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방문 중에 한 관료로부터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여전히 `마오쩌둥(毛澤東)`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수천 년 피눈물 나는 삶을 이어온 중국 인민들에게 최초로 `땅`을 나눠준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마오에게는 `10년 동란`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라는 치욕적인 실정(失政)의 역사가 있다.
문화대혁명에 동원된,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이 중심이 된 홍위병은 전국을 돌며 무차별적인 파괴를 저질렀다. 엄청난 문화재와 예술품이 부서지거나 불살라졌고 `반혁명 인사`로 지목된 무수한 사람들이 홍위병 대회에 끌려나와 조리돌림을 당했다. 학대 끝에 목숨을 잃거나, 자살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훗날 그것은 참담한 경제실패를 가리려는 마오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이념투쟁` 대재앙이었음이 판명되었다.
문재인정부 출범이후 시작된 `코드(Code)`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새 정권이 탄생할 적마다 되풀이되는 구태의연한 혼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발탁인사를 놓고 과거의 언행을 탈탈 털어내는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보수 야당들은 지명된 인사들에게서 위험한 이념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혈안이다. 진보 여당은 추천된 인사가 혹여 꼴통보수 인식의 소유자가 아닌지 샅샅이 살핀다.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났다. 사퇴요인이 비록 `불법 주식투자` 의혹이었지만 야권의 비토 초점은 정치편향성이었다. 이 후보자는 2002년과 2012년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문재인 후보를 지지했고, 2004년에는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을 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시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진보성향이 뚜렷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도 먹구름이 걷히지 않았다. 여소야대 구조의 국회가 제 기능을 찾는 일은 여전히 지난하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는 특이하다. 이승만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당시의 독재에 대해 “대안이 없었다”고 주장한 점이 문제가 되면서 `뉴라이트 사관(史觀)` 논란에 휩싸였다. 여당의 일부 의원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청와대에 박 후보자 임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정권에서도 `코드` 논쟁은 여지없이 공영방송으로 불똥이 옮겨 붙었다.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MBC 김장겸 사장(임기 2020년 3월)과 함께 KBS 고대영 사장(임기 2018년 11월)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KBS에서는 노무현 후보 특보를 지낸 서동구 씨를 필두로 정연주·김인규·길환영 전 사장 등이 망신을 당했다. MBC에서는 엄기영·김재철·안광한 전 대표 등이 적격성 시비의 중심에 섰었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정권교체기마다 벌어지는 이 같은 혼란상은 공영방송을 `대선의 전리품` 정도로 여기는 정치권의 고질적인 탐욕이 근본 원인이다. 엄정하게 중립적인 인물이 사장으로 임명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놓지 않는 한 부작용과 혼란은 종식시키기 어렵다.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일부 야당 추천 이사도 동의해야 사장 선임이 가능하게 만드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여러 사회기구에서 추천하는 이사들로 이사회 정원을 대폭 늘려 정치성을 희석시키는 방안도 대안으로 나와 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참으로 오싹한 흉계였다. 그러나 작금 펼쳐지고 있는 `적폐청산` 신드롬 역시 자칫하면 가공할 후유증을 초래할 여지가 있다. `20세기 분서갱유`였던 문화대혁명은 중국의 역사를 30년 이상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민들 사이에, 무분별한 적폐 재단(裁斷)과 인민재판식 처결로 치명적인 역사적 오류가 양산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깊다. 대한민국의 100년 미래를 생각하는 `통 큰` 리더십이 절실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