 그들은 프란시스코 교황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어떤 지혜를 찾아냈을까. 간간이 비쳐지는 반응들을 살펴보면 똑 같은 것을 보고 듣는데도 저마다 느끼고 깨닫는 일이 참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철저하게 아전인수(我田引水)다. 백성들과 군사들이 모두 다 절망에 빠진 처참한 상황에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며 자신의 목숨을 배수진 쳐놓고 솔선수범으로 승전을 일궈나가는 이순신 장군을 보며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혹여 그동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나라`보다는 `패당(牌黨)`온존에 대한 열망만 키우지는 않았을까. 무한정쟁을 벌이는 동안 굳어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고질병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는 기미는 아직 없다.우리 정치권이 늘 그래왔듯이, `나만 옳다`는 아집을 버리지 않는 한, 나와 다른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일은 불가능하다. `양보`의 의지가 없이 마주 앉아 시작하는 대화는 십중팔구 언쟁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세월호특별법 합의가 뒤집어지는 해프닝에 얽힌 모순도 그렇다. `전권`을 부여받았다는 박영선 위원장이 일궈낸 합의가 맥없이 무산되는 모습을 보면서 적지 않은 국민들은 `전권(全權)`이라는 말뜻이 헛갈려 사전을 다시 뒤졌을 것이다.국회는 `국회선진화법`에 꽁꽁 발목이 잡혀 있다. 이상적인 국회를 위해서 국회선진화법의 입법취지는 백번 옳다. 그러나 이 법의 타당성은 어디까지나 절차에 대한 `다수`와 `소수`의 의지가 선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대전제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법에 대하여 `다이어트`를 기정사실로 만들어놓은 날씬한 가죽점퍼에 비유한다. 정치인들이 치수 작은 가죽점퍼를 쳐다보면서도 다이어트를 실천하지 않고 놀고먹는 한, 민생은 여전히 춥고 배고프고 어지러울 따름이다.`명량`에서 감동한 이순신 장군의 `용기`를 정치적 편견의 골을 더욱 깊이 파는 도구로 쓰지 말기를 충언한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남긴 `화합`·`사랑`·`용서`·`배려`·`평화`·`용기` 등 귀중한 화두들을 놓고, 부디 정치인들이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을 덧붙여가며 정쟁의 의욕을 키워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목전에 걸린 `세월호특별법`이나 긴요한 민생법안 앞에서, 크고 순수한 교황의 계시를 견강부회하여 아집의 부피를 늘리는 몰상식은 결단코 피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과제로 두고 떠난 `평화`를 정파적 주장의 불길을 키우는 부채로 쓰지 말기를 희망한다.

2014-08-19

`대한민국 군대`를 위한 변명

▲ 안재휘 서울본부장`비이성(非理性)으로 이성(理性)을 구축한다.` 아주 오래 전 ROTC(학군단) 1년차(3학년) 하계입영훈련 중에 어떤 교관이 한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시절 입영훈련은 군대문화에 익숙해지지 않은 우리에게 벅찼다. 특히 별 잘못도 아닌 일을 생트집 잡아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얼차려까지 받는 일은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육사 출신이었던 그 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비이성적인 것처럼 보이는 엄정한 군기(軍紀)가 신성한 `국방`이라는 이성을 구축한다.”한동안 `세월호 참사`에 머물던 국민들의 따가운 눈초리가 `윤 일병 구타사망사건`으로 옮겨갔다. 이번에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풍설은 `마녀사냥` `화풀이` `공포 재생산` `음해` `침소봉대` `정치계략`등 못된 양념들을 뒤섞어 고약한 비빔밥을 만들어 돌리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아마도 이 문제 역시 감성적 분풀이에 집중하다가 제대로 된 원인분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유야무야`의 망각나라로 흘려버릴 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든다.월남전 참전 이력을 가진 지인 어르신으로부터 모처럼 전화가 왔다. 안부를 여쭙자마자 흥분하여 대뜸 언성을 높여 한참동안 꾸지람하듯 열변을 토하신다. “아이들을 그렇게 길러서 군에 보낸 부모들의 허물, 아이들이 그런 이상한 성품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 환경부터 고쳐야 한다”는 게 그 분 말씀의 요지였다.`윤 일병 사망사건`의 여파로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연일 군 관계자들을 불러내어 잡도리를 하고 있다. 관련규정 모두 꺼내놓고 어디를 어떻게 칼질하고 덧대야 다시는 이런 고약한 사고가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언론 역시 때 만난 듯이 군문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반이성`들을 이 잡듯 찾아내어 대서특필을 노린다. 최근의 분위기라면, 대한민국의 군대는 오직 국민적 걱정거리에 불과한 듯하다.이 사태를 정부의 문제, 부대 지휘관의 문제, 일부 사병들의 문제로만 몰아가려는 일부 정치인들과 시민운동가들의 주장은 작위가 아니라면 명백한 오류다. 나이 스무 살 꽉 차도록 인성이 굳어진 채 군문에 들어오는 아이들에 대해서 부대지휘관들이 제어할 수 있는 여지란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더욱이, 사고를 일으키거나 유발하는 아이들의 모든 언행을 지배하는 것은 성장환경에 기인하는 정신심리적인 요인들 아니던가.사랑하는 자식들을 군문에 들여보낸 부모들의 흉흉하고 애달픈 심사를 몰라라 한 채 곪아터진 비정상적 적폐들을 덮고 가자는 게 아니다. 범행을 저지른 사병들을 사형에 처하고, 불상사가 일어난 부대장 목을 비틀자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온갖 잔혹한 폭력이 난무하는 사이버게임과 피비린내 가득한 조직폭력배 영화의 범람 속에 살면서, 한편으로는 부모들의 과보호 아래 의지박약한 인간군으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그냥 두고서 무슨 효과적인 대책을 기대하는가 그 말이다.국방의무를 신실히 이행할만한 우수 인력자원이 급감하는 가운데, 정치인들은 선심공약으로 복무기간을 자꾸 줄이자하고, 전자장비 등으로 부족한 국방인력을 대체하자니 예산이 없다. 이 치명적인 모순 안에서 당장 모든 문제를 해결할 묘책을 내놓으라고 성마르게 재촉하는 것은 어리석다. 문제의 뿌리를 발본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너도나도 나서서 마치 유행병처럼 군대를 난타하고 까발리기만 하는 현상은 좋지 않다. 문제는 분명하게 해결하되, 기백에 살고 죽는 군의 사기까지 말살하지는 말아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군(軍)은 `비이성으로서 이성을 구축하는` 특수조직이다.

