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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승자독식(勝者獨食)` 정치는 끝났다

▲ 안재휘 논설위원13세기 초 세계적인 대제국을 일궈낸 칭기즈칸(Chingiz Khan)의 성공요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기마부대를 동원한 상상을 초월한 `속도`와 신속한 `정보망`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몽골군이 워낙 빨라서 철갑옷을 입은 서양의 느린 군사들은 미처 칼을 뽑을 시간조차 없이 속수무책 짓밟혔다`는 말까지 있다. 인류사회에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고 활용하는 능력의 독점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원동력이었다. 오늘날도 `정보독점`과 `속도경쟁력`은 권력경영은 물론 경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성공의 필수요소로 지목된다. 정치인들이 끼리끼리 독점하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정적을 제압하는 수법으로 권력을 키우는 일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자유·평등·비밀선거라는 절차로 국민들이 승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형식은 민주주의가 자랑하는 가장 주요한 정치제도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다수결(多數決)로 지도자나 집권당을 뽑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영위한다. 대개의 경우 패자는 일정기간 승자에게 권력을 모두 넘기고 묵묵히 따른다. 최선은 아니지만 그나마 그런 방식이야말로 부작용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사 역시 `독재` 혼란을 거듭한 연후에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지도자를 뽑는 제도를 정착시키면서 `민주국가`의 틀을 발전시켜왔다. 패자들은 `다수결`제도가 갖는 차선(次善)의 가치를 믿고 한동안 패배의 비애를 곧잘 견뎠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국민들은 게임이 끝나도 패배를 쉽게 승복(承服)하지 않는 습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우리 대통령선거사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결과에 대한 불복(不服) 의식의 진폭이 증대된 사이클을 발견하게 된다. 그 파장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 진전을 이룩하는 동안 오히려 깊어졌다. 부작용은 단지 국회 안에서 무한대로 증폭된 육박전 정치행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광장`으로 뛰쳐나온 시민들 사이에까지 그 변질은 틈틈이 박혀 있다.그 핵심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더할 나위 없이 보편화된 자유와 평등의 신장과 연관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성마르게 한 진짜 이유는 `지식`과 `정보`의 보편화에 있다. 디지털 기술의 혁명과 매스컴의 눈부신 발달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절대 권력자와 일반 국민들이 확보한 `지식`과 `정보` 수준의 간극이 결코 크지 않다.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오늘날 정치권이 여전히 케케묵은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미련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넌센스다. 권력을 독점하겠다는 `승자독식(勝者獨食)` 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선거에서 이긴다한들 누구든 무진고난을 모면키 어렵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승자에게 모든 것을 주는 그 논리의 부실을 참지 않기 때문이다. 조기대선을 상정하고 벌어지는 선거 국면에서 `연립정부(聯政)` 이야기가 흐드러지고 있다. 일부 대선잠룡들은 내놓고 `연정`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곤경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권력독점을 더 이상 인내하지 않게 된 민심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우매함에서 비롯됐다고 볼 여지가 있다.정치권에서 돌아보아야 할 대목은 `연정` 뿐만이 아니다. 차제에 `권력구조`는 물론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소선거구제` 같은 `승자독식`을 보장하는 모든 장치들을 혁신의 도마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속도`와 `정보력`이 보편화된 시대에 많은 것을 아주 빨리 알아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권력독점을 잠시도 참지 않는다. 권력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책을 중심으로 나눠 가져야 세상이 조용하다. 나라를 두 쪽 낼 듯한 기세로 나날이 가열되고 있는 탄핵 찬반집회가 그런 급변을 상징한다. 대중은 이제 독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비록 칭기즈칸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2017-02-14

`악마의 피`

▲ 안재휘 논설위원“정치에 나서는 사람, 즉 힘과 권력을 수단으로 택하는 사람은 악마와 계약을 맺는 것이다. 정치인의 행동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악한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는다는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치의 미성년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사상가인 막스 베버(Max Weber)의 말이다. 그는 정치의 큰 변화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통해 일어난다고 본다.제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파격적인 행보로 지구촌이 벌집 쑤신 듯 소요한다. 트럼프의 전기를 쓴 그웬다 블레어(Gwenda Blair)는 트럼프의 평소 행동을 분석한 성공 요인을 이렇게 요약한다. “무슨 일이든 반드시 이겨라.” “뻔뻔해지는 것에 인색하지 마라.” “어떤 일이든 자기 자신을 홍보 수단으로 삼아라.” “결과에 상관없이 이겼다고 우겨라.” “언제나 과대 포장하라.”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 3주 만에 허망하게 무너져 사라진 대선(大選) 가도가 예측불허의 각축장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야권에서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다크호스로 부상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돈다. 여권에서도 유승민 의원의 부상(浮上)이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황교안 총리에 쏠리는 민심이 이채롭다. 제 아무리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치러지는 선거라 해도 몇 번은 출렁거릴 조짐이다.대선 판을 흔들 가장 큰 변인은 아무래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인용`을 전제로 움직이는 정치권의 예단은 `기각` 이변을 허용하지 않는다. 헌재의 결정일자를 2월 말쯤으로 점치고 있는 가늠에 맞춰 `4월말~5월초`의 이른바 `벚꽃대선`을 예측하는 전망이 많다. 결코 길다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복잡한 변수가 작용하면서 선거판이 거듭 요동칠 것 같은 예감이다. 정가에는 `악마의 피가 많은 사람이 선거에서 이긴다`는 속설이 있다. 여기에서 `악마의 피`란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권력욕`, 웬만한 여론의 모다깃매에는 끄떡하지 않는 두둑한 `맷집`,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교활함` 따위로 의역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면 과연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시련을 겪고도 끝내 살아남아 권력을 누린 이들이 적지 않다.우리는 반기문의 실패를 무심히 비웃어서는 안 된다. `악마의 피`라고는 한 줌도 있어 보이지 않는 그의 가치를 삽시간에 짓뭉개고 만 살벌한 우리 정치풍토를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은 잠시도 버틸 수 없는 험악한 정치풍토를 괜찮다고 여기는 것부터 우리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병증(病症)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진 정치꾼들이 언제나 승리하는 나라는 결코 온전한 나라일 수 없다.반기문이 홀연히 떠난 정치권 링 위에서 우리는 누가 더 `악마의 피`를 많이 가졌는지를 잔인하게 견주고 있다. 상식 밖의 `뻔뻔함`을 무기로 쟁취한 트럼프의 대권이 뜨겁게 부딪치고 있는 미국정치의 귀추도 관심거리다. 칼끝과 총구(銃口)가 좌지우지한 권력시대를 벗어나 여론(與論)이 권력의 향방을 판가름하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가 한층 더 어려워졌다.한국정치를 바꿔내기 위해서는 승자독식으로 이어지는 선거독재와 끊임없는 대선불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묘안을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다. 개헌은 그 첫 관문이다. 대선후보로 나선 50대 주자들이 몰두하는 `연정(聯政)`과 `정책대결`의 레이스를 주시한다. 그들의 이상이 부디 `악마`가 아닌 `천사`와의 계약으로 귀결되길 소망한다. 미래를 한없이 암울하게 만드는 `비상식`의 범람을 막아내는 튼튼한 `상식`의 방파제가 창조되기를 기원한다.

2017-02-07

`적개심` 공화국의 막장풍경

▲ 안재휘 논설위원미국 팝아트의 선구자인 앤디 워홀(Andy Warhol)은 `현대미술`의 아이콘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던 그에게 붙은 `팝의 교황`, `팝의 디바` 등의 별칭들은 워홀이 끼친 미술사적 영향력을 여실히 대변한다. 그는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광고·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게 걸었던 보수진영의 기대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정치의 신 지평을 열어낼 감동적인 `메시지`를 고대하는 국민들의 갈증을 채워주기에 그는 아직 역부족이다. 귀국 후 부리나케 여기저기 전국을 쫓아다니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그의 모습은 `기성정치` 행태 이미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그러구러 정치판 기류는 `문재인 대세론` 언저리에서 좌충우돌 중이다. 설을 지나면서 정치인들은 제각기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포장해 민심을 전한다. 보수정치인들은 절대위기감에 빠진 보수민심이 정치인들의 용단을 요구하고 있음을 전한다. 진보정치인들은 `서둘러 탄핵을 매듭짓고, 빨리 정권교체 끝내라`는 것이 대략의 민심이라고 능갈을 섞는다.탄핵소추 재판 중에 차기 대통령 선거전이 활활 타고 있는 희한한 정국 속에서 국민들의 일상은 그저 뒤숭숭할 따름이다. 와중에 터진 `더러운 잠` 파동은 핵폭탄급 변수를 잠복한다. 국회의원회관에서 `곧, BYE! 展`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전시회에 걸린 `더러운 잠` 그림은 우리 정치의 `경박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해프닝, 그 추태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기성품 오브제들을 뜯고 잘라 알기 쉬운 선동깃발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고상한 예술로 포장하는 것은 분명 낯부끄러운 짓이다. 이미지 이것저것을 `따 붙이기` 방식으로 덧붙여내는 허접한 `장난질` 결과물에 한사코 `표현의 자유` 보호막을 치는 사람들이 판을 친다. 그런 창작이 예술의 영역에 맞닿으려면 어디까지나 시대를 초월하는 고뇌와 심화된 의미가 내재돼 있어야 한다.국회 내 전시회를 장만해준 죄로 더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뭇매를 당하고 있다. 그가 던진 `표창`이 자신의 국회입성을 이끌어준 문재인의 심장에 적중했다는 조롱까지 당하고 있다. 같은 당 우상호 원내대표까지 나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벌거벗겨 풍자하는 그림을 걸었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었겠는가”라며 비판했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저질 선동놀음인 `더러운 잠`이 함유한 `여성혐오`의 천박한 의식에 대해서 나라 안 온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써 눈을 가리고 입을 틀어막은 더민주당 여성의원들의 오불관언 행태를 주목한다. 더민주당 지지층 중 그림의 내용과 전시장소가 모두 문제없다는 사람이 무려 41.7%였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진영논리에 찌들어 `적개심`으로 똘똘 뭉친 외눈박이 정치의식을 넉넉히 노정한다. 그 피비린내 나는 패가름 가치관들이 통탄스럽다.`예술가` 완장을 차고 사시사철 선동화(煽動畵)만 찍어내는 짓거리에 여념 없는 돌연변이 사회주의 국가의 추악한 실상이 떠오른다. 유치한 `조롱`과 `악질 선동`을 끝끝내 `예술`이라고 우기며 발악하는 무리들이 그려내고자 하는 조국의 미래는 무엇인가. 또 그 치졸한 선동행위를 `괜찮다`하는 적지 않은 `진보` 민심의 가슴 속에 붙박인 `증오`의 실체는 무엇이고, 지향점은 또 어디인가.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은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천박한 해석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신비로운 존재로 남기를 원한 그는 `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모두 다른 답변을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죽고살기로 창을 겨누고 마주 서서 오직 민심 갈라치기를 위한 꼼수에 매달려 이기겠다는 `욕심`에만 함몰돼가는 구태정치가 걱정이다. 북풍한설보다도 더 차가운 `적개심` 공화국의 막장풍경에 민심은 점점 더 얼어붙어가고 있다.

