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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피`

등록일 2017-02-07 02:01 게재일 2017-02-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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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정치에 나서는 사람, 즉 힘과 권력을 수단으로 택하는 사람은 악마와 계약을 맺는 것이다. 정치인의 행동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악한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는다는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치의 미성년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과학자이자 사상가인 막스 베버(Max Weber)의 말이다. 그는 정치의 큰 변화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통해 일어난다고 본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파격적인 행보로 지구촌이 벌집 쑤신 듯 소요한다. 트럼프의 전기를 쓴 그웬다 블레어(Gwenda Blair)는 트럼프의 평소 행동을 분석한 성공 요인을 이렇게 요약한다. “무슨 일이든 반드시 이겨라.” “뻔뻔해지는 것에 인색하지 마라.” “어떤 일이든 자기 자신을 홍보 수단으로 삼아라.” “결과에 상관없이 이겼다고 우겨라.” “언제나 과대 포장하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 3주 만에 허망하게 무너져 사라진 대선(大選) 가도가 예측불허의 각축장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야권에서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다크호스로 부상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돈다. 여권에서도 유승민 의원의 부상(浮上)이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황교안 총리에 쏠리는 민심이 이채롭다. 제 아무리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치러지는 선거라 해도 몇 번은 출렁거릴 조짐이다.

대선 판을 흔들 가장 큰 변인은 아무래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인용`을 전제로 움직이는 정치권의 예단은 `기각` 이변을 허용하지 않는다. 헌재의 결정일자를 2월 말쯤으로 점치고 있는 가늠에 맞춰 `4월말~5월초`의 이른바 `벚꽃대선`을 예측하는 전망이 많다. 결코 길다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복잡한 변수가 작용하면서 선거판이 거듭 요동칠 것 같은 예감이다. 정가에는 `악마의 피가 많은 사람이 선거에서 이긴다`는 속설이 있다. 여기에서 `악마의 피`란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권력욕`, 웬만한 여론의 모다깃매에는 끄떡하지 않는 두둑한 `맷집`,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교활함` 따위로 의역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면 과연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시련을 겪고도 끝내 살아남아 권력을 누린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반기문의 실패를 무심히 비웃어서는 안 된다. `악마의 피`라고는 한 줌도 있어 보이지 않는 그의 가치를 삽시간에 짓뭉개고 만 살벌한 우리 정치풍토를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람은 잠시도 버틸 수 없는 험악한 정치풍토를 괜찮다고 여기는 것부터 우리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병증(病症)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진 정치꾼들이 언제나 승리하는 나라는 결코 온전한 나라일 수 없다.

반기문이 홀연히 떠난 정치권 링 위에서 우리는 누가 더 `악마의 피`를 많이 가졌는지를 잔인하게 견주고 있다. 상식 밖의 `뻔뻔함`을 무기로 쟁취한 트럼프의 대권이 뜨겁게 부딪치고 있는 미국정치의 귀추도 관심거리다. 칼끝과 총구(銃口)가 좌지우지한 권력시대를 벗어나 여론(與論)이 권력의 향방을 판가름하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기가 한층 더 어려워졌다.

한국정치를 바꿔내기 위해서는 승자독식으로 이어지는 선거독재와 끊임없는 대선불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묘안을 찾아내는 일이 급선무다. 개헌은 그 첫 관문이다. 대선후보로 나선 50대 주자들이 몰두하는 `연정(聯政)`과 `정책대결`의 레이스를 주시한다. 그들의 이상이 부디 `악마`가 아닌 `천사`와의 계약으로 귀결되길 소망한다. 미래를 한없이 암울하게 만드는 `비상식`의 범람을 막아내는 튼튼한 `상식`의 방파제가 창조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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