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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의 `러시안룰렛` 게임

등록일 2017-09-18 20:45 게재일 2017-09-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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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1636년 쇠퇴해가는 명나라와의 교전 상태에서 즉위하여 내몽골을 평정한 후금의 홍타이지(태종)는 국호를 청(淸)으로 바꿨다. 그는 조선 인조(仁祖)에게 형제관계가 아닌 군신관계로 바꿀 것을 요구해온다. 조선 조정은 일전불사를 주장하는 주전파(主戰派)와 전략적 차원의 타협을 강조하는 주화파(主和派)로 갈려 큰 논쟁이 벌어지지만 강경파인 척화 주전론이 득세한다. 삼천리강토가 유린당한 처참한 병자호란의 발발경위다.

전쟁 열흘만에 청군은 수도 한양을 짓밟는다. 조선은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냈고 형언하기 힘든 치욕을 당해야 했다. 남한산성에 피신해있던 인조는 삼전도(三田渡·지금의 송파)에서 무릎을 꿇고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항복의 예를 바친다. 주전파였던 김상헌과 삼학사(윤집·오달제·홍익한) 등이 청에 잡혀가 옥사한다.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지만, 만약 그때 조정에서 주화파가 대세를 장악했다면 과연 상황은 달라졌을까.

핵과 미사일개발에 올인하고 있는 북한의 무한질주를 막아낼 묘방을 놓고 대한민국이 또다시 두 패로 갈려 큰 논쟁이 벌어졌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더 이상 대화로는 북핵위기의 해법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굳혀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다른 셈법에 빠져 있는 듯하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국의 핵무장론이 비등하고 있다. 자체핵개발보다는 비교적 장애요소가 적은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놓고 추진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안 된다는 입장이 극렬하게 부딪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여당은 `반대` 입장을 굳혔다. 한동안 `핵무장론`에 동조하는 듯하던 민주당내 일부 여론은 금세 제압을 당한 낌새다.

문 대통령이 `전술핵재배치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과 만나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논의한데 이어 최근 국회에서 `배치 검토`를 언급한 송영무 국방장관은 청와대로부터 경고까지 받았다는 후문이다. 문재인정부의 끈덕진 `대화` 의지를 떠받치고 있는 논리의 중심에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이자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인 `문정인`이 있다. 문 특보는 며칠 전 한반도평화포럼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강연에서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 능력 등을 고려해 볼때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인식 하에 비핵화 전략을 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체제는 압박한다고 쉽게 망할 것 같지는 않다”고 언급해 유엔안보리의 제재 압박 결정을 평가절하했다. 예측 불가능한 북한의 다음 행동을 추측하는 것은 어차피 가설(假說)논쟁의 영역이다. `핵무장`을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은 북한이 남한을 향해서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협박할 것이라는 비관이 출발점이다. 이를 반대하는 주장에는 북한이 한반도에서 핵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소신이 작용한다. 두 가설 모두 치명적인 위험성을 내포한다.

문정인의 발언 중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사실상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는 정부여당 내에서조차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엇박자다. 미국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할 생각이 없고, 문 대통령 역시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는 인식을 표명하고 있다. 송영무 국방장관의 `김정은 참수작전` 언급까지 호통을 칠 정도로 이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인물인 문정인의 끈질긴 주장의 진짜 배경은 도대체 뭔가.

병자호란때 조선 조정의 주전-주화 패거리다툼은 중국의 정세를 오판해 벌인 `우물안개구리`식 당쟁이었다. 그런데 적화통일로 남한을 쓸어버리려는 집단의 행동예측을 놓고 벌이는 이 허망한 도박은 무슨 가치가 있는가. 온 세상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가졌으니 꼬시고 달래야 한다`고 욱대기는 문정인의 억센 신념은 과연 어디에서 근거하는가. 대한민국 오천만의 운명이 그의 위험천만한 `러시안룰렛` 게임에 맡겨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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