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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보수를 ‘통째로’ 넘기시렵니까?

잘된 문학작품이나 영화·드라마·연극에는 반드시 명품 악역이 있다. 기억에 남는 악역배우 중 으뜸은 역시 1992년에 개봉된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인육을 먹는 연쇄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를 실감나게 연기해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앤서니 홉킨스(Anthony Hopkins)다. 이 영화에서 홉킨스는 도저히 잊히지 않을 소름끼치는 연기를 펼친다. 인상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만들어가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젝트는 아직은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모험의 영역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그리고 온 세계가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보편적인 정서임에는 틀림없다.자유한국당은 국정농단 논란 끝에 벌어진 치욕의 대통령탄핵 사태로 정권을 잃은 정당이다. 지난해 5월에 조기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정권을 넘겨준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보수세력의 대표를 자임하고 있다. 한국당이 정부여당의 건전한 견제세력으로서 완강하게 버텨주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제1야당 한국당이 진정성 있는 논리로 집권세력의 과속에 적절히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것은 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리는 소중한 역할이다. 북한을 상대하는 문재인정권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야당의 이성적인 우려와 비판이 협상전략의 지렛대로 작용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미북대화가 예정돼 있는 상태에서 남북대화가 열렸다. 6월에는 각 정당들이 온 힘을 다해 승부를 겨뤄야 할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이 나라의 정당들이 국가적 현실에 대해서, 그 해법을 위해 어떤 혜안을 갖고 있는지 지켜보는 중이다. 그러나 최근 자유한국당의 움직임을 보면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얼마 전 자유한국당은 6.13 지방선거 슬로건을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로 결정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슬로건은 한국당이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보여주는 패착이다. ‘적폐청산’ 광풍에 휘둘리면서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처지를 감안하면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정치적 감각의 촉수를 보편적인 국민정서에 깊이 뿌리박지 못하고 극단지지층의 반응에 세뇌되기 시작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다. 무엇보다도 ‘나라를 통째로…’라는 슬로건은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실패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섣부르다. 이 슬로건은 ‘반통일 냉전세력’ 같은 부정적 이미지만 잔뜩 풍기고 있다.단언하건대, 이 나라의 건강한 보수 민심은 결코 이렇지 않다. 보수민심의 우려는 현재 문재인정권이 추진해가고 있는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에 위험 요인들이 많으니 섣불리 낙관하여 기만당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이다. 판문점 선언을 ‘위장평화 쇼’라고 물아붙인 홍준표 대표의 촌평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지방선거 보수후보들의 앞길이 캄캄하다.정부여당이 잘못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실책들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올바른 대안을 내놓는 건강한 정책야당이 절실하다. 건듯하면 장외로 뛰고, 살찬 비난만 양산해내던 지난 날의 야당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정치로 도대체 무슨 미래를 개척할 것인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자투리땅에 스스로 갇힌 편협한 야당 모습이 한심하다.국가적 이슈에 대한 한국당의 단세포적 대응은 옳지 않다. 훨씬 더 성숙하고 차원 높은 정치를 펼쳐야 한다. 나라를 위한 일에도 건강한 악역이 필요하다. 한 맺힌 원귀들처럼 다짜고짜 물어뜯기만 하는 악역으로서는 민심을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에는 결코 가벼운 흥분이 없다. 이토록 경박한 모습으로 보수를 ‘통째로’ 넘길 작정인가. 참된 보수민심의 비명이 정말 안 들리는가.

2018-04-30

‘파리’도 안 된다

▲ 안재휘논설위원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경남도지사 후보)이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 여론조작 의혹 사건이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명 ‘드루킹’ 사건이라고 지칭되는 이 논란에 대해 여당은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라며 차단작전에 들어간 모양새다. 그러나 야당과 국민들의 의문은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다. 거의 매일이다 싶게 새로운 의혹들이 불거지고, 청와대는 물론 더불어민주당이 내심 곤혹스러워하는 형국이다. 당사자인 김경수 의원의 말이 수시로 바뀌는 것도 문제지만, 이 사태의 핵심은 경찰과 검찰의 태도가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최근의 이슈 중 하나인 ‘검경 수사권 독립’ 문제와 맞물리면서 논란은 날로 더욱 더 복잡해져가고 있다. 초동수사를 미적거리는 방식으로 연루자들에게 증거인멸의 시간을 충분히(?) 벌어준 듯한 경찰의 수사태도는 두고두고 민심을 흔들게 생겼다.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김경수 의원이 처음부터 적극 해명에 나섰으나 아귀가 안 맞는 앞뒤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 의원은 새로운 증거와 언론보도가 터질 적마다 마지못해 하나씩 인정하면서 꼬리를 자르는 대응책을 쓰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인상은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시점을 놓고 한 달 가까이 왔다갔다 하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의 기억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16일 “김씨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던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결국 나흘 만에 말을 완전히 바꾸었다. 경찰은 지난달 21일 김 씨를 체포하면서 사무실과 집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이 사건과 관련해 추가 압수수색을 한 것은 지난 11일 통화 내용에 대한 것이 전부다. 핵심 주범인 김 씨에 대한 대면조사도 지난달 25일 이후 기피하다가 비난여론이 들끓자 지난 17일에서야 했다.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대한민국이 다시 ‘경찰조차 믿을 수 없는 후진국’으로 추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재시절 그 수많은 오염된 경찰역사를 경험하고도 대명천지에 이런 이야기가 회자된다는 것은 수치 중에서도 수치다. 말도 안 되는 경찰의 수상한 태도와 검찰의 오불관언(吾不關焉) 자세가 ‘드루킹’ 논란을 폭발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이다.20일에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드루킹 김동원에게 수차례 기사주소(URL)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김 의원이 2016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텔레그램을 통해 드루킹에게 14건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10건은 URL이었다. 드루킹과 김 의원 보좌관 사이의 수상한 돈 거래까지 드러나 설왕설래가 커지고 있는 마당이다.청와대와 민주당의 해명처럼 이 논란의 핵심은 선거 때만 되면 철새처럼 몰려다니면서 과대 포장된 영향력을 미끼로 전리품을 노리는 정치브로커들의 더러운 행태일 가능성도 있다. 선거판에서야 돕겠다고 달려드는 부나비들을 어찌 내칠 것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이 문제를 이렇게 작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인터넷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범죄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논평이 귀에 딱 걸린다. 추 대표는 야당을 향해 “권력형 댓글조작과 드루킹을 동일시하는 것은 파리를 새라 하는 격”이라고 공격했다. 집권당 대표의 안이하거나 부적절한 인식이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선거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정행위는 그 어떤 것도 그냥 봐줘도 되는 ‘파리’가 될 수는 없다.인터넷의 위력을 활용하는 것이 만능이 된 세상에서 댓글조작은 엄정하게 처단돼야 할 반국가적 범죄다. 이제 ‘인터넷실명제’ 같은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함께 생각해야 할 때다. 익명의 장막 뒤에서 노상방뇨하듯 벌이는 음험한 장난질은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맞다. ‘새’든 ‘파리’든 이런 범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파리’도 안 된다.

2018-04-23

‘내로남불’에 갇힌 ‘관행’

▲ 안재휘논설위원‘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제목의 개그가 있었다. 2004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SBS가 방영한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의 한 코너였다. 영어강사 컨셉의 미친소가 영어문장을 엉터리로 해석하면서 온갖 견강부회(牽强附會)의 궤변을 들이대며 우기고 잡아뗀다. ‘그때그때 달라요’는 일관된 원칙 없이 상황과 입장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차원에서 ‘내로남불’과 일맥상통한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에 대한 정치적 논란 와중에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김 원장이 스스로 의혹에 대한 답변으로 내놓은 ‘관행’이라는 단어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그를 임명한 청와대에서도 똑같은 단어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관련 서면 메시지를 통해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이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적어도 새로운 도덕성을 잣대로 온 나라를 들쑤시며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여당 쪽에서 낙마 위기에 처한 자파 인재를 지키기 위해 ‘관행’이라는 용어를 들먹거리는 것은 정말 아니지 싶다. 온갖 기관단체에 위원회를 만들고 쓰레기통을 뒤집어엎어 부지기수의 사람들을 망신주고 있는 정권이 써도 되는 방패는 결코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적폐청산 대상이 된 다수의 목구멍에 걸려있는 항변 제목이 바로 ‘관행’인 까닭이다. 관행(慣行)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 또는 관례에 따라서 함’이라고 돼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국민들의 눈에 일부분 치졸한 ‘정치보복’으로 비치는 ‘적폐청산’ 드라이브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아프지만 필요한 수술일지 모른다는 용허의 공간을 얻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정권주체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이르러서 ‘관행’을 방패막이로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정부여당의 ‘관행’ 운운을 일갈하고 나선 조배숙 민주평화당 대표의 비판이 눈길을 끈다. 그는 “김 원장의 외유가 관행이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활비를 가져다 쓴 것도 관행이었다”고 일갈했다. ‘관행’이 적폐청산의 제척사유가 되면 오늘날 새로운 윤리기준과 법조항을 들이대며 발라낸 과거의 허물들 중 대다수가 억울한 게 된다. 죄형법정주의의 파생원칙 중 하나로 ‘형법불소급의 원칙’ 또는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법률은 행위 시의 법률을 적용하고, 사후입법(事後立法)으로 소급해서 적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도덕의 잣대까지 반드시 이와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정이나 정치에서는 범법이나 탈윤리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 원칙은 큰 영향력을 미친다. 김기식 원장 문제를 다루면서 정부여당이 ‘관행’을 고리로 물귀신작전을 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의원들이 국감기관의 예산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실을 반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본질을 유치하게 왜곡하는 수법일 따름, 궁여지책에도 못 미친다. 그렇게 해외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들 모두가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 말이다.국민의 눈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 1호가 국민들의 눈높이를 더 높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패거리정치의 자가당착에 대해서 국민들이 드디어 눈을 조금씩 뜨고 있다. 맹목적 관습 속에 성역처럼 온존하던 부조리나, ‘내로남불’의 논리에 갇힌 ‘관행’을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 국민 눈높이는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율에 반비례하지 않는다. 스스로 투철하지 못한 윤리의식으로 권력을 누리는 행위의 불합리를 더 이상 참아 넘길 민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견강부회의 억지개그에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이제 ‘그때그때 달라도 되는’기준을 용인하던 시절은 갔다.

