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계 학생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왕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를 저격 살해한다. `사라예보사건`으로 기록된 이 암살테러는 결과적으로 무려 1천여만 명이 죽고, 2천여만 명이 다친 세기적인 비극 1차 세계대전의 촉발점이 된다. 그렇게 뜻밖으로 사소한 사건이 엄청난 전쟁 참화의 시발이 되는 요인은 휘발성이 한껏 높아진 시대상황이다.
미국과 북한이 연일 극단의 막말들을 동원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미국령 괌을 포위 사격하겠다고 위협한 데 이어 연일 대규모 군중대회를 열며 `사흘 만에 347만5천명이 북한군 입대와 재입대를 신청했다`고 광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북한이 현명하지 않게 행동할 경우 군사적 해결책이 완전히 준비됐고, 장전됐다”고 선언했다.
이제 어느 쪽이 됐든 방아쇠 당기는 일만 남은 형국이다. 임계점에 다다른 북한 리스크가 주식·외환·채권시장을 동시에 덮쳤다. 북·미 충돌에 대한 증시 불안감은 세계적으로 번져가는 중이다. 미국 다우존스 산업지수와 나스닥 종합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할 것 없이 매물이 쏟아지면서 전방위 하락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차분한 분위기를 잃지 않고 있다.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한국민들의 놀랄 정도로 심드렁한 분위기(surprisingly blase)`라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를 전했다. 신문은 “내 생애에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대학생과 북한접경 주민들의 동일한 반응을 전하고 있다.
일부에서 동맹국 미국이 선전포고를 당한 마당에 한국정부가 입장을 내놓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일본과 호주가 미-일상호방위조약, 그리고 ANZUS동맹(미국-호주-뉴질랜드 3국 안전보장조약)에 입각해 북한의 미사일을 떨어뜨리겠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가능한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할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간과한 관점이긴 하다.
남북 분단 이후 영일 없이 지속돼온 북한의 위협으로 인해 우리는 모두 심각한 `전쟁공포 불감증`에 걸려 있다. 가공할 비대칭 무기를 자랑하며 `핵 공갈`을 일삼아온 북한이 동맹국 미국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마당에도 `강 건너 불 보듯`하는 우리의 대응은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서울 불바다` 발언에도 평온을 깨지 않는 것이 여전히 번영의 대들보일까. `전쟁은 절대 나지 않을 것`이라는 작금의 이 확신은 정말 괜찮은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위협`을 전망하고 `전쟁` 가능성을 알려주는 신실한 `경고음`이 사라진 데는 또 다른 씁쓸한 사연이 내재해 있다. 과거 권위주의 수구정권과 그 들러리들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때려잡는 도구로 `위기설`을 함부로 남용한 결과다. 그 누구라도 `북한의 위협`을 쉽게 말하다가는 `색깔론`이라는 무차별 역풍을 맞는 희한한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LA타임스에 실린 “서울 주민은 전쟁에 사실상 무방비나 다름없다. 형식적인 대피 행동강령만 있을 뿐”이라는 한 전문가의 고백은 끔찍하다. 수도권을 겨냥한 북한 장사정포가 무려 2천여 문이나 된다는데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싶다. 용감하든지 아니면 어리석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자조(自嘲)마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늑대는 있다. 그리고 늑대는 호시탐탐 양들을 노리고 있다. `양치기 소년`들이 일제히 침묵하는, 아니 모조리 도망쳐버린 목장에서 `늑대는 없다`고 스스로 착각하며 무덤덤히 살아가는 양들의 모습이 처연하다. 미국과 북한이 연일 선전포고를 날리고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깨우쳐줄 정직한 목동은 과연 등장할 것인가. 참담한 전쟁의 비극을 막아낼 지혜로운 `양치기 소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