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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Morale) 체인지

등록일 2018-03-26 21:07 게재일 2018-03-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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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냥 사람이 바뀌는 일이야 이 땅에 민주주의가 시작된 이래 늘 있어왔던 일이니 특별할 게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지금 빠른 속도로 바뀌는 사회적 현상은 많이 다르다. 온갖 뉴스를 장식하는 이 질풍노도 의 변화는 일단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국정농단으로 엎어진 권력을 딛고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의 인위적인 `적폐청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연발생적인 `#미투 운동`이다.

날이 새면 한 사람씩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일이 일상화됐다. 가히 우상파괴의 계절이 도래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대의 우상들이 모조리 위태롭다. 역사가 오늘의 이 소용돌이를 어떻게 귀결해낼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의 가치관과 현재의 가치관이 충돌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정치권은 세상이 이렇게까지 험궂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새 정권이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할 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장구한 세월 정치권에 통용되던 일종의 불문율이 현저히 지켜질 것이라고 방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역대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국민지지율이 높은 문 대통령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위해 열쇠를 들지 않았다. 놀랍게도 망치를 들고 상자를 봉하고 있는 자물통을 두드려 부쉈다. 보혁(保革)을 가리지 않고 그 동안의 정권들이 다들 피해왔던 파괴적인 접근법을 쓴 것이다. 상자 안의 비밀들을 선택적으로 꺼내들고 칼을 휘두르고 있다.

종전까지, 그러니까 박근혜 시대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여기던 일들이 이제는 용서가 되지 않는 새로운 모럴(Morale) 혁명시대가 열렸다. 모럴은 성질·습관·생활 태도나 사회의 관습·풍속 등을 꿰뚫는 근본적인 인간의 존재 방식을 말한다. 이제 `전에는 괜찮았는데`라는 마음으로 살았다가는 그야말로 개망신을 당하기 십상인 시절이 왔다.

`#미투 운동`은 이런 변화를 더욱 극명하게 대변한다. 미투 열풍을 추동하는 힘은 매우 복잡하다. 여성의 활동영역 확장, 남성우월주의의 모순과 여성인권에 대한 자각, 여성의 경제력 향상과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육체적 파워가 아닌 지능이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가 오면서 성차별의 이유 또한 모조리 사라졌다. 여성들이, 또는 약자들이 부조리와 악습을 견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생존문제였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참고 견뎌야 할 모순들이 엄존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절박한 구조를 도외시하고 참고 살았던 날들을 탓하는 일은 무지의 소치다. 가해자들의 일탈은 이미 오래전 상식을 뛰어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결국 구속 수감됐다. 역대 대통령 두 명이 동시에 구치소에 갇히는 또 한 번의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 역사는 철저하게 `승자의 기록`이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 예외란 정녕 없는 것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계에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이들이 저격용 고성능 총에 맞아 영어의 몸이 되거나 하루아침에 목을 맨다.

적폐청산과 `#미투` 열풍은 같은 듯 사뭇 다르다. 적폐청산은 칼을 휘두르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보이는) 손이 있다는 것이고, `#미투`는 일단 그 손이 까마득 짐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폐청산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혁명은 칼을 휘두른 손도 예외로 두지 않게 됐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하, 그렇게 열면 되는구나 하고 세상이 다 알아버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MB 구속에 즈음한 문재인 대통령의 심중은 “삼가고 또 삼가겠다. 스스로에게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겠다는 다짐을 깊게 새긴다”였다. 부디 오늘날의 이 소란들이 치졸한 `보복정치`의 증좌가 되어 `복수혈전`의 빌미가 되지 않기를, 또 다른 차원으로 가는 모럴 진화의 증거로 남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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