2018-04-16

‘쓰레기통’ 속의 정치학

▲ 안재휘 논설윈원호세프(Rousseff)는 2010년에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돼 ‘빈곤퇴치'를 내세운 좌파정권을 이어갔다. 그녀는 그러나 2014년 재선 당시 경제적자를 숨기기 위해 국가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2016년 8월31일 브라질 상원의회에서 탄핵되고 만다. 그런데 최근 그녀의 정치적 스승인 노동자 출신 룰라(Lula) 전 대통령도 재임시절 거액의 아파트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세계적인 충격이다. 구두닦이 소년, 철강 노동자 출신인 룰라 전 대통령은 좌파 노동자당(PT)을 이끌며 2002년 대선에서 승리, 브라질 사상 첫 좌파정권을 탄생시켰다. 과감한 중도 실용노선을 채택,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경제를 회생시키며 연임에 성공했다. 2010년 말 퇴임 당시 지지율이 90%에 육박했던 브라질의 영웅이다. 그는 호세프를 키우고 밀어서 정권재창출에 성공했었다.사실상 중남미 전체가 초대형 뇌물사건에 휩싸여 있다. 세계적인 건설사에 연결된 ‘오데브레히트 스캔들’이라는 초대형 비리의혹에 브라질에서는 3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페루에서는 4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연루됐다. 콜롬비아에서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까지 뇌물을 받았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무려 168명이 구속되고 3조7천700억 환수가 결정됐다고 한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잔인한 4월에 상상조차 못하고 살았을 참담한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비선실세’와 함께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유로 헌정사상 처음 파면된 박 전 대통령에게 1심에서 징역 24년의 중형과 벌금 180억 원을 선고했다.재판부의 중형선고에 대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반응이 의미심장하다. 홍 대표는 법원선고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 1원 받지 않고 친한 지인에게 국정 조언을 부탁하고 도와준 죄로 파면되고 (대통령이) 징역 24년 가는 세상”이라고 밝혔다. 홍 대표는 이어서 “자기들은 어떻게 국정수행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며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도 했다.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들이 잇따라 영어(囹圄)의 몸이 된 현실은 자연스럽게 최근 정치권의 핫이슈인 ‘개헌론’과 맞물린다. 전직 대통령들의 사법처리를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정치권은 개헌론 출발선상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맞다.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이름에 걸맞는 획기적 변화가 있어야 대통령 국정농단을 영구히 끝낼 수 있다.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어차피 관행과 욕망의 포로들이니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와 풍토를 그냥 둔 채 대통령 4년 연임제 따위의 장치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논의의 핵심을 비켜가서는 안 된다. 4년 중임제가 선(善)이고 책임총리제가 악(惡)이라는 독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말은 백번 옳다.중국 공산당의 아버지 마오쩌둥(毛澤東)은 1927년 난창봉기 실패 후 “모든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군권(軍權)이 권력창출의 핵심이던 암울한 시절에나 공감을 얻던 이 말은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권력은 국민들의 투표로부터 나온다”는 말로 대체됐다.그러나 작금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사태들을 지켜보노라면 “권력은 쓰레기통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권력들은 정적의 쓰레기통 뒤집어엎는 일에만 온통 열중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인간의 삶이 어차피 쓰레기를 만드는 일에 불과할 터이니, 어쩌면 이 정의(定義)는 오래도록 유효할지 모른다. 브라질의 룰라와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체포영장을 발부한 사법당국을 향해 목청껏 ‘음모론’을 외치고 있다.

2018-04-08

`전략공천`과 `마약(痲藥)`

▲ 안재휘 논설위원자유한국당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고 매진해도 시원찮을 시점에 악재가 겹치고 있다. 인재영입부터 난산 일색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번 게임에 `한국당` 간판으로는 승산이 높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겠지만, 거론되는 대다수의 인재들마다 차례로 손사래를 친다. 그런 한편으로 불거지는 `사천(私薦)` 논란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국당의 지리멸렬은 물론 전 정권, 전전 정권을 감당했던 정당으로서 정권재창출은 커녕 국정농단으로 탄핵까지 당하고 만 원죄의 여파일 것이다. 무려 2년이 가깝도록 무기력하게 폭로와 원망과 타도의 외침에 포위돼 살았으니 무슨 여력이 있을 것인가. 시각에 따라서는,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이만큼 형체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봐줘야 할 지도 모른다.문제는 현재의 한국당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느냐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오늘날 자유한국당으로부터 9년 동안이나 국정을 책임졌던 정당이라는 정치력의 두께를 인식하지 못한다. 치열한 반성을 바탕으로 나라의 미래를 위한 설계도를 장만해 내놓는 능력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몇 조각 남지도 않은 권력의 빵부스러기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앙앙불락하는 볼썽사나운 이미지만 부각되고 있다.대한민국 정치의 첫 번째 병폐는 인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관성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인물이 떠오르면 우르르 따라다니며 되지도 않는 침소봉대와 신화조작이나 일삼는다. 현실성 있는 정책능력이 배양되기는커녕 아귀조차 맞지 않는 하루살이식 당일치기 궤변술만 발달한다. 결국 과대평가된 리더의 허약한 실체가 드러나면 하루아침에 모두 망하고 마는 구조다.제대로 된 사상이 있고 철학이 뒷받침되는 정치를 본 적이 없다. 우상화된 한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만이 미덕이 되는 전근대적인 정치역학이 작동되는 게 현실이다. 백년을 내다보아도 미더운 튼실한 정책정당의 탄생은 오늘도 내일도 연목구어(緣木求魚)다.우리 정치의 두 번째 고질병은 권력을 잡거나 유지하는 동력을 오로지 상대방의 에러(Error)에서만 찾아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설득력 있는 정책자랑에는 형편없이 서툴고, 교졸한 비난에는 능수능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당들은 상대방의 발목을 잡거나 물어뜯는 일에만 열중한다. 정적을 앙칼지게 물어뜯는 정치인에게 `대안`을 물으면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는 경우가 없다.자유한국당이 제대로 된 야당으로서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근본원인은 한국정치의 고질적 모순에 맞닿아 있다. 한국당 정치인들은 여전히 인물중심의 구시대적 패턴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 경직된 정치의식의 포로들이다. 정부여당이 세상을 뒤집어 놓을 큰 잘못이나 저지르기를 학수고대하는 찌질한 야당으로는 안 된다. 집권세력을 향해 조목조목 따지고 들며 꼼짝 못할 정책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희생양을 원하는 군중심리를 하염없이 자극하는 방법으로 민심을 움켜쥐고 가는 진보 집권세력이 이제 출구를 어떻게 찾아갈지 걱정스러운 시점이다. 꾸준한 국민지지를 바탕으로 용의주도하게 칼춤을 추는 정권 앞에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참으로 요령부득이다. 홍준표 대표의 시끄러운 리더십도, 좀처럼 시대정신을 못 깨닫는 중진핵심들도 딱하긴 마찬가지다.불과 2년 전 총선에서 `전략공천`을 빙자한 공천학살극을 둘러싼 갈등이 초유의 대통령탄핵 사태로까지 발전해갔던 일을 상기해야 한다. 그 때 `상향식 공천`을 부르대던 사람들은 지금 무슨 경천동지할 궤변을 준비하고 있기에 꿀 먹은 벙어리들인가. 선거에서 전략공천은 마약(痲藥)과 같은 존재다. 잘 쓰면 분명히 좋은 약이다. 하지만 잘 쓰기가 정말 쉽지가 않다. 한국당은 지금 민주주의를 진화시키고 있는가. 떠나간 민심을 되찾을 가망이 과연 있기는 한가 거듭 묻는다.