2017-01-31

`민심방화범(民心放火犯)` 주의보

▲ 안재휘 논설위원“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글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고,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될 것이 없으니, 이로써 허물을 줄일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의 이 말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진실을 관통한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오는 `백성이 비록 무지하더라도 그들을 속일 수 없다`는 대목과도 맞닿는다.정초 대한민국 정치마당에 `표(票)퓰리즘`과 `험구`의 난장(場)이 펼쳐지고 있다. 무허가 험담공장들이 난립하기 시작했고, 무책임한 뻥 공약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다. 일찌감치 불붙은 대선전(大選戰)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고새면 사진 박혀 나오는 `출마선언`이 봇물을 이룬다. 입지후보가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경쟁`이 있어야 경쟁력이 생기는 법이다. 우리는 왕왕 오류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치열한 경쟁을 택해 왔다. 그러나 작금 정치권에서 분별없이 벌어지고 있는 구닥다리 행태는 국민들의 근심을 뭉텅뭉텅 보탠다. 자기 상품을 자랑하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기본적인 도의(道義)마저 저버리고 남의 물건을 마구발방 헐뜯는 반칙을 일삼고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대선전 후보입지를 다지고 있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으뜸 먹잇감이다. 그를 `적장`으로 상정한 정치패들의 `티 뜯기` 의지는 투철하다.인천공항 입국과정에서 빚어진 열차표 자판기에 지폐 두 장을 한꺼번에 넣으려던 실수는 `물정 모르는` 인사로 몰아가는 단골소재(素材)로 악용된다. 꽃동네에서의 턱받이 해프닝은 개그 프로그램의 패러디 소재로까지 등장했다. 제1야당의 대표가 반기문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일 논평하는 모습은 싸구려 정치수준을 상징한다. 그러구러 이번 대선 역시 `욕 잘하는 정당`의 후보가 이기는 `구설(口舌) 공화국`의 비극이 재연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우리를 낙담하게 하는 진짜 참상은 어떻게든 표를 훑어내려는 심산에서 나오는 무리한 공약경쟁에서 잉태된다. `젊은 표`를 낚아채고 싶은 성마른 욕심이 `군복무` 관련 공약으로 나타났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2023년 모병제 도입을 주창해왔다. 문재인 전 민주당대표는 현재 21개월인 복무기간에 대해 “18개월은 물론이고 더 단축해 1년까지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장사꾼 흥정하듯 `10개월 복무`를 부르댔다.뻥 공약에 관한 한 `청년배당`과 무상시리즈 등 기본소득을 앞세운 이재명 시장이 단연 으뜸이다. 그는 “국가예산 50조~60조원으로 1인당 100만원씩, 가구당 300만원씩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본격적인 `표(票)퓰리즘`과 `험구` 난사는 이제 비로소 시작일 것이다. 민심을 긁어모으려고 오만 약속을 걸터듬는 꿀 발린 독극물들은 한없이 쏟아질 것이다.민초들의 감성에 불을 질러내려는 정치꾼들의 민심방화(民心放火) 행위의 뿌리에는 국민들에 대한 폄훼의식(貶毁意識)이 있다. 그들의 생각 속에서 `국민`이란 그저 적당히 속이면 넘어가는 어리석은 존재일 따름인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기형적 풍토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선거일 딱 하루만 `주인` 대접 받고 만족하는 유권자들이 깨어나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민심방화범들의 음모를 철저히 감시하여 솎아내야 한다.민심에 불질러놓고, 돌아앉아 앞으로 챙길 권력 장부만 들여다보는 저질 정치꾼들의 국민멸시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주인이 주인답기 위해서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은 주인의 자존심을 능욕하는 일체의 행위를 차단하는 일이다. `두려워할 외(畏)` 글자를 깡그리 망각한 저 정치모리배들의 오만방자한 불장난을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비방과 모략으로 만들어진 정치에 또 다시 미래를 맡겨서는 결코 안 된다.

2017-01-24

`정글(Jungle)의 법칙`

▲ 안재휘 논설위원타잔(Tarzan)은 미국의 대중작가 E.R.버로스가 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1914년 `유인원 타잔`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4년 동안이나 연작이 발표됐다. 이 소설은 본래 영국 귀족의 아들이었던 타잔이 비행기 사고로 아프리카 밀림에 불시착, 동물들에게 양육된 다음 밀림을 해치려는 문명인들을 응징하는 내용이다. 1931년부터 MGM사를 비롯한 많은 영화사에서 영화화 해 큰 인기를 끌었다. 예상했던 대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귀국이 조기대선(早期大選) 레이스 신호탄이 되어 정치권 밀림의 대권전쟁이 본격화됐다. 바른정당 유승민 국회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오는 25일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한다.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김문수 새누리당 비대위원 등도 대선 출마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15일에는 새누리당 이인제 전 최고위원이 대선도전을 선언했다.야권에서는 이미 대권 레이스 한복판에 들어선 더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선두주자다. 안희정 충남지사·이재명 성남시장이 출마선언을 한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심상정 정의당 대표·정운찬 전 총리가 금명간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돈다.조기시행 가능성이 높아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의 향방을 좌우할 변수로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으뜸인물로 꼽힌다. 최대이슈는 `개헌`이라는 분석에도 대체로 이의가 없다. 반 전 총장이 귀국하면서 던진 `정치교체` 일성(一聲)이 문재인 전 대표의 적극적인 화답으로 프레임논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감컨대,`정권교체냐, 정치교체냐` 프레임은 이번 대선경쟁의 핵심주제로 부상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국정혼란 사태를 단순히 `보수정권의 폐해`로 몰아가는 것은 이념투쟁의 노예들이 던지는 음험한 그물이거나, 민심에 대한 명백한 오독(誤讀)이다. 국민들의 원망(願望)은 분명 `정권타도`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광장의 민심을 권력쟁취 도구로 악용하려는 일부 주체들의 시도가 빗나가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시위 한복판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석기 석방` 따위의 구호를 많은 국민들이 수상쩍어하고 있다,국민들은 이제 제발 우리 정치가 상대방을 비방하는 쩨쩨한 실력을 겨루는 저질 쇼가 아니길 바란다. 반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회견에서 밝힌 “사람들이 권력의지가 있는지 많은지 묻는데, 권력의지가 남을 헐뜯는 것이라면 저는 권력의지가 없다”는 말은 그런 민심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이번 대선이 조기에 치러질 경우, 당선자는 변변한 이양절차조차 없이 곧바로 통치에 들어가야 한다. 주자들이 가진 정책만을 비교하기도 벅찬 시간적 한계가 있다. 조작인지 아닌지조차 밝혀낼 여유마저 없는 상황에서 온갖 풍설을 부풀려 뒤집어씌우려는 모략은 망국적인 범죄에 다름 아니다. 일단, `개헌`이라는 국가적인 화두가 대권주자의 정책을 비교 검증하는 첫 번째 프리즘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통일·외교 분야는 물론, 캄캄한 불황터널에 갇힌 경제난 타개문제·빈부격차 해소대책·청년실업 해법·교육정책 등 첩첩한 난제들에 대한 해결능력을 견줘보는 일만으로도 벅차기 짝이 없는 일정이다. 상대방 쓰레기통이나 둘러엎어 냄새나는 물건을 찾아서 침소봉대하여 민심을 왜곡시키는 서툰 짓거리를 이제는 용납하지 않는 정치풍토를 창출해내야 한다. 정직한 힘만을 겨뤄 승리한 개체가 지배하는 방식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정글`은 일체의 사술(詐術)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누가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갈 이 시대의 `타잔`인지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좋은 인물을 `타잔`으로 뽑아서 써야 할 사명마저 외면할 수는 없다. 온갖 흑색선동의 구린내에 취한 그릇된 선택으로 타락한 권력의 참극을 또 다시 목도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2017-01-17

