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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 또는 `침묵의 나선`

등록일 2018-01-29 20:52 게재일 2018-01-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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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민주국가에서 한 정치집단이 국민들에게 어필해 지지세를 확보하는 매개요소는 `콘텐츠(Contents)`와 `이미지(Image)` 두 가지다.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정책 콘텐츠가 우선하고, 미개한 나라일수록 이미지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정치인, 정당들이 여지없이 이미지 정치에만 목을 매는 현상을 보면 가늠이 되고도 남을 일이다.

지난해 비운의 탄핵을 당한 박근혜정부 실패의 으뜸원인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불통(不通)`일 것이다. 기자들은 지독한 불통의 원인을 알아내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모든 불통 현상이 정치인 박근혜의 고유한 캐릭터에서 기인된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였다. 홍보수석, 대변인, 춘추관장을 통해 출입 기자들이 제아무리 성화를 대도 대통령은 만나주지 않았다.

보수 한나라당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고질병은 대통령의 의중과 조금만 다른 말을 해도 직격탄을 맞는 사건들이 형성한 `침묵의 나선(旋)`이다. 권력중심의 비위를 맞추려는 다수의 기류를 벗어날까 두려워서 용렬하게 침묵하는 무리들이 집권당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그 치명적인 틈새를 비집고, 진보는 `세월호`와 `최순실`이라는 기폭장치를 동원해 정권을 뒤집어엎었던 것이다.

지난 해 하반기부터 나라에 큰 사건사고가 거듭되고 있다. 12월 3일 영흥도 앞바다에서 낚싯배가 유조선에 부딪쳐 15명이나 되는 인명피해가 났다. 12월 21일에는 제천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해 또 29명의 귀한 목숨이 희생됐다. 지난 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마는 무려 38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세월호 참사를 온통 `박근혜 책임`으로 몰아때리던 진보정권이 곤혹스러울 만도 한 참변들이 반복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공방이 가관이다. 야당은 문재인정부의 허물로 덧씌우느라고 바쁘다. 정부여당은 거듭되는 재난들의 원천적인 책임이 얼마 전까지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에 있다고 욱대긴다. 여야를 불문하고 모두 잘못을 고백하고 무릎을 꿇어도 시원찮을 판에 참 뻔뻔한 군상들이지 싶다.

문재인정부의 주특기인 이미지 정치의 환영(幻影)을 비집고 서툰 콘텐츠들이 하나씩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탈(脫) 원전 선언, 최저임금 대폭 인상, 위안부 협상 이면합의 폭로, 국정원 기밀문서 열람, 편파 적폐청산 또는 정치보복 시비…. 새 정권 출범이후 벌어지는 논란들을 생성하는 진앙(震央)은 바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確證偏向)이다.

사실상, 붕당정치의 지도자나 추종자는 모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의식의 노예들이다. 특히 팬덤(fandom·광신자)정치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신념 속에 갇혀서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 특성이 강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가치관을 벗어나는 그 어떤 논리도 사악한 궤변으로 치부한다.

문재인정권 역시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침묵의 나선` 현상을 파생시키고 있다.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인사는 곧바로 `문빠`로 지칭되는 극렬지지패들에 의해 사이버공간에서 험악하게 `인간말종` 취급을 당한다. 안희정 충남지사마저 “이견을 제기할 권리”라는 바른말을 했다가 끔찍한 모다깃매를 맞고 입을 닫았다.

한국정치의 선진화는 어떻게 하면 정치인이나 정당들이 이미지 장난질을 버리고 콘텐츠로 승부하도록 만들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미지 정치가 위험한 진짜 이유는 아무리 노력을 다 해도 그 모든 쇼(Show)가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한계성에 있다. 확증편향에 빠진 정치세력들이 중심에 서서 빚어내는 침묵의 나선이야말로 최악의 국가적 재앙이다. 실패한 정권들의 치명적 실책은 영락없이 자신들에 대한 `무오류의 오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텐데,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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