2018-04-02

모럴(Morale) 체인지

▲ 안재휘 논설위원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냥 사람이 바뀌는 일이야 이 땅에 민주주의가 시작된 이래 늘 있어왔던 일이니 특별할 게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지금 빠른 속도로 바뀌는 사회적 현상은 많이 다르다. 온갖 뉴스를 장식하는 이 질풍노도 의 변화는 일단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국정농단으로 엎어진 권력을 딛고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의 인위적인 `적폐청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연발생적인 `#미투 운동`이다. 날이 새면 한 사람씩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일이 일상화됐다. 가히 우상파괴의 계절이 도래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대의 우상들이 모조리 위태롭다. 역사가 오늘의 이 소용돌이를 어떻게 귀결해낼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의 가치관과 현재의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음은 틀림없다.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정치권은 세상이 이렇게까지 험궂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새 정권이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할 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장구한 세월 정치권에 통용되던 일종의 불문율이 현저히 지켜질 것이라고 방심했을 것이다.그런데 아니었다. 역대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국민지지율이 높은 문 대통령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위해 열쇠를 들지 않았다. 놀랍게도 망치를 들고 상자를 봉하고 있는 자물통을 두드려 부쉈다. 보혁(保革)을 가리지 않고 그 동안의 정권들이 다들 피해왔던 파괴적인 접근법을 쓴 것이다. 상자 안의 비밀들을 선택적으로 꺼내들고 칼을 휘두르고 있다.종전까지, 그러니까 박근혜 시대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여기던 일들이 이제는 용서가 되지 않는 새로운 모럴(Morale) 혁명시대가 열렸다. 모럴은 성질·습관·생활 태도나 사회의 관습·풍속 등을 꿰뚫는 근본적인 인간의 존재 방식을 말한다. 이제 `전에는 괜찮았는데`라는 마음으로 살았다가는 그야말로 개망신을 당하기 십상인 시절이 왔다.`#미투 운동`은 이런 변화를 더욱 극명하게 대변한다. 미투 열풍을 추동하는 힘은 매우 복잡하다. 여성의 활동영역 확장, 남성우월주의의 모순과 여성인권에 대한 자각, 여성의 경제력 향상과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육체적 파워가 아닌 지능이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가 오면서 성차별의 이유 또한 모조리 사라졌다. 여성들이, 또는 약자들이 부조리와 악습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생존문제였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참고 견뎌야 할 모순들이 엄존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절박한 구조를 도외시하고 참고 살았던 날들을 탓하는 일은 무지의 소치다. 가해자들의 일탈은 이미 오래전 상식을 뛰어넘었다.이명박 대통령이 결국 구속 수감됐다. 역대 대통령 두 명이 동시에 구치소에 갇히는 또 한 번의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 역사는 철저하게 `승자의 기록`이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 예외란 정녕 없는 것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계에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이들이 저격용 고성능 총에 맞아 영어의 몸이 되거나 하루아침에 목을 맨다.적폐청산과 `#미투` 열풍은 같은 듯 사뭇 다르다. 적폐청산은 칼을 휘두르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보이는) 손이 있다는 것이고, `#미투`는 일단 그 손이 까마득 짐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폐청산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혁명은 칼을 휘두른 손도 예외로 두지 않게 됐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하, 그렇게 열면 되는구나 하고 세상이 다 알아버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MB 구속에 즈음한 문재인 대통령의 심중은 “삼가고 또 삼가겠다. 스스로에게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겠다는 다짐을 깊게 새긴다”였다. 부디 오늘날의 이 소란들이 치졸한 `보복정치`의 증좌가 되어 `복수혈전`의 빌미가 되지 않기를, 또 다른 차원으로 가는 모럴 진화의 증거로 남기를 간절히 빈다.

2018-03-26

`개헌 맛집` 찾기

▲ 안재휘 논설위원맛집으로 소문이 난 음식점의 공통적인 특징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장시간 식당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맛집의 음식이 뭇 사람들의 기호를 사로잡을 만큼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저 끼니를 잇기 위해서 아무거나 먹던 시대에서 일일이 `맛`과 `영양`을 견주어볼 정도로 품질을 중히 여기는 소비시대가 깊어졌다. 국민들의 첨예한 관심사인 `개헌`을 놓고 여야 정당들의 지향점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개헌안을 준비해온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자문특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부의 개헌안 자문안을 보고했다. 이어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개헌안 핵심이 나오면서 청와대와 한국당 간 `개헌 주도권` 싸움에 불이 붙었다. 6월 개헌투표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에 더해 내용에 대한 갑론을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자문특위가 보고한 개헌안 자문안은 헌법전문에 5·18, 부마항쟁, 6·10 등을 명기하도록 하고 있다.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은 임기4년 연임제로 모아졌다. 대통령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한편, 국회의원 소환제 등 직접민주주의를 한층 강화키로 했다. 총리 선출방식은 현행 유지(대통령 지명 후 국회 동의)안과 국회에 추천권을 넘기는 안(국회 추천 후 대통령 임명) 두 가지를 복수안으로 제시했다. 자유한국당은 정부형태로 국회가 추천하는 책임 총리제를 기반으로 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세웠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통일·외교·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국정운영 등 내치는 총리에게 맡기자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대통령의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대폭 나누고, 총리 선출권을 국회가 갖는 방식으로 과다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의미다.개헌과 관련한 여야 정치권의 논쟁에서 `시기`의 문제에서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입지가 좁다. 지난해 5월 대선에서 대통령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올 6월 지방선거와 개헌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약속을 했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말을 싹 바꿔 지방선거 개헌 찬반 투표를 `곁다리 투표`라며 반대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미 개헌 국민투표 동시실시가 한국당에 불리할 것이라는 셈법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다 꿰고 있다.하지만 `내용`에 관해서라면 상황이 다르다. 정부여당이 내놓은 개헌안의 설계방향을 보면 야당일 때의 주장에서 달라진 부분이 상당히 읽힌다. 그들이 야당일 적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늘 앞세웠는데, 이제 그 표현이 사라지고 있다.지지난해부터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 논란에서 시작된 `제왕적 대통령 권한` 분산 캐치프레이즈는 이제 야당 손으로 넘어온 셈이다. 권력의 칼자루를 누가 소유했느냐에 따라서 `개헌`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는 현상은 아직도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천박한지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현상이다.이제 숨겨둔 개헌안 `패`를 다 내보여야 할 시점이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누가 진짜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개헌안을 준비해왔는지를 다 밝혀야 할 시간이다. 맛을 보고 평가하고, 줄을 서는 일은 국민들의 몫이다. 허위 과장광고를 일삼아온 게 그 동안 정치권의 일그러진 모습이긴 하지만, 이번엘랑 결코 속일 생각을 말아야 한다. 국민들의 입맛은 훨씬 더 업그레이드되고 까다로워졌다.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 하나는 `지방분권 개헌`의 잣대다. 어느 정치세력이 어떤 방식으로 지방분권 의지를 개헌안에 오롯이 담아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판정 포인트가 될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에 대해 이상한 소리를 해온 자유한국당 못지않게 정부여당의 개헌 골격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지방의 민심을 홀려 표나 훔칠 흑심에 사탕발림으로 내놓는 분권개헌안으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이제 온 국민을 감동시킬 개헌 맛집을 찾아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2018-03-19

판문점의 `봄`

▲ 안재휘 논설위원2018년 봄, 드디어 `한반도 평화`라는 세기적 난제의 해법이 마련될 것인가. 아직 봄을 즐기기에는 이른 쌀쌀한 날씨임에도 도처에 춘풍이 만연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의 요인들이 오고가더니 `대화`의 문이 활짝 열리려고 하고 있다. 4월말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5월에는 그 동안 도무지 길이 안 보이던 북미정상회담도 열릴 모양이다. 김정은이 품을 한 번 열어젖히자 여기저기에서 찬탄이 쏟아지는 형국이다.북한은 온 세계가 줄곧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장구한 세월 악착같이 핵무기 제조와 미사일 개발에 몰두해왔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정권은 북한주민들이 굶어죽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핵 강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내달려왔다. 급기야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완성했다며 괌 기지를 까느니,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느니 협박을 일삼아 위기를 고조시켜온 끝자락이다.진보정당 소속이라 상대적으로 남북대화 시도에 유리한 입장인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접촉의 명분으로 삼아 접근했다. 남북 최고지도자들의 친서가 오가는 국면에서 상상을 넘어서는 김정은의 돌발적 결단이 나왔다. `비핵화` 용의가 있다는 의중을 밝힌 것이 핵심 변곡점이다. 남한을 향해 쏘지 않겠다느니, 한미 연합훈련을 용인한다느니, 직통전화를 개설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이야기들은 사실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담보하는 것은 오로지 북한이 핵무기를 정직하게 완전하게 버릴 것인가 여부에 달려 있다. 그들이 원하는 반대급부의 수준과 속도가 한미와 국제사회가 용인할 수준이라면 못 받아줄 이유란 있지 않을 것이다.오늘날 안보정세의 훈풍은 북한의 비핵화 성취와 한반도 영구평화 정착으로 귀결되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경사다. 잘만 되면 문 대통령의 공적이 `노벨 평화상 감`이라는 일각의 감개무량도 굳이 부정할 이유가 없다. 다만, 실증적으로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현실 속에서 부풀려지는 과도한 낙관은 걱정거리다. 한 매듭씩 차근차근, 그러나 속도감 있게 풀어나가야 될 시점이다.`북한 비핵화`에 대한 동상이몽(同床異夢)이 가장 큰 난제다. 미국은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북미대화의 `들어가는 문`으로 여긴다. 하지만, 북한은 모든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 거론할 수 있는 `나가는 문`으로 거머쥐고 있다. 이 입구와 출구의 딜레마에는 과거의 실패경험이 더께로 쌓아놓은 완고한 `불신`이 작용한다. 만약 이 상반된 관점들이 한 매듭도 풀리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기대는 삽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역사적 경험이 빚어놓은 인식의 차이점을 상호 인정하면서 신뢰를 구축할 과단성 있는 조치들을 단행하는 것이 성공을 담보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ICBM 포기만을 전제조건으로 북한과 모종의 공감대를 이루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북핵이 인정되는 수준에서 미국이 한국의 방위에 대해서 느슨해지는 것은 우리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환경변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는 핵미사일 완성을 위해서 시간을 벌기위한 북한의 꾐수에 한미가 모개로 넘어가는 경우다. 북한이 핵동결, 핵사찰 수용, 기존 핵무기 폐기의 과정을 경제지원 등 반대급부와 맞걸어놓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극비리에 핵개발에 집중한다면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생트집이라도 내세워서 `지금까지 했던 말 몽땅 무효`를 외칠 수 있는 게 우리가 익히 아는 저들의 속성인 까닭이다.남북정상회담의 장소로 결정된 판문점은 아주 특별한 곳이다. 분단의 아픔과 민족상잔의 비극을 상징하는 그곳에서 남북정상, 나아가 북미정상이 만나 핵 문제를 타결하고 통일의 첫 단추를 꿸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판문점의 `봄`, 그 향기로운 평화의 `봄`을 고대한다.