2014-08-12

정치인의 소신발언

▲ 안재휘 서울본부장신라 제48대 경문왕은 귀가 아주 컸는데, 늘 의관으로 가려 남이 알지 못하게 했다. 홀로 아는 비밀을 평생 간직해야 했던 복두장이(두건 장인)가 죽기 전 도림사(道林寺) 대나무밭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맘껏 소리쳤다. 그 후 바람이 불 때면 대나무들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를 냈다. 왕이 명하여 대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산수유를 심었지만 바람이 불면 여전히 소리가 났다. 삼국유사 권2에 나오는 `여이설화(驢耳說話)`다. 7.30 재보선이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오래도록 수세에 몰려있던 청와대가 한숨을 돌린 모습이다. 하지만 선거 쾌승의 여파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김무성 대표다. 전당대회에서 큰 득표로 당권을 잡은 지 불과 보름 만에, `미니 총선`이라 불린 선거에서 낙승을 일궈냈으니 민심이 토끼눈을 뜨고 그를 여겨보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여론조사는 그가 단박에 차기대권주자 1위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리고 있다.김무성의 정치를 논할 때는 `새옹지마` `구원투수` `뚝심` `대장` 같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는 때로 세력을 잃고 벼랑 끝에 서는 수난을 당하면서도 보수 새누리당의 둥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당이 어려운 상황에 빠질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백의종군으로 역할을 다하고는 미련 없이 홀연 자리를 내주는 `대인기질`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진짜 매력은 필요할 때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소신을 잃지 않는 `충언기질`에 있다.김 대표는 지난 2010년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려는 친박과 야당 세력의 산더미 같은 파도에 맞서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라는 소신을 피력해 감명을 남겼다. 왕권시대 충신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문자 그대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소신을 접지 않는 선비기질이었다.요즘 정치권의 기류를 들여다보면, 딱할 정도로 제대로 된 `소신발언`을 하는 정치인을 찾기가 어렵다. 민주정치시대에 정치인들을 가장 무력하게 하는 것은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오도된 민심이다. 그 오염된 민심 앞에서마저 `표(票)`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최근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빚어낸 과잉감성에 대해서 정치인들은 뒤에서만 구시렁댈 따름 바른 말을 하지 못한다.이런 풍토 속에서 나온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이나 홍문종 전 사무총장의 `세월호 참사는 해상 교통사고`라는 용기있는 발언은 존중되는 것이 옳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애끊는 심정을 헤아려 피해자 가족들의 웬만한 거친 주장은 감내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을 감당해야하는 국회의원들이라면 일부의 과도한 주의·주장에 대해 그 오류를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두 정치인의 발언을 `정권의 책임회피 목적`으로 몰고 가는 비판자들의 논리는 그렇다 쳐도 악의적이니, 패륜이니, 망언이니, 망발이니 하는 욕설은 가당치 않은 저질 정치공세다.새로운 출발점에 선 여당이나, 재건축을 시동하고 있는 야당이 지금 가장 귀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은 `진실을 말할 자유의 확장`이다. 김무성 지도부는 박근혜 정부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 민심을 정직하게 전달하고 주장할 책무를 신실히 수행해야 한다. 갖가지 선동술수로 민심을 호도하고, 오도된 민심이 무서워 무리한 요구를 묵인하거나 편승하는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 “이 나라에 `세월당`이라는 신당이 생긴 거냐”는 자조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도록, 여야 정치권은 이제 세월호 충격을 감성이 아닌 이성의 영역 안에서 승화시켜 감동적인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당나귀처럼 큰 귀를 가진 임금이 절실한 시절이다. 그러나 큰 귀를 가진 임금을 빗대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할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는 국가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소망하는 정말 좋은 나라가 아닐까.

2014-08-05

`여론조사 정치`의 독

▲ 안재휘 서울본부장파리 에펠탑은 1889년 3월 31일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제10회 만국박람회의 상징물로 준공됐다.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에 의해 탑의 건축설계도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프랑스 국민들과 지식인 예술가들은 철골구조인 에펠탑을 `고철덩어리`·`쓸모없고 흉측한 검은색 굴뚝`·`파리예술의 모욕`이라며 거칠게 반대하고 나섰다.그러나 건립 당시 모진 수난을 겪어야 했던 에펠탑은 120여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를 훌쩍 뛰어넘어 유럽의 랜드마크로 등극해 있다. 이 탑은 오늘날 하루 평균 1만 8천명, 1년에 7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돼있고, 올해 관광객 유치 1억 명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운 프랑스 관광산업의 중추다. 지난 2012년 한 조사에서 에펠탑의 경제적 가치는 무려 4천346억 유로(한화 약 600조원)로 평가됐다.오늘날 정치권은 굵직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 위한 기법으로 일상적으로 여론조사를 사용한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완성한 이래,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에서도 여론조사를 추진한 바 있다. 당내 경선에서도 여론조사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면서 100% 여론조사 후보결정도 항다반사다. 그야말로 여론조사 만능주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여론조사 정치`가 횡행하면서, 정당의 효용가치는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교과서적인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에 편승한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천박한 정치풍토 속에서, 국민들을 선도하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정당 건설`은 시대에 뒤떨어진 멍청한 헛소리 취급을 받는다. `여론조사 결과`라는 숫자놀음에 그 어떤 거시적인 정책의지도 생성되거나 배겨낼 재간이 없다.“참고자료에 불과한 여론조사로 주요 의사결정을 대체하는 것은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끈질긴 지적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여론조사의 수치변화에 청와대를 비롯한 여야 정당들이 종속되어가는 정치풍토는 비극이다. 지지도 변화에 일희일비하는 정치권의 과민반응은 다분히 희화적이다. 바람처럼 빠르게, 변화무쌍하게 출렁거리는 대중여론의 흐름에 이렇게 무력해서야 수십 년, 수백 년 뒤의 가치를 헤아려 민족의 역사를 바꿀 새로운 설계도를 어찌 그려내고 밀어붙일 수 있으랴.여론정치는 모든 정치활동을 여론과 연결시켜 그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일종의 편의주의적 정치행태다.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현재적(現在的) 여론`에 도취돼있는 대중의 정치의식에 끌려 다니는 것이 문제다. 사고나 관념으로서 사회 안에 산재해 있는 잠재적(潛在的) 여론을 현재적 여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참다운 민주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은 이성의 힘으로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도록 하는 일이다.만약, 옛날에도 오늘날처럼 여론조사 정치가 횡행했다면 프랑스 에펠탑이나 한국의 경부고속도로는 결코 탄생되지 못했을 것이다. 에펠탑의 영광은 따따부따 떠들어대는 제법 안다는 지식인들의 비난에 프랑스 정부가 휩쓸리지 않음으로써 성취해낸 위대한 역사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기인하는 한국경제의 번영은 조변석개하는 정치권 논란과 여론의 위력에 박정희 대통령이 맥없이 휩쓸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찬란한 기적이다.여론조사는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결코 `객관적인 판관`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이젠 제발 좀, 정치지도자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고 뚝심을 발휘했던 선인(先人)들의 역사에서 살아있는 교훈을 찾아내길 바란다.

