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재휘 논설위원축구선수를 뽑는 선발전을 탁구시합으로 하자하면 어떻게 될까. 탁구선수를 뽑자면서 축구경기를 시키면 또 어떻게 될까. 중앙정치권이 벌이고 있는 대형 정치이슈에 볼모잡힌 야릇한 지방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분위기를 살펴보니 이대로라면 진짜 ‘지방선거’는 애당초 글렀다. 지역일꾼을 뽑는다는 타이틀이 무색하도록, 이번 선거는 정당 하나를 딱 골라놓고 좌고우면할 것 없이 한 줄로 찍어내는 줄 투표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율이 각각 20.14%, 21.07%로 마무리됐다. 사전투표소에서 한동안 살펴보니 줄 투표 민심이 여실했다. 늙은 아버지를 투표소에 들여보내며 ‘무조건 ○번만 찍으셔요.’하니까 노인 역시 ‘알았어.’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전투표율을 놓고 여야 할 것 없이 따로 또 같이 ‘환영’일색이다. 동상이몽이든지, 아전인수에 빠져들었든지, 아니면 최소한 모두가 포커 페이스일 것이다.말로는 지역일꾼을 뽑는다지만,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면면을 거의 알지 못한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 먹고 살기도 바쁜 힘겨운 시절에 선거에 나선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시시콜콜 톺아볼 여력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 기회, 그런 분위기는 국가와 정치권이 만들어줘야 마땅하다.후보들의 유세를 ‘소음’이라며 못견뎌하는 유권자들이 많아졌다. 두고두고 실망만 덧내오던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짜증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지역발전이 절실하네, 분권이 필요하네 어쩌고 백날 떠들어봤자 귀담아 듣는 이가 없다. TV를 비롯한 온갖 매체들은 북미회담, 대한항공, 드루킹, 재판거래가 어쩌고…지역의 현안에는 닿지 않는 별나라 담론들로 가득찬 뉴스만 줄창 나온다.입으로만 ‘지방선거’라고 부를 따름, 중앙정치권부터 제대로 된 ‘지방선거’를 치를 의지가 없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에 적당히 편승하기만 해도 승산이 높다는 계산인 듯하다. 더욱이 선거 하루 전날에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이게 이 정권의 혁혁한 업적이라는 감회일 테니 더할 나위 없이 넉넉한 선거판일 것이다.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새 정권으로부터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속수무책 당하는 수난국면 아래에서 문자 그대로 ‘내 코가 석 자’인 신세다. 이처럼 엉뚱한 외생변수가 강고한 판에 지역발전이니, 분권이니 하는 어젠다에 발목이 잡힐 이유도 여유도 없는 게 중앙정치권이다. 어쩌면 계산 빠른 정치권 인사들은 지방선거 이후에 펼쳐질 정계의 진동을 벌써 감지하고 새로운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지역현안에 대한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열리지 않는 선거가 무슨 수로 온전한 지방선거가 되랴. 자치의식과 능력을 길러낼 시스템조차 제대로 없는 완강한 중앙집권적 통치구조 아래에서 지방분권이란 언감생심 허황된 욕심일 지도 모른다. 지방선거가 중앙정치놀음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지방분권을 ‘분열’이라고만 인식하는 중앙정치꾼들의 천박한 인식 안에서 이 나라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초라하기 짝이 없다. 우리 스스로 깨어나는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다. 중앙정치논리 따위 다 물리치고, 요 며칠만이라도 정당이름 다 잊어버리고 지방선거에 나선 후보들 중 지방자치의 대한 신념과 자질과 비전을 제대로 갖춘 인물이 누구인지 세세히 짚어보면 안 될까.축구선수를 뽑는데 탁구실력을 견주고, 탁구선수를 뽑기로 해놓고 축구실력을 비교하고 있는 이 지독한 모순으로부터 탈출할 용기를 아주 놓아선 안 된다.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가 돼야 민주주의가 비로소 완성된다는 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어려워도, 유권자가 ‘지방선거’를 해야 ‘지방선거’가 된다.
2018-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