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사극에 비쳐지는 사화(士禍) 장면은 끔찍하다. 피투성이의 특정당파 일행이 굴비두름처럼 엮여 나와 피가 튀는 매질을 당하고, 주리 틀리는 장면은 아이들이 볼까 두려울 정도다. 피비린내 나는 사화는 15세기 말 조선 연산군 때 시작돼 16세기 전반 명종 때까지 4차례나 거듭됐다.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1504), 기묘사화(1519), 을사사화(1545)가 그것이다. 사화의 본질이 `복수`였다는 평가에는 이의가 없다.
참변은 계속됐다. 특히 숙종(肅宗)은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사변을 일으켰다는 게 사가(史家)들의 분석이다. 상대 당을 제거해 붕당정치의 본질을 흐린 역사는 갑인예송 이후 정권을 잡고 있던 남인이 서인에 의해 대규모로 숙청된 경신대출척(1680년)에서 시작된다. 노론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이 사사되고 남인이 다시 등용된 기사환국(1689년) 역시 유사한 비극이었다.
문재인정부의 사정(司正)정국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에 40억원대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를 받는 박근혜정부 시절의 세 국정원장 중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이 구속됐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납을 요구했다”고 진술한 이병호 전 원장만 구속을 면했다.
이명박(MB)정부 때 국방부장관이었다가 박근혜정부에서도 국가안보실장으로 관직을 이어나갔던 김관진 전 장관도 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 관련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국가안보실장 시절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불법 수정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MB를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우기 위한 수순을 차곡차곡 밟고 있다는 느낌이 짙다.
검찰은 사이버사령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공격하고 그 성과를 청와대에 보고한 정황, `우리 사람을 철저하게 가려 뽑아야 한다`는 MB의 지시 정황이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고 흘리고 있다. MB는 얼마 전 바레인 출국에 앞서 자신을 향한 `적폐청산 수사`를 `보복`이라고 규정했다.
전병헌 전 청와대정무수석이 검찰의 소환조사 대상이 된 사태의 의미는 분명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최경환 의원을 비롯한 여러 명의 야당 정치인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정치인들 사이에는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내어주고 뼈를 부러뜨림)의 보복극이 시작됐다`는 비명이 흘러 다닌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이런 시절은 괴롭다. 여차하면 `육참`의 희생양이 되거나, `골단`의 목표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일 따름, 정치인들의 행태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속정당이 다르다고 아주 다를 이유도 없다.
정권이 바뀔 적마다 늘 반복돼온 이 같은 장면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보복`이라고 써놓고 `개혁`이라고 읽고, `복수`라고 써놓고 `청산`이라고 우기는 푸닥거리는 번번이 펼쳐져 왔다. 잇따르는 `위법·불법` 폭로를 집권당은 한사코 `적폐청산`이라고 욱대기고, 야당은 `복수극`이라고 극구 반발하는 충돌이 깊어지고 있다.
사정정국이 진정한 혁신이 되려면 마녀사냥으로만 치달아서는 안 된다.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속속들이 고쳐내는 일에 집중돼야 한다. 아적(我賊)을 딱 갈라놓고, 적이면 무조건 옭아 넣고 아군이면 적당히 봐주는 식이어서는 더욱 안 된다.`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며, 엄정해야 할 `법`을 시시때때 코에 걸었다가 귀에 걸었다가 하는 남용은 결국 자승자박이 될 확률이 높다.
정부여당의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역사에 `개혁`으로 남기 위해서는 그 전후좌우가 공명정대해야 함은 물론이요, 형평성에 있어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행여 훈구파의 `주초위왕(走肖爲王)` 장난질에 부화뇌동한 중종(中宗) 대의 기묘사화 같은 참담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고작 38세의 나이에 사약을 받은 천재사상가 조광조(趙光祖)는 참 억울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