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세기경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참주(僭主) 디오니시오스 2세에게는 늘 아첨으로 왕의 행복을 찬양하는 다모클레스라는 신하가 있었다. 명석한 왕은 다모클레스의 말에 질투와 선망을 넘어 배반의 기운이 섞여 있음을 간파했다. 어느 날 왕은 다모클레스를 연회에 초대하여 왕좌에 앉게 하고는 천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예리한 날 끝이 정수리를 향해 거꾸로 매달린 칼 한 자루가 가는 말총 한 가닥에 매달려 있었다. 다모클레스는 기겁하여 진땀을 흘리며 도망치듯 왕좌에서 내려왔다.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신화 이야기다. 권세가 주는 부귀는 항상 치명적인 위험과 불안이 동반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이 신화는 권력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뜻밖의 날벼락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왜 `다모클레스의 칼` 같은 경계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요즘이다.
`최순실 게이트` 핵폭탄이 터진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행태들이 또다시 국민들의 여망을 곤죽으로 만들고 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기야, 장구한 세월 지도자와 흉허물을 터놓고 지낸 한 여인의 수준에서 일어난,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국정농단이라는 개요부터 납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참사이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작금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기형적인 형태로 변질돼왔는지를 증명한다.
당명조차 사이비 종교의 교리언어(敎理言語)에서 비롯됐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은 한 마디로 우왕좌왕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다. 박 대통령을 에워싼 채 위세당당 두 눈 부릅뜨고 호가호위하던 `꼭두박씨`들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게 침잠 중이다. 그래도 문 닫아 걸어놓은 자리에서는 아직도 친박-비박이 거친 드잡이판을 벌인다니, 그 난파선 위의 추잡한 자중지란이 민심을 얼마나 낙망케 할 지는 명약관화하다.
방향타를 제대로 잡지 못하기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상상을 초월한 호재를 만난 야당들의 행태는 우리 정치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굶주린 야수처럼 달려들긴 했는데, 먹이가 약(藥)인지 독(毒)인지를 가늠하지 못해 쩔쩔매는 형국이다. `하야`라는 말을 개밥의 도토리처럼 굴리면서 `2선 퇴진`이라고 부르대는데 도무지 무슨 개념인지 모르겠다. 그들 가슴에 과연 누리려는 `권력욕` 말고 사랑해야 할 `국가`가 있기나 한 것인가.
야권은 박 대통령의 자진사퇴가 두려운 게 틀림없다. 전열정비가 제대로 안 된 그들에게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 하도록 돼있는 헌법 제 68조 2항이 버거운 것이다. 여차하면 임기를 마치고 갓 돌아온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기회를 헌납할 여지도 있다는 계산이 그들로 하여금 우물쭈물,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리게 하는 요인 아닐까. 거국중립내각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꼴이 한심하다.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 사태는 온 국민들에게 허탈과 분노의 발화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 청와대 출입기자로 살았던 필자조차 일종의 모멸감으로 고통스럽다. 일개 취재기자가 이럴진대, 장관들을 비롯해 권부의 핵심에 들어서서 행세해온 이들은 어떨까. 부지불식간에 자신들의 삶이 `허수아비 춤`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땅을 파고 싶을 만큼 자괴스러운 것은 아닐까.
여야를 불문하고 유력 정치인들마저 `그런 줄 까맣게 몰랐다`고 거듭 말하는 것은 해괴한 일이다. 개중에는 알면서도 거짓으로 둘러대는 `모르쇠`도 있을 것이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가 된 자들이 위기국면을 모면하기 위해 `몰랐다`고 발뺌하는 일은 앞으로도 비일비재할 것 같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나라의 운명 앞에서, 찌질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위정자들 머리 위에 한 줄 말총에 묶여 거꾸로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칼`들이 위태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몰랐다`도 죄(罪)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