`중도(中道) 빅 텐트`의 비밀

▲ 안재휘 논설위원사가(史家)들은 조선 망국의 원인을 장구한 세월 죽고살기로 이어간 사색당파의 폐해에서 찾는데 대략 인색하지 않다. 오늘날 한국정치의 패거리정치 고질병을 끔찍한 혈투를 지속한 노론-소론 당쟁의 연장선상으로 해석하는 일부 견해도 공감을 얻는다. 그러나 그 피비린내 나는 다툼을 왕권강화를 위한 차도살인(借刀殺人) 기회로 악용한 못된 군주들의 간악한 통치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이번 사태로 인해 집권확률이 성큼 높아진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를 축으로 하는 진보세력들은 `좌 클릭`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보수(保守)`가 궤멸되고 있는 시점에 지지충성도가 높은 진보 집토끼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일을 대권쟁취의 지름길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변수들이 살아있는 지금, 그들의 상정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리라는 보장은 아직 없다.해를 넘겨가며 펼쳐지는 촛불집회를 종북 좌파들의 장난으로 몰아가려는 친박단체들의 작전은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과거 정권 때의 농단도 모두 다 탄핵거리”라는 식의 `물 타기` 논리도 초라할 따름이다. 촛불시위의 한복판에 광우병 사태로 대표되는 헛발질 선동의 주역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노도(怒濤)는 그 정도의 궁색한 방패로 막아설 수준을 이미 넘었다.비박계가 `우르르` 빠져나간 새누리당은 좀처럼 뱃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재건축을 도모하고 있는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친박핵심 출당` 기초공사가 거친 반발에 막혀 지지부진이다. 친박은 스스로 데려온 수술의(手術醫)가 갑자기 호랑이로 표변하는 횡액을 만난 듯 혼비백산이다. 파열음 속에 드러난 `탈당 쇼` 운운은 새누리당을 더욱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있다.새누리당을 나온 보수개혁 세력들은 `바른정당`이라는 새 간판을 장만했다. 당명에 `보수`라는 말을 넣느냐 마느냐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따뜻한 보수, 깨끗한 보수`라는 기치에도 불구하고 매운 국민감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바른정당`이 조변석개(朝變夕改)의 가파른 정치지형 속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드디어 반기문이 온다. 조기대선(早期大選) 국면에서 그는 누가 뭐래도 가장 큰 변수다. 그는 극단적인 정치집단의 항로에 궤를 맞추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계파정치에 대해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그는 `중도실용주의`의 가치관으로 정치재편을 도모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존 패거리정치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인 듯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대목은 이번 대선을 계기로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정치가 정책 중심으로 재편돼 정치선진화의 주춧돌을 놓게 될 것인가 여부다. 정치협잡꾼들이 명망가를 권력중심에 놓고, 이념정책을 종속변수로 활용해 만행을 부려온 미개한 정치풍토가 혼란의 진짜 뿌리라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미래지향적 `중도(中道) 빅 텐트`의 성패가 대한민국 정치사의 변곡점이 될 확률이 높다. 이번 기회에 특정 정치거목을 제왕으로 모시고 둘러앉아 사익(私益)을 탐닉하는 정치모리배들의 악행을 끊어내야 한다. 편벽된 주의주장으로 민심을 무한 선동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탐하는 메커니즘에 갇힌 한국정치를 바꿔내야 한다.한번 `주군(主君)`으로 모시기 시작하면 무슨 짓을 해도 옹호하며 주구(走狗) 노릇을 일삼는 일은 시대에 맞지 않는 천박한 `충성`이다. 우리는 이제 특정인물에 대한 호오(好惡)나 지역감정이 아니라, 정당의 정강정책을 낱낱이 비교하여 표심을 결정하는 선진 민주주의의 유권자가 돼야 한다. 이번 사태를 분기점으로, 이 끈덕진 사색당파 패당정치의 더러운 대물림 오명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2017-01-10

`개헌` 말고는 `길` 없다

▲ 안재휘 논설위원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의료진이 가장 먼저 하는 절차가 진단(診斷)이다. 진단은 질환의 증세와 병리검사를 바탕으로 병인(病因)과 병소(病巢)를 찾아내어 적용해야 할 치료법을 선택하는 과정을 말한다. 진단의 정확성 여부는 치료효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질병 완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상식은 따로 있다. 바로 치료의 적기를 놓치지 않는 일이 그것이다. `개헌`이 `대통령 탄핵`을 넘어서 정치권 최대의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대선 전`에 하느냐, `대선 후`에 하느냐를 놓고 정치권이 두 패로 갈리고 있는 형국이다. 나중에 하자는 쪽은 `조기대선(早期大選)`이 유력한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으뜸사유로 꼽는다. 개헌방향과 내용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주장들을 그렇게 빨리 갈래지을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그 주장대로 개헌을 다시 미뤘을 경우,`국정농단` 사태로 이미 사달이 난 이 나라 정치는 정말 괜찮을까. 그러려면 우선, 대통령과 중앙정부에 집중된 막강한 권력으로 인한 병폐가 잠시라도 개선된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톺아보아도 그럴 가능성은 전무(全無)다. 권력중심을 향해 몰려든 정치모리배들이 온갖 협잡을 꾸며대고, 중앙정부의 지독한 갑질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한 달라질 가망은 없다.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에서 정치권은 `누가 대권을 잡느냐` 쪽으로 온갖 신경이 쏠려가고 있다. 조만간 유력주자들 뒤쪽에 줄을 서려는 이합집산 흐름은 빨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정치꾼들은 지지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챙겨야 할 반대급부 전리품 계산에 분주해질 참이다. 권력 장사꾼들의 입장에서 `개헌`은 절대로 유리한 카드가 아니다.일부의 예측처럼 개헌의 `내용` 자체가 최대의 대선이슈가 될 가능성도 있다. 대선주자들의 구체적인 `개헌` 공약이 유권자들의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중요한 것은, 이번에는 대선주자들의 `개헌` 공약이 결코 두루뭉술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선주자들의 `개헌하겠다`는 막연한 허언(虛言)에 국민들은 그동안 충분히 농락당했다.역대 대선을 돌아보면 자명하다. 선거과정에서 후보들 거의 모두가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지만, 막상 당선이 되고 나면 싹 바뀌곤 해왔다. `개헌이슈가 블랙홀이 돼 국정동력이 떨어진다`는 종류의 핑계를 앞세워 덮어버리는 일이 되풀이됐던 것이다. 그런 모순들이 막강권력에 취한 정권의 통치스타일을 자꾸만 `불투명`으로 몰아간 것도 사실이다.`조기개헌(早期改憲)` 주창은 그동안 경험했듯이 이번에도 `개헌` 열망이 또다시 묵살되고 말리라는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한다. `권력의 칼자루`를 잡기만 하면 표변하는 몹쓸 전통과 관행들을 저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엄정한 결정 틀을 중심으로 시간표를 짜고 이행하기만 한다면 `개헌`에 관한 논의와 시안(試案)들은 이미 충분하다는 것이 그들 주장의 논거(據)다.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정권까지 단 한 번도 권력형 비리가 없었던 정권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꼭 기억해야 할 사명은 또 있다. 중앙정부의 갑질 통제 하에서 그 한계를 오래전에 드러낸 허울뿐인 자치·분권의 참상이 그것이다. 대선과 개헌 국면에서 우리는 지방자치·분권형 국가로의 전환을 기필코 이뤄내야 한다.응급실 베드에 누워 신음하는 `헌법`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금 곧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될 응급상황을 망각하고 늑장을 부리다가는 온 국민들이 또 무슨 대가를 더 치러야 할 지 모른다. 독점적 권력구조와 행태를 혁신하는 `개헌` 말고 우리가 나아갈 `길`은 따로 있지 않다. 유례없는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참담한 국가적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슬기는 `개헌`에서 시작돼야 한다.

2017-01-03

`인명진`은 왜?

