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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속삭임

등록일 2018-07-02 21:26 게재일 2018-07-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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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지난 정권의)결정에 중대한 어떤 문제나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기존 입장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 정치인들의 말은 더러 조건에 찍힌 방점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영남권 최대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논란에 대한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의 발언이 수상하다.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언중유골(言中有骨)이 역력하다.

민주당 소속인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광역단체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테스크포스(TF) 구성을 결정했다.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 PK(부산경남) 지역의 광역단체장 당선자들이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겉으로는 지난 6.13 지방선거 공약 재확인 차원이지만 이 문제는 결코 그런 수준에서 설계된 간단한 정치적 액션이 아니다. ‘가덕도 신공항’ 공론화는 지방선거 결과 빈사상태에 빠진 영남지역의 보수정당을 아예 확인 사살하겠다는 의지가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선전포고다. 문재인정권이 TK(대구·경북)를 버리겠다는 심산이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없다고 낙관하는 것은 심각한 오판이다. 지금처럼 PK지역에서 한껏 목소리를 키우면 일단 정치적 이슈가 되어 국민들의 첨예한 주목거리가 된다.

PK지역에 떠돌고 있는 풍문 안에 논란을 단박에 잠재울 마스터키가 있다. 일단 만병통치인 적폐청산 차원에서, 박근혜정부 시절 진행됐던 동남권 신공항 심사과정을 조사할 위원회를 만든다. 그 위원회가 당시 친박 실세들이 ‘VIP의 뜻’을 앞세워 심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김해공항을 확장하고 대구공항과 K2 공군기지를 합친 ‘대구통합공항’을 이전하는 것으로 결론을 유도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 그만이다.

이미 여권 내에는 당시 몇몇 친박 인사들이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확인했다는 말이 굴러다닌다는 보도도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도 신공항과 관련해 “논의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문제 제기를 한 만큼 들여다보겠다”는 야릇한 대답을 내놓고 있다. 과연 권영진 대구시장이나, 이철우 경북지사, 지역출신 의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어설픈 반발 정도로 막아낼 수 있는 쓰나미일까. 아무래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읽힌다.

민주당은 이미 TK지역에 의미 있는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결론 도출과정을 ‘적폐’로 몰아 때리면, 문재인정권이 팥으로 메주를 쑨 대도 지지해줄 막강한 동력이 전국적으로 발동될 것이다. 그러면 곧바로 게임오버다. PK지역의 민주당은 콘크리트 지지기반을 착착 구축하게 될 것이고, 영남지역에서 보수정당은 설 땅이 더욱 좁아질 것이다. TK 입장에서 작금의 ‘가덕도 신공항’ 프로젝트 논란은 초대형 재난이다.

돌아보면 보수정권의 몰락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동남권 신공항’(또는 ‘영남권 신공항’)이슈를 놓고 분별없이 악화시킨 안방갈등에서 이미 잉태됐다고 해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 “지도를 놓고 보니 가덕도나 밀양이나 거기가 거긴데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던 미국 한 전문가의 말이 생각난다. 도무지 큰 눈으로 바라볼 줄도, 전략적으로 사고할 줄도 모른 채 소지역주의 선동에 기대어 망국적 정치를 해온 소인배들의 업보치고는 참으로 가혹하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이 이 문제를 정략의 계산기 안에서만 주무른다면, 부메랑이 되어 심각한 재앙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 높은 지지율에 취해 ‘악마’의 속삭임에 솔깃해하는 권력은 여지없이 위험하다. 오늘날 지리멸렬한 보수 정치인들이야 당장 대책이 없을 테지만, 국민들도 다 그렇게 문문할까. 권력의 귀를 간질여 오만방자를 부추기는 저 음흉한 ‘악마’의 혀를 경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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