2014-07-29

또, `막장드라마`인가

▲ 안재휘 서울본부장연전 어떤 외국 외교관이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자들을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모두 부자가 되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한국에 있는 동안 이 이율배반은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세계가치관조사기관(World Value Survey)이 얼마 전 발표한 2010~2014년 설문조사 결과, 한국인의 67.2%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소득재분배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상위 1%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몫은 지난 1998년 6.9%에서 2011년 11.5%까지 빠르게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다. 요약하면, `한국인들은 부자를 욕하면서 대체로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부의 쏠림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소득재분배에는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런 모순된 정서적 경향 속에 살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참 얄궂은 인심이다.7·30 재보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이 전략공천 방식으로 광주광산을 지역구에 후보로 내세운 `광주의 딸`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 대한 연이은 구설수가 전국 선거판을 자극하고 있다. 처음에는 생니 뽑듯, 출마를 선언한 유력정치인들 다 뽑아내고, 초짜배기 권 후보를 갖다 세운 일로 당내에서 시끄러웠다. 본선이 시작되면서는 논문표절이다, 위증교사다 하고 말이 많더니 급기야는 남편의 수십억 재산 축소신고 의혹이 불거졌다.꽁지 생머리에 정장을 입은 수수한 이미지로 진보세력들로부터 `시대의 양심`인 양 추앙되던 권은희 역시 역설적이게도 `부(富)=악(惡)`이라는 보편적 선입관에 부딪치면서 미묘한 괴리감을 확산한다. 떳떳한 `부`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도 축소해야 할 까닭도 없어야 맞다. 뒤늦게 펼치고 있는 절차상 `합법`이었다는 논리적인 항변이 차라리 초라해 보이는 국면에 이르렀다. 이미 국무총리 후보 두 명과 장관 후보들을 주저앉힌 똑 같은 잣대가 험궂은 부메랑이 되어 새정치연합과 권은희의 이중성에 칼날을 겨누고 있는 셈이다.예상대로, `미니총선`이라고 일컬어지는 7·30 재보선은 `막장드라마`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여기가 승부처네, 저기가 격전지네 하면서 여야 중앙당이 널뛰어 다니면서 전략회의를 열고 지역구의 숙원사업을 직접 뒷받침하겠다는 굵직한 약속들을 모개로 퍼붓고 있다.품격도 체면도 없는 무한 까발리기 전쟁도 여전하다. 권은희 한 사람을 줄기차게 또는 무지막지하게 물어뜯고 있는 새누리당에 맞서 새정치연합은 사방으로 다연장포를 쏘아댄다. 서울 동작을의 나경원 후보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 후 도주 중인 유병언 일가와의 인연을 들먹거린다. 경기도 수원정에 출마한 임태희 후보에게는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의혹을 재탕으로 끓여 들이붓고, 권은희가 당한 똑같은 축소신고의 혐의(?)를 찾아 새누리당 모든 후보의 뒷방을 가재뒤짐하기 시작했다.`막장선거`를 획책하는 정치꾼들의 진짜 문제는 그 현란한 선동정치의 복심에 유권자를 속이려는 음험한 술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아니면 말고`식 폭로전에는 최음제를 써서라도 짧은 선거기간 동안 유권자의 이성을 마비시켜 판을 뒤집으려는 흉심이 내재한다. 지나간 사건 다 끄집어내놓고 상기시키는 것도 그런 발싸심의 일환이다.견강부회(牽强附會)인 줄 알지만, 변론 한 번 해보자. 한국인들이 부자를 욕하면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은`더러운 부자가 아닌 깨끗한 부자가 되고 싶다는 건강한 희망`의 표출 아닐까. `소득재분배`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절실한 갈망의 발로라고 해석하면 어떨까…. 하지만, 미국의 프리랜서 언론인 스털링 시그레이브가 쓴 `돈 vs 권력`이라는 저서에 나오는, `권력은 붉고 돈은 검다`는 규정명제에 자꾸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 노릇을 어찌하랴.

2014-07-22

`소통`에 관한 오해

▲ 안재휘 서울본부장청나라 황제 건륭제(乾隆帝)가 한밤중 잠행을 나섰다가 자금성 앞 시장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이름 없는 한 만두가게를 찾았다. 건륭제는 주인에게 혼자 문을 연 이유를 물었다. 주인은 “혹시라도 자금성을 찾는 백성이 있어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면 장사치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건륭제는 며칠 뒤 이 가게에 자필 편액을 선물로 보냈다. `도성 내 유일한 곳`이란 의미의 `두이추(都一處)`는 260년이 넘도록 지금도 성업 중이다.조선시대 군주의 `미복잠행(微服潛行)`은 민생을 살피기 위해 평상복 차림으로 무예별감 같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은밀히 다니던 일종의 소통수단이었다. 왕들은 미복잠행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살펴 고충을 해결해주거나 국정운영에 반영했다. 성종(成宗) 임금이 미복잠행 중에 청계천 광교에서 순박한 경상도 숯장수 김희동을 만나 감탄하여 벼슬을 내린 일화는 유명하다.조선시대 선비들은 `상소(上疏)`라는 방법으로 꽉 막힌 상달(上達)의 문을 두드렸다. 선비들이 올린 상소는 승정원을 거쳐 국왕에게 전달되었는데, 특히 성균관 유생이 올린 상소에는 국왕이 직접 답변하는 것이 관례였다. 물론 대부분의 백성이 왕의 얼굴을 알지 못했던 시대의 일들이긴 하지만, 권위주의가 철옹성 같던 그 시대에도 `소통`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증명해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는 모처럼 의미 있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 초청 형식으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여야 원내대표들과 정책위의장들이 나란히 참석하는 회동이 있었다. 환한 모습으로 예정보다 훨씬 긴 시간 국정현안을 논의한 이 날의 만남은 지난해 9월16일 국회 사랑채에서 박 대통령이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와 가진 `어색한 만남`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오랜 세월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며 실망을 누적해온 우리 정치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소통`이다. 집권 2년차 중반을 넘기도록 국무총리 하나 제대로 세워내지 못할 만큼 곤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박근혜정부가 난관을 헤쳐 나갈 최상의 비책도 `소통`이다. 문제는 `소통`에 대해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지극히 구시대적인 고정관념이다. 소위 `영수회담`이라는 명목으로 여야 우두머리들이 회동날짜 정해놓고, 물밑에서 사전에 주고받을 물목 다 정리한 다음 만나서 사진이나 찍는 시대착오적인 `소통`개념에 많은 정치인들이 여전히 절어있다.지금은 야당의 공동대표로 있는 안철수의 정치적 입신 국면은 `소통`의 새로운 가치를 명명백백 입증한다. 안철수는 오직, 젊은이들의 소소한 고민과 설익은 견해들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행위 하나만으로 국민적 스타가 되고, 삽시간에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그 과정을 생생히 지켜보고서도 `소통`의 참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기성 정치지도자들의 답답한 모습에 국민들은 짜증이 나 있다.`소통`은 일방적인 `설득`이 아니다. `소통`은 가시적인 `성과`를 전제하는 성마른 만남이 아니다. 쌍방의 `양보`를 조건으로 하는 고답적인 대좌는 더더욱 아니다. 모든 `소통`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들어주다보면 불현듯 지혜가 보이는 마법과 같은 것이다. 미복잠행이 유효한 시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민생현장을 찾아 경청하는 일은 잦을수록 좋다. 정치지도자들의 지속적이고 허심탄회한 대화와 만남은 꼬인 정국을 풀어가는 첩경이다.성악가 출신의 `소통전도사` 김창옥의 말은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먼저 내 마음 가장 깊숙이 있는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상처, 열등감 등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를 지키던 그 문이 바로 사람들과 만나고 세상과 만나는 소통의 문이 된다.”

