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고 매진해도 시원찮을 시점에 악재가 겹치고 있다. 인재영입부터 난산 일색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번 게임에 `한국당` 간판으로는 승산이 높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겠지만, 거론되는 대다수의 인재들마다 차례로 손사래를 친다. 그런 한편으로 불거지는 `사천(私薦)` 논란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국당의 지리멸렬은 물론 전 정권, 전전 정권을 감당했던 정당으로서 정권재창출은 커녕 국정농단으로 탄핵까지 당하고 만 원죄의 여파일 것이다. 무려 2년이 가깝도록 무기력하게 폭로와 원망과 타도의 외침에 포위돼 살았으니 무슨 여력이 있을 것인가. 시각에 따라서는,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이만큼 형체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봐줘야 할 지도 모른다.
문제는 현재의 한국당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느냐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오늘날 자유한국당으로부터 9년 동안이나 국정을 책임졌던 정당이라는 정치력의 두께를 인식하지 못한다. 치열한 반성을 바탕으로 나라의 미래를 위한 설계도를 장만해 내놓는 능력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몇 조각 남지도 않은 권력의 빵부스러기들을 서로 차지하려고 앙앙불락하는 볼썽사나운 이미지만 부각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첫 번째 병폐는 인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관성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인물이 떠오르면 우르르 따라다니며 되지도 않는 침소봉대와 신화조작이나 일삼는다. 현실성 있는 정책능력이 배양되기는커녕 아귀조차 맞지 않는 하루살이식 당일치기 궤변술만 발달한다. 결국 과대평가된 리더의 허약한 실체가 드러나면 하루아침에 모두 망하고 마는 구조다.
제대로 된 사상이 있고 철학이 뒷받침되는 정치를 본 적이 없다. 우상화된 한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만이 미덕이 되는 전근대적인 정치역학이 작동되는 게 현실이다. 백년을 내다보아도 미더운 튼실한 정책정당의 탄생은 오늘도 내일도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우리 정치의 두 번째 고질병은 권력을 잡거나 유지하는 동력을 오로지 상대방의 에러(Error)에서만 찾아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설득력 있는 정책자랑에는 형편없이 서툴고, 교졸한 비난에는 능수능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당들은 상대방의 발목을 잡거나 물어뜯는 일에만 열중한다. 정적을 앙칼지게 물어뜯는 정치인에게 `대안`을 물으면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는 경우가 없다.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된 야당으로서 국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근본원인은 한국정치의 고질적 모순에 맞닿아 있다. 한국당 정치인들은 여전히 인물중심의 구시대적 패턴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간 경직된 정치의식의 포로들이다. 정부여당이 세상을 뒤집어 놓을 큰 잘못이나 저지르기를 학수고대하는 찌질한 야당으로는 안 된다. 집권세력을 향해 조목조목 따지고 들며 꼼짝 못할 정책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희생양을 원하는 군중심리를 하염없이 자극하는 방법으로 민심을 움켜쥐고 가는 진보 집권세력이 이제 출구를 어떻게 찾아갈지 걱정스러운 시점이다. 꾸준한 국민지지를 바탕으로 용의주도하게 칼춤을 추는 정권 앞에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참으로 요령부득이다. 홍준표 대표의 시끄러운 리더십도, 좀처럼 시대정신을 못 깨닫는 중진핵심들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불과 2년 전 총선에서 `전략공천`을 빙자한 공천학살극을 둘러싼 갈등이 초유의 대통령탄핵 사태로까지 발전해갔던 일을 상기해야 한다. 그 때 `상향식 공천`을 부르대던 사람들은 지금 무슨 경천동지할 궤변을 준비하고 있기에 꿀 먹은 벙어리들인가. 선거에서 전략공천은 마약(痲藥)과 같은 존재다. 잘 쓰면 분명히 좋은 약이다. 하지만 잘 쓰기가 정말 쉽지가 않다. 한국당은 지금 민주주의를 진화시키고 있는가. 떠나간 민심을 되찾을 가망이 과연 있기는 한가 거듭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