2018-03-12

김정은이 서울에 올 차례다

▲ 안재휘 논설위원김구(金九) 선생은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나의 정치 이념은 한 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라면서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고 못 박는다. 이어서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한 개인 또는 한 계급에서 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독재와 관련해서는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라면서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라고 규정했다. 오늘날 한반도의 정세를 돌아보면 선생의 예지는 빛나고, 우려가 북한 땅에서 현실이 된 상황이 한없이 슬프다.`특사` 정치가 무르익고 있다.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이 불러온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앞에서 남북이 일단 대화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발 벗고 나선 일이 나쁠 이유는 없다. 다만 진정한 평화를 구축할 의지도 없으면서 단지 시간을 끌어볼 심산으로 북한이 대화공세를 펼치고 있으리라는 의혹이 사실로 귀결될 경우에 일어날 파국은 예측을 불허한다.평창 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꾸리는 일로 시끌벅적했고, 올림픽 개막과 폐막식 참가를 핑계로 현송일, 김여정, 김영남, 김영철 등 북한의 요인(要人)들이 오가면서 어질더분한 논란이 일었다.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손을 대야 한다. 가만히 둔다고 저절로 풀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잘못 건드려서 사달이 날까 걱정되는 측면은 있다.올림픽 기간 중 이뤄진 북한의 방남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파견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 윤곽이 나왔다.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투톱 형식으로 방북할 예정이란다. 전례 없이 장관급 인사가 두 명씩이나 특사로 파견되는 것을 보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어떻게든 한반도 평화의 매듭을 풀어보려는 문재인정부의 강한 의지가 읽힌다.문 대통령이 서훈, 정의용 두 사람을 특사로 지명한 일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뒤따른다. 서훈 원장은 경험이 풍부한 대북전략통이라는 점이 거론된다. 정의용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백악관과 공유하는 핵심적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예측이 따라붙었다. 남북 특사 파견은 때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적도 있지만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2007년 10월 4일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 등 굵직한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한반도에서 영구적인 평화의 틀이 마련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위기국면이 더욱 첨예해진 상황에서 가장 효력을 담보할 수 있는 진전은 서울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다. 평양을 방문하는 특사들이 남북정상회담을 조율한다면 `김정은 방남`을 요청하는 것이 옳다. 이미 두 차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이 평양에 갔으니 이번에는 김정은이 서울에 오는 것이 순리다. 지난 2000년 9월 대남특사로 서울에 온 김용순 당시 당 중앙위 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을 합의한 바도 있으니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김정은의 서울 방문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진정성을 담보하는 최고 수준의 증명이다. 불순한 목적으로 지금 위장평화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면 그런 용단으로 입증하는 것이 맞다. 1948년 4월 19일 “38선을 베고 죽을망정 가야 된다”는 낭만적인 메시지를 남기며 경교장 뒷담을 넘어 방북 길에 나선 백범 김구는 그러나 김일성에게 철저히 이용당하는 뼈아픈 실책을 남기고 말았다. 그 옛날 백범은 자서전을 쓰면서 `자유`가 사라진 오늘날 북한의 혹독한 `독재`를 예감했을까. 새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2018-03-05

`김영철` 딜레마

▲ 안재휘 논설위원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Othello)`는 섣부른 의심으로 아내를 살해하는 한 장군의 이야기다. 부관 자리를 카시오에게 빼앗긴 이아고는 앙심을 품고 아내 에밀리아로 하여금 흑인 용병대장 오셀로가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에게 준 귀한 손수건을 훔쳐오게 한다. 이아고는 그 손수건을 카시오의 방에 떨어뜨려 거짓 밀애증거를 만들어놓고 오셀로를 자극한다. 오셀로는 자기가 준 손수건이 카시오의 방에서 발견된 이유를 끝내 대지 못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그만 목 졸라 죽이고 만다. 에밀리아의 뒤늦은 고백으로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오셀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이아고도 잔혹한 처형을 받게 된다. 손수건을 도둑맞은 피해자 데스데모나에게 입증책임을 지운 것이 오셀로의 치명적인 오류였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방남(訪南)은 대한민국의 민심을 명중한 고약한 어뢰(魚雷) 꼴이다. 김영철의 방남은 지난 2010년 3월 26일 북한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침몰돼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희생된 천암함 사건을 다시 불러내어 나라를 흔들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지목돼온 김영철의 방문을 놓고 극한대결에 빠졌다.미국과 한국의 제재대상인 김영철의 방남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다. 한국당의 공세수위나 발언은 초강경 일변도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영철의 방문허가는 천안함 폭침에 동조하는 이적행위”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천막 의총을 열고 김영철 방남 저지를 위한 장외 투쟁을 시작했다.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위기의 수위를 낮추고 북미대화를 유도함으로써 나아가 `북핵 폐기` 성과를 이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정부여당으로서는 답답한 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큰 눈으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야당의 `초강경`을 야속해할 일만은 아니다. 얼마든지 대북협상에서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정부 당국의 태도는 문제다. 청와대와 통일부와 국정원이 짜 맞춘 듯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 책임자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그 동안 김영철을 도발총책으로 지목해왔던 국방부는 아예 `노코멘트`다. 천안함 전사자 유족들이 아직도 울고 있는데, 참 너무한다 싶다. 결국 천안함 폭침의 `북한 소행` 결론을 의심해온 진보진영의 속내가 드러난 셈이다.아쉽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부와 동맹국과 국제사회가 함께 내린 결론을 이렇게 뒤집는 일은 또 다른 나라망신이다. 정부여당은 처음부터 “김영철은 도발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지만, 북한이 대화 파트너로 내세운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양해해 달라”고 말했어야 맞다. `증거가 없다`는 말은 김영철을 제재대상에 넣은 한국과 미국이 잘못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광우병 파동`에서 우리는 소셜미디어의 범람과 맞물린 `탈 진실(Post truth)`의 덫에 걸린 현대사회의 병폐를 참혹하게 경험했다. 참이냐 거짓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마구 휘둘리는 중우정치(衆愚政治)에 깊숙이 빠졌다. 매사 진실인지 아닌지보다 내 편인가 아닌가부터 먼저 따지고 시작한다.천안함 폭침 논란도 그렇다. 집요하게 `북한소행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인사들은 `진실 추구`의 탈을 쓴 `신념의 노예`들이다.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과학의 탈을 쓴 고단수의 거짓말 기술자들인지는 이미 `광우병 파동`에서 생생하게 겪었다. 진작부터 교졸한 거짓말쟁이 이아고의 편을 들기로 작정한 그들은 무고한 데스데모나에게 카시오의 방에서 손수건이 발견된 이유를 대라고 끊임없이 추궁하고 있다. `김영철`이라는 이름의 어뢰 한 방에 무한 소요에 빠져 허우적대는 오늘의 허약한 대한민국이 안타깝다.