▲ 안재휘 논설위원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는`정치는 타이밍`이라는 상식을 명징하게 확인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임 중 테러조직 폭격을 오늘 결정할까, 내일 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오늘 결정해서 해결할 확률이 70%만 돼도 나중에 결정해 확률을 100%로 올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 대통령의 결정은 시간 싸움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정치나 정책도 타이밍을 놓치면 별무소용이다. 그냥 물거품만 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큰 정치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바로 최적의 타이밍 결단에 능했다는 부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타이밍의 귀재였다. 적확한 타이밍 선택으로 군사정변을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경제정책을 적기(適期)에 밀어붙여 산업화 기적을 이끌었다.민주화 이후 가장 타이밍 감각이 뛰어난 대통령은 단연코 YS(김영삼 전 대통령)다. 절묘한 타이밍에 하나회를 숙청해 대한민국에서 쿠데타의 공포를 제거했다. 엇갈린 주장에도 불구하고, 금융실명제를 단행해 각종 음성적 거래를 위축시켰다. YS는 `돈과 권력을 동시에 가져선 안 된다`며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부정축재의 고리를 타격했다.박근혜 대통령은 타이밍에 관한 한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은 것 같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무딘 스타일은 정치적 성취를 뒷받침하는 뚝심으로 인정됐다. `원칙을 가진 정치인` 이미지가 국민적 지지를 두터이 하는데 일조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원수로서 그런 품성은 거듭 패착을 낳았다. 타이밍을 놓친 정치·정책은 곧바로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시켰다.지난 2014년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33일 만에 눈물로 사과했다. 절절한 토로였음에도 실기(失期)가 호소력을 깎아먹었다. 지난 4·13총선의 기록적 참패 이후에 내놓은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달랑 두 줄짜리 논평은 국민감정과 한참 동떨어진 멘트였다. 현기환 정무수석을 비롯해 총선 후 즉각적으로 책임지는 인사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은 더 이상했다.새누리당 친박지도부가 부서진 권좌에서 미적거린 일도 진퇴(進退) 타이밍의 소중함을 모르는 어리석음이었다. 동패 원내대표를 뽑는데 성공한 직후에 곧바로 지도부 사퇴를 결행한,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속보이는 행동`은 국민들의 조소(嘲笑)를 덧냈다. 비박계(非박근혜계)의 집단탈당 선언 이후에야 부랴사랴 인명진 목사를 찾은 일은 또 어떤가.새누리당이 인명진에게 SOS를 친 일은 집에 불이 나서 한쪽이 무너진 다음에서야 `119` 다이얼을 돌린 해프닝과 다르지 않다. 인명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입바른 소리`의 대가다. 그는 노동운동, 민주화운동 등의 이유로 4차례 투옥되었고(YH 사건 등), 한 차례 국외 추방까지 당한 경력을 갖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보수원로다.날카로운 `쓴 소리`를 앞세워 위기에 처한 보수정당의 `원 포인트 릴리퍼(1점 구원투수)` 역할을 해온 인명진의 활약을 주목한다. 인명진이 뒷북정치, 엇박자정치의 희생양이 될 것인지, 아니면 빈사상태의 보수정당을 기적적으로 살려낼 명의(名醫)가 될 것인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난파선 위에서도, 뒤집어진 배 안에서도 죽어라고 조타기를 놓지 않은 주류 친박계를 어찌할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새누리당 난파의 1차 책임자들을 그냥 두고서 배를 바로잡아 항로를 가눌 길은 없다. 모두들 이번 인명진 목사의 선택에 `왜?`라는 의문을 품는다. 수술이 싫어 동료들을 한사코 내친 친박계(親박근혜계)에 그가 과연 메스를 댈 수 있을까 하는 미심쩍음 때문이다. 새누리당을 향해 `해체해야 할 정당`이라는 독설을 퍼붓다가, 경실련 영구제명의 오욕까지 감수한 그의 표변은 과연 무엇을 겨냥한 것인가. 그것이 정말 알고 싶다.

2016-12-27

`의리(義理)`냐, `정의(正義)`냐

▲ 안재휘 논설위원“나는 카이사르(Caesar)를 사랑한다. 그러나 로마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그를 죽였다. 우리는 로마인의 자유를 빼앗으려 한 카이사르를 쓰러트렸다. 속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사죄할 뿐이다.”BC(기원전) 44년 3월15일 로마제국 원로원 회의장에서 절대군주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Brutus)가 한 비장한 연설의 일부다.브루투스는 `로마를 더 사랑한다`는 대의로 자신을 아끼고 키워준 카이사르를 암살했지만 권력에서 밀려나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는 로마를 장악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에게 패해 동굴로 피신했다가 자살한다. 브루투스는 마지막 전투에 앞서 “카이사르를 죽인 3월15일 이미 나는 나라를 위해 죽었던 사람”이라며 운명적 의지를 재확인하기도 했다.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비롯된 박근혜 정부의 절대위기 국면에서 난파선 몰골이 된 새누리당이 또 한 번 국민들에게 `멘붕(멘탈붕괴)` 폭탄을 던졌다. 지난 15일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계(친박근혜계)를 대표해서 출마한 정우택 후보(62표)가 비박계(비박근혜계)를 대표해 나선 나경원 후보(55표)를 따돌리고 당선돼 모든 예상을 뒤집어 엎은 것이다.우리는 작금, 정치가 민심을 외면하고`그들만의 리그`에 도취될 때 나타나는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의 치명적인 하자를 발견하고 경악하고 있다. `다수`가 곧 `정의`는 아니라는 부작용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 민주주의는 위험해진다. 수백 만 국민들이 `물러나라`고 외치는 판에 엎드려 빌어야 할 무리들이 뒤꼍에서 다시 완장을 바꿔 차고 있는 형국이다.새누리당 안에서 벌어지는 친박-비박 공방은 점입가경이다. 친박은 대통령 탄핵 대열에 동참한 비박의 과거발언까지 들추면서 `배신자` 이미지를 덧씌우느라고 여념이 없고, 비박은 친박을 향해 `최순실의 남자들`이라며 낙인을 찍고 있다.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리얼한 막장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한때 인간사회의 미덕을 망가뜨리는`배신`이 비일비재한 풍토를 풍자하여 조직폭력배들의 `의리(義理)`를 미화한 영화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미남배우들이 거칠기 짝이 없는 `나쁜 남자`로 분(扮)하고 나타나 절박한 상황에서도`의리`를 지키는 멋진 모습으로 특히 여성들과 청소년들의 동경심을 무한히 자극했었다.대다수 조폭세계의 처참한 일상들이 생략된 영화속의 낭만은 결코 현실일 수 없다. 더욱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정치현장에서 폭력배들의 언어로 주고받는 `의리` 논쟁은 사리에도 맞지 않고 나라를 위해서도 백해무익하다. 국민들은 지금 스위치를 끄고 안 보면 그만인 TV드라마 앞에 앉아있는 게 아니다.누가 뭐라고 해도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단어는 `정의(正義)`다. 정의는 법(法)을 통해서 구현돼야 한다. 그 무엇이라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을 칭송하는 일은 혼란의 빌미가 된다. 광화문 일대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순수한 민심을 불순한 욕심으로 덧칠해 `혁명`이라고 치켜 부르는 것도 섣부른 짓거리다.주말마다 벌어지는 시민들의 촛불시위는 무능한 정치권과 나라 지도층에 대한 마지막 경고이자 준엄한 `혁신` 명령이다. 국민들로부터 보이콧을 당한 세력이 끼리끼리 뭉쳐서 다시 깃발을 주고받는 일이야말로 민의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다. 지금은 지휘봉 깨끗이 넘겨주고 석고대죄(席藁待罪)하는 것이 맞다.브루투스에 대한 사가(史家)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때로는 `배신`의 아이콘이 되기도 하고, 진정한 `충신`의 사표로 회자되기도 한다. 그의 역사적 행동이 남긴 교훈은 자명하다. `개인`에 대한 충심보다 `국가`에 대한 충심이 `충성`의 본질이라는 가르침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맹목적 `의리`가 `정의`의 영역을 능가할 수는 없다. 그게 곧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2016-12-20

`반기문 신당(新黨)`이 온다

▲ 안재휘 논설위원충분히 예견됐던 일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의결 이후 정치권에 곧바로 새판짜기 신호탄이 울렸다. 새누리당 탈당파의 신당 창당 움직임을 필두로 새로운 대한민국 디자인을 위한 정치권 요동이 시작된 셈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로 친박(친박근혜계) 세력들이 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이 새누리당의 해체를 주장하며 `신당창당`을 선언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시작으로 그동안 시야를 불투명하게 했던 대권시계가 어느 정도는 윤곽을 드러내면서 정치인들의 조바심은 깊어졌다. 탄핵심판이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분석 역시 첨예해졌다. 크게는 일련의 사태가 정계재편에 어떤 변수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정당구조는 어떻게 재구성될 것인지, 앞으로의 정치역학은 또 어떻게 형성돼 갈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암산되기 시작한 것이다.진보세력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도중하차는 외견상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그러나 굴곡의 우리 정치사가 증명하듯이 정치는 반드시 그렇게 빤한 공식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상식을 깨고 예상을 뒤집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치 환경의 변이특성을 잘 알고 있는 야당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닿아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권력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결코 그리 만만하지 않다.`최순실 사태`가 빚어낸 대한민국의 거대한 촛불시위를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기(反旗)로만 평론하는 것은 청맹과니 해석이다. 다수 국민들의 격동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한국정치`에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하는 절박한 희원이 잉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위현장에서 뭇 정치지도자들이 비토를 당하는 해프닝이 곧바로 이를 입증한다. 시위 군중들의 심중에는 “확 바꾸자! 그러나 너는 대안이 아니다!”의 메시지가 오롯하다.물론 시위를 주도한 인물들 중 소위 `전문 시위꾼`들은 흔들린 민심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작위의지를 갖고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의 뜻대로 돼가기는 커녕 자칫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또다시 가장 큰 변수는 민심의 향배다. 변수가 깊어진 그 어떤 정치지형의 변화도 민주주의의 가장 큰 원칙 안에서 형성돼갈 것이라는 전망인 것이다.보수정치가 어떻게 달라지느냐가 주요 함수 중 하나다.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갖은 구태의 핵심에 섰던 정치모리배들을 배제하는 일이 우선이다. 보수정치가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서는 뼛속까지 달라져야 한다. `수구꼴통`의 면모를 청산하지 못한 그 동안의 행태로는 절대로 궁극적 변화를 바라는 민심에 다가갈 수 없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보수정치는 골조까지 다 부숴 내던지고 온전한 재료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얼마 전 불거진 `반기문 신당(新黨)`설은 탄핵정국을 뒤흔들 가장 강력한 태풍예보다. 아직까지 우리 정치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가 여전히 국민들의 여망을 가장 많이 받는 현실은 극적 상황반전 가능성을 충분히 함유한다. 문재인 카드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꽃밭에서조차 여전히 대세를 타지 못하고 있는 환경이 더욱 그렇다. 다만, 반기문 카드의 부상(浮上)을 수구세력들이 부활의 기회로 삼으려는 무모한 발상은 차단돼야 한다.새누리당 탈당파가 시동을 건 신당창당 선언이 보수정치의 혁신을 바라는 새로운 바람의 진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 달 남짓 남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귀국이 불러올 정치적 파장 안에서 소금역할을 다함으로써 이 땅에 제대로 된 `합리적 보수` 또는 `건강한 중도`의 민심을 두루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혁명의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 성패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한국정치의 블랙홀이 될 `반기문 신당`은 온다.

