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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Over)` 대 `오버(Over)`

등록일 2016-10-04 02:01 게재일 2016-10-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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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축구경기 도중 심판이 갑자기 공을 차면 어떻게 될까. 유례가 없으니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는 상상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굳이 유추해보자면 아마도, 그 심판은 당장 그라운드에서 쫓겨나거나 관중들의 돌팔매질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곧바로 정신병원으로 실려 갈 수도 있다. 심판은 심판으로서의 금도(襟度)를 지킬 때 비로소 존경받는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20대 국회 첫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최근 사드배치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는 우리 주도의 북핵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발언해 편파기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결국 김재수 농수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과정에서 사고를 쳤다. 자기 마음대로 본회의 차수를 변경하고 의안순서까지 바꾸는 무리수를 감행했다.

정 의장이 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세월호와 어버이연합 등을 언급하며 “맨입으로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 녹취록은 가히 충격적이다. 의장으로서의 품격과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치명적인 대목이다. 굳건한 중립의지로 국회 운영의 묘를 살리고 타협의 정치, 생산적인 정치를 전개할 책무가 있는 국회의장이 스스로 사명을 저버리고 있음이 자명해졌다.

여소야대(與小野大) 정치구도에서 국회수장이 된 그의 언행은 명백한 오버(Over)정치다. 최소한, 한국정치의 선진화에 대한 대승적인 설계도가 전혀 안 보인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미디어법·예산안 등의 강행 처리 때도 비슷하게 했는데 뭐가 잘못이냐는 심사인 듯하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의장으로는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는 기대난망이다. 정세균 의장의 협량(狹量)한 국회운영은 울고 싶은 새누리당의 뺨을 친 격이다. 국회에서 거칠게 항의하고, 국회의장을 성토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민홍보전을 펼치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정현 대표가 `국회의장 사퇴`를 걸고 단식투쟁에 돌입하면서 `국정감사 보이콧`까지 간 것은 또 하나의 오버(Over)정치였다. 민심을 잘못 읽은 패착이었다.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풀고, 새누리당이 국정감사장으로 돌아오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국회가 제아무리 여소야대로 돼있어도 정치가 실종되는 비정상 사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국회 파행이 한없이 길어질 때, 민심이 어떻게 흐를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스텝이 꼬였네`, `빈손 회군(回軍)이네`하는 야유에 연연할 여유가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 논란이 휩쓸었다고 해서 미르·K스포츠 재단과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의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 공격수들의 예봉이 무뎌졌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선을 한 해 남짓 앞둔 상황에서 극악한 정쟁은 어차피 불가피하다. 새누리당의 초강수를 `이슈가 이슈를 잡아먹는` 정치공학의 성공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 우리 국민들의 의식은 그런 정치적 계산쯤은 간단히 꿰뚫어볼 정도로 성장해 있다. 정세균 의장과 새누리당이 오버(Over)정치로 어떻게 이문을 챙기고자 했는지도 이미 헤아림이 끝났다.

심각한 것은 뭇 정치인들의 정략놀음에 민생 함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심을 훔쳐갈 온갖 잔꾀들이 난무하는 정치현장에서 진정으로 국민을 걱정하고, 나라의 장래를 설계하는 정객들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비난과 성토로 선동에 몰두하거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쇼 정치`를 탐닉하는 구태만 성성하다.

엄정중립의 철학을 지키는 멋진 심판이 엄존하는 선진국회가 돼야 한다. 천박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의식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지난날의 흑역사에 기대어 자신의 일탈을 합리화하려는 유치한 발상도 종식돼야 한다.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중용(中庸)의 정치가 펼쳐지고 그 가치를 바로 볼 줄 아는 국민들이 그득한, 그런 나라로 가야 한다. 오버(Over)정치는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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