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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애드벌룬’ 풍경

등록일 2018-10-15 20:51 게재일 2018-10-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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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애드벌룬’이라는 이름의 정치기법이 있다. 여론의 향배를 슬쩍 떠보고 대응하기 위해서 파격적인 이슈를 던져보는 정치술수다. 일단 띄워보고, 반응이 좋으면 막 밀어붙이고, 여론이 사나우면 흔히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거나 “진중치 못했다”며 사과 입장을 취해 거둬들이는 절차를 밟는다. 주요 정치인이나 정당들은 이슈 선점으로 자신들의 지명도를 높이는 이득까지 얻을 수 있는 이 정치기법을 간단없이 쓴다.

국정감사장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를 검토 중”이라는 깜짝 답변을 내놓아 정치권이 시끌하다. 강 장관의 발언에 외교부 수장이라면 당연히 따라 붙어야 할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있을 때’라는 수식어는 없었다. 야당의 질타가 빗발치자 강 장관은 “범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말이 너무 앞섰다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논란은 미국 쪽에서 심각한 사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 장관의 발언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한국은 우리의 승인(approval)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며 강경한 어조로 반박했다. 트럼프가 쓴 단어가 유쾌하지는 않지만, 강 장관의 발언을 대단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해 보인다.

국감장 모습은 전형적인 ‘짜고 치는 고스톱’ 장면이다. 주연은 최근 입만 열었다 하면 난리법석의 흙먼지를 일으키는 이해찬 대표였다. 작년 봄 대선 유세에서 “극우 보수세력을 철저히 궤멸시켜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던 이 대표는 ‘20년 장기집권’에 이어 ‘50년 장기집권’까지 부르댔다. 평양에서는 북한 안동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에게 “제가 살아 있는한 (정권을) 절대 안 뺏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는 말도 했다. 노회한 정치인 이해찬의 “국가보안법 논의”등 평양발언을 포함한 일련의 언급들은 결코 실수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한 ‘4·27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의결 여부를 놓고 정치권은 치열하게 내연(內燃) 중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준동의안 비용추계서를 보면, 판문점선언 이행에 필요한 내년도 총예산은 4천712억원으로 올해 예산에 준해 편성된 1천726억원보다 2천986억원이 늘어났다.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예산은 앞으로 얼마나 투입될지 모른다. 북한경제 정상화비용에 대해 씨티그룹은 약 70조8천억 원을 전망했고, 미래에셋대우는 총 112조원으로 추계했다. 지난 2014년 금융위원회는 ‘통일금융 보고서’를 통해 총 153조1천2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여당의 국회비준 요구는 ‘백지수표’에 서명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금 한반도 하늘에는 한 가지라도 삐끗하면 8천만 겨레의 생존이 위태롭게 될 수 있는 아찔한 애드벌룬들이 수두룩하다. 걱정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반통일’‘반평화’ 내지는 ‘적폐세력’으로 몰아때리며,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무한신뢰를 바탕으로 대북 과속패달을 밟고 있는 문재인 정권은 도무지 실패를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여전히 ‘먹을 것 없는 잔치판’을 벌여놓고 소문만 부풀리는 정부여당의 대북전략은 정녕 괜찮은 걸까. 자기 패를 미리 다 보여주는 이런 협상행태는 또 무슨 희한한 외교기술인가 싶다.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엇박자가 불안요소다. ‘보수’는 우리가 이렇게 배은망덕하게 굴다가 미군이 떠나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진보’는 미국을 자극하면서도 결코 미군철수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욱대기는 풍경도 얄궂다. 아무리 김정은의 입지를 위한 허허실실(虛虛實實)이라해도 신묘한 해법이 되기에는 여전히 어림없어 보이는, 남한의 ‘불가역적’ 무장해제가 걱정스럽다. 한반도 평화를 갈구하는 국민들의 염원은 점점 더 혼미한 ‘도박’의 영역 깊숙한 곳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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