2014-07-15

`떠돌이 약장수`와 `재보선`

▲ 안재휘 서울본부장`미니총선`이라는 이름으로 의미가 한껏 부풀려진 7.30재보선을 앞두고 각 당이 벌이고 있는 혼란한 공천양상은 정상적인 민주주의국가 개념의 멀쩡한 상식에 비쳐볼 때 실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굳이 정당을 따로 가릴 이유도 없이 히든카드, 마스터키, 아니면 만병통치약을 찾는다고 무한 난리 굿판을 벌이고 있다. 하긴, 선거철만 되면 영락없이 벌여온 야단법석이니 특별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긴 하다. 전국 15개 지역에서 치러지기로 돼있는 대규모 재보선 판에, 여당의 국회 과반의석의 존속여부가 걸린 급박한 현실을 감안하면 일부러 그 중요성을 깎아 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역대 재보선이 늘 그러했듯, 이번 선거 역시 지역대표를 뽑는 선거로서의 참다운 의미는 무릇 만신창이가 됐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 발짝 뒤로 밀려나 있던 거물 정객들에게 컴백기회를 제공하는 장마당이라는 특성까지 가미되면서, 선거는 이미 철저하게 `중앙당`그들만의 장기판으로 변하고 말았다.대구·경북지역에서는 재보선 판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의 결과가 지역정치에 미칠 영향까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야가 중앙당 여력까지 박박 긁어서 한바탕 대전(大戰)을 벼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조건 이겨야 할 이유가 덕지덕지 달라붙으면서 과열을 추동하는 사유들이 즐비해졌다. 한참 엇나가고 있는 재보선 현상을 지켜보노라면, 정치판의 행태를 `정상(正常)`이라고 읽을 여지는 이제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나오겠다는 사람 굳이 빼돌려 다른 곳에다 박는 일, 도전하겠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곳에다가 제 사람 심기 파워게임을 벌여 이상한 `전략공천`을 감행하는 일, 사전에도 없는 십고초려(十顧草廬)라는 신조어까지 지어내며 싫다는 사람 부득부득 꼬드기는 일, 공천에 불만을 품고 당대표 사무실을 점거하여 며칠씩 뻗대는 일…….아무리 좋게 보아도 이건 명명백백 후진정치의 참상에 다름 아니다. 결코 선진 민주주의국가에서 전개되는 올바른 정치라고 할 수 없다. 마스터키를 맹신하는 정치꾼들이 앞장서서 벌이는 돌려막기 공천이거나, 오직 흥행만을 위해 순리와 질서를 무너뜨리고 펼치는 무지막지한 캐스팅 전투로 읽어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참담한 것은, 여야 정당들이 벌이고 있는 공천과정에는 프로선수들의 계산만 난무하고 정작 주인인 유권자들의 자치정서는 철저하게 묵살되고 있다는 점이다.이성의 눈으로 잠시 되물어보자. 이런 식으로 치러진 재보선으로 일궈낸 한국정치의 업적은 무엇인가. 그래서 한국정치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도 함께 물어보고 싶다. 인지도가 높은 명망가를 골라 아무데나 갖다 꽂아 당선시키고, 그리하여 중앙당의 파워를 높인 일로 인해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유권자의 존재감은 정말 안중에도 없는가. 여전히 민심이 그렇게 움직이니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내놓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참이 되려면 국민들에 대한 정치지도자들의 선도(先導)기능 말살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옛적 장날에 맞춰 어쩌다가 `떠돌이약장수`라도 한 번 오는 날이면, 시골동네는 한바탕 소동이 일곤 했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몰려나와 약장수의 현란한 혀놀림에 흥분하고, 악사들의 연주나 재인들의 재주넘기에 취해 삶의 시름을 잠시 잊기도 했다.그러나 어리보기들이 모여 사는 곳을 노려서 찾아다니는 뜨내기장사꾼들의 분탕질에 뒤늦게 가슴을 치고 땅을 치는 쪽은 늘 시골동네 주민들 쪽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익을 얻는 편은 늘 약장수 쪽이었고, 많은 동네사람들은 약장수 패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어쩌다 잘못 사먹은 엉터리 `만병통치약`으로 인해 설사복통과 함께 가슴앓이를 겪어야 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정치판은 지금 떠돌이약장수 천국이다. 아니, 치졸한 낙하산 전쟁통이다.

