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史家)들은 조선 망국의 원인을 장구한 세월 죽고살기로 이어간 사색당파의 폐해에서 찾는데 대략 인색하지 않다. 오늘날 한국정치의 패거리정치 고질병을 끔찍한 혈투를 지속한 노론-소론 당쟁의 연장선상으로 해석하는 일부 견해도 공감을 얻는다. 그러나 그 피비린내 나는 다툼을 왕권강화를 위한 차도살인(借刀殺人) 기회로 악용한 못된 군주들의 간악한 통치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로 인해 집권확률이 성큼 높아진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를 축으로 하는 진보세력들은 `좌 클릭`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보수(保守)`가 궤멸되고 있는 시점에 지지충성도가 높은 진보 집토끼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일을 대권쟁취의 지름길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변수들이 살아있는 지금, 그들의 상정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리라는 보장은 아직 없다.
해를 넘겨가며 펼쳐지는 촛불집회를 종북 좌파들의 장난으로 몰아가려는 친박단체들의 작전은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과거 정권 때의 농단도 모두 다 탄핵거리”라는 식의 `물 타기` 논리도 초라할 따름이다. 촛불시위의 한복판에 광우병 사태로 대표되는 헛발질 선동의 주역들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노도(怒濤)는 그 정도의 궁색한 방패로 막아설 수준을 이미 넘었다.
비박계가 `우르르` 빠져나간 새누리당은 좀처럼 뱃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재건축을 도모하고 있는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친박핵심 출당` 기초공사가 거친 반발에 막혀 지지부진이다. 친박은 스스로 데려온 수술의(手術醫)가 갑자기 호랑이로 표변하는 횡액을 만난 듯 혼비백산이다. 파열음 속에 드러난 `탈당 쇼` 운운은 새누리당을 더욱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있다.
새누리당을 나온 보수개혁 세력들은 `바른정당`이라는 새 간판을 장만했다. 당명에 `보수`라는 말을 넣느냐 마느냐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따뜻한 보수, 깨끗한 보수`라는 기치에도 불구하고 매운 국민감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바른정당`이 조변석개(朝變夕改)의 가파른 정치지형 속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드디어 반기문이 온다. 조기대선(早期大選) 국면에서 그는 누가 뭐래도 가장 큰 변수다. 그는 극단적인 정치집단의 항로에 궤를 맞추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계파정치에 대해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그는 `중도실용주의`의 가치관으로 정치재편을 도모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존 패거리정치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축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인 듯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대목은 이번 대선을 계기로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정치가 정책 중심으로 재편돼 정치선진화의 주춧돌을 놓게 될 것인가 여부다. 정치협잡꾼들이 명망가를 권력중심에 놓고, 이념정책을 종속변수로 활용해 만행을 부려온 미개한 정치풍토가 혼란의 진짜 뿌리라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입증됐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미래지향적 `중도(中道) 빅 텐트`의 성패가 대한민국 정치사의 변곡점이 될 확률이 높다. 이번 기회에 특정 정치거목을 제왕으로 모시고 둘러앉아 사익(私益)을 탐닉하는 정치모리배들의 악행을 끊어내야 한다. 편벽된 주의주장으로 민심을 무한 선동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탐하는 메커니즘에 갇힌 한국정치를 바꿔내야 한다.
한번 `주군(主君)`으로 모시기 시작하면 무슨 짓을 해도 옹호하며 주구(走狗) 노릇을 일삼는 일은 시대에 맞지 않는 천박한 `충성`이다. 우리는 이제 특정인물에 대한 호오(好惡)나 지역감정이 아니라, 정당의 정강정책을 낱낱이 비교하여 표심을 결정하는 선진 민주주의의 유권자가 돼야 한다. 이번 사태를 분기점으로, 이 끈덕진 사색당파 패당정치의 더러운 대물림 오명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