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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대 `코걸이`

등록일 2017-07-31 21:09 게재일 2017-07-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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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말(馬)`이란 형태를 명명한 것이고,`희다(白)`란 색깔을 명명한 것이다. 색깔을 명명한 것은 형태를 명명함이 아니다. 그래서 흰 말은 말이 아니다”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 공손룡의 유명한 궤변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이다. 논리와 실재의 괴리를 반영해 실재하지 않은 `말`이란 개념의 장애를 뛰어넘어 백마라는 실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 논설로 전해진다. 명실을 바로잡아 천하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였다는 해석도 있다.

궤변이라는 단어에 나오는 `궤(詭)`는 말을 나타내는 언(言)과 위험하다는 뜻의 위(危)를 합한 글자다. 궤(詭)에는 `속이다`, `기만하다`는 뜻이 있고, `어그러지다`나 `헐뜯는다`는 뜻도 있다. 한국의 정치문화에 있어서 궤변술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정권교체 경험을 하게 된 뒤부터 더욱 난무하는 정치인들의 교졸한 논리변신에 국민들의 억장이 막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의 정치권 논란들을 톺아보노라면 어쩌면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입장을 180도 바꾸고, 상대방이 하던 말을 부끄럼 없이 따라 할 수 있을까 어이가 없어진다. 정말 약이 오르는 것은 수려한 궤변술에 포장된 그들의 뒤집은 말들이 어쩌면 또 그렇게 그럴싸하냐는 점이다.

`담뱃값 인하` 논란은 낡은 양당제 정치가 남긴 포퓰리즘 정치의 후안무치한 막장드라마다. 지난 2014년 국민건강증진을 위한다며 담뱃값을 2천500원에서 4천500원으로 올렸던 자유한국당(한나라당)이 `서민감세`를 이유로 담뱃값 인하 법안을 내놨다. 한국당은 “과거 담뱃값 인상은 깊이 생각하지 못한 정책이었다”는 자아비판까지 덧붙이고 있다. 한국당의 `담뱃세 인하` 카드가 `부자증세`를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을 곤혹스럽게 하려는 정치공세임은 불문가지다. 통과된 추경 11조원 중 8조원가량이 담뱃세 등의 초과세수로 채워진 점을 겨냥해 콕 찌른 것이다. 민주당을 궁지로 몰려는 정략이지만, 일단은 되레 사방에서 모다깃매를 맞고 있다. 입장 바뀌었다고 말을 홀랑 뒤집은 경박한 행태에 맹공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소요예산을 감당하기에 어림 턱도 없는 `부자증세`로 높은 지지도를 고착화해보려는 민주당이나, 뜬금없는 `서민감세`로 토라진 민심을 다독거려보려는 한국당의 행태는 케케묵은 양당제가 빚어낸 한심한 인기영합주의 정치의 클라이맥스다. `명예 과세`에다가 `사랑 과세`, `존경 과세`라니 그 허접한 궤설들이 허탈을 부른다. 불과 수개월 전에 벌인 공방의 논리는 똑같고 공수만 바뀐 모순을 가장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이들은 공직자들이다. 상대방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다 바꿔 주장하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의 호통에 그저 “네네”만 거듭해야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란다. 호통 치던 국회의원들이 나중에 공직자들에게 “입장이 바뀐 것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하곤 하는 풍경은 정말 요상하기 짝이 없다.

진영논리에 빠진 청백전 정치의 가장 고약한 증상은 `반대를 위한 반대` 습성이다. 오랜 기간 천박한 논리에 젖어 궤변을 탐닉하다보면 이성적인 판단력이 무뎌지기 마련이다. 보편적인 가치관이 붕괴되고 억지주장이 임계점을 넘게 되면 아예 아적(我敵)의식의 앙상한 기준만 남아 추레한 정치꾼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 종착지에 `철학부재`의 피폐한 쓰레기정치가 기다리고 있다.

한국정치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쓰레기 논쟁터로 변하고 있다. 천박한 `귀걸이`와 `코걸이` 논리들의 충돌만 어질더분한 난장으로 퇴락해가고 있다. 좀처럼 멈출 줄 모르는 포퓰리즘의 저질 향연 속에 웅크려 앉은 민초들이 처연하다. 민심을 훔치려는 저의만이 춤을 추는 정치의 영역에서 사특한 궤변들을 걷어내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 녹슨 `기만`과 `헐뜯음`의 사슬을 끊어내지 않고서야 대체 무슨 미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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