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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무죄’ 단상(斷想)

등록일 2018-11-05 20:43 게재일 2018-11-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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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이순신(李舜臣)은 전라좌수사에 취임한 직후 어머니 변 씨를 여수의 고움내라는 곳에 모시고 봉양했다. 어머니 변 씨는 상당히 강직한 여성이었는데, ‘난중일기’를 보면 문안 인사를 하고 떠나는 아들 이순신에게 “가거라.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라고 격려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때 이순신은 어머니의 모습을 ‘두세 번 타이르시고 조금도 헤어지는 마음으로 탄식한 빛이 없으셨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는 전란을 겪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파싸움을 지속하다가 불과 44년만에 병자호란의 참화를 다시 당했다. 조정은 군역(軍役)을 감당하는 양인(良人) 계급이 급격히 줄어 들어가는 데도 제도를 바꾸지 않았다. 천민들은 물론 현직 관료, 학생(성균관 유생, 사학 유생, 향교 생도)과 2품 이상의 전직 관료 등은 모두 군역을 면제받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귀족의 의무) 따위는 싹수조차 전혀 없었다.

실학의 비조라고 일컬어지는 유형원(柳馨遠)은 반계수록에서 ‘천하 공공의 이(理)로 말한다면, 어찌 사천(私賤)만이 국민이 아니겠는가?’라고 개탄한다. 그는 국방에 대해서 병농일치의 군사 조직과 함께 성지 수축과 무기 개선·정기적인 군사훈련 실시 등을 주장하면서 천민을 줄여나갈 방안만 내놓았을뿐 ‘노비해방’의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조선은 자력으로 나라를 지킬 시스템도 의지도 준비돼 있지 않은 나라였다.

군역 대신에 군포(세금으로 내는 옷감)를 내는 군적수포제(軍籍收布制)나 방군수포제(放軍收布制)가 실시됐고, 돈을 받고 대신 군역을 치러주는 말도 안 되는 대립군제(代立軍制)까지 시행됐으니 참으로 한심한 나라였다. 많은 이들이 조선을 ‘망할 수밖에 없었던 나라’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식 사대주의에 찌들어 세상을 도무지 넓고 깊게 살피려고 하지 않았던 이상한 국가였다.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돼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기소된 오모 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9대4의 무죄 취지로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라고 본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가 14년만에 바뀐 것이다. 현재 같은 사유로 재판을 받는 93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도 줄줄이 무죄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결코 가벼운 변화가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의무’보다 개인적 ‘양심’의 가치를 상위에 자리매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여론은 일파만파다. 군필자들의 상대적 박탈감 토로와 함께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은 비양심적인가”라는 거부감까지 표출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법원 판결에 반대하는 내용의 청원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관심은 급속히 ‘대체복무’에 쏠린다. 소방서와 교도소에서 합숙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복무기간은 2021년 말까지 단축되는 현역 18개월의 두 배인 36개월이 유력하단다. 이제 국민여론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36개월간 소방서나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불공평을 용인할 것이냐 여부에 달려 있다.

‘국방’은 이제 그동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국민의 의무’ 개념에서 빠졌다. 인구감소가 병력자원 감소로 이어지고 있는 국면이다. 이러고도 이 나라의 안보는 과연 넉넉할까. 이순신은 충청도 아산 본가에 머물고 있던 셋째아들 이면이 급습한 왜군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다가 도륙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규한다. 사랑하던 아들 이면이 죽은 지 1년여만인 1598년 11월 이순신은 남해 노량 해전에서 왜선 200여 척을 쳐부수고 장렬히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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