2016-12-13

`메시아(Messiah)`는 없다

▲ 안재휘 논설위원한 달이 넘도록 주말 군중집회가 지속되고 있다. 6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광장에 몰려든 인파는 주최 측 추산 서울 170만명, 지역 62만1천명 등 전국 232만1천명(연인원)이었단다. 대구에서도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이 모였고, 포항과 안동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이토록 점증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다친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런 정도의 저질 권력드라마에 속아 살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던 국민들이 어이없음을 견디지 못하고 길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청와대 저 구중궁궐 안에서 일어났다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해괴한 의혹들이 시민들의 평안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대의정치` 기능이 마비되고, 역사책 속에서 잠자고 있던 `광장정치`가 거짓말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현실은 정치가 민심에 정직하게 뿌리 닿아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뚜렷한 증좌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의 정치인들의 가슴속에는 `애국심`이 아닌 `입신양명`의 시커먼 욕망만 왕성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그게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만 더듬으며 그것을 `정치`라고 같잖게 욱대겨왔다.새누리당의 지리멸렬은 처참하다. 친박(친박근혜)은 폐족이라도 면해 보고자 백방을 암중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비박(비박근혜)은 어떻게 하면 `해체하라`는 성난 민심의 파도를 잘 넘어 건강한 `보수정당`을 재건할 것인가 노심초사다. 느닷없는 경천동지(驚天動地) 속에서 길을 잃고 전전긍긍하는 집권여당의 모습은 딱하고도 한심하다.야당의 행태 또한 가관이다. 대안도 없는 `발목잡기` `티 뜯기` `까발리기`만 탐닉해온 관성 속에서 아무 준비도 돼 있지 않은 자기들에게 온 공을 어쩌지 못해 잇달아 헛발질이다. 전권을 갖는 국무총리를 뽑아달라고 해도 국정실패의 덤터기를 쓰게 될까 두려워 어쩌지 못하는 수준의, 통치능력도 용기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집단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권주자들마다 각기 다른 셈법들도 혼란스럽다.여야를 불문하고 문제의 핵심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다. `최순실 게이트`핵폭탄으로 인해 산산이 흩어진 민심이 어찌 변할까 두려워 거듭 입장이 흔들리고 논리가 꼬인다. 그야말로 빨라도 걱정, 늦어도 걱정인 사욕(私慾)의 발로인 것이다. 국민들이 외치는 `대통령의 즉각 하야` 주장에 대한 복잡한 계산으로 이래저래 갈지자 행보다. 민초들의 걱정은 따로 있다. 과거사가 그러했듯이 갑작스럽게 무너진 정권의 틈바구니에서 엉뚱한 자가 튀어나와 권력을 거머쥐는`죽쒀서 개 주는` 참변이 그것이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가 불러올 `부실대선(不實大選)`이 문제다. 헌법이 정한 `60일 이내 선거` 규정은 필연적으로 미흡을 부르게 돼 있다. 또다시 깜도 안 되는 하자투성이 인사가 대권을 거머쥐는 불행을 경계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길은 명확하다. `국가전복`을 꿈꾸지 않는 한, 합법적인 정권퇴진은 `하야`아니면 `탄핵` 뿐이다. `물러나라`고 외쳐서 안 되면 헌법적 절차를 거치는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간표가 안 나오더라도 지금처럼 이랬다저랬다를 지속하는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바른 처신이 아니다. 민심을 정직하게 따르면서 난처한 처지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어쩌면 국민들은 정치권에 마땅한 대안이 없음을 벌써부터 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권력을 노린 암산만 거듭하는 정치꾼말고는 미더운 존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마음을 추스를 방법을 찾지 못해 매주말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문제들을 앞장서서 풀어나가야 할 사람들은 결국 정치인들이다. 분명한 것은 난제들을 풀어내는 일은 온전히 우리들 몫이라는 사실이다. `메시아(Messiah)`는 없다.

2016-12-06

보수(保守), 죽어야 산다

▲ 안재휘 논설위원산(山)처럼 거대한 댐도 작은 쥐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은 참이다. 작금 파선(破船)이 목전에 다다른 새누리당을 보면 정말 그렇다.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려 항로를 잃은 선장 한 사람 때문에 난파선 신세가 된 새누리당이 부서지는 배 위에서 막장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호가호위(狐假虎威) 해오던 친박계가 긴 침묵을 깨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참다못해 민심을 좇기로 작심한 비박계를 향해 연일 악담을 퍼붓는다.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 지도부는 사퇴요구를 악착같이 거부한 채 입을 다물고 살았다. 비박계가 당을 살려보자고 궁여지책으로 꾸린 `비상시국회의`에 부글부글 끓던 친박계가 김무성 전 대표의`대선 불출마` 선언과 탄핵동참에 격앙하고 있다.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은 김무성 전 대표를 향해 막말을 쏟아내며 의원직 사퇴, 새누리당 탈당에다가 정계은퇴까지 마구발방 험구를 퍼부었다.무소속 김용태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정두언을 비롯한 전직 의원 8명 등 탈당파들은 27일 국회 의원회관 회동을 갖고 “공범 역할을 했던 새누리당은 해체하라는 것이 민심”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올 정기국회 안에 탄핵 절차를 마무리한다는데도 공감을 나눴다.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의 분당(分黨)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때에 따라서 여당은 `새누리당` 간판만 남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돈다.지난 25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한 주 전보다 1%포인트 하락한 4%, 부정적 평가는 3%포인트 상승한 93%라는 비보를 전했다. 한국갤럽이 대통령 지지율 조사를 시작한 1988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이라는 끔찍한 해석도 붙었다. 대구·경북에서 평균치 아래인 3%에 그쳤다는 지역별 조사는 충격이다. 끈질기게 `묻지마 지지`를 지속해온 지역민들의 쓰라린 배신감이 발동하고 있다는 증좌다. 새누리당 긍정평가도 박 대통령 지지율과 동반 하락해 더불어민주당의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제3당`이라는 굴욕을 당하고 있다. 민주당 34%, 국민의당 16%, 새누리당 12%, 정의당 7% 순이다. 이쯤 되면 새누리당은 이제 국민들 사이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온갖 의혹을 뒤집고 국민신뢰를 회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정상적인 이성작동이 아니다.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보수(保守)`의 리모델링이나 단순한 부활이 아니다. 체제 좀 손질하고 몇 사람 영입하고 문패 바꾸는 분칠 수준의 개혁으로는 민심을 되찾기란 어림없다. `보수`는 철저히 죽어야 비로소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때 묻은 모습 그대로 부활해봤자 희망이 없긴 마찬가지다. `헤쳐모여`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 옳다. 시대정신을 반영할 정의롭고 당당한 큰 그릇을 만들어내야 한다.`부자들을 위한 정당`이라는 비아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권위주의의 잔재들을 깡그리 털어내야 한다. 3류 패거리정치로 유치한 정쟁만을 탐닉하는 정당이 돼서는 안 된다.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오만방자한 책략일랑 모두 버려야 한다. 인물 중심이 아니라 정책중심 정당이 돼야 한다. 당내 민주주의는 철두철미 신봉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통팔달 막힘없는 소통이 만개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보수주의(保守主義)는 이 땅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켜온 중심사상이다. 피땀 흘려 가꿔온 빛나는 이념을 비선실세의 농간에 놀아난 한 지도자의 어불성설 통치행위 의혹으로 아주 허물어뜨릴 수는 없다.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가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바탕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충성을 하더라도 국가에 하는 것이 옳고, 순장(殉葬)을 자처해도 국민들을 위해 하는 것이 맞다. 보수정당의 위태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다.

