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절차적 민주주의(Procedural democracy)`를 충족하는 핵심요인은 권력에 도전하는 다수 정당의 존재, 정당한 선거에 의한 합법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정권교체, 법치주의에 입각한 공정한 통치 등이다. 실질적 민주주의(Essential democracy)는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 정부정책의 여론 중시, 소수의 의견 존중, 이익집단의 존재와 정책결정 영향력 등이 주요 판단요인이다. 독재정권이거나 부실한 정권일수록 마키아벨리의 이론처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부조리한 현상을 양산한다. 과거 집권 세력들은 내용적으로는 자기들 마음대로 온갖 권력을 휘둘렀지만 형식적으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엉터리 민주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동원된 궤변과 억지논리는 계량하기 힘들 만큼 많다.문재인 대통령의 파격적인 소통행보와 9년 만의 진보정권이라는 생기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의 기대치는 그야말로 고공행진이다. 숫자만을 놓고 본다면 `팥으로 메주를 쑤겠다`고 해도 믿음을 놓지 않을 기세다. 새 정부가 이렇듯 국민들로부터 원망(願望)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잘하면 큰 국가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환경요소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정책을 펼쳐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부터 국민 여론이 정직하게 반영돼야 할 것이고, 의사결정 과정부터 민주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목적 제일주의의 교졸한 통치술이 발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매사가 그렇듯 `합법성`이 `정당성`을 담보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문재인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가속도가 붙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는 거센 반론에도 불구하고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했다. 재적 이사 13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의결 반대자는 비상임이사 한 명뿐이었고, 12명이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 일정 규모 시민 배심원단을 선정해 공사 영구중단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맡길 방침이다. 7조원이 넘으리라고 추산되는 매몰비용은 물론, 중동 두바이에 건설하고 있는 원전 등 유망한 수출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거론된다. 벌써부터 `공론화위원회`는 절차를 지켰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허울뿐인 거수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돈다.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발행할 예정이던 기념우표 발행이 무산됐다. 구미시가 신청한 박정희 기념우표는 우정사업본부가 지난해 5월 우표발행심의위를 열어서 발행을 결정했었다. 그랬던 사업이 지난 12일 개최된 심의위에서 동일한 17명 심의위원들에 의해 거꾸로 뒤집혔다. 정치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국가·역사 발전에 공로가 있다면 기념하는 관례를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개척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번 결정한 기념우표 발행을 재론하고 번복한 것 자체가 천박하고 옹졸한 처사이자, 통합의 정신에도 명백히 어긋난다. 권력 앞에서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누운` 꼴인 우정사업본부의 행태가 대구경북(TK) 정서에 끼칠 악영향은 빤하다. 재조사를 천명한 4대강사업, `환경영향평가` 태클로 묶어놓은 사드(THAAD)배치, 공사 일시중단을 결정한 신고리 원전 5·6호기, 그리고 박정희 탄생기념우표 발행 취소 등 일련의 조치들을 일관하는 형식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부합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질적 민주주의`의 잣대로 들여다보면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없지 않다. 혹여 그 의욕적인 발상 안에 `목적이 수단을 지배하는` 요소는 없는지 면밀히 살펴볼 일이다. 지금은 국민들 사이에 분란(紛亂)의 불씨를 남길 때가 아니다.
2017-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