2014-07-08

`쪽박` 깨지 말고, `혁신`을 겨루라

▲ 안재휘 서울본부장미국 에모리대학 드루 웨스턴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06년 1월 한 연례학술대회에서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 영역이 작동한다”는 요지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감정적 판단이 이성적 판단보다 발달한 것은 `감정적 판단의 속도가 좀 더 빨라서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학계 일각의 해석도 관심을 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감정독재`라는 저서에서 이 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는 감정 식민지화를 인정하고 향유하면서도 이성의 끈은 놓지 않은 채, 나를 둘러싼 바깥 세계를 향해선 이성에 대한 호소를 멈추지 않는다. 특히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 더욱 그렇다”고 주장한다.전당대회를 저만큼 앞둔 새누리당의 조마조마한 레이스를 바라보노라면 `보수는 분열로 망하고, 진보는 자충수로 망한다`는 새로운 정치 금언을 내놓은 보수논객 조갑제의 관점이 새삼 떠오른다. 김무성-서청원 맞대결 양상이 뚜렷해진 전대 쟁패의 구도 속에서 양 진영 사이의 분열상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충돌이 격렬해지면서 전당대회 이후를 우려하는 목소리조차 나온다. 국회의원들 사이에 “상대 후보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의원들을 만나면 아예 악수도 안 하려고 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제아무리 권력선점이 지상목표인 전당대회라 하더라도 집권당 새누리당이 과연 지금 이래도 되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이라는 전대미문의 험악한 불운의 덫에 걸려 국무총리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더구나, 새누리당에 대한 젊은 층의 지지는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형편이다.새누리당 부설 여의도연구원의 `전국 20대 대학생 정치인식 조사, 6·4 지방선거 투표 분석`자료는 조사대상 중 `새누리당을 가장 선호하지 않는다`고 밝힌 사람은 종북 논란을 빚은 통합진보당 21.4%보다 높은 40.4%에 달한다는 비보를 전하고 있다. 연구원 산하 청년정책연구센터가 전국 대학생 1천695명을 1대1로 면접조사(신뢰수준 95%, 오차범위 ±2.4%)한 이 조사결과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은 고작 1.4%에 머물고 있다.상대 후보의 전과(前過)를 함부로 헤집거나, `당대표가 되면 상대방을 다 끌어내겠다`고 했다는 살벌한 폭로비방전 양상을 지켜보고 있자면, 이게 도대체 무슨 험한 끝을 보자는 경쟁인지 알 수가 없다. 전당대회 때마다 금도를 넘어선 죽고살기식 드잡이로 번번이 쪽박을 깨며 철천지 원수를 양산해온 고질병이 또다시 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달콤한 선동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상대방의 오물통을 발로 걷어차고 엎어 갈등구조를 키우는 행위는 새누리당의 앞길을 한껏 어둡게 하는 구태다.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선동정치의 폐해를 `조타술`에 비유하여 설파하고 있다. 선동정치가 횡행하는 것은 정작 조타기술을 제대로 배운 뛰어난 기술자는 소외되고, 감언이설로 선주(船主)의 눈과 귀를 홀린 선원이 선장이 되어 항해를 지휘하는 위험천만한 사태와 같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당정치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어리석은 선동정치부터 근절되어야 한다.지금 정부여당이 민심을 새롭게 얻는 길은 진정한 `혁신`뿐이다. 그동안 공약해왔던 수많은 `개혁`약속들이 얼마나 실천돼왔는지부터 꼼꼼히 되짚어 반성해야 한다. 그 일만 가지고도 시간이 태부족한 상황인데도, 권력다툼에 눈이 멀어 대중들을 `감정식민`으로 치부하고, 네거티브 선동에 몰두한다면 결코 미래가 없다. 새누리당은 열흘 남짓 앞으로 다가온 전당대회를 말뿐이 아닌 완벽한 `혁신`경쟁으로 끌고 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떠나는 민심을 돌려세울 수 있다.

2014-07-01

`진영논리`의 수렁

▲ 안재휘 서울본부장유비는 군사(軍師)인 서서(徐庶)의 제안에 따라 제갈양을 영입하기 위해 두 번이나 찾아가지만 번번이 허탕을 친다. 세 번째로 융중(隆中)의 초가를 찾았을 때 제갈양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을 깨우지 않으려고 관우와 장비를 사립문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자기만 들어가 초당 댓돌 아래에서 그가 깨어날 때까지 공손히 서 있었다.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故事)다. 좋은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정성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6.4지방선거가 끝난 다음 경기도와 제주도 등 몇몇 광역단체에서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당선자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가 야당에 부분적인 `연정`을 제의했다. 남 당선자는 기존의 정무부지사 자리를 `사회통합부지사`로 이름을 바꾸어 야당이 맡아 달라고 파격 제안했다. 원 당선자 역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신구범 전 도지사 후보에게 인수위원장직을 제의했다.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새누리당 진영의 공약을 도정에 반영할 것을 구체적으로 주문했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몽준 전 의원은 시정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약속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성사여부와 상관없이, 정치권은 이런 움직임을 두고 엇갈린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선한 발상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낸다. 하지만, 대권가도를 향한 `이미지 정치`라거나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노회한 술수라며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권영진 대구광역시장 당선자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이런 움직임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는 “연정은 일시적인 쇼 업(show up·나타내기) 측면은 있을지 몰라도 책임정치, 책임행정을 소홀히 할 수 있다. 또 중앙정치의 갈등구조가 그대로 지자체 행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언필칭 `잠룡`으로 일컬어지는 몇몇 광역단체장 당선자들의 새로운 착상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갑론을박이 유례없는 혹독한 검증논란으로 치달았다. 교회 안에서 행한 낡은 `기독교 근본주의적 역사인식`에 바탕을 둔 강연내용에 `친일`과 `민족비하` 딱지가 붙으면서 정치적 갈등뿐만 아니라, 종교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융단폭격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오면, 야당은 즉각적으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보수정당의 악착같던 발목잡기 역사를 조목조목 들이댄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진영논리`의 수렁에 빠져서 시궁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진영논리`에 사로잡힌 부류들의 가장 큰 모순은 상대편의 실수는 용서받지 못할 중죄 취급을 하고, 자기편의 하자엔 한없이 관대하다는 점이다. 똑같은 허물을 놓고, 갖가지 궤변으로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우리는 지금 엉뚱하게도 `호오(好惡)`가 `시비(是非)`를 대체하는 위태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은 뒷전이고, `좋고 싫음`만을 행동기준으로 삼는 데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남경필과 원희룡의 `연정`시도는 일단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은 정치실험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정치시장이 그들의 의도대로 작동되어 모든 가치판단에서 `시비`가 `호오`를 뛰어넘으면서 `승자독식`의 폐해를 불식하기만 한다면, 우리 정치에 엄청난 진화의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우리 정치권은 아직도 보-혁의 잣대로 인물을 재단하는 전투적인 흑백의식에 꽁꽁 갇혀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제갈양` 같은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인재가 나타난다면 `삼고초려`의 미덕은 과연 소용이 있을까. 온갖 사생활이 들쑤셔지고 그동안 해온 말과 글들이 다 까발려지는 검증구조 속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높지 않다. 그가 제아무리 `제갈공명`이라고 해도 정치권은 예외 없이 보수냐 진보냐를 가려낼 돋보기부터 먼저 들이댈 게 뻔하다.