2018-02-26

`당파적 편견`의 유전자

▲ 안재휘 논설위원1592년 조선의 임진왜란 비극 이야기는 일본을 보고 온 통신사들의 엇갈린 보고에서 시작된다. 황윤길(黃允吉)은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침략을 예고했으나, 김성일(金誠一)은 “전혀 그런 조짐이 없다”고 반론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인상을 묻는 질문에도 황윤길은 “눈에 광채가 있고 담략이 남달라 보였다”고 말했지만 김성일은 “눈이 쥐와 같고 생김새는 원숭이 같으니 두려울 것이 못 된다”고 보고했다.후세의 사가(史家)들은 두 사람의 관점 차이를 당파의식의 발로로 해석한다. 황윤길은 정사였음에도 서인(西人)이어서 동인(東人)인 부사 김성일의 말이 달랐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당시 조정을 장악한 세력이 동인이었다는 정치환경이었다. 말하자면 엄중하게 `사실` 여부를 가려내야 할 `안보정보`를 놓고 엉뚱하게 파워게임을 벌였다는 뜻이어서 한심하고도 허탈한 역사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오늘날 한반도 `핵` 문제는 420여 년 전 임진왜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여차하면 지구멸망을 초래할지도 모를 `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리라는 끔찍한 예측마저 붙어 다닌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안위와 직결되는 치명적 난제로 비화돼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권과 국민들은 날이 갈수록 `당파적 편견`의 노예가 돼가고 있어서 이만저만 걱정거리가 아니다.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온 세계의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 진보정권이 들어선 이래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접근법이 사뭇 달라지면서 여야 정치권의 충돌 폭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문재인정권은 남북교류에서 `북한 비핵화`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보수야당은 비판적이다 못해 색깔론까지 동원하고 있는 형국이다. 기왕에 정권을 잡았으니, 얼마간은 정부여당이 하고 싶은 대로 두고 보는 게 미덕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그래서 그 설계도대로 안 될 적에 그때 비판하고 책임을 물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일반론적인 접근이다. 하지만 사안 자체가 국민안위와 직결되고, 나아가 국가존폐에 연결되는 만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반론의 요체다. 한 번쯤은 실패해도 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정부가 `평창올림픽 후 한미훈련 재개` 여부에 대해 답변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북한이 드디어 협상조건으로 `핵무기 개발`과 `한미연합훈련`을 등치시키는데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 세계를 줄곧 속이고 극비리에 지속해온 `북핵개발`의 특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북한은 안 하는 척하기만 하면 되고, `한미 군사훈련`은 정말로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핵 무력 완성`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저들의 속셈이 들어맞아가는 양상이라면 정말 큰일이다.진보민심은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북한은 남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절대 쏘지 않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믿음까지 보인다. 나아가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핵무기는 유익한 것`이라는 위험한 논리에도 더러 접근한다. 북한이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에 휘둘려 맹방 미국에 대한 모진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몰각(沒覺)이 문제다. 우리가 이 만큼 번영을 일궈내어 올림픽을 치를 만큼 중견국가로 발돋움한 것은 온전히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우방들과 잘 지낸 덕분이다. 특히 미국과의 군사동맹은 절대적인 울타리였다. 사사건건 색안경 너머로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에 골몰하는 이 수치스러운 `당파적 편견`의 유전자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임진왜란 전 일본을 일 년 동안이나 함께 보고도 딴 소리를 한 김성일보다 훨씬 더 어리석은 인물은 동인 정치꾼들의 `당파적 편견`에 휘둘려 온 백성들을 왜군(倭軍)에 짓밟히게 만든 선조(宣祖)였다.

2018-02-19

`유승민`의 길

▲ 안재휘 논설위원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0)가 되는 게임을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이라고 한다. `양극정치`의 올무에 단단히 걸린 우리 정치사(政治史)는 죽고살기 식 극한투쟁과 저급한 복수혈전이 반복되는 최악의 제로섬게임 역사다. 주야장천 흑백논리가 난무하고 유치한 청백전이 펼쳐진다. 승자독식(勝者獨食) 정치야말로 이념과잉의 폐해에 찌든 우리 정치의 치명적인 고질병이다. `중도정치`를 지향하는 또 하나의 정치실험이 펼쳐지고 있다. 중도신당 `바른미래당`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은 바른정당의 유승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다. 지난 2016년 총선 전 만들어진 국민의당은 다당제 흐름을 생성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만들어진 바른정당이 그런 기류를 가속화시켰다.우리 정치의 다당제 현상을 유럽 선진국에서 발전돼온, 시민여론의 다양성을 충실히 담아내는 정치제제로의 전환 징조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극한정쟁에 지친 국민들에게 일정부분 신선한 희망을 준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장미대선을 치르는 동안 전래적 폐해에 갇힌 허울뿐인 그 명분의 부실은 알몸을 드러냈다.지역정치의 타파와 `탈이념`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때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철수는 정계에 들어온 몇 년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호남정치의 볼모가 되어 있었다. 그 굴레를 벗어나는 일은 한동안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대표직`까지 내던지며 족쇄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몸부림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바른미래당`으로 가는 길목에 대들보로 서 있는 유승민의 존재는 결코 만만치 않은 함의를 지닌다. 때로 독특한 그의 행동양식을 오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정직한 `개혁` 마인드는 시대정신에 부합한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원내대표로서 외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고백이 그의 인생을 바꾼 일도 이제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읽어야 맞다.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새로운 정치지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미 중상을 입었다. 바른정당이 먼저 쪼개져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국민의당도 반으로 동강났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오랜 양극정치 세력의 인력(引力)은 아직도 가공할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을 함께 했던 다수의 정치인들이 다시 이념의 커튼 속으로 달아났다.안철수는 길을 정했다. 이제 `바른미래당`의 그림을 어떻게 그려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장 큰 짐이 유승민 앞에 놓였다. 기성 정치권은 한국정치사에서 명멸한 제3정당의 실패 망령을 끊임없이 덧씌우려 할 것이다. 제3지대를 한 뼘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지독한 이기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유승민은 아직 TK(대구경북) 민심으로부터의 담금질이 끝나지 않았다. 장구한 세월 `수구꼴통` 정서 속에 살아온 일부 민심은 여전히 그를 `배신자` 프레임에 가둬놓고 있다. 벌거벗겨져 황야에 내동댕이쳐진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계곡을 살아서 건너겠다”는 그의 약속은 “이 광야에서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는 안철수의 다짐만큼 절절하다.이제 그의 앞에 놓인 또 다른 길은 더 험준할 것이다. 유승민의 성패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낡은 이분법에 신물이 나 길을 잃은 민심을 담아내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나는 중도성향`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줄곧 50%를 넘나든다.역설적이게도 한국정치의 병폐 속에 답이 있다. 그 저열한 `제로섬게임` 풍토를 씻어내는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허구한 날 쓰레기통 엎어놓고 지지고 볶는 정치패턴부터 폐기처분해야 한다. 시대에 맞는 왕성한 소통의 리더십으로 향기로운 미래를 펼쳐내는 감동적인 중도실용의 `바른미래`를 개척할 책임이 오롯이 유승민의 두 어깨에 걸려 있다. 크게, 그리고 멀리 보고 다르게 해야 성공한다.

2018-02-12

`개헌정국`이 수상하다

▲ 안재휘 논설위원“뭐든지 다 말씀하세요. 여러분 말씀을 존중해서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코미디 프로에 나오는 말장난이 아니다. 요즘 야당 정가에서 굴러다니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의 이른바 `쇼통`을 비아냥대는 말이다. 여론을 듣는 척만 하고 사실상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리는 것은 `제왕적 통치`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권력행태다. 이게 결단코 지지난해부터 전국을 달구었던 `촛불민심`에 부합하는 정치행태는 아닐 것이다.문재인정권이 `개헌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여론전에 나섰다. 연초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개헌의 큰 줄기인 권력형태와 관련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내놓았다. 이것은 누가 봐도 집권당에 내린 강력한 가이드라인이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가 여당을 떠받치고 있는 정치역학 속에서 이 가이드라인은 벗어나서는 안 될 금줄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제 이 금줄 안에 꼼짝없이 갇힌 셈이다.예상대로 민주당이 내비친 개헌안 얼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담고 있다. 헌법 전문(前文)에는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시민혁명을 모두 넣기로 했단다. 경제민주화 조항은 권유조항에서 강제조항으로 바꿔 국가통제를 못 박겠다고 한다. 지방자치분권 확대를 위해 `지방정부`라는 표현을 개헌안에 담는단다.민주당은 이날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구절을 `민주적 기본질서`로 고친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민주당 대변인은 `자유`를 뺀 데 대해 “보다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했었다. 그러나, 불과 4시간 뒤 `대변인의 실수`라며 없던 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대들보 개념을 놓고 이런 소홀이라니, 국민들은 깊은 의심에 빠졌다.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균형발전 선포식에서 “중앙정부가 주도했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자치단체가 정책과 사업을 기획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지역발전을 학수고대하는 지역민들에게는 참으로 달콤한 말이다. 그러나 개헌정국과 맞물려서 보면 짚어봐야 할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지역민들이 소원하는 `지방분권형 개헌` 개념은 필연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혁신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갖는 무소불위의 권한은 중앙집권적 통치구조에 맞닿아 있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고작 헌법에 `지방정부`라는 단어 하나 넣자는 수준은 아니다.민주당이 내놓은 개헌안 얼개를 보면 과연 문재인정권이 개헌을 원하고 있는지 헛갈리게 한다. 아직 성격규정조차 끝나지 않은 `촛불시민혁명`을 굳이 헌법 전문에 넣자고 우기는 것은 과욕이거나 어깃장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넣었다 뺐다 해프닝을 벌이는 것을 `부주의`라고 변명하는 태도도 문제다. 지지율에 취한 오만방자가 아니라면 최소한 은연중 본심을 드러낸 애드벌룬일 가능성이 높다.자유한국당이 `지방분권 개헌`에 대해서 반심(叛心)을 보이는 일은 정말 유감이다.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일부 의원들의 `지방분권 개헌` 폄하발언은 명백한 작전미스다. 그러나 민주당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수하기 위해 실효성도 없는 `지방분권` 조항을 끼워 팔기 하는 수준의 `개헌`이라면 이 또한 심각한 문제다. 무구한 지역민심을 기득권 수호의 방패막이로 쓰려는 꿍꿍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다.결국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어떤 형태로 분산될 것이냐가 관건이다. 분산되는 권한이 대폭 지방정부의 자율권 확대로 연결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야 비로소 `지방분권 개헌` 지도는 완성된다. `시도지사가 참여하는 제2국무회의의 제도화`는 기대해볼만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뭐든지 다 말씀하세요. 여러분 말씀을 존중해서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는 범주에 머물러 있다면 더욱 그렇다. `개헌정국`이 수상하다.

