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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同床異夢)`의 철조망

등록일 2017-07-10 02:01 게재일 2017-07-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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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1973년 1월 28일 미국과 북베트남(월맹) 사이에 체결된 `파리평화협정`은 남베트남(자유베트남)의 소멸을 초래한 비극적 평화협정으로 유명하다. 이 협정으로 남베트남의 `척추`였던 미군이 빠져나오자 베트남은 불과 2년 3개월 만에 공산화됐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10년 동안 무려 5천억 달러(약 577조2천500억 원)의 전쟁비용을 지출하고도 세계사에 길이 남을 망신을 당했다. `파리평화협정`은 평화협정이 궁극적인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중대한 교훈을 남겼다.

독일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과감한 제안들이 포함될 것으로 예측됐던 `베를린 구상`은 그러나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는 게 주된 평가다.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 실타래를 뒤죽박죽 헝클어 놓은 것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라는 사변(事變)이었다.

북한은 지난 4일 발사한 화성-14형 미사일이 미국의 알래스카와 서부까지 타격할 수 있는 ICBM이었다고 발표했고, 미국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반응이 나왔다. 한미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보란 듯이 감행된 북한의 도발은 메시지가 분명하다. 북한의 ICBM 발사 가능성을 부정하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핵문제 해결의 운전대를 잡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동시에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셈이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국제적인 대결 국면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최고의 비결은 `채찍과 당근` 기법이다. 대개의 경우 채찍과 당근의 무게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평화로운 해법이 도출된다. 채찍이 너무 가혹하거나, 당근이 과도하면 균형이 깨어져 난기류를 초래한다. 남북한의 관계, 국제사회와 북한의 관계에도 이 원리는 정확하게 작동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날로 악화되고, 북한의 미사일 능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시점에 우리는 문제를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내놓고 있는 요구조건은 `적대정책 폐기`, `미·북 국교 정상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전환` 등으로 요약된다. 모든 요구조건이 충족되면 김정은은 정말 도발의지를 접을까. 천만 만만의 말씀이다.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는 분명한 착시(錯視)다. 북한체제가 허위의 모래밭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국제교류가 확대되면 북한이 외부세계에 노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바깥세상에 노출되는 순간 김씨 일족의 신성(神聖)과 백두혈족 신화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게 전망해보아도 북한이 빗장을 풀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창한 `남북 평화협정`에 대해서 북한은 콧방귀도 안 뀐다. 북한에게 한국정부는 `미제의 괴뢰집단`일 뿐이다. `평화협정`이라면 정전협정의 파트너인 미국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또 어떤가. 한반도 전체가 중국에게 비우호적 세력권으로 변화하는 사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내려고 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우리는 남북대화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과 통일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지만 통미봉남(通美封南)에 집착하는 북한은 거들떠볼 생각이 없다. 우리가 내민 당근을 맛있게 받아먹으면서 미국과 맞서 싸울 기력만 북돋울 따름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체면을 지키는 수준에서 `북한 제재`에 동참하는 척하면서 반심(半心)을 쓴다. 도무지 우리가 끼어들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당근과 채찍의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 평화협정` 정도의 당근정책은 씨도 안 먹힐 하수(下手)다. `핵(核)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핵(核)밖에 없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다. 이 시점에, 우리가 “방어적 목적의 핵무장을 검토하자”는 정도의 채찍이라도 작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대한민국은 지금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철조망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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