2014-06-24

`사시이비(似是而非)` 교육감선거, 혁신해야

▲ 안재휘 서울본부장우리가 흔히 쓰는 `사이비`라는 말은 `사시이비(似是而非)`가 본딧말이다. 맹자의 진심편(盡心篇)과 논어의 양화편(陽貨篇)에 나오는 이 말은 `진짜 같은 가짜`라는 뜻으로 요약된다. 고전은 향원(鄕原)이라는 별칭의 `사이비 군자`가 겉으로는 성실하고 청렴결백한 것처럼 보여 매사 흠잡을 데가 없지만, 결코 도(道)에 함께 들 수 없어 덕을 해치는 존재라고 단정하고 있다. 6.4지방선거 교육감 선거결과에 대한 진보진영의 과도한 `의기양양`과 보수진영의 `단세포적 반응`은 둘 다 꼴불견이다. 이번 선거의 17개 시·도 교육감 당선자 중 13명이 진보성향으로 분류된다. 이 같은 선거결과는 진보성향의 후보들은 단일화에 성공한 반면, 보수성향의 후보들은 끝까지 분열상을 보인데서 비롯됐다.선거가 끝나자마자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한 자리에 모여서 `승리`를 자축하는 진보성향 당선자들의 모습은 형식상 정치이념을 배제하고 있는 교육감선거의 기본정신에도 맞지 않는, 생뚱맞은 장면이었다. 진보진영은 마치 자기최면에 빠진 듯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궤변을 만들어내기에 바쁘다.짜증나는 반응은 또 있다. 정치권의 일이 매사 그러하듯, 유리할 때는 입 꾹 닫고 내내 침묵하다가 불리한 상황이 오면 부랴부랴 `뜯어 고치겠다`고 나서는 후안무치다. 6.4지방선거에서 `참패`성적표를 받아들자마자, 여기저기에서 `교육감선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무성하다.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교단이 심각하게 분열되는 말할 수 없는 피해가 교육현장에 있다”며 교육감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테스크포스(TF)팀을 발족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산하 교육자치소위원회도 교육감직선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로 변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선에 성공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 역시 과도한 선거비용문제를 폐해로 들면서 `직선제 폐지`입장을 밝혔다. 이런 흐름에 대해 새정치연합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이라며 반발했다.이쯤 되면, 그동안 치러진 교육감선거가 겉으로만 멀쩡했지, 속으로는 지독한 패거리 정치선거였음을 확실하게 커밍아웃한 셈이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날 교육감선거는 사시이비(似是而非) 선거다. 겉보기에는 중립인 것처럼 포장해놓고 속으로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색깔을 띠고 출전해 아귀다툼을 벌이며 유권자들을 농락한다. 2010년부터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기 이전 별도로 치러진 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이 고작 12.3%~30%에 머물렀던 기록을 반추하면, `로또선거`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비정상적`인 선거라는 점이 이미 낱낱이 드러났다.13대 4의 스코어로 참패한 이번 선거결과에 놀란 보수진영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얄밉기는 하지만, `교육감선거를 개혁해야 한다`는 총론에는 깊이 공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육감선거는 광역단체장과의 `러닝메이트제`가 합당하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임명제 환원`은 교육자치의 정신을 살리기 위한 선출제의 의미를 무시하는 발상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은 시도다.`러닝메이트제`는 `교육자치`를 지방자치의 중심에 세우는 강력한 조치다. 광역단체장선거가 `교육정책`을 세세히 비교하여 결정하는 참다운 정책선거로 진화할 수 있는 촉매제로도 작용할 것이다. 보수-진보의 간극이 서서히 좁아지는 현실 속에서, 유권자들이 교육전문가와 마음을 맞춰서 내놓은 단체장 후보들의 교육정책을 비교 평가하여 표심을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변별력을 담보할 것이다. 중립의 탈을 쓰고 선거에 나서서 지역교육의 참다운 발전을 어지럽히는, 결코 도(道)에 함께 들 수 없는 `사이비`들의 분탕질을 확실히 혁파할 때가 됐다.

2014-06-17

김부겸의 `성공`, 안철수의 `실패`

▲ 안재휘 서울본부장임진왜란 발발을 2년 앞두고 왜(倭)에 통신사로 건너가 토요토미의 저의를 살피고 돌아온 사절들은 상반된 보고를 했다. 서인인 정사 황윤길(黃允吉)은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한 반면, 동인인 부사 김성일은 “침입할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고 복명했다. 문제는 보고를 접한 조관들이었다. 그들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자기 당파의 사절을 비호하는 데만 열중했다. 결국 조정은 김성일의 의견을 좇아 각 도에 명하여 성을 쌓는 일마저 중단토록 하였다.파란만장한 정치여정을 겪고 있는 김부겸이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간판을 달고 나와 `대구의 변화`를 외쳤지만 분루를 삼켰다. 적진 심장부나 다름없는 대구에서 분전한 김부겸의 열정은 많은 감상을 남긴다. 그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는 동안, 웬일인지 온실 속을 맴도는 듯한 안철수의 행보가 자꾸만 교차되어 떠올랐다.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과연 김부겸은 `실패`했고, 안철수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반대로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김부겸은 운동권 출신이다. 한나라당 소속 16대 국회의원(경기 군포)으로 있으면서도 국가보안법 폐지 등 소신을 펼치다가 2003년 `대북송금특검` 사건 때 반대표를 던지고 탈당하여 야당으로 돌아섰다. 그 후 그는 17~18대 두 차례나 더 당선됐다. 이번 선거에서 김부겸은 40.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미 지난 2012년 총선 때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40.42%의 지지표를 일궈냈던 그가 광역시장 선거에서도 거의 같은 득표율을 기록한 일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다.1988년 13대 총선에서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서울 동작갑에 출마해 고작 3.25%의 득표로 낙선했던 기록을 포함하여 김부겸은 이제 4번째의 낙선 이력을 만들었다. 적지 한복판에 뛰어들어 피를 철철 흘리며 다져 올린 그의 내공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김부겸의 성취는 단순한 숫자의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다.한때 많은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안철수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이 전략 공천한 후보를 건져내기 위해 야당 핵심 정치기반인 광주로 달려가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읍소를 하기에 급급했다. 선거 이후 안철수에게 쏟아지는 평자들의 비판은 냉혹하다. `안철수 현상에서 자신의 이름인 안철수를 스스로 지웠다`는 혹평에서부터, `이젠 새 정치의 상징이 아닌, 현실 정치인 안철수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한탄에 이르기까지 잔인스럽기까지 하다. 최근 그의 측근으로부터는 `안철수는 변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고백도 들었다.김부겸이 이제부터 신경 써야 할 일은 진보정당의 낡은 체질 개선이다. 이번 지방선거만 하더라도, 새정치연합은 대안정당으로서 국민들에게 다가가기보다는 반대를 위한 `선동`에만 몰두하다가 대승을 거둘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쳤다. 그에게는, 보수정당 안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던 `용기`와 진보인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박정희기념관`을 짓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고 밀어붙이던 `패기`가 더욱 필요해졌다.나랏일을 놓고 매사 붕당의식의 잣대로 찬반을 결정하여 벼랑 끝 대치전선을 만들어내는 우리 정치풍토는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남북대치와 경제전쟁과 부조리 속에서 위태롭게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좀 더 안전할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입은 조선의 인명피해는 무려 24만 명(전사 7만 명, 부녀자포로 2만여 명 포함)에 달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는 남은 농토가 고작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민생의 피폐는 실로 처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쟁`을 예측하지 못한 김성일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는 `반대를 위한 반대`에 찌든 패거리 정치인들이다.

