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破邪顯正)`은 불가(佛家)에서 나온 말이다.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 정도로 해석된다. 철학자 탁석산 박사가 한 방송에서 이 사자성어를 현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대입해 논쟁을 일으켰다. 그는 `적폐청산`은 이번 정권뿐 아니라 모든 정권이 해왔다고 전제하고, 5·16 이후의 `정치깡패 검거`, `삼청교육대`, `범죄와의 전쟁` 사례를 들며 허점을 비판했다.
탁석산의 주장은 `파사`에 치중하기보다는 `현정`에 먼저 주력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요약된다. 그는 자기 집에 바퀴벌레가 있다고 그것만 다 때려잡으면 집이 깨끗해지리라는 생각은 오류라고 설명했다. 집권초기 1년 동안 `적폐청산`에 진을 다 빼다가는 결국 `현정`에 실패하게 되고 만다는 논리다. 탁 박사의 지적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경계심을 잘 대변하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의 으뜸자리를 `적폐청산`이 차지한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대선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모진 비판에도 불구하고 끝내 움켜쥔 구호였기 때문이다. 전 정권의 무절제한 권력실태를 주요대상으로 내세우지만, 막상 실행 단계에 들어가면 광폭의 `보복정치`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때 운용하다 사장된 `반(反)부패기관협의회` 부활 선언으로 `적폐청산` 신호탄을 쏘았다. 이에 맞춰 검찰은 수리온 헬기를 개발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납품 관련기업들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부처별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여야 의원 40여 명과 함께 `최순실 재산몰수 특별법 추진 의원모임`을 만들었다. 이 법안은 위원회가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부받아 재산을 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는 과거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의 재조사를 담당할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라고 권고했다.
정권이 바뀔 적마다 불거지는 청와대의 부실 인수인계 논란은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정상적인 인수인계가 없어 전 정부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던 청와대가 두 달 만에 이 방 저 방 캐비닛에서 상당한 문서를 찾았다고 호들갑이다. 마치 숨겨진 보물이라도 발견한 양 기자들에게 `대서특필`을 암시하기에 바쁘다.
치욕스러운 `탄핵`을 당한 전 정권의 처지에서 제대로 넘겨줄 성의가 남아있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은 된다. 그럼에도`백지 인수인계`나 `캐비닛 서류` 사태는 나라의 심장인 청와대의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부끄러운 소란이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정치를 좌지우지하려는 청와대의 의욕이 과도해 보인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방으로 대형 거울에 둘러싸인 방에서 지냈다`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더니, 이번에는 `박근혜 침대`를 들고 나와 `고민`이란다. 청와대 주인이 바뀔 적의 선례에 따르면 그만인 일을 포장해 언론에 흘리는 의도가 수상쩍다. 아무래도, 청와대가 `쓰레기통 걷어차기`에 너무 골몰하는게 아닌가 싶다.
문재인정부로서는 임기 내내 `박근혜`와 `최순실`을 재탕, 삼탕 몇 십 탕이라도 우려먹을 호재로 여길지 모른다. 누가 뭐라고 하든 여차하면 들고 나와 상처를 후비고 까뒤집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정말 알아야 할 것은 그런 `편 가르기`행태야말로 가장 사악한 적폐라는 사실이다.
적폐청산은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현재 권력`이 `죽은 권력`을 야비하게 짓밟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안 된다. `상대편은 깡그리 부수고, 내 편을 내세우는 것`을 `파사현정`이라고 욱대길 것인가. 그 저열한 패거리의식부터 청산하는 것이 순서다.`파사`보다도 `현정`이 먼저라는 탁석산의 충언은 백번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