2018-02-05

`확증편향` 또는 `침묵의 나선`

▲ 안재휘 논설위원민주국가에서 한 정치집단이 국민들에게 어필해 지지세를 확보하는 매개요소는 `콘텐츠(Contents)`와 `이미지(Image)` 두 가지다.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정책 콘텐츠가 우선하고, 미개한 나라일수록 이미지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정치인, 정당들이 여지없이 이미지 정치에만 목을 매는 현상을 보면 가늠이 되고도 남을 일이다. 지난해 비운의 탄핵을 당한 박근혜정부 실패의 으뜸원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불통(不通)`일 것이다. 기자들은 지독한 불통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모든 불통 현상이 정치인 박근혜의 고유한 캐릭터에서 기인된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였다. 홍보수석, 대변인, 춘추관장을 통해 출입 기자들이 제아무리 성화를 대도 대통령은 만나주지 않았다.보수 한나라당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고질병은 대통령의 의중과 조금만 다른 말을 해도 직격탄을 맞는 사건들이 형성한 `침묵의 나선(旋)`이다. 권력중심의 비위를 맞추려는 다수의 기류를 벗어날까 두려워서 용렬하게 침묵하는 무리들이 집권당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그 치명적인 틈새를 비집고, 진보는 `세월호`와 `최순실`이라는 기폭장치를 동원해 정권을 뒤집어엎었던 것이다.지난 해 하반기부터 나라에 큰 사건사고가 거듭되고 있다. 12월 3일 영흥도 앞바다에서 낚싯배가 유조선에 부딪쳐 15명이나 되는 인명피해가 났다. 12월 21일에는 제천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또 29명의 귀한 목숨이 희생됐다. 지난 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마는 무려 38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세월호 참사를 온통 `박근혜 책임`으로 몰아때리던 진보정권이 곤혹스러울 만도 한 참변들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공방이 가관이다. 야당은 문재인정부의 허물로 덧씌우느라고 바쁘다. 정부여당은 거듭되는 재난들의 원천적인 책임이 얼마 전까지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에 있다고 욱대긴다. 여야를 불문하고 모두 잘못을 고백하고 무릎을 꿇어도 시원찮을 판에 참 뻔뻔한 군상들이지 싶다.문재인정부의 주특기인 이미지 정치의 환영(幻影)을 비집고 서툰 콘텐츠들이 하나씩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탈(脫) 원전 선언, 최저임금 대폭 인상, 위안부 협상 이면합의 폭로, 국정원 기밀문서 열람, 편파 적폐청산 또는 정치보복 시비…. 새 정권 출범이후 벌어지는 논란들을 생성하는 진앙(震央)은 바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確證偏向)이다.사실상, 붕당정치의 지도자나 추종자는 모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의식의 노예들이다. 특히 팬덤(fandom·광신자)정치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신념 속에 갇혀서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 특성이 강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가치관을 벗어나는 그 어떤 논리도 사악한 궤변으로 치부한다.문재인정권 역시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침묵의 나선` 현상을 파생시키고 있다.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인사는 곧바로 `문빠`로 지칭되는 극렬지지패들에 의해 사이버공간에서 험악하게 `인간말종` 취급을 당한다. 안희정 충남지사마저 “이견을 제기할 권리”라는 바른말을 했다가 끔찍한 모다깃매를 맞고 입을 닫았다.한국정치의 선진화는 어떻게 하면 정치인이나 정당들이 이미지 장난질을 버리고 콘텐츠로 승부하도록 만들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미지 정치가 위험한 진짜 이유는 아무리 노력을 다 해도 그 모든 쇼(Show)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한계성에 있다. 확증편향에 빠진 정치세력들이 중심에 서서 빚어내는 침묵의 나선이야말로 최악의 국가적 재앙이다. 실패한 정권들의 치명적 실책은 영락없이 자신들에 대한 `무오류의 오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텐데, 참 걱정이다.

2018-01-29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올림픽

▲ 안재휘 논설위원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은 태양의 신인 아폴론(Apollon)과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Artemis)가 만나는 8년 주기에 맞춰서 열렸다. 갈등요인이었던 태양력과 태음력의 타협점이 바로 8년주기였던 것이다. 이 8년주기가 4년주기의 올림피아제로 바뀐 이유는 `올림픽 정신`과 관계가 있다. 전쟁을 피하고 그리스의 단합을 위해 축제의 주기를 줄여야 한다는 지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2018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다. 북한선수단은 5개 세부종목에 선수 22명 등 총 46명으로 결정됐다. 관심을 끌고 있는 여자 아이스하키는 북한선수 12명을 엔트리에 넣되 이 중 3명이 경기에 출전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올림픽에 오는 북한 인원은 총 700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여야 정치권은 개막식 때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는 것과 관련해 연일 날선 공방이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이 정부는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을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에 대해 “평화올림픽을 색깔론으로 몰고 간다”며 맹비난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핵전쟁 협박`이라는 살얼음판 위에서 세계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벌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올림픽을 망쳐서도, 북한의 음모에 놀아나서도 안 되는 형편이다. 연초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비롯된 딜레마는 뱉자니 달콤하고 삼키자니 쓴 고약한 왕사탕이다.마식령스키장 합동훈련도, 금강산 전야제도 모두 우리 정부가 먼저 내놓은 걸 보면 문재인정권은 지금 도박을 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북한의 평화공세는 국제제재의 예봉을 무디게 하고, 한미동맹을 흔들고, 핵무기와 미사일 기술 완성의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지금 북한의 올림픽 참가에 온 밑천을 다 걸고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에서 드러난 가장 흥미로운 민심은 이제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불공정`에 대해서 인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가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젊은이들은 선수들의 절망을 남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음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조금 더 큰 눈으로 바라보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는 일 정도는 받아들일 만하다. 삼수(三修) 끝에 겨우 따낸 올림픽에 북한이 막판에 밥숟갈 얹는 것이 다소 얄밉기는 하다. 그래도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니 받아줄만 하다. 하지만 마식령스키장, 금강산 행사를 우리가 제안했다는 대목은 자존심이 좀 상한다.정직하게 말해서, 북한에는 `선동선전대`는 있을망정 순수한 `예술단`은 없다. 평양에서 온통 사상교육용으로만 공연하던 콘텐츠라면 더욱 그렇다. 예술단이든 응원단이든 북한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번영된 모습을 보는 게 나쁠 이유가 없다는 견해에는 일리가 있다. 그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런지 흥미롭다. 대통령과 총리, 장관의 인식부족에 따른 말실수들이 귀에 걸린다. 선수촌으로 달려간 문재인 대통령이 `불공정·불통`에 속이 잔뜩 상한 선수들 앞에서 `역사의 명장면` 운운한 것은 마땅한 위로가 아니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여자 아이스하키 팀을 일러 “메달권에 있지 않다”고 한 말은 올림픽의 기본정신마저도 몰각한 실언이다. 아이스하키를 잘 모르는 도종환 문체부장관의 언급들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이제 올림픽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우리가 무진 애를 써서 만들어낸 올림픽 무대가 북한의 선동선전 굿판이 돼서는 안 된다. 까마득한 옛날, 기원전 776년 그리스에서 열린 첫 올림픽이 그랬듯이 평화를 위한 올림픽, 평화가 시작되는 올림픽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올림픽이 끝나면 북한은 필경 완성도 높은 미사일을 다시 쏘아댈 텐데, 그때 우리는 또 무슨 말을 내놓아야 할까 그게 벌써부터 걱정이다.