2014-06-10

유권자의 자존심

▲안재휘 서울본부장민주국가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선거제도`는 기원전 508년 경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실시된 도편추방제(Ostrakismos)가 그 기원으로 돼있다. 패각추방(貝殼追放)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아고라(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독재정치가(僭主:참주)가 될 우려가 있는 사람의 이름을 질그릇 조각이나 조개껍질에 써서 투표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투표결과 그 수가 6천을 넘으면 그 사람을 10년 동안 국외에 추방하는 매우 살벌한 제도였다. 오늘날 빈번히 실시되는 선거결과를 분석해보면 현대인들은 `회고적 투표`보다는 `전망적 투표`를 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늘고 있다. 즉 정당과 후보자에 대해 `과거에 어떻게 해왔는가`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더 많이 살핀다는 것이다.이는 선거에 나선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상대방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결정하는 일을 매우 예민하게 만든다. 아울러 선거 때마다 무리한 공약을 남발토록 하는 고질적 표(票)퓰리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세월호 참사 충격 속에서 치열하게 전개돼온 지방선거 투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지방선거는 집권당이 무조건 불리할 것이라는 일방적인 전망 속에서 시작됐다. 선거초반 분위기로는 야당의 `정권심판론` 서슬에 여당이 무조건 참패하리라는 예상이 대세였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하락에도 야당이 반사이익을 취하지 못하는 현상을 들어 최소한 야당이 압승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지난달 말 이틀 동안 실시된 사전투표의 투표율 11.5%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연령대별 투표율은 20대 이하가 16.0%로 가장 높았고, 60대 12.2%, 50대 11.5% 등의 순이었다. 70대 이상(10.0%)과 40대(10.0%), 30대(9.4%)의 투표율은 평균치를 밑돌았다. 이 결과를 놓고 여야 정당들이 서로 자기네가 `위태롭다`며 엄살작전을 펴는 것을 보면, 이번 선거가 얼마나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자유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투표는 유권자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각인시키는 성스러운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가진 정치적 권리를 특정 대리인에게 잠시 위탁하는 엄숙한 의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올바로 위임하지 않을 경우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누누이 목격했다. 지도자를 잘못 뽑는 일이 국민 개개인에게 얼마나 심각한 손실로 돌아오는지도 생생하게 겪었다.투표소 앞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꼭 되새겨야 할 일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라는 사실이다. 그렇잖아도 `지역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라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잘 뽑아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한 판단과 이성적인 투표가 필요한 선거다. 세월호 비극의 교훈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하지만, 감성에만 휘둘리는 것은 옳지 않다. 참다운 지역발전의 역군이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다.선거제도의 기원이 된 `도편추방제`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선거제도가 품고 있는 가치를 상회하는 깊은 의미가 있다. 패각선거는 `10년간 해외추방`이라는 냉혹한 처결을 전제로, 어떤 주요인물에 대한 `독재가능성`을 판별하는 지혜로운 `전망적 투표`였던 것이다.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어 유권자들을 선동하는 일이 즐비한 오늘날 선거풍토에 소중한 교훈을 던져준다.유권자의 자존심을 진정으로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누가 더 잘 할 것인가`를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2014-06-03

`안대희` 변수

▲ 안재휘 서울본부장세종대왕이 동래현 노비 출신의 궁중기술자 장영실(蔣英實)에게 `상의원 별좌`라는 녹봉도 없는 벼슬을 주려고 하자 조정이 시끄러웠다. 반대하는 중신들이 많았지만, 세종은 약간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일부 대신들의 논리를 전격적으로 차용하여 임용을 단행했다. 그렇듯, 세종의 인재발탁 기준은 가문이나 학파, 출신지역은 물론 반상(班常)의 신분마저 뛰어넘었다. 세종의 용인술에는 오직 하나의 가치, `그 일을 해낼 수 있느냐`만이 중심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 여파 속에서 이렇다 할 쟁점이 없던 6.4지방선거 정국 한복판에 `안대희` 변수가 던져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으로 하마평에 오른 여러 인물들 중에 안대희 전 대법관을 낙점했다. 곧바로 안 후보자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냉혹한 검증이 시작됐다. 그가 지난해 개업한 변호사 사무실의 과다수임료 문제가 가장 먼저 도마에 올랐다. 스스로 `관피아` 척결을 으뜸사명으로 내세운 새 국무총리 후보자가 정작 자신은 전형적인 전관예우 `법피아`의 행태를 보인 게 아니냐는 이중성 논란이 난해한 덫으로 등장했다.`안대희 전 대법관`의 등용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는 이미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 깜짝 등장함으로써 세간의 관심을 끌었었다. 그러나 선거 도중에 한광옥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중용에 맞서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그랬던 그였기에, 이번 국무총리 내정은 뜻밖의 카드라는 해석이 있다. 반면에 때때로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 용인술로 주위를 놀라게 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감안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어찌됐건, `안대희 총리후보자`를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일찌감치 그를 차기 대권잠룡 반열에 올려놓는 `대망론`에서부터,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온갖 포화를 대신 맞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 `방탄용 총리`로 전망하는 `비관론`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스펙트럼을 이룬다. 안대희 총리후보자 발탁에 대한 갑론을박은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6.4지방선거의 중요한 논점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정치권의 공방을 통해서 불가피하게 대두될 정부혁신 방안에 대한 국민적 공감지수가 민심의 물꼬를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세상에 없다. 이 세상의 어느 지도자가 있어 완전무결한 인물일까.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 속에서 천차만별의 평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지도자로서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돌이켜보면, 역사상 그 어떤 정치지도자도 시련을 겪지 않고 거목이 된 사례는 없다. 온갖 풍상을 어떻게 견디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인물의 수준과 됨됨이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법조인 안대희는 이제야 비로소 정치의 영역에서 휘몰아치는 매운 눈보라 앞에 벌거벗고 선 셈이다. 그가 정말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참담한 병폐들을 속속들이 도려내고 갈아치울 탁월한 인재인지 아닌지 혹독한 검증의 무대에 올랐다. 이미 제기된 몇몇 합리적인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가 안대희의 장점과 가치를 평가해주고 그 효용가치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의 판가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청와대는 머뭇거리지 않고 국무총리 임명동의를 위한 청문요청서를 국회로 보내는 등 강력한 임명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위대한 성군인 세종대왕이 구사한 용인술의 핵심인 `그 일을 해낼 수 있느냐`는 관점으로 볼 때 `너무 잘 드는 칼` 안대희 후보자는 난마의 한 매듭을 풀어줄 적임자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소용돌이치는 민심의 바다 저 아래쪽에 그 비답이 있다.