2016-11-29

`탄핵`과 `하야` 사이

▲ 안재휘 논설위원넓은 의미에서, 법률가(法律家)는 법률에 대해 연구하고 제정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법률 업무 종사자를 말한다. 법률을 연구하는 사람은 법학자, 법률을 제정하는 사람은 입법가, 법률을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법률 업무 종사자는 법조(法曹) 또는 법조인으로 부른다. 좁은 의미로서의 법률가는 법학자나 입법가를 제외한 법조인만을 가리킨다.변호사라는 직업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예술가들이다. 창과 방패를 함께 휘두르며 법망의 성긴 부분을 찾아 범법자들을 빠져나가게 하거나 벌을 줄여주는 일로 수익을 올리는 직업이다. 절체절명의 궁지에 몰려, 박근혜 대통령이 백기를 드는 순간만 남은 듯하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모종의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 영리한 법률가들이 보인다.서울중앙지검은 20일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실비서관의 범죄관계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범` 혐의를 인정한 수사결과를 내놨다.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이에 대해 “어느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고 거칠게 반격하고 나섰다.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고개를 숙이던 지난 4일 박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 모습이 오버랩된다.약속처럼 수사에 성실히 응해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며 회피해온 의혹 당사자가 막상 수사결과가 나오니 전면 부정하고 나서는 언행의 생경함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검찰수사 수용을 거부하고 탄핵의 배수진을 친 유영하 변호사의 반론 조목조목에는 범죄와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모두 끊어내려는 의도가 농후하다.죄의 유무를 다투는 검찰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 전쟁에는 수많은 궤변들이 동원된다. 대략의 민중들은 그 교묘한 담론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향해 저어가던 노()를 놓치고 표류하기 일쑤다. 온갖 매체들의 `박 대통령`과 `최순실`을 주어로 하는 줄기찬 `카더라 보도`가 무책임한 낭설을 양산하는 것도 문제지만, 유영하 변호사의 반론은 아무리 좋게 들어도 궁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야권이 박 대통령의 덫에 걸렸다”는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관찰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거국중립내각` 아이디어로 국정을 장악한 뒤 시간을 벌고자 했던 야당 일각의 꿍심은 `즉각 하야`를 부르대는 민심의 망치질에 박살이 났다.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길은 특검수사를 경유한 `탄핵` 절차뿐이다. 정상대로라면 `특검`이나 `탄핵`이라는 말은 집권 정부여당으로서는 기겁 질색을 할 용어들이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그 험악한 일들을 각오하고 배수진을 치니 판세가 또 다른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권이 민심을 신실하게 담아내려는 진지함을 내던지고 오직 `대권놀음`의 포로가 되어 흑심겨루기만 펼치던 끝에 희한한 일이 초래된 셈이다.박 대통령의 `시간벌기` 전략은 일단 성공한 듯하다. 어쩌면 헤게모니는 청와대 쪽으로 넘어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야`는 이제 오롯이 박 대통령의 카드가 돼가고 있다. 청와대는 뭇 언론들이 쏟아내고 있는 `의혹`의 해일 앞에 최후의 반격 진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민심`의 향배다. 약간은 달라진 정황을 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탄핵`과 `하야` 사이, 그 좁디좁은 그루터기에 가까스로 발 딛고 선 박 대통령의 초점은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궁금하다. 최소한 형해(形骸)조차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보수정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참마음에 닿아 있길 기대한다. 잔인하리만치 기울어있는 민심을 돌이켜 세울 묘안이란 낙타 앞에 놓인 바늘구멍 형국이다. 그나마나 변호사들의 변명이 교졸한 말장난으로 판명 나는 날엔 더 큰 재앙이 닥칠텐데…. 수상한 칼바람 앞에 대한민국이 속절없이 요동치고 있다.

2016-11-22

`재건축`은 아무나 하나

▲ 안재휘 논설위원중국 고대 왕조시대의 가장 무서운 정치적 형벌은 멸족(滅族)이었다. 반역죄를 범한 자의 `부모·형제·처자` 또는 `친가·외가·처가` 3족(三族)은 물론 `부계 4친족`, `모계 3친족`, `처가 2친족` 등 9족이 참혹한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다. 때로는 10족이라 해서 죄인의 스승이나 문하생까지 몽땅 역도(逆徒)로 묶어 죽였으니 멸족이란 가히 `씨를 말리는 공포의 형벌` 그 자체였다.우리의 고려·조선 역사에도 `친가·외가·처가` 3족을 극형에 처하거나 참수했다는 기록은 꽤 남아 있다. 멸족을 대신해 내린 형벌이 폐족형(廢族刑)이다. 목숨만은 살려주고, 후손이 대대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한 형벌이다. `폐족`이란 말은 지난 2007년 당시 전 노무현 대통령의 책사였던 안희정 씨가 친노(親노무현) 세력을 언급하며 사용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새누리당이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돌발변수의 노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생애 최악의 곤경에 처한 이래, 좀처럼 무너진 터널을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는 상태다. 분초를 다투며 폭로되는 상상을 초월한`국정농단` 행태에 온 국민들은 패닉상태에 빠져있고 국정을 책임진 여당은 한 마디로 만신창이다.누구나 예기치 못하게 너무 큰일을 당하면 억장이 무너지고 말문이 막히는 법이긴 하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친박(親박근혜계)과 비박(非박근혜계)으로 나뉘어 박 터지게 싸우던 기개는 어디로들 갔는지 새누리당은 난파선 위에서 갈팡질팡이다. 일순 위태해진 정권 때문에 다들 반쯤은 혼(魂)이 나간 듯하다.지난 4·13총선 전 친박·진박·쪽박·짤박 등 정치판을 가당찮게 휘돌던 박(朴)타령이 자꾸만 오늘날 참상과 오버 랩이 된다. 기세 좋게 뺄셈정치를 탐닉하다가 역풍을 맞아 총선에서 참패한 폐허 속에서도 `권력`의 꿀단지를 거머쥐고 기어이 당권을 장악했던 친박의 침잠이 깊다. 선거판이 불리해지자 길바닥에 털버덕, 무릎을 잘도 꿇던 그들 아니던가.오늘날 보수세력(保守勢力)의 천정에 드리운 암울한 망조(亡兆)는 나라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보수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은 선연하다. 분명한 것은 리모델링 정도로는 어림 턱도 없다는 사실이다. 어설픈 혁신놀음으로는 민심을 돌려세우기는커녕 분노를 덧낼 따름일 것이다.친박과 비박 두 패가 공개적으로 따로 뭉치기 시작했다. 비박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는 `탄핵`이라는 금기어(禁忌語)마저 풀렸다. 그러나 친박 지도부는 `즉각 퇴진` 요구부터 일축했다. 이정현 대표는 계산법의 비밀을 꽁꽁 숨긴 채 “내년 1월21일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생뚱맞은 제안을 내놨다.이 대표가 친박계 핵심의원을 포함하는 `재창당준비위원회` 발족을 구상하고 있다는 보도내용은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게 한다. 새누리당은 부실공사로 무너진 처참한 빌딩 몰골이다. 건축물을 잘못 짓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무너지게 만든 회사대표가 그 집을 다시 짓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의 난센스다.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국민 앞에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통성(通聲)의 참회문을 읽어야 할 무리들이 누구인지 알 사람들은 다 안다. 정치권에는 또 다시`폐족`이라는 단어가 떠돌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내 탓이요`를 외치며 관(冠) 벗어놓고 엎드려 뉘우치는 이가 없는 야속한 나라에서 자존심을 다친 국민들만 괴롭고 또 괴롭다.촛불을 들고 길거리에 나서는 것 말고 할 일이 따로 없는 민초들이 진정 보고자하는 것은 잔혹한 멸족이나 폐족이 아니다. 허물을 지은 지도자들이 일선에서 흔쾌히 물러나 맹성(猛省)하는 진솔한 모습이다. 사랑은 아무나 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재건축`은 결코 아무나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다.

2016-11-15

`몰랐다`도 죄(罪)다

▲ 안재휘 논설위원기원전 4세기경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참주(僭主) 디오니시오스 2세에게는 늘 아첨으로 왕의 행복을 찬양하는 다모클레스라는 신하가 있었다. 명석한 왕은 다모클레스의 말에 질투와 선망을 넘어 배반의 기운이 섞여 있음을 간파했다. 어느 날 왕은 다모클레스를 연회에 초대하여 왕좌에 앉게 하고는 천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예리한 날 끝이 정수리를 향해 거꾸로 매달린 칼 한 자루가 가는 말총 한 가닥에 매달려 있었다. 다모클레스는 기겁하여 진땀을 흘리며 도망치듯 왕좌에서 내려왔다.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신화 이야기다. 권세가 주는 부귀는 항상 치명적인 위험과 불안이 동반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이 신화는 권력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뜻밖의 날벼락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왜 `다모클레스의 칼` 같은 경계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요즘이다. `최순실 게이트` 핵폭탄이 터진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행태들이 또다시 국민들의 여망을 곤죽으로 만들고 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기야, 장구한 세월 지도자와 흉허물을 터놓고 지낸 한 여인의 수준에서 일어난,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국정농단이라는 개요부터 납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참사이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작금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기형적인 형태로 변질돼왔는지를 증명한다.당명조차 사이비 종교의 교리언어(敎理言語)에서 비롯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은 한 마디로 우왕좌왕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다. 박 대통령을 에워싼 채 위세당당 두 눈 부릅뜨고 호가호위하던 `꼭두박씨`들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게 침잠 중이다. 그래도 문 닫아 걸어놓은 자리에서는 아직도 친박-비박이 거친 드잡이판을 벌인다니, 그 난파선 위의 추잡한 자중지란이 민심을 얼마나 낙망케 할 지는 명약관화하다.방향타를 제대로 잡지 못하기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상상을 초월한 호재를 만난 야당들의 행태는 우리 정치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굶주린 야수처럼 달려들긴 했는데, 먹이가 약(藥)인지 독(毒)인지를 가늠하지 못해 쩔쩔매는 형국이다. `하야`라는 말을 개밥의 도토리처럼 굴리면서 `2선 퇴진`이라고 부르대는데 도무지 무슨 개념인지 모르겠다. 그들 가슴에 과연 누리려는 `권력욕` 말고 사랑해야 할 `국가`가 있기나 한 것인가.야권은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가 두려운 게 틀림없다. 전열정비가 제대로 안 된 그들에게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 하도록 돼있는 헌법 제 68조 2항이 버거운 것이다. 여차하면 임기를 마치고 갓 돌아온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기회를 헌납할 여지도 있다는 계산이 그들로 하여금 우물쭈물,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리게 하는 요인 아닐까. 거국중립내각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꼴이 한심하다.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 사태는 온 국민들에게 허탈과 분노의 발화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 청와대 출입기자로 살았던 필자조차 일종의 모멸감으로 고통스럽다. 일개 취재기자가 이럴진대, 장관들을 비롯해 권부의 핵심에 들어서서 행세해온 이들은 어떨까. 부지불식간에 자신들의 삶이 `허수아비 춤`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땅을 파고 싶을 만큼 자괴스러운 것은 아닐까.여야를 불문하고 유력 정치인들마저 `그런 줄 까맣게 몰랐다`고 거듭 말하는 것은 해괴한 일이다. 개중에는 알면서도 거짓으로 둘러대는 `모르쇠`도 있을 것이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가 된 자들이 위기국면을 모면하기 위해 `몰랐다`고 발뺌하는 일은 앞으로도 비일비재할 것 같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나라의 운명 앞에서, 찌질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위정자들 머리 위에 한 줄 말총에 묶여 거꾸로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칼`들이 위태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몰랐다`도 죄(罪)다.