2018-01-22

`적폐청산` 과속스캔들

▲ 안재휘 논설위원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은 오래 전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방송에서 인터넷 매체의 폭력성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피해를 입은 작가와 연예인들을 예로 들며 “요즘 매스미디어를 보면 미쳤거나 덜 떨어졌거나 아니면 뇌를 다쳤거나 그런 상황인 것 같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네트(Net)의 폭도들`이라는 용어까지 동원해 `사이버 인민재판`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요즘 진보논객들이 감초처럼 동원하는 예시(例示)가 있다. 독일은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경비병 출신의 94세 노인에게 학살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70년이 지났어도 5년 징역형을 내렸다는 사례다. 아무리 좋게 들어도 작금의 적폐청산을 인류최대의 학살비극인 홀로코스트 범죄 단죄에 빗대는 건 너무 지나치다. 그들 심부에 깊숙이 박힌 모진 `적대감`의 실체란 대체 무엇인가.친박(친박근혜)계를 중심으로 하는 구 정권인사들은 아무래도 당분간 속수무책이지 싶다. 그들의 모습은 밀림에서 맹수에게 급소를 물린 먹잇감 꼴이다. 어쩌다가, 무심히 받아 쓴 `특활비`올무에 걸려 줄줄이 꼼짝달싹을 못하는 처지가 됐을까. 아무리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의 의기양양이 무상하다.문재인정권이 펼쳐가는 적폐청산 드라이브의 구조를 살펴보면 용의주도한 그물이 보인다. 사정당국과 언론매체와 포퓰리즘과 쇼맨십이 촘촘히 잘 엮여져 있다. 한번 걸려들면 웬만해서는 빠져나오기 힘든 패러다임을 갖추고 있다. 먹잇감을 찾아 지목하고, 혐의사실을 매체에 흘려 민심을 자극하고, 잡아채어 치죄하는 과정이 상당히 정교하다.정권은 국가경영을 위임받은 `대리인`에 불과한데도 집권세력이 스스로 곧 국가인 양 행동하는, 우리정치의 병폐는 바뀐 게 없다. 정권이 바뀌면 으레 전 정권의 구린 구석을 까뒤집어 망신 주는 일을 권력지탱의 불쏘시개로 쓴다. 문재인정권 역시 그런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대통령선거 공신들을 낙하산 태워 내려 보내는 행태부터 똑같다. 공영방송을 들쑤셔 입맛에 맞지 않는 경영진을 끌어내리는 소란도 마찬가지다. 정부 각 부처와 기관 칸칸마다 조직을 만들어 헤집는 방식으로 아적(我敵)을 가려내는 기술은 훨씬 더 공교롭다. 시민운동가가 주도하는 적폐청산위원회 또는 적폐청산 TF(태스크 포스)가 온갖 속살을 다 들여다보고 먹잇감 발라내듯 유리한 증좌만 찾아내는 재주도 놀랍다.국민들은 이제 이 소동의 과속스캔들이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적폐청산`이라면서, 한사코 `정치보복`은 아니라면서 그 동안 그 흙탕물에 같이 뒹굴며 살았는데 어째 진창 묻은 요인(要人)들은 죄다 한쪽 성향뿐이란 말인가. 아무리 불공정한 게임이라도 5대0, 10대0도 아니고 100대0으로 펼쳐지는 경기라면 수상할 수밖에 없다.사람들이 묻는다. 문재인정권은 왜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못 잡아넣어서 안달이냐고.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비극에 대해 복수하려는 작심 아니겠느냐는 추론만 그럴듯하다. 적폐청산 폭풍 속에 펼쳐지는 정권과 언론과 사법기관의 서슬이 이렇게 시퍼런데, MB는 과연 무탈할 수 있을까. 문재인정부는 `혁명정부` 맞나. 자문기관에 불과한 위원회를 동원해 기밀들을 다 뒤져내는 것은 철두철미 합법적인가. 봉인해놓은 국가 간 협약마저 차례로 까발리고 뒤집어 대한민국의 신인도를 추락시키는 행위는 정말 괜찮은가. 정부여당의 행태가 나라꼴이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정적을 제압하고 지지율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흑심의 발로가 부디 아니길 빈다.한치 앞도 안 보이는 권력의 숲 속에서 `오만방자(傲慢放恣)`보다도 더 미련한 짓은 없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데, 이 지리한 캥거루 법정의 `인민재판`드라마는 언제쯤이나 끝나나. 과속스캔들이 필경 빚어낼 또 다른 `청산` 소동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2018-01-15

`중도(中道)`는 있다

▲ 안재휘 논설위원`중용(中庸)`의 본질은 `신중한 실행이나 실천`이다. 플라톤(Platon)은 `어디에서 그치는지를 알아 거기서 머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며 따라서 크기의 양적 측정이 아닌 모든 가치의 질적인 비교`를 중용이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마땅한 정도를 초과하거나 미달하는 것은 악덕이며, 그 중간을 찾는 것을 참다운 덕`으로 간파했다. 불교의 중도(中道)도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통합여부를 놓고 뜨거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일부의 자유한국당 복귀로 바른정당은 이미 반 토막이 난 상태다. 국민의당 통합파-반통합파의 국회의원들 숫자도 얼추 반반쯤 되는 것으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신(新)4당 체제를 점치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은 이제 양극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이 별도의 `중도 빅 텐트`를 치고 정치세력을 확대해갈 것인가 여부에 쏠려 있다. 험악한 경쟁을 일삼는 청백전 정치, 흑백논리에 빠져 사생결단에 몰두하는 투쟁정치의 폐해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진정한 적폐(積幣)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결과에는 양당정치의 비효율성과 불합리에 대한 반성이 담겨있다. 하지만 국민의당 출범이 중도정치의 착근으로 가기에는 치명적인 두 가지의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하나는 신당 국민의당의 발목에 호남당의 족쇄가 덜컥 채워졌다는 사실이고, 다음은 보수정당 내의 중도정치 세력이 독립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전략적 미스가 됐건, 상황의 한계 때문이건 간에 안철수로서는 지난 총선에서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 천추의 한일 것이다. 그 동안 국민의당이 펼쳐온 정치는 안철수의 `새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진보`정치의 인력(引力)으로부터 잠시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호남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 내 탈당반대파들의 언행은 배경이 뻔하다. 그들은 적절한 기회에 더불어민주당으로 들어가던가, 이대로 남아 있는 것이 정치생명 유지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통합이야말로 자신들의 정치적 전정(前程)을 망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몸을 던져 반대한다. 아마도 안철수는 지난해 19대 대통령선거 패배를 통해서 호남에 발목 잡힌 자신의 처지를 절절이 깨달았을 것이다. 승부수를 던져 `중도 실용주의`로 자신의 정치노선을 정돈할 필요성을 간절하게 깨우쳤을 것이다. `지지기반`이 필요했던 안철수와 `간판`이 필요했던 호남정치인들의 공생은 결코 뿌리를 깊게 내릴 수가 없는 정치공학이었다. 진보와 보수로 딱 갈라놓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잣대로 꼴불견만 연출하는 정치가 유효하던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중도정치`야말로 지역정당, 이념정당의 한계를 뛰어넘을 블루오션일 지 모른다. `개혁적 보수`나 `합리적 진보`로 통칭되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고, 극단주의 정치에 넌더리가 난 국민들은 차고 넘친다. 한국정치는 물건을 많이 싣기 위해 평형수를 빼낸 세월호처럼 늘 위태롭다. 작은 파도에도 좌우로 속절없이 흔들리는 대한민국호에는 무게중심을 든든히 잡아줄 평형수가 시급하다. 물론 사익을 위해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가 하는 박쥐같은 처신이 아니라 극우와 극좌의 만행을 언제든지 꾸짖고 그 모순을 바로잡을 수 있는, 수족관의 상어 같은 올바른 `중도정치`가 돼야 한다.깨어있는 중도층이 두터운 국가사회야말로 극우와 극좌의 풍랑을 잠재우는 평형수의 힘을 지닌 중심 잡힌 사회다. 플라톤의 말처럼 `어디에서 그치는지를 알아 거기서 머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미덕인 정치가 우리에겐 절박하다. 한국갤럽 17%, MBC 19%, 동아일보 14.2%…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정당의 또 다른 지지율이 명분과 가능성을 예지하고 있다. 중도(中道)는 있다.

