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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의 ‘태산명동(泰山鳴動)’

등록일 2018-10-08 20:54 게재일 2018-10-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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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논설위원
▲ 안재휘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 수장 이해찬 대표의 ‘장기집권’ 호언은 이제 습관이 된 듯하다. 지난 8월에는 ‘20년 장기집권’을 언급하더니, 9월에는 ‘50년 장기집권’을 입줄에 올렸다. 며칠 전 10·4공동선언 11돌 기념식에 참석하려고 평양에 가서는 북측 정치인들과 면담하면서 “제가 살아있는 한 절대 (정권을) 안 빼앗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호기를 부렸다. ‘보수궤멸론’을 부르대는 강골정치인 이해찬의 거듭된 ‘장기집권’ 발언에 대해 제대로 논박하는 보수정치인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권 판세운동장의 기울기가 워낙 가파르다보니까 잽이든 어퍼컷이든 그저 무차별로 얻어맞고만 있을 따름인 모양새다. 보수정치가 전열정비를 제대로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변할 결기와 능력 자체가 없는 데다가 여전히 사사로운 권력유지의 옹졸한 욕망들만 그득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당내 253개 당협위원장 직무 평가와 인선을 주도할 조직강화특별위원으로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를 발탁했다. 2020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허물어진 집을 새로 지어낼 대목수로 전 변호사를 영입한 것이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의 편법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김 비대위원장은 일단 ‘모든 결과는 내 책임’이라고 막아선 형국이다. 전 변호사가 국민들로부터 한국당이 외면당하는 원인으로 박근혜 정부의 실정 혹은 탄핵 과정에서의 ‘책임의식 부재’를 지적한 것은 적절하다. “명망가 정치를 없애야 한다”면서 계파정치 청산을 강조한 대목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평소에 했던 “부패 정치인은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는 극언 때문인지 전 변호사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칼춤’만을 연상한다.

정치현장 경험이 없는 그의 활약을 놓고 벌써부터 비관론이 득달같다. ‘태산을 울리고 흔들지만, 겨우 쥐새끼 한 마리 나올 것(泰山鳴動鼠一匹)’ 이라는 악담마저 횡행한다. 그 동안 정치권에서 숱하게 일어났던 ‘물갈이’ 소동을 반추해보면 그런 박절한 전망들을 무작정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썩은 물은 그대로 두고 ‘붕어갈이’만 거듭했던 어리석음에 대한 우려의 발로일 것이다.

이 나라 보수정치의 운명을 좌우할 제1야당 자유한국당 재건축은 미래지향적 이념좌표와 민심을 제대로 읽어낸 정치지표 혁신이 우선돼야 한다. 당협위원장 교체같은 ‘붕어갈이’는 그 맨 마지막 절차가 돼야 마땅하다. 섣부른 인적청산에 앞서 ‘가치논쟁’부터 시작하겠다던, 김병준 위원장이 취임일성으로 천명한 혁신 밑그림이 문득 떠오른다.

물밑에서 얼마나 진척이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병준호(號)가 한국당을 이끌어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의미 있는 ‘가치논쟁’이 제대로 일어난 기억이 별로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좀 더디더라도, 썩은 물을 그냥 두고서 새 붕어만 찾으러 다니는 어리석은 방책에 함몰돼서는 안 된다. 미래를 향하는 민심에 바탕을 둔 새로운 보수이념 정체성 구축이 더 시급하다.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녹여낸 감동적인 이정표를 먼저 세워놓고 그 아래에 다시 모이자고 외치는 것이 백번 옳다. 전원책의 말처럼 이번이 자유한국당의 운명을 결정할 최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제대로 해야 한다. 앞장 선 이들 어느 누구도 사심(私心)에 묶여서는 안 된다.

작금 경제정책과 대북정책에서 과속과 도박을 일삼는 정권 앞에서 보수의 목소리는 초라한 넋두리 취급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여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차원의 장기폭정 질곡 아래에서 신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한국당 전원책의 ‘태산명동’ 함수풀이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고작 쥐새끼 한 마리 나오는 처참한 결말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명을 부디 잊지 말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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