2016-11-08

`비선실세(秘線實勢)`

▲ 안재휘 논설위원요즘 대한민국을 통째로 멘붕(멘탈 붕괴상태)에 빠트린 비선실세(秘線實勢)의 폐해는 역사 속에서 심심찮게 나타난다. 정난정(鄭貞)은 조선 13대 왕인 명종 대에 미천한 기생 신분에서 정경부인까지 올라간 불세출의 여인이다. 그녀는 선대왕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에게 접근해 첩실이 되었고, 그 권세를 이용해 많은 부를 축적하며 악행을 저질렀다.그녀는 1551년(명종 6년) 윤원형의 정실 김씨를 몰아내고 적처(嫡妻)가 됐고,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당시 권력을 탐했던 조신들이 윤원형·정난정 부부의 자녀들과 앞다퉈 혼맥잇기에 혈안이 됐을 만큼 그녀의 위세는 엄청났다. TV드라마의 단골주제인 정난정의 횡포를 다룬 `옥중화`가 MBC에서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조선후기 고종시대에도 비선실세의 위세를 떨친 또 한 여인이 있다. 임오군란(1882년)이 일어났을 때 분노한 군인과 시민들을 피해 한양을 떠나 충주 장호원으로 암행한 명성황후(민비)를 찾아간 무녀가 있었다. 박창렬이라는 이름의 이 무녀는 황후가 어떻게 찾아왔는지를 묻자 “신령님이 꿈에 나타나 중전께서 장호원에 있다고 알려줬다”고 답한다.명성황후를 밀어내고 권력을 장악했던 흥선대원군은 머지않아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 의해 북경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50일 만에 환궁 길에 오른 명성황후의 곁에는 무녀 박창렬이 함께 있었다. 황후는 현안이 생길 때마다 무녀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이후 왕자 급의 작위인 진령군(眞靈君)에 봉해지기까지 한다.대한민국의 정치사에도 비선실세가 소란의 중심이 된 흑역사는 즐비하다. 전두환 정권때는 대통령의 동생으로 권세를 남용한 전경환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영부인의 고종사촌 박철언 전 장관이 `6공화국 황태자`로서 실세 노릇을 했다.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영삼 대통령 때는 차남 김현철씨가 `소통령`으로 일컬어졌다.김대중 정권도 `홍삼트리오`라고 불린 대통령의 아들 삼형제가 임기 말 권력형 비리로 오점을 남겼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대통령의 친형 `봉하대군` 노건평씨가 논란이 됐다. 이명박정부에서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왕차관` 박영준 전 차관에 대한 잡음이 요란했다.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최악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나라가 온통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4년차 후반에 최악의 난관을 맞아 전전긍긍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기하급수로 퍼지는 험악한 `카더라 방송`은 차마 입으로 옮기기조차 어려울 만큼 극악하다. 정부여당을 절체절명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 소란은 좀처럼 출구가 안 보인다.여야 정치권은 `거국 중립내각`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인 최순실씨가 전격 귀국하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 중이다. 청와대도 비서관 개편 등 인적쇄신의 물꼬를 텄다. 몰아치는 폭풍 속에 국민들의 지독한 불신(不信) 먹구름을 걷어낼 방안이 묘연하다.수렁에 빠진 사람은 성급하게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면 오히려 자꾸만 더 깊이 빠져드는 법이다. 솔직담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심은 언제나 잘못 그 자체보다도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의 태도에 더 민감하다.차제에, 정권마다 비선실세가 전횡을 저질러 국정을 비뚜루 가게 하는 권력의 오작동을 영구히 추방할 묘책을 찾아내야 한다. 오늘의 환난이 두고두고 교훈이 되게 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을 찾아내야 한다. 과연, 권력이란 조금만 잘못 다뤄도 자기 옷에 옮겨 붙어 맹렬히 타오르는 치명적인 도깨비불꽃 맞다. 대한민국은 지금, 유언비어(流言蜚語)의 뜨거운 늪이다.

2016-11-01

개헌, `속전속결`이 정답이다

▲ 안재휘 논설위원드디어 청와대발 개헌 물꼬가 터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어서 “국회도 빠른 시간 안에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개헌의 범위와 내용을 논의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박 대통령은 개헌추진 배경과 관련 “1987년 개정되어 30년간 시행되어온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헌법은 과거 민주화 시대에는 적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됐다”며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 동안 정치권 안팎의 개헌론 주장들을 주시해온 박 대통령은 지난 추석연휴 마지막 날 구체적인 준비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대통령의 언급처럼 개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현행 헌법은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새로운 세상을 미처 담아내지 못해 갖가지 모순과 부작용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야 정치권은 대통령의 깜짝 제안에 적이 당황한 모습이다. 여당은 환영하는 반응인 반면 야당 쪽은 대통령의 개헌 추진이 담고 있는 노림수를 헤아리느라고 분주하다.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물개박수`를 연상시키는 반응이 인상적이다.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하나인 김 전 대표는 “이 정권이 출범한 이후 오늘이 제일 기쁜 날”이라는 격한 감동을 내놨다. 김성원 새누리당 대변인은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경로로 개헌에 대한 여론을 청취한 것”이라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시기적으로도 매우 적절하다”고 평가했다.그러나 야당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측근비리 돌파를 위한 정략적 개헌 논의는 동의하기 어렵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개헌논의 제안은 난데없다”면서 거부감을 피력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 추진 입장을 표명한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대통령의 뒤늦은 개헌론 제기가 정권차원 비리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선 안 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야당의 시각에서 보면 최근 기하급수로 부풀고 있는 측근비리 의혹을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로 읽을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정치권 전반의 판단은 이미 `하루빨리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 임기 말 추진동력이 가당할까 의구심은 있지만 박 대통령의 선언은 시기적으로 아주 늦은 것도 아니다. 그 의도를 지나치게 비뚜루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이 시점에 정말 중요한 것은 인식의 냉정함이다. `개헌`은 결코 우리가 안고 있는 온갖 시름들을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파당마다 사람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구구각각인 개헌방향과 내용으로 인한 갈등을 조정하는 작업도 지난하기 짝이 없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온갖 불협화음을 폭발시켜 국민들을 사분오열시키는 사달이 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민주적 절차는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질질 끌고 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쇠뿔을 단김에 빼듯이, 거침없이 추진해가야 한다. 지금 이 판국에 `개헌`을 정략적으로 밀어붙이는 행위나 무턱대고 막아서는 행동 모두 국익을 저해하는 고약한 망발이다. 누군가 대선국면과 맞물려 사리사욕을 꾀하려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헌법은 대한민국의 품격과 국민 삶을 규정하는 초석이기 때문이다.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의 “대통령과 정부가 내년 4월 12일 보궐선거일을 개헌투표일로 삼아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흔쾌히 동의한다. 시계(視界) 제로의 캄캄한 바다로 나서는 개헌호(號)의 순항을 간절히 기원한다.

