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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7백만의 ‘롤러코스터’

등록일 2018-05-28 21:20 게재일 2018-05-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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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북한의 대외 협상기술은 ‘벼랑 끝 전술’로 통칭된다. 외교를 포함한 모든 대외 현안에서 북한 대표들은 극언을 넘나든다. 상당히 많은 경우에서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효력을 보아왔다. 한마디로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상태에서 북한의 행악질은 번번이 먹혔다. 북한은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전쟁의 피해와 고난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패악을 당하고도 매번 유야무야 넘겨왔다.

오는 6월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요 며칠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들은 어지럽기만 하다. 예외 없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김정은과 ‘미치광이 전술’로 대응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결은 일단 미국의 승세로 귀결됐다. 김정은이 중국 시진핑에게 뭔가 언질을 받고 난 다음 태도가 돌변해 사달이 났다는 것인데 자세한 내막은 아직 모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하자 놀란 북한의 황급한 태도 변화가 있었고, 그리고 트럼프의 회담취소 번복 소동의 끝자락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극비리에 다시 만났다. 그야말로 남북한 7천7백만 겨레의 생살(生殺) 희비가 롤러코스터 위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가장 요긴한 것은 ‘냉정’이다.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일희일비하여 운전대를 좌우로 급변시키는 행위만큼 위험한 짓은 없다. 문제의 근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가장 적절한 선택지를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야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기울어진 해석과 대응들은 국민 불안을 키운다. 정부여당은 다분히 ‘감상적 낙관’일색이고, 보수정치인들은 지나친 비토로 ‘반 평화 세력’ 이미지만 키우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세상 그 어떤 문제보다도 복잡하다. 평화무드 속에서 나오는 키워드란 하나 같이 고도의 난제다. 우선 우리가 소원하는 ‘북한의 비핵화’만 해도 그렇다. 북한은 미군철수를 위해 기만전술을 펼칠 뿐 절대로 비핵화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명쾌하게 뒤집을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북한 체제보장’이라는 약속과 ‘북한을 한국처럼 번영토록 할 것’이라는 비전도 결코 병존할 수 없는 조건이다. 세계 유일의 가혹한 독제체제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번영을 일군다는 말인가. ‘인권’ 문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위태로운 화약고다. 강제수용소 따위 북한 정권이 쌓아놓은 ‘반인권(反人權)’ 적폐부터 난공불락이다. 외부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벌집 쑤시기나 다를 바 없다. 완전히 깨질 것 같던 북미정상회담이 극적으로 회복양상으로 돌아온 것은 다행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의 긴급회동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시점에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말하고 있는 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25년 전부터 악용해온 시간 끌기 명분이라고 정의한다.

한반도 평화의 앞길에 수많은 모순과 난제가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북 간, 또는 북미 간 대화를 지나치게 부정적 시각으로 평가절하하는 습성을 경계해야 한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의 말처럼 ‘회담이 깨질 것 같으면 박수 보내고 성사될 것 같으면 야유를 보내는’ 수준의 야당노릇은 개선돼야 한다.

물론 더 큰 숙제가 있다. 시대착오적인 획일 전제주의의 유치한 눈으로 남한의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를 해괴한 욕설을 앞세워 사사건건 시비하는 북한의 못된 ‘벼랑 끝 전술’ 버르장머리를 고쳐내는 일이다. 침착하고 차가운 가슴으로 이 역사의 벼랑길를 기어이 넘어가야 한다. 7천7백만 겨레의 안온한 삶을 보장해내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소명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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