2014-05-27

대통령 혼자서는 못 한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18년 동안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을 12배나 끌어올렸다. 수출도 166배의 성장을 이루어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 중 최단시간 초고속도의 성장이었다. 주목할 것은, 그가 국민들에게 가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열망을 심어줬고, 실천과 단계별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공감과 참여를 유도해냈다는 점이다.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국민들이 오늘날 대한민국 번영의 일등공신으로 `박정희`를 꼽는 이유다. 30여년 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하던 자리에서 나라운영을 맡은 박근혜 대통령이 전대미문의 비극인 `세월호`침몰사고로 집권 이후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터진 대형 참사로 정치권은 혼돈에 빠졌고, 국민들은 정신적 공황상태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공식 사과했다. 존재가치를 상실한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무능한 해수부와 안전행정부도 해체 수준의 개편을 단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정치권의 국정조사와 특검에 대해서도 수용의사를 밝혔다.이미 많은 국민들이 거론해왔듯이 `세월호`사고는 그 뿌리가 결코 단순치 않다. 이번 참사는 오랜 기간 무수히 쌓여온 적폐들에 기인하는 비정상적인 관행과 부정부패가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다. 결코 해양경찰만의 문제일 수도 없고, 해양수산부나 안전행정부만의 허물일 수도 없다. `세월호` 참극은 긴 세월 결과지상주의만을 탐닉해온 대한민국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곪아온 무수한 난치종양들 중 하나일 따름이다.오염된 국민인식에 끈 달린 엄청난 인재(人災)를 겪으면서도, 때려잡을 희생양을 찾아 눈 부릅뜨고 나선 작금의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는 심각한 걱정거리다. “희생양을 찾아내어 욕하고 꾸짖으면서 자기위안을 찾고 변명을 일삼는 것을 보니, 이제 곧 월드컵 경기가 시작되면 모두 다 잊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누군가의 앙칼진 비관은 허탈을 부른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그렇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아주 씻어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굳이 박 대통령이 그렇게 언급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이제 정말 `국가개조`수준의 혁신을 이뤄내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기관 뿐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떨쳐 일어나 모든 분야의 적폐들을 찾아내어 도려내고 잘라내야 한다. `세월호`참사를,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명징한 계기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참혹하게 희생된 어린 넋들을 진정 위령하는 고귀한 의식이 될 것이다.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박근혜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고도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결과지상주의를 구사했다. 박 대통령의 눈물이 아버지가 숙제로 남긴 `피폐한 정신문화`를 개조하겠다는 알찬 다짐이기를 바란다. 박 대통령은 이제, `충성심` 못지않게 투철한 `의지`를 중요하게 여긴 아버지의 치밀하면서도 과감한 `용병술`을 배워야 한다. 대통령 혼자서 할 수 있는 시대는 진작 다 지나갔다. 모든 분야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일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찾아내어 중용해야 한다.어설픈 패당주의에 빠져서 국민들의 참 소망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인물들을 써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그 진정성을 인정하여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혁신의 틀`을 짜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국민운동`이다. 온 국민의 대오각성을 견인해낼 구국운동을 들불처럼 일으켜야 한다.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 그런 흐름이 저절로 일어날 수 있도록 감동적인 혁신의지를 보여주는 일은 오롯이 박 대통령의 몫이다.

2014-05-20

`도올`은 틀렸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이 시대 최고의 스타지식인으로서 유명세를 누려온 도올 김용옥(金容沃) 한신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2년 총선 직전 한 라디오에 출연해 `쥐새끼`라는 용어를 풍자적으로 동원, 이명박 정권을 모질게 힐난했다. 그는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모든 사람이 어질지 못하게 되고, 임금이 인해야 비로소 국민들이 인하게 된다”는 고전을 인용하면서 “쥐새끼라는 게 자기 닥치는 대로 갉아먹고 도망치니까 우리가 쥐새끼를 싫어한다”고 말해 청취자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그가 청천벽력 같은 세월호 비극으로 어지러워진 민심을 파고들며 또다시 교졸한 개인기를 펼쳐 파문을 빚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세월호 참변의 전 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의 하야와 국민봉기를 선동하는 구호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라는 과격한 용어로 독자들을 자극하기도 했다.6.4 지방선거를 저만큼 앞둔 시점에 터진 세월호 침몰 사고는 단순히 정부여당의 정치적 재앙이라는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희대의 참극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횡액 앞에서 국민들은 오래도록 속울음을 삼키고 있다. 세계 8위의 무역대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가. 사고발생 이후 한없이 허우적대는 정부의 대응능력과 끊임없는 잡음들은 또 무엇인가. 형언키 어려운 아픔 속에서 국민들은 참사의 원인들을 곰곰 헤아리리다가, 각자의 적당주의와 무질서의 적폐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가슴을 치고 있다.아니나 다를까, 정해진 지방선거일이 시나브로 다가오면서 세상 온갖 부조리를 상대방의 허물로 몰아 때리는 정치인들의 못된 삿대질 버릇이 도졌다. 아마도,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처절하게 반성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할 사명을 망각한 채 더욱 격렬한 멱살잡이 꼴불견을 펼칠 듯하다. 이미 추모행사에 섞여들어 `박근혜 퇴진` 구호를 목청껏 외쳐대는 불순한 풍경마저 늘고 있다. 정치를 좀 안다는 어떤 인사들은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사고를 틈타 정권에 부담을 준 악재들을 다 털어내고 있다`는 냉혹한 해석을 내놓는다. 새 정권 등장 이후 불거진 국정원 대선개입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건 등 모든 골칫거리들을 일순에 비껴가고 있다면서 약 올라 못 견뎌하기도 한다.세월호 참극의 뿌리는 결과지상주의에 함몰돼 온갖 협잡에 물들어 살아온 우리 모든 가치관의 모순에 정확하게 맞닿아있다.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자기변명`에 빠지는 한심한 짓거리다. 본질을 벗어난 뒤죽박죽 선거판이 예고되면서, 이번 지방선거는 최악의 선거가 될 공산이 커졌다. 그악한 선동전으로 표심의 물꼬는 형편없이 왜곡될 것이고, 그 참담한 결과는 갈 길 바쁜 지역발전 여정에 고약한 암초로 남을 확률이 높다. 냉철해야 할 유권자들의 이성과 평정심은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참극으로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통치자가 온전히 자유로울 도리는 없겠지만, `모든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도올의 판단은 틀렸다. 그의 주장이 `참`이 되려면 최소한 `그 이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조건이 성립돼야 한다. 세월호 참극은 오래전부터 모든 곳에서 시작됐고, 여야 정치인과 지식인을 비롯해 국민 그 누구도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자격이 없다. 한때 현란한 학구열로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던 도올이 마치 흑백논리에 갇혀 세상을 천박하게 재단하는 패당주의의 아류들처럼,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하고 떠드는 모습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형편없이 무너진 대한민국의 국격 앞에서 무한한 부끄러움으로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강한 석학(碩學)이 보고 싶다.

2014-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