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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취 과속스캔들(?)

등록일 2018-07-09 21:00 게재일 2018-07-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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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지난 6일부터 이틀 간 평양에서 열린 북미 고위급회담의 뒷말이 수상하다.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는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소감과는 다르게 북한의 힐난이 살벌하다. 북한은 “미국 측은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악담 속에 담긴 주장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남북-북미정상회담의 성과와는 사뭇 딴판이라는 것이 문제다.

미국 내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핵을 폐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뿐’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돈단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테드 리우, 게리 코놀리 등 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에드 로이스 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6·12 북미정상회담의 비핵화 합의와 북한의 핵 포기 의사의 진정성 등에 대한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신호탄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남북교류 열풍이 뜨겁다. 정부는 북한과 SOC(사회간접자본)사업 등을 위한 사전작업에 분주하다. 남북 간 스포츠, 문화교류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들도 유행처럼 다양한 남북 공동사업을 앞다투어 기획하여 달려들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결과는 한반도 전쟁위협 제거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의혹들을 수두룩 남겼다. 아니나 다를까, 북미 간 후속 고위급회담 이후에 나온 북한의 말이 야릇하다. 북한은 “미국 측은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CVID’와 ‘(핵시설) 신고’, ‘(핵 폐기)검증’ 문제를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라고 성토하고 있다.

그렇다면, 판문점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들은 약속은 도대체 무엇이며, 트럼프 미 대통령은 또 무엇을 합의했는지 다시 물어야 할 판이다. 북한이 지금까지 한 것이라곤 용도를 다한 풍계리 핵 실험장 갱도입구 폭파 쇼 말고 뭐가 있나. 그런데도 우리는 크고 작은 한미군사훈련까지 중단했다. 북미정상회담으로 마치 북한의 핵무기가 금세 사라질 것 같던 온 국민의 기대는 한낱 무지개꿈이 됐다.

문 대통령의 대북행보에 연일 찬사를 쏟아내던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돌연 “정부가 지나친 남북 간 광폭운전을 하는 것 같다”고 지적해 궁금증을 사고 있다.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근식 교수는 “모두가 평화 분위기에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면서, 김정은의 진정성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북한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많이 만나고, 자주 만날수록 좋다. 정부여당의 주장처럼 그것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내려놓고 정상적인 국가로서 국제사회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속절없는 ‘평화’타령에 취하여 과속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위험하다.

정말 심각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무장해제’ 심리다. 국민 중 89%가 판문점회담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78%가 김정은을 믿을 수 있다고 답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현재 우리 군은 연합훈련 중단에 이어 자체 훈련도 스톱된 상황이란다. 첨단무기 개발도 멈췄고, 전방 진지공사까지 스톱됐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무엇 때문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무장해제를 서둘러야 하는가.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이기고, 재선에 성공한들 우리에게 그게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 마음대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헐값에 팔아넘기는가. 북한의 저의를 우려하는 합리적인 의심마저도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 때리는 이 ‘평화’ 만취 광풍 속에서 참다운 우국(憂國)마저 빛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래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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