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어떤 부모가 과년한 아들에게 맞선을 보러 가자고 했더니, 신붓감 다섯 명을 데려다 놓지 않으면 안 나가겠다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객관식 시험에만 익숙한, 찍기식 공부가 빚어내는 부작용을 풍자한 것으로 들린다. 매사 그렇게 정답만 알면 되는 식으로 문제를 상대하는 버릇과 능력을 키운 사람은 여러모로 부실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과정’이라는 말은 진리다. 고지만 탈환하면 수단은 상관치 않는 것이 ‘군사문화’라면, 민주주의는 달라야 한다. ‘성과 지상주의’에 함몰되어 구성원의 권리나 소비자의 권익을 무시하고 몰아쳐 성장만을 추구해온 시절이 있었다. 이젠 그래서는 안 된다.정치도 마찬가지다. 아니, 정치야말로 객관식 문제 풀듯이 달려들어서는 결코 정답에 다다를 수가 없다. 설사 그렇게 문제를 조금 풀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클 수밖에 없다. 과거 정권들이 장밋빛 공약들을 앞세워 당선된 다음에 해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한 일들은 부지기수다. 꼼짝없이 사기꾼 이미지를 얻고 국민을 분통 터지게 만든 사례도 즐비하다.오류는 각종 선거에서부터 비롯된다. 뭇 정당과 후보들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화려한 공약을 쏟아낸다. 그 공약의 명분을 살펴보면 구구절절 옳다. 다만 그 많은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 부작용은 또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으면 진보와 보수의 대답은 늘 뻔하다. 진보는 ‘부자 증세’를 해법으로 말하고, 보수는 ‘절약’을 방책으로 말한다. 그런데 둘 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진보건 보수건 그들이 내놓는 무지막지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예산부터 ‘증세’가 아니고서는 결코 마련할 수가 없는 거액이다. 그들은 어거지로 밀어붙이는 정책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도 있음을 궤변까지 동원해가며 애써 간과한다. 문제는 정치인들 모두가 그런 내막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거듭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엄혹한 시련 속으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5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정치권과 노동계의 주장을 ‘포퓰리즘 공약’에 쓸어 담았다. 준비도 검토도 제대로 되지 않은 설익은 공약들이 남발됐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정권에 대한 제1채권자로 자리잡았다.공약은 대체로 ‘귀납’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목부터 정하고, 그게 득표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무조건 내걸고 본다. 과정을 검증치 않고 정답 여부를 판정하는 ‘오지선다형’ 문제를 푸는 방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유권자들은 더 허술하다. 바람 따라, 편 가르기에 맞춰서 들쥐처럼 표심을 정하는 유권자들의 선택양식은 매번 엉터리다.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저소득층을 잘살게 한다는 이 정책은 오지선다형 문제의 답변으로는 정답이다. 그런데 정작 그 여파는 못사는 사람들을 더 못살게 만드는 쪽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서부터 탈이 났고, ‘혁신성장’은 발동조차 제대로 못 걸었다. 고차방정식으로 풀어도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를 어설프게 덧셈 뺄셈으로 풀려고 대들다가 닥친 심각한 낭패 꼴이다.‘한반도 평화’도 마찬가지다. 객관식으로 따져서는 무조건 정답이다. 누가 감히 이 청청한 명분을 부정할 것인가. 시간을 들여서 주관식으로 꼼꼼히 풀어야 할 문제를 ‘연역 방식’으로 답부터 정해놓고, 시도 때도 없이 남남갈등을 부풀리면서 쩔쩔매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아니 대한민국이 ‘오지선다형’ 정치의 깊디깊은 함정에 빠져들었다. 모순의 대가는 정권과 국민에게 실로 혹독하다. 엄동설한은 닥쳐오는데, 민생부터 먼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어떻게든 모두 멀쩡하게 살아남아야 할 텐데, 참으로 걱정스러운 을씨년스러운 겨울 문턱이다.
2018-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