2016-10-25

`쓰레기통` 걷어차기

▲ 안재휘 논설위원2007년 10월 4일 필자는 평양에 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일원으로서 겪어본 평양은 거대한 사이비종교 성지 같았다. 양복차림의 남자들과 울긋불긋한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자들이 연도에 쏟아져 나와 광기어린 동작으로 조화(造花)들을 흔들어대는 낯선 모습은 반가움보다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며칠 동안의 경험과 관찰은 북한이 여타지역을 수탈하여 온존하는 `평양공화국`임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그때 동행했던 수행단의 꽤 많은 분들과 `북한`에 대한 착각과 오해를 각성하게 됐다는 공감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 통일에 대한 무수한 낭만적인 담론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 계기였다. 막연했지만, 그때 그 뭔가 억지춘향 같은 야릇한 미심쩍음은 두고두고 현실이 되고 있다. 2013년 거칠게 몰아쳤던 노무현 대통령의 NLL 대화록 논란은 참 씁쓸하게 다가왔다.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또 다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그림자` 귀신에 휘말려들고 있다. 10·4남북정상회담 이후 유엔북한인권결의안 `기권` 표결에 앞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의견을 물어봤느냐 아니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논란은 참여정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을 통해 증언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팩트(Fact)의 진위를 넘어서는 감정적 공방이 치열하다.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해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쏜데 이어 연일 파상공세다. 한동안 `그 때의 남북관계 분위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상황론`으로 맞서던 문재인 전 대표 쪽은 돌연 전략을 바꾼 듯하다. 새누리당의 공격을 거칠게 되받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는 까마득히 흘러간 `북풍`, `총풍`까지 들먹거리며 `역(逆) 색깔론`으로 대거리하고 있다.무릇 다툼이 벌어질 때, 누가 먼저 본질에서 벗어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느냐가 옳고 그름의 기미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문재인 전 대표 쪽이 불리해 보인다. 문 전 대표나 더민주당의 대응은 이치에 맞지 않는 대목이 많다. 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뜬금없이 “노무현정부에 배우라”고 한다든지, 더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날아가는 방귀를 잡고 시비한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동문서답이다.문제의 핵심은 송민순의 기억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여부다. 최소한, 송민순이 참여정부 때 외교를 통괄했던 통일외교안보정책실 실장이었고,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가주권과 연동된 이 중요한 문제를 `역 색깔론`으로 초점을 흐리거나 `날아가는 방귀`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문 전 대표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이 소방수로 나섰다. 하지만 청와대 회의에서 문 전 대표가 처음에는 결의안에 대해 찬성 입장이었다는 부분이나, 결정 후 정부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는 대목은 여전히 불씨다. 최소한 문 전 대표의 `우유부단`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표결에 앞서 북한에 의견을 물어봤다는 증언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그야말로 소도 웃을 코미디다. 비유하자면, 마치 범행을 일삼고 있는 도둑놈에게 “지명수배를 할까요, 말까요?”하고 물어보는 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란을 정부여당이 길게 끌고 가거나 부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 차례 경험했듯이, 상대방의 쓰레기통을 줄기차게 걷어차는 정치는 `역풍`을 불러오기 십상인 까닭이다.이른바 `햇볕정책`으로 통칭되는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낭만적인 `통일론`은 처참한 실패로 귀결됐다. 2007년 그때 평양을 함께 다녀온 참여정부 인사들은 과연 무슨 깨달음을 얻었을까. 지금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송민순 자서전 파동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다.

2016-10-18

`포퓰리즘` 쓰나미가 온다

▲ 안재휘 논설위원우리 속담에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뒷일은 어떻게 되든지 생각하지 않고 우선 당장 좋으면 그만인 것처럼 무턱대고 행동함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정치권의 공약(公約)은 신용도가 낮은 외상거래다. 선거판이 벌어지면 정치꾼들은 난전장사치처럼 장밋빛 청사진들을 들고 와서 유권자들 앞에 푸짐하게 늘어놓는다. 뭇 정치인들은 우리 유권자들이 그 약속의 실현가능성을 따지는데 미욱하다는 약점을 정확하게 꿰고 있다. 더 달콤한 미래를 제시하는 후보에게 번번이 휘둘리는 유권자들은 그들의 만만한 밥이다.19대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소위 `잠룡(潛龍)`이라고 불리는 여야 정치인들이 슬슬 몸 풀기를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미 당내에서의 경쟁 따위는 건너뛰기라도 한 것처럼 세몰이에 나선 모습이다. 그는 지난 6일 교수 500명을 발기인으로 하는 매머드 정책캠프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 심포지엄을 성대하게 치렀다. 문 전 대표의 이날 기조연설은 추상적인 용어의 나열 속에 과거의 진보 의제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들렸다. 여전히 `어떻게(How)`가 쏙 빠진 뜬구름이어서 `포퓰리즘`의 서막이라는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여권(與圈)에서 가장 활발한 사람은 남경필 경기지사다.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그는 수도이전·모병제 도입·핵무장 준비·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휘발성 강한 이슈들을 파상적으로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 리셋(Reset)`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의 논리에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어떻게(How)`는 잘 안 보인다. 더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신발끈을 조여매는 낌새다. 그는 지난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경찰이 시위진압을 위해 소화전 물 쓰는 것을 앞으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언급은 편 가르기 인기발언에 강한 그의 주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인기영합주의의 산물이다.잠룡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부 유력 정치인들의 언행에 미구에 닥칠 강력한`포퓰리즘` 쓰나미의 전조(前兆)가 얼비친다. 아마도, 선동전술에 강한 진보진영이 앞장 설 것이고, 보수진영 역시 국민들을 꼬드기기 위한 온갖 꽃그림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셈법에 도통 미숙한 유권자들은 조만간 거친 공약(空約)의 해일 속에서 혼미해질 것이다.역대 대통령 누구도 과잉공약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무리한 약속들의 여파로 버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피해자는 그들에게 외상으로 권세를 주고 `뺑덕어멈 외상 빚 걸머지듯` 힘겹게 살아내야 하는 국민들이다.`포퓰리즘`을 근절할 방법은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네덜란드 등은 법률을 근거로 정치권 공약에 따른 재정소요를 정부부처나 출연연구기관이 객관적으로 추계해 선거 직전에 공표한다. 유권자들은 정밀한 계산기를 들고 정치권 공약에 대해서 시시콜콜 따져본다. 당연히 정치인들의 헛공약은 발붙일 여지가 없고, 국민들이 부도난 수표 때문에 곤경에 처할 일도 없다.우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 2012년 2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공약 사전검증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선거중립 위반 논란에 휘말리기를 꺼려하는 선관위의 특성과 `포퓰리즘` 없이는 도저히 못사는 정치꾼들의 꿍꿍이셈이 묵계로 작동하면서 4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이제 용단을 내려야 한다. 국민들의 오감을 휘저어 권력을 거머쥐고는 `나 몰라라` 궤변만 일삼는 저질 정치꾼들을 묵과할 수 없다. 수상한 외상거래 끝에 국민들이 번번이 `고슴도치 외 따 지듯이` 피눈물 쏟으며 사는 일은 종식돼야 한다. 추상같은 `공약 사전검증 제도`로 저 무지막지한 `포퓰리즘` 쓰나미를 막아내야 한다. `외상으로 소 잡아먹는` 어리석음일랑 이제 뚝 멈춰야 한다.

2016-10-11

`오버(Over)` 대 `오버(Over)`

▲ 안재휘 논설위원축구경기 도중 심판이 갑자기 공을 차면 어떻게 될까. 유례가 없으니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는 상상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굳이 유추해보자면 아마도, 그 심판은 당장 그라운드에서 쫓겨나거나 관중들의 돌팔매질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곧바로 정신병원으로 실려 갈 수도 있다. 심판은 심판으로서의 금도(襟度)를 지킬 때 비로소 존경받는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최근 사드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발언해 편파기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결국 김재수 농수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과정에서 사고를 쳤다. 자기 마음대로 본회의 차수를 변경하고 의안순서까지 바꾸는 무리수를 감행했다.정 의장이 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세월호와 어버이연합 등을 언급하며 “맨입으로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 녹취록은 가히 충격적이다. 의장으로서의 품격과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치명적인 대목이다. 굳건한 중립의지로 국회 운영의 묘를 살리고 타협의 정치, 생산적인 정치를 전개할 책무가 있는 국회의장이 스스로 사명을 저버리고 있음이 자명해졌다.여소야대(與小野大) 정치구도에서 국회수장이 된 그의 언행은 명백한 오버(Over)정치다. 최소한, 한국정치의 선진화에 대한 대승적인 설계도가 전혀 안 보인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미디어법·예산안 등의 강행 처리 때도 비슷하게 했는데 뭐가 잘못이냐는 심사인 듯하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의장으로는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는 기대난망이다. 정세균 의장의 협량(狹量)한 국회운영은 울고 싶은 새누리당의 뺨을 친 격이다. 국회에서 거칠게 항의하고, 국회의장을 성토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민홍보전을 펼치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정현 대표가 `국회의장 사퇴`를 걸고 단식투쟁에 돌입하면서 `국정감사 보이콧`까지 간 것은 또 하나의 오버(Over)정치였다. 민심을 잘못 읽은 패착이었다.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풀고, 새누리당이 국정감사장으로 돌아오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국회가 제아무리 여소야대로 돼있어도 정치가 실종되는 비정상 사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국회 파행이 한없이 길어질 때, 민심이 어떻게 흐를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스텝이 꼬였네`, `빈손 회군(回軍)이네`하는 야유에 연연할 여유가 없다.문제는 지금부터다.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논란이 휩쓸었다고 해서 미르·K스포츠 재단과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의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 공격수들의 예봉이 무뎌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선을 한 해 남짓 앞둔 상황에서 극악한 정쟁은 어차피 불가피하다. 새누리당의 초강수를 `이슈가 이슈를 잡아먹는` 정치공학의 성공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 우리 국민들의 의식은 그런 정치적 계산쯤은 간단히 꿰뚫어볼 정도로 성장해 있다. 정세균 의장과 새누리당이 오버(Over)정치로 어떻게 이문을 챙기고자 했는지도 이미 헤아림이 끝났다.심각한 것은 뭇 정치인들의 정략놀음에 민생 함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심을 훔쳐갈 온갖 잔꾀들이 난무하는 정치현장에서 진정으로 국민을 걱정하고, 나라의 장래를 설계하는 정객들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비난과 성토로 선동에 몰두하거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쇼 정치`를 탐닉하는 구태만 성성하다.엄정중립의 철학을 지키는 멋진 심판이 엄존하는 선진국회가 돼야 한다. 천박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의식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지난날의 흑역사에 기대어 자신의 일탈을 합리화하려는 유치한 발상도 종식돼야 한다.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중용(中庸)의 정치가 펼쳐지고 그 가치를 바로 볼 줄 아는 국민들이 그득한, 그런 나라로 가야 한다. 오버(Over)정치는 망한다.

201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