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원희룡 후보 측이 “제주에도 드루킹이 있다”는 흥미로운 발표를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 관련 특정 기사의 조회 수와 댓글 추천 수 등을 누군가가 조작한 흔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문 후보에게 유리한 것 같은 기사에 대해 작금 국민들의 촉각이 쏠려 있는 네이버(NAVER)에서는 댓글이 단 7건 뿐인 반면, 다음(Daum)에서는 무려 6천여 개가 달린다는 사실을 사례로 들었다.
‘드루킹 사태’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단식투쟁까지 불러온 이 나라 정치권을 덮친 심각한 먹구름이다. 합법적인 ‘여론형성’과 불법적 ‘여론조작’ 사이의 모호한 공간을 파고드는 새로운 형태의 진화된 선동술책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인터넷 댓글의 영향력은 ‘거름 지고 장에 간다’는 전통적인 군중심리와 정확하게 연동된다. 그 힘은 대세를 무턱대고 따르는 ‘밴드왜건(Band wagon) 효과’로 나타난다.
인터넷 댓글 조작의 영향력은 일대 유행하고 있는 여론조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무응답이나 답변거부 비율이 반영되지 않는 여론조사 결과는 민심을 오도하는 심각한 폐해를 낳는다. 그 치명적인 부실 문제를 지적하면, 여론조사 맹신자들은 ‘트렌드(추이)만 참고하면 된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실제로 백분율로 발표되는 숫자가 가져오는 착시와, 그에 따른 밴드왜건 현상은 결정적이다. 사람들은 여론조사 숫자에 무한히 휘둘린다. 그 단세포적인 착각과 오신(誤信)의 허점을 파고드는 기술이 댓글공작이다.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인 여론조사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중대하게 그르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에서 무차별로 달라붙는 댓글의 숫자와 내용에 자신의 판단을 맡기는 현상의 허점을 여론조작의 기술이 순식간에 파고들어 선택지를 장악해가는 시스템인 것이다.
댓글조작의 1차 먹잇감은 여론조사다. 댓글공작에 영향을 받은 여론조사 결과는 곧 밴드왜건 효과로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투표에서 조작된 민심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이 메커니즘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지난 정권의 불법 댓글부대 운영이 이를 증명한다. 이제 민간 차원의 댓글 장난과 여론조작의 먹이사슬에 대해서 우리는 끈질기게 추궁해야만 한다.
시대가 바뀌었을 뿐, 신성해야 할 국민들의 선택이 여전히 그렇게 저열한 음모에 의해서 조작된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영향력이 막강해진 인터넷 공간의 또 다른 여론주도 권력이 더러운 거래에 혹하는 한 이 나라 민주주의에는 희망이 없다. 우여곡절 속에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발전시켜온 현대 민주주의의 결실들이 고작 교졸한 인터넷 여론조작의 산물이라면 참기 어려운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드루킹’ 사건을 보면서 ‘빙산의 일각’을 상상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아직 안 들킨 수많은 드루킹들이 어둠 속에서 여론조작의 새로운 기법 개발에 몰두하고 있을 것을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 댓글을 조작하는 세력을 알면서도 댓글의 정량평가만을 통해 뉴스밸류를 마구 매긴 포털의 몰상식 또한 철저히 따져봐야 할 병폐다.
‘드루킹 사태’는 대한민국 정치권과 언론계는 물론, 나아가 국민 전체를 바보로 만든 엄청난 대사건이다. 드루킹은 청와대가 자신의 인사 청탁을 받아주지 않자 서슴없이 칼끝을 정반대로 겨누어 찔렀다. 여론조작에 확신이 없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행동이다. 전례없는 한반도 평화무드가 ‘드루킹’사건을 순식간에 망각의 늪으로 밀어 넣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냥 묻어놓고 갈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드루킹들이 여전히 암약하고 있을 여론시장의 음험한 뒷골목은 오늘 정말 괜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