2018-01-08

`여우 굴`의 초청만찬

▲ 안재휘 논설위원말도 많고 탈도 많던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 끝났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4대 원칙`을 빼고 나면 잡다한 소란과 뒷말만 남긴 야릇한 정상외교가 아니었던가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아무리 되짚어 봐도 양국이 합의한 `4대 원칙` 자체가 걸쩍지근하다. 무엇보다도 대략 중국의 입장만 빼곡하고 그 어디에도 혈맹 미국에 대한 인식이나 배려가 없다는 점이 요상하다. 두 정상이 합의한 4대 원칙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불용`, `한반도 비핵화 원칙 견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남북한 간의 관계개선 필요` 등으로 요약된다. 일리 있는 내용이지만, 북한의 협박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맹방 미국의 정서는 그림자도 찾기 어렵다.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미국에 대해 `절대로 군사옵션 운운하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대해 한국이 연명 부서해준 구차한 `합의문`으로 읽힐 수도 있다. 북핵문제에 관한 한 중국의 실체는 말리는 척하는 `시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닌척하면서 실제로는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하고 있다는 의혹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에 있어서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존재다.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미국이 북한을 변화시킬 방법을 끝내 찾지 못하게 된다면 중국은 `4대 원칙` 합의문을 들고 무슨 횡포를 부릴지 알 수 없다.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대북송유관 차단을 촉구했다는 전언은 없다. 그렇다고 합의사항에 전 세계를 향해 `겁박`을 일삼고 있는 북한의 태도를 꾸짖는 대목도 존재하지 않는다.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이 남긴 어질더분한 잡음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들을 퍼트리고 있다. `국빈방문`이라면서도 공동성명이 없었고, 만찬조차 `비공개`였다. 국빈인 문 대통령은 몇 끼인가 혼밥 신세였다. 결정적인 것은 한국의 수행 사진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일이다.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 행태라는 해석도 난무한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이번 회담을 놓고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고 자찬하고 있다니 이 무슨 엇박자 해몽놀음인가.정말 짜증나는 일은 문 대통령의 방중외교를 놓고 벌어지는 막말 정쟁양상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일본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조공외교`와 `알현`이라는 용어까지 동원해 빈축을 샀다. 같은 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외교적 대형 참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구걸외교`라는 비판을 가했고,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삼전도 방중`이라고 맹공을 펼쳤다.대통령 수행기자들이 몰매질을 당한 사건에 대해서 참여정부 홍보수석을 지낸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는 `맞아도 싸다`는 식의 글을 올려 온 국민의 부아를 폭발시켰다. 진보언론들은 야당과 보수언론의 반응을 되잡아 까기에 여념이 없다. 또 하나의 새 먹잇감을 놓고 이 나라 여론은 죽고살기식 멱살잡이에 빠져들었다.우리에게 `중국`이란 어떤 존재인가. 수 천년 우리 민족을 핍박하고 수탈한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저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주권을 농락하는 고약한 이웃이다. 비밀지도에 한반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금 그어놓고 있다는 소문도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제아무리 힘 자랑으로 리더십을 인정받으려고 하지만 중국의 수준은 여전히 미개하다는 진상이 여실하다.심술 많은 여우가 두루미를 만찬에 초대했다. 그러나 기대를 갖고 여우 굴로 찾아간 두루미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여우는 모든 음식을 얇은 접시에 담아내어 긴 주둥이를 가진 두루미를 골탕 먹였다. 이솝우화에서는 두루미가 여우를 다시 초대해 호리병 속에 고기를 담아내어 복수한다. 문재인정권은 어찌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처지가 두루미만큼이나 녹록한가. 아니, 이 정권에 그럴 정도의 자각과 결기가 있기는 한가.

2017-12-18

`3개월` 막장드라마의 서막

▲ 안재휘 논설위원역사 속에 나타난 전쟁은 명목상 종교전쟁, 왕조전쟁, 이념적 전쟁 등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실상은 `계급사회`에 그 원인이 있는 역사적 현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대개의 전쟁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치가들이 폭력적인 수단을 취하여 나타난 참극인 것이다. 특정 지배계급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증오심·적의를 인민에게 불러일으키며 진짜 의도를 감춘 경우가 많다.힘센 삼촌과 맞붙어 싸우겠다는 만용을 지닌 아우가 있다. 삼촌을 상대하기가 버거운 아우는 삼촌과 친한 형부터 해치겠다고 상습적으로 으른다. 형은 아우를 말리고자 하지만 아우는 성정이 난폭한데다가 형에게는 없는 흉기까지 지니고 있어 쉽지 않다. 형은 삼촌을 향해 아우를 때리지 말라는 말만 거듭할 뿐 다른 대응수단을 찾지 못하고 전전긍긍이다.마이크 폼페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3개월이면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언론인 마크 세돈이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을 막기까지 3개월 남았나`란 제목의 영 가디언지 사설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마크 세돈은 부시 정권에서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꼽히던 존 볼튼 전 주 유엔 미국대사가 최근 영국 런던 서민원(하원)을 찾아 이 사실을 전달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설은 “미국이 3월을 대북 선제 타격의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것”이라며 “전쟁을 막으려면 유엔이 당장 움직여야 한다”고 쓰고 있다.월남전 때, 베트콩의 박격포 포격으로 극장 한 귀퉁이가 부서져도 관객들은 영화 상영을 중단하지 말라고 아우성이었다던가. 우리 국민들의 전쟁불감증은 더 이상 깊어질 공간이 없을 정도까지 다다랐다. 정치권은 물론 어느 곳도 전쟁의 위험성을 말하지 않는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 쪽에서는 `평화` 타령을 앞세워 `트럼프 대통령이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외침만 거듭한다.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일연구원 국제 학술회의 축사에서 “북한은 안보를 위해 핵을 보유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평화조약으로의 이행에 대한 절차를 밟아줘야 한다”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시끄럽다. 송 의원은 논란과 관련 “`내 핵무기는 선한 무기인데 너는 가지지 마라`는 구조로는 북한을 설득해 핵을 포기하게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라고 남 말하듯 부연설명하고 있다.전쟁은 막아야 한다. 그러나 항복이나 다름없는 비굴한 태도로 만들어내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적어도 북한의 핵을 용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말하려면 우리도 핵무장을 완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밝히는 것이 옳다. 미국과 전술핵 운용과 핵 공유에 대한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마땅하다.우리 국민들은 만성화된 핵전쟁 공포 속에 살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작금 국민들의 삶은 위태롭기 짝이 없는, 6연발 리볼버 17%의 사망가능성을 `설마`에 맡긴 `러시안룰렛` 게임과도 같다. 대한민국의 평화를 포장하고 있는 맹신의 주술들은 이렇다. `미국은 절대로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침략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결코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북한은 한반도에서 절대 핵무기를 쓰지 않을 것이다. 한 민족이기 때문에.`…. 이런 맹신들은 정말 유효한가. 언제까지 유효한가.마이크 폼페오 미국 CIA 국장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드디어 한반도에 얄짤없는 3개월짜리 시한부 막장드라마의 서막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선제공격하면 남한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북한의 의사는 명확하다. 우리는 망나니 아우의 폭력성이 무서워 아무 말도 못하는 초라한 형 꼴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7-12-11

고삐 풀린 `적개심 정치`

▲ 안재휘 논설위원힘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말 중 가장 무서운 언사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느냐`는 말이다. 털어 봐도 먼지가 없으면 묻혀서 뒤집어씌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권력에 취한 인간 군(群)의 속성이다. 과연 그렇다. 요즘처럼 `카더라` 방송의 위력이 어마어마해진 세상에 사정기관이 특정해 흘리는 정보에 이름이 한번 오르면 그걸로 끝이다. 전에 없이 권부의 표적사냥이 쉬워진 세상이 되었음을 느낀다.촛불시위를 거쳐 정권이 무너지는 격변을 겪은 우리에게 `적폐청산`은 대단한 휘발성을 지닌 구호다. 오랫동안 쌓이고 썩어온 구태들을 일소해내자는 주장은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물음은 그야말로 우문(愚問)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곪고 문드러진 원인을 찾아 치유하자는데 막아설 이유란 왜 있을까.그러나 질병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세균`과 `바이러스`는 그 치료법이 같을 수 없다. 대개의 세균은 항생제 투여와 청결유지로 없앨 수 있다. 바이러스는 다르다. 종합적인 치료법이 동원돼야 비로소 치료가 가능하다. 바이러스는 아직 인간에게 불가해의 영역이다.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적폐`는 세균 수준이 아니라, 바이러스다. 그 병인(病因)이 결코 단순치 않다. 의사들은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검증 안 된 신약은 절대 함부로 쓰지 않는다. 약화(藥禍)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적폐청산`은 쌓여있는 폐단을 고쳐내는데 있다. 그런데 작금 벌어지고 있는 양상은 벌집 쑤시듯 과거를 헤집어놓고 거기에다가 마구 살충제를 뿌려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누군가 `적폐`라고 찍으면 일단 망신주고 잡아넣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야만적인 처단이 거듭된다. 그 가운데 횡행하는 `적개심`은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정치권의 무분별한 선동은 사법부를 깔아뭉개는 수준으로까지 다다르고 있다.구속된 전 정부의 인사들이 차례로 풀려나면서 여권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들이 난리다. `적폐청산이 암초를 만났다`고 까지 더들어댄다. 사람 잡아넣는 일을 `적폐청산`의 모두라고 여기는 잘못된 인식수준이 여실히 입증되는 현상이다. 그 언행에 빼곡하게 박힌 `적개심`의 송곳들이 새로운 걱정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판사들까지 신상털이하며 포퓰리즘의 먹잇감으로 지목하는 모습은 오만의 극치다.김명수 대법원장이 1일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고(故) 이일규 전 대법원장 10주기 추념식에서 뼈 있는 말을 쏟아냈다. 김 대법원장은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권력의 간섭이나 강압은 군사독재 시대의 종국과 함께 자취를 감췄지만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들은 아직도 존재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때로는 여론이나 소셜미디어를 가장하여, 때로는 이른바 전관예우 논란을 이용하여, 때로는 사법부 주요 정책 추진과도 연계하여 재판의 독립을 흔들려는 시도들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그러자 이번에는 인터넷 세상에서 김 대법원장에 대한 인신공격이 마구잡이로 날아다닌다. 지켜주어야 할 권위도, 지켜야 할 권능도 모조리 파괴하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조짐들이 무수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몰이성의 저변에 희뜩거리는 저 `무한 적개심`을 어찌할 것인가. 역사를 깊게 반추하지도, 미래를 길게 바라보지도 않는 이 치졸한 증오의 광풍을 어찌해야 옳을 것인가. 한국정치는 지금 진화하고 있는 게 맞는가.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분명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대통령의 다짐은 아직 유효한가. 예상밖의 지지율 고공행진에 흔들린 것은 아닌가.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라 했다.

2017-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